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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늑대 FORCE
남원 수정봉(南原 水晶峰). 백두대간(白頭大幹)길을 따라 수정봉(水晶峰) 산정에서 한여름 구룡계곡(九龍溪谷)에 빠져보다 본문
남원 수정봉(南原 水晶峰). 백두대간(白頭大幹)길을 따라 수정봉(水晶峰) 산정에서 한여름 구룡계곡(九龍溪谷)에 빠져보다
바다늑대FORCE 2024. 7. 29. 12:38
남원 수정봉(南原 水晶峰).
백두대간(白頭大幹)길을 따라 수정봉(水晶峰)산정에서 한여름 구룡계곡(九龍溪谷)에 빠져보다
▲ 백두대간(白頭大幹)수정봉(水晶峰)
높이 : 804.7m
위치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와 이백면 양가리 경계에 있는 산
▲ 백두대간(白頭大幹)수정봉(水晶峰)
나의 산행일 : 2024년07월28일 일요일 날씨 : 맑음
▲ 백두대간(白頭大幹)수정봉(水晶峰)나의 산행코스 :
여원재→갓바래봉 → 입망치 → 수정봉 → 덕운봉 → 노치산성(蘆峙山城) → 구룡폭포 →
비폭동 → 지주대 → 육모정 → 지리산북부구룡탐방소주차장
12.9km 6시간40분소요(트랭글 앱기준)
▲ 백두대간(白頭大幹)수정봉(水晶峰)개요 :
백두대간(白頭大幹)수정봉(水晶峰804.7m)은 운봉읍 행정리와 이백면 양가리 경계에 있는 수려한 산으로
수정봉 산 중턱에 수정이 생산되던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섬진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의 분수계가 되며
이백에서는 650m의 높은 산이 운봉읍 주촌리에서는 250m의 낮은 산이 된다
지리적으로 "수정봉"은 "백두대간(白頭大幹,1621.5km)" 상에 위치하고
"주지봉"은 "대간"에서 0.6km 정도 서쪽으로 벗어나 있다. "주지봉"의 물줄기는 섬진강(蟾津江, 225km)으로,
"수정봉"의 물줄기는 동쪽은 "낙동강(洛東江, 525km)"과 서쪽은 "섬진강"의 분수령(分水嶺)이 되고
행정구역은 "남원시 운봉면, 이백면, 주천면"을 경계한다.
여원재에서 시작되어 입망치,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은 양탄자와 같은 낙엽과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으며 백두대간 길을 걷는다는 자부심과 숲길 사이로 조망되는
지리산 태극종주(덕두봉, 바래봉, 세걸산, 고리봉)능선과 평행으로 파노라마처럼 숲길이 이어지며
백두대간 능선으로 편안한 육산과 수려한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 숲을 지나며
산행의 끝 무렵에는 지리산의 비경인 구룡계곡의 크고 작은 폭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무더운 여름철의 땀을 식혀줄 최적의 산행지이다.
▲ 백두대간(白頭大幹)수정봉(水晶峰)산행지도
▲ 백두대간(白頭大幹)수정봉(水晶峰)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4년 07월28일 일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오늘은 산에서 만난 동갑내기 산우가 산악회장으로 있는 산악회 따라 백두대간 수정봉 남원으로 가는날이다
토요일 어제는 소나기가 왔다리 갔다리 해서 우중산행 채비를 하여 산행지 출발 장소로 갔다
날씨는 한여름 폭염 같은 날씨 괜실히 우중 산행을 걱정했나 보다
백두대가길을 걷는걸 좋아하는데 때마침 백두대간길에 있는 수정봉이라 고남산과 더불어
가고싶은곳 하나이기에 많이 기대가 되었다
여원재(女院峙)477m 그리고 운성대장군 돌장승
여원재(女院峙)는 전북남원과 경남 함양을 연결하는 고개로서 좌우로 수정봉과 고남산이
위치해 있으며 백두대간의 능선이 이어진 곳이다
여원재 옛길 곳곳에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 안내판이 있으며 여원재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남원 동쪽의 응령역(應領驛)과 운봉고원의 인월역(引月驛) 사이에
성벽처럼 우뚝 선 백두대간을 넘어서 전라도 남원에서 경상도 함양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여원재(女院峙)이름의 유래를 보면 구려말 이곳에 침입한 왜구가 주막집 주모를 희롱하여 죽게 한후
이들을 토벌하기 위하여 도착한 이성계 장군의 꿈에 주모가 나타나 전략을 알려주어 대승하였다
이 전투가 바로 황산대첩(荒山大捷)으로 이성계는 이 여인 즉 주모에 대한 고마움을 기려 사당을 지었고
그 사당을 여원(女院)이라 함으로서 여원재(女院峙)로 불리기 되었다고 한다
황산대첩(荒山大捷) 은 고려 우왕 6년인 1380년 9월, 지리산 북서쪽인 전북 남원의 운봉 황산에서
지방 출신의 신흥 무장 이성계가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를 크게 물리친다.
