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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늑대 FORCE
서울 북악산(서울 北岳山), 조선 도읍지(朝鮮 都邑地) 주산으로 삼은 백악산(白岳山)이라 불렀던 한양도성 탐방로 따라 북악산을 걷다 본문
서울 북악산(서울 北岳山), 조선 도읍지(朝鮮 都邑地) 주산으로 삼은 백악산(白岳山)이라 불렀던 한양도성 탐방로 따라 북악산을 걷다
바다늑대FORCE 2024. 3. 30. 22:07서울 북악산(서울 北岳山)
조선 도읍지(朝鮮 都邑地) 주산으로 삼은 백악산(白岳山)이라 불렀던 한양도성 탐방로 따라 북악산을 걷다
▲ 서울 북악산(서울 北岳山)
높이 : 342m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삼청동,궁정동 성북동 돈암동에 걸쳐 있는 산
▲ 서울 북악산(서울 北岳山)나의 산행일 :
2024년03월30일 토요일 날씨 : 맑음(미세먼지 많음)
▲ 서울 북악산(서울 北岳山)나의 산행코스
삼청공원노상공영주차장→삼청안내소 →법흥사터 →숙정문 →곡장 →만세동방약수터 →
청와대전망대 →백악정 →춘추문 →삼청공원노상공영주차장
6.09km 3시간06분소요(트랭글 앱 기준)
▲ 서울 북악산(서울 北岳山)개요 :
북악산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팔판동·삼청동·부암동·청운동·궁정동과 성북구 성북동에 걸쳐 있는 산이며
북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이라 칭했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북악산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하며 산경의 흐름을 보면 한북정맥(漢北正脈)의
끝자락인 북한산 보현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형제봉을 거쳐 북악터널 위의 보토현(補土峴)으로 이어진다.
이어 표고 328m의 봉우리와 팔각정 휴게소 앞 능선을 따라 북악 뒤편에 구준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서울의 부주산(副主山)인 응봉(鷹峰)으로 이어져 경복궁의 배산인 북악에 다다른다.
▲ 서울 북악산(서울 北岳山)산행지도
▲ 서울 북악산(서울 北岳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4년 03월30일 토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새벽05시에 진주를 출발해 통영대전간 고속도로를 달렸다
오늘은 청와대 뒷산 북악산 산행을 위해서 1000리길 진주에서 한양 도읍지로 향한다
보통 산행자들은 인왕산과 북악산을 연계해서 산행을 한다고 하는데
늘 장거리는 단체가 아닌 산행은 그다지 연계 산행을 하기가 힘들고 주차를 어디에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운틴밴드 산우님 후기를 바탕으로 해서 루트를 계획하였다
그리고 1개월전 13시에 청와대 관람도 예약하고서 오늘 D-day 날이라 길을 나섰다
탐방로 표지
계획 세운 루트를 따라 삼청동공원주차장을 T-map내비게이션에 검색하니
삼청공원노상공영주차장으로 안내를 하였고 안내를 종료합니다 라는 길찾기 안내에 멘트 따라
어느 큰길 담벼락 옆에 주차를 하고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삼청동 탐방로가 어딘지 문의하니
친절히 안내해주시는 손길따라 가다보니 반가운 북악산 탐방로 표지가 바닥에 있었다
서울 삼청동(三淸洞)은 도교의 뿌리로 도교신인 太淸(태청)・上淸(상청)・玉淸(옥청)의
三淸星辰(삼청성신)을 모신 三淸殿(삼청전)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이 지역이 산이 맑고(山淸 산청), 물이 맑으며(水淸수청),
그래서 사람의 인심 또한 맑고 좋다(人淸인청)는 뜻이기도 하다.
1947년 6월 서울시령 제2호로 동회제도가 시작될 때 삼청동에는 삼청동부동회와 삼청서부동회가 설치되어
삼청동 일대를 관할하였다(1948・1950・1952년판 서울시세일람) 동회 목록에는
‘삼청동부동’과 ‘삼청서부동’이라 표기되어 있고, 1953년판 서울시세일람 에는
‘삼청동동부’와 ‘삼청동서부’가 삼청동을 관할하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북악산 삼청안내소 들머리
들머리에는 북악산 산행코스별 지도가 있었고 계획한 루트를 눈으로 쭉 훌터보았다
북악산 봉우리 청운봉은 경북궁의 주산으로 풍수지리적으로 중요한 산이며
위엄찬 봉우리가 청와대와 경북궁의 뒤에서 배경을 이룸으로서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북악산 근처의 아리랑고개나 미아리고개와도 연결되고, 산 능선을 따라 북악스카이웨이가 있다.
