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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늑대 FORCE
완주 모악산(完州 母岳山).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모악산(母岳山)능선을 따라 금산사(金山寺)까지 걷다 본문
완주 모악산(完州 母岳山).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모악산(母岳山)능선을 따라 금산사(金山寺)까지 걷다
바다늑대FORCE 2024. 5. 19. 21:24
완주 모악산(完州 母岳山)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모악산(母岳山)능선을 따라 금산사(金山寺)까지 걷다
▲ 완주 모악산(完州 母岳山)
높이 : 793.5m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과 김제시 금산면에 걸쳐 있는 산.
▲ 완주 모악산(完州 母岳山) 나의 산행일 :
2024년05월19일 일요일 날씨 맑음
▲ 완주 모악산(完州 母岳山) 나의 산행코스 :
모악산관광단지→대원사 →수왕사 →무제봉 →모악산 →북봉 →매봉 →백운정
→ 순례길 → 금산사 → 금산사주차장
12.6km 4시간57분(트랭글 앱기준)
▲ 완주 모악산(完州 母岳山) 개요 :
완주군 모악산은 높이 793.5m이며 전주시 남서쪽 12㎞ 지점에 위치하며, 아래로 김제평야와 만경평야가 펼쳐진다.
모악산 정상에 어미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어 ‘모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호남평야의 젖줄 구실을 하는 구이저수지·금평저수지·안덕저수지와 불선제·중인제·갈마제 등의
물이 모두 이 곳 모악산으로부터 흘러든다.
정상에 올라서면 전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남으로는 내장산, 서쪽으로는 변산반도가 바라다 보인다.
동학농민운동과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큰 나무는 거의 베이거나 불에 타 사라졌지만,
4월에 피는 벚꽃과 배롱나무 꽃이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예로부터 논산시 두마면의 신도안(新都安), 영주시 풍기읍의 금계동(金鷄洞)과 함께 명당(名堂)이라 하여
난리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이자 각종 무속 신앙의 본거지로 널리 알려져 왔다.
신라 불교 오교구산(五敎九山)의 하나로 599년(백제 법왕 1)에 창건된 금산사(金山寺)를 비롯해
귀신사(歸信寺)·대원사(大院寺) 등의 사찰이 있다. 1971년 12월 산 일대가 모악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완주 모악산(完州 母岳山)산행지도
▲ 완주 모악산(完州 母岳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4년 05월19일 일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날씨는 한여름 같이 햇살이 뜨겁고 맑은 날씨 이지만 종종 비가 자주 내려서 일조량이 부족한 농작물도
많은시기고 오눨에 설악산에는 10cm눈이 내렸다고도 한다
몸으로 느끼는 이상기온 오늘도 산악회따라 산행을 위해 길을 나서본다
진주지역엔 일요일마다 각 산악회에서 산행지를 공고하는데 늘 산행지를 보고
미답지 이거나 산행코스가 가보지 않았던 산길이라면 늘 산악회 따라 길을 나선다
오늘은 진주 산보산악회 따라 완주 모악산으로 간다 모악산은 예전 100대명산 도전때
원점산행한 곳이지만 오늘은 모악산 산정을 넘어서 금산사 까지다
모악산관광단지
모악산관광단지에 있는 모악산 표지석인데 예전엔 여기서 단체사진도 찍었던 곳이다
여기는 회전 교차로 이며 오를수 있게 계단도 있고 표지석 뒷편은 소나무가 감싸고 있는듯 식제되어 있다
모악산관광단지 주차장엔 승용차 관광버스가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는데 저 많은 사람들이
모악산 산속에 있다는 것인가 의문이 들 정도로 넓은 주차장이 주차차량으로 빼곡했기에 그렇다
여가서 부터 10여분 정도 걸어가야 들머리가 나오며 산오 가는사람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틈으로
들머리를 향해 걸어본다
모악산은 이름의 유래를 보면 금산사지(金山寺誌)에 엄뫼 라는 말이나 큰뫼 라는 말은 아주 높은 산을 의미하는데
한자가 들어오면서 ‘엄뫼’는 어머니산이라는 뜻으로 의역해서 모악 이라 했고,
큰뫼 는 큼을 음역하고 뫼는 의역해서 금산(金山)이라고 적었다고 되어 있다.
모악산 들머리(수박재다리)
계절의 여왕 오월답게 신록이 산야를 초록으로 물드리고 있고 햇살은 한여름 같이 뜨겁네 내리고 있다
모악산은 모악산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과 김제시 금산면에 걸쳐있는 산이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모악산 꼭대기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큰 바위가 있어
모악산이라 했다고 전하며 원래 이름이 금산이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예부터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호남 사경 중 하나로 꼽혔던 모악산은 한국의 곡창으로 불리는 김제와
만경평야를 그 발아래 두고 있으며 모악산 정상에 올라 멀리 바라보면 동으로 전주가 발아래 있고,
남으로는 내장산, 서쪽으로는 변산반도가 멀리 보인다고 한다.
