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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모후산(和順 母后山) 고려 공민왕 피난지 모후산 산정에 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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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모후산(和順 母后山) 고려 공민왕 피난지 모후산 산정에 서다

바다늑대FORCE 2020. 6. 7. 20:49

화순 모후산(和順 母后山) 고려 공민왕 피난지 모후산 산정에 서다

 

▲ 화순 모후산(和順 母后山)

    높이 : 918m

    위치 :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동복과 순천 주암 송광면에 걸쳐 있는 산.

 

▲ 나의 산행일 :

    2020년06월07일  일요일. 날씨 : 맑음

 

▲ 나의산행코스 :

    유마사 주차장→→집게봉 갈림길→→테크 탐방로→→용문재→→영산강 강우 관측소→→모후산

    →→중봉→→철철 바위→→계곡 삼거리 →→유마사→→유마사 주차장

    8.3km. 2시간 30분 소요.

 

▲ 화순 모후산(和順 母后山) 개요 :

모후산(母後山)은 전라남도 화순군과 순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919m의 산으로

나복산ㆍ모호산 이라고도 불리는 섬진 7 지맥의 한 봉우리로 주암댐의 담수와 더불어

삼면이 푸른 물줄기로 둘려 있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무등산ㆍ조계산ㆍ백아산과 동복호와 주암댐 및

득량만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본래 나복산(蘿蔔山)이라고 부르다가

고려 공민왕 10년인 1361년에 홍건적의 고려 침공이 있었을 때

공민왕 부부가 태후와 함께 피난해 산 것을 계기로 어머니의 품속 같은 산이라는 뜻에서

모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 선조 25년인 1592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동복 현감인 김성원이

노모를 구하기 위해 싸우다 죽었다 하여 모호산(母護山)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모후산 남쪽 계곡에는 당나라의 유마운이 창건했다는 대한불교 조계종 사찰 유마사가 있다.

산세가 험하고, 지리적으로 요충지이기 때문에

6·25 전쟁 당시 빨치산 전라남도 도당이 유마사에 은거하면서

모후산과 백아산을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지금도 당시에 파놓은 참호가 발견된다.

주변 관광지로 물염적벽ㆍ주암댐ㆍ고인돌공원ㆍ영롱대ㆍ백민미술관ㆍ오지호 화백 생가 및

기념 미술관ㆍ한천농악전수관ㆍ임대정ㆍ사평 폭포ㆍ사평 휴양림ㆍ조계산 도립공원 등이 있다.

 

▲ 화순 모후산(和順 母后山) 산행지도 :

 

▲ 화순 모후산(和順 母后山) 찾아가는 길:

  진주역→→남해고속도로 순천방향  →→호남고속도로 송광사 TG→→벌교 방향→→고인돌 보성방향

  →→모후로 화순 방향→→유마로→→ 유마사 주차장

129.3km  승용차 1시간 40분 소요.

 

→→→→→2020년 06월 07일 일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산을 찾아 오늘도 길을 나서본다.

일요일 아침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모후산에 피난했다는 곳

화순 모후산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모후산 산아래는 천년고찰 유마사도 둘러볼 겸 산에 가면 사찰이 있고

사찰에 가면 산이 있다 그래서 사찰 기행도 함께한다.

유마사(維摩寺) 초석

모후산 들머리는 유마사에서부터 시작한다.

유마사는 화순군 남면 유마리 321번지 모후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고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승보종찰 송광사의 말사이다.

광주 벌교 간 도로에서 이정표를 따라 약 6km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위치하고 있는 천녀 고찰이라 할 수 있다.

 

모후산 등산안내도와 들머리

 

토요일 밤에는 밤새 소나기 한줄기 퍼부었지만 오늘 햇살은 한여름처럼

햇살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인지 숲이 주는 싱그러움이 너무 좋다

모후산 높이 919m이라고 한다.

모후산 주변에는 운월산·밤실산 등이 있으며

산정은 평탄하나 사방이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북동·북서 사면에서는 보성강·동복천의 지류가 각각 발원하며

울창한 숲과 계곡의 푸른 물이 절경을 이루고 있고 곡천 유원지·사평 폭포 등의

명승지는 관광이나 등반의 좋은 장소가 되고 있다.

주변에 무등산 도립공원·유마사·화순 물염적벽 등의 명승지가 있고

특산물로는 고사리·느타리버섯·토종꿀 등이 있다고 전한다.

 

첫 번째 만나는 안내 표지목 정상 4.0km

용문재를 거쳐서 정상까지 탐방길을 잡았다

들머리 구간이 임도 같아 보이는데 풀이 무성하였다

모후산은 고려 공민왕 피난처라고 하는데

공민왕은 고려 31대 왕으로써 공민왕은 충숙왕의 차남이자 공원 왕후 홍 씨 소생으로

충혜왕의 동복 아우이기도 하다.

