바다늑대 FORCE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에서 동양의 나포리 통영항(統營港)을 안아보다 본문

바다늑대/山 & 旅行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에서 동양의 나포리 통영항(統營港)을 안아보다

바다늑대FORCE 2019. 4. 7. 19:42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에서

   동양의 나포리 통영항(統營港)을 안아보다


▲ 동피랑

    치 :  경상남도 동피랑1길 6-18

    동피랑관광해설 ☏ 055-650-0510


▲여행일  : 2019년04월07일 일요일 날씨 : 흐림(미세먼지 많음)

▲동피랑 벽화마을 개요:

경상남도 통영시 동호동, 정량동, 태평동, 중앙동 일대의 언덕 위 마을로

 ‘동피랑’이란 이름은 ‘동쪽 벼랑’이라는 뜻이다.

구불구불한 오르막 골목길을 따라 강구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피랑 마을에 오르면

담벼락마다 그려진 형형색색의 벽화가 눈길을 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統制營)의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로

서민들의 오랜 삶의 터전이었다.

통영시는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여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2007년 10월 통영시청, 통영교육청, ‘통영RCE(현, 통영시지속가능발전교육재단)

푸른통영21추진협의회, 통영시 청소년 문화회 ‘드리머’, 지역주민50명, 정량동사무소

정량동 자원봉사협의회 김가은 회장 외 20명, 학생 및 단체 회원 30여명, 충무여중 영화팀

김형진 혁신협의회장, 인평초 리코더반, 충무여중 합창반, 김형진, 이영민, 최병대, 최상환 등이

공공미술의 가치를 걸고 통영의 망루 동피랑의 재발견 ‘동피랑 백일장 및 벽화그리기

마을 잔치, 생태 문화지도를 제작하는 등 18개 팀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린 것을 시작으로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 마을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마을을 보존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자 통영시는 마침내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마을 꼭대기의 집

3채만을 헐고 마을 철거방침을 철회하였다.

철거 대상이었던 동피랑 마을은 현재, 벽화로 인하여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변모하였다.


▲  동피랑 관광지도



찾아가는길

 진주ic삼거리 →→→통영대전간고속도로→→→고속도로통영Ic→→→통영해안로 시민문화회관 방향

 →→→통영활어시장 주차장

58km 승용차 50분 소요

→→→→→2019년 04월07일 일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길을 나서본다 거제 대금산 진달래 산행을 일찍 마치고

돌아 오는길에 동피랑 마을을 둘러보기 위하여 통영 활어시장 주차장에 주차를 하였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주차장도 만차 상태다

주차장 입구에 카드결재 안된다고 해 놓았다 오로지 현금장사....음


동피랑 벽화마을 안내판

안내판에는 우리나라 그리고 일어 영어로 마을을 소개해 놓았다.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구불구불한 오르막 골목길을 따라 강구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피랑 마을에 오르면

담벼락마다 그려진 형형색색의 벽화가 눈길을 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統制營)의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로

서민들의 오랜 삶의 터전이었다.

통영시는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여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2007년 10월 통영시청, 통영교육청, ‘통영RCE(현, 통영시지속가능발전교육재단)

푸른통영21추진협의회, 통영시 청소년 문화회 ‘드리머’, 지역주민50명, 정량동사무소

정량동 자원봉사협의회 김가은 회장 외 20명, 학생 및 단체 회원 30여명, 충무여중 영화팀

김형진 혁신협의회장, 인평초 리코더반, 충무여중 합창반, 김형진, 이영민, 최병대, 최상환 등이

공공미술의 가치를 걸고 통영의 망루 동피랑의 재발견 ‘동피랑 백일장 및 벽화그리기

마을 잔치, 생태 문화지도를 제작하는 등 18개 팀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린 것을 시작으로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 마을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마을을 보존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자 통영시는 마침내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마을 꼭대기의 집

3채만을 헐고 마을 철거방침을 철회하였다.

철거 대상이었던 동피랑 마을은 현재, 벽화로 인하여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변모하였다.

경상남도 통영시 동호동, 정량동, 태평동, 중앙동 일대의 언덕 위 마을로

 ‘동피랑’이란 이름은 ‘동쪽 벼랑’이라는 뜻이다.


바다 백리길 한려해상 국립공원

통영에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인데 섬이 몇개나 될까

연대도 연화도 사량도 욕지도 소매물도 한산도 비진도 괭이섬 홍도 장사도 오곡도

곤리도 두미도 저도 만지도 수우도등 유무인 섬 192개로 공식 확인 되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閑麗海上國立公園 )

전라남도 여수시, 경상남도 사천시·거제시·통영시·하동군·남해군 등에 걸쳐 있다.