대원사(大院寺)
모악산 산행중 첫번째 만나는 사찰인데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열반종(涅槃宗)의 개산조인
보덕(普德)의 제자 일승(一乘) · 심정(心正) · 대원(大原) 등이 670년(문무왕 10)에 창건한 사찰이 라고 한다.
이들은 열반종의 교리를 배운 뒤 스승이 있는 경복사(景福寺)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하며
그 뒤 1066년(문종 20) 원명(圓明)이 중창하였고, 1374년(공민왕 23) 나옹(懶翁)이 중창하였으며
1612년(광해군 4) 진묵(震默)이 중창하였고, 1733년(영조 9) 천조(千照)가 중창하였다.
그리고 1886년(고종 23) 금곡(錦谷)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모악산 산길
요즘 산길을 걷다보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산이 많이 젊어졌다는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젊은 청춘들이 산에 오르고 있었다
대원사를 지나면 된비알 구간이 많지만 저럼은 사람들을 보미 덩달라 에너지를 얻는듯 하다
모악산은 백두대간 호남정맥의 주 능선에서 서쪽으로 벗어난 자리에 있는 모악산은 동쪽의
산줄기에서 뻗어 내려온 산이지만 해발고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잔구성 산지의 특징을 보여준다.
모악산의 서부지역은 대체로 평평한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호남평야의 일부를 구성한다.
모악산 산길
모악산에서는 원평천과 두월천의 발원지 이며 원평천과 두월천은 호남평야를 가로지르고
모악산의 북쪽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삼천천을 형성하여 전주시를 관통하며
모악산은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에 넓게 자리한 평야의 동쪽에 우뚝 솟아 서부의 평야지대와
동부의 산지를 구분하는 분수령이며 호남평야의 전망대로 불리기도 한다.
모악산도립공원을 구성하는 산지에는 모악산을 비롯하여 안덕봉, 구성산, 매봉산 등이 있고
산줄기의 주 능선은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고 이로부터 분기한 능선이 동서 방향으로 펼쳐진다.
식생은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신갈나무가 주로 분포하고 정상부에는 철쭉꽃이 군락을 형성하며
고도가 낮은 저지대에서는 소나무와 느티나무 등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수왕사(진묵조사전 震默祖師殿)
수왕사는 산속주거시설 같은 작은 암자이지만 수왕사는 고구려 보장왕 때 백제로 망명한 보덕이
680년 수도 도량으로 창건했고, 1125년에 숙종(1095~1105)의 넷째 아들인 징엄이 중창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04년에 진묵대사(1562~1633)가 재건했으며,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모두 불에 타 소실된 것을 1953년에 석진이 중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묵대사의 진묵대사의 이름은 일옥이며 진묵은 그의 호이며
대사는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났는데, 이 화포리란 곳은 옛날의 불거총으로
부처가 살았던 마을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7세에 출가하여
주로 완주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봉서사에서 선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불경을 강구하면서
일생을 마쳤다 고 하며 그의 법통을 이은 종통이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그이 신비스러운 기행이적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수왕사 약수터
모악산 사절에는 절 옆 바위틈에서 피부병, 신경통,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석간수가 흘러와
전북도민들 사이에서 약수터로도 유명했다고 하는 약수터 이며 나도 물바가지에
수고꼭지를 돌여서 물을 먹어 더위와 갈증을 식혀 보았다
수왕사 약수터 옆의 수왕사는 태고종 사찰로 주지스님 개인 소유에 가깝다고 한다.
수오아사 약수터에서 다시 내려와 정각의 좌측에 있는 산길을 따라 산정으로 걷는다
모악산0.8km안내표지목
여기까지는 대부분 된비알 구간이며 조금씩 능선으로 이어지다가 산정가까이 접할수록 오르막길이 어어진다
숲이 울창하여 조망은 전혀 볼수가 앖고 산이 주는 초록의 싱그러움과 산새소리와 벗하여 걸을 뿐이다
모악산은 도립공원인데 전주시 근교에 자리하여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으며 전통 사차라과
관련한 유적들이 많아 모악산도립공원을 찾는 방문객들이 많아졌다고 하며
탐방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자연적으로 이용되어 온 오솔길과 지형 여건을 최대한 고려하여
탐방로를 신설하였다고 하며 모악산도립공원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120만 명 이상 이라고 한다.
