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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호구산(南海 虎丘山).지리산(智異山) 호랑이가 건너와 살았던 호구산 산정에서 앵강만(鸚江彎) 풍경에 빠져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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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호구산(南海 虎丘山).지리산(智異山) 호랑이가 건너와 살았던 호구산 산정에서 앵강만(鸚江彎) 풍경에 빠져보다

바다늑대FORCE 2025. 2. 16. 21:38

남해 호구산(南海 虎丘山).

지리산(智異山) 호랑이가 건너와 살았던 호구산 산정에서 앵강만(鸚江彎) 풍경에 빠져보다

 

▲ 남해 호구산(南海 虎丘山)

   높이 : 626.7m

   위치 :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이동면 용소리에 걸쳐있는 산.

 

 남해 호구산(南海 虎丘山) 나의 산행일 :

    2025년02월16일 일요일 날씨 : 맑음

 

 남해 호구산(南海 虎丘山)나의 산행코스 :

     용문사주차장→용문사 →백련암 → 염불암 →송등산갈림길 →전망대 →호구산 

→앵강고개삼거리 →용문사삼거리 →용문사 →용문사주차장

  4.7km 3시간11분소요(램블러 앱 기준)

 

▲ 남해 호구산(南海 虎丘山)개요 :

호구산은 해발고도 높이 26.7m이며  면적 6,584㎡이다.

지형도에는 산 이름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송등산·괴음산 등과 함께

1983년 11월 12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소나무·벚나무·단풍나무 등 수림이 울창하다.

옛날 호랑이가 지리산에서 건너와 이 산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호랑이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며, 계곡의 맑은 물은 여름에도 추위를 느낄 만큼 시원하다.

또 암봉으로 된 정상에서 바라보는 앵강만의 풍경이 빼어난데,

다도해 섬들 사이로 김만중(金萬重)이 유배 생활을 하며 사씨남정기(謝氏南記)를 집필했던 노도를 볼 수 있다.

이 산에 있는 용문사(龍門寺:경상남도유형문화유산 24)는 남해군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절이며

용문사 외에 염불암·백련암이 있어 일반 등산객 외에 불교 신자들이 많이 찾는다.

백련암 대웅전 앞에는 차나무 밭이 있다.

 

 남해 호구산(南海 虎丘山) 산행지도

▲ 남해 호구산(南海 虎丘山)

나의 램블러(Ramblr) 궤적도(軌跡圖)

 

▲ 남해 호구산(南海 虎丘山)

나의 Relive궤적(軌跡圖)

→→→→→→2025년02월16일 일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시청앞에 가면 관광차가 줄를 서 있다 오늘은 산보산악회를 따라 남해 호구산 산행을 위해 길을 나섰다

하동근무시절 하동과 남해에  정상표지석이 있는 산은 두루 산행을 하였지만

코끝에 스치는 해풍이 좋아서 벗님을 따라서 길을 나서본다

호구산의 산정 표지석은 납(猿)산으로도 불리며 가운데 한자는 원숭이()이라 원산으로 불린다고 한다

북쪽에서 보면 원숭이가 앉은 모습이고, 남쪽에서는 정상에서 용문사로 뻗은 능선이 호랑이를 닮았다 한다.

납은 원숭이의 옛말을 뜻한다고 하며 이를 보면 남해 군민에게는 호구산 보다 납산

또는 원산이 더 친숙한 이름일수도 있겠다

오늘 호구(虎口)가 아닌 호구산  虎丘山). )산길을 걷기위해 길을 나서본다

虎丘山 龍門寺(호구산 용문사)

용문사 일주문 편액에는 호구산 용문사(虎丘山 龍門寺) 라고 걸여 있는데 일반적으로 산이름 다음 사찰이름으로 하기에

호구산 임는 틀림이 없고 용문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천년고찰인 용문사 일주문 편액에 호구산 그리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원산으로 표기된 것을 보면

오래전에 이미 같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호구산 산행은 용문사 일주문을 들머리로 하여 삼사순례(三寺巡禮)를 하듯 3개의 사찰를 지나