초명은 기(祺), 이름은 전이며 몽골명은 빠 이앤티 무르이다.

1330년에 태어난 공민왕은 전례에 따라 원나라 연경에서 성장하였다.

충정왕이 폐위되자 1351년 12월에 귀국하여 왕위에 올랐다. 이때 그의 나이 22세였다 한다.

 

집게봉 갈림길 용문재 1.8km 집게봉 1.8km

여기서부터는 계곡의 물소리가 세차게 들려왔다

한여름 더위처럼 햇살이 강하게 내리는 지금 계곡 물소리는 시원한 에어컨처럼 느껴졌다

모후산 계곡은 수량도 많고 깊어 여름철 피서지로 좋다고 한다

모후산 가는 길에는 주암호가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며

모후산은 조릿대가 많아 겨울철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있다고 하며

특히 가을 경치가 좋은 모후산이라고 한다.

 

용문재 방향의 탐방로 초입 구간

수목은 초록으로 싱그러움을 더했고 어젯밤에 내린 비로 인하여

탐방로는 촉촉하지만 잔돌이 많아 걷기엔 조금 불편하였다

초록숲 사이로 걸어가면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 가끔 들여오는 바람소리가 벗이 된다

공민왕의 피난처 모후산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왔다고 한다.

홍건의 난(紅巾之亂) 또는 홍건적의 난(紅巾賊之亂)은 원 말기에 한산동(韓山童)을 수장으로

뭉친 백련 교도 가 중심이 되어 봉기한 한족의 농민 반란군으로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둘렀기 때문에 홍건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홍건적은 홍적(紅賊)·홍두적(紅豆賊) 등으로도 불렸다.

 

피나물(여름 매미꽃)

모후산 탐방로 주변엔 피나물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산속에서 군락을 보는 게 좋은 것처럼 

정원이나 화단에 심을 때는 여러 포기를 함께 모아 심는 것이 좋다. 

분화용이나 분경용 소재로도 쓰이며

어린 순을 나물로도 이용하지만 유독성이므로 독성을 제거한 뒤 이용해야 한다.

피나물, 매미꽃의 근(根)을 荷靑花根(하청화근)이라 하며 약용한다.

연중 수시로 채취해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햇볕에 말린다.

뿌리에는 0.1%의 alkaloid가 함유되어 있고 지상 부분에는 0.6%의 alkaloid가 함유되어 있고 

 祛風濕(거풍습), 舒筋(서근), 活絡(활락), 散瘀(산어), 消腫(소종)

止痛(지통), 止血(지혈)의 효능이 있으며 류머티성 관절염, 勞傷(노상), 타박상을 치료한다.

하루 3-9g을 달여서 복용한다. 또는 술에 담가 복용한다고 한다.

 

태크 탐방로에서 잠시 휴식

시원한 수목 아래서 잠시 휴식을 하면서 계곡 물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모후산(母后山) 모후산은 이름 그대로 임금님의 어머니 산이다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를 잃은 뒤로 국정을 신돈에게 맡기며 새 정치를 표방했던

공민왕은 신돈의 실각과 함께 마치 딴 사람처럼 변해갔다고 전한다

말년에 후사 문제로 갖가지 변태적인 기행을 보이던 공민왕은

시해당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마치고 말았다.

본래 여색을 좋아하지 않았던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가 살아 있을 때에도

왕비의 침소에 가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노국대장공주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지 못한 공민왕은 왕비가 죽은 뒤로 계비를 들이기도 하고

혹은 신돈과 함께 불공을 드리며 축원하기도 했으나 후사를 얻지 못했다.

그 사이 공민왕은 신돈의 집에 자주 드나들다 신돈의 비첩인 반야라는 미인을 보고 총애하였다.

공민왕의 사랑을 받은 반야는 1365년 아들을 낳았는데 이가 공민왕을 이어 왕위에 오른 우왕이다.

우왕의 어릴 적 이름은 모니노였는데 그를 몹시 사랑했던

공민왕은 자주 장난감을 갖다 주며 부정을 나타냈다고 전하고 있다.

 

대나무 꽃

모후산 용문재로 가는 탐방로 옆에 대나무 군락지 대나무는 모두 꽃을 피웠다

유년기 시설 어른들 말씀엔 대나무가 꽃이 피면 죽는다고 했는데.....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는 시구는 대꽃을 보기까지 백 년이 걸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꼭 백 년에 한 번 피는 건 아니고 빠른 것은 3~4년, 보통은 60년에서

길게는 120년 만에 피는 것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피든 꽃이 피면 말라죽는다는 점은 상통한다.

대나무는 죽기 전에 꽃을 피우며 대나무 하나가 꽃을 피우면 모든 대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우고

일제히 죽음에 든다. 이처럼 꽃이 핀 후에 말라죽는 현상을 개화병(開花病)이라고 하는데

‘꽃이 피는 병’이라니 세상에 이런 말도 있구나 싶다.

