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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오봉산(咸陽 五峰山),고려말 이성계장군의 황산벌 대첩(荒山伐 大捷) 매복지 오봉산 을 걷다 본문
함양 오봉산(咸陽 五峰山)
고려말 이성계장군의 황산벌 대첩(荒山伐 大捷) 매복지 오봉산을 걷다.........!
▲ 함양 오봉산(咸陽 五峰山)
높이 : 879m
위치 : 경남 함양군 함양읍과 전북 남원시 아영면 경계에 있는산
▲ 함양 오봉산(咸陽 五峰山) 산행일
2021년03월25일 목요일 , 날씨 : 맑음
▲ 함양 오봉산(咸陽 五峰山) 나의 산행코스
함양 혜운사 주차장→→함양무지개마을 노인요양원→→오불사 옆길→→오봉약샘
→→목계단→→팔령방향 갈림길→→오봉산 정상→→태조릿지→→팔영방향 갈림길→→함양 혜운사 주차장
6.09km 3시간 45분 소요.
▲ 함양 오봉산(咸陽 五峰山)개요 :
함양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오봉산은 항상 서리가 내린다고 하여 서리산, 또는 상산이라고 불렀으며 남원시등지에서 보면 봉우리가 5개라고 하여 오봉산이라 불려지면서 많이 알려졌다.봉우리가 다섯이라 멀리서 보면 바위봉우리가 강렬하다. 특히 북쪽 병곡쪽에서 보면 연비산과 옥녀봉 사이로 보이는 상산은 흡사 설악산 처럼 강렬한 인상을 준다. 멀리서 보면 흡사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축소시켜 놓은 듯 찌를 듯 솟아오른 칼날연봉이 시원하다. 바위오름 재미도 짜릿하며 사라졌다 나타나는 능선이다.바위에 오르는 재미를 만끽하는 산으로 눈썹바위, 장수바위, 숨은벽 일대에 함양의「산다운」산악회가 개척한 바위코스가 많다. 암벽에 문외한인 하이커들도 암릉타는 재미를 살짝 맛보게 하는 매력의 산이다.오봉산은 고려말 이성계장군이 황산벌 대첩에 앞서 정병 5천을 매복시켜 왜구를 대파한 곳으로 바위능선 중간에 장군대좌라는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옛날에는 기우제를 지내는 성스러운 산이다서기 1380년 고려 우왕6년 이성계장군이 황산벌에서 왜군을 정벌할때 장병들을 매복시켰던 큰골이 있고 전북 도계에는 신라와 백제의 경계에 쌓았던 해발 553m 의 팔령산성이 있다.함양의 옛이름인 천령이 이 산의 한 봉우리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지역 가장 오래된 촌락(갓거리마을)도 이곳 바위골에 뿌리를 박고 있다.군내 문화제전인 천령제의 성화도 이곳 오봉산의 지맥인 천령봉에서 채화한다. 서기 500년 신라 지증왕이 즉위후 중국의 군현제도를 도입하여 중국에서 귀화한 오첨을 당시 천령백으로 임명하고 우리고장을 다스리게 하였더니 이곳에 갓을 벗어 걸어두고 소로 밭을 가는 우경법을 개척하였다고 하는 우리나라 오씨의 발상지 관동 (일명 갓거리)마을로 하산도 가능하고 웅곡리나 죽곡리 구룡리 방향으로도 하산코스가 있다.
▲ 함양 오봉산(咸陽 五峰山)등산지도
▲ 함양 오봉산(咸陽 五峰山)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등산시 GPS 오류로 거리가 1Km 차이가 있음
▲ 영함양 오봉산(咸陽 五峰山) 찾아가는 길
진주역→→남해고속도로 진주JC→→통영대전고속도로 함양jc→→광주대구고속도로 함양TG
→→한들로 남원방향→→24번국도 인월방향→→함양로→→오봉산 등산로 주차장(혜운사)
81km 1시간 05분 소요.
→→→→→→2021년 03월25일 목요일 대한민국 구석구석 산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12일만의 산행이며 주말엔 비가 내려서 산행도 못했는데 간만에 산에서 기(氣) 듬뿍 받아보자
아직도 경남 함양(咸陽) 거창(居昌)지역에 등산할 산이 많이 남아 있다
오르고 또 올랐는데 오를산이 또 남아 있으니 말이다 오늘 산행지는 오봉산(五峯山)이며
오봉산이란 이름을 가진 山도 아마도 각 지역마다 있을 정도로 많은 이름이다.