초록의 숲길
온통 초록으로 물드린 산길을 걷다보면 내 눈이 호강하고 산이주는 좋은공기에 폐도 청소를 한다
얼굴과 등골에는 찌드린 세속의 땀이 밖으로 배출되고 산이 주는 모든것을 감사하며 걷는다
모악산의 주요 관광자원으로는 장군봉, 눌언계곡, 금동계곡 등의
자연 경관과 금산사, 대원사, 수왕사, 귀신사, 청룡사 등의 주요 사찰을 비롯하여
미륵신앙의 본거지인 증산교 본부가 있고 문화재로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금산사 미륵전을 포함하여
노주, 석련대, 혜덕왕사탑비, 오층석탑, 금강계단, 육각 다층석탑, 당간지주, 심원암 삼층석탑, 대장전, 석등 등
10점의 보물이 있다고 하며 귀신사의 대적광전(보물, 1985년 지정)과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2007년 지정)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모악산정상0.5km 안내표지목
모악산도립공원을 구성하는 산지에는 모악산을 비롯하여 안덕봉, 구성산, 매봉산 등이 있고
산줄기의 주 능선은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고 이로부터 분기한 능선이 동서 방향으로 펼쳐진다.
식생은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신갈나무가 주로 분포하고 정상부에는 철쭉꽃이 군락을 형성하며
고도가 낮은 저지대에서는 소나무와 느티나무 등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여름날 모아그산 산길을 신갈나무 그늘 덕분에 뜨거운 햇살을 피하면서 걸을수 있었다
쉼터의 암석
된비알 구간을 담삐질거리며 올라모면서 잠시 휴식을 하며 수준 보충을 하였다
쉼터구간 암석은 마치 수반위에 잘 올려놓은 경치석처럼 보였는데 주변 작은 나무랑 한폭의 그림을 만들었다
모악산의 암석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지며 과거에는 모악산 기슭의 산지와 하천에서 금을 채취하기도 하였다고 하며
모악산도립공원에는 말나리, 뻐꾹나리, 꽃창포, 쥐방울덩굴, 태백제비꽃 등의 희귀식물이 서식하고
모악산에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II급인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망
구이면(九耳面) 과 구이저수지가 마치 강물처럼 산골짜기 중심으로 조망이 되었다
구이면(九耳面) 은 본래 전주군(1935년 10.1일 이후는 완주군)지역으로 구이면 이라하여
상보, 하보, 평촌, 소용, 상철, 하철, 주리, 태실, 박성, 화원, 난산, 봉성, 신원, 신흥, 효간, 광곡, 구암, 청명, 칠암,
와동, 덕천, 지등, 두방, 두현,하학, 상학, 유광, 원리, 신전, 항가, 구복, 무지, 망월, 반월, 마음, 성덕, 교동, 계곡,
염암, 대덕, 장파, 안덕, 백여, 호동, 용동, 신정, 상용, 하용의 48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난전면의 총명리 석구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평촌 광곡 백여의 9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88년 1월1일 석구리, 원당리, 중인리,
용복리의 4개 리가 전주시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구이저수지는 한국농어촌공사에서 관리하는 인공 저수지로 전북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에 위치하며
유효저수량 10,878천㎥으로 전주·완주 평야(수혜면적 2,753ha)의 들녘에 물을 공급한다고 한다
전주시의 조망
모악산 산정 바로 아래에 있는 전망대 인데 여기서는 전주시내가 발아래 한눈에 펼쳐지는 곳이다주 모악산(完州 母岳山)
백두대간 호남정맥과 만경평야의 경계부에 위치하여, 시의 남쪽에는 북동∼남서방향으로
모악산(母岳山) · 고덕산(高德山, 603m) · 묵방산(520m) 등의 노령산맥에 속하는 산지가 완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전주시내에는 기린봉(麒麟峰, 306m) · 남고산(南固山, 273m) · 완산칠봉(完山七峰, 163m) · 다가산(多佳山) ·
홍산(洪山, 216m) · 천잠산(天蠶山, 153m) · 남고산(南固山, 273m) · 건지산(乾止山) 등의 구릉지가 발달해 있다.
전주시가지는 시의 남동쪽에 있는 기린봉 · 남고산 · 완산칠봉 · 다가산 등의 구릉지에 둘러싸인
전주천의 충적평야에서 시작하여 전주천 유역을 따라 북서쪽으로 점차 발달하였다.
기반암은 편마상화감암이 넓게 분포하며 대부분 지역은 풍화 · 침식되어 낮은 지대를 이루지만
남쪽에서 모악산 · 고덕산 등의 산지를 이루기도 한다.
