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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늑대 FORCE
진안 천반산(鎭安 天盤山). 정여립(鄭汝立)의 발자취를 따라 천혜의 요새지(要塞地) 천반낙도(天盤落桃)천반산 산길을 걷다 본문
진안 천반산(鎭安 天盤山). 정여립(鄭汝立)의 발자취를 따라 천혜의 요새지(要塞地) 천반낙도(天盤落桃)천반산 산길을 걷다
바다늑대FORCE 2024. 9. 28. 17:27
진안 천반산(鎭安 天盤山).
정여립(鄭汝立)의 발자취를 따라 천혜의 요새지(要塞地) 천반낙도(天盤落桃) 천반산 산길을 걷다
▲ 진안 천반산(鎭安 天盤山)
높이 : 647m
위치 : 전북 진안군 상전면 동향면과 장수군 천천면에 걸쳐 있는 산
▲ 진안 천반산(鎭安 天盤山)나의 산행일 :
2024년09월28일 토요일 날씨 맑음
▲ 진안 천반산(鎭安 天盤山)나의 산행코스 :
구량천잠수교 → 천반산휴양림 들머리→천반산(깃대봉)2km표지 →조망바위 →천반산(깃대봉) →마이산 조망처
→ 말잔등바위→성터 →죽도1.5km안내표지 → 송판서굴 → 죽도1.5km안내표지→천반산전망대 →뜀바위 →조망처
→죽도병풍바위 →장전마을 → 구량천잠수교
8.35km 4시간14분 소요(트랭글 앱기준)
▲ 진안 천반산(鎭安 天盤山)개요 :
천반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험준한 절벽으로 에워싸여 있다.
여기에다 북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산자락을 휘감고 있으며, 서쪽과 남으로는 금강 상류를 이루는
연평천(일명 장수천)이 휘돌아 흐르고 있어 천혜의 요새를 방불케하는 산세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은 선조 22년(1589년)전라도를 반역향이라 하여 호남 차별의 분수령을 이룬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1546~1589)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정여립은 전주 남문 밖에서 태어나 선조 3년 25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이라는 벼슬에 올랐으나,
선조와 서인들의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 대동계를 조직하고
모악산 앞 제비산(현재의 김제시 금구면)에 머물면서 죽도에다 시설을 지어놓고 천반산에서 군사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정여립은 선조 22년 역모로 몰리자 아들과 함께 죽도로 피신했다가 관군에 쫓기자 이 산에서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 진안 천반산(鎭安 天盤山)개념도
▲ 진안 천반산(鎭安 天盤山)산행지도
▲ 진안 천반산(鎭安 天盤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4년 09월28일 토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추석연휴 지나고 9월 막바지에 산길을 걸어보기 위해 아침일찍 길을 나섰다
정말 오랫만에 혼자서 산길을 걷기 위하여 전북 진안방향으로 달려 혼자 걷는 산길의 매력은
산이주는 향기로운 초목 내음을 맡아 가면서 누구에게도 시간에도 여유롭고
조용하게 유유자적(悠悠自適)걷는것 또한 혼산의 매력이기에
나홀로 9월 막바지에서 가을 마중을 천반산에서 해본다.
천반산(天盤山)개 안내표지
천반산휴양림은 사유지라 이용할수가 없어 이렇게 갓길에 주차를 해야 하며
천반산휴양림은 전북 진안군 동향면 진성로948-11 이며 네이게이션에 안내 받아면 이곳으로 안내된다
천반산안내표지가 있는곳에 주차를 해야 하는데 맞땅히 주차할곳도 없기에 그렇다
구량천 잠수교 방향으로 가기 위해 조금 넓게되어 있는 도로 갓길이며 주차를 하면되고
승용차 4대 정도의 넓이는 될듯하다.
부산,대구 지역에서 산행지로 온다면 남해고속도로(부산)88고속도로(대구)→대전통영간고속도로 →
익산장수고속도로 진안IC(고속도로 진출 후 227m 이동 진안IC교차로(진무로 진안무주방면으로 우측도로 2.1km 이동)
진안로터리(진무로 무주,진안방면으로 우측도로 1.2km 이동→(진무로 안천무주방면으로 좌회전 후 4.2km 이동)
→언건교차로(진성로 상전동향방면으로 우측도로 9.5km 이동)→(진성로 우회전 후 101m 이동)→천반산자연휴양림 도착한다
구량천(九良川) 잠수교
천반산의 모습은 운무로 자욱하기에 산정에서 구름바다를 볼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량천은 전라북도 덕유산에서 발원을 하고 진안군 동향면으로 흐르는 하천이며
진안군 동향면 성산리 부근에서 금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무주 지역 내에서는 통안천과 사전천이 유입되고, 진안 지역에서는 상노천과 수침천이 유입된다고 한다
구량천 잠수교를 건너면 천반산휴양림에 천반산 들머리가 있다 천반산휴양림은 개인사유지라고 한다
천반산(天盤山)들머리
구량천을 건너면 천반산휴양림 입구가 나오는데 입구 우측 화장실 뒷편에 있는 들머리이며
천반산 등산로 종합안내도가 있어 들머리임을 알수가 있다
백두대간(白頭大幹)상의 남덕유산(1,507.4m) 서쪽으로 약 1km 거리인 서봉(1,510m 장수 덕유산)에서
대간을 이탈해 북서쪽으로 가지를 치는 능선이 있는데 이 능선은 약 5.5km 거리인 19번 국도가 넘어가는
솔고개에서 잠시 가라앉았다가 약 4km 더 이어진 다음 영구산(靈龜山 802.3m)을 빚는다.