오봉산 등산로 주차장
당직근무를 마치고 곧장 함양으로 달려 오봉산 등산로 주차장에 주차를 하였다
오봉산무지개마을 노인요양원 네비게이션에 입력 하면 안내 되며
주소는 경남 함양읍 함양로179-15이다
물론 오봉산노인요양원은 더 올라가야 있지만 하산지점을 고려하여 대부분 여기에 주차를 한다
나역시 오불사 방향으로 등산하여 가재골 방향으로 하산 계획을 세워 산행준비를 하였다.
오봉산 등산로 가는길
혜운사 사찰 옆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함양무지개마을 노인요양원이 있는곳까지 가야한다
500m정도 올라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길을 가야하며 시멘트 오르막길을 접어들면
함양무지개마을 노인요양원 건물이 보인다.
예전엔 오봉산 주 등산은 크게 종주코스와 원점회귀 코스로 나누는데
종주코스는 삼산리 뇌산마을 뒤편 농로를 따라 천령봉에 올라 옥녀봉을 거친 뒤 정상을 밟고
팔령마을로 내려가는 코스이며 거리는 약 13km로 5시간 가량 소요된다 한다
원점회귀코스는 내곡마을~옥녀봉~오봉산(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상죽림~능선~상산~송전마을로 내려오는 길 등 4갈래가 있으며 각각 3~4시간 걸린다고 한다.
오봉산 등산안내표지
함양무지개마을 노인요양원 과 오불사(五佛寺) 중간에 있는 등산안내도 표지이다
함양무지개마을 노인요양원은 노유자시설로서 제법 규모가 커 보였다
경사가 심해 5톤 소방차량 통행에 조금 애로가 있을것 같고 겨울철에 눈이라도 오면
구급차 진입도 못할 정도의 깊은 골짜기내 심신요양으로는 최적의 장소 같아 보였다.
오봉산이란 이름은 전북 남원에서 보면 봉우리가 5개라 오봉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 오봉산 이름은 봉우리가 5개인것이 대부분이다.
오봉산 안내 표지목 1.3km
오봉산 생행코스중 제일 단거리 코스일 같으며 여기서 정상까지 1.3km라고 안내되어 있다
따스한 봄 햇살이 산하를 비춰주고 있고 여기저기 새싹이 돋아나 만연한 봄이다
지금 등산하고 있는 경남 함양의 오봉산(879m)은 인근의 괘관산과 달리 암봉과 암릉이 감춰져 있지 않고
한눈에 드러나는 산이라고 하며 그래서 대부분의 산행기에서도 그 모습이 설악의 한 능선을 옮겨다 놓은 듯
장쾌하기 그지없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오봉산 릿지는 릿지기술 구사하는 바위꾼들이 아니면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깎아지른 바위 벼랑의 연속이라 생각하면 된다.
오봉산노인요양원 들머리 초입구간
오불사 작은 암자 옆으로 넓다란 등산로가 만들어 져 있다 마치 함양읍 주민들이 아침저녁으로
산책코스 마냥 탐방로가 아주 편안하게 펼쳐져 있다.
오봉산은 경남 함양읍과 전북 남원시 인월면을 가르는 도 경계선상에 있으며
함양의 지킴이 산으로 정상부에 솟아 있는 5개의 암봉이 마치 산수화 처럼 인상적인 산이다.
산 이름이 오봉산인 것도 봉우리가 5개의 그런 연유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하며
함양에서는 일명 서리산이라고도 하고 한자로는 상산(霜山)이라고 한다.
오봉산 봄(노루귀)
탐방로 주변 참나무 낙엽사이 양지바른곳에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하얗게 피어 있다
장이세신(獐耳細辛), 설할초(雪割草), 파설초(破雪草) 라고도 하며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숲 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중국, 러시아 우수리 지역에도 자란다.
식물체는 높이 8-20cm, 전체에 희고 긴 털이 많이 난다. 잎은 뿌리에서 나며 3-6장이며
잎몸은 3갈래로 갈라진 삼각형이며, 밑은 심장형, 끝은 둔하다. 잎 앞면에 보통 얼룩무늬가 없지만 있는 경우도 있다.
꽃은 3-5월에 잎보다 먼저 피는데, 뿌리에서 난 1-6개의 꽃줄기에 위를 향해 피고, 흰색, 분홍색, 보라색이다.
꽃받침잎은 꽃잎처럼 보이며, 6-11장이다. 수술은 많으며 노란색이다.
노루귀라는 이름은 꽃줄기나 잎이 올라올 때 ‘노루의 귀’를 닮아서 붙여졌다고 한다.