완주 모악산(完州 母岳山) 793.5m
예전에 왔을땐 없었던 정상표지석이 멋지게 모악산 산정을 지키고 있었다
모악산에는 산금(山金)이 있고, 주변의 금산면 · 금구면을 흐르는 원평천(院坪川) · 두월천(斗月川)의
하상(河床)에는 사금(砂金)이 있다. 주능선은 북동∼남서 방향이나 지능선이 동과 서로 뻗어 있다.
동쪽 사면은 만경강의 집수역(集水域)으로 계곡의 물은 구이면의 전주저수지에 흘러들어
전주 서쪽을 흐르는 삼천(三川)이 된다.
서쪽 사면은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의 원평천 집수역이 된며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북쪽 금구면의 두월천과 남쪽 원평천은 330년(비류왕 27)에 축조된 벽골제(碧骨堤)의 수원이 되었다.
모악산은 우리나라 남부의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이며, 맑은 날이 많고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식물분포학상으로 온대형에 속하며 식생은 대체로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신갈나무가 우점하고
정상부에 아교목층의 철쭉꽃이 군락을 이루며 저지재는 소나무가, 계곡에는 층층나무와 느티나무 군락이 분포한다.
완주 모악산(完州 母岳山) 793.5m
모악산은 김제평야의 동쪽에 우뚝 솟아 호남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며
모악산은 전주, 김제 일원의 근교산으로, 유명한 금산사와 함께 이 고장 사람들의 당일 산행지로 각광 받는 산이다.
모악산 정상에 어미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어 ‘모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호남평야의 젖줄 구실을 하는 구이저수지·금평저수지·안덕저수지와 불선제·중인제·갈마제 등의
물이 모두 이 곳 모악산으로부터 흘러든다.
모악산 정상에는 큰 송신탑이 우뚝 버티고 있어 정상일대가 출입금지 지역이어서
송신탑 바로 아래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송신탑 옥상부분도 올라 전경을 볼수 있다
송신탑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
금산사와 금평저수지가 발아래 펼쳐지고 금펴저수지 저 능선을 따라 하산할 계획이다
전주시는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토였으며, 백제가 이 땅을 영유하면서 완산(完山)이라고 불렸고
555년(위덕왕 2)에 완산주가 설치되었으나 11년 뒤에 주가 폐지되었으며
백제시대의 완산은 아직 지방 행정도시로는 발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된 뒤 신라에 병합되어 685년(신문왕 5) 완산주가
다시 설치되었고 용원(龍元)을 주의 총관(摠管)으로 임명하면서부터 전주는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지방의 행정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송신탑 옥상에서 바라본 전주시 풍경
전주시를 엯적으로 보면 1589년(선조 22)에는 정여립(鄭汝立) 모반사건이 일어났고
임진왜란 때 이복남(李福南) · 황박(黃僕) · 정담(鄭湛) 등이 웅치(熊峙)에서, 권율(權慄) · 황진(黃進) ·
공시억(孔時億) 등이 이치(梨峙)에서, 경상도에서 전라도지방으로 넘어오는 왜군을 맞아 싸워 물리쳤고
그러나 정유재란 때에는 왜군이 전주부성에 입성하여 경기전 등을 파괴하였다.
병자호란 때에는 여산에 의병청(義兵廳)이 설치되었으며, 당시 전라감사였던 이시방(李時昉)은
호소사(號召使) 정홍명(鄭弘溟)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공주까지 이르렀으나 화의가 성립되어 파하였다.
1734년(영조 10) 부성을 개축하고 남문을 명견루(明見樓)라 불렀으며, 1767년 화재로 성문루가 소실되었는데,
남문 · 서문을 중건하여 풍남문(豊南門) · 패서문(沛西門)이라 칭하였다.
1771년에는 조경묘(肇慶廟)를 창건하여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李翰)의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1775년 완동문(完東門) · 공북문(拱北門)을 준공하였으며, 1812년(순조 12) 남고산성(南固山城)을 중건하였다.
1791년 천주교 신도였던 윤지충(尹持忠)은 천주교 의식에 따라 어머니의 장례를 지냄으로 인해
외종형 권상연(權尙然)과 함께 사형을 당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송신탑 옥상에서 바라본 김제방향 풍경
김제방향은 미세먼지로 인하여 조망이 흐릿하게 보였고 모악산지에는 함금석영맥(含金石英脈)이 많아
산금광산이 있었으며, 여기에서 발원한 원평천(院坪川)과 두월천(斗月川) 유역인 금구면 · 금산면 등은
사금산지로 유명하였다. 북서해안의 산지에는 선캄브리아기의 결정편암이 분포한다.
이상의 산지를 제외하고는 동진강 · 원평천 · 만경강 주변의 광대한 충적평야로 이루어진 김제 · 만경평야이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시의 북쪽과 남서쪽 경계를 이루며 황해로 유입되고,
그 밖에 작은 하천들인 모악산지에서 발원한 원평천과 두월천, 백산저수지에서 발원한 신평천도 황해로 흘러든다.
