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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마도 유명산(日本 對馬島 有明山),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 대마도 유명산 정상에 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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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마도 유명산(日本 對馬島 有明山),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 대마도 유명산 정상에 서다

바다늑대FORCE 2019. 4. 3. 16:32


일본 대마도 유명산(日本 對馬島 有明山)

 조선통신사의 길따라 대마도 유명산 정상에 서다

▲ 일본 대마도 유명산(日本 對馬島 有明山 아리아케)

    유명산 높이 : 558.1m

    치 :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 시모아카타군 이즈하라마찌에  있는 산


▲산행일  : 2019년03월30일 토요일  날씨 : 약간흐림

▲나의산행코스  :

 이즈하라 우체국→→→유명산 삼거리→→→아리아케(유명산) 정상 →→→원점회귀

  왕복6.2Km  2시간5분 소요


▲산행지 대마도(쓰시마) 개요 :

 

일본과 한국을 가르는 대한해협에 있다.

 

5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졌으며, 가미아가타[上縣]와 시모아가타[下縣]가 가장 큰 섬이다.

 

주요도시는 행정 중심지인 이즈하라[嚴原]와 게치[鷄知]이며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한다.

 

일본 신화에 따르면 창조 신들이 쓰시마를 일본 최초의 섬 중 하나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열도는 역사상 한국과 일본 사이의 중계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2세기에서 1868년까지 이 열도는 다이묘[大名] 소씨[宗氏]의 봉토였다.

 

1274, 1281년에 몽골이 일본을 침공했을 때 주민들이 대량학살당했다.

 

러시아는 1861년에 이 지역의 토지사용권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났으며

 

1905년 러일전쟁 때 러시아의 발틱 함대가 쓰시마 해전에서 패했다.

 

※역사

 

삼국시대 초에는 쓰시마를 ‘진도(津島;똑같이 쓰시마라 읽으나 다르게 끊김)’라고 불렀다.

 

고려말 말부터 고려에 조공을 하고 쌀 등의 답례를 받아갔다.

 

6세기전반 아스카 시대에는 쓰시마 국주(對馬島主)가 일본왕부의 임명장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평화 시에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간의 교역을 독점하였으며

 

전쟁 시에는 두 나라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이 한때 왜구의 소굴이 되자, 1389년(고려 창왕 2년)에는 박위가 쓰시마를 토벌하였다.

 

본래 쓰시마는 아비루 가문이 지배하였으나, 12세기 고레무네노시게히사(惟宗重尙)가 아비루가에서 일어난 반란을 평정한 이후

 

시게히사의 후손인 소가가 지배하게 되었다.

 

그 뒤로도 고려와 조선으로부터 관작을 받았으며, 쇼군으로부터 다이묘로 임명을 받는 등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양속관계를 유지하였다.

 

조선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외교창구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이곳에 도착하였다.

 

조선 국왕은 왜구들에 대한 회유책(懷柔策)으로 통상의 편의도 봐주고 또 귀화 정책을 쓰는 등 우대를 해주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곳을 근거지로 한 왜구의 행패가 여전하자 세종 때인 1419년 음력6월 세종이 이종무에게 명을 내려

 

군사 1만 7285명을 동원하여 대마도 원정을 하는 등 강경책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쓰시마 국주의 간청으로 왜인의 통상을 위하여 3포를 개항하고 그들의 편의를 도모했으며

 

또한 조선의 국왕이 대마도주에게 관직을 내려 그들을 조선의 영향력 아래 두기 시작하였다.

 

그 후에도 조선에 근접한 왜구의 근거지로서, 이것을 무마하려는 한국의 해방정책(海防政策)에 따라 특수한 대접을 받아왔다.

 

그후에도 조선은 쓰시마에 대한 영향력을 오래 유지했으나

 

임진왜란 때 일본 수군의 근거지가 되면서부터 차츰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에도시대는 쓰시마 후추 번(對馬府中藩)이 설치되었고, 쓰시마 국주인 소 가문이 쇼군으로부터 다이모로 임명을 받았다.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1871년에 폐번치현으로 인하여 쓰시마에는이즈하라 현(嚴原縣)이 설치되었다.

 

1876년에 나가사키현에 편입되었으며, 소 가문은 화족으로 편입되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인 덕헤옹주는 일본제국의 강요로 소백작가와 정략 결혼을 하기도 했다.

