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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 화장산(彦陽 花藏山).꽃을 감춘 산 이라 불리는 불교(佛敎)와 천주교(天主敎)가 공존하는 화장산 산정 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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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 화장산(彦陽 花藏山).꽃을 감춘 산 이라 불리는 불교(佛敎)와 천주교(天主敎)가 공존하는 화장산 산정 서다

바다늑대FORCE 2023. 3. 8. 17:28

언양 화장산(彦陽 藏山).

꽃을 감춘 산 이라 불리는 불교(佛敎) 와 천주교(天主敎)가 공존하는 화장산 산정 서다

 

▲ 언양 화장산(彦陽 藏山)

     높이 : 271m

     위치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에 걸쳐 있는산

 

 언양 화장산(彦陽 藏山) 나의 산행일 :

    2023년03월08일 수요일 날씨 :  맑음(미세먼지 많음)

 

 언양 화장산(彦陽 藏山)나의 산행코스 :

     언양성당→영남알프스둘레길→굴암사→도화정→화장산 정상→마당바위

    →오영수문학관→십자가의길→언양성당

     2.66km   1시간27분 소요(트랭글 앱기준)

 

 언양 화장산(彦陽 藏山)개요:

화장산. 고헌산에서 줄기 뻗은 해발 271m의 이 산은 언양읍을 품고 있는 주산이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언양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다.

화장산에는 '갯마을'의 작가 오영수와 고려시대 거란족의 침입을 막아냈던 김취려 장군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언양읍 송대리에 있는 화장굴(花藏窟)은 화장산 중턱에 위치한 폭 6m, 높이 2m 가량의 굴있으며
이 굴안에는 옥천(玉泉)이라는 샘이 있는데 바위틈에서 맑은 물이 솟아난다.

여기와서 기도하는 사람이 많은데 몸이 불결한 사람이 오면 몹시 더러운 냄새가 나고

샘물이 단류한다고 하여 염천(廉泉)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이 굴 안에는 한 암자가 있으며

이 화장굴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두 가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언양 화장산(彦陽 藏山)산행지도

 

▲ 언양 화장산(彦陽 藏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3년 03월08일 수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우수도 경칩도 지난 날씨에  당직근무를 마치고 동부쪽으로 산을 찾아 길을 나선다

불고기로 유명한 언양인데 내가 찾는곳은 불교와 천주교가 공존하는 산 그 산을 찾아 본다

언양성당(彦陽聖堂)

언양 화장산 들머리가 있는 언양성당이다

언양성당은 1936년 울산지역 최초로 건립된 성당이며 13개의 성지 및 천주교 사적지와

16개의 공소가 있는 경상남도 지역 천주교 신앙의 출발지이다.

1927년 언양 본당이 설립되었고 1990년엔, 언양 지방 천주교 선교 200주년을 기념하여

신앙유물전시관이 만들어져 있으며 이곳엔 신앙 유물과 민속 유물, 언양 천주공교협회 등

본당 단체들이 남긴 기록, 초기 교회 교우들이 사용하던 각종 기도서 교리서 등

고서, 제의 등 총 696점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신앙 유물은 교황청에 등록된 귀중한 자료라고 하며

언양 성당의 뒷산에는 성모 동굴과 십자가의 길이 있다.

언양성당옆 순례길 안내도

언양 화장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언양 성당에서 시작하면 되는데 주소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 422(언양읍 송대리 구교동1길-11)검색하면 된다

언양지역과 신앙 공동체의 발전을 살펴보기에 앞서 지형지세와 언양지방 연혁 및 문화 유적을 보면

복음의 씨앗이 뿌리내리게 될 토양의 여러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 당시 천주교가

사상,종교,지역적으로 얼마나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이 지방에 뿌리 내리게 되었는가를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이러한 깨달음은 후에 무수한 박해 중

우리 선조들의순교와 신앙심 증거의 산실이되어다고 기록하고 있다

언양성당 성모마리아상

언양지역은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온 직후 그 선조들로부터 신앙의 씨를 이어받아

첫신자인 김교희, 오한우로부터 200년의 선교역사와 신앙선조들의 발자취를 품고있는 곳이며

숱한 박해의 역경을 딛고 면면히 이어 내려온 신앙의 유산들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잊혀지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언양지역 방방곡곡에 은거를 하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파했기에

지금의 우리는 그분들의 향기를 바탕으로 언양지방의 신앙공동체가 성장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역사란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단순히 기록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과거의 사건을 현재와 연관지어

현재의 나를 바라보는 거울이라 한다

화장산 들머리

언양성당에서 뒷편으로 걸어가면 주차장과 성모마리아상 우측에 보면 산으로 오르는 계단과 함께 있다

언양읍과 상북면에 걸쳐 있는 화장산(花藏山)에는 두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하나는

신라 때의 일이었다 하는데 화장산 아래에는 어느 사냥꾼 내외가 두 남매를 기르며 살고 있었다.
그 때 화장산 위의 굴 속에는 한 마리의 큰 곰이 있어 이 산의 짐승은 물론 가까운 산의 짐승까지도 다 잡아먹고 있었다.

