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늑대 FORCE

금산 진악산(錦山 進樂山).태고(太古)적부터 금산주민들과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해 온 진악산 그 산길을 걸어보다 본문

바다늑대/山 & 旅行

금산 진악산(錦山 進樂山).태고(太古)적부터 금산주민들과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해 온 진악산 그 산길을 걸어보다

바다늑대FORCE 2025. 1. 19. 21:34

금산 진악산(錦山 進樂山)

태고(太古)적부터 금산주민들과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해 온 진악산 그 산길을 걸어보다

 

금산 진악산(錦山 進樂山) 

  높이 : 732.3m

  위치 : 충남 금산군 금산읍과 남이면 성곡리에 걸쳐 있는 산.

 

 금산 진악산(錦山 進樂山) 나의 산행일 :

    2025년01월19일 일요일 날씨 약간흐림

 

 금산 진악산(錦山 進樂山) 나의 산행코스 :

    수리넘어재 광장주차장→데크계단들머리 →얼굴바위 →눈섶바위 →진악산 정상

전망바위 →물굴봉 →도구통바위 →영천암 →보석사 →보석사주차장

6.92km 4시간03분소요( 트랭글 앱기준)

 

 금산 진악산(錦山 進樂山) 개요 :

충남의 산 중에 세 번째로 높은 이 진악산은 충남의 최고봉 서대산(904m), 민족의 영산 계룡산(845m)에 이어

그 높이와 산세를 자랑한다. 일찍이 계룡산, 대둔산, 칠갑산, 서대산 등 충남에서 내로라하는 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명산반열에 오른 이 산은 우리나라 최초 인삼재배지인 개삼터를 품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진악산은 또 산의 정상부에 바위가 많아 능선을 타면서 막힘없는 시야에 매료되기도 하는 산이다.

보석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진악광장까지(또는 그 반대) 종주를 하면 다양하게 다가오는 진악산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금산읍 시가지와 그 언저리 천태산, 서대산, 갈기산 등 주변 명산들이 가까이 조망되는 풍광은

진악광장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바위능선을 타고 오르면서 정상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와

산행의 묘미를 한껏 즐길 수 있는 산이다.

특히 정상에서 정상보다 5m 높은 737봉을 지나 도구통바위까지의 바위능선을 타고가면

금산이 자랑하는 개삼터가 전경으로 다가오는가 하면 남이면의 산군들 너머 천등산과

대둔산이 우뚝 솟은 절경과 마주치기도 한다.

 

 금산 진악산(錦山 進樂山) 산행지도

 

 금산 진악산(錦山 進樂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금산 진악산(錦山 進樂山) 

나의 Relive궤적(軌跡圖)

 

→→→→→→2025년01월19일 일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산악회 관광버스는 진주시청앞에서 대부분 출발하는데 오늘도 약속시간대에 나가니

시청앞 산악회 버스는15대는 족히 넘을듯 보였다

오늘은  산보산악회 따라서 충남의 진산  진악산 산행을 위해 길을 나선다 진악산은 ()큰산악 아닌

(樂)풍류악 을 쓰는 산 이름은 금산 진악산(進樂山)뿐이라고 하는데 오늘 그 풍류가 있고

태고(太古)적부터 금산(錦山)주민들과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해 온 진악산 그 산길을 걸어보자

수리넘어재 광장주차장에 있는 안내표지판

금산(錦山)은 인삼(人蔘)과 떼 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곳이며 금산은 우리나라 최초 인삼 시배지인

개삼(開蔘)터가 진악산 아래에 있기에 그렇다고 하며 일설에는 진악(進樂)이란 명칭은

즐거움이 크게 일어나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옛날 홍수가 났을 때 이 산만 지네만큼 남았다 하여 진악산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산에는 관음봉 · 문필봉 · 노적봉 · 물금봉 등 여러 봉우리가 있는데,

그중에서 관음봉은 강처사가 관음굴에서 어머니 병환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여

산신령의 계시로 인삼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 오는 곳이다

진악산(錦山 進樂山) 들머리

수리넘어재 광장주차장 도로 건너편에 진악산 들머리가 있으며 들머리 초입은 데크계단이며

뒷편에는 남이면 안내표지가 보이며 남이면(南二面)은 금산군에서 가장 넓은 면적과 동시에

울창한 임야를 가진 지역으로써 천혜의 수려한 자연 환경속에 오염되지 않은 물과

깨끗한 공기를 자랑하고 있으며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리고 하며
지금부터 약 1500여년 전 강처사라는 선비가 모친의 병환을 인삼으로 완쾌시켰고

