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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청계산(城南 淸溪山). 청룡(靑龍)이 승천한곳 왕의 사냥터였던 청계산 매봉(鷹峰)에서 서울도심 풍경을 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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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청계산(城南 淸溪山). 청룡(靑龍)이 승천한곳 왕의 사냥터였던 청계산 매봉(鷹峰)에서 서울도심 풍경을 보다

바다늑대FORCE 2024. 3. 3. 10:17

성남 청계산(城南 淸溪山) 

청룡(靑龍)이 승천한곳 왕의 사냥터였던 청계산 매봉(鷹峰)에서 서울도심 풍경을 보다

 

▲ 성남 청계산 매봉(城南 淸溪山 鷹峰) 

     높이 : 582.5m

     위치 : 서울특별시 서초구와 경기도 성남시 과천시 의왕시 경계에 걸쳐 있는산

 

▲ 성남 청계산 매봉(城南 淸溪山 鷹峰) 나의 산행일 :

     2023년03월02일 토요일 날씨 : 맑음

 

▲ 성남 청계산 매봉(城南 淸溪山 鷹峰) 나의 산행코스 :

    정토사→청계골갈림길 →매바위 →돌문바위 →청계산 매동

    (원점회귀)

 5.81km 2시간16분 소요(트랭글 앱 기준)

 

▲ 성남 청계산(城南 淸溪山) 개요 :

청계산 주봉 높이 618m이며 망경대 이지만 군사시설로 인하여 접근불가라 한다.

서쪽에 솟은 관악산과 함께 서울의 남쪽을 이루고, 주위에 국사봉(540m)·응봉(349m) 등이 있으며,

망경대·옥녀봉·청계봉 등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청룡이 승천했다 하여 청룡산이라고도 불렸다.

능선은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사방이 비교적 완경사이다.

서북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물은 과천저수지로 흘러들며 기반암은 화강편마암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500m에 달하는 계곡은 맑은 물과 울창한 수림으로 경치가 뛰어나다.

남서쪽 중턱에 위치하는 청계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고려 1284년(충렬왕 10) 조인규에 의해 중건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쇠붙이 공출로 수탈될 뻔했으나 봉은사에 감추어 두었다가 다시 찾았다는 동종이 있다.

그밖에도 극락보전·삼성각·산신각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능선의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이며 서쪽 사면에는 서울대공원이, 북서사면에는 한국마사회 경마장이 있어

서울 시민을 비롯한 인근 주민들의 위락지·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의왕시 청계동사무소-자매교-청계4동사무소-산장-청계사-산정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사방에서 접근할 수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동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와 성남을 연결하는 지방도가 나 있다.

 

▲ 성남 청계산(城南 淸溪山) 산행지도

 

▲ 성남 청계산 매봉(城南 淸溪山 鷹峰)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4년 03월02일 토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09시경 진주를 출발하여  분당앤스퀘어 결혼식장 12시30분에 도착해서 동료직원 결혼을 축하해주고서

환복(換服)후 곧장 티맵을 검색해서 청계산 들머리가 있는 정토사로 길을 나서 본다

산에 대한 자체가 이미 집착이니 옛 속담에 제사보다 오히려 젯밥에 관심이 더 많다고 하여도

어쩔수 없이 나는 산으로 길을 나섰다.

정토사 극락전( 淨土寺 極樂殿)

들머리가 있는 정토사 극란전이다

주소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옛골로 42번길 3 또는 정토사라고 입력하면 되는데

정토사란 사찰 명칭이 많기에 편안하게 주소를 입력하면 여기로 안내된다

넓다란 정토사 사찰내 주차장을 이용하면 되며 여기서 들머리를 산행준비 하시는 어르신 부부에게 문의하여

어르신과 함께 들머리 까지는 걸어 가면서 안내 받았고 한번더 어르신께 감사드린다

정토사 극락전에서 좌측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5분정도 올라가면 2차로 포장도로가 나오는데

좌측으로 걸어가다보면 우측에 망경대란 안내표지목이 나온다

청계산 매봉 들머리

청계산 정상은 망경대(望京臺) 이지만 군부대 시설로 인하여 청계산 정상은 갈수가 없다고 한다

망경대 안내표지목이 있는 이곳 뒷쪽은 군부대이며 민간인은 더이상 갈수가 없고 여기서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200m정도 올라가다보면 좌측에 산길로 연결되는 목계단이 나온다