사냥꾼 내외는 이 곰을 잡으려고 활을 메고 창을 들고 산으로 곰을 찾아나섰다.

그러나 곰을 만난 그들은 불행하게 곰의 역습을 당하여 잡혀죽고 말았다.

그런데 집을 지키고 있었던 오누이는 밤이 되어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 이튿날 새벽부터 화장산으로 들어가 부모를 찾기 시작하였다

때는 엄동설한인데 북풍이 몰아치며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표지목

여기서 우측으로 오르면 굴암사와 화장산 산정이 나오는 탐방로가 연결되며 이어서 전설이야기는

남매는 엄마와 아버지를 부르며 이리 찾고 저리 헤매다가 그만 눈 속에서 기진맥진하여 서로 부둥켜 안은채

가엾게도 얼어 죽고 말았다.
이렇게 불행하게 아들 딸이 죽은 것을 알게된 사냥꾼 내외의 혼백이 하도 가여워서

그 두 남매의 죽은 혼으로 하여금 한 그루씩의 도화(桃花 : 복사꽃)로 환생시켜 양지쪽에 피게 하였다.
이럴 때의 일이었다.

신라 서울에서는 임금님이 병이 들어 좋은 약은 다 써보았으나 백약이 무효하여 궁궐 안에는 온통 큰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 때 어느 의원이 임금님의 병상으로 나아가 아뢰기를

「어려운 일이오나 복숭아 꽃을 따서 잡수신다면 병이 완쾌하겠나이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은 사자(使者)를 팔방으로 보내 도화를 찾게 하였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남쪽으로 언양고을로 오게 되었다.

화장산 탐방로

성의 남문에 사자가 이르렀을 때였다.

문득 머리를 서쪽으로 돌리는 찰라에 화장산에서는 이상한 서기(瑞氣)가 감돌고

그 가운데서 분명한 꽃을 바라볼 수 있었다.

겨울철에 이러한 꽃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정말 기적이었다.

사자는 급히 말을 몰아 산으로 올라가보니 큰 바위굴 앞 양지바른 곳에 두 그루의 복숭아꽃이 곱게 피어 있었다.
그를 본 사자는 기뻐서 뛸 듯 하였다.

그래서 두 도화를 꺾은 사자는 말을 달려 궁성으로 들어가서 병상에 누운 임금에게

「신(臣)이 언양(彦陽) 땅에 피어 있는 두 도화를 찾아 올리나이다.

드시고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어 정사를 돌보소서.」하였다.
그런데 이 도화를 먹은 임금의 병은 곧 씻은 듯이 완쾌하였다.

사자(使者)가 복숭아꽃을 꺾을 때 몇 송이의 꽃이 떨어졌다.

그 낙화에서 오빠의 정령(精靈)은 대(竹)가 되고 누이의 혼은 솔(松)이 되어 만고에 푸르고 있다 한다.

「경상남도지」에 수록, 전해오던 것이다.  

화장산 굴암사(藏山 窟岩寺)

언양에는 아름다운 경치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화장산이 있는데

아름답고 기운좋은 화장산 안쪽에 위치한 굴속의 사찰인 굴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 신라 소지왕때 도화도인이 창건하였다고는 하지만 이후의 연혁은 알려진바 없이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있던것을 1966년 해인사의 안석범이 중창하여 미타굴이라 명칭하였다고 한다

미타굴 안에는 별다른 문화재는 전해지지않지만 아미타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굴암사 지장보살

굴암사 법당앞에는 화장산 설화와 굴암사의 유래가 새겨져 있는 비석이 있으며

화장산 두번째 설화는 다음과 같다

신라(新羅)시대에 어느 왕후(王后)가 중병(重病)이 들었다.

아무리 치료를 해도 낫지 않아서 임금님은 가장 신임하는 신하 한 사람을 불러다가

한 달의 말미를 줄테니 어떻게 하든지 왕후의 병을 고칠 약을 구해 오라고 했다.

