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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계룡산(公州 鷄龍山). 신라의 오악(五嶽)중 서악(西嶽)으로 받들었던 계룡산 길지(吉地)를 걸어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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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계룡산(公州 鷄龍山). 신라의 오악(五嶽)중 서악(西嶽)으로 받들었던 계룡산 길지(吉地)를 걸어보다

바다늑대FORCE 2024. 7. 15. 07:55

 

공주 계룡산(公州 鷄龍山). 

신라의 오악(五嶽)중 서악(西嶽)으로 받들었던 계룡산 길지(吉地)를 걸어보다

 

공주 계룡산(公州 鷄龍山)

천황봉(天皇峯) 846.5m  계룡산 주봉 통제구역임

연천봉(連天峯) 739m

관음봉(觀音峯)766m

삼불봉(三佛峯) 775m

 

위치 :

충청남도 공주시·계룡시·논산시와 대전광역시에 걸쳐 있는 산

 

▲ 공주 계룡산(公州 鷄龍山)나의 산행일 :

   2024년07월14일 일요일 날씨 맑음

 

▲ 공주 계룡산(公州 鷄龍山)나의 산행코스 :

  신원사 → 고왕암 →연천봉고개 연천봉 →관음봉 →삼불봉

 금잔듸고개삼거리표지목 남매탑 동학사 → 동학사 주차장

10.1km 6시간15분소요(트랭글 앱기준)

 

▲ 공주 계룡산(公州 鷄龍山)개요 :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갈라져 나온 금남정맥(錦南正脈)이 서남쪽으로 뻗어가다가

금강의 침식으로 허리가 잘리면서 분리되어 형성된 잔구이다.

지도상으로 대전 · 공주 · 논산을 연결하여 세모꼴을 그린다면 그 중심부에 자리 잡은 것이 계룡산이다.

이 산은 대전에서 서남쪽으로 25㎞ 지점에 있는 동학사 지구와 공주에서 동남쪽으로 19.6㎞ 지점에 있는

갑사 지구로 구분된다. 동경 12.7°7′∼12.7°19′, 북위 36°16′∼36°28′에 있으며

총 면적은 65.34㎢인데, 공주시에 42.45㎢, 계룡시에 11.9㎢, 논산시에 2.12㎢, 대전광역시에 8.86㎢로 걸쳐 있다.

충남 제일의 명산 계룡산국립공원은 1968년 우리나라 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65.335㎢이다.

계룡산 정상인 천황봉(847m)을 중심으로 16개에 달하는 봉우리 사이에 약 10개의 계곡이 형성되어 있다.

산의 능선이 닭의 벼슬을 쓴 용의 모습과 닮아 계룡(鷄龍)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계룡산은 산세가 아늑하면서도 변화무쌍하고 서울, 대전 등 대도시에서도 일일 탐방이 가능해

연중 탐방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풍수지리학적으로도 뛰어나 조선의 수도로도 거론되었으며

나라의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산이기도 하다.

 

▲ 공주 계룡산(公州 鷄龍山)산행지도

 

 

▲ 공주 계룡산(公州 鷄龍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4년 07월14일 일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새벽부터 장대비가 오더니 아침에는 그다지 비는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산행날 비오면 참 그렇긴 하다

오늘은 솔산악회 따라 공주에 있는 계룡산으로 간다

계룡산은 혼산계획을 몇번 세웠지만 실행을 하지 못하였는데

금쪽같이 산악회 따라 가게 되었음이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우의 방수커버등

우중산행을 준비해서 우산을 쓰고 출발지 관광버스가 대기하는 장소로 향했다

계룡산 들머리

산행지 공주에는 여름폭염같은 햇살이 내리고 있었고 다행히 우중 산행은 피했지만

관광버스에서 내려 산행지 들머리로 가는길에 뜨겁게 내리는 태양이 반갑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였다

스틱형 썬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걷는 길에는 습도까지 올라 땀많은 나에게 땀은 시작과 동시에 흘러 내렸다

신원사로 가는길에는 매미소리와 새소리가 여름 깊숙히 익어가는 소리를 들여주고

산벗님들의 발걸음도 활기가 넘쳐 보이는 모습이다

鷄龍山新元寺(계룡산신원사) 일주문

계룡산 5코스중 하나인 신원사 계룡산 들머리이며 신원사일주문(新元寺  一柱門)의 편액에는

鷄龍山新元寺(계룡산신원사) 라고 걸여 있다 

일주문 양측 기둥에 주련(柱聯)이 있고 그 아래에는 음을 달아 놓았다.

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천겁을 지나도 오랜 것이 아니고

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만년을 이르러도 언제나 지금이다.

라는 뜻이라고 생각해본다

鷄龍山新元寺(계룡산신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651년(의자왕 11)에 열반종(涅槃宗)의 개산조 보덕(普德)이 창건하였다.