호구산 산정으로 가는 산길을 택하여 용문사 주차장으로 다시 원점회귀 코스이다

날씨는 흐리다고 예보가 되어 있었지만 따스한 봄날처럼 화창한 날씨 였다

염불암 안내표지목

산행코스는 백련암 그리고 염불암 대웅전 뒷편으로 가야 하며 호구산 최단코스 이기도 하다

호구산은 원숭이 앉은 모양 닮아서 원래는 납산이러고 했고

남해는 사방이 빙 둘러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 따스한 남녘의 바닷기운이 있는 남해군이며

입춘도 정월대보럼도 지난 지금 봄기운에 조바심 내듯 바투 바닷가에 다가선 호구산이 최고인듯 하고

호구산(虎丘山)에서 부터 송등산(松登山)~괴음산(槐陰山)으로 이어진 산길을 대부분 산행자들이 이용한다

白蓮庵 普光殿(백련암 보광전)

오늘은 삼사순례(三寺巡禮)를 하듯이 두번째 사찰에 들여 참배를 하였다

보광전(普光殿)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건물을 이야기 하며 80화엄경(華嚴經)에는

그때 세존께서 마갈제국의 고요한 보리도량(菩提道場)에서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보광명전(普光明殿)의 연화장사자좌(蓮華藏師子座)에 앉아계셨다’는 묘사가 세 번 나온다.

어떤 사찰의 보광명전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기도 하는데, 이는 화엄경(華嚴經)의 

교주가 비로자나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물 형식을 보면 팔작지붕에 정면3칸 측면2칸의 건물로 다포계 형식을 이루고 있었다

念佛庵(염불암)

염불암 뒤로는 호구산, 앞으로는 앵강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이며

호구산 들머리가 있어 산객들이 염불암 도량을 지나야 한다

대웅전 아래 비탈진 곳에는 스님들이 마음을 다스리며 마시는 차밭이 조성돼 있다.

옛부터 마을사람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짚을 하나하나 깔면서 한발 한발 걸어서

염불암까지 와서 기도를 드렸다고 하며 암자 입구의 은행나무를 돌며 젖이 잘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면

젖이 콸콸 쏟아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염불암은 조선 숙종 35년(1709년) 각찬 스님이 창건했다고 하고 용문사와 백련암을 지나

염불암 입구에 다다르면 500년 된 은행나무가 수호신 처럼 있고
현 대웅전은 1990년 자안스님이 중창했다고 하며 .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아름다운 꽃살문양으로 장식돼 있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내려다보면 노도와 앵강만이 한눈에 들어오며 산과 산 사이의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은 힐링이 되어 스트레스를 해풍속에 날려 버리는듯 하다

호구산1.0km안내표지목

1.0km라면 사행자들에겐 정상에 다 왔다고 생각할 정도의 거리이지만 여기서 부터 진짜 빡쎈 산길이 이어진다

보통 강원도 1000고지가 넘는 산행은 여기 호구산 정상의 높이에서 산행이  시작 되지만

고도가 낮은 섬산행은 그 만큼 비탈이 심하고 경사가 있어 힘들다는 이야기가 된다

산행은 서포문학공원을 지나 용문사 방향 도로를 올라 용문교를 건너면 일주문에서 부터

우측 용문사를 거쳐서 백련암과 염불암을 지나면 여기 안내표지목을 만난다

호구산 초입구간

스님께서 만들어 놓으셨는지 기왓장에 정상 가는길을 화살표까지 그려서 놓았고 송등산 호구산 글귀도 보였다

용문사 일주문을 지나 곧장 난 넓은 길을 따라 골짜기를 거슬러 오르면 백련암에 이어 염불암까지 이어지며

사찰가는 길이 예전보다 더 멋지게 만들어 져 있었다 그리고 염불암 오른쪽  조릿대 대숲 속으로 난 등산로로 접어들면

송등산 방면 갈림길목을 지나 계속 가파른 숲지대를 오르면 능선 위 정상 전 500m 지점  삼거리에 다다른다.

