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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이구산(泗川 尼丘山).풍패지향(風沛之鄕)의 사천 옛 유풍을 닮은 이구산 선비길을 걷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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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이구산(泗川 尼丘山).풍패지향(風沛之鄕)의 사천 옛 유풍을 닮은 이구산 선비길을 걷다

바다늑대FORCE 2021. 7. 29. 21:56

사천 이구산(泗川 尼丘山)

풍패지향(風沛之鄕)의 사천  옛 유풍을 닮은 이구산 선비길을 걷다....!

 

▲ 사천 이구산(泗川 尼丘山)

    높이 : 379.6m

    위치 : 경상남도 사천시 정동면 수청리 사남면 우천리 경계에 있는 산.

 

▲ 사천 이구산(泗川 尼丘山) 나의 산행일 :

    2021년07월29일 목요일, 날씨 : 맑음

 

▲ 사천 이구산(泗川 尼丘山) 나의 산행코스;

   사천 선황사 주차장 →→사천 성황당산성→→성황당산 삼거리→→목계단→→조가정

→→ 이구산 정상 →→상사바위(원점회귀)

7.43km 3시간11분 소요(트랭글 앱 기준)

 

▲ 사천 이구산(泗川 尼丘山)개요 :

이구산은 본래 공자(孔子)태어난 산이름으로 이산(尼山) 이라고도 하는데

공자를 다르게 부르는 칭호를 말하는것이라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이산(尼山) 아래 선비들이 많이 살았는데 당시 유학사상이 사회를 널리 풍미할때

공자를 흠미한 나머지 이산(尼山)의 이름을 공자의 칭호를 따서 부른것이 오늘날 이구산이 된것 이다고 한다.

구전(口傳)되어 내려오는 이야기 중 이구산의 본래 명칭이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기 때문인데

중국의 공자(孔子)생지  곡부(曲阜)에는 니산(尼山)이 있다

공자의 부모가 이곳에서 기도를 드려  공자를 낳았는데 이름을 ‘구(丘)’라고 지었다고 하며 후손들이 이런 점을 이유로

공자의 이름에 있는 글자를  산 이름에 붙일 수 없다 하여 ‘구’ 자를 빼고 그냥 '니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옛적 사천 사람들은 니구산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붙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발음의 편리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구산으로 불려지게 된 것으로 구전 되어 오고 있다.

​사천지역민들은 이구산의 모양이  유건(유학자들이 머리에 쓰는 모자)을  닮았다며 신성시 하며

이구산은 해발 379m로  사남면 우천리와 정동면 수청리의 경계를 이룬다.

남쪽으로는 와룡산이 자리하고  성황당산과 흥무산이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능선을 이루는데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 사천 이구산(泗川 尼丘山) 등산지도

사천 이구산(泗川 尼丘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 사천 이구산(泗川 尼丘山)찾아가는길

진주역→→진주대로 →→사천읍성로→→동성길→→ 수석길

→→천황사 주차장

9.5km 승용차15분 소요.

→→→→→→2021년 07월29일 목요일 대한민국 구석구석 산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점심을 먹고서 늦어막히 산을 찾아 가까운 근교산을 찾아 나섰본다

992년에는 국왕 안종이 사천으로 유배되어 온 사실이 있고

안종의 아들 현종 또한 유년기를 사천에서 보냈다고 해서 사천을 풍패지향(風沛之鄕)이라고

부른다고 하는 사천지역의 선비길 따라 걸어 보기로 하고 한여름 불볕더위 아래

발길을 사천으로 돌려본다.

이구산 안내표지목 2.6km

오후 시간대라 그런지 태양이 너무 뜨겁다 시멘트포장도로가 태양열을 받아 계란프라이도 될듯하다

매미소리 귓청을 울리고 한여름 무더위속으로 향한 발걸음 이다.