그리고 한양도성 성문 중 가장 인지도가 낮은 숙정문도 북악산에 위치하고 있다.
안내표지목과 들머리 계단
북악하늘나들길 이란 둘레길 만들어 있는데 북악하늘길의 모든 길은 한양도성길을 만나
청와대로 이어진다고 하며 그것이 무장간첩 김신조 루트이라고도 한다
따뜻한 남쪽에서 와서 그런지 약간은 쌀랑한 편이지만 아마 걷다 보면 쌀랑한건 금세 잊을것이다
계획한 산행코스를 따라 편안한 운동화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휴식
서울도심속에 있는 산이라 그런지 시멘트로 포장된 산길 그리고 산불진화용 소화전 배관까지 만들어 져 있었다
삼청안내소는 수도방위사령부가 청와대 경비업무를 담당했는지 삼청안내소는 초소와 같았다
산길을 걷다보니 꽃사슴이 있다고 먹이를 주거나 가까이 가지말라는 안내표지목이 있었는데
행여 꽃사슴을 만날까 싶어서 두리번 거려 가며 걸어도 꽃사슴은 구경도 못하였다
봄기운이 가득해서 진달래랑 개나리꽃이 만개해 있었는데 요즘은 남쪽이나 북쪽이나
개화시기는 같다고 봐야 할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진달래가 만개해 있기에 그렇다
三淸水泳場(삼청수영장)
예전에는 계곡믈을 막아서 수여장으로 사용했던 흔적이 있었다
표지석 아래는 竣工 一九八七年八月(준공 1987년8월)이라 1987년에 만들어 사용한 흔적이다
내가 해병대특수수색대 전역할 시기에 만들어 사용한것이라 그다지 오래 된건은 아니다
아마도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인들이 무더운 여름날 사용했으리라 추측 해본다
법흥사터 안내표지목
삼청안내소에서 북악산으로 가는 산길 초입구간인데 그야말로 마을 뒷산 산책코스 같이 잘 만들어져 있고
관리 또한 양호하게 잘 되어 있었다 역시 청와대 뒷산이라그런지 걷기에 아주 편한 산길이였다
나는 새로 개방된 백악산 구간을 청와대 뒤편이자 백악산의 남측면인데 그 구 간을 하산할곳으로 계획하였고
그 구간은 경사가 심하고 계곡이 많아 어떻게 탐방로가 만들어졌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냥 한바퀴 쭉 걷기로 생각하며 청와대 춘추관앞 안내소, 칠궁옆안내소, 청운대 안내소, 삼청공원안내소를 통해
신규 탕방로에 진입할 수 있다고 해서 우선 삼청안내소를 들머리로 하여 춘추관을 날머리로 잡았다.
