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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늑대 FORCE
화순 만연사(化順 萬淵寺),만연선사가 16나한이 부처님을 모실 역사(役事) 꿈을 꾸고 창건한 만연사를 걷다 본문
화순 만연사(化順 萬淵寺),만연선사가 16나한이 부처님을 모실 역사(役事) 꿈을 꾸고 창건한 만연사를 걷다
바다늑대FORCE 2021. 4. 12. 11:38
화순 만연사(化順 萬淵寺)
만연선사가 16나한이 부처님을 모실 역사(役事) 꿈을 꾸고 창건한 만연사를 걷다.........!
■ 화순 만연사(化順 萬淵寺)
☎ 061-374-2112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동구리179(진각로367)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
■ 화순 만연사(化順 萬淵寺) 사찰기행일
2020년04월10일 토요일, 날씨: 맑음
■ 화순 만연사(化順 萬淵寺)개요 :
고려 희종 4년(1208)에 만연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만연선사가 무등산 원효사에서 수도를 마치고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가는 도중에 무등의 주봉을 넘어 남으로 내려오다가 만연산 중턱에 이르러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가고자 앉은 사이 언뜻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16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실 역사를 하고 있는 꿈이었다. 잠을 깨서 사방을 둘러보니 어느새 눈이 내려 주위가 온통 백색인데 신기 하게도 선사가누운 자리 주변만 녹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그 길로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도를 하다가 만연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6.25 이전까지 대웅전, 시왕전, 나한전, 승당,선당, 동상실, 서상실, 동병실, 서별실, 수정료, 송월료등 3전8방과 대웅전 앞의 큰 설루, 설루 아래 사천왕문과 삼청각이 있던 대찰 이 었다. 또 부속암자로는 학당암, 침계암,동림암, 연혈암이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다가 1978년 이후 대웅전, 나한전, 명부전, 한산전,요사채가 복원되었고 암자로는 선정암과 성주암이 있다. 경내에는 1783년에 제작된 도 지정 문화재 제185호로 괘불이 있다. 다산 정약용선생이 젊은 시절 부친이 화순현감으로 부임하던 때에 만연사 동림암에 거쳐한 적이 있으며 국창 임방울 선생이 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이 곳을 찾아 피나는 연습을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절에서 동쪽으로 2㎞지점에 만연폭포가 있고 고요한 숲과 계곡의 물이 좋아 소풍객이 즐겨찾는 곳이다.
■ 화순 만연사(化順 萬淵寺)가람배치도
■ 화순 만연사(化順 萬淵寺) 약도
▲ 화순 만연사(和順 萬淵寺) 찾아가는 길
진주역→→남해고속도로 순천방향→→호남구속도로 주암 jc→→호남고속도로 송광사TG→→동주로 광주방면→→충의로 화순벌교방향→→화순로 화순방향→→화순 만연사 주차장
137km 1시간 45분 소요.
→→ 山에가면 寺刹이 있고 寺刹에 가면 山이 있다.
내자(內子)가 조선대학교이공대학(朝鮮大學校 理工大學) 測量(측량)관련 일이 있어
대리기사로 길을 나섰다가 일을 마치는 동안
근교 화순 만연산 아래 만연사랑 만연산을 둘러보기로 하고
조선대학교에서 10km거리인 만연사로 발길을 돌려본다.
羅漢山 萬淵寺 一柱門(나한산 만연사 일주문)
만연사의 일주문이며 편액에는 만연산(萬淵山)이 아닌 나한산(羅漢山) 만연사로 되어 있다
예전에는 만연산을 나한산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언제 산 명칭이 변경 되었는지는 모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며
고려(高麗)1208년(희종 4)에 선사 만연(萬淵)이 창건하였다.
만연은 광주 무등산의 원효사(元曉寺)에서 수도를 마치고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오다가
지금의 만연사 나한전(羅漢殿)이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잠시 쉬다가 잠이 들었다.