영구산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약 8km 거리에 이르러 구량천과 금강 상류에 막혀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들어올려진 산이 천반산(天盤山)이라고 한다.
천반산(天盤山)초입구간
천반산 산정 최단거리는 아마도 천반산휴양림에서 사작하면 금방 오를듯한 구간이지만 제법 가파르다
가을마중이라 벌서 낙엽이 바닥에 제법 깔려 있는데 올해것 인지 작년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덥던 여름이 지나고 9월 마지막 토요일이라 그런지 매미 소리보다 풀벌레 소리가 더 많이 들여오고
산길엔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어 내 얼굴에 거미줄이 계속 성가시게 걸리기만 하였다
운무(雲霧)가 자욱한 산길
안내표지목을 보면 여기서 보면 천반산 깃대봉 까지는 2km이라 그다지 멀지는 않는 산길이며
풀벌레 소리와 운무가 가을마중 그대로 가을 있는듯 하고 그 무덥던 여름은 또 지나가고
산길 바닥에 도토리가 떨어져 있어 가을향기가 뼛속까지 파고 드는듯 하다
전북 진안군 진안읍 그리고 상전면과 장수군 천천면 경계를 이루는 천반산은
주능선 일원이 소반과 같이 납작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생겼다는 설과
땅에는 천반(天盤), 지반(地盤), 인반(人盤)이라는 명당자리가 있는데
이 산에 천반에 해당되는 명당이 있다 해서 지어졌다는 설이 있으며
또 산 남쪽 마을 앞 강가에는 장독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하늘의 소반에서 떨어진
복숭아(천반락도 天盤落桃)라 하여 마을 북쪽에 있는 산을 천반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운무(雲霧)가 자욱한 산길
운무(雲霧)가 자욱한 산길에서 이러다가 조망도 못보고 그냥 산길만 걸어야 하는 걱정아닌 걱정도 되었다
거미줄은 운무에 하얗게 걸여 있어 그나마 내 앞길은 제거하고 걸을수가 있었다
천반산에는 조선 선조초 왕조시대 공화주의자 정여립의 꿈이 스려있는 곳이며
대동계를 조직하여 훈련할때 제일 높은 곳에 大同(대동)이라는 깃발을 꽂았다는
천반산 정상의 깃대봉이라 하고 망을 봤다는 망바위,정여립이 말을 타고 뛰었다는 30m거리의 뜀바위,
정여립이 바둑을 두었다는 말바위 등 정여립의 흔적이 있는 산길이다
운해(雲海)
조망이 수목 때문에 운무가 흐르는 모습을 촬영할수가 없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가을 길목에 아침일찍 산에 오르면 이렇게 구름바다를 만날수가 있는데 올해는 보는것이 처음인듯 싶다
은퇴날도 D데이 94일이나 남아 있는 날이라 빠른 시간 속에서 9월에 추석연휴도 많았지만
산에 한번 오르지도 못하고 9월 막바지에 이렇게 산에서 구름바다를 만난 행운도 얻었다
운해(雲海)
구름바다를 보면서 정여립(鄭汝立1546년~1589년)의 발자취를 따라 천반산을 오른다
기축옥사(己丑獄事)는 조선 선조 때 발생한 옥사로,1589년 10월, 정여립이 모반을 꾸민다는
고변에서 시작되어 약 3년간 정여립과 연루된 1,000명의 동인이 희생된 사건이며
정여립의 옥사로도 불리는 이 옥사는 붕당정치가 시작된 초반 과도기에 당쟁에 의해 벌어진 권력투쟁사건이다.