그 씨앗을 파종하여 최초로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남이면이라고 한다.
남이면에는 가족휴양공간인 남이자연휴양림이 있고 열두개의 폭포가 장관을 이루는 비경 12폭포와

6.25 격전지 흔적을 간직하고 조국을 위해 가신님을 기리는 600고지 전승탑이 있는 곳이다

진악산 초입구간

수리넘어재에서 들머리로 시작하는 진악산 코스이며 네비게이션에 광장주차장 아니면

충남 금산군 금산읍 양지리221-28로 검색하면 광장주차장으로 안내되며 주차장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지만

이용하기에는 불편함이 없는 곳이며 화장실도 깨끗하였다

원효암에서도 들머리로 잡아 산행하면 되지만 수리넘어재보다 급경사라 시간이 더 소요될것으로 보인다

들머리에서 진악산 산정까지는 안내표지목을 보면2km 안내되어 있다

소나무 숲길

땀 삐질거리며 데크계단 목계단을 오르면 소나무 숲길이 이어지는데  소나무숲길 모습이 눈을 호강 시킨다

나는 유독 소나무를 좋아하는데 소나무 숲길을 걸어면 힐링 그 자체이며 소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솔향기에 취한다

오늘 나는 일기예보를 검색 안한 탓인지 덕유산 눈보라를 생각해서 두터운 옷을 입었는데

봄날처럼 따스해서 티셔츠 하나만 입고 산길을 걸었다

진악산(進樂山)은 산정을 중심으로 북단에서는 북서릉 시발점인 수리넘어재와

고개 남쪽 원효암에서 오르는 코스가 있으며 북서릉 동쪽에서는 음지리 상어동에서 수리넘어재 방면

계진리 족실 마을에서 선공암~관음굴 경유 북서릉으로 향하는 코스가 대표적이라고 한다.
남동릉 방면은 성곡리 안쪽 개삼터에서 동릉과 남릉인 737m봉, 성곡리에서는 도구통바위~737m봉으로 오르는 탐방로

남쪽에서는 보석사 기점 코스가 대표적이라고 하며 이용도가 낮은 보석사 서쪽 석동저수지를 지나

안골에서 남릉으로 오르는 코스도 있다고 한다

소나무 숲길

봄날처럼 너무 더워서 빵모자 부터 벗었는데 빵모자는 땀으로 흥근하게 젖어 버렸고 두터운 방한복도 벗어야 했다

차가운 바람끼도  하나없어  두터운 방한복 입고 산행 온게 후회 막심 하였다

진악산이 위치한 금산읍에는 금산천과 후곤천이 흐르는 자연과 조화된 청정 도시이며

전국 100대 명산 중 하나인 진악산과 남산, 비호산, 조종산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며

전국 제일의 인삼 약초시장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전국 거래량의 80%가 유통되는 곳이기도 하다

금산읍의 조망

고도가 높을수록 이제는 조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광활하게 펼쳐진 들판과 금산읍이 펼쳐졌다

금산군지(錦山郡志1969)에서는 진악산의 정기는 바로 금산의 정기로 동일시되어 왔다고 하며

진악산은 금산의 수호신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고, 1987년 금산군지에도

금산의 진산()으로 금산의 정기를 대표하는 산이기도 하다."라 하여 금산의 중심 산으로

진악산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진악산이 금산의 진산 또는 주산으로 기록된 것은 확인되지 않고

여지도서(輿地圖書)금산지도에 진악산이 있는 남쪽이 지도의 상단에 표시된 경우는 있다 하며

보통 고지도의 표현에서 지도의 위쪽에는 지역의 진산 또는 주산이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금산의 경우 지금은 그 이름조차 사라진 읍치 북쪽의 소산()이 진산이자 주산으로 유지되어 왔다고 전한다

진악산(進樂山)의 풍경

산정에 가까울 수록 진악산의 아름다운 속살을 드러내듯 보이며 사통팔방 조망이 시원함을 불렀다 

금산군은 진악산 등산객이 해마다 늘고 있지만  원점회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등산코스가 없어 불편이 야기됨에 따라