북안산 탐방로
산길은 대부분 데크아니면 야자매트로 걷기에 편하도록 조성해 놓았다
주변 수목은 빼곡하지도않고 인위적으로 간벌한듯 보이고 탐방로 주변 곳곳에 가로등도 세워져 있었다
서울 한양도성 구간중에서 제일 빡쎈곳이 북악산 구간이라고 하는데 시골에서 자랐고
또한 특수부대 출신에 자주 산에 다녔던 탓인지 힘든구간이란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법흥사 터
지나가다 법흥사 터를 보았는데 산골마을 석축만 남아있는 모습이였다
안내글에 보면 이곳은 신라 진평왕 때 나옹스님이 창건한 법흥사 터라고 전해지던 곳으로 문헌에 따르면
조선시대 세조임금이 연굴사 지금의 심청터널 근처에서 호랑이를 사냥했다 라는 내용을 통해 연굴사 터로 추정된다
또 절터 주변에서 15세기 상감분청사기 조각들이 발견되어 조선전기부터 건물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법흥사 터
산행을 하거나 또는 문중산에 조상묘를 벌초 하기 위해 깊은 산골으로 들어거면 예전에 살던 주택지 같이
아니면 산골깊이 전답을 조성하기위해 쌓놓은 석축 같이 보였다
북악산은 1968년 1.21사태로 인해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왔던 곳이며 2007년 4월5일에 당시
북악산 한양도성 성곽길과 산 정상부를 모든 국민 누구나 탐방할 수 있도록 개방하였고
그리고 2020년 11월에 북악산 북측의 탐방로를 개방하였고 2022년 4월 6일에
북악산 남측(청와대 뒷편)지역의 탐방로를 개방함으로써 북악산 전체를 국민들이
자유롭게 등산,탐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북악산 법흥사 터도 이렇게 볼수가 있게 되었다
법흥사 터(연굴사)
안내글을 보면 법흥사라는 절이 있었던 이 자리는 문헌 기록에 따르면 연굴사라는 절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고 있다 15세기 분청사기 조각이 발견되어 조선 전기의 건물이 있었다는 걸 상상할수 있다고
안내글에 적어 놓았고 초석(礎石) 을 자세히 보면 천년이 넘는 세월의 풍상을 겪은 흔적은 보이지 않고
초석(주춧돌)의 표면이 말끔하고 깨끗한데 신라시대 초석 유물이라 하기엔 뭘 모르는 내가봐도
아닌듯 한데 과거 문화재청에서 조사 분석한 결과 신라시대때라고 확인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데크계단 탐방로
북악산 대부분은 흙을 밟는 산길보다 데크와 야자매트를 밟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데크가 많았다
북악산 성곽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백제시대(BC18∼660)와 조선시대(1392∼1910)의 옛 수도로
도성(都城)을 지키기 위하여 경복궁의 북쪽으로는 북악산(北岳山, 일명 白岳山)을 후현무(後玄武)로 하여
좌청룡(左靑龍)으로 동쪽의 낙산(駱山), 우백호(右白虎)인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남쪽의 전주작(前朱雀)으로
목멱산(木覓山 일명 남산)의 능선을 따라 성곽이 축조되었다.
북악산은 청와대 뒤쪽에 있으며, 1968년 1.21 무장간첩 침투 사태 이후 군사보호구역과 보안상의 문제 등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왔고 또한, 남대문(崇禮門), 동대문(興仁之門), 서대문(敦義門)과 함께
서울의 4대 문 중 하나인 북대문 숙정문(肅靖門)이 북악산 내에 있어 그동안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오늘 나는 숙정문을 볼수 있는 산길을 택하여 걸었다.
북악산 테크계단
북악산은 이렇게 끝이없이 데크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국립공원 또는 지방단치단체가 관리하는
도립공원이나 군립공원 보다 관리가 더 잘되어 있어 정말 산책코스로는 일품이다
북악산에는 많은 식물도 많은데 총 208종이고 그 중 나무는 81종이서식 한다고 하며
교목류는 소나무, 팥배나무, 때죽나무, 산벚나무 등이 있고, 관목류는 진달래, 철쭉, 쥐똥나무, 국수나무 등이 있다.
침엽수로는 소나무가 대부분이며, 활엽수는 참나무 등 여러 종류가 섞여 자라고 있다고 하며
그 외 성곽 주변에 아카시나무, 은수원사시나무, 리기다소나무 등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하여 심은
나무와 최근 조경수로 심은 스트로브잣나무 등이 자라고 있으며
팥배나무 군락은 숙정문(肅靖門) 일대를 중심으로 분포한다고 한다.
남산조망
미세먼지가 서울하늘을 덥고있는 모습이며 파란하늘이 아닌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남산타워가 저멀리 보이고 롯데타워도 회색빛 사이로 흐릿하게 다가왔다
남산서울타워는 명칭유래는 타워층인 N서울타워는 New Namsan을 축약해 나타낸 이니셜 ‘N’을 통해
새로워진 서울타워에 대한 기대감 및 새로움과 서울의 새로워지는 문화적 트렌드를 부각시키려는
브랜드 이미지를 도입하였고 하며 글로벌한 트랜드에 맞추어 보다 젊어지고 새로워진 역동성을 표현하였다 한다.