오봉산 안내표자목 0.8m
오봉산노인요양원방향 탐방로는 코스가 좋고 짧아 초보 산행자들에겐 부담없이 오를 코스 같았다
만연한 봄날씨라 여기저기 진달래가 꽃봉우리를 매달고 있고 생강나무는 노랗게 꽃을 피웠다
잡목들은 새순이 돋아나 봄 태양 맛을 마음것 즐기는듯 봄내음이 여기저기서 풍긴다
오봉산은 고려말 이성계장군이 황산벌 대첩 매복지라고 한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의하면 신우(辛禑) 때 왜구가 함양을 도륙하고 또 남원산성을 치고는 물러나
운봉현을 불질렀다. 왜구는 인월역에 주둔하고서 장차 북상하겠다고 소리치매 내외 안팎이 크게 소동하였다.
이성계가 남원에 이르러 운봉을 넘어 지금의 황산(荒山)에 진을 치고 왜구와 대치하였다.
적장 중에 나이 겨우 십오륙 세 가량 되고 이름은 아지발도(阿只拔都)라 하는 자가 있었는데
이성계는 그가 용맹스럽고 날랜 것을 알고 사로 잡으려고 하니 동두란(仁豆蘭)이 말하기를
죽이지 아니하면 반드시 상할 것이라 하였다.
이에 이성계는 아지발도의 투구를 쏘아 맞추고 투구가 떨어지자 동두란이 재빨리 사살하니 적은 기세가 꺾였다.
이성계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여 크게 격파하니 시내물이 붉은 핏물로 변하였다.
처음에 적의 수는 아군의 10배나 되었는데 겨우 70여 명이 지리산으로 도망쳤다.
이성계가 개선하여 돌아오니 판삼사(判三司) 최영(崔瑩)은 눈물을 흘리며 장군을 맞았다.
이 대첩이 있은 지 약 200년이 지난 선조 10년(1577년) 8월 당시 전라도 관찰사 박계현이
고려사와 용비어천가의 내용을 고증하여 조정에 상소, 윤허를 받아 호조판서 김귀영이 글을 짓고
운봉현감 박광복이 모든 공사를 담당하여 화수산 남록에 비석을 세웠다.
1945년 1월 한민족 문화말살정책에 의해 일제는 이 비를 폭파하고 비문 각자를 모두 지워 버렸다.
현재 인월을 중심으로 한 대부분 부락의 지명은 이 태조의 업적을 기리고
당시의 대첩과 관련된 이름들로 바뀌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봉산이 봄(생강나무꽃)
오봉산은 생강나무 밭 처럼 여기저기서 노랗게 피어 있었다 짙은 생강내음이 진동하는듯 하다
생강(生薑)나무는 산호초(山胡椒), 삼찬풍(三鑽風) 3월에 잎이 나오기 전에 노란색으로 피는데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짧은 꽃대에 작은 꽃들이 모여 산형 꽃차례로 달린다.
암수딴그루 라고 하며 수꽃에는 깊게 갈라진 꽃덮이 조각 6개와 9개의 수술이 있다.
암꽃에는 꽃덮이 조각 6개와 1개의 암술, 그리고 헛수술 9개가 있다. 작은 꽃자루는 짧고 털이 있다.
나무껍질은 회색을 띤 갈색이며 매끄러우며 새로 잘라낸 가지에서 생강 냄새와 같은 향내가 나므로
생강나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생강이 들어오기 전에는 이 나무껍질과 잎을 말려서
가루를 내어 양념이나 향료로 썼다고 전해진다.
유사종으로 잎이 전연 갈라지지 않는 것을 둥근잎생강나무, 잎이 5개로 갈라지는 것을 고로쇠생강나무
잎의 뒷면에 긴 털이 있는 것을 털생강나무라 한다.
관상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되며꽃은 향기가 좋아 생화로 쓴다.
열매는 녹색→황색→홍색→흑색 순으로 익어가므로 다양한 색의 열매를 관상할 수 있으며
단풍도 볼 만하여 관상수로 적합하다고 한다.
등산길에 바라본 오봉산 산정
오봉산 산정은 마치 산수화를 그려 놓은듯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1000고지가 되지는 않지만
산에 오를수록 급경사지에다 암산이었다
함양 오봉산은 서기 1380년 고려 우왕6년 이성계장군이 황산벌에서 왜군을 정벌할때
장병들을 매복시켰던 큰골이 있고 전북 도계에는 신라와 백제의 경계에 쌓았던 해발 553m 의 팔령산성이 있다
함양의 옛이름인 천령이 이 산의 한 봉우리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지역 가장 오래된
촌락(갓거리마을)도 이곳 바위골에 뿌리를 박고 있다.