봄날 같은 날씨에 가벼운 티셔츠랑 방풍 자켓 하나 입었지만 등골에 땀에 젖고

이마엔 구슬땀이 송글송글 맺쳐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송등산 호구산 갈림길

예전에는 호구산에서 다시 송등산으로 걸어 용문사로 하산했던 코스 이기도 하다

2월이면 아직 추울 거라며 배낭속엔 여벌 옷이 두벌이나 있고 행여 흐린날씨 비 예보가 있을지도 생각해

우의까지 한배낭 가득이 이렇게 따스한 봄날 짊만 되었고 땀은 산길에 빗방울 처럼 떨어졌다

남해읍내에서 19번 국도를 타고보면 호구산 정상부의  모양새는 원숭이가 동편을 향해 앉아 있는 것과 흡사해서

주민들이 부르는 호구산의 원래 이름은 납산, 혹은 납 원(猿)자를 쓴 원산이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猿山(원산)으로 표기돼 있으며

‘납’이란 원숭이의 옛말로  잔나비란 말도 납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호구산의 숲

봄이 남해까지 왔는지 땀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데 숲은 그져 황량(荒凉)하기만 하지만 하늘은 파랗게 물들어 있다

枯木逢春猶再發(고목봉춘유재발) 
마른 나무 봄 만나면 외려 다시 꽃 피워도
人無兩度再少年(인무양도재소년) 
사람에겐 두번 보낼 소년시절 다시 없네.
※增廣賢文(증광현문)

한시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지나간 세월을 이겨낼수는 없지만  이렇게 산에 오를수 있다는 것을 만족 하고싶다

봄은 저멀리에서 부터 남해로 상륙할날이 머지 않아 따스한 햇살이 산행길에 덥기만 하다

너덜겅길

산길을 걷다보면 이렇게 너덜겅을 많이 만나는데 대부분 화산에 의해 생겨 났다고 한다

시골 유년기 시절엔 너덜겅을 너드랑이라고 불렀고 너들겅에서 돌맹이 소리가 쇠소리나 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마도 밀양 만어산 너덜겅이 최고로 꼽을수 있겠고 부산 장산도 너덜겅이 많이 있었다

호구산 산정에 있는 봉화대도 너덜겅 돌을 일일리 짊어지고 산정까지 올라 만들었을 것이다

옛날 조상들도 지켜야 했던 우리의 조국 의리의 땅이 스스로의 욕심에 망가지고 있는듯 하다

조릿대 산길

조릿대 크기가 2m넘을듯 보였다 대부분 산길엔 산죽은 말라 죽고 없는데 남해 호구산 산길엔 뺴곡히 있었다

산청지역에는 조릿대로 복조리를 만들어 정월대보름날 팔기도 하는데 요즘은 값싼 베트남 복조리가 들어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복조리가 되어버렸다

조릿대의 잎으로 차를 끓여 마시는 사람은 있지만 이 조릿대가 갖가지 암·당뇨병·고혈압·위궤양 등에

놀랄 만큼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당뇨로 고생하시는 분이 있어

조릿대는 인삼을 능가한다고 할 만큼 놀라운 약성을 지닌 약초라고 한다 

대나무 중에서 약성이 제일 강하여 조릿대 한 가지만 써서 당뇨병·고혈압·동맥경화 위염·위궤양·만성 간염·암 등의

난치병이 완치된 경우가 있다는 학계의 보고도 있으며 조릿대는 항암작용, 기침을 멎게 하는 작용,

살균작용, 염증을 삭이는 작용,해독작용, 마음을 안정시키는 작용, 진통작용,이뇨작용, 등의 다양한 약리작용이 있으며...

특히 항암작용이 세고 위 십이지장과 궤양을 치료하며 간염과 당뇨병에 효험이 크다고 한다

조릿대 산길을 지나면 오르막 산길은 끝이라고 생각 하면 된다

송등산 갈림길

능선길에 올라서면 송등산1.8km그리고 호구산0.1km안내표지목을 만나기에 잠시 한숨을 돌릴수 있다

비탈길 올라오너라 수고의 보상처럼 능선길은  마치 운전할때  8차선 고속도로 처럼 느껴지는 산길이다

예전에는 호구산에 올랐다가 다시 송등산으로 해서 하산하였고

오늘은 앵강만 방향으로 하산해서 다시 용문사쪽으로 갈것이다

호구산을 품고있는 남해군은 면적 357.52㎢로, 남북 약30㎞, 동서 약 26㎞의 길이를 가지고 있으며
지세는 망운산(786m) 금산(681m) 원산(627m)등 산악이 많고 하천은 모두 짧고 평야는 협소하다.