또한 시의 북동쪽에는 부용천이 북류해 만경강으로 흘러들며 이들 하천은 감조구간이 길기 때문에
하류에 배수갑문을 설치해 바닷물의 유입을 막고 농업용수로 이용한다.
메봉방향 하산길
메봉까지는 2.0km이며 금산사 까지는4.4km이다 이곳 산길에서는 산행자가 없어 유유자적 신선한 공기 독차지 하였다
완주 모악산은 이른 봄의 3-4월, 가을 산행 순으로 인기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진달래 철쭉이 유명해서 그런가 보다
모악산은 진달래와 철쭉이 유명한 호남 4경의 하나이며 도립공원으로 1971년 지정되었고
산림청 선정100대 명산에 속하며 신라 말에 견훤이 이 곳을 근거로 후백제를 일으켰다고 전해지며
국보 제62호인 미륵전을 비롯하여 대적광전(보물 제467호)·혜덕왕사응탑비(보물 제24호)·
5층석탑(보물 제27호)등 많은 문화재가 있는 금산사(金山寺)가 있는 곳이다
초록의 산길
뜨거운 햇살이 초록의 숲길에도 힘을 못펴는듯 하며 선선하게 초록능선길을 걷는게 시선함이 더 좋다
나는 이러한 산길이 너무 좋아하는데 하루 종일 걸어도 피곤함도 잊을듯한 아름다운 길이다
완주에는 전해지는 설화가 있는데 대사퇴치설화는 옛날 가난한 집에 한 처녀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비오는 날 두꺼비 한 마리가 부엌으로 들어와 나가지 않으므로 처녀가 밥을 조금씩 나누어주었더니
두꺼비는 점점 자라 개만큼 크게 되었다.
그런데 그 마을에는 큰 뱀이 있어 해궂이를 하는 통에 마을사람들은 매년 처녀를 한 명씩 제물로 바쳤는데,
그 해에 이 처녀를 제물로 바치려 하자 두꺼비는 처녀를 따라가서 큰 뱀과 서로 독기를 뿜으며 싸우다가 함께 죽고
처녀는 무사히 구출되었고 이에 두꺼비를 고이 묻어주고 큰 뱀은 불에 태우니 석달 열흘 동안 탔다고 하며,
이후로는 마을에 재앙이 없어지게 되었다 한다.
이와 비슷한 유형으로 한벽당 아래에 있던 지네를 퇴치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매봉0.9km안내표지목
여기서는 매봉과 모악산 정상 그리고 매봉갈림길이다 잠시 앉아서 수분 보충도 하고 산이주는 시선함을 오감으로 느꼈다
모악산의 정상에 서면 온갖 산들이 산수화인 듯 펼쳐지는곳이다
북쪽으로 미륵산과 계룡산, 대둔산, 마이산, 운장산, 장안산이 지척에 보이고
동쪽으로 성수산 덕유산, 지리산까지 이어지며, 남쪽은 무등산, 회문산 서쪽은 내장산, 방장산,
변산까지 겹겹이 신비한 산세를 자랑하는 모악산 산정에서 바라보는 조망이며
아울러 너른 김제평야와 날씨가 맑은 날 멀리 서해까지도 볼 수 있어 그 매력을 더한곳이다
매봉612m
모악산 매봉이며 표지석은 없고 안내표지목이 그 저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전주는 전통의 고장, 국악의 고장, 맛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덕진공원부근에 국악당이 있고
전주대사습놀이, 농악경연대회 등이 해마다 열리고 풍남제가 열리고 있다.
전통음식이 유명하고 전주십미(全州十味)라 하여 파라시·열무·녹두묵·서초·애호박·모래무지·게·무·콩나물 ·
미나리로 조리한 음식이 유명하다고 하며 전주십경으로는 기린토월(麒麟吐月)·한벽청연(寒碧晴煙) ·
남고모종(南古暮鍾)·다가사후(多佳射帿)·비비낙안(飛費落雁)·덕진채련(德津採蓮) ·
위봉폭포(威鳳瀑布) · 동포귀범(東浦歸帆) 등 전주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하고 있다.
모악산 하산길
모악산은 특히 맑고 강한 기운이 서려 있는산은 예로부터 깨달음의 수행지로 유명한데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본산지이자 동학운동의 근거지이며, 그 이전부터 내려온 한국 선도의 명맥을 잇는 곳이다.