함양군내 문화제전인 천령제의 성화도 이곳 오봉산의 지맥인 천령봉에서 채화한고하며
서기 500년 신라 지증왕이 즉위후 중국의 군현제도를 도입하여 중국에서 귀화한 오첨을 당시
천령백으로 임명하고 우리고장을 다스리게 하였더니 이곳에 갓을 벗어 걸어두고
소로 밭을 가는 우경법을 개척하였다고 하는 우리나라 오씨의 발상지 관동 (일명 갓거리)마을로
하산도 가능하고 웅곡리나 죽곡리 구룡리 방향으로도 하산코스가 있다.
등산길의 조망
삼봉산 능선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 감싸고 있으며 다랭이 밭들이 계단처럼 층층이 그려져 있다
함양읍의 상수락 마을이 발아래 펼쳐지고 산골마을 풍요로운 풍경이다
발 아래 조동마을은 대추지 마을이라고 부르고 조동(棗洞)마을은 팔령천을 사이에 두고
제한(蹄閒)마을과 조동마을을 합쳐서 이르는 이름이다.
제한은 옛날 제한역이 있었다고 전하는 곳으로 역촌이였고 조선시대 수동의 사근 도찰방에 딸린 역이며
중마(中馬)2필, 하등마(下等馬)8필, 역리 93명 역노 22명, 역비 5명이 있었으나
1896년(고종 33)에 폐지 되었다. 이곳 제한마을 뒤 제한재를 넘어서 오도재를 넘어 마천 하동 구례로 가는 길목이다.
그리고 옥녀봉 산밑에 구룡들이 있고 들의 아랫쪽에 위치한 대추지는
조선 초기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추나무가 많이 있다고 하여 대추지 즉 조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경관이 아름다운 마을로 마을 입구에 할개미라는 지명이 있고 할개미에는 어사 송덕비가 있다고 한다.
처음 마을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성씨는 김해김씨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진양강씨 남원양씨가 제한마을에 입향하여 토대를 닦았다고 한다."
함양 난평리와 죽림리 조망
관동마을유래를 보면 함양읍 소재지에서 약 4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갓거리로 불리우는
관동(冠洞)마을은 천령봉 아래 자리잡은 마을인데 신라 지증왕(서기500)때 중국에서 기화한
오첨을 천령백(天嶺伯)으로 임명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기록상으로는 함양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다.
마을 터를 잡을 때에 나무에다 갓을 걸었다는 전설이 있는 마을 이름이며 그리고 옛날에 천령의 관청이
이곳에 있었다는 전설이 있고 천령봉에는 봉화대가 있으며 천령문화제 때는 이 천령봉에서 채화한다.
옛날의 옥터가 있고 사형터도 있었다 한다. 여러 가지 전설을 간직한 이 마을은
마을 앞 좌측에 와룡대가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마을 뒤에는 옥녀봉이 있고 마을의 우측 골짜기는 서계천이 흐르고 있으며
바위가 많은 마을로 가매바우, 구신바우, 배바우, 복덕바우, 쌀바우 등이 있다.
불땅터, 비석거리, 씬당터, 옥터거리, 조산거리, 창터 등의 옛 이름들이 남아있고
밀양 박씨가 들어와서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나 그 연대는 알 수 없고 다음은 전주최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경주최씨 함양박씨 등 여러 성씨가 모여살고 있는 마을이다.
오봉산 주봉의 조망
오봉산 등산은 보편적인 탐방로는 상죽림 가잿골농장에서 오른쪽 계곡을 타고 오르는 길이 라고 하며
가잿골농장은 함양읍에서 인월로 가는 24번 국도를 따라 승용차로 10여분 가면
죽림리 내곡마을을 지나 오른쪽에 있고 농장형 가든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계곡물을 막아 둔 보가 있다.
들머리는 이 보를 건너 계곡쪽으로 줄곧 올라가면 된다고 한다
여기서 능선까지는 40분이면 넉넉하게 오를 수 있다고 하는데 능선에 닿기 전 산허리부근에서
왼쪽 계곡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이 있다.이 길이 정상으로 향하는 가장 험난한 코스 라고 한다.
코스 하나는 전문 클라이밍 산꾼이나 클라이밍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면 오르지 못하는 코스다.