신라 말에 도선(道詵)이 이곳을 지나다가 법당만 남아 있던 절을 중창하였고

1298년(충렬왕 24)에는 무기(無寄)가 중건하였고 조선 후기에 무학(無學)이 중창하면서 영원전(靈源殿)을 지었다

1866년(고종 3)에 관찰사 심상훈(沈相薰)이 중수하면서 신원사라 하였으며

1876년에 보연(普延)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계룡산 동서남북 4대 사찰 중 남사(南寺)에 속하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 향각(香閣) · 영원전 · 대방(大方) ·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신원사 대웅전은 1978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중건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八作)지붕이며

내부에는 아미타불이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으며 또 향각의 불상은 명성황후가 봉안한 것이라고 전한다.

연천봉 3.5km 안내표지목

우리는 먼저 연천봉에서 관음봉을 그쳐서 동학사로 하산할 계획으로 산길을 걸었다

들머리는 녹음이 우거져 있고 계곡엔 물흐르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무더위속을 걷는 산길에서 우렁찬 물소리는 더위를 식혀주는 하나의 청량음료처럼 좋았다

계룡산은 금남정맥(錦南正脈)에 속하는데 금남정맥의 산줄기는 금강의 남서쪽을 지나므로 금남정맥이라 한 것이다.

강 상류유역과 만경강유역을 구분짓는 산줄기로 동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금강 상류를 이루며

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만경강을 이루고 일부는 금강 하류로 흘러든다.

연결되는 주요 산은 왕사봉·배티(峙) ·대둔산·황령(黃嶺)·개태산(開泰山 혹은 天護峰, 360m) ·

계룡산· 개티(板峙)·망월산(望月山)·부소산 등으로 그 길이는 약 118㎞이다.

금남정맥 산줄기가 시작된 주화산에서 남쪽으로 연결되는 호남정맥과 함께 전북특별자치도의

동쪽 산간지방과 서쪽 해안의 호남평야를 경계짓고 있다.

계룡산 초입구간

신원사로 들머리로 하여 계룡산 초입구간인데 깊어가는 여름이라 녹음이 짙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산은 늘 그 자리에서 계절마다 다른색으로 산꾼을 맞이 해 주는듯 하지만 사람은 오늘도 변했고 내일도 변하는 모습

이제는 나도 문득 귀거래사(歸去來辭) 시한수 떠 오르는데

도연명이 관직을 버리고 떠나면서 읊은 시로, 노장 사상의 영향을 받아 전원에서

자연과 함께 지내는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도연명은 중국 강주 출생으로, 뒤늦게 관리가 되어 십여 년을 봉직했으나

끝내 "어찌 오두미 때문에 허리를 굽히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관직을 그만두었다.

후 남촌에 은둔하면서 문단과 교류했다고 하는데..나는 나이로 인한 은퇴시간이 다가온다

고왕암0.2km안내표지목

계룡산에도 여기저기에 암자나 사찰들이 많이 산재해 있어 정말 길지(吉地)같은 산이다

한원(瑗)에 백제 동쪽에 계람산(鷄籃山)이 있다 하는 기록이 있으며

한원(瑗)은 옹주(雍州) 삼원현(三原縣) 출신으로 606년에 한중량(韓仲良)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린 시절에 절개와 지조가 있었고 박학하였으며 위정의 재능이 있었다.

정관 연간에 관직이 병부시랑(兵部侍郎)까지 이르렀고 부친의 작위인 영천현공(潁川縣公)을 습봉하였다.

고종이 즉위한 이후인 652년에 황문시랑(黃門侍郎)으로 임명되었다.

653년에 중서시랑(中書侍郎) 내제(來濟)와 함께 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이 되었고

감수국사(監修國史)를 맡았으며, 654년에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가 더해졌다고 한다.

삼국사기 따르면 신라의 오악(五嶽)중 서악(西嶽)으로 받들었고 제사를 지내는 명산으로 정했다고 한다.

통일 이전 신라는 신라 수도 서라벌 근교의 산들을 오악이라 하였는데,토함산(吐含山)을 동악, (소)금강산(金剛山)을

북악,함월산(含月山)을 남악,선도산(仙桃山)을 서악,다석산(斷石山)을 중악 이라 하였다.

여름 능쿨식물

바위에 이끼랑 고사리등 습한곳에서 잘자라는 초록의 식물들이 장맛비로 인하여 잘 자라고 있는듯 하다

골바람이 불어오면 시원하게 열 오르는 가슴을 식혀주고 땀 삐질거리는 얼굴도 씻어 주었다

계룡산 들머리로 잡은 신원사 의부속 암자로는 고왕암(古王庵)·등운암(騰雲庵)·마명암(馬鳴庵)

남암(南庵) 등이 있다고 하며  이 가운데 고왕암은 660년(의자왕 21)에 창건하였고

1419년(세종 1)에 중건하였으며, 1928년 청운(淸雲)이 또다시 중건하였다.

암자의 이름을 고왕이라고 한 것은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이 신라의 장군 김유신(金庾信)과 합세하여

백제를 침공할 때 백제의 왕자 융(隆)이 피난했다가

이곳에서 신라군에게 항복함으로써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하고 있다.

