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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불암산(南楊州 佛巖山). 불타(佛陀)를 닮은 바위라 불리는 불암산 산정에서 북한산 능선을 바라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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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불암산(南楊州 佛巖山). 불타(佛陀)를 닮은 바위라 불리는 불암산 산정에서 북한산 능선을 바라보다

바다늑대FORCE 2024. 4. 28. 22:12

남양주 불암산(南楊州 佛巖山)

불타(佛陀)를 닮은 바위라 불리는 불암산 산정에서 북한산 능선을 바라보다

 

▲ 남양주 불암산(南楊州 佛巖山)

   높이 : 508m

   위치 : 서울특별시 노원구,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에 걸쳐 있는 산

 

 남양주 불암산(南楊州 佛巖山)나의 산행일 :

    2024년 04월27일 토요일 날씨 맑음

 

▲ 남양주 불암산(南楊州 佛巖山) 나의산행코스 :

상계3동공영주차장 → 정암사→공원관리사무소삼거리 →불암산정상 삼거리 →불암산성 → 불암산정상 삼거리

  → 남양주삼거리 → 거북바위 → 불암산 → 불암정 → 체력단련장 → 정암사 → 상계3동공영주차장

5.01km  3시간 소요(트랭글 앱기준)

 

▲ 남양주 불암산(南楊州 佛巖山)개요 :

불암산 높이는 해발고도508m이며 서쪽으로는 북한산이 마주보이고, 북서쪽과 북쪽으로는

도봉산·수락산이 각각 솟아 있다. 큰 바위로 된 봉우리가 중의 모자를 쓴 부처의 형상이라 하여 이름 붙였으며

필암산(筆巖山)·천보산(天寶山)이라고도 한다.

남북방향으로 능선이 뻗어 있으며, 산세는 단조로우나 거대한 암벽과 울창한 수림이 아름다운 풍치를 자아내고 있다.

기반암은 화강암이며, 당현천과 용암천의 계류들이 발원한다.

남쪽 사면에는 불암산폭포가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824년(헌덕왕 16) 지증대사가 세운 불암사는

예로부터 신성시되어왔고 석씨원류응화사적책판(釋氏源流應化事蹟冊板:보물 제591호, 동국대학교 보관)이

보존되어왔다.그밖에 불암사의 부속암자인 석천암·학도암 등이 있다.

돌아가신 임금을 지키는 산이라 하여 태릉과 강릉을 비롯한 동구릉·광릉 등 많은 왕릉이 주변에 있으며, 산정에는

성터·봉화대터가 남아 있다. 남쪽 산록에는 육군사관학교·서울여자대학교·삼육대학교·태릉선수촌·태릉푸른동산 등이

있다. 불암마을-불암사-석천암-산정-덕능고개-상계동,

상계전철역-정암사-산정-천보사-상계동, 태릉-은행말-상계동-샘말-장암동-동막-수락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으며, 특히 암벽 등반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별내면 화접리 불암마을 일대에 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식당 등이 있으며, 시내 버스가 운행된다.

 

▲ 남양주 불암산(南楊州 佛巖山)산행지도

▲ 남양주 불암산(南楊州 佛巖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4년 04월27일 토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북한산 비봉가 향로봉을 타고 다시 운전을 하여 불암산 최단거리 들머리가 있는 정암사로 향했다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산101-1 검색해서 찾아왔는데 직전에 공영주차장이 있어 입차를 했는데

차단기가 올려져 있고 무료인듯 했지만 주차할곳이 없어 출차하는 차량을 기다렸지만 무소식

트럭 사이 비집고 주차하고서 배낭을 메고 들머리로 향해 걸었다

불암산 들머리

원래는 아침부터 불암산과 수락산을 연계하여 사행 하려고 했지만 시간상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플랜B 최단거리 불암산만 산행하기로 하였다

불암산은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중계동과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에 솟은 나지막한 바위산이라고 하며

1977년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불암산의 모습이 송라립(松蘿笠) 을 쓴 부처의 모습과 같다 해서

불암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졌고 일명 천보산, 필암산이라고도 하는데

능선이 길게 뻗어 있어 시원한 경치를 맛볼 수 있고 산길도 험하지 않아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곳이라 한다

불암산 가는길

초목들이 초록으로 물드는 아스팔트길을 걸어서  산을 오르는 시민을 따라 걸어 가니

부처님 오신날이 오월이니 가는곳마다 연등이 즐비하게 많이 걸여 있는것을 볼수가 있었고

산행자들이 많아서 들머리를 묻지 않아도 되었다

불암산은 제2봉인 해발 420m의 봉우리에는 불암산 성지가 있는데 이 산성지는 대동여지도에도

산성지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규모는 약 3백보 정도이라고 하며

곳곳에 있는 바위 절벽들은 암벽 타기 연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등산로와 약수터가 10여 개나 되어 아마도 수량이 풍부한듯 보이고

