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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구시봉(咸陽 구시峰).신라 백제(新羅 百濟)의 국경지 백두대간 능선 따라 구시봉에 오르다. 본문
함양 구시봉(咸陽 구시峰).
신라 백제(新羅 百濟)의 국경지 백두대간 능선 따라 구시봉에 오르다.
▲ 함양 구시봉(咸陽 구시峰)
높이 : 1014.8m
위치 :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 경계에 있는 산.
▲ 나의 산행일 : 2020년10월24일 토요일. 날씨 : 맑음
▲ 함양 구시봉(咸陽 구시峰) 나의 산행코스
백두대간 제4구간
육십령→→119위치표지1-21→→깃대봉샘터→→구시봉(1014.8m)→→억새길→→민령
→→북바위→→산죽길→→덕운봉→→영취산(1075.6m)→→무룡고개(벽계심터)
11.7km 4시간14분 소요.
▲ 함양 구시봉(咸陽 구시峰)개요 :
경남 함양군과 전북 장수군에 걸쳐있는 구시봉(깃대봉)은
백두대간의 육십령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곳에 솟은 봉우리다.
수려한 산세와 높이에 비해 등산로가 험하지 않아 힘들이지 않고 산행이 가능하다.
억새가 뿜어내는 가을빛이 은은한 가운데 구절초의 향기가 산행 내내 코끝을 간지럽힌다.
정상에 올라서면 북으로는 남덕유산과 동으로 기백산이 조망되고 남으로는
장안산과 백화산이 한눈에 잡힐 듯 건너다 보인다.
산행 기점인 서상면에는 논개(論介)의 묘가 있어 찾는 이들이 충절의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정상을 바로 오르려면 중간의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넓은 길이 나오는데
이곳으로 오르면 825고개로 오르게 되며 이곳만 주의하면 민재로 오를 수 있다.
하산은 구시봉(깃대봉)에서 성주골과 만나는 825고개를 지나 942.8봉
다음의 옥산골로 내려가면 옥산마을이다.
논개(論介)묘에서 옥산마을까지 산행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구시봉과 깃대봉을 혼용해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리하자면 구시는 소나 돼지 등 가축의 먹이를 담는 그릇을 말하는데
오랜 옛날 한 선사(禪師)가 이 산에 올라 지형이 구시를 닮았다 하여
구시봉이라고 불렀고 이후에는 깃대봉이라고 했는데
옛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에 위치함에 따라
당시 산 아래 주둔하고 있던 양측 군사들이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여
승전 때마다 정상에 깃대(깃발)을 꽂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한다.
2006년 1월부터 옛 지명을 되찾아 현재 구시봉으로 부르고 있다.
▲ 함양 구시봉(咸陽 구시峰)등산지도
▲ 함양 구시봉(咸陽 구시峰)→영취산 백두대간길 산행 나의 트랭글 궤적도
▲ 함양 구시봉(咸陽 구시峰)찾아가는길
진주역→→남해고속도로 진주JC→→통영대전고속도로 서상TG→→서상로 장계방향→→
육십령로 장계방향 →→육십령휴게소
93.2.km 승용차 1시간 소요.
→→→→→→2020년 10월24일 토요일 대한민국 구석구석 산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오늘은 육십령에서 백두대간길 4구간을 걸어 구시봉과 전북장수 영취산을 오를 계획에 따라
경남함양과 전북장수 경계지점인 육십령(六十嶺)으로 발길을 돌린다.
육십령(六十嶺)734m 표지석
육십령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과 전라북도 장수군 계남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며
표지석은 장수군에 위치한 육십령 휴게소에 있고 백두대간길의 함양 할미봉 함양 구시봉
산행 들머리이기도 하다.
육십령 휴게소 주소는 전북 장수군 장계면 육십령로1012 네비게이션 검색하면 길 안내된다
명칭의 유래를 보면 신라(新羅) 때부터 요해지(要害地)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이 고개를 넘으려면 60명 이상의 무리를 지어서 고개를 넘어야 도둑떼를 피할 수 있다거나
재몬당까지 60여 굽이가 된다고 해서 붙여졌다 한다.