2012년 새로운 코스를 개발하였고  진악산은 보석사 코스, 수리고개 광장 코스, 원효암 코스, 선공암 코스 등

4개의 산행로를 갖고 있지만 모두 다른 지점으로 내려와야 했지만 원점회귀코스는

개삼터 공원에서 들머리로 하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중간에 개삼봉-도고통고개-물굴봉-관음봉(진악산 정상)-비조봉-덧매기재-개삼저수지를 거쳐 하산하는 코스다

진악산(進樂山)산정의 풍경

진악산 산정(山頂)에 오르면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대둔산, 모악산, 마이산, 계룡산, 서대산, 천등산 등

사방팔방으로 주요 명산들을 시선에 둘 수 있어 산행의 기쁨을 더해주는 곳이며

산행코스 곳곳에는 전설과 유래를 간직한 곳이 많고 비린내를 싫어하는 이무기의 이야기가 담긴 물굴

강처사가 산신령으로부터 인삼을 처음 건네받은 관음굴, 신들의 휴식처 삼신바위 등이 있다

진악산은 충청남도에서 4번째로 높고, 평야인 금산읍내를 내려다보듯 솟아

금산의 여간한 학교 교가에는 그 이름이 등장하며 이런 지리적인 특성상 예부터 정상에 봉화대가 있었고

금산하면 인삼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인삼을 최초로 심기 시작했다는 개삼터 역시 진악산 자락에 있다.

진악산(進樂山)에서 바라본 풍경

우리나라는 산지가 70% 답게 첩첩 산봉우리가 성난파도 처럼 출렁 출렁 해일(海溢)처럼 밀려오고 있는 모습이다

충남에서 세번째 높은산이라서 그런지 산이 정말로 깊고 주변 풍경이 정말로 수려한 모습을 보여 주었고

바위와 돌길을 하나 하나 넘고 지나면서 보여지는 풍경에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산행지 이다

아름답고 멋진 풍경을 보면서 산행을 하는것 만으로도 어렵지 않고 지루하지 않은 진악산 산길이다.

데크에서 바라보는 풍경

진악산 들머리 수리넘어재는 남이면과 금산읍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며 고개 주차장 기념비석에는

수레너미재 로 되어 있고  북서릉 등산로 푯말마다에는 ‘광장’, 음지리 상어동 방면 안내석에는

수리너머재 등 통일되지 않은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수리넘어재’는

국립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 표기된 이름이라고 한다.
이 고개는 옛날 남이면과 금산읍 주민들이 달구지를 끌거나 지게를 메고 넘나들던 고개로

지난 1984년 이곳 주민들이 군부대의 중장비 지원을 받아 진악로 라는 이름으로 개통되었다고 한다.

예술품 같은 소나무들

진악산 산길을 걸어보면 바위도 많고 돌도 많지만 그런 바위와 돌틈에서 자라는 아름다운 소나무를 참 많이 볼수 있고

양질의 토양도 아닌 바위와 돌틈사이에서 수십년을 견디고 자라며 버텨온 소나무들의 모습이 마치 분재 같았다

소나무의 생명력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하고 그래서 나는 소나무를 더 좋아를 한다

겹겹히 쌓여 있는 산 봉우리와 능선과 그 아래의 모습이 어느 강원도 깊은 산골 모습을 보는 것과 같고

우리나라는 정말 산이 많고 깊다는 것을 세삼 느끼게 만들곤 한다

금산군(錦山郡)의 조망

금산군(錦山郡)의 동쪽에 대성산(大聖山)·서대산(西臺山)·국사봉(國師峰)·천태산(天泰山)·월앙봉(月仰峰)·

성주산(聖住山)·양각산(兩角山) 베틀봉·수로봉(水路峰)·덕기봉(德基峰),

서쪽에는 대둔산(大芚山)오대산(五臺山)·진악산(進樂山)·마이산(馬耳山), 북쪽에는 망월산(望月山) 등이

잇달아 뻗어 있어 도내에서는 가장 큰 산악지대를 이루며, 완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인 배티재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진안군·무주군에서 발원하는 금강의 본류는

부리면 방우리, 제원면 천내리 · 용화리를 지나 충청북도 영동군으로 빠져나가

봉황천·기시천(掑嘶川)·금산천(錦山川)·조정천(鳥亭川) 등의 여러 지류를 합해 흐르며

금산군 서북부 지방의 배수를 담당하는 유등천(柳等川)은 진산면에서 발원해

금강의 중류와 하류 부근에서 본류와 합류한다고 한다.