 

나가사키현이 속한 '규슈'(9주)의 명칭은 사이카이도(西海道) 중 지쿠젠 국 · 지쿠고 국 · 히젠 국 · 히고 국

 

부젠 국 · 분고 국 · 휴가 국 · 오스미 국 · 사쓰마 국 총 9국의 총칭이다.

 

따라서, 규슈에 쓰시마노쿠니(対馬国, 대마도) · 이키노쿠니(壱岐国) · 아마미 제도 · 류큐 제도는 본래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도 일본인들은 쓰시마섬을 낙도로 취급하고 있다.

 

쓰시마는 원래 하나의 섬이었으나 1672년 21대 당주이자 쓰시마 후추 번 3대 번주인 소 요시자네(宗義眞) 때

 

작은 배가 아소만과 대마도 동부를 왕래할 수 있도록 오후나고시(大船越)이라는 운하를 만들어 두 개의 섬으로 나뉘었고

 

1900년 일본제국해군이 러일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소만(浅茅湾)에 있는 군함을 쓰시마 동쪽 해상으로 빨리 이동시키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제키세토(万関瀬戸)라 불리는 더 큰 폭의 운하를 만들게 되었다.

 

만제키세토는 쓰시마 섬을 위 아래로 나누는 경계로, 쓰시마 북부를 가미시마(上島), 남부를 시모시마(下島)라 부른다.

 


▲  대마도 관광지도



▲ 산행지 찾아가는길

진주Ic삼거리 →→→ 부산 신국제여객선 터미널 →→→ 대마도 히타카츠 여객선터미널

약 49km  대아고속해운(오션플라워) 1시간30분 소요

→→→→→2019년3월30일 토요일 새벽4시20분에 진주를 출발하여

06시30분경에 부산 신국제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해서 출국수속을 하고서

대아고속해운 오션플라워호를 타고 1시간 30분소요 되었고 대마도 하타카츠항에

오전 09시에 도착 하였다.


부산 신국제여객선터미널

일행과 함께 신국제여객선터미널에 06시30분경에 도착 해서 아침식사를 하고서 출국수속에 들어갔다

위치는 부산광역시 동구 충장대로206 이다

총5층 건물로서 2012년 7월에 착공하여 2015년 1월에 준공을 하였다.

출국장은 3층에 있으며 선사매표소와 편의시설등이 있다.


대마도 히타카츠 여객선 터미널

오전09:00에 도착 하였다 입국 수속을 하고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오르기전

추성훈 사진이 붙어있는 면세점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어 보았다.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 북부에 있는 도시인데 도시보다는 우리나라의 마을 리(里)급 이라고

생각하면 되며 행정구역은

長崎県(나가사키 현)対馬市(쓰시마 시)上対馬町(가미쓰시마 초)比田勝(히타카쓰)이다.

대마도에는 주로 우라나라 관광객이 전부이다

여행 산행 낚시 자전거등 보는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나라 한국인이였다.


이즈하라의 식당(점심 먹은곳)

히타카쓰에서 버스를 타고 이즈하라로 이동

이즈하라에서 점심을 먹었다.이즈하라는 일본 대도시와 달리 시설이나 교통등이 열악한 곳이라고 한다.

보통 바닷가 어촌 작은마을 풍경이며 골목으로 이루어 져 있고 골목도 협소하며

그냥 시골풍경이라 생각하면 된다.

대마도에는 우리가 하선한 하타카츠 항과 이즈하라 항구 두개 항구가 있다.

일본에는 경차가 많은데 차량번호판 색이 노랑색이면 경차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즈하라에서 점심

초밥4개 김밥4개 우동 작은그릇 하나가 전부이며 정말 간편한 식사이다

일본에는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소식(少食)을 해서 그런가 보다.

쓰시마 시는 행정구역상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지만, 나가사키 시보다 거리상은 후쿠오카현에 더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 경제·문화적으로는 후쿠오카 현과 더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한다.

쓰시마 시의 주요 산업은 어업으로 인근 연안에서 오징어가 많이 잡힌다고 하며

또한 아름다운 자연 환경 및 한국, 일본 양국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관광업 또한 활발하다.

섬 면적의 80% 이상이 산림이기 때문에 임업도 이루어지고 있고 표고버섯이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유명산(아리아케)으로 가는길

이즈하라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서 12시30분 넘어 산행길에 올랐다

이즈하라 중심가에서 주유소 인근 횡단보도를 건너면 티아라 쇼핑몰이 있는데 우체국 건너편이다

쇼핑몰 횡단보도앞에서 산행후 만나기로 하였다

횡단보도는 초록색이 점등되면 뻐꾹새 소리가 점등이 끝날때까지 울렸다

횡단보다 바닥에는 좌우로 살피라는 캐릭터와 문구가 있었다.