불암폭포는 겨울철이면 빙벽 타기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곳이라는데 오늘은 최단거리 불암산을 걷는다

불암산으로 가는길

아스팔트 오르막길을 얼마나 더 걸어가야 하나 생각도 들고 봄은 흔적도 없고 여름인듯 생수로 목을 축였다

불암산 철쭉제로 유며한곳인데 2022년 부터 시작 되었다 하고

철쭉 군락지는 주로 고산지대에서 볼수 있는데 도심 가까운 둘레길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불암산 둘래길에 있어 인근 주민뿐 아니라 외부 관광객들까지 찾아오는 노원의 대표 축제라 한다

불암산 철쭉제는 매년 봄이면 10만 주의 진한 선홍빛 철쭉이 장관을 이루는 구의 대표 명소

불암산 힐링타운 철쭉동산에서 진행되고 이곳은 불암산의 정상부터 불암산 힐링타운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로, 무장애 길이 조성돼 있어 누구나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공원관리소 삼거리 표지목

아마 여기서 보터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 드는곳이며 목교를 지나면 된비알 구간의 연속이다

내가 불암산 수락산을 처음 찾은것은 특수항공구조사 7기 과정 교육때 헬기를 타고 인명구조하는 교육을 받을때였다

지금 그 코스는 아니지만 불암산 산길을 걷는다 걷는 기회는 또 산악전문지도사 교육 마치고 걷는길이다

불암산은 설악산 울산바위와 비슷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목교위에서 잠시 들머리용 사진을 촬영해본다

불암산 정상1.5km 안내표지목

산은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가고 봄은 횡하니 어딜 갔는데 내리는 햇살이 한여름 처럼 덥다

불암산에는 둘레길도 있는데 그 코스는 넓은마당→불암산허브공원→좆바위→음바위→학도암→

백사마을→산들메수목원→불암사→ 덕릉고개→넓은마당
불암산하루길은 연인과 가족이 걷기에는 최적의 코스로 이 길은 휴식과 치유의 공간이라 하며

다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힘들어 가족단위 등산객은 넓은마당에서 백사마을코스까지만 수훨하고

경기도 방향과 나머지 덕릉고개 코스는 조금 험하다.고 한다

불암산 탐방로

불암산 둘레길중 하루길은 한 때 명성황후가 피신했다는 학도암, 6.25전쟁시 육사생도들이 유격전을 벌였던

불암산 동굴, 60~70년대 서민들의 대표적인 주거지로 남아있는 백사마을도 있고

신라시대부터 호국불교의 산지인 불암사 등 다양한 유적지가 남아있는 산행지 이다

 

佛巖辭(불암사) 爲專上人作(위전상인작) 專上人(전상인)전상인을 위하여 짓다

- 徐居正(서거정) -


佛之山深且逶迤兮[불지산심차위이혜] 불암산 깊고 또 멀리에 구불구불
佛之水淸且漣漪[불지수청차련의] 불암산 물은 맑고도 잔잔한 물결이네
雲幽幽兮石鑿鑿[운유유혜석착착] 구름은 자욱하고 바위는 삐쭉삐쭉 착착하네
盟有白鷗兮招有黃鶴[맹유백구혜초유황학] 백구와 맹약을 하고 황학을 불러오네
我嬰塵網兮我日思歸[아영진망혜아일사귀] 내 속세에 매였을 때에도 날마다 돌아갈 생각하였는데
我旣無簪紱之累兮[아기무잠불지루혜]내 이미 벼슬의 얽매임 없어졌으니
亦何事於依違也[역하사어의위야] 또한 어찌 망설일 것이 있으리요
登山有車兮[등산유차혜] 산에 오를 수레도 있고
涉水有航[섭수유항] 물을 건널 배도 있거니
我將從白蓮之遺則兮[아장종백련지유칙혜] 내 장차 백련사의 유칙을 따르리니
奚怊悵而悲傷[해초창이비상] 어찌 실의하여 마음 아파하겠나

불암산 숲길

불암산은 서울 노원구와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에 있는 산인데 해발고도가 508m정도인데

오르기 어려운 산은 아닌 거 같지만 막상 걷다보면 땀 을 쭉 빼는 코스가 드러나 있다

나는 오늘 최단 코스인 제5등산로를 이용하여 불암산에 오른다

북한산과 불암산 중간으로 추가령 구조곡을 지나가는 3번 국도가 남북으로 이어지며

불암산에서 북한산은 서쪽에 있기 때문에 해가 지는 저녁은 북한산에 그늘이 드리운다고 한다

아침에 오른다면 멋진 모습을 고스란히 바라볼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아침이 아닌 오후14시다 

불암산 돌계단길

산에서 돌계단은 결코 반가운 길은 아니며 데크계단은 더욱 그렇지만 한발 두발 걸어가면서 초록의 향기 맡는다

불암산은 508m의 높이의 산으로써 서울시민들에게는 친근한 산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 주말이라 삼각대 울러메고 올라가는 나를 많이도 쳐다 보길래 안녕하세요 인사도 했지만

어르신들만 받아주고 젊은 사람은 말이  없었다

불암산의 제6등산로 양지 초소 사거리에는 시를 적어놓은 비석이 있다고 하는데

배우 최불암 씨가 직접 지은 ' 불암산이여'라는 시가 적혀있다고 한다.