사화(士禍)와 붕당(朋黨)으로 지배체제가 크게 동요한 16세기에 벌어진 기축옥사는
조선시대 역모사건 가운데 희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사건 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다고 한다
진안,장수군 천반산(鎭安,長水郡 天盤山) 647m
전라북도 진안군 천반산은 진안의 숨은 명산이자 오지(奧地)의 산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이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산정까지 오르는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한 산길이며
중간중간 조망을 즐길수 있는 산행지이다
전라북도 진안과 장수군 경계에 있는 산이며 장수군 5대명산 중에 속하며
진안군 동향면의 동향8경 중에 하나이기도 한 천반산 이다
진안,장수군 천반산(鎭安,長水郡 天盤山) 647m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 하단과 진안군 상전면 일원, 동향면 일원에 걸쳐져 있는 높이 647m의 산이며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지만 보기와는 달리 오르기가 매우 힘든 산인데 서쪽과 북쪽이 가파르므로 더 힘이 든다.
산 정산 부근에는 3백∼4백 평 정도로 제법 널따란 평지가 있는데 이 평지에 7개의 작은 바위가 정렬한 듯
나란히 서 있어 기이한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데. 이곳을
할미대라고 하는데 토속신앙을 숭배하던 그 옛날 산신할머니와 연관이 있어서 불렸다고도 볼 수 있다.
장수 5대 명산 중의 하나인 천반산은 정상에 서서 서쪽인 진안 쪽의 아래를 굽어보면
제법 강의 형태를 띠고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가 보이는 경관은 수려하고 아름답다.
진안,장수군 천반산(鎭安,長水郡 天盤山) 647m
천반산 정상 표지석은 장수군으로 되어 있는것을 보아 장수군에서 세웠는가 싶고 그옆엔 예전 정상표지석
천반산 깃대봉이라고 되어 있으며 천반산 서쪽으로 조망하면 진안의 마이산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오며
천반산의 등산 들머리인 신기마을에서 먹재 정상까지는 2.3km로 약 2시간 소요되는 코스이며
등산코스 곳곳에 할미굴, 송판서굴이 있고 말바위, 전망바위, 뜀바위, 죽도 병풍바위, 천반산휴양림 등이 있어
산행지로서는 100대 명산 못지않은 산행지라고 말할수 있다.
천반산(天盤山) 산정
천반산에 올라 명산 같은 곳이라면 긴줄을 서서 정상표지석과 인증 사진촬영 해야 하지만
정말 오지의 산이라 그런지 산 전체가 조용하며 오늘 나는 천반산을 전세 내었는듯한 나홀로 산정에서 휴식을 한다
정여립의 발자취가 있는곳인데 1589년(선조 22)에는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의 모반사건을 맞는데
이것을 역사에서는 기축옥사라고 하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의 일이다.
이해 10월 황해감사 한준이 임금만 볼 수 있는 비밀 장계(지방에 나간 관원이 글로 써서 올리던 보고)를 올렸고
글 속에는 정여립이 주도하는 세력이 전라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어마어마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당시 조정은 동인들이 세력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산해 · 유성룡 · 정언신 등 세 정승도 동인이었고, 정여립도 동인에 속했다.
죽도방향 하산길
천반산은 천반산휴양림을 들머리로 하여 산행을 시작하는데 산정까지는 별 특이하게 조망은 없지만
죽도방향 하산길에는 제법 눈을 호강하는 풍경이 있다고 하는 산길이다
기옥사화시 선조는 즉각 옥사를 다스릴 벼슬아치들을 불러들여 비밀장계를 내보였다.
그 장계에는 정여립과 같은 무리인 조구(趙球)가 일러바친 사건의 전말이 들어 있었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질 새도 없이 의금부 도사들이 범인들을 잡으러 전라도와 황해도로 내달았다.
그러나 정여립은 의금부 도사가 자신의 집에 이르기 전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의 하수인으로 안악에 사는 변숭복(邊崇復)이 이 사실을 알고 한달음에 전라도 금구에 사는 정여립에게 알린 것이다.
정여립은 재빨리 아들 옥남과 변숭복, 그리고 동모자인 박연령의 아들 춘룡만을 데리고 진안 죽도로 숨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도망한 이들은 며칠을 산속에서 지내며 동네에서 밥을 빌어다가 먹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수상한 이들이 산속에서 숨어 지내며 볏짚 속에서 잠을 잔다고 알려
진안현감 민인백이 관군을 이끌고 와 산을 포위했다고 한다
조망처
저멀리 마이산이 보인다 정말 말 귀처럼 우똑 솟아 있는게 어딜서 보던 마이산임을 금방 알수 있겠다
마이산을 뒤로한 바로 코앞의 산은 독재봉(676m) 여기서 보면 진안군의 진산인 장안산 그리고 선각산 덕태산
성수산 그리고 마이산의 풍경이 펼치지는 조망처이다
구룡천과 용암마을 그리고 하향마을도 보이며 들녘은 벼가 익어가는 그림이며 황금빛이 금방 벼논임을 알수가 있었다
천반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험준한 절벽으로 에워싸여 있고 여기에다 북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산자락을 휘감고 있으며, 서쪽과 남으로는 금강 상류를 이루는 연평천(장수천)이 휘돌아 흐르고 있어
천혜의 요새를 방불케 하는 산세를 이루고 있다.