해안은 굴곡이 심하고 302㎞에 달하는 긴 해안선이 있어, 어족자원이 풍부하고

연근해어업의 전진기지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고 조도(鳥島), 호도(虎島), 노도(櫓島) 등

유인도(有人島) 3개, 무인도 76개가 있으며 서북부에는 섬진강 하구에서 형성된 대사주(大砂洲)가 많다.

호구산 산정(虎丘山 山頂)

호구산 산정은 커라단 암봉의 하나를 보는듯 하며 넓고 넓은 파란바다위에 작업 돌맹이 하난 떠 있는듯 하다

호구산 들머리에 있는 미국마을이라고 있는데 지역특화발전특구법에 따라 자치단체에서 가장 차별화된 시책을 모색하던 중

미국에서 생활하는 교포들에게 건강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실직적인 인구 유입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게 미국마을을 추진하였다고 한다.

겨울에도 따뜻하고 전국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천혜의 관광자원과 청정해역으로 이름난 이동면 용소리 일원에

약30억 원을 투입하여 약 24,790㎡(약7,500평)규모로 미국식 주택 21동과 복지회관 및 체육시설들을 조성하였으며,

특히 주택의 경우에는 모두 목재구조로 한국에서 보기 힘든 특색 있는 주택을 건설하여 마치 미국의 작은 마을을

그대로 용소 미국마을로 옮겨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또한 미국의 전통주택을 체험할 수 있도록 각 주택에서는 민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문화 및 전통주택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호구산 산정(虎丘山 山頂)  626.7m

호구산은 납산·원산(猿山)으로도 불리우며 북쪽에서 보면 원숭이가 앉은 모습이고

남쪽에서는 정상에서 용문사로 뻗은 능선이 호랑이를 닮았다 한다.

정상 표지석에는 호구산이 아니고 원숭이 원(猿)자를 써 납산(猿山)으로 되어 있는데

납은 원숭이의 옛말을 뜻한다고 하며 이를 보면 남해 군민에게는 호구산 보다 납산, 또는

원산이 더 친숙한 이름이라는걸 알수가 있다.

천년고찰인 용문사 일주문 편액에 호구산으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원산으로 표기된 것을 보면

오래전에 이미 같이 쓰인 것으로 해설 할수 있는 대목이다.

호구산 산정(虎丘山 山頂)  626.7m

산정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푸르기만 한데 저멀리 바다는 재빛으로 미세먼지가 많이 뿌옇다 호구산(山)은

높이 626.7m이며 면적 6,584㎡이라고 하며 주변에는 송등산, 괴음산 등과 함께 1983년 11월 12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소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등 수림이 울창하며 옛날 호랑이가 지리산에서 건너와 이 산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호랑이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며, 계곡의 맑은 물은 여름에도 추위를 느낄 만큼 시원하다.

또 암봉으로 된 정상에서 바라보는 앵강만의 풍경이 빼어나고 다도해 섬들 사이로

김만중(金萬重)이 유배 생활을 하며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를 집필했던 노도(櫓島)를 볼 수 있다

호구산 산정(虎丘山 山頂) 에서 바라본 풍경

남해 청선도가 있고 초음리 마을이 바둑판 처럼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산하의 그 자체이다

창선도(昌善島)는 예전에 1년간 근무 했던 곳이기도 해서 섬 구석 구석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창선도(昌善島) 북쪽에서 남쪽으로 만입한 동대만(東大灣)이 섬을 동서로 거의 이등분하며,

서쪽이 동쪽보다 약간 길고 크다. 서부는 동부보다 험준하며, 구릉성 산지가 북동에서 남서로 뻗어 있다.