14세기 중반부터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왜구의 도발은 황산대첩을 계기로 주춤하게 된다.
황산전투는 같은 해 8월 진포대첩, 1376년 홍산대첩과 함께 고려 말 왜구를 격퇴시킨 3대 대첩으로 불린다.
수정봉 4.3km 안내표지목
백두대간(白頭大幹)고남산 까지는 5.0km라고 안내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수정봉 가는 산길은 직진으로 가다보면
시멘트 포장길이 나오는데 조금걷다보면 수정봉 안내표지목이 나온다
여원재(女院峙)가 위치한 운봉고원(雲峰高原)은 전북이지만 낙동강 수계이며 전북 운봉고원을 흐르는 대부분 하천은
경남 함양과 산청을 거쳐 진주 남강에 이르고 낙동강을 따라 흐르고 여원재는 고개 정상이 바로 운봉고원 운봉읍과
거의 수평을 이루어 고갯마루가 바로 평원으로 연결되며 고원 지대인 운봉고원(450~550m)은
이웃 지역보다 20일이나 벼농사의 모를 일찍 내어 한여름인 7월 중순이면 벼 이삭이 팬다고 한다.
운봉고원(雲峰高原) 유래를 보면 운봉 고원이 위치한 운봉읍은 삼한시대에는 진한(辰韓)의 영토였고
삼국시대에는 모산현(母山懸)이라 불리는 신라 국경 요새지였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현재의 지명인 운봉현(雲峰縣, 雲城)으로 개칭되었고 운봉의 지명 유래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운봉이라는 지명이 북한의 개마고원에 위치한
두운봉(頭雲峯)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다.
두운봉도 운봉과 마찬가지로 높은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는 고원상의 분지 지형인데,
두운봉 일대에 거주하였던 발해 유민들이 운봉에 정착하면서 두운봉과 비교하여 붙인 지명이라는 설이다.
수정봉 초입구간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오듯한 폭염경보 날씨 속에서 백두대간을 걸어보는것이 더위쯤이야 간단히 이겨내고
백두대간을 걸어본다는것 하나만으로도 내가 살아 있는다는 증거가 된다
수정봉의 들머리가 있는 여원재는 백두대간은 운봉고원의 서쪽과 남쪽의 외륜(外輪)을 성벽처럼 둘렀고
운봉고원의 동쪽은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의 주능선이며
운봉고원의 북쪽인 경남 함양 쪽은 백두대간에서 파생된 연비지맥이 벽을 쌓고 팔량치(八良峙)를 열어 놓은듯 하다
수정봉이 있는 남원시는 판소리의 고장이며 판소리 춘향가와 흥부가가 남원 지역에서 탄생하였다.
남원 광한루를 무대로 판소리 춘향가가 이루어졌고, 운봉고원에서 판소리 흥부가가 태어났다.
춘향가의 사랑가나 흥부가의 화초장타령 등 판소리 가락은 이 지역에서 익숙한곳이기도 하다
수정봉3.54km안내표지목
다행히 숲이 우거져서 그늘이 많아 더위가 덜 한듯 하고 초록숲이 시원함을 안겨주었다
여원재 주변 운봉고원(雲峰高原)은 전북 남원시 운봉읍의 행정 구역과 거의 일치되며
운봉읍은 1995년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읍 소재지는 서천리이다.
운봉 고원은 지형적인 이점 때문에, 배추, 고추, 마늘 등의 고랭지 채소와 화훼 재배가 활발하고
용산리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면양목장 국립종축장이 위치해 있으며,
준향리에는 한국 경마축산 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등, 축산업도 활발한 지역이다.
과거에는 유기(鍮器)와 목기(木器)가 유명하여 운봉장은 전북 지역에서 손꼽히는 명물이었다고 한다.
백두대간길
백두대간 수정봉 가는 산길은 자연의 멋이 살아 있는듯 보였다 유년기 시설 고지대 마을 돌계단 처럼 보이고
옛 어르신들이 지게에 돌맹이를 지고 옮겨다가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놓은듯한 산길이다
수정봉이 위치한 운봉읍의 운봉고원의 형성은 지반융기와 차별침식의 결과이며
신생대 제3기 후반 이후로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지반 융기가 발생하면서,
운봉 고원은 단층선을 사이에 둔 서쪽의 남원시 일대에 비해 더 큰 지반 융기가 일어난 결과 현재와 같이 고도가 높아졌다. 게다가 운봉고원은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활발한 풍화 및 침식작용을 받아 고도가 낮아지고 기복이 완만해지면서 분지 형태의 지형으로 변화되었고,
상대적으로 풍화 및 침식에 강한 주변의 편마암 지역은 높은 봉우리와 능선으로 남아 분지상의 운봉 고원을 둘러싸고 있다.
