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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경운산(金海 慶雲山). 경운도사(慶雲道士)의 이름에서 유래한 도심속의 산(山) 소(牛)가 엎드려 있는 산세를 따라 걷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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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경운산(金海 慶雲山). 경운도사(慶雲道士)의 이름에서 유래한 도심속의 산(山) 소(牛)가 엎드려 있는 산세를 따라 걷다

바다늑대FORCE 2024. 8. 15. 16:29

김해  경운산(金海 慶雲山). 

경운도사(慶雲道士)의 이름에서 유래한 도심속의 산(山) 소 (牛) 가 엎드려 있는 산세를 따라 걷다

 

▲ 김해  경운산(金海 慶雲山)

   높이 : 378m

   위치 : 경상남도 김해시 김해시의 구산동과 주촌면 원지리에 걸쳐 있는 산

 

 김해  경운산(金海 慶雲山)나의 산행일 

   2024년8월15일 목요일 날씨 맑음

 

 김해  경운산(金海 慶雲山)나의 산행코스 :

 수인사→ 샘터 →주촌고개 삼거리 → 전망데크 →체육시설 →정상 →주촌고개 삼거리

→바위조망처 →경운사안내표지목 →거북이샘터 →경운사 →수인사

6.20km 2시간53분 소요(트랭글 앱 기준)

 

▲ 김해  경운산(金海 慶雲山)개요 :

경운산은 경상남도 김해시의 구산동과 주촌면 원지리 사이에 있는 산이고 

산의 해발고도는 378m 이다

북쪽의 나전 고개와 이어지며  서사면에서 발원한 물이 원지천을 이루며 

향토지에 의하면 운점산이라고도 하였고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김해)에

운점산은 부 서쪽 5리 지점에 있다.라고 하였으며 경운산에 있는 운점사에 대한 기록도 있다.

輿地圖書(여지도서,김해)에는 운참산으로 기재되 있다

그 이후 嶺南邑誌 (영남읍지,김해), 朝鮮寰輿勝覽 (조선환여승람,김해) 등에

운참산, 혹은 운점산으로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경운산(雲山) 지명은 가락국 때 유민공주가 따랐다고 전하는

경운도사 (慶雲道士) 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 김해  경운산(金海 慶雲山)산행지도

▲ 김해  경운산(金海 慶雲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4년 08월15일 목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오늘은 제79주년 광복절(光復節)이며 아침일찍 태극기를 베란다에 게양을 하고서 어제밤 준비 해 놓은

배낭을 메고서 김해 산행지로 길을 나선다

경남 서부권역의 산은 대부분 올랐고 동부권 김해지역의 높은산이나 낮은산 할것없이

정상표지석이 있는 산만 골라서 오늘도 산을 향해 길을 나섰다

수인사(修仁寺)들머리

수인사 들머리 주소는 경남 김해시 수인사길 15(내동272) 네비게이션에 검색하면 되고

주차는 도로변에 주차를 하면 된다

수인사 편액을 보면 와우산 수인사(臥牛山 修仁寺)라고 되어 있는데

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승람)등에 기록을 보면 운참사 옛터라고 한다

운참사의 터에는 경운재가 있었는데 1956년에 건립된 도량으로 1963년 범어사에 등록 되었다고 한다

수인사는 2019년2월에 대웅전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전체가 전소 하였고

현재의 대적광전은 새로 지었다고 하며 비구니 사찰이다

경운산 초입구간

수인사 편액엔 와우산 수인사(臥牛山 修仁寺)라고 되어 있는데 경운산은 운첨산 운점산 와우산등

다양한 이름을 가졌다고 하며 와우산이라 불리는 것은 산의 형상이 소가 누워있는 모습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하며  경운산 아래 마을 이름이  소바위 마을있고 마을 아래 구산동 고인돌을

소바위라고 하니 소(牛)에 관한 다양한 지명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경운산 야생화(맥문동)

경운산 초입구간을 지나면 여기저기 많이  볼수 있는게 맥문동이며 맥문동이 꽃을 피워

온통 보라색으로 물드린듯 보였다

경운산 지명에는 가락국 마지막 왕 구형왕 누이 유민공주가 왕명으로 황세장군 과

강제 혼인을 하자 황세장군 과 서로 사랑하는 연인 여의낭자가 파혼의 충격에 죽고

뒤따라 황세장군도 슬픔에 못이겨 죽게되자 유민공주는 경운도사를 따라

임호산 흥부암으로 출가를 했다는 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해오며

그때 당시 유명한 고승 경운도사의 이름에서 산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소가 엎드려 누워 있는 형세 라하여 와우산(臥牛山)으로도 불렀다고 전한다