전 국민들에게 불암산은 왠지 수사반장 나왔던 탈랜트 최불암씨의 이미지처럼 친근하고 사랑스럽다. 

최불안 시는 다음과 같다

"불암산이여 이름이 너무 커서 어머니도 한 번 불러보지 못한 채

내가 광대의 길을 들어서서 염치없이 사용한 죄스러움의 세월,

영옥의 세월 그 웅장함과 은둔을 감히 모른채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아왔습니다

수천만대를 거쳐 노원을 안고 지켜온 큰 웅지의 품을 넘보아가며

터무니없이 불암산을 빌려 살았습니다 용서하십시요"

 

최불암의 불암과 불암산의 한자가 같은 것이 계기가 되어

노원구청이 2009년 최불암씨를 명예산주로 위촉했다. 

산길옆  큰바윗돌

서울에 산은 모두 크다란 돌덩어리 같은 산 암봉들이 많은 산 뿐인듯 하다 흔히 산꾼들이 말하는

육산보다는 골산이 대부분을 차지 하는듯 하다

산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들만 오는 것인지는 몰라도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여유롭고 친절 하지만 오늘 불암산 오르는 동안 100번 인사를 했다면

50%만 인사를 받아 주었는듯 싶다 등산후 하산길이 힘들어 대꾸할 힘도 없을수도 있겠다

암벽에서 자라는 물푸레나무

식물들은 정말 강한게 느껴진다 우리는 저런 척박한곳에서 부리를 내리고 살수있을까 싶다

산을 오르다 보면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을 보면 같은 암석이구나 그리고 같은 모양으로 생겼구나 하고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암봉은 모두 화강암 덩어리인데 가까이 가서 보면 마치 양파 껍질처럼 암석이 떨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층상(판상) 절리라고 하는데 겉의 암석층이 떨어져 나오면 안쪽 층이 나타나게 된다. 

마그마가 깊은 땅속 10km 내외에서 굳은 심성암인 화강암이 여러 이유로 상승하게 된다.

그 후 지표가 풍화 침식되면 점점 상부를 누르던 압력이 줄어들게 되는데 렇게 되면 암석은

지표면에 수평하게 암체에서 떨어지는데 이를 층상절리라고 하며  표토가 없는

산봉우리에서 잘 볼 수 있는데 계곡에서도 너럭바위의 형태로 쉽게 볼 수 있다.

불암산 산길

수목은 초록으로 짙어갔고 산길엔 돌맹이로 바닥을 까라 놓았는데 복한산이나 어딜가던 이런길이 많은데

흙길보다는 힘들기에 요즘은 야자매트를 해 놓은곳도 많은데 약삭빠른 장사꾼들이 야자매트속에

자연에 좋지않은 폴리에틸렌(polyethylene)이 포함된 야자매트가 많다고 한다

예전에는 불암산-수락산-도봉산-삼각산으로 이어지는 4산종주가 있었고

지금은 강북 5산 블랙야크 불수사도북 종주코스로 유명하다고 한다
4산종주에서 삼각산을 빼고 사패산과 북한산을 추가한 5개의 산 46km를

48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도전형 미션이며 인근에는 태릉선수촌이 있었는데

불암산을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일명 '불암산 크로스컨트리'라고 부르는 훈련법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축구계의 산소통 박지성이 국가대표로 있던 2000년 훈련 당시 전체 4위를 했다고 하고
역대 1등은 복싱 선수 문성길이 21분 만에 올랐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체력들이다

데크계단

불암산에는 호랑이 유격대가 있었는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사관학교 1,2기 중 생도13명과 7사단 소속 국군 7명은 남쪽으로 철수하지 않고

불암산 일대에서 암호명 '호랑이'라는 유격대를 결성하고 불암산 일대의 동굴을 근거지로

3개월 동안 북한군 후방을 교란하여 큰 피해를 주었으며 북한으로 끌려가던 주민 100여 명을 구출하는 등

전과를 거두었지만 안타깝게도 국군과 유엔군이 같은 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기 직전에 모두 전사하였다 한다

불암산성0.44km 안내표지목

불암산 정상으로 가기전에 불암산성 부터 가기로 하고 불암 산성쪽으로 산길을 걸어본다

불암산 남쪽 사면에는 불암산 폭포가 장관을 이룬다고 하며 또한 산에는 신라 지증국사(智證國師)가 세운

불암사와 그 부속 암자인 석천암(石泉庵)이 있고, 조선시대에 무공대사(無空大師)가 세운 학도암(鶴到庵) 등도 있다.