수정봉 야생화(누리장나무 꽃)
누린내가 많이 나서 누리장 나무라 하는데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자라지만 누리장나무를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은
숲의 가장자리나 산비탈의 돌이 쌓여 있는 노출지 등 양지바른 곳이다.
키가 3~4m의 자그마한 나무이며, 타원형의 잎은 손바닥만큼 커지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큰 잎을 가진 나무에 흔히 ‘오동’이란 접두어나 접미어를 잘 붙였고 마찬가지로
잎이 큰 누리장나무도 냄새오동(臭梧桐)이라 부르기도 했다.
8~9월에 끝 부분이 다섯 개로 갈라진 동전 크기만 한 꽃이 흰빛 또는 연분홍빛으로 무리지어 핀다.
수술이 길게 뻗어나온 모습이 독특하여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띈다.
갓바래봉728m
백두대간 수정봉 가는 산길에서 처음만나는 봉우리 갓바래봉이며 높이는 해발728m라고 한다
표지석은 없고 어느 산꾼이 돌맹이에다가 갓바래봉이라고 써놓았다
남원 지역의 백두대간은 대략 만복대~정령치~고리봉~가재~수정봉~입망치~여원치~고남산으로 이어지며
옛날에 산에 수정 광산이 있었다 하여 수정봉(水晶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형세가 마치 학이 날개를 피고 날 듯하고 있다고 해 명명됐다는 설도 있다.
입망치(笠望峙)660m
입망치(笠望峙)안내표지목은 아랫부분이 썩어 넘어진것을 대충 세워놓고 사진을 촬영하였다
백두대간 수정봉 등산은 크게 두 가지 코스가 이용되는데 여원재에서 출발해 주지봉과 입망치을 거쳐
수정봉에 이르는 코스와 그리고 노치마을에서 출발해 곧바로 정상에 오르는 산길이 있다.
환주를 좋아하시는 산꾼들은 여원재에서 출발해 주지봉~입망치~수정봉~구룡폭포까지 가는코스가 있고
최단 코스라 할 수 있는 노치마을에서 수정봉까지 원점 회귀 거리는 편도 1.8㎞ 정도라고 한다
수정봉 야생화(짚신나물)
입망치를 지나 수정봉 가는 산길 주변에는 짚신나물이 노랗게 산꾼 발걸음을 잡는다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주름진 잎맥이 마치 짚신을 연상시켜 짚신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하지만 옛날에 짚신이나 버선 등에 잘 달라붙어서 짚신나물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자로는 용아초(龍芽草) 또는 선학초(仙鶴草) 등으로 불리는데,
용아초는 이른 봄에 싹이 트는 모습이 마치 용의 이빨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백두대간길
목계단이 흙과 어우러져 끝없이 된비알로 이어져 있는 모습이 한폭의 시골풍경 산수화 같기도 하고
아름다운길 100선에 들만큼 그 모습이 정겹고 아름답게 다가온다수정봉 들머리 여원재에는 동학농민 혁명 유적지 백두대간 표지석이 있는데 내용을 보면
1894년 갑오년 당시 남원의 서부 평야지대는 김개남이 이끄는 농민군이 장악하고 있었고
동부 고원지대는 박봉양이 민보 군을 조직하여 수성군과 함께 이 능선 백두대간을 경계로 대치하고 있었다.
(음) 11월 중순 남원의 대접주 김홍기를 비롯한 유복남, 남응삼 등의 전라좌도 농민군은 영남 지방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방아치에 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으나 영남 지방의 지원을 받은 민보 군과
수성궁에 의해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좌절되었다.
갑오년 당시 이 능선을 경계로 겨루었던 농민군이나 민보·수성군 모두가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걸었건
분들이기에 그분들을 추모하면서 그 정신을 계승하고 영원한 평화가 상생을 다짐하고자
이곳 백두대간에 표석을 세운다.
2008. 11. 22. 남원시. 남원 동학혁명 기념사업회
수정봉의 식물(산초나무)
우리는 산초와 재피 구별법은 간단한데 가장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나무의 열매를 보면 확연히 차이를 알 수 있는데 산초나무 열매는 가지 끝부분에만 뭉쳐서 열리는 반면,
초피나무 열매는 가지 전체에 골고루 달린다. 그리고 초피가 산초보다 개화도 빠르고 열매도 빨리 열린다.
가지만 있을 때에는 가시의 돗힌 모양을 보면 되는데 초피가시는 줄기 양쪽으로 쌍으로 나는 반면
산초는 어긋나거나 불규칙하게 난다.