진안의 산봉우리의 풍경
멀리 좌측끝 부분이 1237m의 장안산이며 그옆으로 1421m의 선각산 우측으로 덕태산 성수산 독재봉이다
천반산은 선조 22년(1589년) 전라도를 반역향이라 하여 호남 차별의 분수령을 이룬
기축옥사(己丑獄死)의 정여립(鄭汝立1546~1589)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며
정여립은 전주 남문 밖에서 태어나 선조 3년 25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修撰)이라는 벼슬에 올랐으나,
선조와 서인들의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고
모악산 앞 제비산 현재의 김제시 금구면에 머물면서 죽도에다 시설을 지어놓고 천반산에서 군사를 훈련시켰다고 한다.
마이산 줌 촬영
좌측이 숫마이봉680m이며 우측은 암마이봉686m이다
천반산 산길을 걷는 내내 마이봉 봉우리가 계속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정여립이 대동계(大同契)를 이끌고 반란을 꾀한다는 역모고변으로 옥사(獄事)가 시작되었다
정여립의 자결로 역모는 사실로 굳어졌고 동인을 숙청하고 정권을 재탈환할 절호의 기회로 판단한
서인들은 사건을 확대시켜 3년간이나 옥사(獄事)를 이어가며 1,000여 명의 동인들을 유배나 사형에 처했다
이 사건으로 동인과 서인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며 비판, 견제, 공존이라는 붕당정치의 금도가 깨지고
당쟁은 유혈숙청으로 비화되었고 앙심을 품은 동인들은 건저문제(1591)에서 기회를 잡아
서인들을 유혈숙청하였고 인조반정(1623)으로 전세가 다시 역전되는 등 악순환이 거듭되었다.
이 옥사는 물증 등 분명한 증거 없이 다만 고변 만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정여립의 사인에 대해서는 타살설 역모에 대해서는 여러 조작설이 제기되고있어
아직도 사건의 진위여부 등 많은 논란을 빚고 있다.
말바위
마치 말잔등처럼 크다랗게 산 능선 일부를 차치하고 있는데 여기서 정여립이 바둑을 두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옥사가 종결된 뒤 곧 임진왜란이 벌어져 많은 자료가 유실되었기에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고 하며
또한 인조반정 이후 서인이 득세하고 이후에는 서인 출신의 노론 벽파가 정권을 장악하였기에
조선후기 300년 간 정여립의 모반사건과 기축옥사에 대한 논의는 금기사항에 해당했다.
3년 간 이어진 옥사로 1,000명의 인재가 사망했기 때문에 인재부재로 인해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천반산 성터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은 전주 남문 밖에서 태어나 선조3년(25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修撰)의 벼슬에 올랐다가 선조와 서인의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모악산 엎 제비산(현 김제시 금구면)에 머물면서 앞에 보이는 죽도에 시설을 지어놓고
이곳 천반산에서 군사훈련을 조련하였다고 하는데 삼국시대때 축조된 성을 그때도 사용했을까 궁금도 하다
정여립은 김제 금구에 있는 제비산 기슭으로 낙향하여 대동계를 조직하는데
대동이란 큰 도가 행해져 천하가 공평해진다는 의미이라고 하며 신분에 제약을 두지 않고 가입을 허가 했으며
보름마다 한 번씩 무술훈련을 하는 등 혁명적인 명제를 가지고 호남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해 왕성하게 활동하며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다.그러나 1589년 이들이 한강의 결빙기를 이용, 황해도와 호남에서 동시에
한양으로 진입해 병권을 장악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관련자들이 차례로 붙잡혔다.
이때 그는 전북 김제 금구를 떠나 아들과 함께 진안 죽도로 피신했다가 관군의 포위가 좁혀 들자
자살하고 말았다고 하는데 정여립의 죽음과 관련해 의견이 분분하게 나뉜다.
천반산에서 자살을 했던 것인지 단순히 죽도를 방문했다가 관군에게 잡혀 죽었던 것인지에 대해선 기록이 제각각이다.
'동서만록'에 따르면 정여립은 평소에 천반산 아래 죽도를 자주 찾았기에 그를 죽도선생이라 불렀다고 하며,
더욱이 역적도 아니었기 때문에 죽도로 피난 간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죽도의 비경을 즐기려고 나왔다가
관군에게 잡혀 억울하게 죽었을 뿐 자살로 조작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만을 남긴다고 했던 과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로써 그의 역모는 사실로 굳어졌고 정철(鄭澈)이 사건을 조사, 처리하면서 동인 세력이 거의 몰살되었으니
비명에 숙청된 인사는 이발을 비롯하여 1000여 명에 달했고 역사는 이를 기축옥사라 한다.