이구산이 위치한 사천시(泗川市)는

1914년에 옛 사천군과 곤양군이 통합된 곳이며 옛 사천군은 본래 신라의 사물현(史勿縣)으로

포상팔국 중의 하나인 사물국(史勿國)으로도 비정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757년(경덕왕 16)에 사수현(泗水縣)으로 개칭했으며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사주(泗州)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며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태종 13)에 사천현이 되었다. 별호는 동성(東城)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6년에 경상남도 사천군이 되었으며

1906년 월경지 정리에 따라 진주의 두입지인 삼천포가 사천군에 편입되었다.

조선시대에 진주 소속이었다가 1906년에 고성군으로 편입되었던 남양면이

1912년에 사천군에 통합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진주군과

곤양군 일부를 편입하면서 군 면적이 크게 확장되었다.

이구산 선황사

선황사는 사천시 정동면 바느실길189-86위치하고 있으며 보통 차량으로 오면

주차를 하고서 이구산 선비길 시작점이기도 하다

보통은 침곡저수지에서 하는데  정동면 예수리 침곡 저수지 옆으로 해서

선황사 안내 입간판 따라 가다보면 사천 선비길의 시작점이 된다.

사천에서 선비들의 풍류와 행적을 되짚어 보는 선비길 체험프로그램도 운영되며

이 프로그램은 사천 곤양향교가 선비문화관광진흥원에 의뢰해 추진하는 사업으로

우리 고유의 전통이 남아있는 향교나 서원을 관광사업과 접목해

유교문화를 활성화하고자 마련했다고 전한다.

사천 성황당산성(泗川城隍堂山城)

경상남도 사천시 정동면 예수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지로서

경상남도 기념물 제132호. 사천읍 남쪽에 위치한 성황산(城隍山) 정상부에 토성과 석성으로 연결된

테뫼식성(산 정상을 둘러 쌓은 성)이다.

성벽은 9분 능선을 따라 내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성지에는 연못·건물지 등이 남아 있고

주변에는 와편이나 도자편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사천읍성이 현재의 위치로 옮기기 전인

조선 전기에는 이곳이 사천치소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성내에는 단군상과 암자가 위치하고 있으며 성내나 성벽은 양호하게 남아 있다.

사천 성황당산성(泗川城隍堂山城)

사천 성황당산성(泗川城隍堂山城)의 평면도(平面圖)이며 복원한 산성은 아주 일부분이라고 할수 있으며

사천시(泗川市)역사를 보면

사천만 해안평야 지대의 곳곳에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고 하며

특히 고인돌이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서포(西浦)지방의 조개더미에서는

신석기시대 말기의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청동기시대에 이미 상당한 인구가 이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삼한시대에는 이 지방이 변진12국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문헌상에 나타난 사천시의 처음 이름은 3세기 초 포상팔국 중의 하나인 사물국(史勿國)이다.

그 뒤 삼국의 정립으로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이 지역은 한때 백제에 속하기도 했으나

6세기 경 법흥왕대에 이르러 신라에 정복됨으로써 여러 지역이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하나는 사물현으로 오늘날 사천시의 동부이며, 하나는 곤명현(신라 때는 포촌현, 또는 하읍현)으로

오늘날의 서부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의 축동면 전역과 고성군의 상리면·하이면의 일부 지역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의하면, 본래의 이름은 사물현(泗勿縣)인데

757년(경덕왕 16) 사수현(泗水縣)으로 개칭해 고성군(固城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사천 성황당산성(泗川城隍堂山城) 복원지역

사천 성황당산성(泗川城隍堂山城) 서문지에서 좌측으로 산성을 일부 복원한 것이다.

퇴메식산성은 성곽의 축조된 지형이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하여 일정공간을 돌린 형태로

축조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 산정식산성이라고도 하며

성 벽이 통상 7-8부 능선을 따라서 이루어졌다고 하며 이러한 경우 멀리서 보면

시루에 흰띠를 두른 것 같다 하여 일명 '시루성'이라고도 불리운다.