삼국시대에는 나제국경(羅濟國境)의 요새지로서 성터와 봉화대 자리가 지금도 남아 있으며
인근 덕유산 봉우리에는 이성계(李成桂)가 왕이 되어 등극할 때 제단을 설치하였다는 유적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육십현(六十峴),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육복치(六卜峙)로 기록되어 있다.
구시봉 들머리
일반적으로 백두대간길은 북진(北進)을 하는것이 대부분인데 나는 시간 있을때 틈나는대로
산행을 하다보니 남진(南進)을 하게 되었다.
보통 전북장수군 무룡고개에서 들머리로 해서 육십령으로 보통12.42km 코스로 한다
구시봉은 다른 이름은 깃대봉인데
신라(新羅)와 백제(百濟)의 국경지대로서 그 아래 주둔하고 있던 군사들이
전투를 벌여 마치 고지전(高地戰) 하듯이 기를 꽃았다고 하여
깃대봉이라 불렸었으나 옛날 한 선사(禪師)가 이 산에 올라 산의 형태가 구시형이라 하여
2006년 1월 6일 구시봉으로 지명이 변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백두대간길 무룡고개 11.5km 안내표지목
내가 걸어 가야할 무룡고개가 11.5km 라고 안내 되어 있다
어제가 상강(霜降)이어서 그런가 바람이 많이 불었고 바람이 차가웠다
상강은 서리가 내리는 계절이라고 하는데 조상님들은 무척 지혜가 많은가 보다
상강 절기는 겨울 마중을 하라는 뜻인데 그 계절도 모르고 산에 오르는 나는 추웠다.
구시봉 가는 초입구간
백두대간 능선길을 따라 가는길은 그다지 경사각이 없어 힘든 코스는 아니다
119조난 위치표지가 스테인레스와 빨간점등불로 만들어져 있다
백두대간길에 있는 119조난 위치표시는 모두 경남소방에서 설치 함양소방서에서 관리한다
백두대간 가는길을 걷는 산행자들은 이 길을 수많은 산객들이 다녔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젊은세대들도 산에 관심이 있다면
이 산길을 쭉 걸어 갈것이라 본다.
백두대간길
구시봉 가는 백두대간길 이다 마치 시골 논두렁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참나무는 잎이 떨어져 산길에 소복하게 쌓여 있고
낙엽길을 걸을땐 특히나 더 조심해야 한다 많이 미끄럽기도 하지만 낙엽아래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수가 없기 때문이다.
백두대간길 4구간은 중재에서 부터 시작하여 구시봉까지 보통 이야기 한다
어째튼간에 1구간 부터 걸을수없는 나는 순서가 무슨 뜻이 있겠나 마는
이렇게 산에 올를수 있는것 만으로도 좋다.
구시봉1.4km 안내표지목
안내표지목에는 깃대봉이라 되어 있다
깃대봉이란 옛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에 위치함에 따라
당시 산 아래 주둔하고 있던 양측 군사들이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여
승전 때마다 정상에 깃대(깃발)을 꽂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하고 있다.
참나무 낙엽이 가득한 산길
바람이 이곳에 몰아 쳤는지 낙엽이 발목까지 빠진다.
육십령 고개에서 시작되는 산행길은 백두대간육십령 표지석이 있는곳이
함양군 서상면의 육십령 마을이다
지금의 육십령 마을은 1930년 경 경남과 전북을 잇는 국도가 개통되면서 생겨난 마을이며
그 이전에는 북쪽으로 두루봉 뒤 군장동(軍藏洞)이란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군장동은 북으로 합미봉, 남으로 두루봉 골짜기에 자리하여 옛날 군사무기를 저장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남쪽의 두루봉은 지금도 성터가 남아 있으며 적에게 위장하기 위하여 섬꺼치(꺼적데기)를 엮어서
산봉우리를 둘러 덮어 적에게 군량미 노적가리로 보이게 속였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에 북괴군이 남진할 때 경남지방에는 이곳으로 제일 먼저 들어왔는데
넘어올 때에 오백여명의 아군이 이곳을 지키다가 많은 전사자를 내기도 한 곳이다.
1985년 창원KBS에서 세운 호국영령 추모비가 육십령 휴게소에 있다.
백두대간길을 걷다
낙엽 가득한길 겨울 마중 찬바람이 불어오는 백두대간 능선길을 걸어본다
안내표지목에는 구시봉 보다는 깃대봉이란 이름의 안내표지목으로 되어 있다.
