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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산방산(巨濟 山芳山 ).해송림(海松林)을 따라 산방산 산정에 서다 본문
거제 산방산(巨濟 山芳山)
해송림(海松林)을 따라 산방산 산정에 서다
▲ 거제 산방산(巨濟 山芳山)
높이 : 507m
위치 : 경상남도 거제시 둔덕면 산방리에 있는 산
▲ 나의 산행일 :
2020년 06월 28일 일요일. 날씨 : 맑음
▲ 나의 산행코스 :
보현사 주차장→→전망바위→→부처굴→→오색토→→산방산 정상
(원점회귀) 2.5km 3시간 10분소요.
▲ 거제 산방산(巨濟 山芳山) 개요 :
산방산의 높이는 507m, 산 모양이 '뫼 산(山)' 자와 비슷하고
꽃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산방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상에서 큰 바위산 3개가 우뚝 솟아 하나의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으므로
삼봉산(三峰山)이라고도 부른다. 맞은편으로 우두봉이 자리 잡고 있다.
기암괴석이 많고 경치가 아름다워 마치 금강산과 같다는 말을 듣는다.
특히 가을에 단풍이 곱게 물들면 푸르른 남해를 배경으로 멀리 보이는
다도해의 욕지도·한산도·비진도욕지도·한산도·비진도 등 많은 섬들과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주민들은 '거제의 10대 명산'으로 꼽는다.
▲ 거제 산방산(巨濟 山芳山) 등산지도
▲ 거제 노자산 찾아가는 길:
진주역→→남해고속도로 진주 jc →→통영 대전 고속도로 통영 TG→→거제 동부 방향→→신계 둔덕 방향
→→보현사 주차장.
74.1km 승용차 1시간 소요
→→→→→2020년 06월 28일 일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산을 찾아 오늘도 길을 나서본다.
거제도에 있는 산을 오르기 위해 오늘도 거제도로 향한다
딸아이랑 산행을 하기 위해 산방산 최단코스를 잡아 보았다
보현사에서 오르는 탐방로를 선택해서 원점회귀 계획을 세우고 통영 대전 간 고속도로를 달렸다.
산방산 들머리
보현사 주차장에 있는 산방산 들머리이며 정상까지는 1.25km라고 안내표지목에 되어있다
산꾼들에게는 1.25km 정도면 그냥 산책코스와 같은 거리이지만
산이라고는 거리가 먼 딸아이와 산행길이며 날씨도 무덥다.
경상남도 남부 해상에 있는 섬으로서
거제시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한국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가조도를 비롯, 크고 작은 섬들이 주도를 중심으로 흩어져 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속하며 해금강의 아름다운 경관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며
2010년 거가대교의 개통으로 부산·통영으로의 육로 교통편이 더욱 편리해졌다고 한다.
산방산 초입 구간
삼방산으로 오르는 최단 탐방로인 만큼 가파르기가 심하다
캡 모자 창으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딸아이는 얼여온 물을 연급 푸 마셔 대었다
삼방산에는 해송이 많다고 한다.
해송(海松)의 본래 이름은 곰솔이라고 한다
자라는 곳이 바닷가이기 때문이며 대부분의 식물들이 감히 살아갈 엄두도 못 내는
모래사장이나 바닷물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곳에서도
지평선이 아련한 바다의 풍광을 즐기면서 거뜬히 삶을 이어간다고 한다
파도가 포말(泡沫)이 되어 날아다니는 소금 물방울을 맞고도 사시사철 푸름을 잃지 않는
강인함은 곰솔이 아니면 다른 나무는 감히 넘볼 수도 없다.
곰솔은 수십 그루가 모여 자라면서 억센 바닷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해주고
농작물이 말라 버리는 것을 막아주는 방풍림 역할도 한다 .
양치식물 관중
삼방산 산행로 주변에는 유난이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양치식물이 많았다
관중 고사리는 겨울에도 잎이 얼어죽지 않고 눈속에서 새파랗게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가뭄에도 얼마나 잘 견디는지 뿌리가 다 말랐어도 죽지 않아서
바위의 틈이나 홈이 패인 돌 위에서도 잘 산다고 한다
생김새도 신비스럽고 우악스러우면서도 태고적의 이미지가 있어 화분에 심어도 좋을듯 하다.