그 옆으로 일반 산행자 코스가 있는데 능선으로 오르면서 쳐다만 봐도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고 선등자들이 전한다.
안내표지목 0.4km
산정이 코앞에 있다 400m이면 단숨에 올라갈수 있는 거리이다
반대편 능선에 닿으면 북쪽으로 연비산(842m)이 보인다고 하는데 능선 오른쪽은 옥녀봉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서쪽은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며 정상까지 제법 가파르지만 여기서도 40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다고 한다
능선을 따라 밟아보는 정상은 아래서 보는 것과 달리 평평한 바위봉으로 되어 있고
북으로 이어진 봉우리가 협곡을 이루고 있어 봉우리 사이를 건너가기가 쉽지 않다하는데
최고봉과 2봉사이는 그런대로 건너갈 수 있지만 2봉과 3봉사이는 나무뿌리에 설치된
로프를 타고 오르내려야 하며 특히 2봉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바로 3봉이 이어지는데
천길 낭떠러지가 발아래 펼쳐진다.
이 곳은 함양의 산꾼들이 개척해 놓은 암장지대로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정도라고 한다.
오봉산의 봄(양지꽃)
양지꽃이 산행자를 봄맞중 해주는듯 여기저기 놓랗게 피어 올라 있다
양지꽃은 치자연(雉子筵)·위릉채(萎陵菜)·소시랑개비라고도 하는데 은빛을 띠는 줄기가 옆으로
비스듬히 땅을 기면서 자란다. 풀 전체에 가늘고 하얀 털이 많이 나 있고
줄기가 중간에서 절단되어도 그 부위가 곧 회복되어 뿌리를 내리고 새순이 돋을 정도로 재생력이 매우 강하다.
양지꽃을 뱀딸기와 혼동하기 쉬운데 뱀딸기의 꽃받침은 꽃보다 큰 반면에
양지꽃의 꽃받침은 꽃보다 작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유사종으로 작은 잎이 3장이면 세잎양지꽃, 바위틈에서 자라고 잎 가장자리의 톱니가 크면 돌양지꽃
잎이 손바닥 모양이면 가락지나물, 잎이 길게 갈라지면 딱지꽃으로 구분된다.
오봉약샘
높은지대에 오봉산 샘이 있고 안내글 표지목은 세월 흔적이 보인다
소개글을 보면 오봉산(879m) 유일의 용출 샘물로 사철 솟는 물이 일정하고 맛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해발 725m 높이에서 솟는 오봉약샘은 게르마늄을 비롯한 몸에 이로운 미량원소의 함유량이 많아
약수 중에 약수로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아들을 두지 못한 이 지방 사람들이 아들을 낳은 한약을 달일때 이용해 왔다고 한다
이 자리는 암자가 있던 곳으로 양지바르고 바람이 적어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땅이 얼지 않고
오봉산 서기가 어린곳이라 하여 아낙들이 소원을 비는 산제를 올리던 곳이기도 하다(함양군수)
오봉약샘
안내글 보면 음용해도 좋을듯 하지만 몇일 비가 내리지 않은 탓인지 음용할수 있는 물은 아닌듯 보였다
암자가 있었던 자리라고 하는데 세월이 지난 탓인지 오두막 정도 지을만한 터만 남아 있다.
함양읍에서 오봉약샘을 자연석으로 정비하여 산행자들 위한 샘터를 만들면 좋을듯 하며
우리 산행자들도 전설에 얽힌 여러가지 터를 아겨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지막 오르막 탐방로 구간
오봉산 산정으로 오르는 마지막 구간인듯 하늘과 맞닿아 있다
산행자들의 수없이 지나간 흔적 그리고 빗물탓에 마치 골짜기 빗물 고랑처럼 파여져 있어
많은 소나기가 내리면 무너져 내릴듯한 급경사지 이며 탐방로 정비가 시급하게 보였다.
함양 거창 지역엔 1000고지가 넘는 산들이 빼곡하다 그래서 경남지역 산을 다 오르고 싶어
오르고 또 올랐지만 이렇게 또 올라야 할 산이 남아 있다.
오봉산 정상안내 표지목
바로 앞이 오봉산 산정이며 등산하다 봄 야생화 꽃구경에 생강나무 향기 맡아 가며
올라온 오봉산 등산 길이다 난 산에 오르면 기운이 더 솟는다 산이 주는 기(氣)가 너무 좋다
30대 까지는 바다를 줄기차게 다녔다 해병대특수수색대 복무시절에 배운 잠수실력 바탕으로
남해바다 그리고 더 멀리는 동해바다 까지 바닷속을 헤메여 보았다
하나 뿐인 딸에가 체력이 약해서 체력 보강을 위해 산에 데리고 올랐는데
그때부터 줄기차게 산이 좋아 오르기 시작 되었다.