국내외 명상인들이 방문하는 선도 명상의 성지로 일컫는 이곳에는 깊은 명상으로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장소가 곳곳에 있다고 하며 외모악에 해당하는 완주군 모악산 도립공원 입구에서
힘찬 물소리를 따라 동쪽 계곡을 오르면 선도의 계곡과 신선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정상에 못 미쳐
하늘 아래 첫 번째 깨달음의 자리 라는 의미의 천일암을 향해 오르는 길에 선도 명상 포인트가 있다고 한다
모악산 하산길
유유자적 걸을수 있는 산길이 펼쳐졌는데 걸을때 마다 산새소리와 계곡이 근처에 있는지 물소리도 졸졸 들여왔다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에 위치한 모악산은 엄뫼라는 말로 어머니 산이란 뜻으로 모악이라 했는데
구전(口傳)에 의하면 모악산(793m) 꼭대기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큰 바위가 있어서
모악산이라고 전하는데 그 바로 맞은편에는 모악산과 마주하는 경각산(660m)가 위치하고 있고,
전설에 의하면 모악산과 경각산이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해 흘린 눈물이 구이(九耳)저수지를 이루었다고도 한다.
최근에는 저수지 주변과 술 박물관까지 둘레길을 조성(한바퀴 8.8km 약 3시간 소요)하여
전주에서 걷기 좋은 길로 좋은 평이나 있기도 하다.
구이저수지 둘레길을 걷다 보면, 저수량을 측정하고 물관리(통수)를 위한 취수탑이 있고 취수탑 입구 기둥에
용지불갈(用之不渴) 한자어가 있는데 아무리 써도 닳거나 말라 없어지지 아니함 이란 뜻이라고 한다.
白雲亭(백운정)
매봉에서 숲길이 주는 향기따라 내려와보니 백운정이란 정각이 있고 조금 쉬고 있으니
맨발로 산길을 걷는 사람이 종종 보였다 아마도 여기 구간은 맨발로 걷기가 좋은 코스 인듯 싶었다
여기 삼거리에서 도통사를 갈수가 있고 금산사로도 연결되는 코스가 있었다
나는 금산사를 둘러보기 위해 발길을 금산사 순례길로 돌렸다
순례길
순례길은 여기서 부터 금산사 까지 이어져 있는데 달팽이 그림에 화살표인데 아마도 달팽이 처럼 천천이 걸어라는 뜻같다
금산사를 정점으로 모악산의 품안에서 한바퀴 돌아보는 둘레길로 "마실길과 순례길"을 연계한 8km(3:30)길라고 하며
관광안내센타에서 시작되는 오솔길은 가슴뛰는연초록 잎이 눈을 즐겁게 하고 마실길따라 닭지붕~도통사~백운정에서
한숨 돌리고 순례길로 들어서는 곳이기도 하다 정겨운 숲길에서 마음이 정화되고 새소리도 힐링하며
소나무숲~편백나무 쉼터지나 금동계곡 물소리에 또한번 감탄하는 순례길이다
순례길에서 휴식
순례길을 걷는 사람은 많지는 않았지만 가끔 맨발의 청춘처럼 맨발로 유유자적 걷는 모습이 산꾼같지는 않고
마을 사람들이 가끔 절에 왔다가 맨발로 운동삼아 걷는듯 보였다
여기서는 눌연계곡이 있는데 금산사가 들어선 계곡이며 금산사계곡을 일명 눌연계곡이라고 한다.
굴곡이 심하고 물 흐름이 마치 말을 더듬거리는 듯 하다하여 더듬거릴 눌(訥)자를 썼다고 전해진다.
이 계곡은 길이가 4km에 불과하지만, 모악산 일원에서는 사게절 수량이 마르지 않는 곳이다.
모악산 주능선 핼기장에서 김제 방면 평야지대를 내려다볼 때 금산사를 부드럽게 품고 있는 모습으로
내려다보이는 계곡이며 눌연계곡에는 먼 옛날 15년이나 늙은 닭이 주인을 배신해 구렁이와 모사를 꾸미다가
주인의 지혜로 구렁이와 함께 죽임을 당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순례길로 하산
모악산 일원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동학혁명, 6.25를 겪으면서 여러 차례 벌채되어 원시림은 드물지만
1971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우사종교 건물들이 철거되고, 76년 11월부터 91년까지 수립된
모악산 도립공원 개발 기본계획이 착실히 시행되어 오늘에 이르는 동안 소나무를 비롯한
잡목들과 산릉과 사면을 뒤덮은 산죽들이 수해(樹海) 를 이루어 눌연계곡을 비롯한 산 전체가
심산유곡의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순례길 안내도
순례길 편백숲지나면 안내도가 있는데 그 길이도 만만치 않게 길다
모악산 산행은 금산사에서 0.8km 거리인 심원암 갈림길(삼거리)에서 오른쪽 길이 모악정으로 가는 산길인데
모악정에서 들머리를 하여 하산 역순으로 오르는 코스도 있는데 모악정 방면으로 10분 거리에 이르면 삼거리가 나타난다. 왼쪽 계곡길이 눌연계곡으로 가는 길이며 눌연계곡으로 들어가 45분 가량 올라가면 심원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안부 삼거리이며 이 삼거리에서 오른쪽 능선길로 15분 오르면 북서릉 헬기장이다.