서남부 중앙에 대방산(臺芳山, 468m)이 있는 반면 동부는 망치산(望峙山, 268m)이 제일 높고,

대체로 100m 이하의 구릉과 저지가 분포하고 해안은 암석해안이 대부분이고, 해안선이 복잡하나 수심은 얕다.

섬의 남동쪽은 드나듦이 복잡하고, 서쪽은 비교적 완만하며 연평균기온 14.5℃, 1월 평균기온 2.6℃,

8월 평균기온 25.6℃, 연강수량 1,0812㎜이라고 하고 온난한 기후로 아열대성 식물이 자라며,

한약재로 쓰이는 비자나무를 비롯하여 유자·치자꽃 등이 자생히고 있는곳이다

호구산 봉수대

안내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봉수대 호구산 봉수대는 이동면 다정리 호구산 정상(626m)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산은 원산(猿山) 또는 납산으로 불리는데, 조선시대에는 원산이라 했다.

이에 대해 신중동국역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남해현 산천조에는 원산은 현의 남쪽 16리 지점에 있다고 전하며,

호구산 봉수대의 기능에 대해, 동쪽으로는 금산 봉수에 응하였고 남쪽으로는 설흘산 봉수에 응하였다고 적고 있다.

아울러 서쪽으로는 본현에 보고하고 끝났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본현은 이동면에 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일컬어 난표현이다.

구조는 자연식 곡으로 구성되었으며, 규모는 기단부는 평균높이 1.7m, 둘레12.5m 직경은 4.0m 이고

가로 0.6m 세로 0.5 m의 아궁이를 갖추고 있다.

호구산 산정(虎丘山 山頂) 에서 바라본 노도(櫓島)

벽련마을에서 나룻배로 건너가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섬이며 

노도는 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이 유배되어 56세의 일기로 유형의 삶을 마감했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배를 젓는 노를 많이 생산했다고 하여 노도(櫓島)라고 불린다고 하며,

섬의 생김새가 삿갓을 닮았다 하여 삿갓섬 이라고도 불린다.

김만중은 두고 온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글과 문학으로 승화시켜온 산증인이다.

노도에는 그가 직접 팠다는 샘터와 초옥 터, 그리고 허묘가 남아 그의 자리를 쓸쓸히 메우고 있다.

조선 후기 정치가로서, 문신으로서, 효자로서, 소설가로서, 한글애호가로서, 시인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대문호 서포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남해의 작은 섬 노도는 유배문학의 산실이다.

2011년부터 시작한 [노도 문학의 섬 조성 사업]은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서포의 문학정신을 결합한 관광자원 개발 사업으로

상주면 양아리 노도에 서포 문학관, 민속체험관, 작가 창작실, 서포 초옥, 야외전시장, 생태연못 등을 조성하여

문학 애호가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고, 남해읍에는 유배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호구산 산정(虎丘山 山頂) 에서 바라본 월구산과 초양리

발아래는 다정저수지가 있고 저멀리 먼바다는 미세먼지로 인하여 재빛으로 다가왔다

다정리에는 다정리지석묘(茶丁里 支石墓)가 있는데 1983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들판의 논둑을 따라 대체로 3∼4m씩 사이를 두고 11기 가량이 분포하고 있으며

외형상 모두 바둑판식으로 대형의 덮개돌 아래에는 작은 할석으로 고임돌을 마련한 것인데

하부구조는 잘 알 수 없으나 돌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유적 주변에서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편들이 채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 밖에 남해군에는 남면리, 평현리, 심천리 등 각지의 해안평야와 창선도(昌善島)에 이르기까지

고인돌군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이 지역 청동기시대의 문화상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호구산 산정(虎丘山 山頂) 에서 바라본 풍경

우측 설흘산과 좌측 천황산이 마치 자연적 항구를 만들어 놓은듯 보이며 용소마을이 집들이 바닷가에 웅기종기 모여 있다

호구산 들머리가 있는 이동면(二東面)은 남해군의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다정리 삼층석탑과 호구산 자락의 용문사, 복곡유원지, 사진작가들이 즐겨찾는 장평소류지,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마늘나라 박물관과 마늘연구소가 있어서 매년 5월 마늘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용소마을에는 미국교포들을 위한 미국마을이 조성되어 있는데 쭉 올라오면 용문사 주차장이다

호구산에서 바라본 앵강만

앵강만과  원천항이 노도를 중심으로 안쪽으로 자연적 항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천헤의 요새와 같다

원천힝은 지방어항으로 지정된 원천항은 남해군 대표 관광지인 금산 자락 아래 위치한 항구이다.