오봉산의 봄(큰개별꽃)
숲속 양지바른곳에 참나무 낙엽을 뚫고서 수줍게 뽀오얀 얼굴을 내밀었다.
큰개별꽃은 숲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며 뿌리줄기는 1-4개가 함께 달리는데, 개별꽃처럼 굵어지지 않는다.
줄기는 높이 10-20cm이고, 겉에 털이 2줄로 난다. 잎은 피침형 또는 넓은 피침형이다.
꽃은 4-5월에 피며, 줄기 끝에 항상 1개씩 달리고, 흰색이다. 꽃자루에 털이 없다.
꽃받침잎과 꽃잎은 5-8장이며 수술은 10개, 암술대는 2-3개다. 열매는 삭과이다.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한다.
오봉산 정상(五峰山 頂上) 879m
함양 거창 지역 산봉우리에 있는 대부분의 정상석(頂上石)은 인증사진 찍을수 있게 큼직하고 좋다.
오봉산은 경남 함양군 함양읍 그리고 전북 남원시 아영면 경계에 있으며
높이는 해발879m이다 전북 남원시에서 보면 오봉산 산봉우리가 5개라 하여 오봉산이라 불리우며
경남 함양에서는 항시 서리가 내린다 하여 서리산 상산(霜山)이라고 부른다 하며
북쪽 병곡방향에서 보면 연비산과 옥녀봉 사이에 위치하여 있고
오봉산 정상에 오르면 장군바위가 있고 주변의 상림숲 그리고 백암산 천황봉 백운산 월경산 덕두산
삼봉산 지리산을 조망할수 있다.
오봉산 정상(五峰山 頂上) 879m
오봉산은 고려말 이성계장군이 황산벌 대첩에 앞서 정병 5천을 매복시켜 왜구를 대파한 곳으로
바위능선 중간에 장군대좌라는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옛날에는 기우제를 지내는 성스러운 산이다.
1380년 8월 고려 말 진포(지금의 금강 하구)에 정박한 500여 척의 왜선을 해도원수 나세, 심덕부, 최무선이 지휘하는
고려군이 최무선이 개발한 함포를 앞세워 모두 불사라 버린 진포대첩이 있었다.
당시 내륙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왜군은 돌아갈 함선이 불타버리자 충북 옥천으로 이동해
이미 다른 곳에서 노략질을 하던 왜구와 합세해 세를 불렸으며 이후 상주까지 이동하면서
가는 곳마다 고을을 모두 초토화 시켜버렸으며 백성을 살육하고 노략질 기세를 이어갔다.
상주에 있던 왜군은 계속해서 구미와 성주 등 경북을 유린하고 경남 함양군까지 이르렀고
고려 내륙 깊은 곳을 제 마음대로 활개치는 왜군을 소탕하기 위해 정지, 백극렴 등
9명의 장수가 1만여 고려군을 이끌고 함양군 사근내역 전투에 참가했지만, 참패해
왜군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으며 당연히 함양은 초토화되었고, 팔랑치를 넘어
전라도로 진격해 남원산성까지 공략했지만, 남원산성 수비가 완강해 여의치 않자
운봉을 초토화 시키고 인월에 진을 구축했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고려사 절요>에서는 "왜적이 진포에서 패한 뒤로 군, 현을 쳐서 함락시켰으며
살육과 약탈을 멋대로 하여 왜적의 기세는 더욱 치성해졌다. 3도의 연해의 땅은 쓸쓸하게 텅 비어 버렸다.
왜란이 있던 이후로, 여지껏 이와 같이 참혹한 일은 또 없었다."라고 적었으니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산정에서 바라본 함양읍(咸陽邑)
고려 조정은 이성계 양광·전라·경상 3도 도순찰사로 임명했고 이성계는 곳곳에 널브러진 시신과
초토화된 고을을 지나면서 분노에 치를 떨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성계 장군은 남원에 도착해 하루를 쉰 다음 다음날 곧바로 여원치를 넘어 운봉에 도착했으며
이틀간의 전투에서 왜군을 대파해 지리산 방향으로 도망간 왜군이 백여 명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대승을 거둔 것이 바로 황산대첩 이다. 노획한 왜군의 말로 1천6백여 필이었고
황산벌의 람천이 일주일 동안 핏물이 흐를 정도였다고 하며 황산대첩의 역사적 의의는
진포대첩의 패전으로 내륙으로 진출한 왜구가 토착세력화되는 것을 방지했고
30년 왜구에 시달린 고려 정부에 이성계라는 영웅을 탄생시켜 훗날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한다.