얼굴바위

고도가 높을수록 정상에 다가 갈수록 경사가 심해지고 물론 최단코스는 코가 땅에 닿는것이 당연하다

바위와 돌이 많은 산이라 그런지 몰라도 산 이름에 악(岳)자가 들어가는곳은 유독 바위가 많다는 것을 알게된다

바위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볼거리도 많다는 것이며 탐방로 중간에 있는 얼굴바위가 있어 매우 이색적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냥 돌덩어리 같지만 멀리서보면 사람의 옆모습을 보는듯 하는데

누가 최초로 이름을 붙여는지는 모르겠지만 얼굴모습 같아 보여서 얼굴바위라 했다고 한다

눈섶바위

눈섶바위 아래는 천길 낭떨어지 이지만 산꾼들은 여기서 필수적으로 인증 사진을 촬영 하는 곳이기도 하다

잔설도 남아 있고 약간 얼은 상태라 더 끝으로 나갔다간 자유낙하를 체험 할수도 있겠다

진악산은 곳곳에서 암벽과 암릉과 마주하게 되는 산행지이며  정상 북서릉에서는 원효폭포를 이루는 직벽과

정상 방면 바위슬랩을 비롯해서 정상 북릉 상의 암봉과 암릉지대, 관음봉에서 개삼터공원 방면은

절벽에 뚫린 관음굴, 정상 남릉상 암릉, 물굴봉에서 개삼터공원 방면 절벽 아래 물굴,

보석사 방면 도구통바위 등이 모두 바위지대에 해당된다고 한다

눈섶바위와 서대산 조망

금산군(錦山郡)에는 금산 인삼 시발처인 개삼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1,500여 년 전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진악산 아래 마을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한다.

그런데 홀어머니가 병에 걸려 거동이 어렵게 되어 효성이 지극했던 강 선비는

진악산 관음굴에 들어가 모친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이때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관앙불봉(觀仰佛峰)암벽을 살펴보면 빨간 열매 세 개가 달린 풀이 있을 것이니

그 뿌리를 달아 드려라. 그러면 어머니 병이 나을 것이다 라고 했다.

강 선비는 곧바로 산신령이 알려준 암벽을 찾아가 꿈속에서 전해들은 풀을 찾게 되었고,

그 풀뿌리를 캐어 어머니께 달여 드린 결과 어머니의 병이 완치되었다고 한다.

그후 강 선비는 그 신비로운 풀 씨앗을 성곡리 개안마을에 심기 시작했다.

그 풀 뿌리 모습이 사람과 닮아 인삼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인삼 씨(種)가 처음으로 눈을 뜬 곳이라 하여 개안(開眼)이마을이라 했고

처음으로 인삼을 심은 곳이라는 뜻에서 개삼(開蔘)터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진악산(進樂山)산정

진악산 산정에는 아직 잔설이 많이 남아 있었고 선선한 바람이 땀을 식혀 벗었던 방한복을 입게 만들었다

진악산 산정상에는 주변에 높은 산들이 없는 관계로 동서남북 모두 빼어난 풍경을 볼수 있었고

금산시내와 맞은편으로는 대둔산 등 다양한 산들의 산봉우리가 파노라마 처럼 펼쳐져 있고

그만큼  멀리에 있는 많은 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진악산이 높긴 높은가 생각을 해본다

10시44분에 출발해서 쉬엄쉬엄 걸어서 12시09분에 산정에 도착했는데 1시간 25분 정도의 산행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수 있는 진악산은 정말 100대명산 답게  매력 있는 산 인것 같다.

금산 진악산(錦山 進樂山)  732.3m

이렇게 금산의 진산 진악산 산정에서 산신령님께 삼배(三拜)를 올리고 정상표지석과 사진을 찍어 보았다

진악산(進樂山)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금산군에 있는 높이 732.3m의 산이며 진락산이라고도 부른다.

서대산, 계룡산에 이어 충청남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라고 하며 산자락에는 신라 시대에 창건한

보석사, 영천암, 선공암, 원효암, 봉화대, 관음암, 관음굴, 원효폭포 등이 있다.

보석사 입구에는 전나무 숲과 수령 약 1천 년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65호)가 있으며

진악산 관음굴은 금산 인삼의 최초 재배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산 진악산(錦山 進樂山)  732.3m

진악산의 우람한 모습은 위대함과 굳건함의 표상으로 금산 고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하며

금산의 역사 속에서 진악산은 크고 작은 싸움을 여러 차례 지켜보았다.