그 밖에 산중에는 조선 중종의 비인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泰陵)이 있고 명종의 능인 강릉(康陵)이 있고

 그리고 조선말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여주로 달아나던 명성황후가 하루를 머물면서 치성을 올렸다는

수령 650년의 은행나무가 있다고 한다 여유가 되면 두루 살펴 산행을 못해 아쉽다.

불암산성 능선길

초록숲으로 이루어진 평탄한 능선길이 너무 좋았고 산길이 오솔길 처럼 시골길 같아 너무 정겨운 길이였다

북한산, 도봉산이 유명한 이유는 도심에서도 가깝기도 하지만 암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하얗게 빛나기 때문이라고 하며 불암산도 마찬가지로 도심에서 오르기 쉽기에 오늘도 산행자들이 많았다

하늘로 상승하는 마그마가 칫솟는할 때의 그 모습 그대로 인듯 서울의 산봉우리들은 크나큰 암봉 투성이다 

불암산성(佛巖山城)

나는 불암산성이라 하길래 서울 도성 일부처럼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냥 옹벽정도의 흔적 뿐이였다

불암산성(佛巖山城)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와 경기도 남양주시에 걸쳐 있는 불암산 남쪽에 있는 산성으로

오각형 형태이며 둘레 길이는 236m이며 삼국 시대의 성으로 추정된다.

불암산성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동 산101-1번지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산97번지 산104번지에 접해 있다. 불암산성이 위치한 곳은 불암산 주봉(508m)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상의 제2(420.3m)이며

정상부에서는 중랑구 일대가 잘 조망되지만 북쪽방향은 불암산으로 인하여 시야가 가려져 있다.

 ()은 평탄한 정상부를 돌아가면서 자연지형을 따라 쌓았는데 평면 형태는 부등변(不等邊)5각형이나

원형(圓形)에 가깝다. 성의 전체 둘레는 약 236m, 성 내부 면적은 약 5321.8m2이 라고 한다.

불암산성(佛巖山城)

성벽은 군데군데 허물어졌지만 서벽과 동벽 일부 구간에서는 10() 이상이 잔존하여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아차산 보루군과는 축성기법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벽석은 세로가 긴 편이고, 면석은 장방형으로 다듬은 후 줄을 맞추어 수직에 가깝게 쌓아올렸으며

뒷채움 돌은 길쭉한 돌을 길이 방향으로 놓아 면석이 쉽게 붕괴되지 않도록 하였다.

문 터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 등산로가 형성된 부분으로 생각된다.

정상부 북동쪽 아랫단에는 우물로 추정되는 원형의 석축 구조물이 있다.

불암산성(佛巖山城) 봉화대 터

봉화대 터라 해서 한번 올라가본다 여기도 예전처럼 복원해서 예전의 우리 선조들이 오랑캐들을 막아낸 흔적을

복원하여 후손들이 볼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야흐로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지만 봄이 너무 짧은듯 여름같이 하늘에서 태양열이 강하고

땀은흘러 산길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무슨 빗방울 떨어지나 할 정도로 난 땀이 많다

불암산성(佛巖山城) 봉화대 터

불암산성(佛巖山城) 봉화대 터에 이렇게 헬기장이 그자리를 대신 하고 있었다

 헬기장의 북동쪽에는 집수시설(集水施設)로 추정되는 직경 8m 정도의 원형 함몰부가 있다.

유물은 정상부의 평탄한 곳과 경사면 일대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청동기 시대의

무문토기류(無紋土器類)와 삼국시대~통일신라 시기의 경질토기편(硬質土器片)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불암산성은 아직 정식 시굴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의 성격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은 상태이라고 하며

입지(立地)나 축성기법(築城技法), 성 안에서 발견되는 유물 등을 고려할 때

불암산성은 서울 지역으로 진출한 신라가 한강 유역 방어를 위해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도 일시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산성 축성 이전에도 청동기시대부터 주거유적이나

간단한 방어시설이 조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암산성은 비록 규모는 작고 성벽 중 이미 훼손된 범위가 적지 않으나

삼국시대 석축(石築) 산성(山城)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고대 교통로와 삼국의 영역 확장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한다

불암산 바윗돌

불암산성을 둘러보고 다시 되돌아와서 불암산으로 발길을 돌려 가는길에 편안한 의자처럼 보이는 바위에서 쉬어 본다

불암산에는 6.25전쟁사도 깃들여있는 산인데 그 중에서도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이야기 이다

포천 의정부 방면으로 침투하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태능에 있던 육사 생도들도 최전선에 긴급 투입됐고

당시 1기생 262명은 임관 20일을 남겨두고 있었다.