경운산 편백나무 조림지역

요즘 편백나무가 대세인듯 어딜가나 편백나무숲이 많이 보이며

편벽나무숲에는 지자체마다 휴식공간을 많이 만들어 놓은걸 볼수가 있는데

경운산에는 산길 군데군데 쉬어가면서 산행할수 있도록 벤치의자를 많이 설치 해 놓았다

경운산 산길을 걸을때 폭염속 땀내음을 맡았는지 모기랑 날파리가 계속 따라다녀 귀잖게 하였는데

벤치의자에 쉬면서 기피제를 온몸에 뿌리고 걸었다

경운산 샘터

첫번째 만나는 샘터인데 자세히 보면 흘리내리는 물이 아니라 땅속에서 솟아나는 형태의 샘물이다

경운산에 관한  경운도사의 행적은  김해의 봉황동에 있는 봉황대의 전설에서 나오며

봉황대에는 황세와 출여의의 못 이룬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가락국 제 9대 겸지왕 때 남대정동에 사는 출정승과 북대사동(대성동)에 사는 황정승은

자식이 태어나면 혼인을 시키기로 하였고 황정승은 아들 황세를 낳고 출정승은 딸 여의를 낳았다.

러나 황정승의 집안이 어려워 지자 출정승은 마음이 변하여서 자신은 아들을 낳았다고 속였다. 

여의는 남자 옷을 입고 서당에 다녔으나 티가 났다. 황세는 이를 수상히 여기고 여의에게

황세바위에 올라가 오줌 멀리 누기 대결을 하자고 하였다. 

여의는 바위 뒤로 돌아다 마침 그곳에 있던 삼대로 오줌을 누어 정체가 탄로나는 것을 피했다고 한다.

경운산 야생화(닭의 장풀)

여름 어느 날 여의는 거북내에서 목욕을 하다 상류쪽에서 황세와 마주치게 되었다.

더 이상 여의는 숨길 수 없어 편지를 물에 거슬러 띄워 황세에게 이 사실을 고하였고

이후 둘은 연인이 되었다고 하며 출정승도 결국 결혼을 허락하였다.

얼마 후 신라군이 가락군을 침범해 오자 겸지왕은 군사를 모집했는데, 황세는 자진해서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왕은 황세에게 '하늘장수'라는 칭호를 주었고 자신의 딸인 유민공주와 결혼을 시켜 부마로 삼고자 하였다.

이미 약혼한 사이였던 황세는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왕은 출정승을 불러 파혼하라고 요구하였고, 

결국 황세는 유민 공주와 결혼하게 되었다. 여의의 부모는 딸에게 다른 곳으로 시집가기를 권유하였으나

여의가 거부하였다고 하며 하지만 어머니마저 숨을 거두자 여의는 더욱 슬퍼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황세는 이 소식을 듣고 여의를 잊지 못하여 슬퍼하고 괴로워하다가 마찬가지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사람들은 둘 연인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여의와 황세가 놀던 개라암에 작은 바위를 얹었는데

서남쪽의 것은 황세바위,동남쪽의 것은 여의바위라 불렀다고 전한다

한편 홀로 남은 유민공주는 황세와 여의의 영혼을 기리며 평생을 살겠다고 하여

경운도사 (慶雲道士) 와 함께 임호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위의 이유로 임호산을 유민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1975년 여의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여의각을 설치하였다. 

봉황동황세바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봉황대는 본래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7호 였는데, 사적 제2호로 통합되었다.