천반산 성터
표지석에는 천반산 성터라고 되어있고 해발575.8m라고 해놓았는데 미터가 대문자 M되어 있다
잠시 쉬면서 지도정치(地圖正置)를하여 내가 하산할곳을 미리 지도상으로 보고 보아야 할곳을 놓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알려져온 천반산이며 천반산은 전북 진안군 동향면 성산리와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 경계에 있다.
647m의 낮아도 비범한 산이며 또한 절경 좋다 무주 안성에서 발원한 구량천(대양)과 금강이 산을 호위하듯 에둘러 흘러간다.
주봉은 깃대봉, 고스락 서쪽에 성터가 있고 북쪽은 깎아지른 절벽, 남쪽은 평평한 사면이다.
정여립이 군사를 훈련시켰다는 장소와 우물이 남아 있으며 산의 형태가 소반처럼 생겨 천반이다.
천반산은 죽도 등 정여립과 관련한 지명이 많이 있는 산길이다
천반산 산길
천반산을 명산의 반열에 오르게 한 구량천(九良川)은 천반산의 3면을 감싸며 태극 모양으로 흐르고 있고
천반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여덟 폭 동양화를 보는 듯하여 천혜의 요새를 이루는 깎아지른 절벽과
멀리 보이는 마이산(馬耳山687m)풍광은 신비감을 더해서 신비롭기만 한 산행지라 할수 있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천반산성은 둘레가 1km 정도였다고 기록이 전하지만 조금전에 보았듯이
지금은 석축 수준으로 아주 일부만 남아 있고 1만여 평의 분지가 소반처럼 평평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굴참나무와 서어나무가 대신하고 있지만 정여립이 이곳에서 군사를 조련했다고 전한다.
송판서굴0.3km 안내표지목
죽도로 하산하기전에 송판서굴로 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산이 이야기해 주는건 다 보아야 하기에 송판서굴로 길을 재촉 하였다
또한 천반산은 정감록이 정한 십승지를 품은 천반낙도(天盤落桃)의 산이라고도 한다
천반낙도(天盤落桃)의 땅에서 같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동계를 결성하고
천하공물설(天下公物設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 같은 혁신적인 사상을 펼치고자 했던
정여립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천하공물설(天下公物設 )
천하는 공물인데 어찌 주인이 있으랴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
누구나 능력에 따라 임금이 될수 있다.
왕조시대에 이렇게 말했다면 정말 역모죄가 될수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판서굴(宋判書屈)
조선 세종때 예조판서를 지낸 퇴휴재(退休齋) 송보산(宋寶山, 1432~1504)이 1456년 세조의 왕위 차탈 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은거한 곳이라고 한다.
1456년 단종이 폐위되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이에 항기하여 벼슬을 버리고 처가가 있는
현재의 장수군 게남면 방아재로 낙향하여 이조판서로 지내다가 먼저 낙향한 김남택과 교유하며 살았다.
송판서가 굴속에서 은거하면서 부인과 동침을 금하기 위해 부인을 따로 이곳에 기거하도록 하였기에 불리게 된 굴이다.
전설에 따르면 송 판서가 수도하면서 쌀 한 되를 부인과 나누어 갖고 부인에게 한 끼에 쌀 세 알,
생솔잎 세 개, 굴속 석간수 세 모금만 먹도록 했는데, 부인이 그 약속을 어기고 많이 먹어
부인의 쌀이 먼저 바닥이 나자 자신의 남은 쌀을 다시 반으로 갈라 부인에게 주어 함께 수도를 마쳤다고 한다.
천반산 양생화(당삽주)
삽주도 종류가 다양해서 잎이나 꽃을 보고 당삽주인지 구분할수가 있다
여러해살이풀(多年生草本)이며 근경(根莖)은 굵고 가로 뻗으며 구슬모양의 마디들이 있다.
줄기는 곧추 자라며 높이는 30~80cm 정도이고 거의 가지를 치지 않는다.
어린 식물체에는 흰털이 덮여 있다가 점차 없어지며 잎은 호생(互生)하고 난형(卵形)이거나
긴 원형이며 길이 3~8cm, 너비 2~6cm 정도이고 끝은 둥글거나 뾰족한 돌기가 있으며 결각(缺刻)이 없고
변두리에는 자모(刺毛)가 있으며 밑부분은 귀를 이루면서 줄기를 절반쯤 둘러싼다.