계룡산의 시원한 폭포수

남부에는 장맛비가 잠잠 할때에 중부지방에는 물난리가 났는데 아마도 그 영향인지 계곡마다 물이 철철 넘쳐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훌라당 벗고 뛰어 들고 싶지만 국립공원에는 알탕이 금지이다

물론 금지가 아니라도 여벌 의복도 없다 수건도 없고 우중산행준비를 했기에 그렇다

신원사 주차장에서 신원사를 지나 고왕암 부근까지는 경사가 크지 않은 평평한 탐방로여서

주변을 둘러보며 산책하기 좋다는 코스이며 고왕암을 지나면 경사도가 커지면서 바위와 돌계단으로 이루어져있어

주위가 필요하며 연천봉에 가까워질 수록 탐방로가 가파르지만 난이도가 높은 지역마다

목재 계단과 데크가 잘 설치되어있어 탐방하기 수월한 편이라고 한다.

계룡산야생화(가는장구채)

여름산이나 봄산 할것없이 산길을 걷다보면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미는 야생화 보는 재미가 있는데

마냥 스쳐갈수도 있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여기저기에 야생화가 반겨준다

가는장구채꽃은 7-8월에 피고 백색이며 원줄기와 가지 끝의 원뿔모양의 취산꽃차례에 많은 꽃이 달리며

꽃자루는 가늘고 길며 꽃부리의 지름은 1.2cm내외이다.

꽃받침은 녹색이며 종형이고 5갈래이며 끝이 뾰족하며 꽃잎도 5개이고

길이 2mm정도로서 끝이 2개로 갈라지며 수술은 10개, 암술대는 3개이다.

연천봉 고개

여기서 연천봉까지는0.2km이며 연천봉에 올랐다가 다시 연천봉 고개로 되돌아와서 관음봉 방향으로 가야 한다

계룡산 들머리에서 처음만나는 고왕암(古王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麻谷寺) 말사인

신원사(新元寺)의 부속 암자이며 백제 말년인 660년(의자왕 20)에 의자왕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9년(세종 1)에 서함(西函)이 중건했고, 1928년에는 청운(淸雲)이 3차 중건했다.

의자왕이 660년 6월에 이 암자를 창건했다고 하는데,

7월 18일에 김유신(金庾信)이 이끄는 신라군과 소정방(蘇定方)이 이끄는 당군이 백제를 침공해

나라가 패망하자 의자왕은 같은 해 9월 3일 당군에 의해 당나라로 끌려갔다.

이런 사연에 따라 의자왕을 추억하는 뜻에서 고왕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천황봉(天皇峯)  조망

연천봉 가는길에 천황봉(天皇峯) 846.5m  계룡산 주봉이 보였다 군사시설이 있으며

천황봉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3군본부가  발아래 펼쳐져 있어  일반인 통제금지역이다

계룡산 지구의 자연환경 및 관광자원 보호를 위하여 일대 5m에 걸쳐 자연환경 보호지구를 설정하고

동서남북 사방으로부터의 진입로의 건설 및 확장, 그리고 도로의 포장을 서둘러 시행하였다.

계룡산에는 현대 시설 지구가 있는데 삼불봉과 관음봉을 중심으로

동쪽에 동학사 지구와 서쪽에 갑사 지구의 두 집단 시설지가 있다.

헬기장과 소나무

넓다란 헬기장 옆에 아주 편안하게 앉아서 쉴수도 있을듯한 소나무가 한곳을 자리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산꾼들이 앉아서 쉬어간 흔적이 보이고 소나무 또한 빤질히 하게 사람의 손탄 흔적이 보였다

계룡산은 우리 국토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어 전국 어디에서나 접근하기 쉽고

역사적·자연적으로 우수한 관광자원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어서 탐방객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공주·부여 등을 연결하는 문화 유적 관광축으로, 계룡산 국립공원과 주변의 휴양지인

칠갑산 도립공원 · 대둔산 도립공원 등과 상호 연계되기 때문에 다양한 관광권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연천봉(連天峯) 739m

연천봉에는 봉우리 표지석은 없으며 신원사 탐방로의 대표적인 봉우리로 해발 739m의 높이에 위치해 있다.

산봉우리가 구름(하늘)과 맞닿았다고 해서 연천봉이라 하고, 주변에 구름위에 올라탔다는 뜻의 암자인 등운암이 있다.