신하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온갖 정성을 다했지만,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무슨 약을 써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한 달이 가까워오는 어느 날 꿈을 꾸었더니 꿈에 신선(神仙)이 나타나 언양(彦陽)에 있는 어느 산에 가면

바위굴이 있고, 그 안에 도화(桃花)라는 여승(女僧)이 있는데, 그 여승에게 가서 물어보면 될 것이라고 했다.

꿈을 깬 신하는 언양으로 와서 여승을 찾아 산 속 바위굴을 찾아다니다가, 어느 바위굴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바깥은 한겨울인데, 이상하게도 그 굴속은 따뜻하고, 복숭아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신하는 꿈속에서 신선이 말한 도화(桃花)가 바로 그 복숭아꽃이었음을 깨닫고 그 꽃을 따다가 임금님께 바쳤다.

그랬더니 그 꽃을 먹은 왕후는 병이 금방 나았다.

그 후 굴이 있던 그 산을 꽃을 감추고 있었던 산이라고 해서

 ‘꽃 화(花)자, 감출장(藏)자’를 써서 ‘화장산(花藏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도화의 이야기는 화장산의 연기설화(緣起說話)인 것이며 도화는 화장산의 산신(山神)일 것이다.

이 전설은「동국문헌록」에 전하는데 이로 인해 산의 이름이 화장산(花藏山)이 되었다고 한다.

굴암사에서 바라본 언양읍(彦陽邑)

미세먼지로 인하여 하늘이 뿌였다 코로나시대엔 딱 한가지 좋은것이 맑은 파란하늘이 좋았다는 생각뿐

화장산이 위치한 언양읍 송대리는

한일합방(1910) 이전까지는송북(松北)이라고불렀는데 고려 충신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위열공(威烈公)김취려(金就礪)의본향으로언양(헌산)김씨의본고장이다.

조선 초 예종(睿宗 1469)때는 송도리(松道里)라하였다가

성종 때에송동(松洞), 조선 후기에와서 송북(松北)이 되었다.

또 순 우리말로(소디)라고 불렀으며 옛언양현 상북면(上北面)에속했다.

예종 때에는추성못(秋成堤)이 있는현 직동(신흥리)새마을부근까지도 이마을에 속했었다.

한일합방 직후인1910년(언양군 시대) 그이름을송대동(松臺洞)이라고치고

1914년 3월 1일행정구역 개편 때에 상북·중북면이 합쳐언양면이 되면서

언양군이 울산군에병합될 때 송대리라 하여울산군 언양면에 속한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다.

화장산 체육시설물

화장산은 우리지역 월아산 처럼 지역민이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운동 코스도 잘 정비 되어 있다

대부분 화장산이 수목을 보면 토종 소나무가 빼곡하게 야산을 덮고 있어 솔향기 솔솔 맡아가며 걷는게 제일좋다

또한 영남알프스 둘레길로 연계되어 있어 요즘처럼 둘레길 걷는 산꾼에게도 하나의 코스가 되었다

도화정(桃花亭)

아마도 화장산에 도화의 전설이 있어 도화정이라 이름 지었나 보다

화장산에는 불교와 천주교가 공준하고 있는데 화장산 동남쪽 기준으로 산언저리에 두개의 동굴이 있는데

오른쪽 윗쪽 동굴은 굴암사에는 아미타불좌상이 모셔져 있고

왼쪽 아래에 동굴은 언양성당 소유의 성모마리아 상이 모셔져 있다

언양 화장산(彦陽 藏山)271m

그냥 마을 뒷산이며 유년기 시절 소먹이고 소꼴베던 지역처럼 나즈막한 산인데 언양 전체가 조망된다

화장산이 위치한 언양읍 서부리는

조선 후기숙종 때(1711)는 현재의동부리·남부리와 합하여읍내리(邑內里)라 하였다고 하며

조 초(1777)에 읍내를동부(東部)와 남부(南部)로나눌 때 동부리에 속했고

얼마후(1789) 또 읍내를북부와 남부로 나눌 때북부(北部)에 속했다가

정조 19년(1795) 북부를동부(東部)로 환원할 때다시 동부리에 속했다고 전하며

고종 8년(1871) 다시북부로 개칭했다가 고종31년(1894) 또 동부로복칭되었다.

언양군시대(1899)는 읍내 전체를북부와 동부·남부로나뉠 때 다시북부리(北部里)라 하다가

한일합방 직후(1910) 언양군서부동(西部洞)과노상동(路上洞)으로나뉘었다.

1914년 언양군이울산군에 합군(合郡)되어종래의 상북면과중북면이

언양면으로합면(合面)되어행정구역을 전면 개편,14개의 법정리로 정리될 때

서부동과노상동(路上洞)을 합하여오늘날과 같은서부리(西部里)가되었다고 전한다.