유명산(아리아케)들머리

마을 비탈길을 올라 유명산 들머리에 도착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엔 시골동네 마을 뒷산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을듯 하다.

들머리 표지판에는 청수산성터 이라고한자표기이다 아마도 산성이 있는가 보다.

들머리는 마을 주택뒷편으로 이어져 있어 산행자들이 등산하다 조금 시끄러워질수도 있겠다

마을주민 불편되지않게 올라야 하겠다.

그리고 산행시 산악회 깃표를 달면 안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산에 쓰레기를 버리는것과 같다는 것이기에 절대 달아서는 안된다.


유명산 안내판

산정까지 2850m라고 표기해 놓았다 그야말로 마을 뒷산이다

초입구간은 시멘트 계단으로서 두사람이 겨우 지나칠 정도로 협소하다

산행자들은 모두 우라나라 사람들 뿐이였다

주말을 맞이 하여 저렴하고 가깝게 다녀올수 있는곳이 대마도라 그렇가 보다.


유명산 초입구간

여느산과 마찬가지로 초입구간은 급경사는 아니지만 운동삼아 오르기 좋은곳이다

저 앞 흰옷입은 여성분은 우리 산행팀 가이드 인데 산 정상까지 저 차림으로 갈란가 모르겠다

그냥 벤치 앉아서 하산할때 까지 기다리는게 더 좋을듯 한데......!

산에 오르니 우리나라 산처럼 가슴이 확 트인다는 느낌은 없고

산림이 조금 울창하다는 느낌이 와 닿는다.


아리아케 탐방로 주변 수목

빼곡한 수목이 바람소리와 함께 숲을 찾는 산객을 맞이 하는듯 하다

탐방로는 급경사는 없고 무난하게 남녀노소 누구나가 쉽게 등산할수 있는 코스다

대마도 여행겸 유명산을 등산하는 것이지만 딱히 산행 목적으로 온다면

결코 좋은산 조망도 좋은산도 아니다

가볍게 산책 한번 하고서 이즈하라 유적지를 탐방하는 것이기에 좋다

우리나라 조선통신사가 처음 도착 한곳이고 덕혜공주 이야기도 있는곳이기에

우리나라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아리아케산 삼나무와 편백나무 조림지

유명산은 대부분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주 식생을 이루고 있을뿐만 아니라

대마도 전체가 편백과 삼나무로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행가이드에 의하면 삼나무가 뿜어내는 화분으로 인하여

일본 사람들이 재채기 콧물 그리고 눈이나 피부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일본말로 카훈쇼라고 한다라고 하며 그래서 인지 현지 일본인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것을 보았는데

우리나라 처럼 미세먼지 탓인가 생각했다.

삼나무 화분이 끝날무렵에는 편백나무(히노키ヒノキ)화분이 날려 고생하는 일본인 어린이들이 많다고 한다.


아리아케산 삼나무와 편백나무 조림지

우리나라에서는 편백나무가 피톤치드가 나온다고하여 조림해서 힐링코스로 개발하고 있는데

우리와 정반대로 꽃가루 때문에 알레르기에 고생한다고 하니 글세...다.

※편백나무와 삼나무 구별법

멀리서 관찰하면

편백나무는 원뿔형태이나 끝부분이 약간 둥근 형태이고 삼나무는 원뿔형태이다.

잎은

편백나무는 작은가지 전체가 이름그대로 납작하게 펴진 상태이고 잎끝이 피침형이 아니므로 감촉이 부드럽다.

삼나무는 잎의 끝이 피침형으로서 톱니처럼 사방이 거의 규칙적으로 되어 있어 만지면 찌르는 감촉을 느끼며

줄기는

두 나무모두 함께 있어도 전문가가 이니면 구분이 어렵다.

요약하면 외형적으로 보아  잎이 부드럽고 찌르지 않는 것은 편백나무이고

잎이 뾰족하여 찌르는것은 삼나무 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명산과 청수산 삼거리

유명산과 청수산의 삼거리인데 인근 안내판에는 국유림으로 부터의 부탁 말씀 한글 안내판이 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1.여기는 국유림입니다 동식물의 보호에 협력해 주십시오

2.나무에 상처를 입히거나 식물을 가져갈 경우에는 법에 의해 처벌됩니다

3.보안림 내에서는 나무를 손상 시키거나 풀을 채집하는것이 금지 되어 있습니다

4.보도,광장등의 구역 외에는 들어 가지 마십시오

5.출입금지 표시가 있는곳은 절대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6.휴식등으로 잠시 등산을 멈추고 쉴때는 낙하할 나무가지나 돌이 없는지 안전한 장소인지

 충분히 확인 하시기 바랍니다

7.등산은 자기책임이 원칙입니다 날씨나 등산정보를 확인하고 등산계획을 세워

  가족 등산지역의 도도부현의 경찰본부 지역과 경찰서 등에 연락을 한후에 충분한 등산장비를 갖추고

  산에 오르시기 바랍니다.