육십령이 위치한 서상면은 총면적이 9029ha이며 24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육십령으로 가다보면 통영대전간 고속도로 서상ic에서 빠지는데
그 근처엔 함양극락사지 석조여래입상이 있는데 이 불상은 부근 밭에서 출토된 여래불 입상으로
옛 극락사지라고 추정되는 이곳에 옮겨 봉안된 것이다.
몸이 두 동강이 났고, 팔과 코는 없었는데 이를 새로 만들고 보수하여 극락사지와 연관된것으로 생각하여
이곳에 다시 세운 것이 라고 한다.
불신과 대좌를 한 돌로 조성한 이 불상은 얼굴과 손 등에 약간의 손상이 있을 뿐 상태는 양호하며
불신에 비해 큰 얼굴, 좁은 어깨, 유난히 길쑥한 허리, 몸에 밀착된 양팔, 하체가 눈에 띄게
긴 직립한 자세 등은 마치 원기둥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
두 어깨를 감싼 얇은 불의의 옷주름은 U자형으로 촘촘하게 흘러내려 신라 불상을 연상시키며
이 불상이 안치된 극락사에 관해서는 『동국여지승람』에 '극락암은 백운산에 있었는데
이제는 없다'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임진왜란때 폐사된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적으로 경직된 다리 부분의 표현이나 가라앉은 얼굴표정, 형식화된 옷 주름등에서
당대의 독립원각상의 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고려시대의 석불상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깃대봉샘터
PVC배관에서 제법 물줄기가 세차게 나왔다 구시봉의 샘물로 목을 축여 본다
안내글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사랑하나 풀어 던진 약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우리는 한모금의 약수물에 서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 합시다
우리는 한모금의 약수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깃대봉 약수터를 사랑하는 사람들
억새능선
겨울마중 찬바람이 씽씽 불어오는 구시봉 산정에 가까워지니 조망도 보이고
찬바람에 은빛 춤을 추는 억새 또한 반갑게 산객을 맞이 해준다.
구시봉 근처 서상면에는 논개(論介)묘역도 있다
논개 묘역은 전북 장수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곳 방지마을 옆 속칭 탑시기골에 있고
전북 장수군의 의암사적보존회에서 십수년동안 문헌과 구전을 토대로 현장 탐문 조사와
경남도 문화재전문위원 및 향토사학자들의 고증을 거친 끝에 1976년에 발견 하게 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 함양군의 논개묘 성역화사업으로 봉분을 다시 만들고 비석을 세우며
주위를 정화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였다 한다.
묘의 규모는 높이가 1.2m, 직경이 5.4m, 길이 5.3m에 달하는 대형분묘가 남향 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1년 후인 1593년 6월29일 진주성이 함락된 후 성 아래 바위에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한 날을 추모하고 충절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기 위하여
매년 음력 7월 7일을 기하여 유림에서 추모제를 봉행 하고 있다.
논개묘 위측에는 임진왜란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부임되어 진주성에서 싸우다 순절 하신
최경회 장군의 묘도 함께 있고, 주변에 반장의병추모비가 있으며 넓은 광장과 주차장이 마련 되어 있다.
백두대간 능선길
한여름 수목이 무성한날엔 지나 가려면 제법 산행객들엔 힘든 산길 같아 보였다
잡목이 우거지고 억새풀도 키 한질을 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미세먼지가 없어 산에 오르면 이렇게 파란 가을 하늘을 볼수 있어서 좋다
산아래 세상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루고 있지만 그래서 산에오면 너무 좋다.
백두대간 구시봉(白頭大幹 구시峰)1014.8m
함양 구시봉에 올랐다 산정에 오르면 늘 정상에 삼배(三拜)를 올린다
물론 기원(祈願)의 뜻이 제일 크지만 산에 오를수 있었다는 감사의 인사이다.
구시봉 정상 표지석 뒷면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이곳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서 그 아래 주둔하고 있던 군사들이
기를 꽂았다고 하여 깃대봉이라 불렸으나 옛날 한 풍수가 이 산에 올라 산의 형태가
구시형이라 하여 2006년 1월6일 구시봉으로 지명이 변경 되었습니다
이 봉우리의 동쪽은 추상천을 통해 낙동강으로 서쪽은 장계천을 통해
금강으로 물이 흐릅니다. 산림청.