서울 진달래꽃
서울 진달래꽃도 천리길 진주에서나 같은 색의 같은꽃 같은날에 이렇게 만개하여 피어있다
이제는 꽃피는 시기도 순서가 아닌 기후변화로 그냥 다 피는듯 하다
북악산에서 청계천이 발원하는데, 2005년 11월 종로구청에서 조사한 청계천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 고개에 있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 라고 한다
또한 북악산 동쪽 촛대바위 부근의 해발 245m 지점(동경 126°58′41.8″ 북위 37°35′34.4″)이
청계천의 최장 발원지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고 하며
인왕산·북한산·낙산·남산 등과 함께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장벽의 구실을 한다.
숙정문(肅靖門)
서울시 종로구 백악산(白岳山) 동쪽 고개에 있는 조선전기 서울 성곽의 4대문 가운데 북쪽 문(門)이며
성곽안쪽에서 촬영을 하였다 많은 산객들이 왕래가 많아 촬영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본래 북대문(北大門)이라고도 하였고 경복궁의 주산(主山)인 백악산(白岳山) 동쪽 고개에 위치하고 있으며
1395년(태조 4)에 숙청문(肅淸門)이 건립되었으나 1413년(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왕에게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청하였다. 이를 계기로 창의문(彰義門, 일명 紫霞門자하문)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다고 한다.
숙정문(肅靖門)
숙정문(肅靖門) 은 높은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길이 매우 험하며 또 성문을 나서면 북한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동쪽으로 성북동 골짜기를 따라 내려와 동소문(東小門 : 혜화문) 밖 경원가도로 나오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한양에 출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소문을 통과했지 숙정문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숙정문보다 동소문이 한양 출입에 훨씬 빠르고 편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문을 폐쇄해도 통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영구히 닫아 두었다.
다만 한재(旱災)가 심할 때에 이 문을 열고 남문인 숭례문(崇禮門: 南大門)을 닫는 풍속이 있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 북은 음(陰)이며 남은 양(陽)이라고 한다. 한재 때 양을 억제하고 음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으로 1416년(태종 16)에 처음 시작하였다.
숙청문을 열어 놓으면 장안의 여자가 음란해지므로 항상 문을 닫았다는 속설(俗說)도 전하고 있다.
그것은 이 문이 음방(陰方: 여자의 방위)에 있는 까닭에 이런 말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문은 1504년(연산군 10)에 조금 동쪽으로 옮겨 세웠는데 이 때 석문(石門)만 세우고 문루(門樓)는
건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1976년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시에서 백악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할 때
태조 창건 당시의 제도에 의해 문루를 건축하고 ‘肅靖門(숙정문)’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어느 때부터 무슨 이유로 숙정문으로 개칭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1523년(중종 18) 中宗實錄(중종실록)의 기사 이후 역대 각 실록에 모두 숙정문으로 기록되고 있어
숙정문이라 호칭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숙정문(肅靖門) 편액
숙정문은 북한산 동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울 성곽의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태조 5년(1396)에 완공되었는데 처음에는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으나
연산군 10년(1504)에 성곽을 보수하면서 옮겨졌다고 한다.
숙정문은 본래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서울성곽 동서남북에 4대 문의 격식을 갖추기 위하여,
그리고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평소에는 닫아두었기 때문에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길은 나있지 않다.
1976년 북안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하면서 문루를 짓고 ‘숙정문’이란 편액을 달았다.
1531년(중종 26) 북정문(北靖門), 1587년(선조 20) 숙정문(肅靜門)으로도 표기된 것을 볼 때, ‘정숙하고
고요한 기운을 일으킨다’는 의미에서 ‘숙정문(肅靖門)’으로 명명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다락 없는 암문(暗門)인 것이 특색이다. 항상 닫혀 있었기 때문에 흔히 숙정문 대신에 창의문을 북문이라고 하였다.
한양도성(漢陽都城)길
서울 한양도성 (漢陽都城)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성곽이며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으로 천도하기 위하여 都城築造都監(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1396년부터 2년에 걸쳐 성곽을 축조하였다.
성곽의 축조는 전체 규모인 59,500척을 1구간 600척씩 97구간으로 나누어 축성하되
2개 구간마다 판사, 부판사 1명씩을 배치하고 사, 부사, 판관 등 12명을 배치하여 공사를 감독하였다.