백두대간(白頭大幹)수정봉(水晶峰)804.7m
오늘 이렇게 백두대간의 한 봉우리 수정봉에 올랐다 나는 백두대간에 걸쳐 있는 산을 좋아하기에 또 다른 마음이다
수정봉(水晶峰 804.7m)은 운봉읍 행정리와 이백면 양가리 경계에 있는 수려한 산으로
산 중턱에 수정이 생산되던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특히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섬진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의 분수계가 되며 이백에서는 650m의 높은 산이, 운봉읍 주촌리 서는 250m의 낮은 산이 된다. 입망치를 사이로 양지 산성 남쪽에 위치한 수정봉은 운봉읍 주촌리와 이백면 과립 리틀 경계로
두 개의 산봉우리를 포함하여 성이 평면 형태는 표주박 형태를 이룬다.
또한 성터도 있는데 확인된 성의 길이는 150m 정도 되며 성의 부대시설은 망대와 우물로 추정되는 웅덩이가 있었으며
망대는 성의 중앙부와 서쪽에 원형의 석축 형태로 남았고 동쪽 산봉우리의 남쪽 경사면이 위치한
우물지는 원형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석재를 이용하여 우물 시설을 마련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백두대간(白頭大幹)수정봉(水晶峰)804.7m
수정봉은 여원재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서
학(鶴)이 날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고 하는데 이 봉우리에 대한 유래는
옛날 노치마을에 짚신을 만들어 파는 민(閔)씨라는 거지가 살았는데 어느 추운 겨울에 민씨가 죽어
마을사람들이 매장을 하였는데 그곳이 주인이 없는 용(龍)의 자리인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明堂)이었다고 한다. 이후 민씨의 후손들이 크게 번성하여 그 묘에 화려한 석룡을 세웠는데,
그 뒤로 자주 재난이 일어나 다시 석룡을 없애자 다시 번성하게 되었다 고 한다.
즉 돌이 무거워서 학(鶴)이 날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인돌 같은 바위
수정봉 산정에서 노치마을안내표지목 구룡계곡방향으로 하산하는길에 만난 고인돌 같은 암석이다
백두대간 수정봉 걷는길은 숲으로 인하여 조망은 없지만 백두대간을 걷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
수정봉은 백두대간 북진 4구간에 속하여 시간이 또 허락한다면 사치재에서 고남산을 걸어볼 계획이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노치(盧峙)마을은 조선조 초에 경주정씨(慶州鄭氏)가 거하고 이어 경주 이씨(慶州李氏)가 들어와
형성되었다는 이 마을은 해발 550m의 고랭지로서 본래 이름은 길재이다.
마을 앞 지리산의 관문인 고리봉과 만복대에 억새가 많이 있어 길재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노치(蘆峙)로 쓴다.
한국동난6.25전쟁 때는 지리산 공비 작전으로 완전히 불타버린 아픔이 있는 이 마을은 전국에서
백두대간 능선이 유일하게 통과하며 대간이 통과하는 동쪽은 운봉읍에, 서쪽은 추천 면에 속해 한마을에
두 개의 행정구역이 존재하고 마을 뒷산에는 삼국시대 축성된 노치산성이 있다.
이 마을은 당시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서 중요한 방어지역이었으며,
아영면 아막성에서 정령치 고리봉의 산성까지를 연결하는 중요한 거점이었고
지금은 백두대간을 찾는 사람들의 지친 발걸음을 쉬어가는 곳이기도 한다
닭의 장풀
고인돌 같이 생긴 암반위에 닭의 장풀이 가득히 자라고 있어 그냥 지나칠수 없어서 렌즈에 담아 보았다
산기슭에서 자라는 덩굴성의 덩굴닭의장풀이라고 하는데 헛수술이 없이 완전한 수술로 된 것은
큰자주달개비, 자주달개비 등이 있고 완전한 수술은 2~3개이고 헛수술을 가지고 있는 종류는 닭의장풀, 사마귀풀이 있다. 잎이 좀 작은 종류를 좀닭의장풀이라고 한다.