그 외에 도산정식산성을 발권식산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다같은 형태를의미한다.

이와 같은 산정식산성은 일반적으로 그 규모에 있어서는 작으며 축성연대가

상대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고, 위치별로 산지(山地)에 위치 한산성, 평지에 위치한평산성

산지와 평지를 끼고있는 평산성 등으로 구분해 볼수있다.

 

이구산 트레킹길 코스 안내 표지판

선비길은 정동면 예수리 침곡 저수지 옆으로 선황사를 안내하는 입간판이 선비길의 시작하는데

선황사가 있는 성황당산까지는 깨끗하게 시멘트로 포장된 산길이다.

보통 차량으로 선황사 옆 임도 앞까지 자동차를 이용해 인근 공터에 주차를 하면 되며

여기 입구까지 차량으로 와서 주차를 한다면 이구산을 거쳐 흥무산 까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성황당산 갈림길

여기서 50m 정도 올라 가면 사천 정동면 안녕기원제단이 있는데

그기 모셔진 산신 석조물이 있으며  정확히는 산신석조물인지 단군석조물인지 구분은 되지 않았다

보통 일반적으로 먼지털이 에어건은 입구쪽에 많이 설치 되어 있는데

선황사에서 1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고 여기까지 임도 양측에는 편백나무가

가로수로 되어 있어 한여름 태양을 막아주는 그늘막 역활을 하고 있었다.

목계단

목계단 내리막길이다 아마 다시 올라올려면 힘좀 들겠다는 생각이 들며

숲이 빼곡해서 그늘막이 되어 주지만 높은 온도 덕분에 땀은 비오듯 흘러 내린다

매미소리는 가득하고 가끔 뻐국새 소리도 들여 오며 어쩌다가 청설모 한마리도 보였다

사천을 풍패지향(風沛之鄕)이라고  부르는데

풍패는 한나라 고조인 유방의 고향이다. 즉, 왕의 고향이란 뜻이다

그리고 사천시를 풍패지향의 고장으로 만든 것은 고려 8대 왕인 현종(顯宗: 이름 왕순)이다.

현종이 어린 시절에 성종(成宗)의 배려로 아버지 안종(安宗: 이름 왕욱)이 귀양을 살던

사수현(泗水縣: 현 사천시)으로 내려왔던 게 계기가 됐다.

왕순은 귀양 온 아버지와 함께 지낼 수는 없어서

사천시 정동면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배방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왕욱은 죽은 뒤 사남면 능화마을 뒤편에 있는 ‘능화봉’에 묻혔다.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이로부터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왕순은 왕위에 올랐다.

이런 역사 이야기를 떠올리며, 안종이 묻혔던 안종능지(安宗陵址)를 찾았다.


이구산 산정 조망

안종능지. 현종이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의 무덤을 개경으로 옮기면서(1017년) 터만 남은 곳이다.

능화마을에서 정동면 학산마을로 넘어가는 길을 ‘부자상봉길’이라 부른다.

이 길은 차량도 거뜬히 다닐 만큼 넓은 임도로, 그 옛날 사람이 걸어서 넘던 길은 아니다.

임도가 생기기 전에 정동으로 오가든 길이 임도 반대편 골짜기 건너에 있었다고 하니

그 길에서 안종능지는 더 잘 보였을 테다. 그 옛날 풍수지리에 능했다는 왕욱의 눈에도

그 자리가 쏙 들었던 모양이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 매일 10여㎞를 걸어 ‘배방사’로 갔다가

다시 귀양지로 돌아오는 길은 고단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단지 물리적 거리에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자식을 가까이 두고도 생이별해야 하는 아픔이 더 크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3년을 하루같이 ‘배방사’로 다니던 왕욱(안종)은

결국 사면받지 못하고 귀양지에서 죽음을 맞이 했다고 전한다.