16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실 역사(役事)를 하고 있는 꿈을 꾸고 주위를 둘러보니
눈이 내려 온 누리를 덮고 있었는데, 그가 누웠던 자리 주변만은 눈이 녹아
김이 나고 있는 것을 보고 경이롭게 생각하여 토굴을 짓고 수도하다가 만연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화우천(華雨天)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 화우천(華雨天)이란 편액에
자비로운 설법에 꽃비는 내리고 라는 뜻의 보제루(普濟樓)이다
사찰(寺刹)에 따라 만세루(萬歲樓)·구광루(九光樓)라고도 하나, 두루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보제루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사찰 중심 불전의 정면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대체로 모든 법요식(法要式)은 이곳에서 행하고 있다.
그것은 사찰의 중심 불전인 대웅전 등이 대중을 모두 수용할 정도로 넓지 못하다는 데도 원인이 있지만
중심 불전을 마주 올려다볼 수 있는 누각에서 법요를 베푸는 옛 방식의 하나로서
근세에 이르기까지는 이 누각에서 예불하고 설법회를 개최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즉, 초기 가람 형태에서 금당(金堂)의 뒤편에 배치되었던 강당(講堂)의 기능을
이 누각이 금당의 앞쪽에서 대신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범종각(梵鍾閣) 그리고 종무소
화우천이란 보제루를 지나면 우측에 범종각과 종무소가 위치해 있으며 봄날 따스한 햇살과
초록으로 물든 만연산의 풍경과 하나의 산수화가 되어 있는듯 하다.
만연사는 여러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쳐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사리각(舍利閣)을 비롯하여
대웅전·시왕전(十王殿)·나한전과 승당(僧堂)·선당(禪堂)·동산실(東山室)·서상실(西上室)
동별실(東別室)·서별실(西別室)·수정료(守靜寮)·송월료(送月寮) 등의
3전8방(三殿八房)과 대웅전 앞에 규모가 큰 설루(說樓), 설루 아래에 사왕문(四王門)과
삼청각(三淸閣)이 있던 대찰이었다. 또한, 부속 암자로는 학당암(學堂庵)·침계암(枕溪庵)
동림암(東林庵)·연혈암(燕穴庵)이 있었다.
대웅전과 배롱나무
겨울철 눈오는 날이면 많은 사진작가들이 배롱나무 홍등을 촬영하기위해
많이 모여드는곳 중 한곳에 속한다.
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고향이며, 고려 말 선비들의 문집인 보한집(補閑集)이나
파한집(破閑集)에 꽃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는 적어도
고려 말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시집 오기 전의 중국 이름은 당나라 장안의 자미성에서 많이 심었기 때문에
자미화(紫微花)라고 했으며 글자로는 보라색 꽃이지만 붉은 꽃도 흔하고
흰 꽃도 가끔 만날 수 있다.
만연사 대웅전(萬淵寺 大雄殿)
만연사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는 만연사 승려들이 군중일지(軍中日誌)에 필요한
종이 및 주식·부식 등을 조달해 외적 방어에 도움을 주었다.
1793년(정조 17) 화재로 진언집(眞言集) 판각이 타버리는 등 피해가 있었으나
이듬해 경관(慶冠)이 중건하였다 하며 한말에는 당시 국창(國唱)으로 불리던 이동백·이날치 명창이
만연사에서 소리를 닦았으며, 정광수·임방울 등 당대의 명창들도 이곳에서 창악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6·25전쟁 때 모든 건물들이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978년부터 4년에 걸쳐 주지 철안(澈眼)이 중창하였다.
만연사 대웅전 삼존불
우리 나라의 사찰 전각 안에는 대부분 주불(主佛)이 좌우보처를 거느린 삼존불의 형태로 봉안되어 있다.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모신 대웅전(大雄殿)에는 일반적으로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이
협시보살로서 봉안되며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와 만행(萬行:수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석가모니의 지혜와 권능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모든 본존불과 협시보살과의 관계는 본존불의 권능을 협시보살이 대변하는 것으로 표현되며
또, 이 두 협시보살은 항상 서로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살피게 된다.