철저하게 준비해서 기습 침입한 북에 비해 무방비 상태였던 국군은 치열하게 싸웠지만 당해낼 수 없었다.
생도 대대는 태릉으로 철수해 불암산 일대에 배치됐지만 개전 2일 뒤인 27일 밤 전황(戰況)이 악화돼

자칫 고립당할 수 있었고 북한군은 포천 양주 의정부 축선과 홍천 양평을 거쳐 남한강을 따라

퇴계원을 거치는 서울의 남쪽 축선을 따라 밀고 들어와 불암산은 적 가운데 놓인 형국이 됐다.

할 수 없이 생도 대대도 28일 아침 망우리 고개 용마산을 거쳐 광나무 방향으로 철수해 한강을 건넜다. 

그러나 모두 철수한 것은 아니었다. 철수 명령을 받고도 불암산에서 적과 싸우다 죽기로 맹세한 생도들이 있었다.

김동원 생도가 그 대표였다. 그는 후방으로 철수하기 보다 불암산 일대에서 유격 활동을 감행하기로 하고

동료들에게 의사를 물었다.1기생 10명과 인적사항이 확인되지 않은 2기생 3명, 7사단 9연대 김만석 중사 등

부사관 2명과 병사 5명 등 20명이 죽음을 각오한 사수의지를 다졌다.

전 대원의 투표로 최초 유격활동을 제안했던 김동원 생도가 유격대장으로 선출됐다.

조영달, 박인기, 김만석 중사를 각 조장으로 선출하고 암호명은 ‘ 호랑이’로 정했다.

불암산 암릉길

(불암산유격대 이야기)

불암산유격대는 6월29일부터 3개월 간 산을 은신처 삼아 밤이 되면 인근 별내면 창동 퇴계원 등지로 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고 북괴군 보급소, 수송대 등을 공격하여 타격을 입혔다.

몸을 사리지 않는 과감한 공격으로 많은 전과를 올렸지만 이들의 희생도 컸다. 
1차 전투는 유격대를 결성하고 보름여 만인 7월 11일 새벽 감행했는데

남양주 퇴계원 북한군 보급소를 기습 공격하여 유류 50드럼 등 보급품을 불태우고

3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7월31일 새벽 2차 전투에서는 서울시 도봉구 창동 인근

북한군 수송부대와 보안소를 기습하여 적을 사살하고 차량 다수를 폭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8월 15일 밤에 감행한 세 번째 공격 목표는 생도들의 모교 육사였다.

북괴군은 육사를 의용군 훈련소로 사용했고 유격대는 의용군으로 끌려온 학생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대담한 공격작전을 시행해 북한군 50여 명을 사살했다. 
전투를 치러 적에게 엄청난 타격을 가하고 전과를 올렸지만 유격대도 많은 희생를 감수해야했다.

첫 전투에서 박인기 김봉교 생도가 산화하고 두 번 째는 김만석 중사가,

세 번 째 육사 공격에서는 전희택, 김동원, 홍명집 생도가 안타깝게 전사를 하였다
마지막 전투는 더 대담하고 과감했다. 9월15일 인천상륙 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됐다.

허리를 뚫린 적은 북으로 퇴각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갔다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하기 위해 서쪽 방면에서 진격해오는 동안 서울 동북 방면에 위치했던 유

격대는 끌려가는 마을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나섰다.

9월21일 밤 지금 봉선사 종립학교인 광동고등학교가 위치한 남양주 진접읍 내곡리에서 적 수송대를 기습했다.

그리하여 많은 주민들을 구출할 수 있었다.

거북바위

커다란 거북이 한마리가 불암산 산정으로 기어오는는 모습 그대로다 흡사해도 너무 흡사하게 생겼다

불암산을 풍수적으로 이야기 한것을 옮겨보면 이곳의 산세는 한북정맥에서 한쪽지맥이 수락산을 거쳐

불암산에 이르는데 불암산은 이 혈장의 주산이지만 바위가 많아 원래 부처바위로 불리게 된데서

불암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주산에서 동남진하여 삼각형 모양의 봉우리를 일으켰는데 완전히 탈살이 되어 토(흙)산으로 변했다.

이곳에서 도시개발로 인한 평지로 내려온 지맥이 약간의 봉우리를 만들면서 돌형의 혈장을 맺었다.

풍수가에서는 야산처럼 생긴 혈장은 둥근 목탁처럼 생겼고 주산인 불암산을 부처님으로 본다면

이러한 형상을 노승예불형(老僧禮佛形)이라고 한다.