1구간은 다시 6호로 나누어 책임자를 두는 등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고 공사에 임하였다.
각 구간마다 천자문의 순서를 따라 '천, 지, 현, 황...' 순으로 번호를 매겨 적(吊)자에서 끝나고 있다고 전한다.
서울 성곽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축조되었다고 하며
한양도성은 1395년(태조 4)에 궁궐이 낙성된 뒤 같은 해 1월 기공식과 함께 착공되었다.
조선시대 북악산 기슭은 왕궁 및 관청과 가깝고, 또 경치가 좋았던 관계로 왕족과 사대부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별서가 많았으며 그리고 많은 문인과 화가들은 이 일대의 빼어난 경치를 그림과 시문으로 남겼다고 한다.
미세먼지속의 서울 남산(南山)
미세먼지속의 서울남산타워를 줌으로 당겨 촬영해 보았는데 하늘은 희색빛으로 물들어 있어 아쉽기만 하다
남산의 높이는 262m이며, 목멱산·인경산·마뫼로도 불렸다고 하며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 북쪽의 북악산과 함께 서울의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다.
조선 태조 때 능선을 따라 도성을 축성했으나 현재는 성곽의 일부만 남아 있고
남산타워라고도 하는 N서울타워는 산정에 솟아 있는 높이 236.7m의 송신탑으로 사방으로 펼쳐진 서울의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휴식·관광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총면적 2,971㎢의 남산 일대가 시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미세먼지속의 롯데월드타워 조망
코로나 시절엔 단 한가지 좋은것이 파란하늘을 자주 볼수 있었다는것이다
코로나 시절엔 늘 혼산으로 산정에서면 파란하늘과 멀리까지 볼수 있는 시야가 너무 좋았지만
다시 재빛하늘과 미세먼지로 인하여 마스크를 써야할 정도라니 지구가 이상기후에다 몸살을 앓고 있는 셈이다
롯데월드타워가 미세먼지속에영화의 한 모습처럼 그 모습이 웅장하게 보였다
롯데월드타워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에 건축된 초고층 복합 건물로서
원래 '제2롯데월드'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으나 2010년 롯데월드타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2009년 착공되어 2016년 12월 22일 완공되었으며, 지상 123층, 지하 6층, 555m의 규모이다.
한국에서는 100층을 넘은 첫번째 건물이며, 세계에서는 5번째 높이의 건물로 기록되었다.
전망대, 오피스, 호텔, 레지던스, 백화점 등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선 가운데, 2017년 4월 3일 공식 개장했다.
곡장(曲墻)에서 바라본 조망
곡장(曲墻)은 성곽의 시설 중 하나로, 방어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성곽 일부분을 둥글게 돌출시킨 것을 말하는데
치성(雉城)과는 비슷하지만 다르다고 한다.
여기 곡장 전망대에서 바로본 풍경인데 안내판을 보면 우측이 형제봉이고 좌측방향으로 보현봉이며
승가봉과 사모바위 그리고 비봉과 향로봉이 순차적으로 조망되는곳이다
한양도성(漢陽都城) 축성 공사에 동원된 인원수는 총 11만 8,490명에 달한다고 하며
성벽 외측 면석에는 감독자의 이름과 담당 군명, 자호 등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성터가 높고 험한 곳은 석축으로 쌓았으며, 평지 구간은 토성으로 쌓았고
태조 때 쌓은 성곽은 둘레 89,610척, 높이 40척, 여장 4,664첩이며, 치성 6군데가 신축되었다.
사대문과 사소문은 1398년에 완성되었다.
태조 때의 석축 성벽은 가공하지 않은 편암계의 할석을 사용한 허튼층쌓기 방식을 특징으로 하며
주로 남산 구간에서 태조 때 쌓은 성벽이 확인된다고 한다.