백두대간 구시봉(白頭大幹 구시峰)1014.8m
산림청에서 세운 정상 표지석이라 그런지 큼직해서 정상 인증사진 촬영하기가 좋다.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의 경계에 있는데
전북 장수군 장계면 지역 유래를 보면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으로 백해군의 관할구역에 속했으며, 통일신라 이후 757년(경덕왕 16년)에
군현의 명칭 변경에 따라 백해군을 벽계군으로 개칭하여, 장계면은 벽계군의 관할 구역에 있었다.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벽계군이 벽계현으로 격하됐고, 995년(고려 성종 14년)에
벽계현이 장계현으로 개칭되었으며 근세 조선 1417년(태종 14년)에 장계현이 장수현에 병합될 때까지
장계면은 현청(동헌) 소재지(노평들)로서 교통과 문물이 발달하였다.
근세 조선 말엽 이전에는 부·군·현내에 방을 두었으나 편의상 구역을 확정하는데 불과했다.
이 시기에 장계면은 임현내방으로 부르다 뒤에 노평(현청 소재지) 동쪽을 계동방 또는 임동방
서쪽을 계서방 또는 임서방으로 불렀다고 하며 근세 조선 1895년(고종 32년)에 23부, 331군을 두는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방을 면으로 고치면서 임현내면으로 고쳐 불렀다.
1917년 면제 공포로 임현내면을 계내면으로 개칭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면은 말단행정기구의 중요 역할을 했다.
그 당시 장계천 이남(현 장계리, 동남동<동평들>과 남산마을)은 계남면에 속했으나
그 뒤부터 동남동(동평들)은 장계리에, 남산마을은 삼봉리에 편입되어 장계시장을 형성하게 되었고
면세가 대폭 확장되었으며 장계면은 태백간(소백산맥)이 남으로 힘차게 뻗다가 남덕유산을 이루는 데
그 발치에 두문봉, 추락봉, 노고봉, 백화산 등 형제봉들이 정답게 둘러싸여 있는
오목한 넓은 분지에 한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이렇듯 산간부에서는 보기 힘든 넓은 한들에서
생산되는 곡식을 자급자족은 물론 외화 획득의 주산물이 되기도 한다.
전북 장수군 장계면 조망
장계면의 지형은 동으로는 육십령과 경계를 이루어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접해있고
남으로는 동평들을 흐르는 실개천이 경계가 되어 계남면과 접해있고, 서로는 산정수동하는 동정대재와
경계를 이루어 천천면과 접해있고, 북으로는 깁재와 경계를 이루어 계북면과 인접해 있다.
또한 덕유산에서 발원한 장계천과 장안산에서 발원한 유천이 장계면 한들의 젖줄 역할을 하며
천천면으로 굽이쳐 흐른다, 또한 장계면 중심부를 관통하여 동(경남), 서(전주)로 연결되는
26번 국도와 남(남원), 북(무주)으로 연결되는 19번 국도는 면의 중심지인 장계리에 십자로를 형성하고 있어
동부산악권의 교통 요충지가 되고 있다.
또한 1993년 11월 1일 계내면을 장계면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두대간길 따라 장수 영취산(靈鷲山)으로
구시봉에서 장수 영취산으로 가서 무룡고개로 하산할 예정이다
몸도 풀려 산길 걷기가 한층 편해졌다
영취산은 백두대간 금남호남정맥의 분기점이며 금강, 섬진강, 남강 수계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영취산에는 봉수대 있다고 하며 영취산 정상부에서 장계분지와 장수분지를 중심으로 하여
경남 함양군 서상분지가 한눈에 조망되며, 영취산 봉수에서 남원 덕치리 봉수까지
한 갈래의 '운봉봉수'가 선상으로 이어진다.
영취산 봉수의 구조와 거화시설의 존재여부가 상세하게 파악되지 않았지만
봉수에서 장수가야 분묘유적 출토품과 상통하는 토기편이 상당량 출토되었다고 한다.
백두대간 금남호남정맥의 분기점의 영취산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한국1000산 신명훈,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함양군 서상면,장수군 장계면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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