금관가야권 최대의 생활 유적지. 가야시대 주거지가 발굴됐고 2005년 망루, 가옥 등을 복원해

가야시대 건축물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졌다고 한다

주촌고개 삼거리

찜통같이 무더위 속이라도 고도를 높이니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씻어 주었다

경운산은 해발고도 378m의 나즈막한 산이라 산정 가까이에도 하늘을 찌를듯한

소나무와 참나무등이 숲을 이루고 있어 따가운 햇살을 피해 걸을수 있었다

광복절 휴일이라 그런지 시민들이 운동삼아 많이 오르고 내려가는 모습을 볼수가 있었다

경운산은 야산하기도 편할듯 보였고 군데군데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아 산길 주변을

파 헤친 흔적도 많이 보였다

데크 전망대 바라본 조망

저멀리 보이는 산봉우리 능선들은 부산지역이며 발아래는 내동과 외동이라 하는데

내외동이라 부런다고 한다

내외동은 임호산, 경운산, 해반천으로 둘러싸인 배산임수의 쾌적한 신도시개발지역으로

8만여 시민이 다함께 살아가는 도시이고, 17개 초·중·고등학교가 있고 31개의 아파트 단지,

대규모 상가시설들이 밀집해 있다고 하며 연 지공원 등

27개의 근린 및 어린이공원이 있어 도심지 녹지공간이 풍부할 뿐 아니라

스포츠센터, 김해문화의전당 등 문화시설 등이 많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경운산 산길

경운산 산책길이 마치 예전 어르신들이 지게에 나무 한짐해서 걸어 갔을듯한 길은 고즈넉 하게 보인다

경운산 자락에 있는 내외동에는 연지공원이 있는데  위치는 내동에 자리한 도심 공원미며

대성동고분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과 인접해 있어 김해의 역사 유적을 살펴보다 잠시 들러 휴식을 취하기 좋다거 하며

호수 곳곳에 시원한 분수가 있어 눈이 즐겁고, 호수 위를 지나는 다리를 걸으며

호수에 비친 하늘을 보는 여유도 즐길 수 있다. 호수에는 연꽃, 어리연 등이 심겨져 있으며,

꽃 상자를 띄워 계절에 따라 공원 이용객에게 다양한 경관을 느끼게 하고 있으며

다양한 계층이 이용하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경원산 야생화(금불초)

겨울을 제외하고 산길을 걷다보면 여러 야생화를 만나는데 유년기 시절엔 그냥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순(耳順)을 코앞에 둔 지금 야생화 하나 하나가 신비롭고 예쁘기만 하다

이순은 사람의 나이 예순 살을 이르는 말인데 공자(孔子) 말을 기록한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60세가 되어서 천지만물(天地萬物)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있게 되었다는 데서  말이라고 한다.

경원산 야생화(개맥문동)

맥문동과 비교하여 가는줄기가 발달하고 전초가 작으며 잎이 좁고 꽃은 연한 분홍으로

드문드문 달리는 점으로 구분되며 우리나라 전역에 나며, 일본, 중국 등에 분포한다고 한다

이렇게 야생화 하나하나 이름을 찾아가면서 산행길이 더 재미가 있다

경운산 여름 산행은 이렇게 잡초 하나에도 꽃을 피우는 야생화를 보면서 운동하기 좋은

산책코스인 경운산 소가 누워있는 형상의 또 다른이름 와우산을 걸어본다

경운산 야생화(도둑놈의갈고리)

열매 겉에 갈고리처럼 생긴 잔 가시가 있어 사람 옷에 잘 달라붙기 때문에 도둑놈의갈고리 라고 부르며

키는 1m에 이르고, 줄기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아래쪽은 딱딱하며

잎은 잔 잎 3장으로 된 겹잎으로 어긋나며, 잔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잎 끝은 뾰족하다.

연분홍색 꽃이 줄기 끝이나 잎 겨드랑이에 총상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협과로 가운데에 마디가 있어

2쪽으로 나뉘고 갈고리 모양의 털이 나 있으며 뿌리는 단단하다.

경운산 산길

뱀이 기어간 모양처럼 구불구불한 사선(蛇線)의 산길이 초록의 숲 사이로 펼쳐졌다

숲길을 걸어면 숲이 주는 향기와 숲속에서 들여오는 소리와 초록의 향연이 인간에게 새로은 기운을 심어준다

여름하늘은 예전보다 더 뜨거워 졌고 재빛하늘의 미세먼지는 미래의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는듯 하다