2월 내내 봄처럼 따스했는데 여기오니 아직 한겨울 같았다 어르신 부부에게 인사를 드리고 곧장 길을 걸었다

첫번째 안내표지목

매봉까지2,100m라고 되어 있고 청계골과 옛골과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청계산은 과천의 서울대공원에서 바라보면 대공원 뒤에 병풍처럼 둘러있으며 바위로 되어 있는

정상인 망경대가 우뚝 솟아 보인다고 하며 정상에 서면 북서쪽으로 펼쳐진 계곡 아래

과천시와 동물원, 식물원이 있는 서울대공원, 각종 놀이기구가 있는 서울랜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경마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고 하는 조망지라 한다.

정상인 망경대는 이전에는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지금은 해제되어 등산이 가능하지만

정상은 아직 개방되지 않았다고 한다

협읍재 갈림길

여기서 부터는 서울시 서초구라고 안내표지에 되어 있고 시간이 15시 부터 산행이라 협읍재를 가서 정상과

매봉을 경유해서 하산하려고 했지만 오늘은 시간상 헬기장으로 해서 청계산 매봉만 올라보고 하산할 계획이라

헬기장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걸었는데 마을 사람 단체로 산행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청계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 혼재 되어 있으며  과천과 성남 경계선에 있는 청계산은

흔히 양재 청계산으로 불린다고 하며 청계산 정상인 망경대도 과천시와 성남시의 경계에 있으니

과천시와 성남시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가 있을것 같다.

그렇게 불리는 이유를 듣고 보면 청계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양재에서 가까운

전철 청계산입구역에서하차를 해서 산행하고 양재에서 4432번 버스 편으로 와서 원터골(서초구 원지동)을

들머리로 잡아 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남누비길 6구간 청계산길

경기도 성남시내 특색있는 등산로를 통칭할 이름이 성남 누비길이라고 하는데

성남시는 명칭선정위원회를 열어 2014년4월에  등산로 명칭 공모를 하여  108건을 심사한 결과 누비길을

선정 하였다고 하며 성남 누비길은 여*숙(45·여·용인시 거주)씨가 공모한 명칭이라고 하며

더불어 누빌 수 있는 아름다운 숲길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누비길이 숲과 숲 사이의 다양한 등산길을 정확하게 표현했고 함께 누빈다는 의미가 주는 상징성과

발음하기 쉬운 어감이 등산로를 통칭할 이름으로 적합하다고하여 선정 되었다고 한다

청계산 누비길 풍경

산행길에 산악 자전거 횡하니 지나갔는데 생긴 모습은 꼭  산악오토바이크와 비슷했지만 엔진소리가 나지않아서

산악자전거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산행로가 군데군데 흙이 많이 소실 되어 있었다

누비길은 성남시 경계를 이어 만든 숲길로, 남한산성길(1구간), 검단산길(2구간), 영장산길(3구간),

불곡산길(4구간), 태봉산길(5구간), 청계산길(6구간), 인릉산길(7구간)등 일곱 개 구간이라고 한다. 

잔설(殘雪)

고도가 높아질수록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 있고 청계산 정상이 망경대는 바위 암봉 탓인지 오르는길 여기저기

큼직한 바윗돌이 많이 보이며 빼곡하게 소나무랑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청계산에는 매봉이 몇 군데가 있다고 하며 지역 산꾼의 지적에 의하면  그 구분이 애매하다 하며

청계산 정상인 망경대는 군부대 시설이 있어서 접근이 불가능하다 철조망 밖 조금 낮은 곳까지는 오를 수 있지만

정상석이 있었는데 몇년 전에 없어졌다고 하며 그 나마도 한동안 비탐으로 금줄을 넘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한다

양재쪽 매봉은 실질적 청계산 정상 역할을 하고 있어서 청계산을 찾는 많은 등산객들은 이곳을 목표지로 하고 있으며

그다음은 과천 대공원 쪽의 매봉이 있는데 등산객들은 '과천매봉'이라고 부르지만 정상석에는

양재쪽 매봉과 동일하게 '청계산매봉'이라고 되어 있다.