즉 노승이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는 형상이란 뜻이다.

수세는 우선룡에 좌선수로 합법하고 좌향은 술좌진향으로 측정된다고 이야기 한다. 

거북바위

불암산 산해엥서 거북바위를 만났다면 불암산 산정이 바로 머리 위라고 생각하면 된다

초보 등산객들은 서울 근교로 산행은 대부분 불암산으로 가는데 나지막하면서도 가파른 산세가 이어지며

불암산은 총 10개의 등산로가 조성되어 고 그중 불암산 제4, 제5 등산로는

초보 등산객에게 잘 어울리는 코스라고 하는데 예상 소요 시간은 넉넉잡아 3시간 정도.

내가 최단거리로 선책한 불암산 코스도 초보산꾼 추천코스이다

남양주 불암산(南楊州 佛巖山) 508m

불암산 산정에는 젊은청춘들이들이 더 많이 와 있었다 줄을 서서 인증 사진 촬영하기에

장소가 삼각대 거치가 안되는 장소라 셀카로 했다 삼각대 설치해서 촬영하기엔 줄을 서서 있기에 새로히 촬영은 무리였다

불암산은 서울 노원구와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며

불암산 정상에 있는 큰 바위가 마치 부처님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불암산이라고 부르게되었고

필암산(筆岩山)·천보산(天寶山)이라고도 하며 불암산의 능선은 남북으로 이어진 방향인데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과 경기도 남양주의 경계를 이룬다.

불암산은 서울 상계동에서 경기도 남양주 뵬내면으로 넘어가는 덕릉고개 남쪽에 높이 420 m의

또 하나의 봉우리를 거느린 산으로, 산 자체는 단조로우나 거대한 암벽과 절벽, 울창한 수목이 어울려

아름다운 풍치를 자랑하며 석장봉과 거북바위가 유명하다.

남양주 불암산(南楊州 佛巖山) 508m

불암산 남쪽 사면에는 불암산 폭포가 장관을 이룬다고 하며 또한 산에는 신라 지증국사()가 세운

불암사와 그 부속 암자인 석천암()이 있고, 조선시대에 무공대사()가 세운 학도암() 등도 있다.

그 밖에 산중에는 조선 중종의 비인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이 있고 명종의 능인 강릉()이 있다.

그리고 조선말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여주로 달아나던 명성왕후가 하루를 머물면서 치성을 올렸다는

수령 650년의 은행나무가 있고 산정에는 옛 성터인 불암산성과 봉화대 터가 남아 있다.

불암산 부근 일대에는 육군사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삼육대학교  태릉선수촌 등이 있다.

서울 근교의 등산 코스로 개발되어 많은 산행자들이 찾는다고 한다 나는 오늘로서 두번째 불암산 산행이다

불암산 산정

불암산 정상부에서 태극기 봉을 잡고 촬영했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은 그냥 태극기만 쳐다보는것으로 만족 했다

불암산이 위치한 남양주 별내면(別面)은 북쪽으로 의정부시, 서쪽으로 서울특별시,

남쪽으로 구리시, 동쪽으로 진접읍(榛接邑)·퇴계원면에 접한다.

1914년 행정구역통합에 따라 고산리·산곡리·청학리·용암리·덕송리·화접리·퇴계원리·광전리 8개 리를 관할하였다.

2012년 1월 2일 별내동이 신설되며 청학리·용암리·광전리 3개 리로 개편되었고

지질은 호상편마암(縞狀片麻岩)으로 되어 있으며, 퇴뫼산(364m)·소리봉(537m)·불암산(佛岩山:508m)·수락산

(水落山:638m) 등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남북으로 길게 하천을 따라 좁은 경지가 전개되어 있는데다가

하천을 따라 지방도로가 지나며,경춘선 철도가 면의 남부를 지나 서울특별시에 이르므로 채소와

과일재배 낙농업등 근교농업이 일찍부터 활발하다. 그 밖에 중소공장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불암산 산정에서 바라본 도시풍경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가 남양주 별내면을 중심으로 뻗어있는게  도심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양주군 별비면(楊洲郡 別飛面)지역 유래를 보면 1914년 행정구역통합에 따라

별비면의 “別”자 내동면의 “內”자를 따서 別內面이라 하고 고산,산곡,청학,용암,덕송,화접,퇴계원,광전리의

8개리를 관할하였고 2012년 별내동 신설에 따라 청학,용암,광전리 3개리로 개편되었다.,청학리(靑鶴里)는

동학굴, 동학동, 청학동은 조선시대부터 한말까지 이 지역은 양주군 별비면에 속해 있었는데,

1914년 4월 1일 읍면 통폐합에 따라 별비면 동학(同鶴)동 전부와 응달리, 흑석리, 덕동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청학리라 하였다. 또한 청학리의 다른 이름인 동학굴(東鶴窟), 동학꼴, 동학동(東鶴洞) 등도 학(鶴)과 관련되어 있는데,

학이 이 마을 동쪽 편 은행나무에 자주 날아온 데서 연유한 것이다.