8.태풍이나 폭우 등의 악천시에는 등산을 삼가해 주십시오

9.쓰레기는 각자가 들고 가십시오

10.담뱃불등 불조심을 해 주십시오

임야청 규슈삼림국 나가사키삼림관리서 연락처0957-41-6911


정상까지1.5km

마을뒷산 산책하듯이 올라온길이 정상까지 1.5km 남았다

국유림이라서 그런지 자연이 살아 있는듯 하다

그리고 탐방로 역시 걷기에 편한하며 쓰레기 하나 없다

물론 유명산에 등산하는 산객은 우리나라 사람뿐이 겠지만 그렇다고 현지인들이 산에 가는것도 아니고

일본본토에서 여기까지 산행할 이유도 없다

산행시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나라  산객뿐이기에

나 역시 우리나라 이미지 훼손될까 조심스러웠다.


탐방로 고사리

탐방로 주변 양치식물인 가는쇠고사리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가는쇠고사리는

우리나라 일본 중국등지에 많이 분포한다고 하며

엽병은 앞면에 홈이 지고 길이 30-60㎝로서 비늘조각이 드문드문 달리며

밑부분과 근경에 달린 비늘조각은 길이 4-7mm, 폭 1mm로서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엽신은 달걀모양이고 길이 20-40㎝이며 3회 우상으로 갈라진다.

우편은 길이 10-20㎝로서 긴 타원형이고 점점 좁아져서 뾰족해지며 첫째 우편이 가장 크고

뒤쪽 첫째 잔깃조각은 특히 크게 자라 다른 우편과 크기가 비슷해 진다.

잔깃조각은 대가 있으며 털이 없고 표면에 윤채가 있으며 톱니 끝이 까락처럼 뾰족하다.


조림지 간벌구역

편백나무 조림지 간벌한 구역을 볼수 있다

이렇게 나무 하나 하나를 관리 하는가 보다

그렇지만 삼나무와 편백나무의 꽃가루로 인하여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괜잖은지 궁금해진다.


고사목에서 휴식

제법 오래된 고사목 같다

쓰시마섬은 일본 본토보다 우리나라가 더 가깝다

고려 말과 조선 초, 이 지역 해적들을 소탕하기 위해 수차례 토벌이 실시되었다 한다

고려 말 창왕 때(1389)는 박위가, 조선 태조 때(1396)는 김사형이 쓰시마 섬을 토벌하였다.

세종 때(1419)는 이종무가 병선 227척과 병사 1만 7천 명을 거느리고 다시 토벌하였다.

그당시 우리나라로 해야 하는데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정상에 오르는길

정상이 바로 앞인가 보다 산봉우리가 하늘과 맞닿아 있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49.5km이고 일본본토 후쿠호카에서는 147km이다

우리나라가 훨신더 가깝다

전체 대마도 면적의 약89%가 산지로 이루어 져 있다

그리 높지 않은 산들로 이루어 져 있어 굴곡진 산세 그리고 빼곡한 숲

조망을 두루 갖추고 있어 우리나라 산객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정상의 초원지대

대마도 이즈하라에 있는 아리아케 정상부이다

넓다는 초원으로 되어 있는데 억새풀인지 우리나라와 것과 비교도 안되게 키가 작은편이다

정상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산행길에 땀방울이 시원하게 녹아 내렸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우리나라 거제도 남해에서 바라보는 조망과는 비교도 안된다

역시 우리나라가 최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산(아리아케산) 정상

우리나라처럼 정상석은 없다

안내표지목이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다

쓰시마섬의 아리아케 산 정상부는 우리나라 헬기장처럼 넓고 마을 마당처럼 넓다.

아리아케산은 쓰시마섬의 봉우리라 불린다

그래서 인지 산이 여성스럽다 하며 전형적인 흙산이다.