우리나라는 산은 국토의 70%를 차지하는데 산에서의 의미 그리고 백두대간의 복원이 진정한 자연사랑일 것이다

소나무 숲속 체육시설

경운산 산정으로 가는 산길에는 소나무 숲이 빼곡한 곳에 시민들이 운동을 할수 있도록 체육시설이 설치 되어 있고

쉼터까지 만들어 놓아 경운산은 김해시민의 최적의 산책 코스와 같아 보였다

우리 유년기 시절의 놀이터는 동네뒷산이었는데 여름이면 시원한 소나무 아래서 더위를 피하다 보면

송충이가 내려와 머리에 달라 붙었고 소를 먹이다가 소 꼬삐를 소나무에 묶어두고 소에 달라붙은 가운달이(진드기)를

떼어내어서 개미 먹이를 주기도 하고 냇가에서  자동차랑 비슷한 돌맹이를 주워와서 자동차 놀이도 하였다

구지뽕나무에 붙은 풍뎅이를 잡아다가 날개짓하게하여 선풍기 처럼 얼굴에 바람을 씌우고 하였다

정상0.58km 안내표지목

능선길이 이어지는 정상가는길 0.58km 안내 표지목이며 조금만 걸어면 산정이다

김해시 지역에 있는 산 무척산 백두산 신어산 낙남정맥의 끝지점 분성산 그리고 오늘 경운산도 걷게 되었다

나는 산길을 걷는걸 좋아하는데 그 산의 높고 낮음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집에서 거리도 멀고 가깝고를 따지지도 않고

오직 정상표지석이 있는 산만 골라서 정상표지석 1000개랑 인증하는게 현재의 산행 목표이기도 하다

경운산 산길

산길속을 걷는다는 것은 초록의 색 그속으로 빠져있는것과 같은 느낌이다 초록색은 우리의 눈을 건강하게 만들고

풀내음은 우리의 폐속을 정화를 해준다 우리 유년기때에는 이른길에서 뛰어 놀고 나무가지를 잘라서 칼싸움 놀이도 하고

총싸움 놀이도 하였다 그리고 산 어디 은밀한곳에 본부라 하여 대충 나무가지로 엮어서 비트를 만들었던 기억이

산길을 걸을때 마다 유년기 시절의 추억을 소환 해 주었다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운동외에도 마음건강도 지켜주는듯 하여 시간이 있으면 산에 오른다

김해  경운산(金海 慶雲山) 378m

경운산 표지석앞에서 경운산에 왔다갔다는 흔적하나를 사진으로 남겨본다

경운산이 품고 있는 김해시는 도시개발의 커다란 성채를 이루고 있으며

구지봉과 봉황대 사이로 국립김해박물관과 신석기조개패총, 대성동박물관이 가락국의 찬란한 역사를 말하고

그 사이로 김해경전철이 과거와 미래를 서로 교차하며 지나가고 있듯 보였다 
경운산 오르는 길은 마치 오솔길을 걷는것 처럼  편안한 산길 이였고  가는 산길 곳곳엔 무덤이 있었지만

사람과 친숙한 산 마을 뒷산이라는걸 느낄수 있는 길이며 내가 거주하는 진주시 선학산에는 지금 묘를 이전 하기위한

묘지 주인을 찾는 공고문을 보았다

김해  경운산(金海 慶雲山) 378m

표지석에는 경운산(慶雲山)이라 되어 있고 378M으로 표기 해놓았는데 미터는 대문자가 아닌 378m로 표기해야 맞다

측면에는 자연보호(自然保護) 그리고 귀상일산악회(亀上日山岳會)라고 새겨져 있는데 구상일인지는 모르겠다

경운산에서 보면 멀리보이는 산이 신어산이며 바로 앞에는 낙남정맥 끝자락 분성산이 보이는 산정이다

한여름이라 산정 표지석 주변은 칡능쿨 그리고 잡초가 무성하였다

아마도 추석명절 벌초날도 다가오는듯 모두가 잡초 숲이 되어 있었다

경운산 이름은 다양한데 향토지에 의하면 운점산이라고도 하였고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김해)에

운점산은 부 서쪽 5리 지점에 있다.라고 하였으며 경운산에 있는 운점사에 대한 기록도 있다.

輿地圖書(여지도서,김해)에는 운참산으로  嶺南邑誌 (영남읍지,김해), 朝鮮寰輿勝覽 (조선환여승람,김해) 등에

운참산, 혹은 운점산으로 기재되어 있고 수인사에는 와우산 수인사라는 편액이 걸여 있다 

주촌고개 방향 하산길

주촌(酒村)마을 유래를 보면 지명의 유래에 대해선 논란이 많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주지봉(住持峯) 또는 주주봉(酒主峯)아래의 마을, 혹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과거에 번성한 포구였던 선지리의 배가 정박하는 곳이었던

주촌지(酒村池)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다.