구룡폭포3.9km안내표지목
표지목에 있는 노치 마을은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 위치하며 해발 500m의 중산간 지대에 있는 고랭지로서
주천면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에는 구룡폭포와 구룡치(九龍峙)가 있으며 뒤에는
산세가 가파른 덕음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마을 옆으로는 지리산 정령치에 발원하는
맑은 물이 구룡폭포를 이루어 원천천으로 흐른다고 하며 노치마을은 지리산의 관문이라고 말하는
고리봉과 만복대를 바라보고 있으며 이들 산줄기의 높은 곳에 갈대가 많아
갈재라고 하다가 ‘갈대 노’자를 사용하여 한자식 표기인 노치(蘆峙)라 쓴 것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이 유일하게 통과하는 노치마을은 지리산 둘레길 1구간에 있으며
마을 뒷산에 할아버지 당산으로 불리는 노송 4그루와 토석단이 마련돼 있고
할머니 당산이라 하여 느티나무와 바위가 마을 앞에 있어 수백 년 전부터 당산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덕운봉(德雲峰)745m
덕운봉에도 표지석은 없고 그냥 소나무에다가 코팅으로 된 이름표만 붙어 있는데 어느산꾼의 솜씨 같다
덕운봉봉 10m아래 쯤에서 우리 산행자들은 휴식과 점심식사를 하였고 잠시 휴식시간에
덕운봉에 올라서 봉우리와 잠시 대면 시간을 가지고 내려와서 표지목 우측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덕운봉에서 곧장 하산하면 노치마을과 연결 되는데 노치마을엔 노치샘이 있는데
공동우물이던 노치샘은 고려시대에는 절터의 청량한 우물이었다고 하며
노치샘에서 물을 뜨다가 물이 부족해지면 우물 속의 바위틈에 물이 고이게 되는데,
그때는 이 마을의 엄전한 처녀가 정성껏 퍼 올렸다고 한다.
예전에 이 마을은 정월 초하루에 우물을 깨끗이 하고 금줄을 쳤다고 하며
당산제 날 이른 새벽에 정화수를 뜨러 가면 호랑이가 이 샘을 지키다가,
제사의 첫물을 올린 후에 수정봉으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노치샘 물을 마실기회 없이 구룡계곡방향으로 발길을 돌였다
노치산성(蘆峙山城)
수정봉 산의 9부 능선을 둘러싸고 삼국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테뫼식 산성인
노치산성(蘆峙山城)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냥 지나치면 아마 집터 쯤 생각할듯 싶다
산성은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적의 공격력을 약화시켜 항전함과 동시에 민간인의 피난처로 이용되어왔고
산성은 형태에 따라 테뫼식 산성과 포곡식 산성으로 나누며 테뫼식 산성은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것으로, 발권식 산성·시루성·머리띠식 산성이라고도 한다. 대개 규모가 작은 산성이 이에 속한다.
포곡식 산성은 산기슭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정상부까지 계곡을 하나 또는 여러 개 감싸고 축성하여 그 규모가 크다.
노치산성(蘆峙山城)
산성의 흔적이 이제는 산꾼의 등산로가 되어 백두대간을 걷는 종주자 그리고 산을 찾는 산꾼의 길이 되었다
수정봉이 위치한 백두대간 여원재에는 동학혁명의 유적지가 있는곳이기도 한데
전북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의 전봉준 유적(사적)이 있는데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인 전봉준(1856~1895)이
살던 집이라고 하며 옛집은 1878년(고종 15년)에 세워졌고 앞면 4칸·옆면 1칸의 초가집으로
안채가 구성된 남향집이며 동쪽부터 부엌·큰방·웃방·끝방 순서의 일(一)자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한국 남부지역 민가 구조와는 다른 방향으로 되어 있는 특징을 보여준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1월에 일어난 고부 농민 봉기에서 비롯되었다.
고부지역은 전통적으로 봉건지배층의 수탈이 매우 심한 곳이었고 특히 1880년대말경부터
봉건정부 스스로도 궁장토의 확대 특히 균전수도(均田收賭) 문제와 같이 농민들의 토지를 수탈하거나
지대를 수탈하여 지주제를 확대·발전시키고 있었다.
수정봉 야생화(수국)
장맛비로 인하여 산행도 들컥 나서기에도 겁나는 날씨였는데 햇살은 한여름속 가마솥 더위를 몰고왔고
산길을 걷는동안 전신은 땀으로 험벅 젖어 버렸다
그나마 산길을 걷는 나에게 발목을 잡는건 예쁘게 핀 야생수국이 얼굴을 내밀어서 잠시 더위를 잊게 하였다
대부분의 수국은 야생 산수국을 개량해서 만든 것이며 강원도 발왕산에 갔는데 수국으로 만든 차도 판매도 하며
수국은 천연 단맛이 설탕보다 달지만 인체에는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수국차는 감로차, 이슬차라고도 하며 일본에서 설탕이 보급되기 전에는 수국으로 음식의 단맛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전 6월 1일에 수국꽃을 꺾어 잡귀를 쫓는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지리산 둘레길
구룡계곡으로 가던길에 지리산 둘레길과 합류되었고 둘레길이라 그런지 길이 마치 고속도로처럼 편안하였다
지리산 첫길은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외평마을과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를 잇는
14.7km의 지리산둘레길이며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하면서, 해발 500m의 운봉고원의 너른 들과
6개의 마을을 잇는 옛길과 제방길로 구성된다.
이 구간은 옛 운봉현과 남원부를 잇던 옛길이 지금도 잘 남아있는 구간이며 회덕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은
남원장으로, 노치에서 운봉으로 가는 길은 운봉장을 보러 다녔던 길이다.