이구산 야생화(금불초)

금비초(金沸草)하국(夏菊)하국꽃이라고도 하며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생약명은 선복화(旋覆花)

금불초라는 이름은 꽃이 황금빛처럼 노랗다고 하여 붙여졌다.

7~9월에 노란색의 두상화가 줄기 끝과 가지 끝에 산방 꽃차례를 이루며 달려 핀다.

전체에 누운털이 산재해 있으며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으면서 번식하고 줄기는 곧게 선다.

관상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된다고 하며  어린잎은 식용한다.

꽃은 대개 완전히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쓰는데 말린 꽃을 선복화라고 한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환제 또는 산제로 하여 사용한다고 하며

뿌리를 말린 것을 금불초근이라고 하며 해소,천식,소화불량,딱국질,구역질 등 치료에 주로 쓰인다.

또한 냉병설사해수를 앓거나 몸에 열이 있는 사람은 복용을 금한다.

유사종으로 가는금불초가지금불초가 있다.

수청마을 갈림길 이구산1.8km

여름을 노래하는 매미소리와 가끔식 들여오는 산새소리 들어면서 이구산 산정으로 걷는다

산야는 초록으로 물들었고 7월의 막바지 더위는 지칠줄 모르고 뜨겁게 내린다

어느새 온몸은 땀으로 젖어 버렸고 땀방울이 산길에 뚝 뚝 떨어진다

그래서 여름산행은 수분 보충이 필수이며 난 보충적으로 식염포도당까지 먹는다

이구산 딱정벌레(사슴벌레 암컷)

보통 사슴벌레들은 참나무나 상수리나무에 주로 서식하는데 어디 외출하다가 소나무에 쉬고 있나 모르겠다

애사슴벌레 암컷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대도시는 물론 작은 섬 그리고 어느 산에 가더라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서식지가 제일 넓다고 한다 대한민국 터줏대감이라 불릴정도로 전국적이다.

크기에 있어서 안습이라 사육면에서도 마이너 취급받을 것 같지만

짧지는 않은 수명과 낮에도 나타나는 성격 덕에 기르는 사람이 꽤 많다.

이구산 능선길

빼곡한 숲 사이로 오솔길 같은 선비길이며 주변엔 멧돼지가 먹이 찾은 흔적이 여기저기에 있다

이구산이 위치한 사천시 정동면(正東面)은 조선 초기까지 사천현의 읍기인 치소가 있었음을 나타내는

상주내면과 동면을 사천읍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읍동면이라 하였고

그후 행정구역 명칭 변경시 정동면이라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천시의 자연환경을 보면 진주만에서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간 사천만의 양안에 걸쳐 있다.

시역의 중앙부는 좁고 긴 사천만(泗川灣)이 내륙 깊숙이 만입해 지역을 동부와 서부로 크게 나누고 있다.

서부지역은 소백산맥의 지맥이 뻗어 평탄한 편은 아니나 표고 100∼200m의 기복이 낮은 구릉지가 대부분이다.

그 줄기가 남쪽으로 차츰 낮아져 그 끝은 광포만과 사천만 등의 바다에 닿는다.

동부지역은 사천만 만구지역의 평야부와 사천에서 구삼천포 해안 가까이

약 12㎞의 폭이 매우 좁은 해안 저지대가 전개되고 있으며

동쪽은 고성쪽으로 동서 방향의 병영산맥이 연이어 있다.

매미

무더운 여름날에는 수컷 매미들은 나무에 앉아서 우렁차게 울기 시작하며 울음은

암컷을 부르는 울음으로 수컷만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암컷은 소리를 내지 못하고 수컷만 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수컷의 배속에는

울음소리를 내는 근육과 얇은 막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 근육을 빠르게 떨게 되면

막이 함께 떨리면서 큰 울음소리가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컷은 암컷을 부를 때나 위험에 쳐한 상황이 생기면 이렇게 큰 소리를 낸다고 한다.