남해바래길 본선 10코스 앵강다숲길의 시작점으로 길 항내 원천 방파제는 유명한 낚시 포인트 중 하나이다.

파도치는 소리가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하여 "앵강만"이라고 불리는

만곡진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항구이며 주변 명소로는 남해 가천 다랭이 논과

금산 보리암 등이 있으며 항구에는 횟집과 멸치쌈밥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들이 있는 곳이다.

호구산 산정에서 앵강만의 자연적인 요새같은 풍경에 빠져보고 하산길에 접어 들었다

앵강고개 방향 하산길

망운산, 금산, 대방산, 설흘산, 호구산 이렇게 5개 산을 남해의 명산이라고 하는데

그중에서 그는 설흘산과 바로 옆 응봉산을 오르는 코스, 납산을 포함한 호구산을 오르는 코스가 산꾼들이 즐겨찾는 코스라 하고

금산이나 망운산은 이미 산꾼들에게 제법 알려있으며 금산을 최고로 친다고 한다

복곡주차장을 통해 오르는 코스가 아닌 두모주차장에서 부소암을 통해 오를 때 그렇고

용문사가 들어서 있는 호구산은 산 맛을 아는 산꾼은 면 반드시 호구산을 찾는다고 한다

어느 산에서도 보기 어려운 웅장한 기백이 있는 산이며 창선면에 있는 대방산 역시 보기엔 일반적인 산같지만

산행을 하가보면 그 산이 주는 맛이 있어 이렇게  남해에 산을 찾고 또 올라본다

 

하산길

바다와 마을이 멀어진 대신 산은 그만큼 가까워졌고 산정에서 또 한발을 뗀 순간부터

뾰족한 암봉이지나서 숲길로 둘어서면 해풍과 산내음이 몰려 온다

남해군 군립공원 호구산은 그중에서도 돗틀바위 일대가 장관이라 고하는데 그 기리은 걷지 못할듯 하다

산길은 오솔길 처럼 오르막이라 제법 땀이 솟아..목에 감았던 수건을 이마에 감았다

호구산에서 내려와 용문사 방향으로 가는산길을 걷다보면 마음은 언제나 힐링 그자체가 된다

호구산에 위치한 용문사는 원효대사가 금산에 지은 보광사를 옮겨와 새로 창건한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찰이며 임진왜란 중엔 이 절의 승려들이 의승군을 조직해 왜적에 맞서 싸웠다.

당시 사용됐던 깃발과 무기, 또 보물 제1849호 대웅전, 제1446호 괘불탱 등의 문화재가 있다고 한다.

용문사 갈림길

직진해서 헤레기장으로 해서가면 용문사 근처 주차장 인근 저수지 앞으로 연결 되지만 용문사 사찰 참배를 위해

우측길 용문사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호구산은 일명 납산이라고 하고 원산 우숭이 원(猿)을 써서 원산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원래 원숭이 살지 않지만 전국에는 원숭이와 관련된 지명이 8개 정도 있는데

십이지 중 용 관련 지명이 1261개로 가장 많은 것에 비해 원숭이 지명은 매우 적은 편이라고 한다

이는 예부터 우리나라에 원숭이가 살지 않았기 때문이며, '동국무원(東國無猿)'이라는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고

먼저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에 걸쳐 위치한 금원산(金猿山)은 황금원숭이를 의미하며

금원산이라는 지명은 옛날 금빛이 나는 원숭이가 날뛰어 한 도사가 나타나 바위 속에 가두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금원산 입구에 서면 익살스러운 표정의 황금 원숭이 조각상을 볼 수 있고 현재 금원산에는

지명유래를 활용한 황금원숭이 조형물 등이 곳곳에 조성돼 있어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원숭이 전설을 전해주고 있다.