또 하나는 청계산에서 철조망 안 갱매폭포를 경유하여 대공원으로 하산하는 비탐구역에도

매봉이라는 멋진 조망처가 있다고 지역 산꾼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청계산 산길

서울 주변엔 이름 있는 명산이 참 많은 듯 한데, 도봉산, 사패산, 수락산, 불암산, 인왕산, 북악산, 관악산, 남산 등등

오늘 먼길와서 그냥 내려가기가 아쉬워서  그중에서 서울 서초구에 있으며

경기도 성남시, 과천시, 의왕시와 경계를 이루는 청계산을 찾아 지금 산길을 걸어보고 있다

청계산이라는 이름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시대에는 푸른색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을 두고 청룡산이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능선에는 주봉인 망경대를 비롯하여 옥녀봉, 이수봉, 매봉, 국사봉 등의

봉우리가 자리하고 있으며  오늘은 비록 군사시설로 인해 정상은 못가지만 매봉을 향해 매처럼 날아보자

잔설(殘雪)

여기 산길은 음지라 그런지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상태로 산길을 덮고 있는데 얼은 탓에 미끄러워 조심해야 했다

청계산 정상 망경대와 매봉 사이에는 피울음을 뜻하는 ‘혈읍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조선 전기 정몽주, 김굉필과 함께 성리학의 대가였던 일두(一蠹) 정여창 선생은 성리학적 이상 국가 실현이 좌절되자

망경대 아래 하늘샘(금정수터)에 은거했다 그가 은거지인 금정수에 가기 위해 이 고개를 넘다

통분해 울었는데 그 피울음 소리가 산 멀리까지 들렸다 하여 후학인 정구(鄭逑)가 혈읍재라 명명했다고 전한다.

정여창 선생은 1498년 무오사화로 함경북도 종성에 유배되어 1504년(연산 10년)에 사사되었다.

그 해에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시신이 찢기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했고

그가 머물렀다는 금정수는 청계산 최고봉 망경대 바로 남쪽 석기봉 절벽 100m 아래

즉 신선대 왼쪽 골짜기 상단부에 있는 굴로 행정구역상 과천시 막계동에 속하며 청계산 서쪽 벼랑이 된다.

소나무숲길

청계산 능선길에는 이렇게 소나무가 산객을 맞이 해주었다 산에는 소나무가 친구처럼 반갑해 맞이 하는듯 해서

소나무는 늘 산에오르는 친구가 되고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나의 주치의(主治醫)역활을 해주었다

청계산 망경대 아래 하늘샘(금정수터) 금정(金井)이란 금빛 우물이란 뜻으로, 바위틈에서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질 때

그 물빛이 마치 금빛 같아서 금정수라 이름 지었다.

정여창이 참형을 당한 뒤 금정수의 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가 억울한 누명이 벗겨져 복권된 후

다시 황금빛으로 되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며 금정수는 하늘 아래 있다 하여 하늘샘이라고도 한다.

마왕굴샘, 오막난이굴샘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고려가 망하기 직전에 맥(貘: 짐승이름, 표범의 딴 이름, 북방민족)이라는

이상하게 생긴 짐승이 떼를 지어 이 굴로 들어갔다고 해 오막난이굴로 불린 것에 유래한다.

마왕굴은 마왕과 관련된 것으로 전해지나 내력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청계산 등산 안내도

청계산 매봉으로 가는길 전망대 근처에 있는 청계산 안내표지이다

현재 청계산 아래엔 동물원이 생겨 온갖 동물이 있지만, 청계산은 예로부터 유난히 나무가 빽빽하고

짐승이 많아 ‘왕의 사냥터’로 유명했다고 하며 단종은 청계산에서 두 번 사냥했고

세조‧성종은 청계산에 와서 주로 사냥하는 것을 구경했다.

세조실록’에 보면 ‘짐승 잡은 것이 많았다’ ‘새를 잡은 것이 많았다’는 기록이 나오고 이들이 잡은 동물의 종류로는

사슴 노루 멧돼지 토끼 등이 있다. 연산군은 청계산에서 활 쏘고 사냥하는 것을 즐긴 대표적인 왕이었다.