옛날부터 나라의 안위를 봉화로 알리는 봉화대가 있었으며, 조선시대 임진년 8월(1592)의 금산벌 싸움에서

중 봉조 헌 선생과 함께 싸우다 순국하신 기허당 영규대사는 진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보석사에서 수도를 했고

그 인연으로 보석사 내의 의선각에 영규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보석사 들머리에 영규대사의 충혼을 기리는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가 세워져 있다.

진악산의 주릉에 펼쳐지는 기암괴봉의 경관이 아름다우며 금산 쪽으로 깎아지른 낭떠러지는 장엄하기까지 하며

진악산을 감싸고 있는 숲도 무성하며 영천암과 원효암 골짜기의 개울도 좋다. 

보석사(寶石寺) 방향으로 하산

진악산 산정 데크 전망대에서 일행들이랑 간단 점심을 하고서 배낭을 메고 보석사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하산은 남동쪽 737m봉을 경유하여 석동리 보석사로 내려서는 코스가 정석이라고 해서 나 역시 그 방향을 택하고

남동릉으로 발길을 옮겨 약 40분 거리에 이르면 737m봉을 밟는다.

737m봉에서 계속 남동릉을 타고 10분 거리에 이르면 높이 6m에 폭 2m 가량 되는 도구통바위가 반긴다.

적갈색 자연석인 이 바위의 이름 '도구통' 은 충청도 말로 절구를 일컫지만 우리 경상도에도 도구통이다.
도구통바위를 뒤로하고 남쪽 급사면을 내려서면 100여 평 공터에 무덤이 있는 곳을 만난다.

무덤을 지나 숲터널 아래 계곡길로 10분 거리에 이르면 산중암자인 영천암이 나타난다.

진악산 암릉길

암릉길 옆으로 그냥 평지길도 있지만 진악산 암릉이 아름다워 미끄럽지만 암릉길을 택했다

진악산 북쪽 분지인 상어동의 행정지명은 음지리라고 하는데 항상 진악산 그림자가 드리우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라고 하며 상어동 이름은 고기 어(魚) 자를 쓰는 어동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이 마을 아래에 하(下)어동이 있다고 하며 토속 이름으로 ‘위어동골’, ‘아래어동골’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 굴(窟)이 있는 것은 아니고 골짜기를 뜻하는 동(洞)에서 나온 말인 ‘골’이 ‘굴’로 변한 것뿐이라고 한다.

진악산 암릉의 풍경

진악산은 그야말로 골산이며 악자 있는 산은 모두 골산인듯 하다 진악산 정상부는 평평하고 조망도 좋아

옛날 봉수대(烽燧臺) 역할을 했을 정도로 정상에서 사방을 휘둘러보는 풍광은 정말 일품이다.

북으로는 만인산이 멀리 식장산과 함께 보이고 식장산 오른쪽으로는 고리산(환산)도 눈에 들어오며

북쪽과 북동으로 내려다보이는 음지리와 계진리 분지는 온통 인삼밭들로 꾸며 놓은듯 보인다

북동으로는 인삼밭으로 포위된 금산읍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금산읍 왼쪽 뒤 멀리로는 서대산(西臺山)이 우뚝 서있다

분재(盆栽)같은 소나무

여느 분재 기술자 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어 놓아 자연의 신비 바위틈에서 소나무의 기상이 넘쳐 난다

진악산 들머리 수리넘어재에서 시작하여 보석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산길은 이렇게 소나무의 전시장 같았다

진악산은 충남에서 세번째 높은 산이며 금산군 금산읍과 남이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진악산 정상에서는 금산읍 시가지와 천태산, 서대산, 대둔산 등 주변의 명산이 병풍처럼 보이는 명산이며

운해를 볼수있는 조망처라고 산꾼들에게 사진작가들 사이에도 명소이기도 하다

물굴봉735.7m

안내글을 보면 진악산에서 제일높은 봉우리(735.7m)로 봉우리 아래 바위굴이 있는데

니댓 걸음 들어가면 물소리가 요란하여 깊이를 헤아릴수 없다

진악산 물굴봉이 머리이고 금성산과 서대산이 몸통이며 영동의 양산이 용의 꼬리에 해당되어 용이 사는 굴이라

용굴이라고도 하며 날이 가물때 호랑이 머리를 집어 넣어면 영험이 있다고 하여 기우제를 지냈다 한다

도구통바위

도구통은 절구의 충청도 방언이라고 하는데 우리 지역 경남에서도 도구통이라 불렀다

안내글을 보면 모양이 도구통처럼 생긴 바위로  물굴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바람맥이 날망에 있다