산성의 흔적

하산길에 큼직한 돌맹이로 마치 담장을 쌓아놓은듯 아니면 구획을 해 놓은듯한 것이 있어 촬영해 보았는데

아마도 산정의 흔적이 아닐까 나혼자만 생각이다

호구산은 원산(猿山)으로 불리는 경남 남해군 이동면에 위치한 납산은 산의 모습이

마치 원숭이와 비슷하게 생겨 붙여진 산이름인데 원숭이와 관련된 지명 중 하나이다

납산은 바다, 산, 계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 산행코스로도 유명지만

오늘 납산을 두번째 산행길중 하산길이다

소나무 숲길로 하산

용문사 바아향으로 하산길엔 아름들이 소나무가 빼곡하게 하늘을 덮고 있었다

남해섬에는 설흘산,망운산,금산 그리고 호구산을 4대 산으로 불러지고 있는데 남해군의 군립공원이며

남해도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에 올라서면 삼천포, 사천, 여수반도등 360도 푸른 남해 바다를 조망 할수있는

멋진 섬 산행지로도 잘 알려진 곳이 바로 호구산이라고 한다.

산정의 해풍은 봄바람 처럼 따스했고 연초록 새싹이 성질 겁한놈은 벌써 싹을 틔웠다

일년 내내 자연이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없지만 나는 유독 지금처럼 새 생명이 태어나듯 초봄

연한 초록 새싹으로 탈바끔할때가 가장 좋은듯 봄산행이 좋지만 무더운 여름 산행도 좋아한다

호구산 날머리

용문사 우측에 있는 호구산 날머리로 하였다 산보산악회 계획에 의하면 헬기장에서 돗틀바위까지 하산해서

용문사 근처 저수지 방향으로 하산할 계획 이였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지나 가듯 용문사 참배를 위해

중간지점에서 용문사로 하산하였다

용문사에는 방생법회를 하고 또 산악회 시산제를 지낸 사람들이 많이 보였고

천천히 경내를 둘러 보면서 대웅전에서 참배를 하고 하산할 것이다

호구산 용문사(虎丘山 龍門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며 남해군 제1의 사찰로서

신라시대의 원효대사(元曉大師)가 금산(錦山)에 창건한 보광사(普光寺)의 후신이라고 전하는데,

용문사 이 절에는 처음에 첨성각(瞻星閣)만이 있었다고 한다.

1660년(현종 1)에 남해현의 남해향교와 용문사 입구가 마주하고 있다 하여 유생들이 절을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였고,

이에 백월(白月)이 남쪽에 있는 용소마을 위에 터를 잡고 용문사라 하였다.

661년(현종 2)에 신운(信雲)이 탐진당(探眞堂)을 세웠고, 상운(尙雲)이 적묵당(寂默堂)을 세웠다.

1666년 대웅전을 지었으며 봉서루(鳳棲樓)를 창건하였다. 그 뒤에도 명부전 · 나한전 · 향적전 · 천왕각 등을 지었다.

그리고 1708년(숙종 34)에는 염불암을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모든 승려들이 의승군(義僧軍)이 되어 왜병과 싸웠고, 숙종 때에는 이 절을 수국사(守國寺)로 지정하고

왕실의 축원당(祝願堂)을 건립하고 위패를 비롯해서 촉대 · 번 등을 하사하였다.

지금의 용문사는 호은당이 1896년부터 천왕문, 시왕전, 미륵전, 대지전, 영산전, 소지전 등을 복원 중수하였다.

남해 용문사 대웅전(南海 龍門寺 大雄殿)

남해 용문사 대웅전은 중창기록과 건축양식으로 볼 때, 조선 현종 7년(1666)에 일향화상에 의해 건립되고

영조 47년(1773)에 중수가 완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정면3칸, 측면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기단은 지형을 고려하여

전면은 2단으로 높게 형성하고 배면과 측면은 1단으로 구성하였다.