청계산은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청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짐작될 뿐 확실한 기록은 없다.

과천읍지’(1899년) 산천조에 청룡산이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관악산을 백호산이라고 부른데 대하여

청계산이 좌청룡에 해당된다는 풍수설에 따라 청룡산이라고 부르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만 청계산이란 이름은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우선“청계”라는 이름이 붙고 그러한 내를 지닌

산이어서 나온 이름이 아닌가 짐작될 뿐이며 이 산의 주봉은 망경대(望京臺)에서 흐르는 물줄기 하나가

서쪽 막계동 골짜기를 이루는데 이것이 한자식 표기가 막계청계(莫溪淸溪)인 점으로 미루어

내 이름에 따라 붙여진 산 이름일 것으로 보인다고 하며

청계산은 청계산(淸溪山)외에 淸鷄山(청계산)ㆍ淸淸山(청청산)등으로도 나오지만

이는 기록한 이의 잘못이 아닌가 여겨진다.

산문(山門)

사찰의 문이 아니라 요즘 국립공원처럼 산길 입구에 세워진 출입문을 그냥 산 중턱에 있어서 산문이라 하였다

서울 서초구에서 세운 푸른 숲 그 사랑의 시작은 산불예방입니다 하는 편액이 청계산 능선에 세워져 있었다

청계산은 여러 문헌에 보면 그야말로 역사의 산이다

1506년(중종 1년) 경기 관찰사 윤금손이 “청계산 기슭에 나무가 빽빽해 도적의 소굴이 되었으니

나무를 베어 소통시키소서”라고 아뢰니 왕이 그리하라고 명한 기록이 있다.
1594년(선조 27년)에는 30세의 송유진이란 자가 속리산에서 나와 도적의 무리를 모아 청계산에서 주로 머물렀다.

당시 그를 따르는 무리는 무려 2000여 명에 달했고 서울의 서얼 출신이었던 송유진은

자칭 의병대장이라 칭하며  나라에서 소인들만 등용한다  어진 수령은 쫓겨나고

무능력한 사람이 등용된다 며 역모를 꾀했으나 송유진을 포함해

주도자 8명(오원종, 김천수, 유춘복, 김언상, 송만복, 이추, 김영)은 모두 사로잡혀 죽임을 당했다.
반면 청계산은 고려 충신 조윤이나 정여창 선생의 일화에서 보듯 충신과 대학자가 머물던

은둔과 지조의 땅 이기도 했고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명인 목은 이색이 이 산에서 숨어 살았으며

추사 김정희도 제주도 귀양살이에서 풀린 뒤 옥녀봉 아래에서 말년을 지냈다고 전한다.

산정 목계단길

잔설(殘雪)이 얼어 걷기에 매우 조심스러운 나무계단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매봉으로 가는 산길이다

청계산 자락을 대표하는 마을은 막계동이하고 하는데  과천 소재 막계동은 맑은 개울이 있다 해서

맑은 개울, 맑은 계곡이라 한 것이 막개 가 되고 한자로 청계가 되었다고 하며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 또는 시내가 있는 산 이라는 뜻인 청계산의 이름이 막계 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이곳은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초가집이 많은 농촌지역으로 ‘막계1~3리’로 불렀다고 전하며

현재 서울대공원 내 동물원과 식물원이 자리한 곳이 막계1리, 서울랜드가 있는 곳이 막계2리였다.

그러나 1977년 서울대공원 지역으로 고시돼 마을은 없어지고, 막계동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현재 한자표기는 음을 따 ‘막’은 莫(없을 막)으로 ‘계’는 뜻을 빌려 溪(시내 계)로 쓴다.