바위에서 자라는 이끼와 수수고사리
찌는듯한 햇살과 높은 습도는 산행길을 힘들게 만들었다
섬산행은 산정에 오르면 바다조망이 일품이라 내륙에 있는 산행지보다 또다른 볼꺼리 이다
507m작은 높이 이지만 섬지역의 500고지라고 우습게 보면 안된다.
섬지역은 아름다운 곳이 많다 그래서 거제도에도 천하절경이 빼곡하다
동부 해안의 선착장에서 출항하는 유람선에 몸을 실으면
해금강의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으며 해금강은 훤한 대낮보다도
동틀녘이나 달밤에 더 운치있고, 뭍에서 바라보는 해금강은 뱃전에서 본 것과는
사뭇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한다
맨 남쪽의 무지개마을과 여차마을 간에는 그림같은 해안절경과 환상적인 드라이브코스가 감춰져 있고
남해안 전체를 통틀어서도 이보다 풍광좋은 해안도로를 만나기가 어렵다고 한다.
산방산 탐방로 쉼터
산방산에 오르다 보면 이렇게 쉼터로 만들어 의자를 설치해 놓았다.
딸아이와 간식 조금 수분 보충하고 딸아이는 가파는 탐방로를 헉헉 거리며 먼저 올라간다.
거제시 둔덕면은 고려 18대 임금인 의종 24년(1170년) 문신의 극심한 전횡과
무인에 대한 차별을 견디다 못한 정중부, 이의방, 이고, 이의민 등 무인들이
주동이 돼 일으킨 군사 반란으로 역사에서는 무신정변 또는 정중부의 난 이라 하는데
이당시의 의종은 거제시 둔덕면 거림리 우두봉에 위치한 폐왕성(지방기념물 11호)에 피난 온 후
‘김보당의 난 으로 복위를 꾀하며 계림(현재의 경주시) 인근에까지 진출
이의민에게 살해되기까지 3년간 살았던 곳이다.
마을 앞쪽의 안치산 은 의종의 대비를 살게 한 대비장이 있어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산방마을과 산방 소류지
산방산에 오를수록 탐방로는 암반으로 되어 있으며 조망이 시원하rp 나온다.
둔덕면은 신라시대는 당시 거제의 명칭이었던 ‘상군’(裳郡)의 치소지가 있었고
고려시대는 기성현의 치소지 가 위치한 거제도의 중심지였으며
18대 고려의종이 정중부의 난을 피해 거제 둔덕기성(구:폐왕성)(사적 제509호)에
피난하여 왕이 3년간 둔덕에 거주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한국 연극계의 거목 동랑 유치진 선생과 생명파 시인인 청마 유치환 선생의 생가가
방하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마기념관은 2008년 4월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많은 관람객들이 왕래하고 있다.
바위 전망대
첫번째 만나는 전망대로 가는 곳은 테크계단이 있지만 이렇게 릿지등산도 할수 있다
암릉으로 되어 있는 곳을 오르면 산방마을과 방하마을 조망이 한결더 좋다.
산방산이 있는 거제시 둔덕면(屯德面)은 고려(高麗) 의종왕(毅宗王)이 상하(上下)에
호위군의 주둔지를 두었으므로 이름하였으며 넓은 들판에는 둔전(屯田)을 설치하여
식량을 생산 공급하였다고 전한다.
※ 둔전 : 고려시대 군사들의 식량을 생산하던 토지.
테크계단
산방산으로 가는 보현사 코스중 딱 하나뿐인 테크계단이다
계단길이도 길며 가파르다
일반적으로 계단길은 무릎 안좋은 산행자들에게는 한숨만 나오는 코스이며 체력소모도 많다
나무그늘이 없어 찌는 햇살이 머리위에 바로 앉았다
둔덕면의 조망
시원한 해풍을 맞으면서 수채화처럼 펼쳐진 둔덕면을 바라본다
청마기념관 청마유치환 선생의 생가가 발아래에 펼쳐져 있다.