유명산(아리아케산) 정상

쓰시마섬의 이즈하라의 아리아케산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이 해본다

아리아케산은 이즈하라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즈하라 도심을 굽어볼수 있는 좋은 전망대라고는 하는데

정상에서의 보는 조망은 그다지 가슴에 닿지는 않았다.


유명산(아리아케산) 정상

나의 첫 해외산행이지만 정상에서의 느끼는 감정은 글세다

쓰시마섬의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일본에 속하기는 하였으나 독립적인 세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 지역은 토지가 부족하여 식량을 밖에서 구해 생활해야 했는데

고려 말부터 조공하고 곡식을 받아갔으며, 조선도 그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쓰시마 섬을 우대하였다.

그러나 기근이 들거나 하면 해적으로 돌변하여 약탈하는 일이 잦아 쓸모없는 땅이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국사선생님의 말이 생각났다

해적들의 노략질이 많아 농사도 고구마만 겨우 되는 땅이라 버렸다 한 이야기가

세록 생각나게 만들었다.


정상부근의 개동백

여기도 정상부에 개동백나무에  꽃들이 봄을 맞이 하고 있다.

대마도는

섬 전체가 쓰시마시()에 속한다

6개읍(이즈하라[嚴原町], 미쯔시마[美津島町], 도요타마[豊玉町], 미네[峰町], 가미아가타[上縣町]

가미쯔시마[上對馬町])이 있고, 이즈하라에 쓰시마시청이 있다.

중앙부의 아소만[淺茅灣]과 인공적으로 굴착된 만제키세토[萬關瀨戶:瀨戶水路]에 의해 상·하 두 섬으로 나뉜다.

섬 전체가 해발고도 400m 내외의 산지이고, 산지의 계곡들은 곡벽이 험준하다.

농경지는 총면적의 4%에 불과하고 계단식 밭이 많으며 최근까지 화전 경작을 했다.

특히 대마도에는 멧돼지가 많아 에도시대에 멧돼지 퇴치를 담당하는 번사(藩使)를 두기도 하였다.

산촌에서는 숯제조와 표고버섯 재배가 주업이었기 때문에 산림의 벌채가 심했으나

이후 조림이 이루어졌다. 바다장어·오징어·도미잡이와 전복·소라·성게·천연김 채취를 하고

 아소만에서는 진주조개 양식이 성하다. 이즈하라 항은 대마도의 주요 어항으로

오래전부터 번성하였으며 식당, 술집 등 번화가를 형성하였다.

하지만 어획고가 줄면서 상업적인 활기도 줄어들었다 한다.


청수산성(시미즈야마)

아리아케 산위에 있는 시미즈 산성은 전형적인 조선식 산성이러고 한다

우리나라 비음산에 있는 진례산성처럼 형식이 비슷하다

해발 558.2m 아리아케산(有明山) 능선에 쌓은 시미즈(淸水) 산성이 그 모습은

우리나라 산성이랑 별 차이가 없이 비슷하다.

시미즈 산성엔 조선 산성과 매한가지로 성벽에서 튀어나온 부분인 치성이(雉城)이 있으며

문터는 절벽 위에 외돌아져 있어 침입자가 성벽을 도는 사이 치성에서 공격이 가능하며 문을 공략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란을 앞두고 쌓은 물자공급의 전초기지다.

남문 절벽에서 이즈하라 항구를 내려다보니 전망이 매우 좋다.

조선의 어느 산성을 올라온 것인지, 일본의 고대 산성을 탐방한 것인지 구별이 잘 안 갈 정도다.


원점회귀 날머리 시미즈야마 성터 안내판

산에 오를때 쓰던 지팡이 모아두는곳도 있고 주위엔 쓰던 지팡이가 많다.

한글 안내판을 보면

시미즈야마 성터는 아리아케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지맥에 해당하는

시미즈산의 산등성에 위치한 성터로 16세기 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축조되었다.

성은 이치노마루,니노마루,산노마루의 3개의 구루와(석루로 둘러쌓인 구획)로 이루어져 있다.

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고저차를 지닌 지형에 돌담을 쌓아 지어졌다.

산 등성이는 구루와를 잇는 석루로 에워쌓인 회랑도 형태로 되어 있다.

이는 성내부의 방어 기능을 높이기 위함으로 보인다

(1984년 국가 지정 사적)


날머리에 놓인 지팡이들

우리나라 산행자들이 사용하고 한곳에 모아둔듯 하다

아리아케산은

조선역사가 살아있는곳이기도 하며 이렇게 산행을 마무리 한다


대마도 이즈하라 에서 카미쯔시 시내한바퀴 탐방 하기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서 대마도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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