청운대(靑雲臺) 293m
청운대(靑雲臺)는 북악산에서 두번재로 높은 봉우리이며 해발고도293m이며 청운대 이름은 옛날부터 있었던 이름이 아닌
북악산 한양도성이 개방되면서 부터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북악산 한양도성 구간중 가장 조망이 좋은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에서는 성북동과 북악산 동쪽과 북쪽 자락의 서울도심 동북부 지역과 송파 강동지역
구리와 남양주 지역까지 두루 조망이 나오는곳으로 인기가 많은곳이다
1.21사태 총알맞은 소나무
1.21사태는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한 사건이며
게릴라전 특수훈련을 받은 무장간첩 31명은 1968년 1월 13일 북한군 정찰국장 김정태(金正泰)로부터
청와대 습격의 지시를 받고, 우리 국군의 복장으로 18일 자정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은 뒤 야간을 이용해
20일 10시경 서울시내 세검정 고개의 자하문 초소까지 잠입했다.
초소에서 검문을 받은 그들은 정체가 탄로나자 검문경찰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난사했으며
지나가던 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져 많은 시민을 살상했다.
이날 밤 현장을 지휘하던 최규식(崔圭植) 총경이 전사하고 경찰관 2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민간인 5명이 살해되었다.
사건 후 곧바로 출동한 군경합동수색진에 의해 31일까지 28명이 사살되고
김신조(金新朝) 1명을 생포했으나 2명은 도주했다.
이 사건은 북한이 대남적화공작을 위한 유격전활동을 전개하기에 앞서 시도한 탐색행위로서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향토예비군 창설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총탄맞은 소나무는 오랜시간속에서 아물어 가고 있는 흔적이 보였다 소나무야 고생했어요
북악산(北岳山 백악산白岳山)342m
북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북악산(北岳山 백악산白岳山)342m
북악산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한다고 하며
산경의 흐름을 보면 한북정맥(漢北正脈)의 끝자락인 북한산 보현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형제봉을 거쳐
북악터널 위의 보토현(補土峴)으로 이어지며 이어 표고 328m의 봉우리와 팔각정 휴게소 앞 능선을 따라
북악 뒤편에 구준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서울의 부주산(副主山)인 응봉(鷹峰)으로 이어져 경복궁의 배산인 북악에 다다른다.
조선시대 북악산 기슭은 왕궁 및 관청과 가깝고, 또 경치가 좋았던 관계로 왕족과 사대부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별서가 많았다고 하며 숙정문 북서쪽 약 400m 지점에는 촛대바위가 있는데
일제 때 이 바위 상단부에 쇠말뚝을 박았었고,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라 정하였다.
현재는 쇠말뚝을 제거한 부분이 콘크리트 기중으로 마감되어 있다고 한다.
만세동방(萬世東方) 약수터
물이 흘러나오는 곳에 바위에는 萬世東方 聖壽南極(만세동방 성수남극)이러고 새겨져 있었다
물은 음용불가라고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물맛이 보고싶어서 먹어 보았는데 석회맛이 나왔다
안내글을 보면 약수터 바로 위에 있는 바위에 만세동방(萬世東方)성수남극(聖壽南極)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주변 계곡을 만세동방 계곡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누가 언제 새겼는지 알 수 없으나 글자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나라의 번창과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만세동방(萬世東方)
북악산은 1968년 1 · 21사태 이후 북악산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것이
서울성곽 백악산(북악산) 일원 전면 개방 계획에 따라 일차적으로 2006년 4월 1일숙정문과 함께
삼청터널 북쪽 홍련사(紅蓮寺)에서 도성(서울 성곽)을 따라 촛대바위까지 약 1.1㎞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2020년 11월 1일부터 청와대 뒤편 북악산 북측면 구간이 개방되었고 북측면 개방으로
서대문구 안산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중단없이 산행할 수 있게 되었다.
문화재청이 2009년 명승으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청와대(靑瓦臺)전망대
청와대 전망대에서 보는 조망은 발아래는 청와대가 보이고 정면에는 남산타워가 서울 지형을을
모르는 나에게 남산임을 근방 알수가 있었다
청와대가 있는 종로구(鐘路區) 변천사를 보면
종로구는 조선의 건국이후 한양천도와 함께 오늘날까지 약 600여년 동안 서울의 중심부로 25개 구청 가운데
행정서열 1위인 문화, 행정의 심장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다.
종로라는 명칭은 지금의 종로1가에 도성문(都成門)의 개폐(開閉)시각을 알려주는 큰 종을 매달았던
종루(鐘樓)에서부터 비롯되었으며 1943년 4월 1일 구제도(區制度)를 실시할때
종루(鐘樓)가 있는 거리라는 뜻으로 종로구가 되었다.