기둥은 4면의 우주를 평주보다 크게 사용하였고, 전면과 후면 그리고 측면의 순서로 기둥 크기를 달리하여

정면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네 모서리에는 팔각형 초석 위에 팔각형 활주를 세워 구조적 안정을 꽤하고 있다

공포형식은 외 3출목 내 4출목이며, 주간포의 개수를 전·후면은 각각 2개, 측면에는 1개를 적절하게 놓아

공포 간격을 조절하여 완결성을 높이고 있다. 공포는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강하게 주며, 살미에는

장식성이 강한 연꽃, 연봉을 조각하였다. 보머리에는 봉황과 용의 머리를 조각하여 18세기의 장식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붕은 건물의 규모에 비해 상당히 웅장하게 구성하여 전면에서 볼 때 장중한 느낌을 준다.

내부의 고주는 측면 기둥열에서 약간 후퇴시켜 불단 공간을 넓게 사용하는 18세기 수법을 보이고 있으며,

가구는 1고주 5량 가로대량 은 내부고주에 걸쳐 배면 평주까지 통부재로 연결하고,

좌우의 평방도 통부재로 사용하여 앞 뒤로 벌어지는 응력에 대비하였다.

특히 대웅전 반자에는 바다를 상징하는 거북, 게, 물고기, 해초 등을 조각하여 바닷가 건축물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데,

이러한 모습은 해남 대흥사 천불전, 나주 불회사 대웅전의 빗반자에 나타난 물고기 장식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남해 용문사 대웅전은 평면구성과 공포의 표현기법, 상부 가구와 닫집 등에서 수려한 장엄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이러한 장엄의 극치는 18세기 이후 건립된 사찰 주 불전의 특징적 건축양식으로 서남해안 지역의 건축경향이

동쪽으로 확장되며 발전하는 양식적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건축양식과 가구수법 및 포작의 장식성이 뛰어난 건물로 현존하는 남해안 해안지역의 사찰 건축 중에서

흔치 않은 귀중한 불교문화유산으로 건축사적 가치가 크므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용문사 약수터

연꽃 보우우리에서 물이 졸졸 흘리내리고 바가지에 감로수 담아 산행길에 목말랐던 것을  갈즈으을 씻어보았다

남해는 물이 귀한 동네인데 호구산 계곡에는 그래도 작은물이지만 졸졸 흘러 봄을 깨우는 소리와 같았다

용문사에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천왕문 · 승당 · 칠성각 · 산신각 · 누각 · 요사채 등이 있고

이 중 남해 용문사 대웅전은 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처마 밑에는 사찰의 이름에 어울리게 용두(龍頭)를 조각하였고, 불단(佛壇) 위에는 화려한 닫집이 있다.

명부전은 1985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또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용문사 석조보살좌상은 임진왜란 때

용문사 이 절이 소실된 뒤 중창을 위하여 경내를 파다가 출토된 것으로 고려시대 중기 이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도 임진왜란 때 용문사의 승병들이 사용하였던 삼혈포(三穴砲)와 숙종 때에 하사받은 유물들이 있다.

하사받은 유물은 연옥등(蓮玉燈) 2개와 촉대 1개, 번(幡)과 수국사금패(守國寺禁牌) 등인데,

연옥등과 촉대는 일본인들이 빼앗아갔다. 이 가운데 번은 축원당에 걸어두었던 궁수(宮繡)와 궁중매듭이다. 

산행종료

오랫만에 남해섬 지역 산행을 산보산악회 따라 남해 호구산(南海 虎丘山)을 걸어 보았다

지리산(智異山) 호랑이가 건너와 살았던 호구산 산정에서 앵강만(鸚江彎) 풍경에 빠져보며

원숭이 원() 그리고 옛말로 원숭이라는 말이 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을사년 청사의 해에 삼사순례를 겸한듯 호구산 산행을 하였다

봄날 같은날 봄을 기다리면서 오늘 호구산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

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

태백산맥은없다 조석필 사람과산.

한국1000산 신명훈 깊은솔

남해군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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