상산(霜山)879m
오봉산은 함양에서는 상산이라고 불렀다 항시 서리가 내린다 하여 상산 이지만
산정이 서리내린 것처럼 하얗다 하여 상산이라고 한다.
안내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항상 서리가 내린다고 해서 서리산 또는 상산이라고 하며 남원시 등지에서 보면
봉우리가 다섯이라 오봉산이라 불린다. 서기1380년 고려 우왕 6년 이성계 장군이 황산벌 대첩에 앞서
5천명의 장병을 매복 시켰던 큰골이 있고 바위능선 중간에 왜구를 대파한 곳으로
장군대좌라는 지명이 남아 있으며 옛날에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전북도계에는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이루었던 경상남도 기념물 제172호인 팔령산성(해발551m)이 있다.
서기 500년 신라 지증왕 즉위 후 중국에서 귀화한 오첨을 천령(속함군) 백으로 임명하고
우리고장을 다스리게 하였더니 이곳에 갓을 벗어 걸어두고 소로 밭을 가는 우경법을 개척하였다는 하는
우리나라 오씨의 발상지 관동(갓거리) 마을로 하산이 가능하고 응곡리 죽곡리 구룡리 방향으로도 하산이 가능하다.
세상을 바라보며(전북 인월면 조망)
전북 인월(引月)은 삼한시대 진한(辰韓)에 속하였고 신라 경덕왕 15년(784) 까지는 모산현(母山縣)에 속했고
785년에 모산현이 운봉으로 바뀌면서 천령군(天嶺郡 : 지금의 함양군)의 관할이 되었다.
고려 태조 23년(940)에는 역원(驛院)이 설치되어 남원부(南原府) 운봉현(雲峰縣) 인월역(引月驛)이라 하였다.
1895년(高宗 32년) 제1차 행정구획 개편에 따라 운봉현이 운봉군으로 승격됨에 따라 운봉군 동면에 속하다가
1914년 제2차 행정구획 개편에 따른 운봉군 4개의 면(운봉면, 동면, 아영면, 산내면)으로 분리되어
남원군에 편입됨으로서 다시 남원군 동면이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남원시 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동면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운봉읍 연혁 참조) 본래 운봉군(雲峰郡) 동면(東面) 지역으로
장재(長才), 수성(水聲), 석치(石峙), 중군(中軍), 구인월(舊引月), 신인월(新引月), 신우(新牛), 용계(龍溪)
서무(西茂), 계암(桂岩), 사창(社倉), 구평(九坪), 용암(龍岩), 자래(自來), 내건(內乾), 외건(外乾)
성내(城內), 도장(道庄), 유곡(酉谷), 상우(上牛), 중우(中牛), 하우(下牛)
성산(城山)의 23개 리(里)를 관할하였다.
산정에서 간식
세상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집합금지 거리두기등 예전 일상에 없었던 용어들이 생겼다
코로나-19가 1년 이상 지속되어 코로나 시대가 되어 산행은 단체가 아닌 혼자산행 혼산이 일상이 되었다
나는 혼산 하면서 점심이나 간식은 연양갱으로 한다 연양갱은 열량이 높고 먹어도 목마르지 않아 좋다
잠깐 쉬는 동안 먹을수도 있고 산행중에 걸어면서도 먹을수 있어 늘 연양갱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그래서 배낭과 호주머니엔 연양갱이 있다.
태조릿지 방향 하산
가재골 방향으로 하산 하기위해 오봉산 산정 맞은편 봉우리에서 휴식하며
하산할 방향 구간을 잠시 스캔 하여 보았다
마치 산수화 처럼 암릉이 펼쳐져 있고 천길 낭떠러지 같은 절벽이 수두록 하다
태조릿지는 암벽 전문 등반가만 할수있는 코스가 있고 일반 산행자가 산행할수 있는 코스가 있다
태조릿지 이름이 아마도 이성계 장군 조선태조 이성계 같은 느낌이 든다.
정상부 남동쪽 아래로는 바위 능선이 한 줄기 이어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며
지리산 권역에서는 보기 드문 암릉인지라 내로라하는 전국의 클라이머들이 자주 찾는곳이라고 한다.