천반산 전망대
천반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이산이며 여기 전망대가 제일 선명하게 보이는 장소 같아 전망대라 이름 붙여진듯 하다
마이산은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와 진안읍 단양리에 걸쳐 있으며 마이산은 흙이 하나도 없는 콘크리트 지질로 된
두 개의 커다란 역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산이다
신라시대에는 서다산이라고 불렸는데 소사(小史)에 실었다고 하며 태종이 남행하야 산 아래에 이르러
관원을 보내 제사를 드리고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천반산 전망대
천반산 산길은 내내 마이산 조망을 보며 걸을수 있고 곳곳에 정여립에 관한 설화가 얽혀있는 역사적 산행지 이다
전주지역의 산도 제법 산행한듯 하다 마이산은 2번 또 산악회에서 계획이 되어 있던데 참여할 생각은 있지만 아직은 미정이다
그리고 선각산 장안산 운장산 고덕산도 산행을 한 산이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저멀리까지 조망이 잘 보이고
파란하늘에 뭉게구름도 유년기 시절에 보았던 그 모습이랑 같았다
산은 늘 그자리에서 계절마다 새롭게 단장하고 모습을 보여주는데 나는 올해가 지나면 어느듯 이순(耳順)이 되어
60대가 된다 60년동안 나는 어떡게 무얼 했는지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산길이다
뜀바위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뜀바위가 있는데 거리는 30m 정도 되는데
뜀바위는 두 개의 봉우리를 정여립이 말을 타고 뛰었다는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 하는 멋진 모습이 펼쳐지는데
구량천 물줄기가 산 전체를 휘감고 도는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고개를 돌리면 남덕유산까지 보이고, 좌측으로 죽도와 대덕산이 병풍처럼 펼쳐 있다.
데크 계단 따라 건너편 봉우리까지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고 그 위에 전망데크가 있는데
강을 바짝 내려다보는 위치이며 강과 산이 오랜 세월 동안 빚은 위대한 산수화를 보게 된다.
구량천(九良川)의 조망
저멀리 내가 올랐던 천반산 최고봉이 있는곳이 보이며 산아래는 장전마을이 옹기종기 농촌풍경을 만들어 내었다
장수군의 5대 명산 중의 하나인 천반산은 정상에 서서 서쪽인 진안 쪽의 아래를 굽어보면
구량천 강의 형태를 띠고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가 보이는 경관은 수려하고 아름다운 풍광에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올 정도며
그리고 서쪽으로 조망하면 진안의 마이산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오는 조용하고 혼자 산행하기엔 최적지였다.
푸른하늘과 산하
산에 오르면 산정에서만 볼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 그래서 멀리 또 땀삐질거리며 발품을 팔아야 한다
산이주는 기운이 내겐 큰 에너지가 되는듯 하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고 시간이 허락 하면 산에 오른다
천반산이 위치한 진안은 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 사이에 위치하며,
동쪽은 지장산(智藏山 773m), 영구산(靈龜山 802m), 천반산(天盤山 647m),
성수산(聖壽山 1,059m)으로 경계를 이루고 서쪽은 주화산(珠華山, 565m)에서 연석산(硯石山 928m),
운장산(雲長山, 1,126m)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과 주화산에서 만덕산(萬德山, 762m),
고덕산(高德山 625m), 팔공산(八公山 1,151m)으로 연결되는 금남호남정맥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
금강(錦江)
금강이 천반산을 안고 흘러가는 모습이며 전북도의 동부산악지역인 진안군은 동쪽에 무주군,
남쪽은 장수군, 임실군, 서쪽은 완주군, 북쪽은 충남 금산군이 인접하고 있으며,
2007년 12월 개통한 익산-장수간 고속도로와 전주-대구를 연결하는 국도 26호선 도로가 지나고 있어
교통의 요충지라고 할수 있다. 금강(錦江)은 우리나라 6대 하천의 하나이며
유역 면적이 9,885㎢, 유로 연장이 401㎞로 남한에서는 낙동강 · 한강 다음으로 큰 강이다.
본류는 장수읍의 수분리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섬진강과 갈라져 진안고원과 덕유산 지역에서 흘러오는
구리향천(九里香川, 34㎞) · 정자천(程子川, 30㎞) 등 여러 지류들이 북쪽으로 흐른다.
전북도의 북동부 경계 지역에 이르러 남대천(南大川, 44㎞) · 봉황천(鳳凰川, 30㎞)과 합류하고
옥천 · 영동 사이의 충청북도 남서부에서 송천(松川, 70㎞) 및
보청천(報靑川, 65㎞)과 합류한 뒤 북서쪽으로 물길을 바꾼다고 한다.
죽도방향 하산 데크계단길
금강(錦江)은 전북 장수군 장수읍의 신무산(神舞山, 897m)에서 발원하여 군산에서 황해로 흘러드는 강이라고 한다.
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금강의 명칭은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즉, 상류에서부터 적등진강(赤登津江) · 차탄강(車灘江) · 화인진강(化仁津江) · 말흘탄강(末訖灘江) ·
형각진강(荊角津江) 등으로 되어 있으며, 공주에 이르러서는 웅진강, 부여에서는 백마강, 하류에서는
고성진강(古城津江)으로 되어 있고 우리 나라 대부분의 하천이 그러하듯이 금강도 유황(流況)이 대단히
불안정하여 단기간의 홍수 유출량이 총 유출량의 약 70%를 차지했다.