매미의 종류는 약 7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참매미, 애매미, 유지매미, 털 매미

쓰름매미, 늦털매미, 소요산 매미가 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다 똑같은 매미 같아 보이지만 우는 소리와 색깔 그리고 생김새가 다 다르고

우리가 평상시에 보는 매미는 아침에 요란하게 울고 한번 울면

다른 나무로 옮겨가서 우는 참매미라고 한다.

이구산 야생화(맥문동)

맥문동꽃이 보라색으로 이쁘게 피어있어 접사촬영 해보았다

중남부지방에 분포하며 산지의 나무 그늘 밑에서 자라며 딱딱하고 굵은 근경은 옆으로 벋지 않고

수염뿌리의 끝에 ‘땅콩’과 같은 괴근이 생기며 화경은 길이 30~50cm 정도이다. 

밑에서 모여 나는 선형의 잎은 길이 20~40cm, 너비 8~12mm 

정도이고 밑부분이 잎자루처럼 가늘어지며  6~7월에 개화하며 연한 자주색의 꽃은 6개의 꽃잎이 있다. 

조가정(鳥歌亭)

새가노래 한다는 정자 조가정 편액이 아주 멋있게 걸여 있었다

여기서 신발을 벗고 드러누워 새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신발끈이 야무치게 묶어 놓아

풀기도 귀잖고 해서 그냥  바라만 보았다

시간적 여유가 많다면 편안하게 큰대(大)자로 드러누워 낮잠이라도 청하고 싶은곳이다

주변엔 운동시설물이 있었고 편안하게 조망할수 있는 의자도 많이 보였다

조가정(鳥歌亭)에서 바라본 사남면(泗南面)

사남면 죽천리의 논들이 초록의 바둑판처럼 펼쳐지고 저멀리 바다까지 보인다

경상남도 사천시 남동부에 있는 면으로 남해에 접해 있는 면의 북서부는 낮은 구릉지와 평야를 이루며

그밖의 지역은 홍무산(455m)·성황당산(210m)·와룡산(799m) 등 500m 내외의 산이 솟아 있다.

북서부의 초전리·죽천리·화전리 일대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분포하며

구룡산 아래에 조성된 구룡저수지가 관개용수로 이용된다.  

죽천리(竹川里)는 본래 사천군 상서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두, 초전동 일부와 중남면의 연포동 일부를 병합하여 죽천리라 해서 읍서(사남)면에 편입되었다. 

행정리로는 죽천, 용두, 상죽의 3개 리가 있다.

 

이구산 정상(尼丘山 頂上)379.6m

사천 이구산(尼丘山)은 옛 사천의 중심지인 사천읍 남쪽에 동서로 길게 누워 보호하는 형세다.

사천읍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와룡산은 보이지 않고 이구산에서 동쪽으로

흥무산(興霧山·454.7m)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시야를 채운다.

이구산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건 400m가 채 되지 않는 높이인데도 빼어난 조망을 지녔다는 점 때문이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사천만과 사천읍이 있어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다.

산행 초반부에 오르는 성황당산(204m)에서부터 서쪽으로 조망이 막힘없이 열린다.

이구산 정상은 조망이 다소 막히지만 정상 직전의 봉우리인 361m 봉에서는

서부 경남 주요 산을 시야에 담는 최고의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사천에는 와룡·봉명·각산이 있는데 흥무산을 붙여 4대 명산이라고 한단다.

'이구산이나 성황당산이 흥무산의 이름을 더욱 돋보이게 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구산 정상(尼丘山 頂上)379.6m

이구산이 위치한 사천시 정동면(正東面)은 사천시 동부에 위치하며

정동면의 동북부와 남서부에 봉대산(409m)과 흥무산(455m) 줄기가 각각 뻗어 있으며

사주천이 두 산지 사이를 흘러 남해로 유입한다. 

경지는 이들 하천연안을 따라 분포하며, 북서부에서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대곡리 대곡마을는 수령 200여 년 추정의 육송 백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이 숲은 2002년 산림청 등이 주최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숲'으로 선정되었다. 