즉, 문수보살은 끊임없이 지혜의 빛을 발현시키면서도 보현보살의 자비로운 만행을 배우고자 힘쓰고
보현보살은 만행을 실천하면서 문수의 지혜를 돌아보면서 그 지혜에 입각한 만행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양쪽 협시보살의 뚜렷한 장점을 하나로 완성한 분이 본존불로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석가모니불의 협시보살로는 때때로 부처님의 대표적인 제자인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으로 모셔지기도 하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봉안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석가모니불을 불교의 교주로 삼고 있는 특별한 상황 때문이다.
또, 때로는 불국사(佛國寺)의 대웅전과 같이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彌勒菩薩)과
갈라보살(竭羅菩薩)을 봉안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현재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미래불인 미륵보살, 과거불인 정광여래(定光如來)의
보살 때의 명호인 갈라보살을 함께 취하여 삼세불(三世佛)로써 삼존불을 삼은 경우이다.
또한 대적광전(大寂光殿)에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중심으로 좌우에 노사나불(盧舍那佛)과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게 된다. 이는 비로자나불을 법신(法身)으로 삼고 노사나불을 보신(報身)
석가모니불을 화신(化身)으로 삼는 삼신설(三身說)에 근거한 삼존불이다.
만연사 나한전(萬淵寺 羅漢展)
만연사 나한전 인왕상은 전남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28호로 지정되었다.
만연사의 나한전 건물 내부의 양편 입구에 서 있으며 기존의 전통기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좌측상(향우) 인왕상은 머리는 상투형으로 높게 몰아 올렸으며, 얼굴은 앞에서처럼 사나운 표정은 사라지고 없다.
천의는 상·하를 모두 걸친 전신복장인데 허리춤에 붉은 띠장을 둘렀으며 전면 중앙에는 머리만 있는
사자형을 조각하였다. 그러나 仁王像에 용을 조각한 예는 아직까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우측손은 권법자세이고 왼손에는 금강오고저(五鈷杵)를 쥐고 있다.
발에는 문양이 있는 검정신발을 신고 있다.(원래 통일신라 시대 인왕상에는 발이 노출되어있다.)
발밑으로 원형대좌가 이어지고 있는데 몸체와 한덩어리로 조각되었다.
만연사 나한전 인왕상
우측상(향좌)인왕상은 역시 좌측상과 거의 똑같은 양식이다.
머리 위에 돌출한 머리, 넓게 퍼진 눈썹과 크게 뜬 왕발울 눈, 납작한 코
상체를 덮은 천의, 짧게 무릎까지만 덮은 군의, 원형의 대좌 등, 모든 기법이 좌측 상과 동일하다.
다만 신발이 좌측상에서는 발등까지만 덮은 것에 반해 이상은 장화형태로
무릎 부위까지 올라온 긴 신발임이 다르다.
또 왼손에 쥔 금강저를 이 상에서는 오른손에 쥐었음이 다를 뿐이다.
조성 기법 등을 통해 볼 때 조성 시기는 조선시대 후기인 18~19세기 경으로 추정되는데
인왕상 전면에 익살스러운 사자의 머리를 조각한 예는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만연사 산신각(萬淵寺 山神閣)
산신각 편액은 세로 형태라 대부분 사찰에서 보는것과 사뭇 달랐다.
우리나라 사찰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일러주는 좋은 증거가 되며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이나, 불교의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력에 의하여
먼저 호법신중(護法神衆)이 되었다가, 후대에 원래의 성격을 불교 안에서 되찾게 된 것이다.
산신각에는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산신을 봉안하거나
이를 탱화(幀畫)로서 도상화한 그림만을 모시기도 한다.
冥府殿(명부전)
사찰(寺刹)에서 저승의 유명계를 상징하는 불교건축물로서 만연사 명부전은 맞배지붕의 정면3칸의
다포계 형식의 건출물이다.
명부전이란 원래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날로부터 49일까지는 7일마다
그 뒤에는 100일·소상(小祥)·대상(大祥)까지 열 번에 걸쳐 각 왕에게 살아 있을 때 지은
선악의 업을 심판받게 된다고 하여 죽은 사람의 명복을 위하여 절에서 재(齋)를 모시게 된다.