용암리(龍岩里)는 가장 북쪽에 있는 산의 이름은 용암산(龍岩山)으로, 의정부시와 경계를 이룬다.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용암산”이라 부르며 용암리라는 리 이름은 이 지역이 용암산 밑에 해당하는 곳이므로

붙게 된 것이다. 용암리에 있는 마을로 거묵골·거묵굴(巨墨窟)이라는 이름은 마을 근처에

숲이 우거져서 마을이 거무스름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 전해지며,

이와는 달리 옛날에 큰 먹이 나와서 이렇게 불린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도감포수(都監砲手) 혹은 도감(都監)이라는 벼슬을 했던 사람이 이 마을에 낙향(落鄕)하여 살았다고 하는

도감말, 도감마을 이라는 이름도 있다.광전리(廣田里)는 조선시대부터 한말까지 이 지역은

양주군 별비면에 속해 있었는데, 1914년 광암(廣岩)리의 광(廣)자와 마전(麻田)리의 전(田)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퇴뫼산”이라는 이름은 “갈라져 나온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암산 산정에서 바라본 도시풍경

남양주 도심 풍경 저너머로 북한산 능선도 보이는데 재빛으로 물든 하늘빛이 지구가 아픈게 보인다

불암산은 원래 ‘필암산(筆巖山)’이라 하여 먹골(墨洞묵동)벼루말(硯村연촌)과 함께 필(筆)·묵(墨)·현(硯)으로

지기(地氣)를 꺾는다는 풍수지명(風水地名)이었다.

불암산이라는 명칭은 큰 바위로 된 봉우리가 마치 송낙을 쓴 부처의 형상이라 하여 붙여졌으며,

천보산(天寶山)’이라고도 하며 화강암으로 된 주봉 남쪽에는 높이 420m의 제2봉이 있다.

불암산은 한강 지류인 한천(漢川)을 끼고 이루어진 한천평야의 동쪽에 있으며 평야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는

북한산(北漢山)을 마주보고, 북쪽으로는 수락산(水落山)과 이웃하여 있다.주봉과 제2봉 사이에는 불암사(佛巖寺)가 있다. 불암산 남쪽에는 불암산폭포·석천암(石泉庵)·학도암(鶴到庵)·강릉(康陵)·태릉(泰陵) 등이

서쪽 사면에는 정암사(淨巖寺)·약소암(藥昭庵)이 있으며, 산정에는 불암산성터가 남아 있는 산행지이다

불암산 산정에서 바라본 도시풍경

불암산 아래에는 나비정원도 볼만 하다고 하며 철쭉도 좋아서 도시아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한다

나비정원은 노원구 불암산 힐링타운 사업지 중 한 곳으로 365일 살아있는 나비를 볼 수 있는 정원이며

나비 정원 건물 1층에는 사육배양실, 채란실, 나비 온실 등이 위치해 있고 2층은 곤충학습관으로 이뤄졌다.

곤충학습관에서는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종 2급 곤충인 물장군, 두점박이사슴벌레 등

각종 곤충 표본과 곤충 관련 자료들을 볼 수 있고 단체 관람 시 예약이 필요하다고 한다.

불암정(佛巖亭)

불암정(佛巖亭) 정자는 임진왜란 때 양주에서 한성으로 넘어오는 왜군을 막기 위해 승병들을 이끌고

이 곳 수락산과 불암산에 매복했다가 노원평 전투에서 큰 승리를 했던 사명대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한편 서울 노원구는 불암산 정상 주변에 명예산주 탤런트 최불암씨의 자작시인 '불암산(佛岩山)이여' 

소설가 박충훈씨의 '불암의 웅비'란 시판을 세웠다고 하며

여기서는 불암산과 수락산 멀리는 도봉산, 북한산까지 한눈에 보이며 그래서 이곳에 정자를 세웠다고 하며

많은 등산객들이 휴식과 함께 역사와 전통을 생각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가고 있는 외국인들보 보였다

불암정(佛巖亭)은 2억2000만원의 예산들여 세운 이 전통정자는 팔각정(모루단청)형태로

지름 8.5m, 높이 4.5m 규모이며 정자 현판은 노원구서예협회 초대회장인 경산 이희열 선생이

한대의 예서체 중 하나인 참부잡이체로 제작한 것이고 또 정자에는 사명대사, 마들농요 등

역사 문화인물 안내판과 시판 10여점이 설치돼 있어 휴식과 함께 문학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불암산의 전설

불암산은 원래 금강산에 있었던 산이라고 하는데

어느날 불암산은 조선왕조가 도읍을 정하는데 한양에 남산이 없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가 남산이 되고싶어 금강산을 떠나 한양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의 불암산 자리에 도착하여 보니 한양에는 이미 남산이 들어서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불암산은 한양의 남산이 될 수 없었기에 금강산으로 되돌아 갈 돌아갈 작정으로 뒤돌아서서 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한번 떠난 금강산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돌아선 채로 그 자리에 머물고 말았다.