고성-진주를 잇는 국도가 면 중앙부를 남동-북서 방향으로 지나며

행정구역은 대곡리·고읍리·예수리·화암리·풍정리·수청리·장산리·감곡리·학촌리·소곡리 등 10개리가 있다.

이구산 상사바위

정상에서 30여 분을 걸어가자 큰 바위가 나타나는데 늙은 무당의 딸 귀순이와

남 씨 성을 가진 도령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담긴 상사바위이다.

도령을 좋아한다고 고백했지만 거절당한 귀순이가 시름시름 앓다가 석 달 만에 죽었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도령도 나중에 이곳에서 몸을 던졌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전설이야기를 안내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아름답고 살기좋은 수청마을에 가난하게 살아가는 늙은 무당과 외동딸 귀순이가 있었다

귀순은 어질고 효순한데다 용모 또한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건너마을 놀래(노천)에서는 서당에 다니는 총명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남씨 성의 도령이 있었는데

귀순은 도령이 마음에 들어 고백을 했지만 여자가 먼저 고백한 것에 대해 남도령은 당황하여 거절 하였고

귀순은 야속하고 무정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와 몸져눕고 말았다.

귀순은 사랑병(상사병)을 앓은지 석달 여일 만에 남도령에 대한 애증을 가슴에 묻은채 숨을 거두었다.

한편 그 사실을 알고 죄책감에 사로잡힌 남도령은 때때로 이구산에 올라 그녀의 명복을 빌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밤 구렁이 한마리가 방으로 들어와 남도령 하반신을 휘감았고 다들 귀순이가 죽어서

극락환생 하지 못하고 큰구렁이로 환생하여 몸에 붙었다고 생각 하였다.

온갖 방술을 다해도 구렁이는 떨어지지 않았고 남도령은 방에만 갇혀 있는 답답한 마음을 풀기위해

이구산 바위에 올라 저승에  가서라도 그녀의 사랑을 받아주리라 바위덩이에서 몸을 날렸고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에 나오는 바위를 지금도 상사바위라 부르고 있다.

 

이구산 상사바위

상사바위에서 바라보면 구룡저수지가 발아래 펼쳐지고 사천 첨단 항공단지도 조망된다

발아래를 쳐다보면 오금이 저를 정도로 천길낭떠러지 같다

사천시 사남면 일원 농업용수 공급을 책임진 구룡저수지라고 하며

예로부터 사남면 일대는 구룡저수지(수혜면적 258ha, 유역면적 2826ha) 덕분에

가뭄에도 큰 물 부족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곳이다.


하산길

늘 그렇듯이 혼산의 하산은 원점으로 돌아가는길 이다

7월의 끝자락에서 매매소리와 친구하면서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이구산은 그냥 마을 뒷산 같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역사는 어느 1000m가 넘는 고산 못지않게

역사를 품고 있는 산이었다

고자정(顧子亭)이야기 부터 풍패지향(風沛之鄕)과 상사바위 전설까지 이야기도 다양하게

품은 이구산 산행을 마무리 시간이 다가온다

이구산 산행 종료

오후 여름태양이 제일 뜨거운 시간에 이구산에 올라 공자사상(孔子思想)을 담은 선비길을 걸어면서

태조 왕건의 8번째 아들인 왕자 욱이 사수 현(지금의 사천 사남면)으로 귀양와서

욱이 죄인의 몸이라 아들을 함께 지내게 할 수 없어 고개 넘어 정동면의 배방사에 머물게 했는데

욱은 사남면에서 10㎞를 걸어 배방사까지 가서 아들을 만났다가 유배처소로 돌아 올 때

고자실 고개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전하는 이야기등  아버지로서 마음아픈 이야기등 가슴에 담고

이구산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 인용글: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산&산(부산일보),한국1000산 신명훈,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사천시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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