눌연계곡으로 들어서는 삼거리에서 직진해 20분 거리에 이르면 모악정이 있고 휴식장소인 모악정에서
오른쪽 길은 장근재로 가는 코스이며 모악정에서 왼쪽 지능선으로 발길을 옮겨 50분 가량 올라가면
북서릉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는 '금산사 3.8km, 독배 중인리 3.8km, 정상 구이 3.6km' 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 2분 거리가 해발 730m 위치인 헬기장이며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8분 더 오르면 무제봉에 닿는다.
정상은 북사면 길을 따르고, 동곡암이나 전주김씨 시조묘는 남쪽 길을 따르면 된다고 한다.
연리지 포토존
연리지 포토존이라고 하는데 내가 차즈지를 못했는지는 몰라도 연리지는 주변에 보이지 않았다
모악산 금산사의 봄 경치는 변산반도의 여름 풍경, 내 장산의 가을 단풍, 백양사의 설경과 함께 호남사경(湖南四景)으로
꼽힐 만큼 그 절경이 대단하여 상춘객(賞春客)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배롱나무 꽃도 4월이면 장관을 이룬다고 하는데 다음에 카메라 울러메고 와야겠다
금산사 주변의 고즈넉한 벚꽃은 산사의 고요함과 정갈함이 더해져 한적한 벚꽃을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라고 하며
금산사의 벚꽃은 무엇보다도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하게 피어난다고 한다
금산사0.7km안내표지목
여기서 부터는 넓다란 산길이 조성 되어 있으며 모악산 정상 까지는 4.1km라고 안내 되어 있다
옛 기록에서 보면 모악산에 무려 80여 개소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심원암(深源庵)·청련암(靑蓮庵)·
용천암(龍天庵)·부도전(浮屠殿)·대원사(大院寺)·귀신사(歸信寺) 등이 있고 미륵신앙의 기도처가 곳곳에 있다.
귀신사는 서쪽 사면의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것으로 676년(문무왕 16)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이 절에는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보물, 1985년 지정) · 석탑(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
부도(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등의 문화재가 있다고 한다.
금산사 미륵전(金山寺 彌勒展)
미륵전은 신라 법상종시대에 미륵본존(彌勒本尊)을 봉안한 불전으로 사찰의 중심건물인 금당이며
초창(初創)된 시기나 당시의 건물형태를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진표율사가 중창시에
미륵장육불상(彌勒丈六佛像)을 조성해 3층전인 금당에 봉안했음이 삼국유사와 5층석탑중수기(1971년 발견)를
비롯한 금산사사적(金山寺事蹟1705년)·금산사지 金山寺誌1921년) 등에 기재되어 있다.
또 현재도 소조불상(塑造佛像)의 대좌 아래에 커다란 철제 수미좌(須彌座)가 남아 있어
과거의 장육상대좌임을 추측할 수 있다.
당시의 불상은 1597년 정유재란 때 건물과 함께 소실된 후 1627년(인조 5) 소조삼존상을 조성하였다.
현건물은 1601년부터 1635년 사이에 수문에 의해 재건된 뒤 4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층은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은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은 미륵전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의 규모는 1층이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약 79평, 2층은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약 50평,
3층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약 28평 가량 된다.
건물은 총높이가 20m 가량 되는 3층인데 내부는 통층으로 거대한 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당초부터 계획된 것으로 추정되며 가구방식은 1층에 고주 4개와 20개의 변주(邊柱)를 세워
이들 사이에는 굵직한 퇴보를 걸고, 그위에 2층 변주를 세우고 이를 다시 고주와 퇴보로 결구하였다.
3층은 고주가 그대로 우주(隅柱)가 되고 그위에 지붕을 올렸다.
금산사(金山寺) 보제루
금산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1400여 년의 역사를 이어 오늘날까지 법등을 밝혀온 유서 깊은 명찰이다.
금산사 일원은 사적 제49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호남평야 가운데 우뚝 솟은 모악산 서쪽 자락에 위치해 있다.