특히 10km의 옛길 중 구룡치와 솔정지를 잇는 회덕~내송까지의 옛길(6km)은 길 폭도 넉넉하고
노면이 잘 정비되어 있으며 경사도가 완만하여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솔숲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다.
수정봉의 야생화(도리지꽃)
야생도라지가 보라색 꽃을 피웠는데 약초산꾼이라면 아마도 뿌리채 채취 할수도 있겠다
약초라도 자연은 자연속에 있어야 아름답고 또 종자가 널리 퍼지기 때문이다
자연산 야생 산도라지는 환절기에 떨어진 면역력을 올리는데 아주 좋은 음식 중에 하나입니다.
자연산 야생 산도라지에는 트립토판과 아르기닌 등의 아미노산 성분이 면역세포 활성을 촉진하여
면역력 강화에 탁월하며 기관지 건강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하며 기관지의 점막을 튼튼하게 강화시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바이러스와 세균을 억제하여 기침이나 가래 천식 기관지염 등
호흡기질환의 관리에 아주 좋은 효능이 있다고 한다.
천연 인슐린이기도 한 이눌린의 다당 성분이 혈당 수치를 떨어뜨려주어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관리시켜
당뇨를 예방하고 개선하는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그렇지만 꽃만 구경하고 지나갔다
구룡계곡(九龍溪谷)출렁다리
남원에 위치한 지리산 구룡계곡에 도착하였다 몇일째 장맛비로 인하여 계곡은 우렁찬 물소리로 가득 하였다
구룡계곡은 지리산 자락 서북쪽 끝에 걸쳐 있는 전북 남원시 주천면에 위치해 있으며
아홉 마리의 용이 노닐던 곳이라고 해서 구룡계곡이라고 하며 남원시 주천면 호경마을과 고기마을에 계곡이 흐르고 있다. 구룡계곡에는 음력 4월 초파일이면 하늘에서 아홉 용이 내려와 폭포를 하나씩 끼고 놀다 갔다는 전설이 내려오며
그 내력에 용이 등장하는 곳 치고 예사풍경인 곳은 없으며 구룡계곡 역시 그렇다.
구룡계곡의 구룡폭포는 남원팔경 가운데 제1경으로 꼽힐 만큼 아름답고 하며
계곡의 전체 길이가 4km쯤 되는데, 계곡을 따라 트래킹을 즐길 수 있도록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구룡폭포(九龍瀑布) 강한 물줄기
구룡폭포(九龍瀑布)는 지리산 서쪽의 만복대(1,438m)에서 발원해 남원시 주천면으로 흘러드는
원천천(元川川) 중간에 형성된 구룡계곡 최상류에 위치한 폭포이며 원천천 상류에 있어 원천폭포라고도 불린다.
구룡폭포의 길이는 약 30m에 이르고 그렇지만 가파른 절벽을 흐르는 직폭이 아니라,
비교적 완만한 바위면을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는 와폭이다.
만복대에서 발원한 계류가 여기에 이르러 가운데 불쑥 튀어나온 바위가 있어 두 갈래 폭포를 이루는데,
그 모습이 마치 두 마리의 용이 어울렸다가 양쪽 못 하나씩을 차지하고 물속에 잠겨 구름이 일면
다시 나타나 꿈틀거리듯 하므로 그곳을 교룡담이라 하며 이곳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하므로 구룡폭포라 불린다.
구룡폭포앞 출렁다리
구룡사에서 시작되는 구룡계곡은 우리나라 삼신산(백두산, 한라산, 지리산)의 하나인
지리산에서 경치가 제일 좋다는 의미로 방장제일동천(方丈第一洞天) 글씨가 바위에 음각되어 있다.
구룡계곡(九龍溪谷)은 육모정(六茅亭)으로부터 북쪽 2.8km의 계곡으로 옛날 사월초파일이면
아홉마리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 군데 폭포에서 한 마리씩 자리 잡고 놀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지리산의 계곡이라고 하면 흔히 뱀사골, 피아골, 대원사계곡, 대성골 등을 떠올리지만
구룡계곡은 지리산 주능선의 계곡들과는 또 다른 맛을 주며 길이는 짧지만 굽이굽이 이어지는
수많은 소와 폭포가 만들어 내는 비경은 여느 계곡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한국자연보존회가 선정한 한국의 100 명수(名水)에 선정됐을 정도이니 계곡 자체만으로도 격조가 느껴지는 곳이다.