이 때 명부전에서 재를 모시게 되는 까닭은, 지장보살의 자비를 빌려 시왕의 인도 아래
저승의 길을 벗어나 좋은 곳에서 태어나게 하고자 하는 데 있다.
명부전에 봉안하는 후불탱화는 소재회상도(消災會上圖)로, 지장보살 뒤에는 지장탱화를 봉안하고
시왕 뒤편에는 명부시왕탱화를 봉안한다.
만연사(萬淵寺)와 만연산 만연봉(萬淵山 萬淵峰)
만연사 종무소 쪽에서 바라본 만연사 도량이며 앞에 보이는것은 요사채이고 요사채 아래 해우소가 있다
그리고 나한산이라 불리는 만연산 만연봉이 요사채 뒷편으로 우뚝 서 있으며
만연산 주봉은 대웅전 뒷편에 자리하고 있다.
만연사에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나한전·명부전(冥府殿)·한산전(寒山殿)과 요사채가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선정암(禪定庵)과 성주암(聖住庵)이 있다.
유물로는 고려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향나무 원목의 삼존불과 시왕상(十王像)·십육나한상 등의
불상과 비현(丕賢) 금어(金魚)의 작품이라 전하는 세로 760㎝, 가로 586㎝의 괘불(掛佛)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범종(梵鐘) 등이 있다.
또 이 절 경내에는 둘레 3m, 높이 27m, 수령 770여 년의 전나무가 있는데
만연사 창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심었다고 전한다.
만연사 장독대
장독이 오와 열을 잘 맞추고 서 있는 병사들 같다 보였다
만연사는 다산 정약용선생이 젊은 시절 부친이 화순현감으로 부임하던 때에
만연사 동림암에 거쳐한 적이 있으며 국창 임방울 선생이 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이 곳을 찾아 피나는 연습을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절에서 동쪽으로 2㎞지점에 만연폭포가 있어 찾았는데
폭포가 아닌 인공폭포가 관광객들이 인공폭포 물 맞는곳이라 생각하면 된다.
만연산 정상(萬淵山 頂上)668m
만연산은 전남 화순군 화순읍과 광주광역시 동구의 경계에 자리하는 해발 668m의 산이며
호남정맥의 명산 무등산(1178m)이 남녘의 안양산(853m)을 향해가다 장불재를 지나자마자
서남녘으로 곁가지를 일으키며 이 산줄기는 이번에 소개하는 만연산과 수레바위산(529m)
지장산(359m)을 일으킨 후 너릿재로 내려서며 너릿재를 지난 이 산줄기는
광주의 전남의 도계를 이루며 서쪽으로 달려 소룡봉, 정광산, 건지산, 죽령산 등을 일으킨 후
영산강 상류인 지석강에서 산줄기를 마감한다.
만연산 만연봉에서 바라본 만연사
만년사에는 괘불탱이 있는데 보물 제1345호지정 되었으며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세로 7.53m, 가로 5.86m. 금어(金魚)인 비현(丕賢)과 편수(片手)인 쾌윤(快允)·도옥(道玉)이
1793년(정조 17)에 그렸다.
비현 등은 당시 전라남도 선암사와 흥국사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일류 화공이다.
화기(畵記)에 ‘영산회탱(靈山會幀)’의 명칭 및 ‘이 공덕으로
모든 중생이 불도(佛道)를 이루기를 원한다’는 발원문이 있다.
만연선사는 광주 무등산의 원효사(元曉寺)에서 수도를 마치고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오다가
지금의 만연사 나한전(羅漢殿)이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잠시 쉬다가 잠이 들었다.
십육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실 역사(役事)를 하고 있는 꿈을 꾸고 주위를 둘러보니
눈이 내려 온 누리를 덮고 있었는데, 그가 누웠던 자리 주변만은 눈이 녹아 김이 나고 있는 것을 보고
경이롭게 생각하여 토굴을 짓고 수도하다가 만연사를 창건하였다고 하는 만 연사 도량을
걸어보고서 사찰기행을 마무리 해본다.
※인용글 :
자료 인터넷사전 및 화순군 홈페이지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사전 ,전통사찰관광정보,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료
만연사 홈펠이지 자료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및 사찰종무소스님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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