둔덕면은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16年(757) 거제군(巨濟郡)이라 칭하다
고려(高麗) 성종(成宗) 2年(983) 진주목(晋州牧)에 속하고 동 14년(同14年:995)
산남도(山南道)의 기성현(岐城縣)이라 개칭(改稱)하여 거림리(巨林里)에 토성(土城)을 쌓고
현지(縣址)가 되었으며 현종(顯宗) 9年(1018) 거제현(巨濟縣)으로 개칭하였다.
의종(毅宗) 24年(1170) 8月 30日 정중부(鄭仲夫)가 숭문주의에 경인난을 일으켜
그 해 10月 2日 왕이 거제도(巨濟島)로 쫓겨와 거제현(巨濟縣)에 3년간 살면서
우두봉(牛頭峯) 중허리에 견내량을 내려보고 기성(岐城)을 쌓았으나
명종(明宗) 3年(1173) 8월에 동북면(東北面 경주:慶州) 병마사(兵馬使) 김보당(金甫當)이
왕의 복위를 획책하여 경주(慶州)에 나갔다가 이의민(李義旼)에 시해되자
거제 둔덕기성(巨濟 屯德岐城)(구:폐왕성)(사적 제509호)이라 부르며
1974年 2月 16日 지방기념물(地方紀念物) 제 11호(第11號)로 지정(指定)되었다.
부처굴
안내글에는 이곳은 부처굴 또는 삼신굴이라 부르고 있다
신라시대때 부터 이곳 굴밑에 절이 있었다 전해지며
원래 삼존 석조좌불이 있었으나 해방후 석가모니불의 머리가 훼손되고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은 도난당하고 없으며
지금은 간간히 찾는 신도와 박쥐만이 서식하고 있다 하고 적혀 있다.
어딜가던 야지에 있는 문화재가 훼손되고 도난당한곳이 많다
현재 부처굴 삼존석상
부처굴에서 시원한 바람이 흘러 나온다
더위에 지친 산행자를 잠시나마 식혀주는듯 하다
부처굴에는 예전 황금박쥐가 살았다는데 지금은 박쥐흔적도 안보였다.
경주 토함산·사천 봉명산 석굴과는 달리 산방산 부처굴은 서쪽을향해 있으며
그래서 해질 녘 석굴 안까지 석양빛이 들어온다고 한다.
안내표지목 정상0.1km
한참이나 걸었는데 정상은 아직 0.1km 전방에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보현사에서 정상까지는 1.25km 인데 걸은 시간은 아마 3km되는 구간 정도의 시간 같았다.
257봉을 넘어 편평한 능선길이 이어지지만 그것도 잠깐이며
북쪽을 바라보는 또 다른 전망바위를 만나는데
발아래 보현사와 정면의 산방산 정상부 암봉과 절벽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안부 갈림길에서는 직진이며 정상까지 줄곧 오르막길이다.
오색토
안내글에 보면 三峯(삼봉) 정상부의 분지에는 봄철 중국(中國)에서 날아오는 황사가
수억년 쌓여서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희고 검은 다섯색깔 흙층이 형성되었다 하며
왕새풀이 무성 했다
이곳은 천하 대명지로 알려져 보름달 밤에 암매장을 하면 그 후손은 흥하나
대한가뭄이 계속되었으니 마을 사람들이 올라가 그 암장묘를 발굴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런 명당터 이야기는 경남산청 황매산 모산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산방산 산정(山芳山 山頂)
산방산 산정은 암반으로 되어 있었다
섬의 산정은 이렇게 바다를 볼수있다는게 더 좋다
좌측이 거제 망산을 비롯한 가라산 노자산이 바다건너편에 조망된다.
유난히 전설 많은 산방산엔 고려 망국의 한(恨)을 품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고려 명망 이후 거제에 은둔해 살았고, 사후엔 두문동 서원에 배향된 正隱(정은)인 옥사온(玉斯溫)이다.
그동안 산방산 옥굴은 고려 후기(1271년) 거제현(巨濟縣) 관청과 관리, 관노 등
일부 백성들이 왜구(삼별초 포함)를 피해 진주와 거창 등지로 피난 가 살다가
세종 4년(1422년) 다시 거제로 환도(還島) 하기까지 잠시 행정구역을 옮겼을 때
혹은 임진왜란의 왜구를 피해 옥 씨 성을 가진 일가가 숨어 살았다는 전설만 있을 뿐
실존 인물이 살았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러다 최근까지 의령 옥 씨 중 일부(옥 씨 종친회 마산)가
산방산 옥굴의 주인공이 옥사온으로 믿고 참배했던 사실이 알려졌다.