연천봉은 계룡8경의 하나로 저녁 무렵 노을이 굉장히 유명하며

저녁 무렵에 확 트인 연천봉 서쪽을 바라보면 낙조가 계룡, 양화 저수지와 백마강을 붉은 물결로 뒤덮는 장관이 펼쳐진다. 또한 연천봉 정상에서는 관음봉, 쌀개봉, 천황봉, 국사봉등의 수많은 계룡산의 아름다운 봉우리와

주변경관을 감상할 수 있어 계룡산의 조망처 이기도 하다

연천봉 석각(石刻)
方百馬角(방백마각)口惑禾生(구혹화생)
연천봉 석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방백마각(角)구혹화생(生) 방(方)은 4방이요

글자도 4획이라 4를 뜻한다  마(馬)는 오(午)인데 오라는
글자는 80)을 의미한다 각(角)은 뿔이다.
모든 짐승이 두 개의 뿔이 있으므로 2가 된다 이를 모두 더하면
482란 숫자가 된다  구(口)와 혹(或)은 국(國)자가 되고,
화(禾)와 생(生)을 합치면 이의 옛글자가 된다. 전체를 다시 조합하면 四百八十國(사백팔십국)란 구절이 되어서
조선은 개국 482년 만에 망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계룡산은 이 지역의 풍수지리적 특징으로 인하여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특히 1393년(태조2년) 신도건설 공사 이후부터 풍수설과 어우러진 계룡산은 

각종 예언과 연결되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고 연천봉 석각은 계룡산이 갖는 

이러한 도참적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자원이다.

연천봉에서 바라본 계룡산 주봉 천황봉

연천봉 산정에서 바라보면 계룡산 주봉과 능선이 한눈에 펼쳐지는데 닭벼설을 쓴 용같다는 말이 맞는듯 보였다

계룡산의 자원적 가치는 관광자원이 으뜸이라고 하는데 계룡산은 봄철의 춘산백화(春山百花),

여름철의 녹음방초, 가을철의 만산홍엽, 겨울철의 심계백설(深溪白雪) 등 철마다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은 용문(龍門)과 은선(隱仙)의 두 폭포를 이루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1964년 우리나라의 8대 관광지를 인기 투표하였을 때 계룡산은 제5위를 차지할 만큼 손꼽히는 명승지로서,

1968년 12월 31일자로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의 국립공원이 되었다.

교통편은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경우 서울 · 대전 · 대구에서 3시간 이내에 갈 수 있고,

대전 및 공주에서 시내버스가 내왕하고 있어 비교적 편리하다고 한다.

계룡산야생화(큰까치수염)

계룡산으로 산행길는 갑사코스인데 갑사코스는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오리숲, 갑사, 갑사계곡(구곡), 천진보탑,

삼불봉을 돌아보는 탐방코스로서 편도 총 3.8km, 2시간 30분소요 된다고 하며
완만한 경사와 급한 경사 등 다양한 등산 난이도가 있는 코스며 대체적으로 계곡을 따라

바위나 돌계단이 많아 미끄러짐에 주의하면서 탐방해야하는 코스이며

호국불교의 상징이자 국보 제298호 갑사삼신불괘불탱 등의 수많은 불교문화재를 간직한 천년고찰 갑사와

아름다운 계곡(구곡). 계룡 8경중 2경인 갑사계곡의 가을 단풍과 삼불봉 설화.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전설의 천진보탑을 감상할 수 있는

갑사지구의 대표 탐방코스라고 한며 역사문화에 관심이 많은 산꾼들이 자주 찾는 코스라고 한다.

계룡산야생화(흰꿩의다리)

산 숲 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며 전체에 털이 없고, 흰빛이 조금 돈다.

줄기는 곧추서며, 높이 1-2m, 지름 1cm쯤으로 굵다고 하며  잎은 어긋나며, 줄기 밑부분의 것은

잎자루가 길고 2-3회 깃 모양으로 갈라지는 겹잎이다.

꽃은 6-7월에 원추꽃차례에 많이 달리며, 흰색이다. 꽃받침은 4-5장이고 일찍 떨어지고 꽃잎은 없다.

열매는 수과이며, 난형으로 날개가 3-4개 있으며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한다. 

계룡산야생화(자주꿩의다리)

계룡산에는 백제 문화의 유적과 대찰(大刹)과 그리고 명승지가 많아 역사 관광 또는

자연 관광지로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갖추고 있다.

계룡산의 모습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골짜기마다 푸른 늪이 있고, 시원한 폭포가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세 곳의 큰 절이 동학사는 동쪽에, 갑사는 서북쪽에, 그리고 신원사는 서남쪽에 알맞게 배치되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계룡산 안에는 지정유산이 15점, 비지정유산이 13점이 있고, 크고 작은 사찰이 22개소나 있고

자연경관으로는 산봉우리가 15개, 계곡이 7곳, 폭포가 3곳, 이름난 암굴도 5곳이나 된다.

계룡팔경은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데  제1경은 천황봉의 일출로 계룡산의 최고봉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에 그림 같은 조망이 펼쳐진다고 하는데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아쉽기만한 곳이다.

관음봉 가는 데크길

내가 살고있는 지역에는 지금도 비가 오락가락 한다고 하는데 여기는 찜통 더위 같았다

가끔 골바람이 땀을 식혀 주기도 하고 녹음방초가 눈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계룡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당나라 장초금의 한원(翰苑)에 나오는데

괄지지(括地志)를 인용해 ‘國백제東有鷄藍山(동유계람산)혹은 鷄山東峙(계산동치)라 하여

계룡산을 계람(鷄藍)산 혹은 계산(鷄山)이라 하고 있다.