언양 화장산(彦陽 藏山)271m

화장산이 있는 언양지역은 대내적으로는 2대 영남권(부산, 대구)의 가운데에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한반도 동남부와 일본 열도, 태평양, 동남아에 이르는 항로의 요충에 자리잡고 있고

위도상으로 국내의 창녕, 함안 등지와 국외로는 일본의 요코하마,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이란의 테헤란,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지브로울트 해협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

한편 군사및 전략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지역은 백두대간 남단의 고산준령과

낙동강 하류의 지형적 장벽으로 인하여 임진왜란을 비롯한 여러 전쟁에서 대륙침략의 발판지로 이용되었고

여러 내전 또는 대륙국으로부터의 침략이 발발할 경우 가장 안전한 요충지대였다.

특히 6.25 사변시 낙동강을 경계로 남침을 막은 최후의 요새였던 바는 특기할 일이라고 한다.

도화(桃花)

복숭아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화장산은 도화전설이 있어 복숭아꽃이 산정 탐방로 주변에 있어 촬영해 보았다

전설에 의하면 두 남매의 죽은 혼으로 하여금 한 그루씩의 도화(桃花 복사꽃)로 환생시켜 양지쪽에 피게 하였다하는데

아마도 그 두남매의 혼백인가 양지바른 쪽 부풀어 터질듯 하다.

또한 도화살(桃花煞)이란 말도 있는데

호색과 음란을 말하며 이 살은 남녀를 불문하고 피하는 것으로, 남자는 사주에 이 살이 있으면

호색하는 성질이 있어 주색(酒色)으로 집을 망하게 하는 수가 있고

여자는 사주에 이 살이 있으면 음란한 성질 때문에 일신을 망침은 물론 한 집을 망하게 한다는 이유 때문에

혼인에 있어서 기피하는 사례가 많이 있다.

속담에 여자의 얼굴이 불그스레한 홍기가 돌아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도화살이 끼었다고 하는데

 이 도화살은 인간의 본능인 성욕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화장산 암릉

화장산은 주로 흙으로 이루어진 육산인데 산정에는 이렇게 암봉이 여기저기 보여 흙과 암석이 조화를 이룬듯 하다

암릉에 앉아서 바라보는 언양읍은 미세먼지로 인하여 시야를 망쳐놓아버렸다

언양의 원래 이름은 거지화현(居知火縣)이라고 하며 거지화의 고음(古音)은 '거치불'로

거(居)는 박혁거세의 거(居)처럼 수장에 대한 존칭이고, 지(知)는 치(智)와 마찬가지로

연맹왕국 시대의 족장의 명칭이라고 한다.

불(火)·부리(夫里)·비리(卑離)·벌(伐)·불(弗)·불(不)·반(半) 모두 성읍(城邑) 도시(都市)를 의미하다.

따라서 거지화는 성읍국가시대에 거치(居知)라는 군장이 다스리던 나라로

신라가 현(縣)을 설치할 때 족장의 칭호를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 기록하고 있다

진달래 꽃망울

경칩지난 날씨에 진달래는 앙정맞게 터질듯한 모습으로 화장산에 자리하고 있었다

봄은 어김없이 우리곁에 찾아 오는데 미세먼지 그리고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잠시 무거운 짐 내려 놓는다

진달래꽃은 산 넘어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을 완연히 느낄 때 즈음에 피기 시작하고

동네 앞산은 물론 높은 산꼭대기까지 온 산을 물들이는 꽃이 진달래 이다.

진분홍 꽃이 잎보다 먼저 가지마다 무리 지어 피는 모습은 고향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잠시 유년의 추억으로 되돌아가게 해준다.

화장산 능선길

따스한 봄마중 같은길에 언양 화장산 능선길은 마치 유년기 시절 천수답 논두렁길 같은 느낌이다

언양에는 유적지도 많다 그것은  해자(海子)로 성벽 외곽을 방어한 언양읍성인데

언양읍성(사적 제 153호)은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 일대의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석축성으로 네모반듯한 평지성이다. 둘레 1,559.7m으로 성벽의 현재 남아 있는 최고 높이는 4.85m이다.

읍성의 동서남북 성벽 중앙에는 옹성(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큰 성문 밖에 쌓은 작은 성)을

두른 성문이 배치되었다고 한다.