특히 고려 멸망 후 옥사온이 거제에 은거하며 살아온 이야기는
의령 옥 씨 대동보(1999년 발행)와 의령군이 만든 ‘내고장 의령(1985년 발행)’ 인물 편에 자세히 수록돼 있어
그동안 전설로만 내려오던 산방산 옥굴의 실존 인물이라는 점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거제지역에서 옥 씨와 관련된 유일한 지명이 ‘옥굴’인 데다, 거제지역에 숨어 살았다는
기록이 남은 유일한 인물이 옥사온이기 때문이다.
산방산 정상(山芳山 頂上)507m
산방산 높이는507m이다 나의 해병대 기수와 같은 수치이라 정감이 더 좋았다.
산방산 산정아래는 옥굴이 있는데 옥굴은 등산객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동굴이다.
등산로를 따라 쉽게 만날 수 있는 삼신굴(부처굴), 무제터(무지개터), 오색토 등과 달리 깎아지는
절벽 중간에 위치해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사람은 찾기 어려워서다.
둔덕면 산방산(507M) 7부 능선에 위치한 이 굴을 찾으려면 산방마을 보현사 등산로를 따라
삼신굴에 도착해 맞은편 절벽(남동방향)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 사이에 가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옥굴에 들어가려면 절벽 위에 올라 로프 등 안전 장비를 채비해 아래로 2M 정도 내려가면 닿을 수 있으며
내부는 2평 정도로 자연동굴에 안쪽으로는 인위적으로 동굴을 파낸 흔적이 있다.
산방산 정상(山芳山 頂上)507m
산정산 산정부에는 암석으로 된 두개의 봉우리가 형제처럼 우뚝 솟아 사방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이들 암석은 능선을 따라 산중 복부까지 이어져 내려 오면서 군데군데 튀어나와 작은 바위 봉우리를 만들고 있다.
그외 아랫부분은 푸른 해송림으로 감싸고 있어
이 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산방산이 바로 거제의 명산임을 직감할 수 있다.
산정부 주변에는 철쭉, 산철쭉, 진달래 등 철쭉류가 많아 봄이면 철쭉꽃으로도 유명하다.
소백산맥(小白山脈)을 이어받아 높이 507.2m에 삼각점(三角点)이 있고
거제(巨濟) 오대명산(五大名山)의 하나로 거제봉산(巨濟封山)의 울창한 수림은 420여종이나 되고
봄철의 진달래와 가을철의 단풍은 꽃다운 산이라 산방산(山芳山)이라 부르며
꼭대기의 세개봉우리로 삼봉산(三峯山)이라고도 이름하며
임도(林道)를 개설하여 산방산(山芳山) 진달래 축제를 거행하고 있다.
산방산 산정(山芳山 山頂)에서 바라보는 풍경
가조도와 성포항에서 연결되어 있는 다리도 보인다.
거제도의 북단 사등면 성포리에서 북쪽으로 약 1㎞ 떨어진 진해만 해상에 있다.
면적은 5.78㎢이고, 해안선 길이는 20.3㎞이다. 거제시에서 칠천도 다음으로 큰 섬인데
2009년 7월에 섬의 남쪽과 거제도의 성포리를 연결하는 가조연륙교(길이 680m, 너비 13m)가 개통되었다.
거제도에 딸린 섬으로 거제도를 돕고 보좌한다는 뜻에서 가조도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러한 연유로 가좌도(加佐島)라고도 불린다. 옛날에는 가지매섬으로 불렸다고 한다.
섬은 중앙의 좁은 지협부에 의해 남북 두 개의 지역으로 구분된다.
섬의 북부 지역은 옥녀봉(332m)을 주봉으로 하는데, 원추형으로 생겨 원추화산과 착각하기 쉽다.