육모정3.4km안내표지목
구룡폭포에서 육모정으로 우렁찬 폭포소리와 함께 발길을 옮겨 본다
구룡계곡(九龍溪谷)의 9곡은 다음과 같다
제1곡은 육모정과 매표소 못미처에 있는 송력폭포 또는 약수터
제2곡은 용호석문이라고 음각되어 있는 흰바위로 둘러싸인 못, 영불추
제3곡은 육모정에서 300미터 지점에 암석층이 있는데 이 암벽 서쪽에 있는 조암대
제4곡은 학(鶴)이 고기를 잡아 먹는다고 해서 학서암 스님이 독경하는 모습과 같다고고 해서 서암
제5곡은 은선병 또는 유선대 제6곡은 지주대 제7곡은 비폭동
제8곡은 바위 가운데 대문처럼 뚫려 물이 통과 한다고 해서 석문추 또는 경천벽
제9곡은 교룡담 혹은 구룡폭포 라고 소개 되어 있다
구룡계곡의 풍경
백두대간 수정봉 그리고 구룡계곡이 있는 남원은 지리산의 서북쪽에 있으며
전라북도가 나눠 가진 지리산의 지분을 남원이 책임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남원의 생태관광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넓게는 백두대간이라는 큰 무대까지 바라본다.
남원 주천면 노치마을은 유일하게 백두대간이 마을을 통과하는 곳이며 일제가 백두대간의 정기를 끊기 위해
커다란 목돌 6개를 땅에 박았다는 이야기가 그 증거여며 목돌을 박은 이후 마을 사람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았다고 전하고 지금은목돌이 모두 제거 되었다고 하며
지리산 자락에 걸쳐 있는 운봉읍은 33개의 마을을 품고 있는 고원지대이며
전북에서 육성 중인 남원 생태관광벨트의 주요 거점인 백두대간 생태교육전시관,
트리하우스, 허브밸리뿐 아니라 바래봉, 정령치, 국악의성지 등도 모두 차로 10분 이내의 거리에 있다.
구룡계곡의 풍경
초록의 물결이 계곡을 덥고 파란하늘엔 흰구름이 마치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하늘엔 이글거리는 햇살은 뜨겁다
흘러내리는 땀은 초록 물결이 씻어주었고 나의 눈동자는 저멀리 계곡으로 향하면 산에 올라온게 느껴진다
산은 나에게서 큰 의미이며 기력을 주고 힐링도 시켜준다 산은 늘 그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려 준다
오랫만에 백두대간길을 걸어 보았다 잦은 우기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백두대간 올여름 또 한번더 걸어야 겠다
암봉과 소나무
계단처럼 포게놓은 바윗돌 같고 소나무는 바윗돌을 연모해서 기역자로 몸을 꺽어서 그늘을 만들어 주는듯 하다
산길을 걸어보면 이렇게 보기드문 풍경과 기묘한 나무랑 암봉을 만날수도 있는데 그래서 산을 좋아하게 되었고
산은 우리의 생명줄이며 생명의 숲이다 그 숲을 우리는 가꾸고 아껴야 한다
우리가 배운 태백산맥은 일제가 백두대간 맥을 끊어 버리기 위해 만든 일제의 잔재이며
백두대간은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인 신경준이 쓴 산경표(山經表)에서 한반도의 산줄기를 대간(大幹)과
정간(正幹), 정맥(正脈)으로 나타낸 체계를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산경표는 1913년 활자로 인쇄된 책자가 많이 남아 있으며 과거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나라 땅의
산줄기〔山經〕는 하나의 대간과 하나의 정간, 그리고 13개의 정맥으로 이루어졌다.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여러 갈래로 갈라진 산줄기는 모든 강의 유역을 경계지었다.
크게 나누어 동·서 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하는 큰 산줄기를 대간 · 정간이라 하고
그로부터 다시 갈라져 하나하나의 강을 경계 짓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을 정맥이라 하였다.
비폭동(飛瀑洞)
제7곡의 비폭동(飛瀑洞)이며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반월봉(半月峰)인데 반월봉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이곳 폭포에 떨어지며 아름다운 물보라가 생기는데 그 모양이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하여
비폭동(飛瀑洞)으로 불리고 있다고 하며 김사문(金思汶)의 용호구곡 경승안내(龍湖九曲 景勝案內)와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에는 비폭동(飛瀑洞)이라고 하였으나 석각은 비포동(飛㳍洞)으로 새겼져 있다
비폭동(飛瀑洞)
용호서원(龍湖書院)의 목간당(木澗堂)에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이 게판(揭板)되어 있는데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은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남원 지역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덕행을 펼쳤던
영송(嶺松) 김재홍(金在洪, 1867~1939)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용호구곡십영 말미에 호상병수(湖上病叟)는 '용호동에 은거한 병든 늙은이'라는 의미로 자신의 겸칭이라고 하며
낙관의 영송(嶺松)은 김재홍의 아호, 수오재(遂吾齋)는 당호이며 용호구곡의 각석도 용호서원이
건립된 시점으로 추정한다고 하며 제7곡을 용호구곡십영에는 비폭동(飛瀑洞)이라고 하였고,
석각은 비포동(飛㳍洞)으로 새겼다. 㳍로 새긴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각석을 하기에 획이 복잡한 폭(瀑)을 포(㳍)로 빌려 쓰고 폭으로 읽었다.