백제시대부터 계룡산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라 경멸왕 8년(924) 최치원이 지은 문경 봉암사의 지증대사비에서도 ‘계룡’을 ‘계람’으로 적고 있다.

그렇게 보면, 계룡과 계람은 비슷한 개념으로서 산의 이름이 2000년 전부터 사용했던것으로 보인다

계룡산 팥배나무

팥배나무란 이름은 열매는 팥을 닮았고, 꽃은 하얗게 피는 모습이 배나무 꽃을 닮았다 하여 팥배나무라 부른다.

정말 이름처럼 열매는 팥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이처럼 산에 오르면 산이 주는 풍경 그리고 초목들과 야생화들은 늘 마을을 씻어준다

계룡산의 산지는 대개가 키 작은 나무로 구성된 산림지대라고 하며

계룡산 팔경중 하나인 제3경은 연천봉의 낙조로, 산 높이로는 계룡산 중 여섯 번째이지만

계룡산 모양이 준수하기로는 으뜸이다. 갑사계곡과 신원사계곡을 좌우로 두고 우뚝 솟아 발 아래에

상원들과 계룡지 · 경천지 등의 절경을 안고 있다. 이곳의 지는 해는 천황봉의 일출과 쌍벽을 이루는 장관이다.

제4경은 관음봉의 한운(閑雲)으로 관음정에 누워 한가로이 떠다니는 흰 구름을 바라보면

세상사가 한낱 물거품과 같다 한다. 여기서 쌀개봉으로 이어진 철쭉 길은 관음봉의 자랑이다.

공주십경의 하나인 ‘계악한운’은 곧 관음봉의 한운을 가리킨 것이다.

계룡산 관음봉(觀音峯)766m

우리나라 산봉우리는 불교적 이름을 한 곳이 대부분인듯 싶다 그 만큼 불교문화와 역사를 같이한 생각도 들었다

계룡산은 형세가 닭 벼슬을 닮았고, 용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사실을 볼 때 애초 지명이 계룡이었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며  산태극, 수태극이나 쌍룡농주형 등도 산의 형세에 따라 유래한 개념이다.

계룡산은 주봉인 상봉(천왕봉), 연천봉,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벼슬을 쓴 용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상봉과 쌀개봉을 이은 능선은 용의 모양을 닮았으며 사방에 계곡과 용추가 있다고 해서 용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 연봉들이 마치 9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는 산이라 하여 구룡산이라 했다고도 전한다.

이 외에도 산세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라 해서 화산, 화채산이라고도 불렀다. 

관음봉에서 바라본 조망

계룡산 관음봉에서 잠시 휴식과 발아래 펼쳐진 풍경을 보면서 머리를 씻어보는 시간이다

대개 산 이름은 산 형세를 가리키거나 풍수적으로 음양에 해당하거나, 명당자리를 말하거나,

동물 모양을 닮은 지형을 나타내는 등의 다양한 형태로 명명한다고 하는데

동물 형태로 나타내더라도 대부분 하나의 동물을 지칭한다. 반면 계룡산은 닭과 용, 두 종류의 동물을 가리킨다.

두 마리의 동물이 하나의 산을 가리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계룡의 유래를 무학대사에서 찾는데 무학대사가 천도를 하기 위해 이태조와 함께

신도안과 계룡산을 둘러보고는 “이 산은 한편으로는 금계포란형이요, 또 한편으로는

비룡승천형이니 두 주체를 따서 계룡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시기적으로 전혀 맞지 않다고 하는데  무학대사는 1300년대 후반 인물이고,

백제시대는 이보다 1,000년 가까이 앞선다고 한다

삼불봉 방향으로 하산

남매탑2.2km 삼불봉 1.4km 안내표지목이며 삼불봉 찍고 남매탑 방향으로 하산 하기위해 걷는다

계룡산 제5경은 동학계곡의 신록으로, 학바위 앞에서 관음봉 고개까지 3.5㎞에 이르는 계룡산의

대표적인 계곡이라고 하며 흔히 ‘춘 동학, 추 갑사’라 하는데, 이 계곡의 울창한 숲에 신록이 돋아나면

온 산에 생기가 약동한다. 제6경은 갑사계곡의 단풍으로 계룡산 단풍은 널리 알려진 가경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갑사를 싸안고 오리숲에서 금잔디고개에 이르는 갑사구곡의 단풍은 마치 불타는 듯하여

가을 계룡의 으뜸 가는 경관이다 라고 하나다.