막계2리는 당시 신흥종교 ‘장막성전’ 신도들이 대부분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철거에 저항했으나 과천 문원동으로 대부분 이주했다 하며

과천시지(果川市紙)에 실린 막계리 이주과정에 관한 글을 통해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돌문바위

돌문바위 옥녀봉에서 매바위에 오르는 길에 있는 ‘사람 人’ 모양의 바위인데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돌문을 통과하면 복이 온다는 속설이 있어  낙 역시 복이 많이 올까나 걸어서 통과 해본다

환갑(還甲)을 바라보며 퇴직(退職)이 얼마남지 않은 지금 돌문바위를 지나면서 큰복은 그져 하나 뿐인 딸이 잘되길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복을 빌어보는데 나 역시 산을 가던 사찰을 가전 늘 복을 빌어서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지도 모른다

오늘 이렇게 먼길와서  직장동료 결혼식만 보고 가는건 산이 나를 그냥 두지 않기에 이렇게 근처 이렇게 청계산을 찾았다

돌문바위

사람인 모양의 돌문을 통과해서 또 청계산 매봉을 향해 걸어본다

청계산은 북한산이나 관악산처럼 등산로에 바위가 많이 솟아 있지 않고

황토흙이 덮여 있어 쉽고 편안하게 오를 수 있으며 산행시간이 짧고, 코스가 길지 않으며

산행로가 완만하여 가족 단위의 산행이 쉬운 산행지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청계산 중턱에는 경기도 지정문화재 자료 제6호인 청계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서울대공원이 푸른 숲과 맑은 공기를 자랑하는 청계산 기슭의 산림욕장이 98년6월에 개되었다.

7.38㎞ 길이의 산림욕장에는 얼음골 숲 등 8만1500㎡ 면적에 11곳의 휴식공간이 갖춰져 있으며

서울대공원 동·식물원 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동물원 입장한 뒤 산책로를 즐길 수 있다.

청계산 매바위 578m

청계산 매봉이 아닌 매바위이며 여기서 매봉까지는 100m 남았다고 한다

여기서 보는 조망이 일품이라 잠시 쉬면서 촌놈 서울구경 한번 하고자 한다

청계산 아래 자연마을은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 건설 때문에 막계1리와 2리에서 농사를 짓던 가구 160호는

문원1동의 75평 이주단지 택지를 추첨을 통해 분양받았다고 하며 그리고 문원2동은 세입자들에게

소위 40평 ‘입주딱지’가 분양되었는데, 약 500호 정도가 지난날 주로 막계2리에 정착했던

신흥종교 장막성전 신도들에게 분양된 곳이 라고 한다.

두 개의 이주단지 모두 지하철 과천역에서 보행으로 10분 정도 밖에 안되는 거리에 있다고 하며

사실상 지금은 호화주택 단지와 다르지 않을 만큼 변모해 있다고 한다.

지난날의 장막성전은 위풍당당한 새 교회로 바뀌었고, 그 이름도 ‘대한예수교장로회 이삭 중앙교회가 되었다.

그 어디에서도 지난날 막계2리에서 철거에 저항하던 신흥종교 장막성전의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고 전한다.

롯데월드타워 조망

청계산 매바위에서 바라본 롯데타워인데 줌 촬영 해보았다

서울 송파구에 자리한 초고층 건물이며 인접한 롯데월드이름에 유래하여 '제2롯데월드'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으나

2010년 '롯데월드타워'로 변경되었다고 하며 2009년 착공되어 2016년 12월 22일 준공되었고

2017년 4월 3일 개장했으며 2015년 12월 지상 123층까지 골조 공사가 진행되면서

서울에서 100층 높이를 넘는 첫번째 초고층 건물로 기록되었다.

높이 555m로 한반도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이며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건물로 기록되었다.

성남 군사 비행장과 좌측 롯데월드타워 조망

경기 성남시 수정구 공군기지가 위치한 서울비행장은 군사보호구역이며  아파트 단지들은 비행장 방향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5층을 넘기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군 비행장은 비행 안전을 위해 주변 지역을

비행안전구역으로 지정해 건축물의 높이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2024년 2월 26일 339㎢ 규모의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해제 대상에는 성남 서울비행장 등 군 비행장 주변의 보호구역 7곳(총 287㎢)이 포함되엇다고 한다.

경기 성남 분당·수정·중원구는 서울비행장 일대 약 72㎢ 규모의 보호구역이 해제되며

단일 시 중에서는 서산시(141㎢) 다음으로 큰 규모 라고 한다.