금강 하류 지역에는 부여의 규암평야, 논산천 유역의 강경∼논산평야와 같은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는데,
이들 평야는 큰 홍수가 발생할 때 수해를 심하게 입었다.
그런데 1980년에 대전의 신탄진 부근에 대규모 다목적댐인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금강물의 이용량은 늘어나게 되었다.
대청댐은 당초에 홍수 방지와 관개용수의 확보를 위해 건설한 것이라고 한다.
푸른하늘과 산하
저멀리 말 한마리가 질주하듯 마이산이 산길내내 보여주었고 산을 휘감아 도는 금강과 구량천이 산수화를 만들었다
가끔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솔향기가 머리를 깨끗하게 씻어 주는듯 하고 상쾌한 산소는 가슴 깊숙히 폐를 씻어주는듯 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산에 올라 눈이 시리도록 저 멀리까지 산야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산길을 걷다보면 각 지역마다 산에 얽힌 전설이나 이야기도 많은데 천반산은 정여립의 발자취가 있는 산길이다
구량천(九良川)의 풍경
우리나라 초기에는 농경사회이기에 대부분 강 주변으로 농사가 이루어지고 주거지가 생겼는데 그 모습을 보여주듯
강 주변으로 농경지가 있고 농가가 아기자기하게 마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이가는 모습이다
천반산이 속해있는 진안군 동향면(銅鄕面)은 옛날 구 용담군 관내로 되어 있을때에는
지금의 대량리(大良里), 능금리(能金里), 학선리(鶴仙里)를 관할하던 일동면(一東面)과
지금의 자산리(紫山里) 성산리(聖山里) 신송리(新松里)를 관할하던 이동면(二東面)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한일합방 이후 1914년 동향면(銅鄕面)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향면은 산간 벽지이지만 무주 안성의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르는 구량천(九良川)이
중앙을 관통하 고 있어 비교적 넓은 들을 가지고 있으며 소재지 대량리(大良里)들은
옛부터 굴렁이 들이라고 부르고 있기도 하며 용담향교가 맨처음 세워진곳이 바로 동향이며
이조 태종(太宗)이 독곡 성석린에게 내린 친필 어서(御書)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강(錦江)과 마이산(馬耳山)조망처
이렇게 쉬면서 산이주는 편안함과 눈이 호강하는 아름다운 풍광속에서 잠시나마 무거운 삶의 살작히 내려놓는다
그래서 옛날 선조들은 풍경이 좋은곳에서 글을 쓰고 시를 쓰는듯 싶었다
가만히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면 저절로 시 한수가 나오고 노래 한가락에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풍경이다
천반산이 속하는 동향면 상양지(上陽地)마을은 금호남정맥)의 여맥(余脈)을 등지고 구량천(九良川)이
유유히 흐르는 비옥한 소평야(小平野)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며 이조태조(李朝太組)때에 창령 성씨(昌寧成氏)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면서 부터 마을이 형성 되기 시작하였다고 하며
전체 마을 가구의 약80%가 성(成)씨로 구성되어 있는 성씨 마을이라고 한다.
휘감아 도는 금강
죽도를 휘감아 도는 모습이 일품중에 일품이다
금강의 상류는 전북특별자치도의 장수군 · 진안군 · 무주군과 충청북도의 영동군 일부 지역의 물이 모아져 시작된다.
지질은 옥천누층군(沃川累層群)의 변성퇴적암 내지 선캄브리아기의 화강편마암과 이들을 관입한 중생대 화강암 등
복잡한 구조를 이루기 때문에 지형도 매우 복잡하다.
백두대간에서 금호남정맥이 갈라지는 이곳은 높이 1,000m 이상의 험준한 산들이 많아서 이른바 진안고원을 형성하고,
그 동단부에는 덕유산(1,594m) · 백운산(1,279m) 등 험준한 산들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를 깎아 흐르는 수많은 하천들은 심한 감입곡류(嵌入曲流)를 하며, 무주구천동이나
영동의 양산팔경(陽山八景)같이 아름다운 계곡을 이루어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 많다.
용담댐(龍潭댐)의 조망
저 멀리 하류지역 녹색으로 보이는 하천 같은게 용담다목적댐이라고 한다
학국수자원공사에서 관리하며 총 저수 용량 8억 1,500만 톤 규모의 다목적댐으로, 높이 70m, 댐 길이 498m이다.
저수 용량으로는 소양강댐 충주댐 대청댐 안동댐에 이은 규모 5위이며,
1990년에 착공하여 1997년에 길이 21.9km의 도수터널을 완공한 후 2001년 10월에 완공되었다.