갑사구곡은 남쪽으로 난 계곡에 있는데 ① 용유소(龍遊沼), ② 이일천(二一川),

③ 백룡강(白龍崗), ④ 달문택(達門澤), ⑤ 군자대(君子臺), ⑥ 명월담(明月潭),

⑦ 계룡명암, ⑧ 용문폭포, ⑨ 수정봉이 그것이다. 특히, 제6곡인 명월담에는 취사장이 마련되어 있고,

왼쪽 바위 밑에 석조약사여래상이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용문폭포를 거쳐 금잔디고개 · 오누이탑 · 동학사로 가는 길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연천봉 · 관음봉 · 은선폭포를 지나 동학사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제8곡인 용문폭포는 등산객이 가장 많이 찾는 절경이며,

제9곡인 수정봉은 이름 그대로 수정같이 맑고 깨끗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모양의 바위산이다.

삼불봉 방향으로 하산길

삼불봉 봉우리가 닭의벼설처럼 보이며 발아래는 동학사그 골자기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계룡산 제7경은 은선폭포의 운무(雲霧)로 동학사 계곡을 거슬러 오르다가 약 20m 높이에서 내리 쏟아지는

물줄기는 동학계곡의 유일한 폭포이기도 하며 폭포 앞의 기암절벽은 자연경관의 극치이고,

그 너머로 멀리 보이는 쓸개봉의 위용이 경이롭기까지 하다고 하며 옛날에 신선이 숨어 살았대서

이 이름이 생겼다고 하고  제8경은 오뉘탑의 명월로 오뉘탑은 남매탑이라고도 하나

제대로의 이름은 청량사지쌍탑(淸凉寺址雙塔)이라고 한다.

삼불봉 방향 데크길

저멀리 삼불봉이 보이며 머리위 태양은 산꾼에게는 여름산의 더위를 선물 해 주는듯 하다

여름산을 걸을때 나는 식염 포도당 그리고 마그네슘도 먹는다 땀을 많이 흘리는 탓에 땀을 많이 흘리면

마그네슘 부족으로 다리에 경련을 일으켜서 늘 마그네슘도 상비약 처럼 가지고 다니고 먹는다

음용수분도 많이 섭취하여 다른사람 한병을 기준으로 할때 아마도 두병 정도는 해야 될듯 싶다

이렇게 숲이 주는 소리와 매미소리 그리고 산새 소리와 함께 계룡산 산길 길지(吉地)를 걸어본다

계룡산 야생화(바위채송화와 돌양지꽃)

데크계단아래 바위틈에 군락으로 자라고 있는걸 촬영해 보았는데 산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식생이 재미를 더한다

충청남도 공주에 있는 산을 이름하여 계룡산이라 하는데, 그 산의 생김새가 엄연하고 따뜻해서 마치

군자가 예양(禮讓)하는 모양과 같으며, 아름답고도 곱고 덕이 맑은 가인(佳人)의 고요하고

한가로운 얼굴과 같으면서도, 높고도 커서 호걸스럽고 잘난 선비가 우뚝 서서 건드리지 못한 것만 같다.

이 태조가 도읍 터 공사를 시작하였다는 전설이 있고, 정여립(鄭汝立)의 불령스러운 옥사가 있었으니

그 신령스러운 기운이 평범하지 않은 것은 비록 아는 자를 보지는 못하였으나,

이장(李丈)이 이 산 속에 수년 동안 살면서 봉우리 이름과 물의 명칭의 연유와 대(臺) · 바위 · 절 · 민사(民社) 등의

토속 유래까지를 다 조사하고, 가는 곳마다 절구(絶句) 한 수씩 지어 이것을 합쳐서

계룡시첩(鷄龍詩帖)이라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한 걸음도 걷지 않고서

계룡산의 안팎 모든 명승을 빼놓지 않고 볼 수 있게 하였으니, 그 마음씀이 가히 넓다고 하겠다.

계룡산 야생화(원추리)

산에는 바야흐로 원추리의 계절이 왔다 여기저기에서 노랗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원추리는 보기만 해도

그 아름다운 모습에 취하기에 이렇게 아름다움에 빠져서 아름다운 모델을 삼아서 촬영을 해본다

계룡산이 위치한 공주시는  북쪽과 남쪽은 산지를 이루고 중앙부의 하천유역에는 평야가 전개되며

북쪽에는 차령산맥이 북동에서 서남으로 이어져 국사봉(國士峰)·차령(車嶺)·무성산(茂盛山)

금계산(金鷄山) 등의 여러 산을 형성하고 있는데 동남부에는 계룡산(鷄龍山)이 우뚝 솟아 있다.

그리고 곳곳에 200m 내외의 구릉이 분포하며 전북특별자치도 무주 · 장수 부근에서 발원한

금강은 공주시의 중앙부를 대체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관류하면서, 많은 지류와 합류하고

양안에 비옥한 범람원을 이루어 놓았다고 한다.