도봉산과 남산까지 조망

청계산 매바위에서 보면 서울 남산 그리고 도봉산과 경부고속도로까지 조망이 되는데

날씨탓에 그 시야가 분명하지 않아 아쉽다

매바위를 지나면 청계산 매봉(582.5m)에 도착되는데 실제 청계산 최고봉은 망경대(望京臺 616.3m)지만

그곳은 군사지역이라 갈수가 없다고 해서 아쉽기만 하다 우리는 산에 오르다 보면

군사시설로 인하여 산의 정상을 오르지 못하는게 이해를 충분 해야 한다 우리는 분단국가이기에 그렇다

청계산 매바위 표지석

저 뒤에 있는 산행자에게 조망되는곳이 어디인지 물어보니 친절하게 남산 도봉산 성남 군사비행기장 등등

위치를 상세히 설명해 주셨다 감사할 뿐이며 들머리를 찾을때 어르신부부의 친절함이 모두 산에 가면 이웃과 같다

청계산(淸溪山)은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과 함께 서울 시민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강남의 명산이다. 

청계산은 흔히들 옛골이나 원터골에서 출발하여 원점회귀하거나 말굽형으로 돌아내려 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며

마치 문어 다리 처럼 북으로는 서울 서초구 강남구, 동으로는 성남시, 남으로는 의왕시,서쪽으로는

과천시로 다리를 펼치고 의연히 앉아 있을 뿐 아니라 광교산, 백운산으로부터

한남정맥(漢南正脈)의 기운을 받아 관악산, 인릉산, 구룡산, 대모산으로 전하고 있다

성남 청계산 매봉(城南 淸溪山 鷹峰) 582.5m

청계산은 서울 서초구와 경기도 과천시 성남시 의왕시 경계에 있는데

매봉은 한자 매는 맹금류인 매응(鷹)으로 표기 응봉이며 매바위라 하는데 매는 우리말로 매바위 뜻이다

매봉은 전국에는 매봉이 수도 없이 많은데 청계산에만 해도 두 개의 매봉이 있다.

이 곳 매봉과 혈읍재에서 옥녀봉 가는 중간에 또 하나의 매봉이 있으며

사람들은 흔히 옥녀봉 쪽 매봉을 그냥 ‘매봉’이라 부르고 이 곳 매봉은 ‘과천 매봉‘이라 부른다.

매봉은 흔히 한자로 응봉(鷹峰)이라 쓰고 예전에 매(鷹)가 살던 봉우리라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뫼가 어느 날부터 뫼봉이 되었다가 매봉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선비들이 지명을 기록하자니 매(鷹)자를 써서 응봉(鷹峰)이 되었다는 설도 전하고 있다.

나는 성남시 옛골에서 들머리로 해서 산행했기에 성남 청계산이라 산행기에 기록하였다
산행 초보자들이 많이 가는 산이라고도 하며 전국에 이름이 청계산인 산은 여러 곳이 있으나

여기서 설명할 청계산은 인구가 밀집한 소도권 한복판에 우뚝 솟아있어서 전국 청계산들 중에

가장 인지도가 높다고 하며 관악산과 함께 서울의 남쪽 경관을 형성한다.

과거에는 청룡산(靑龍山)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청룡이 승천했다 하여 청룡산이라 불렀다고도 하고

풍수지리적으로 한양의 주산을 관악산으로 보았을 때 좌청룡에 해당하여 청룡산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성남 청계산 매봉(城南 淸溪山 鷹峰) 582.5m

청계산은 조선시대 왕들의 사냥터이기도 하였고 선비들의 은둔처이기도 하였다
청계산 최고봉은 망경대(望景臺)로, 과천시와 성남시의 경계에 있으며 높이는 618m이 라고 하며

군사시설로 인하여 매봉까지만 가능하며 인근 산길이 개방되어도 산정은 오르지 못한다고 한다

청계산은 서울 근교에 있는 산 치고는 높이가 높은편이며 백두대간에서 한남정맥(漢南正脈)이 갈라지고

한남정맥에서 관악지맥(冠岳枝脈)이 갈라지는데, 청계산은 관악지맥의 한 봉우리이다.
청계산 북동쪽에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이 남쪽에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의 청계터널이,

서쪽에 서울대공원,서울랜드,국립현대미술관 등이 있고 청계산 동쪽에 경부고속도로가 지난다.