풍수지리설도 한 몫 하는데 옥술잔 형의 명당이 있다는 기록이여러 풍수지리관련 문헌에 나오며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최근(2003년) "김해향토문화연구소"와 "옥주문화연구회"에서 발굴한

1800년 초기의옛 "김해부 지도"인데 이 지도에는 주촌이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이란 뜻의 "住村"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지도를 볼 때 주촌이란 지명은 일반적인 의미의 "술(酒)"과는 차원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수백년 전까지 번성했던 선지포구는 당연히 요즘의 유흥가 즉, 주막거리(酒村)가 형성이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주촌지(酒村池)로 불렀을 것이다.(주촌지의 현 위치는 선지들판 한가운데에서

동남쪽에서 200~300m 내려간 지점인데 현재도 노인분들은 이 지점을 '선창거리'라고 부른다)

그렇게 볼 때"주촌지(酒村池)" 정면에서 바라보이는 산이기 때문에 주주봉(酒主峰)이 된다.

내외동의 조망

내외동은 신시가지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조성과 유통시설이 집중되어 있고

7만5천여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니 대도시 같은 느낌이다.
잘 정비된 도로와 병원, 학교, 상가 등이 밀집되어 있고  많은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도심속 녹지를 가까이 할 수 있으며 주요도로는 자건거 도로가 설치되어 있고

그리 높지 않은 경운산, 임호산, 함박산은 다듬어진 산책로가 있어 시민들의 산책지로서 최적인듯 하다
내외동에는 연지공원, 김해문화원, 시민스포츠센터, 김해보건복지센터 등 각종 주민복지시설이 있다고 하며

또한 김해문화의전당이 자리하고 있어 김해시의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고 있으며

남해고속도로 서김해 IC가 위치하여 교통이용에도 편리하다고 하는 내외동 홍보글 인용글을 인용했다.

뭉개구름

풍수지리에 의하면 산도 제각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데

무덤이 많은 산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졌다고 하며 그래서 임호산이 악산이라면

경운산은 구름 위를 걷 듯 편안한 산이라 할 수 있어 그래서 인지 여유롭게 오르내리는 맛이 쏠쏠하였다.
큰 바위를 감고 마삭줄은 기어오르고 발치로 채이듯 보랏빛 맥문동꽃이 노루꼬리처럼 살랑이는 산길이며

산길 발밑께를 바라보다 고개를 들면  온산이 적요(寂寥)하며 능선길이 이렇게 적요(寂寥)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머리 위로 찜통같은 햇빛과 귓청이 나갈듯한 매미소리와 함게 걷는다.

경운산 매미

찜통같은 연일 지속되는 폭염경보속에 매미들은 여름을 더 즐겁고 노래하고 있는듯 하다

그소리는 경운산 전체를 울리는듯 귓청이 따가울 정도로 요란하였다

경운산 정상부근은  바람이 시원하여 의복이 다 젖을 만큼 흘린 땀을 식혀 주는듯 하였고

경운산 산정의 바람이라 청량감이 더한듯 하고 경운산은 예전에는 운참산이라 불렸다고 하며

조선 초기까지 수인사 자리에 운참사가 있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며

경운산 정상에서 보면 분성산 능선이 길게 활개를 펴고 있고 그 뒤로 신어산이 뒤를 받쳐주는 형국이 조망된다

삼계동과 구산동 전경이 펼쳐지며 국립김해천문대와 김해공설운동장 가야대학교도 한 눈에 들어온다.

내외동의 조망

내동마을 유래는 우암(牛岩)은 쇠바위(金岩)가 소바위로 바뀐 곳으로 지금의 8통 지역이며 수인사(修仁寺)는

운첨사의 옛터에 경운재(慶雲齋)가 있다가 1956년 수인사를 세웠는데 5층석탑이 있고

경원교(慶原橋) 대성동과 연결되는 다리로 1965년 준공했다고 한며  이 다리에서 대성동 3거리까지의 길을

구지로(龜旨路)라고 불린다. 내동지석묘(內洞支石墓)는 경운산록에 있는 유적으로 1976년 발굴되었고

기원전 3~4세기경 주거지로 세형동검, 무문토기 조각, 홍구조각, 석제방수차, 흥구대 등이 출토되었으며

지금은 김해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하며 신지(新池)는 신못이라 하며 옛날 늪이었는데