독야청청(獨也靑靑)

하산길에 암벽에 붙어 자라는 소나무를 보았는데 저런곳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정말 존경스럽다

산길을 걷다보면 암반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종종 보는데 우리나라의 기상을 상징하듯이

굿굿이 벼락도 견듸고 우박도 이겨내고 추운 눈보라도 이겨내야 하는 홀로선 소나무의 의지를 존경한다

소나무는 우리의 민족의 나무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소나무가지로 금줄을 하고 소나무 장작 소나무 서가래

소나무 깔비(낙엽)를 끍어 모아서  밥지을때 땔감으로 쓴다 아득히 옛이야기 이지만..!

계룡산 주봉과 능선

삼불봉으로 가는길에 뒤돌아 보니 계룡산 주봉인 천황봉은 아득히 멀게만 보이고 굽이굽이 산봉이리들이

줄을 서서 내위 뒤를 따라 오는듯 보였다 하늘은 푸르고 흰구름이 파도처럼 요동치는듯 하다

옛 사람들이 일러온 공주십경(公州十景)중에 계악한운(鷄嶽閑雲)을 꼽았거니와,

성종때의 문인 서거정(徐居正)은 이에 대하여

계룡산 높이 솟아 층층이 푸름 꽂고 맑은 기운 굽이굽이

장백(長白)에서 뻗어왔네

산에는 물 웅덩이 용이 서리고

산에는 구름 있어 만물을 적시도다

내 일찍이 이 산에 노닐고자 하였음은 신령한 기운이 다른 산과 다름이라

때마침 장마비가 천하를 적시나니 용은 구름 부리고 구름은 용을 좇는도다.”고 읊었다.

휴식

삼불봉0.8km 안내표지목 돌계단에서 잠시 휴식과 수분을 섭취 하면서 조선세종때 문신인 서거정(徐居正)의

시를 한번더 생각하면서 계룡산에 얽힌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았다

獨坐(독좌)  徐居正(서거정) 

獨坐無來客(독좌무래객) 홀로 앉았노라니 찾는 나그네 없고

空庭雨氣昏(공정우기혼) 빈 뜰에는 빗기운이 어두워!

漁搖荷葉動(어요하엽동) 물고기 흔들어 연잎은 살랑이고

鵲踏樹稍飜(작답수초번) 까치 발구르니 나뭇가지 일렁이네.

琴潤絃猶響(금윤현유향) 거문고 젖었어도 줄 여전히 소리 나고

爐寒火尙存(노한화상존) 화로 차가워도 불 그대로 남아 있네.

泥途妨出入(니도방출입) 진창길 출입조차 훼방을 놓으니

終日可關門(종일가관문) 종일토록 문 지키고 있을 수밖에

계룡산 야생화(비비추)

삼불봉 가는 테크계단 암봉옆에 자라는 비비추를 앵글속에 담아 보았다

산길을 걸어면서 야생화 하나 돌맹이 하나  잡초 하나라도 소중한 산의 자원이며 가꾸어 나가야할 자연이다

계룡산(鷄龍山)은 백두대간 중 금남정맥의 끝부분에 위치, 천황봉(846m)을 중심으로 관음봉, 연천봉,
문필봉(756m), 삼불봉 등 28개의 봉우리와 동학사계곡, 갑사계곡등 7개소의 계곡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계룡산 능선이 마치 닭의 벼슬을 쓴 용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하며
국립공원 계룡산은 8종류의 천연기념물과 3곳의 전통사찰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곳에는 국보 2점(갑사-국보 제298호 삼신불괘불탱,신원사-국보 제299호 노사나불괘불탱),
보물 12점(갑사, 신원사, 동학사), 지방문화재 9점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계룡산 삼불봉(三佛峯) 775m

계룡산은 황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金鷄抱卵)형과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비룡승천(飛龍昇天)형의 산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산행지 이다

따라서 풍수가들은 회룡고조와 산태극·수태극 3가지 개념으로 설명하며 이 정도면

천하의 명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며 국내 기도처 1위로 꼽히기도 한다.

2위는 태백산, 3위는 지리산이며 계룡이란 지명은 주봉 천황봉에서 시작해서 연천봉~삼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벼슬을 쓴 용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봄 진달래·철쭉과 동학사 주변 벚꽃은 전국 상춘객이 찾는 명소라고 한다

계룡산 삼불봉(三佛峯) 775m

계룡산(鷄龍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산꾼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고대부터 그 이름을 고이 간직할 뿐만 아니라 신라시대엔 오악 중에 서악(西嶽)

조선시대에 도읍지로 지정될 뻔했던 명산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오악을 여러 명산으로 다양하게 지정했지만

항상 오악에 포함되었고 한국에서 산신제를 지냈던 중악단 간판과 자취를 유일하게 간직한 산이기도 하다.

중악단은 현재 보물 제1293호. 조선시대에는 하악 지리산, 중악 계룡산, 상악 묘향산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신라시대와는 다르게 중악(中嶽)으로 불렸고, 그 중악단이 지금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남매탑0.3km 안내표지목

삼불봉에서 이제는 남매탑으로 하산하여 남매탑을 보고 동학사를 보면 오늘 산행은 끝을 맺는다

계룡산은 사시사철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하며고 하며

계룡산은 산세가 수려하고 볼거리가 많다는 이야기와 일맥 상통 하며 주능선인 자연성릉의

층암절벽과 동학사·갑사의 울창한 숲이 연출하는 풍경이 장관이다.