성남과 과천을 청계산이 나누기 때문에, 산을 경계로 동쪽 사면은 판교

서쪽 사면은 과천, 평촌 등의 도시들로 나뉘어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고 한다.

특전사 충혼비 안내문

대한민국 공군 소속 C-123 수송기가 청계산 자락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일 오후 2시 40분쯤 기상 악화로 수송기가 청계산 매봉 정상 근처에 추락했고

사고현장에는 충혼비가 있는데, 안내판에 따르면 공수기본 250기 대원들이 3주간 지상훈련을 마치고

자격강하를 실시하기 위해 거여동 강하장으로 이동하다가 수송기가 추락해 53명

특전교육단 교관 5명, 교육생 44명, 공군부대원 4명이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원점 하산길

청계산 매봉에 올라 서울도심 풍경을 감상하며 하산길로 접어 들었다

청계산(淸溪山)에 대한 설명문을 보면 “옛날에는 청룡산(靑龍山)이라고 불렸다고 하며

과천의 진산을 관악산으로 보면 청계산은 좌청룡(左靑龍)이라 청룡산이요,수리산은 우백호(右白虎)라

백호산(白虎山)이라 했다”고 하며 다른 설명문을 보면

청계산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라고 한다

충신이 피눈물 흘린 청계산을 최단코스옛골에서 원점으로 하산해본다

정토사( 淨土寺)전경

하산해서 정토사 도량을 둘러보고 참배도 하였다

1982년 6월 20일 한보광(韓普光) 스님과 몇몇 신도들의 발원으로 상적동 346번지 주택을 인수하여

정토선원(淨土禪院)을 연 것이 시작이라고 하며 이때 극락정토현재설법결인(極樂淨土現在說法結印)

아미타불상을 봉인하여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1982년 8월 28일 재단법인 대각회(大覺會)에 소속되었으며, 1987년 극락전 30평을 건립하였다.

1992년 5월에는 ‘염불회’를 결성하고 염불회 취지문과 청규를 제정하였고

1997년 10월 만일염불결사회(万日念佛結社會) 심볼마크 및 휘장을 제작하면서 이 결사의 실천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2000년 6월 6일 만일염불결사회의 입재식과 함께 결사가 시작되어

1만일 회향일(2027년 10월 22일)까지 염불신행을 실천하는 도량이 되었다고 한다.

정토사 무량수전(淨土寺 無量壽殿)

정토사 무량수전에서 참배를 하였다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의 서방 극락정토를 축소시켜 묘사한 곳으로

아미타전(阿彌陀殿) ·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한다.

극락이 서쪽에 있으므로 극락전(極樂殿)은 주로 동쪽을 향하고 있어 예배하는 이들은 서쪽을 향하게 된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고,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신다.

아미타불의 인계에는 9품(品)이 있으며 이는 극락에 태어나는 자들의 수준에 따라

상품(上品) · 중품(中品) · 하품(下品)으로 나누고

다시 각각 상생(上生) · 중생(中生) · 하생(下生)으로 나눈 것이다.

산행종료

청계산 북동쪽 기슭은 신사시대 주민들의 생활근거지로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산재해 있으며

고려 멸망 후 이색, 길재, 조윤 등 고려 유신들이 은거했던 곳으로 청계산의 주봉을 망경대라 부르는데

이는 고려가 망한 뒤 고려 유신 조윤이 청계산 정상에서 송도를 바라보며 세월의 허망함을 달랬다는 데서 유래하고

조선 말기에는 노년의 추사 김정희가 긴 유배생활에서 돌아와 부친의 여막을 지키면서 살았던 곳이다.

청계산에 올라 봉우리마다 골짜기마다 담긴 사연에 귀 기울여 보면 행여 그 옛날 정여창 선생이

왜 그토록 피울음 소리를 내며 통곡했는지, 하늘샘에 왜 갑자기 이상한 짐승 ‘맥’이 출현했는지

더 깊은 사연을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오늘 청룡(靑龍)이 승천한곳

왕의 사냥터였던 청계산 매봉(鷹峰)에서 서울도심 풍경을 보면서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

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

한국1000산 신명훈 깊은솔

과천시지(果川市紙) 5권 제2장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에 밀려 사라진 막계리
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오혜령 박옥남,복랩

서초구청 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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