구룡계곡의 야생화(원추리)
구룡계곡만 찾는다면 육모정에서 계곡 상류 구룡폭포에 이르는 구룡계곡 탐방로는 약 3km 거리로
왕복 3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짧은 코스이지만 수려한 풍광을 지니고 있고,
용호구곡(龍湖九曲)을 이루는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서려있어 사계절 내내 트레킹하기 좋은 곳이다.
그런데 육모정 아래 약 1km 지점에 있는 호경삼거리에서 걷기 시작하면 뜻밖의 풍경들을 만날 수 있고
호경삼거리는 지리산둘레길 주천탐방지원센터(외평마을)에서 약 300m 거리에 있으며
호경삼거리에서 도보답사를 위해 잘 조성해놓은 인도를 따라 걷다보면 호경마을이 나오는데,
이 길에서 누석단과 짐대, 석장승, 그리고 조선중기 청백리로 이름난
옥계(玉溪) 노진(盧禛)선생(1518~1578년)의 별묘(別廟)를 차례로 만나게 되는 코스라고 소개하고 있다
서암(瑞巖)
서암 안내글을 보면 계곡 건너편 바위의 모습이 스님이 무릎을 꿇고 앉아 독경하는 모습과 같다 하여 서암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또한, 계곡 내 바위의 모습이 말이나 소, 돼지에게 먹이를 담아주는
그릇인 '구시'(구유의 경상도 방언)를 닮아 구시소, 곡식 등을 담아주는 쭉정이, 티끌 등의 불순물을 걸러내는 데
쓰인 도구인 '챙이'(키의 전라도 방언)를 닮아 챙이소라고 불리기도 한다.
서암 밑의 웅덩이는 계곡 바닥의 약한 부분이 폭포나 빠른 물살에 의해 깎여 만들어지는 소(沼, Pool)에 해당한다.
구룡계곡의 풍경
한여름 찜통같은 더위에도 구룡계곡의 물소리와 수목의 초록 풍경과 같이 걷는다면 더위는 저만치 물러날 것이다
이렇듯 구룡계곡은 판소리의 고장이자 동편제의 탯자리로 일컬어지는 남원으로서는 상징성이 매우 큰 곳이라
남원 출신의 명창들은 대부분 용소와 구룡폭포에서 소리공부를 하였고, 특히 구룡폭포는 동편제의 비조라 할 수 있는
가왕 송흥록이 득음한 장소로 전해지며, 그 후 송만갑, 박초월 등 당대 최고의 명창들도
이곳에서 득음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구룡계곡길은 ‘소리길’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용소 바로 위에 있는 정자 동호정에 올라 길을 따라 잠시 내려서면, 계곡 옆 소나무 예닐곱 그루가 서있는 곳에 담을 쌓은
‘송력동’이라는 곳인데 담 뒤쪽 산자락으로 작은 계곡이 있는데, 이곳은 음기가 세어 마을 아녀자들이 바람이 난다하여,
그 기운을 막기 위해 돌로 담을 쌓아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으로 나있는 산길은 순환코스로 20분 정도 따라 걸으면 힘들지 않게 다시 육모정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구룡탐방로 입구
여원재에서 구룡탐방로 까지 걸었다 백두대간 여원재에서는 울창한 숲으로 인하여 조망은 볼수 없었지만
구룡폭포를 지나서 부터는 구룡계곡과 함께 걷는길은 눈이 호강하는 길이였다고 하면
계곡의 물소리 또한 귀가 호강하는 길이되었다
한 구간의 백두대간길을 걸었다는것은 우리민족의 능선을 걸어 보았다는 뿌듯함이 발끝에 전해오고
백두대간길에서 만나는 역사적 이야기와 전해내려오는 전설도 내가 한국인 이라는걸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산행종료
참 오랫만에 백두대간길을 걸었다 백두대간 표지석과 인증하는 것도 재미인데 여원재엔 표지석이 없는게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여원재의 역사적 가치가 있듯이 백두대간 표지석도 세워졌음은 바램이다
남원 수정봉(南原 水晶峰) 산행은 백두대간(白頭大幹)길을 따라 수정봉(水晶峰)산정에서 부터
한여름속 구룡계곡(九龍溪谷)에 빠져보는 시원함이 있는 산행길이였다
※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
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
태백산맥은없다 조석필 사람과산.
한국1000산 신명훈 깊은솔
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 오혜령 박옥남 복랩
지리산둘레길 홈페이지
남원시 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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