한려란 한산도의 '한'과 여수의 '여'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1968년 12월 해상공원으로는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해상관광자원이 풍부하고 이순신 장군의 역사 유적이 많다.

기후가 온화해 동백나무·비자나무·유자나무·풍란 등 난대성식물이 자생한다.
총면적 510.32㎢ 중 바다면적이 344.76㎢이고, 그 나머지는 섬을 포함한 육지이다.

국립공원은 거제해금강지구, 통영·한산지구, 사천지구, 남해대교지구, 상주·금산지구, 여수·오동도지구 등으로 구분된다.
관광코스로는 부산에서 엔젤호를 타고 통영-여수, 통영-사천-부산-여수를 도는 방법

여수항에서 남해-사천-사량도-통영-부산항에 이르는 방법 등이 있다.


동피랑 마을

동피랑은 ‘동쪽’과 ‘비랑’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생긴 이름이다.

비랑은 비탈의 통영 사투리이다. 통영 시가지 동쪽에 동호동과 정량동, 태평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의 바위 피랑지대에서 유래한 토박이 지명이다.

옛 통영성의 동포루가 산 정상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푸른 통영21 추진협의회는 2007년 10월 도시재생의 색다른 시선 ‘통영의 망루 동피랑의 재발견’이라는 사업을 시행했다.

이는 통영시가 동포루 복원과 공원 조성 목적으로 마을을 철거하려고 하자, 공공미술을 통한 마을 살리기 사업이었다.

마을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과 강구안 바다 풍경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통영시의 명소가 되었다.

2008민관포럼 최우수상, 2008전국 마을만들기 대회 우수상 등을 받았다.


배트맨

동파랑 마을에 배트맨도 있다

배트맨 관련 영화는 아마도 10여편 될것이다

특히 액션영화 매니아라 10여편 다본것 같다  배트맨 비긴즈가 오래동안 기억에 남은듯 하다

배트맨이 통영항을 내려다 보고

출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듯한 포즈를 하고 있다


드라마 촬영지 빠담빠담

종합편성채널 jTBC 개국 특집 드라마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 박동소리’(가제 이하 ‘빠담빠담’)가 통영 동피랑 일대에서 촬영지

드라마의 제목인 빠담빠담의 의미는 몹시 놀라거나 불안하여

가슴이 자꾸 뛰는 모양을 나타내는 불어러고 한다.

정우성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다.


통영 강구안

강구안은 육지로 바다가 들어온 항구로, 강구안 바다는 다른 항구보다 상쾌하고 활기차다.

푸른 바닷물이 넘실대며 바다가 통째로 흔들리는 느낌이다.

그 위에 고깃배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줄을 지어 정박해 있다.

또 항구 앞에는 유명한 충무김밥을 파는 식당이 줄을 지었다.

풀무와 화덕이 있는 공작소에서는 옛날식으로 쇠를 다루어 각종 연장을 만들어 내며

중앙시장은 수산물은 물론 공산품까지 없는 게 없다.

이 곳에 사는 주민들이나 시장 사람들이나 이 곳을 찾는 여행자들 모두가

강구안의 상쾌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고 또 향유한다.

밤에 가장 아름다운 항구가 여수항이라면 낮에 가장 아름다운 항구는 통영의 강구안이다.

강구안에는  거북선이 전시되어 있는데

1990년 이충무공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서울시가 해군에 의뢰

제작비 22억을 들여 실제 크기로 복원한 거북선이며

분단 이후 굳게 닫혀 있던 한강하류(비무장지대)의 빗장을 52년만에 풀고

2005년 11월 16일 한강시민공원에 정박해 있던 거북선을 이순신장군의 한산대첩 전승지인

통영시로 옮겨 전시하게 되었다 한다.


소화기

동피랑 마을 담벽에 소화기가 설치 되어 있는데

소방관이 소화기를 들고 가는 캐릭트의 그림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지나 가듯이 나 역시 직업병처럼 곁에 서 보았다.

그림을 자세히 보니 여성소방관

내가 소방에 처음 입문할적엔 여성소방관 보기가 힘들었지만

요즘은 여성소방관이랑 같이 근무할 정도로 많아졌다.


해마(海馬)

여긴 해마 그림이 많다

해마는 실고기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로, 우리 나라 동해안과 남해안 및 일본에 분포하는 특이한 물고기이다.