풍수적으로 노적봉이 도적을 가리고 금산읍이 화이며 도구통 바위가 절구이고

방아고개가 방아다리 형국이라 하여 금산이 부족함이 없이 풍요롭게 산다고 한다

또한 선사시대 소도의 솟대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쉼터

안내표지목에는 그냥 쉼터라고 안내되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절터 아니면 화전민 집터 같이 보였다

보석사 방향으로 가까워 질수록 소나무는 사리지고 극상을 이룬듯 참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산길은 온통 낙엽으로 덥혀져 있어 미끄러지지 않게 유의 해야 하며 눈길보다 더 미끄러웠다

여기로 쭉 내려가면 남이면 석동리 인데 석동리는 백제때는 진내군의 영역이었고

신라때는 진례군에 속하였다고 한다 고려때는 진례군에 속했다가 뒤에 승격한 금주에 속했고

조선초기 태종 13년(1413)에는 금산군에 속하였다고 하며 명칭유래는 조선시대 말기에는 남이면 지역으로서

보석사 앞에 보석이 들어있다고 전해오는 보석바위가 있으므로 보석골 또는 석동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심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석동리라고 했고 지금까지 부르고 있다

하산길

내가 하산하는 산길 보석사에서 들머리로 삼는다면 보석사 주차장 입구에서 남서쪽 도로는 남이면 흑암리 방면이며

이 길로 약 500m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삼거리에서 오른쪽 농로를 따라 7~8분 오르면

석동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 닿는다고 한다 고개를 넘어가면 곧이어 삼거리이며

오른쪽은 저수지 둑을 건너 보석사 주차장 입구쪽으로 이어진다고 하며

보석사 주차장 입구에서 산행하여도 된다

영천암 삼거리

여기서 음수골까지는2.7km라고 안내되어 있고 보석사 까지는 1.1km 라고 안내되어 있다

영천암(靈泉庵)은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714 위치하고 있으며 영천암이란 이름은 사찰 뒤에 바위 굴이 있는데

이 바위굴에서 석간수 가 끊임없이 솟아 나오며 이 물이 모든 병에 특효가 있는 영험한 샘이라 하여

영천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며, 또 다른 전설로는 옛날 긴 가뭄에 산에 나무와 풀이 마르고

식수가 부족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할 때 이를 안타깝게 여긴 스님이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기도 회향일에 바위 굴에서 물이 솟아 나와서 마을 주민들의 생명수 역할을 하였다 한다.

영천암 무량수전(靈泉庵  無量壽殿)

진악산 중턱에 자리한 영천암은 대한불교조계종 보석사 산내 암자이며 보석사를 창건한 조구화상께서

도를 닦기위해 세운 암자라고 하는데 이에 관련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글이 없다고 하며

영천암은 보석사에서 1.1km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지리적 연관성을 적용 보석사 부속암자 라고 가능케 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보석사 소속 34개 사암 가운데 영천암 이름은 확인 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영천암은 보석사와 관련이 없는 암자 였으나 비어있던 영천암에

보석사 스님이 주석하면서 보석사 산내 암자가 되었다고 하며 칠성각 뒷편 바위틈에 솟아나는 샘물이

모든 병에 특효가 있는 영험한 샘물이라 하여 영천암(靈泉庵)이라고 한다

보석사(寶石寺)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65호)

1000년 수령의 은행나무는 보는 순간 감탄하게 하였다 내생에 이렇게 큰 은행나무는 처음이였기에

엄청난 둘레와 크기 하며 주위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듯한 영험함이 서려 있는듯 하였다

보석사 은행나무를 공손수라고도 하고 압각수라 부르기도 하며 공손수(公孫樹)는 할아버지가 심고

손자가 열매를 따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은행나무를 지칭하는데 잎모양이

오리의 발같이 생겼다해서 압각수(鴨脚樹)라고도 부른다.

보석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000살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34m, 가슴높이의

둘레 10.72m의 크기로 뿌리부분에 2∼3m 높이의 새로 난 싹이 수없이 돋아나 신기하게 보인다.