댐의 발전 용량은 26,200kW. 11,050kW 2기, 1,800kW 1기, 1,150kW 2기 총 5기의 수력발전기가 있고
약 1.3억 kWh의 전력을 생산하며 발전한 물은 금강 유지용수, 농업/공업/생활용수로 사용된다.
전주, 익산, 군산, 김제와 군산, 장항 산업기지 등 서해안 지역과 전북 쪽 용지에
농업용수, 공업용수, 생활용수를 공급하며, 상습 침수 지역이었던 진안, 무주 등의 금강 중류 지역 피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댐 건설로 인해 생긴 용담호는 경관이 좋아 주변의 마이산, 운장산, 구봉산 등과 연계된 진안군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다만, 댐 건설로 인해 진안군 진안읍과 북부 5개 면 지역(주천면, 용담면, 상전면, 안천면, 성전면)
약 31.4㎢ 면적의 지역이 수몰되었으며, 12,000여 명의 이주민들이 발생했다.
금강 상류 쪽에 위치한 댐이기 때문에, 장마철이나 비가 많이 올 때에 방류할 때는 금강 하류에 있는
댐인 대청댐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한다.
천반산 산정
천반산 능선을 따라서 죽도방향 장전마을로 하산길에 뒤돌아보니 천반산 산정이 구량천위에 우뚝하다
산 위가 소반같이 납작하다고 하여 이름 붙은 천반산은 남쪽 장수에서 흘러내리는 장수천과
동쪽 덕유산에서 시작된 구량천의 파(巴)자 형으로 굽이쳐 흐르다 한머리 금강으로 거듭나는 것이
한눈에 바라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땅에는 천반, 지반, 인반의 명당자리가 있는데 이곳은 천반의 명당이 있다 하여
천반산이라 지어졌다고 전하며 천반산은 사방이 깍아 지르는 듯한 험준한 지세위에
정상은 약 10,000여 평의 평지가 소반처럼 자리한 천혜의 요새지라고 전하고 있다.
죽도 병풍바위
금강과 구량천이 합수되어 용담댐(龍潭댐)을 만들고 용담댐내 물은 녹조가 심한듯 보였다
병풍바위는 물위에 뜨있는 조각품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암반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이 우리의 기상처럼 강인하다
용담댐과 천반산이 위치한 동향면 창촌(倉村)마을은 덕유산(德裕山) 줄기의 문필봉(文筆峯)밑에 잡고 있는 마을로서
마을앞에는 구량천(九良川)이 흐르고 있는 기름진 들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며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430여년전에 진주 소씨(晋州蘇氏)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고 하며 또한 이 마을은 구 용담군 이동면 소재지로서 창고가 많이 있기 때문에
마을 명칭을 창촌(倉村)이라 칭하고 오늘에 이르고있는 것이라고 한다.
죽도 병풍바위
죽도와 병풍바위가 마치 용담댐의 수문처럼 서로 맞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부터는 구량천을 따라서
장전마을을 지나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며 머리위에는 가을을 부러는 햇살이 뜨겁기만 하였다
구량천의 흐러는 물소리가 얼마전 전국적으로 내린비로 인하여 수량도 많이 보이며
한여름 같다면 훌러덩 벗고 수영 충동도 일어났지만 수영금지 취사금지 야영금지 팻말이 보였다
동향면 장전(長田)마을
천반산 산행은 대부분 장전마을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많고 또한 장전마을 근처에 주차를 하고서
도로를 따라 1km남짓 걸어 구량천을 건너서 천반산휴양림에서도 들머리로 하는 선등자들도 있다고 한다
동향면 장전(長田)마을은 대덕산과 천반산 죽도를 끼고 있는 산의 중부능선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며
병자년(丙子年)에 천반산과 대덕산에 양군이 진을치고 싸웠던곳으로서 장군바위와 말굽바위가있으며
처음에는 장진(將陳)이라고 칭하다가 장전(長田)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산행종료
천반산 한바뀌 횡하니 돌고 원점으로 돌아오는길에 아스팔트 도로에는 자전거 라이딩 하는 사람들을 볼수가 있었는데
차량운행이 적고 구량천을 따라 라이딩도최적지 인듯 싶어 추천할만한 코스 같았다
천반산 산행은 조망처에서 나홀로 앉아서 풍경을 보며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흘러가는 구름과 솔향기
그리고 구량천과 금강이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마음수양을 하고서 하산길로 접어 들었다
오늘 진안 천반산(鎭安 天盤山) 산행은 정여립(鄭汝立)의 발자취를 따라 천혜의 요새지(要塞地)
천반낙도(天盤落桃) 천반산 산길을 나홀로 걸어보면서 산행을 마무리 한다.
※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
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
태백산맥은없다 조석필 사람과산.
한국1000산 신명훈 깊은솔
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 오혜령 박옥남 복랩
진안군,장수군 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