정유재란 때 왜군의 방화로 모든 건물과 산내의 40여 개 암자가 완전히 소실되는 등 수난을 겪었으나
이후 많은 문화재가 조성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1년(599년)에 나라의 복을 비는 자복사資福寺로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금산사의 숭제법사崇濟法師에게 출가했다는 기록과 통일신라 초에 활동한
의적(義寂81-?) 스님이 당나라 현장스님에게 유학하고 돌아와 금산사에 머물며 25부 7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는 기록들을 통해 당시 금산사가 창건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금산사가 대사찰의 면모를 갖춘 것은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가 주석하며 시작되었다.
진표율사는 미륵전을 짓고 미륵장륙상을 조성하였으며 해마다 단壇을 열어 법시法施를 널리 베풀었다.
후삼국시대에 금산사는 다시금 역사서에 등장한다.
후백제의 군주 견훤이 아들 신검 등에 의해 금산사에 감금되었다가 탈출하여 왕건에게 투항하였다는 내용이다.
금산사에는 ‘견훤성문’으로 불리는 개화문과 석성 등 견훤과 관련된 유적이 전하고 있다.
금산사 대적광전(大寂光殿)
금산사 대적광전은 장대석기단 위에 세워진 앞면 7칸, 옆면 4칸의 단층팔작지붕 건물이며
앞면의 7칸에는 모두 빗살 무늬로 장식된 두 짝 열개문을 달았는데 중앙칸만 출입문이고 나머지는
밑부분에 머름(미닫이 문지방이나 벽아래 중방에 대는 널조각)을 설치한 광창이다.
옆면은 4칸으로 제일 앞쪽 툇간에 한 짝 출입문을 달아 사용했고 나머지는 회벽으로 위쪽에 인방을 가로질렀다.
공포는 내외이출목이며 다포계 공포구성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고 공간포도 넓은 주간에 1개씩만 두어
특수한 구조로 보이는데 중앙칸만은 공간포를 2개 두었다.
건물 내부에는 바닥에 마루를 깔고 뒷면에 6개의 기둥을 세운 뒤 그 기둥 사이를 후불벽으로 만들었다.
그앞에 불단을 설치하고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 2구씩 모두 5구의 불좌상과
그 사이에 보살입상 6구를 안치했는데 이러한 불상의 배치는 매우 독특하다.
그위에는 닫집을 설치했고 대들보는 둥그스름하게 다듬어졌는데 좌우측면 평주에서
충량이 3개씩 올라가 대들보에 걸리게 하였다.
충량의 형태가 곡선으로 된 점이 특이하며 건물의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나약한 맛을 갖게 한다.
천장은 불단 바로 위를 1단 더 높이고 가장자리는 대들보 위 충량 위쪽에 붙여 반자를 꾸며
전체적으로 층급천장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건물내부는 낮고 가득찬 느낌을 주고, 건물외부의 정면관도 낮고
옆으로 길게 전개되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금산사 일주문
일주문 편액에는 모악산 금산사(母岳山 金山寺 )라고 걸여 있으며 그 크기가 장엄하다
자비로운 어머니 대자(大慈)의 땅에서 미륵신앙의 중심사찰로 굳게 자리매김한 금산사이라고 하며
금산사를 미륵도량으로 만든 진표율사(8세기 활동)의 일생을 기록한 책과 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자 했던 진표스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곳이며
후백제의 중요한 사찰이었던 금산사는 고려시대 문벌귀족 이자연의 아들 혜덕왕사
소현(1038-1096)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호남의 중심사찰로 자리매김하였다고 한다
금산산사주차장에서 바라본 모악산
저멀리 송신탑이 보이는곳이 모악산 산정이며 제법 많이 걸어서 내려온듯 보였다
금산사는 모악산이 감싸고 있는 지형같이 보이며 모악산은 봄 벚꽃, 가을 감나무 숲이 운치를 더해주며
금산사-심원암-산정-수왕사-원기리로 이어지는 산행로가 있어 산객과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고 하며
일대에서는 10월에 민속축제인 김제 벽골문화제가 열리며, 여관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편익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전주와 김제 중심시가지에서 금산사까지 시내 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동쪽 산록으로 전주시와 완주군을 연결하는 국도가 나 있다는 곳이기도 하다.
산행종료
무척더윘고 초입구간이 된비알이라 땀을 많이 흘린듯한 모악산 산행이며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모악산(母岳山)능선을 따라 금산사(金山寺)까지 걸었는데 매봉 그리고 순례길을 따라 걸어보면
모악산 산 자체는 특별하게 볼만한건 없지만 산정에서의 사방팔방의 조망은 일품이라 생각하고
금산사의 창건이야기와 미륵전 그리고 전주시의 전래되는 이야기를 생각해보는 산길이였다
※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
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
한국1000산 신명훈 깊은솔
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오혜령 박옥남,복랩
전주시, 완주군, 금산사 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