몸길이는 약 7cm쯤으로 그 모양이 보통 물고기와는 다르다.

머리와 몸은 거의 직각이며 가늘고 긴 꼬리가 있다.

흔히 꼬리로 바닷말을 감아 몸을 곧게 세우고 있으며

헤엄칠 때는 꼬리를 안으로 감고 곧게 서서 등지느라미로 헤엄친다.

수컷의 배에 새끼를 넣어 기르는 주머니가 있어, 암컷이 여기에 알을 낳는다.

수컷은 새끼를 깨어, 혼자서 헤엄칠 수 있을 때까지 키운다.



해마는 딱딱한 갑옷과 같은 여러 개의 조각판으로 몸을 감싸고 있어 쉽게 몸에 상처가 나지 않는다.

해마의 생태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아빠의 자식 사랑이다!

여느 동물은 엄마가 또는 엄마랑 아빠가 함께 자녀들을 돌본다.

하지만 해마는 오직 아빠의 사랑만이 존재한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으로 생겨난 수정란은 캥거루처럼 아빠의 배에 있는 새끼주머니 속에서 자란다.

아빠는 자녀들이 배 주머니 안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자나 깨나 돌본다.

해마의 따스한 부정은 물속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우리바다에는 6종류의 해마들(해마, 가시해마, 복해마, 산호해마, 점해마, 신도해마)이 살고 있다.

이들은 주로 얕은 수심의 연안에서 해조류나 잘피 잎에 꼬리를 감은 채로 살아간다.

먹이는 가늘고 긴 주둥이와 강한 흡입력을 이용해서 앞을 지나가는 동물플랑크톤이나

곤쟁이와 같은 작은 새우를 잡아먹는다.


동피랑 벽화마을 철제 구조물

동피랑 마을에 벽화로 인해 인기가 좋다고 해서 몇번이고 올려고 했지만

생각한날로부터 아마 10여년 만인가 보다,

동피랑은 벽화마을의 선구자라고 할수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하동에도 벽화마을이 있고

우리 행봉사단에서도 벽화를 그려 봉사한 일도 있을 만큼 벽화는 일상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벽화마을로 꼽히는 동피랑은 알록달록한 벽화가 보는 이의 마음에 새봄을 불어넣는다.

동쪽벼랑이라는 뜻이라는 이도 있으며 마을의 제일 위에 있던 동포루에서 따왔다는 말도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이든 동피랑이란 마을의 이름은 참으로 정겹고 예쁘기만다.
처음에는 동피랑 마을이 이렇게 예쁘지 않았다고 한다.

바다와 항구에서 일하던 이들이 살던 허름한 마을이 동포루 복원과 공원화 사업에 의해 없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때

이렇게 허물 수는 없다며 마을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던 와중에

젊은 예술가들이 마을의 골목골목 사이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벽화마을의 작은 골목 사이사이 그려져 있는 벽화와 바다는 묘하게 어울려

 잘 알려진 그림도 많지만 숨어 있는 작은 그림들도 있으니 눈 크게 뜨고 찾아보자.

 언덕에 올라가면 펼쳐지는 시원한 경치는 아름다움을 한층더 보태준다.


동포루(東鋪樓)

1991년 12월 23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되었으며 왜적을 방어하고 거주지와 생업지를 갈라 놓는

두 가지 목적으로 1678년(숙종 4)에 통제사 윤천뢰()가 축성하였다.

해발 174.2m, 높이 4.7m, 너비 4m, 둘레 약 3,660m이다.

북문 북쪽의 여황산 기슭에서 서문 북쪽의 산기슭까지 여황산 양쪽 등성이 약 1km는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이다.
토성은 산등성이를 이용하여 기단부는 삭토식()으로 조성하다가 상부로 오면서 석심()을 넣고

흙을 다지면서 사다리꼴 모양으로 쌓았고, 석성은 남문을 위시한 4대문과 2암문() 양쪽에는

네모 반듯하게 다듬은 무사석으로 협축()하였다.

나머지 부분은 지세를 따라 사행()으로 가면서 자연석으로 바깥쪽을 물림쌓기로 축성하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밋밋하게 쌓아올린 내탁공법을 취하였다.
1985년 통제영이 없어지고 일제강점기에 성벽과 문루가 훼철되어 지금은 토성의 유지와 석성의 일부분만 남아 있다.

옛 통영성에는 동서남북 4대문과 2암문, 그리고 동·서·북쪽에 3포루()가 있었다.