청와대(靑瓦臺)전망대
여기서 보면 경북궁도 조망 되는데 경복궁의 북문 신무문(神武門) 뒤쪽은 신(神)의 영역이다.
궁궐 자체를 시민들에게 돌려준 지금이야 늘 열려 있지만 왕조시대에는 닫힌 문이었다.
신의 영역은 특별한 행사 때나 드나들 수 있었다.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태조 4년(1395) 2월 29일 기사에는 백악(白岳, 북악)을
진국백(鎭國伯, 국사당)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북악산 정상 백악신사(白岳神祠)에서 제사를 올렸다고 하며
그 아래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는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인 연무장(鍊武場)과 과거장(科擧場)
왕이 시범적으로 농사를 짓던 친경지(親耕地)가 있었다고 한다.
白岳亭(백악정)
북악산 산행에서 새로운 시작점으로 떠오른 백악정은 청와대 관저 뒤편 쉼터로 춘추관 옆 담장을 따라
20분 정도 오르면 만날 수 있는 곳이며 이는 역대 대통령들이 가장 즐겨 찾던 산책 코스이기도 하다.
2022년 청와대 개방 소식은 수많은 국민 중에서도 유독 등산객들에게 큰 환대를 받았다고 하며
2020년에 북악산 북쪽에 해당하는 청운대, 평창동 구간을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2022년 4월에는 숙정문, 청운대, 삼청동 구간을 추가로 개방했으며
2022년 5월 청와대 전면 개방과 더불어 북악산의 남측인 청와대, 백악정, 칠궁 구간을 개방하면서
온전한 북악산 등반의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춘추관 방향 하산길
춘추관옆 담장을 따라 하산길에 접어 들었다 춘추관(春秋館)은 고려·조선시대에 시정(時政)의 기록을 관장한 관서이며
지금은 언론과 청와대가 소통하는 장소인데 청와대도 개방한 상태이며 나는 13시에 관람 예정되어 있다
종로구(鐘路區) 행정구역은 서울의 중심구로 국가주요 공공기관이 있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추적인 도심지역이며
세종로 네거리 동북에 도로원표가 있고, 전국이정표가 이 도로원표를 기점으로 하고 있어
종로가 우리 국토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고 하며 1394년 10월에 조선왕조가 한양에 천도한 이후
600여년 동안 우리민족과 함께 영고성쇠를 말없이 지켜온 북악산, 인왕산이 있고
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사직단,동대문 등 수없이 많은 문화유산과 우리 고유의 전통한옥이 잘 보존되어
전통미와 현대미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는 도시이며 총면적이 23.91km²이라고 한다
하산완료
조선 도읍지(朝鮮 都邑地) 주산으로 삼은 백악산(白岳山)이라 불렀던 한양도성 탐방로 따라 서울 북악산(서울 北岳山) 을 걸어보며 춘추관 담장을 따라 하산하여 안내표지목 한국금융연수원 방향으로 하산을 완료 하였다
북악산은 대부분 데크계단으로 되어 있었고 미세먼지속의 서울 조망이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 산행이였고
김신조 무장간첩 침투 소나무 총탄 흔적이 아직도 핵개발 탄도미사일 발사등 북한은 변함없이
남한을 노리고 있는 지금 안보의식이 예전보다는 낮은점이 교육때문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1000리길 진주에서 서울 북악산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상장 받음
삼청동공원주차장을 T-map내비게이션에 검색하니 삼청공원노상공영주차장으로 안내했는데 5분150원이라는 멘트도
나왔지만 정말 거주자 우선주차지역이라는걸 모르고 주차를 하고서 산에 올랐다
하산30분정도 시간에 모르는 전화가 왔는데 요즘 스미싱때문에 받지를 않는다 연속해서 왔기에 전화를 받으니
차를 빼라는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산인데 30분정도 걸리겠다고 하니 거주자우선주차지역에
주차를 했다고 신고하겠다고 하였고 나는 죄송합니다 모르고 주차했다고 하니
대한민국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라고 신고 하겠다는것 이렇게 상장을 받았다.
※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
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
한국1000산 신명훈 깊은솔
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오혜령 박옥남,복랩
종로구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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