산줄기 곳곳의 암봉·기암절벽과 숲속 사찰 등이 어우러진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를 떠올리게 하며

지리적으로 접근이 편하고 삼불봉의 겨울 설경도 아름다워 사계절 두루 가볼 만하지만

단풍이 절정인 10월과 벚꽃이 만개하는 4월에 가장 많은 산행객이 몰려든다고 한다

남매탑(男妹塔)
남매탑(塔)은 동학사와 갑사의 중간 지점인 삼불봉 밑의 옛 청량사 터에 탑 2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5층(보물 제 1284호), 다른 하나는 7층 (보물 제1285호)으로 청량사지쌍탑(淸凉寺止雙塔)이라고도 불리며

남매탑이란 이름에 걸맞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라시대 때 상원조사가 이곳에서 토굴을 만들어 수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울부짖으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스님이 입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큰 가시 하나가 목구멍에 걸려 있어 뽑아주었더니 

며칠 뒤에 호랑이는 은공을 보답하는 뜻으로 한 아리따운 처녀를 등에 업고 와서 내려놓고 갔다. 

처녀는 경상북도 상주사람으로 혼인을 치른 날 밤 호랑이에게 물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스님에게 말하였다. 

그때는 산에 눈이 쌓이고 날씨도 추운겨울이라서 돌려보낼 수 없어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자 

스님은 처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그 처녀의 부모는 이미 다른 곳으로 시집보낼 수도 없고 인연이 그러하니 부부의 예를 갖추어 주기를 바랐다.

 이에 스님은 고심 끝에 처녀와 의남매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서 불도에 힘쓰다가 한날 한시에 입적했다. 

이렇게 의남매의 연을 맺어 수행자로서 열심히 정진한 두 분을 기리기 위해 스님의 제자인 

회의화상이 화장 후 사리를 수습하여 탑을 건립하게 되었는데 이 탑을 이름하여

남매탑 또는 오누이탑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산길

공주에 위치한 계룡산 산행도 이제는 그 끝이 다되어 간다 계곡의 물소리 들어가면서

의복은 땀으로 샤워한듯 다 젖어 버렸고 캡모자에도 땀으로 다 젖어 버렸다

계곡에서 잠시 세수만 했는데도 열이 식혀지는듯 하고 시원하였다

계룡산은 삼국시대에는 백제를 대표하는 산으로 꼽혀 '계룡' 또는 '계람산' '옹산' '중악' 이라는 이름으로

바다 건너 당나라까지 알려졌는데 신라 통일 후에는 오악(五嶽) 중 서악(西嶽)으로

조선시대에는 삼악(三嶽) 중 중악(中嶽)으로 봉해진 명산이다.

특히 조선 중기 '정감록'(鄭鑑錄)'에서는 계룡산을 가리켜 큰 변란을 피할 수 있는 장소인

십승지지(十勝之地)라 했고 또 도참사상이 성행하면서 이 일대에 신흥 종교 및 유사 종교가 난립하기도 했으나

종교 정화 운동을 통해 1984년 이후 모두 정리되었다고 한다

鷄龍山東鶴寺(계룡산동학사)

동학사 일주문 편액에는 그 산의 이름이랑 사찰이름을 걸어 놓는데 鷄龍山東鶴寺(계룡산동학사)라고 걸여 있어

천년고찰 동학사를 보면 오래전 부터 계룡산임을 알수있는 사료(史料)  이기도 하다

동학사는 724년(성덕왕 23)상원(上願)이 암자를 지었던 곳에 회의(懷義)가 절을 창건하여

청량사(淸凉寺)라 하였고, 920년(태조 3)도선(道詵)이 중창한 뒤 태조의 원당(願堂)이 되었다.

936년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거달(柳車達)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기 위해 동학사(東鶴祠)를 지었다.

그리고 사찰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동학사(東鶴寺)로 바꾸었다.

동학사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東鶴寺)라 하였다는 설과,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종(祖宗)인 정몽주(鄭夢周)를 이 절에 제향하였으므로

동학사(東學寺)라 하였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산행종료

진짜 가고싶었던 산행지였던 계룡산을 오늘에야 걸을수 있어 너무 좋았다

계룡산 산의 곳곳에는 너무나 많은 역사적 이야기와 풍수지리적 이야기가 있는곳이며 사계절 마다

계룡산을 찾아야  계룡산을 알듯한 산행지이다 오늘 이렇게

신라의 오악(五嶽)중 서악(西嶽)으로 받들었던 계룡산 길지(吉地)를 걸어보면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

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

태백산맥은없다 조석필 사람과산.

한국1000산 신명훈 깊은솔

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 오혜령 박옥남 복랩

계룡산국립공원 홈페이지 동화사홈페이지

공주시 계룡시 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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