확장하여 저수지로 쓰다 지금은 연지공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평지(坪地)마을은 평전마을이라고 하며, 옛날 평전리로 지금의 연지공원 위에 있었다고 한다

경운사 방향 하산

경운사 방향으로 하산하여 수인사로 원점산행 게획인데 경운사 방향의 산길은

수목이 작아서 뜨거운 햇살에 노출되어 걸어야 했다

외동(外洞)방향인데 외동마을 유래를 보면 옛날 거인리로 마을 앞 정자나무인 은행은

경상남도에서 나무대신 보호수로 지정되어있음(현소재지 외동 696-7번지 은하공원 내(동성아파트 앞)있는데

수령 500년, 높이 18m, 둘레 5.2m라고 한다 아마도 은행잎이 물드린날 오면 좋겠다

굴바위는 경운산에 있는 흔들바위이며 거북산은 외동 서쪽의 거북모양으로 생긴 산이라고 하며

대밑골은 거북산과 함박산 사이의 골짜기를 가르키며 외동고개는 명선지(名仙池)고개라 하고

주촌면과 경계가딘다고 한다 지목 길은 흥동과 경계이며 함박산에서 내려오는 골짜기를 가르키며

모유정(慕裕亭)은 중종때 전라우수사를 지낸 유용(柳墉)이 기북정을 지었는데 순조 5년(1805) 거인리로 옮기고

지금은 미식재(未息齎)의 현판이 걸려 있다 봉곡(鳳谷)은 나비가 춤추는 모양의 지형 때문에 무접(舞蝶)이라고 부른다.

고종초 정현석부사가 중국 남경의 금릉의 경승을 본받아 林虎山을 鳳鳴山이라고 하고

이 마을을 봉곡리라고 고쳤다가 1914년 외동리에 병합되었다고 전한다

거북이샘터

수인사에서 들머리로 잡아 경운산 산행길에 세번째 만나는 거북이샘터이다 바로 위에도 거북이형 샘터가 있는데

음용불가라는 문구가 크게 붙어 있지만 그래도  물맛을 보고싶어 박가지에 가득 물받아서 먹어 보았지만

차갑지도 않았고 그냥 일반적인 물맛 같았다

들머리로 삼은 수인사  편액에는 우산수인사(臥牛山修仁寺)가 있는데 와우산 이란 경운산을 두고 이르는 말이며

소가 엎드려 누워 있는 형상처럼 산세가 부드럽고 편안해서 붙여진 산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산길을 걸어보면 제법 된비알 구간이 있지만 그래도 걷기가 편안한 산세임은 분명한듯 하다

먼지털기

신발에는 제법 흙먼지가 많이 뭍어 있는데 소나기 뺴고는 여름철 비오는날이 조금 적었다

경운산이 품고 있는 김해시의 지세를 보면 김해시의 북반부는 낙동강의 유수에 의해 침식되어 단절되었다가

다시 돌출된 백두대간 지맥이 지나가 평지가 적고, 무척산(無隻山, 700m) · 석룡산(石龍山, 495m) ·

금동산(琴洞山, 463m) · 신어산(神魚山, 630m) 등이 솟아올랐으나 차츰 고도가 낮아져

하구 쪽의 평야부와 맞닿아 있으며  대동수문은 밀물 때 바닷물이 흘러드는 것을 막는 구실을 하며,

관개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어 김해평야는 낙동강의 상 · 중류에서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되어

이룩한 우리나라 최대의 삼각주상의 충적평야이라고 한다

산행종료

김해의 작은산 하나를 산행 하였고 산이 가진 이름이 많다는건 그 만큼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기가 많다는 의미하는듯 하다

경운산 경은 경사경(慶) 구름운(雲)인데 구름위를 걷는 경사스러운 산이라 생각해본다

여기서 수인사 편액 처럼 와우산 와는  엎드릴 와(臥) 우는 소우(牛)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의 산이라는 이름인데

경운산이나 와우산이나 두개의 이름이 모두 편안함을 주는 산이라고 생각한다

79주년 광복절날 정치판은 시끄러워도 나는 세속의 길이 아닌 구름위를 걷고 누워있는 소처럼

편안한 휴식같은 산행이었다.

 

※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

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

태백산맥은없다 조석필 사람과산.

한국1000산 신명훈 깊은솔

국제신문 근교산 그너머

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 오혜령 박옥남 복랩

김해시 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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