이 때문에 불암산은 현재 보는것과 같이 서울을 등지고 있는 형세 라고 한다

하산길

불암산을 후딱 산정에 올라보고 하산길에 접어 들었다 원래는 수락산까지 종주 산행을 하려고 계획 하였는데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서 불암산 최단코스로만 올라보고 하산길에 접어 들었다

토요일이라 많은 산행자들이 보였고 요즘 산행지에서 볼수 있는건 젊은청춘들이 산에 많다는것이다

코로나 이후에 달라진 산이 많이 젊어 졌다는것을 알수가 있었다

정암사(淨巖寺)

하신길에 정암사를 둘러 참배를 하였다 산에가면 사찰이 있고 사찰에 가면 산이 있어 늘 좋다

주소는 서울특별시 노원구 덕릉로94길 127 (중계동)에 위치하며  현대적으로 정비 한것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정암사 아미타칠존도(淨巖寺 阿彌陀七尊圖,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54호)를 소장 하고 있다고 하는데

붉은 비단 바탕에 은물감으로 그린 선묘(線描) 불화로 흔히 홍탱(紅幀)이라 부르는 불화이다.

정방형 화면에 아미타불과 4보살, 그리고 가섭과 아난이 둥글게 에워싼 원형구도이며

화면의 상단 좌우에 화불과 보살상을 추가하였다. 불보살상들은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는 소략하지만

전체적으로 우아한 인상이라고 하며 선묘 불화는 필선이 드러나므로 우수한 기량을 지닌 화승들이 그리게 되는데

이 불화는 19세기 전국적으로 화명을 날렸던 화승 천여가 1833년에 그린 불화로 화기에 의하면

칠불사 금정암에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암당 천여(錦巖堂 天如, 1794~1878)는

전남 승주 선암사(仙巖寺)에서 주석하며 수많은 불화를 그린 19세기의 유명한 화승이다.

대가의 작품답게 필선이 예리하면서도 힘이 있고 섬세하다.

유려한 옷주름의 필선과 섬세한 문양 등 19세기 불화 중에서도 격조가 높고 완성도 있는 불화로서

문화재자료의 가치가 있다. 화면의 한단부와 배접지가 너덜거리며,

오랫동안 말려져 있었던 듯 화면에 접힌 자국과 구김이 많고 하단 모서리 부분은 찢겨진 상태로

보존 상태는 불량하나, 향좌측 보현보살이 들고 있는 연꽃과 아난상 머리에 칠해진 가채(加彩) 외에는

필선과 채색 등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먼지털기

산행에 마지막은 먼지털기인데 불암산 흙먼지가 많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산행전후로 다 털어야 하는데

외래종씨앗이 전파를 막기 위함인데 먼지털이가 주 목적이 되었다

경기도의 남양주와 서울의 노원구를 경계 짓는 곳에 불암산이며

수락산으로 이어지는 광주산맥의 말단구릉(末端丘陵)에 해당한다.

정상에 솟은 암벽 모습이 불타(佛陀)를 닮은 데서 붙여진 산 이름이라는데 멀리서 그 모습을 조망해야 알겠지만

절을 세우는 것을 개산(開山), 절의 분파를 산문(山門)으로 표현하듯, 절과 주산(主山)은 별개일 수 없다.

그리하여 불암산 기슭의 산사(山寺) 이름 또한 불암사이다며 결국 불암산 → 불암사 → 불암동이

곶감처럼 하나의 줄기로서 이어지고 있다.

산행종료

남양주 불암산(南楊州 佛巖山) 불타(佛陀)를 닮은 바위라 불리는 불암산 산정에서 북한산 능선을 바라보며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불암산에는 6.25 전쟁사 불암산 호랑이유격대 이야기와 불암산 전설이야기

곳곳에 있는 역사와 문화가 있는 불암산 산행길이였다

아쉬운점은 시긴이 부족하여 수락산까지 연계하여 산행 못해서 아쉽지만 언제 또 서울에 올지 모르겠다

서울와서 사패산 북한산 비봉 불암산까지 걸어보고 귀가길에 접어 들었다

 

※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

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

한국1000산 신명훈 깊은솔

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오혜령 박옥남,복랩

노원구.남양주시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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