이곳에서 발원하는 소하천은 방사상으로 뻗어 있고, 해안 쪽에 형성된 완경사지에는 농경지와 취락이 자리하고 있다.
섬의 남부 지역은 해안선의 드나듦이 심하고, 남동쪽에는 두 개의 작은 만이 분포한다.
옥녀봉 정상에는 정자나무와 건들바위가 있는데
옥녀라는 선녀가 바다에서 목욕하고 올라와 구름치마를 입고 춤추며 놀던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다음산행지는 가조도 옥녀봉으로 정해야 겠다.
하산길 휴식
둔덕면 산방리는 본래 거제부읍지(巨濟府邑誌)에 영조(英祖) 45年(1769) 산방방(山芳坊)으로
고종(高宗) 32年(1895) 방하(芳下), 죽전리(竹田里)가 분리되었고 1915년 법정리가 되었으며
큰마을 대몰(大洞), 산방산(山芳山) 밑을 절골이라 부르며 방하리(芳下里)와 사이의 밭들에 새몰(新洞)이 생겼고
거제명산(巨濟名山) 산방산(山芳山)을 배경으로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산방산 보현사
산방산 보현사는 경남 거제시 둔덕면 산방산길197위치 하고 있다
같은 이름의 산과 사찰이 제주도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큰섬 그리고 두번째로 큰섬에 위치하고 있다
보현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서 산방산으로 산행하면 부처굴 옥굴 오색토 전망바위등
짧지만 산방산의 모든것을 볼수 있는듯 하다.
청마 유치환 선생의 시비(詩碑)와 동상
본관은 진주(晉州). 호는 청마(靑馬). 경상남도 통영 출신이며
유준수(柳焌秀)의 8남매 중 둘째 아들이며, 극작가 유치진(柳致眞)의 동생이다.
11세까지 외가에서 한문을 배웠고 1922년 통영보통학교 4년을 마치고, 일본 도요야마중학교[豊山中學校]에 입학하였다.
이 무렵 형 치진이 중심이 된 동인지 『토성(土聲)』에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가세가 기울어 4학년 때 귀국, 1926년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퇴폐적인 분위기에 불만을 품고 1년 만에 중퇴하였다.
당시 시단을 풍미하던 일본의 무정부주의자들과 정지용(鄭芝溶)의 시에 감동하여, 형 치진과 함께
회람잡지 『소제부(掃除夫)』를 만들어 시를 발표하였다.
1931년 『문예월간(文藝月刊)』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 뒤 잡다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1937년부산에서 문예동인지 『생리(生理)』를 주재하여 5집까지 간행하고
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를 발간하였다. 여기에 초기의 대표작인
「깃발」·「그리움」·「일월」 등 55편이 수록되었다. 1940년 가족을 거느리고 만주 연수현(煙首縣)으로 이주하여
농장 관리인 등에 종사하면서 5년여에 걸쳐 온갖 고생을 맛보고, 광복 직전에 귀국하였다.
이때 만주의 황량한 광야를 배경으로 한 허무 의식과 가열한 생의 의지를 쓴 시
「절도(絶島)」·「수(首)」·「절명지(絶命地)」 등이 제2시집 『생명의 서』에 수록되었다.
광복 후에는 청년문학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민족문학 운동을 전개하였고
6·25전쟁 중에는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의 일원으로 보병 3사단에 종군하기도 하였다.
『보병과 더불어』는 이 무렵의 시집이다. 1953년부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이 후에는 줄곧 교직으로 일관하였다. 안의중학교(安義中學校) 교장을 시작으로 하여
경주고등학교 등 여러 학교를 거쳐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교통사고로 작고하였다.
청마 유치환 선생의 생가
거제시 둔덕면 방하마을에 있으며 산방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청마가념관 마당에서 우측에 보면 유치환 선생 생가가 있다
돌담사이 싸리대문으로 들어서면 담 아래 화단 잔듸깔린 마당과
초가지붕 그리고 우물과 장독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예전 우리네 시골집 풍경이다
거제 산방산 풍경
저 멀리 돌산 두봉우리가 딸이랑 산행했던 산방산이다
이렇게 산행을 마무리 하면서 귀가 하던길에 촬영해보았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거제시.둔덕면 청마유치환 기념관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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