샛노란 생강나무 꽃 사이로 연분홍 진달래가 조금씩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는 지금
난 태조릿지로 하산할것이다
오봉산 암릉 풍경
태조릿지 방향의 암봉(巖峰)들이 차곡차곡 수반에 수석을 아름답게 구며 놓듯이 펼쳐 놓았다
혼자 이렇게 태조릿지 방향으로 하산할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 여태 쌓아온 결과이기에 그렇다
산악구조를 10년넘게 해왔고 또 서울 도봉산 산악안전교육원에서 전문교육도 받았고
또한 젊은 시절 해병대특수수색대에 복무한 바탕이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고
직업업무에 체질이 되어버린 셈이다.
태조릿지에서 조망
절벽과 암릉으로 만들어진 태조릿지는 이성계 장군의 기계가 서려 있는듯 웅장하다
절벽구간은 전문가의 장비가 필요로 하기 때문에 불가능 하고 일반 산행자들이 등산하는 코스로 하산하며
테조릿지 이 루트를 주도적으로 개척한 산악인의 이름이 ‘이선계’인데, 경상도 발음으로 ‘이성계’로 불리다 보니
별명이 ‘태조’가 됐고, 언젠가 바윗길을 개척하게 되면 ‘태조길’로 명명하고 싶어 했단고 전한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그의 소원이 이성계장군의 흔적이 깃든 이곳에서 이루어지게 됐다니
태조릿지란 예사 이름은 아닌 듯하며 새로운 길을 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듯 싶다.
태조릿지 일반 산행자 루트
마치 암벽에서 하강 라팰링 하듯 타고 내려와 위로 쳐다 보았다
이렇게 태조릿지 구간을 일반 산행자들이 즐겨 등산 한는 코스라고 한다.
오봉산 태조릿지는 릿지등산을 주로하는 산악인들에게는 좋을듯한 코스인듯 하고
하산중 서울 도봉산 인수봉이 생각났지만 인수봉과는 비교도 안되는 직벽구간 이지만
그래도 1000m도 되지 않는 오봉산에서 태조릿지는 분명히 좋은 코스라고 생각하며
장비가 없어 일반인 코스로 내려와 쳐다 보면서 나혼자만의 생각이다.
걸어온길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하산한 암릉길을 쳐다 보았다 봄기운이 만연한 지금 나무가지 마다 새싹이 돋아나고
연초록 잡초들이 암릉속에서도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서 보면 천령산도 보이며 천령산은 함양의 진산이라고 하며 함양읍내가 한눈에 들어 오는곳이며
정상에는 제단이 있어 군 문화제가 열리면 이곳에서 성화를 채화하기도 한다는 곳이다.
또 함양에 있는 산을 찾는다면 천령산을 올라야 겠다
개인차량으로 산행지를 찾아 왔기에 원점으로 갈수없는 단점이 혼산(혼자산행)이다.
다시 산정으로
태조릿지로 하산하여 가재골로 갈려고 했지만 태조릿지를 로프없이 클라이밍으로 내려온곳이
등산로 라고는 보이지 않았고 트랭글 앱을 보았지만 앱에는 길이 있지만 낙엽과 잡목으로
어디가 탐방로 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어 다시 오봉산 능선을 바라보며 등산을 하였다
자칫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메일수가 있어 다시 탐방로를 찾아 능선으로 올랐다
결국 오봉산 아래 태조릿지 한바퀴돌고 오봉산 산정으로 되돌아온 셈이 되었다.
하산완료
함양 오봉산은 고려말 이성계(李成桂)장군의 황산벌 대첩(荒山伐 大捷) 매복지로서 왜구를 격파한 곳이다
황산(荒山)은 남원시 운봉읍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8km 떨어진 해발695m 바위산이라고 한다.
이성계 장군은 왜구와 싸울때 팔량치 바람을 끌어 들여 화살을 실어 쏘았다
화살의 방향과 바람의 방향이 같아 화살의 위력이 두배로 강해졌다
결국 화살은 왜구 아지발도(阿只拔都) 목을 뚫고 대승을 거두었고 아도발도가 온몸이 갑옷으로 무장되어 있어
화살이 뚫을수 있는 곳은 목 뿐이였다 바람이 불어와 갑옷을 날리니 아지발도가 아! 황산바람이 세구나 하고
입을 열었는데 그순간 입에 화살을 쏘았다 바람이 인도해 왔다는 뜻으로 마을이름이 인풍리(引風里)라 하였다고 한다
역사가 있는 함양 오봉산을 걸어보면서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산&산(부산일보),한국1000산 신명훈,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함양군 및 남원시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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