동문은 홍예문()으로 축성할 때 함께 지었는데, 1748년 통제사 장태소()가 신흥문()이라는 편액을 문루에 걸었고

1792년 통제사 이윤경()이 고쳐 지으면서 춘생문()이라 하였다.

서문 역시 홍예문으로 축성 때 함께 지었는데 1790년 통제사 신응주()가 고쳐 짓고 금숙문()이라 하였다.

남문도 홍예문으로 축성시에 지었는데 일명 청남루()라 하였다. 1843년 통제사 허계()가 중수하였다.
북문은 통영성을 축성할 당시에는 문루가 없었으나 1771년 통제사 원중회()가 문루를 짓고

이름을 공북루()라 하였는데, 일명 의두문()이라고도 하였다.

 동·남의 두 암문은 성을 쌓을 때 함께 만들었는데 문루가 없었다. 동암문은 일명 수구문()이라고도 불렸는데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항상 잠가 두었다고 한다. 3포루는 1694년 통제사 목림기()가 세웠다.
통영성을 방비하던 산성중군()이 순찰과 경비를 하던 초소로

때로는 장수가 이곳에서 군사들을 지휘하였기에 장대()라고도 하였다.

북포루는 여황산 정상에 있었는데 북장대라고도 불렀으며 1993년 2월에 복원되었다.

동포루는 성 동쪽 동피랑 꼭대기에 있어 동장대, 서포루는 성의 서쪽 서피랑 꼭대기에 있어 서장대라고도 하였다.



동포루에서 만난 남아프리카 여행자

모녀지간 인가는 물어 보지 않았지만 남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한다

한국어는 전혀 못한다고 하는데 어찌 여기까지 왔는지 짧은 영어 실력에 더 이상 이야기도 안되고

같이 기념촬영에 쉽게 포즈를 취해 주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백인이 10% 라고 하며

행정수도는 프리토리아, 입법수도는 케이프타운, 사법수도는 블룸폰테인이며 화폐단위는 랜드다.

20세기 내내 인종분리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펼쳐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넬슨 만델라의 지도 아래 흑인 다수당이 승리하면서 1994년 이후 정책 폐지에 이르렀다.

다채로운 지형과 뛰어난 자연경관, 문화적 다양성으로 유명하여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싶어하는 나라가 되었다.

현재에도 높은 범죄율, 인종 간 긴장, 주택과 교육 기회에서의 커다란 격차

유행성 전염병 등 풀기 어려운 난제들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흔적

여기는 아마도 흔적 만드는 곳인가 보다

많은 여행자 연인들이 다녀간 흔적을 남겨 놓았다.

여기저기 상업적으로도 많이 만들어 져 있다

하동 악양의 하덕마을엔 녹차와 섬진강 주제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동피랑 마을 시발점으로 해서

농촌마을이 예술 담벼락으로 변하고 있다.


청춘카페

왜 청춘카페일까..젊은청춘들만 모여 차한잔 하는곳인가 살며시 쳐다보니

주인장이 젊은 아가씨였다 그래서 청춘카페 인지도 모르겠다.

동피랑이 있다면 서피랑은 어디일까?

서피랑은 통영시 서호동에 있다고 하며 그기도 벽화로 조성해 놓았다고 한다.

그기도 역시 서포루(西鋪樓)가있다


소화기

여기는 남성 소방관이 소화기를 가리키고 있다

녹차를 좋아하고 수영을 좋아하고

단것을 좋아하고 향수를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하고 그림보다 사진찍기를 좋아하는데......비슷한게 몇개 되었다.


동피랑의 굴뚝

다같이 동피랑

요즘은 아궁이에 땔감으로 밥짓고 요리하는곳이 있을까 마는

우리의 유년기 시절은 저녁엔 굴뚝에서 모락 모락 피어 오르고

소 여물 작두로 썰어서 쇠죽도 끓이고

그 아궁이에 고구마가 익어가고...........

세월은 쏜 화살과 같다더니 정말 빠르다.


강구안 벽화

통영항 강구안을 그려 놓았다 배 한척이 포구를 출항하는 그림이 있다.

마을 구석 구석 담벼락 마다 깊은 뜻과 작가의 마음이 있는듯 하다


편백숲 벽화

편백숲인가 아니면 자작나무인가 모르겠지만

숲 벽화에서 동피랑 둘러보기를 마무리 하였다

다음엔 서피랑으로 가보아야 겠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 동피랑홈피,통영시등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9.04.07]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