마당바위

커다란 암봉이 평상처럼 넓적하게 자리하고 있다 산꾼들이 모여 족구 한판 할수있는 정도로 넓다

화장산은 바위동굴과 하늘높이 쭉쭉 뻗은 소나무랑 불교와 천주교의 유적들 처럼 함께 어우러고

꽃을 숨긴 산처럼  언양의 보물과 같고 산정부근은 공동묘지로 되어 묘지앞엔 십자가 표시가 있는것

그리리고 없는것 반반이 있는것 처럼 보였다

오영수문학관(吳永壽 文學館)

난계 오영수씨가 잠들어 있는 화장산 기슭 입구에 있으며

지상 2층에 1개동, 총 연면적 538 제곱미터로 되어 있다.

오영수씨의 육필원고와 미술작품 등 188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며

문학관의 2층에는 문화사랑방이라고 불리는 작은도서관이 있다.

오영수[1909~1979]는 울산 울주군 언양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맥랑생(麥浪生)이란 필명을 사용하였다고 하며 어릴 적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1920년 4월 언양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6년 3월에 졸업하였다.

이후 가계를 돕기 위해 향리의 우체국에서 잠시 일하였다.

근대 문인들이 대부분 그러하였듯이, 이 무렵 『동아 일보』와 존선일보에 동시(童詩)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화장산 산길

마치 시골동네 유년기시절 포장이 되지 않았던 길을 걷는듯한 화장산 산길인데 십자가의길과 연결 되어 있고

순교자 오상선의 묘도 지나며 언양성모동굴과 연결 되어 있다

울산 울주군 언양성당 주변으로 죽림굴, 살티공소 등이 천주교 성지순례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하며

전국에서 연간 3,000명 이상이 언양성당을 방문한다고 한다

전국의 천주교 신도들이 울주군을 찾는 것은 천주교 박해 시대 당시 피난처로 사용되면서

종교활동을 이어갔기 때문이라고 하며 성지 순례 코스로 찾는다고 한다

성모동굴

언양성당의 뒷편 화장산에 위치한 성모동굴과 십자가의 길에 대한 구상은 지금으로부터

약 73년전인 1927년 경에 시작 되었다.

1926년 11월에 언양성당 부지를 매입 하였고 그 다음해인 1927년 정보드맹 신부님이 지금 성당이 위치한 이곳에

성당을 짓고 바로 뒷산에는 성모동굴을 만들어 성모님을 모시자는 의견을 제시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밭과 소나무

마치 시골 신장로 처럼 걷기좋은 산길이 화장산 탐방로 이며  대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하여

무더운 여름날에 걸어도 땀방울을 식혀줄듯한 대나무와 소나무의 숲이며 향기이다

언양 화장산은 고헌산에서 줄기 뻗은 해발 271m의 이 산은 언양읍을 품고 있는 주산이라고 한다.

동네 뒷산이지만 언양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며

화장산에는 '갯마을'의 작가 오영수와 고려시대 거란족의 침입을 막아냈던 김취려 장군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화장산 소나무

하늘높이 뻗어있는게 우리의 기상처럼 보인다

화장산에 오르면  무성한 소나무와 대나무가 이 설화가 헛 이야기가 아님을 확인시켜주는듯 하다

세죽림이 한창인 지점에서 '위열공 김취려장군 묘', '오영수의 묘' 있는곳이다

김취려 장군은 고려의 명장으로 손꼽히지만  그의 유물이나 직접적인 사료는 현재 발견되지 않고 있다.

울산에서 김취려 장군의 흔적이라곤 이 묘(위열공 김취려 묘,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7호)와

산 아래쪽의 비석(태지유허비)이 전부다라고 한다.
자료에 의하면 김취려 장군의 본관은 언양(彦陽). 아버지는 예부시랑 부(富)이며

고관자녀의 출사 수단인 음서(蔭敍)로 등용된 뒤 동궁위(東宮衛)를 거쳐

장군으로 동북지방을 진압한 후 대장군이 되었다고 전한다

산행종료

언양 화장산(彦陽 藏山)의 이름은 꽃을 감춘 산 이라 설화로 전해져 내려오며  불교와 천주교가 공존하여

천주교의 성지순례지 언양성당 그리고 불교의 굴암사 고려의 명장 김취려 장군 그리고 오영수 소설가의

문학관도 있어 화장산 전체가 소나무와 대나무로 주 수종을 이루고 있고

넉넉잡아 1시간30분의 산길을 걸어수 있으며  짧은 시간일지도 몰라도

화장산에서 마음 속에 담은 이야기가 적지 않은 산행지 임은 분명하였다.

 

※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한국1000산 신명훈

명산플러스 경남일보. 근교산&그넘어 부산일보

울주군 언양성당 홈페이지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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