이 나무는 마을에 큰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소리를 내어 미리 알려준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마을을 지키고 보호해주는 신성한 나무로 여기고 있다.

보석사(寶石寺)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65)

조구대사가 보석사 창건(886년)무렵 다섯분의 제자가 심은 6그루의 은행나무가

합해진 모습이라 하며 나라에 일이 생기면 알려주는 신목이라 한다.

1945년 광복 때와 1950년 전란 때, 1992년 극심한 가뭄 때 소리내어 울었다고 전해지며

금산 보석사의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민속적·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나는 마을 수호신인 당산나무의 느낌이들었고 울타리 문이 닫혀있어 가까이 갈 수도 없었지만

가까이 가서도 안될 것 같은 장엄한 모습이였다

보석사(寶石寺)전경

나는 보석사를 큰 사찰이라고 생각 했는데 역사보다 그 크기는 여느 사찰 처럼 평범 하였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다포식 맞배지붕의 건축형태로 유형 문화재이라고 하며 넓은 도량 보다 전각이 적게 보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며 885년(헌강왕 11)에 조구(祖丘)가 창건하였고

창건 당시 절 앞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불상을 주조하였기 때문에 절 이름을 보석사라고 하였다.

그 뒤에 자세한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고종 때 명성황후가 중창하여

원당(願堂)으로 삼았으며, 1912년부터는 31본산의 하나로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진영각·심검당(尋劒堂)·산신각·응향각(凝香閣)·체실(體室)·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1993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에 다포집 맞배지붕이며, 법당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관세음보살·문수보살의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안치하고 있으며 대웅전의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2011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삼존불은

규모가 크고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섬세하며, 상호가 원만하고 자비로워

조선시대 불상 중에서는 최고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보석사 꽃무릇 군락지

금산군에서 2022년에 총 2억5천만원을 들여 보석사와 은행나무 일원의 산책로를 정비하며 꽃무릇 23만 본을 심었다고 하며

처음 나는 심은게 아니라 오래전 부터 자연적으로 뿌리 내린것이라 생각했다

보석사를8~9월에 찾아오면 아마도 길 전체가  붉게 물듣듯 싶다

보석사 절 앞산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어 보석사라 했다지만 화려한 이름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꾸밈이 없고 아담하였고  일주문에서 사찰 입구까지 늘어선 전나무들도 운치가 있는 곳이다

義兵僧將碑(의병승장비)

승병장 영규대사 의 순절비이며 의병승장비는 공주의 청련암과 보석사에서 무예를 익힌 뒤

임진왜란 때 왜병과 싸우다가 전사한 승병장 영규의 순절비 이다.

영규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승들을 규합해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영규(靈圭1537~1592923(음력 818)는 조선 중기의 승병장이며

속성은 박, 본관은 밀양, 호는 기허당(騎虛堂)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활약하였다.

충남 공주 출신이며 계룡산 갑사에 출가하여 서산대사의 고제로 공주 청련암에서 수도하였고 선장으로 무예를 익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500명을 이끌고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 전투에서 청주성을 탈환했고 다시 제2차 금산 전투를 벌였고 격전 끝에 싸우다 전사하였다.

금산의 칠백의총에 묻히고 종용사에 제향되었으며 법도, 대인에 의해

진악산에 영각이 세워졌으며 의선이란 편액이 하사되었다.

산행종료

보석사 일주문 이며 진악산 보석사(進樂山 寶石寺)라는 편액이 걸여 있으며 주변에는 꽃무릇이 마치 정구지 밭처럼 푸르다

일주문 편액은 편액은 우송 민효식(1926~?) 선생의 글씨라고 하며 민효식 선생은 광주 출신으로

독학으로 '구양순체' 의 계승자로 인정받았으며, 하동 쌍계사의 금강계단, 공주 마곡사의 매화의 편액도 썼다고 한다.

진악산은 우람한 모습 그리고 위대함과 굳건함의 표상으로 금산 고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진산이며

수리넘어재에서 들머리로 하여 보석사 주차장을 날머리로 하여 산행을 마무리 했고

태고(太古)적부터 금산주민들과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해 온 진악산  그 산길을 걸어보면서

진악산에 얽힌 전설과 역사를 느끼게 한 산길이였다.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

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

태백산맥은없다 조석필 사람과산.

한국1000산 신명훈 깊은솔

금산군 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