대나무와 조릿대류는 대부분 이처럼 꽃이 피는 병에 걸려 죽는다고 하며

그리고 꽃이 피는 병이란, 한편으로 영원히 살고 싶은 열망에서 생긴 병이라고 한다

대나무는 대개 군락을 형성하는데 많은 대나무가 한 곳에서 오랫동안 번식하면

땅속의 영양분이 부족해지는데 게다가 죽순이 자랄 땐 하루에 1미터도 넘게 자라니

그만큼 더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고 결국 땅속의 영양분이 전부 고갈되는 순간이 오고

그래서 더 이상 죽순으로 번식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

대나무는 꽃을 피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한다

죽순 대신 씨앗으로 번식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꽃을 피우고 떠나는 것이라고 한다.

 

용문재 근처 탐방로

유유자적 걷기 편한 탐방로 같아 보인다 모후산 탐방로는 대부분 가파르지만

이렇게 어제 내린 비 탓에 촉촉한 질지도 않고 걸어도 먼지도 일지 않는 길 참 좋다

어느새 겨울인가 하더니 새싹이 트고 눈 깜짝할 사이에 더운 여름이 왔다

이른 탐방로를 걸어니 정말 어머니 품속 같은 산이다.

본래 라복산(蘿蔔山)이라고 부르다가  고려 공민왕 10년인 1361년에

홍건적의 고려 침공이 있었을 때 공민왕 부부가 태후와 함께 피난해 산 것을

계기로 모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 선조 25년인 1592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동복 현감인 김성원이

노모를 구하기 위해 싸우다 죽었다 하여 모호산(母護山)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 내려 온다.

용문재

모후산 정상은  용문재 우측 길이다

여기서부터는 정상 가지 모노레일 따라가면 된다

모노레일은 화순 강우레이더 기지까지 설치되어 있다

레이더 기지는 비가 형성되는 지상 4,5km 아래, 반경 100km 이내 지역을 

1k㎡단위로 분할해 비의 양을 관측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전남지역 전역의 강우량을 정확히 예측, 3시간 전에

영산강·섬진강·탐진강·보성강의 홍수 조기 예보·경보 발령이 가능해진다고 전한다.

모후산 정상까지 모노레일

쇳덩이 레일로 갈라져 있어 아쉽기만 한 모후산이다

화순군은 국책사업인 모후산 강우레이더 관측소 건설과 함께

일반인의 관광용을 겸한다는 명목으로 수백억의 사업비를 투입해 대형 모노레일을 건설했다 한다

현재는 관측소 직원들의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모후산은 고려인삼 시배지라고 하며

고려인삼 시배지로 꼽는 이유는 국역 성호사설에 근거한다.

중국 요동인들은 산삼을 산나복이라고 하는데 모후산의 원래 이름이 나복산이었기 때문에

박봉우 강원대 교수는 ‘중 경지’ ‘소호 당집’의 기록을 근거로

이 지역을 고려인삼 시배지로 주장하고 있다 한다.

흰 씀바귀

모노레일 옆으로 산길이 있는데 산길 주변에는 야생화 꽃밭을 이루고 있다

흰 씀바귀가 지천에 피어 산행자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야에서 자란다. 

원줄기는 높이 25~50cm 정도로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모여 나는 근생엽은 길이 6~12cm 정도의 도피침형으로 밑부분의 가장자리에는

치아 상의 잔 톱니와 결각이 있다

씀바귀 효능에는 간경화, 건위, 고미, 구내염, 만성기관지염, 이질

진정, 청열 양혈, 해독작용에 좋다고 한다.

둥굴레

모후산은 둥굴레 밭이라 해도 관언은 아니듯 하다 지천에 둥굴레가 피어 있었다

둥굴레는 유해물질과 중금속 배출에도  효과를 보여 자주 마셔주면 폐질환 예방에도 

둘째, 혈당을 낮추어 당뇨병 개선에 도움을 주며

혈액순환을 개선시켜주는  효능이 있어 손발이 찬 사람이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들에게 좋다고 한다

둥굴레는 쓴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복에 진하게
마실 경우 위가 쓰린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몸이 받지 않아 설사를 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유마사의 조망

산정에 다가왔을 때부터 발아래 조망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모후산 남쪽 계곡에는 당나라의  유마운이 창건했다는 조계종 사찰  유마사이다

6.25 전쟁 중 조선노동당 전남도당이 유마사에 숨어들어 백아산과 연계하여 활동한 일이 있다.

공산주의자들의 소굴이라는 이유로 당시의 유마사 건물은 소각되었다.

새로 지은 유마사를 기점으로 산행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적이 드물었으나 현재는 등산로가 잘 개설되어 있다.

폭설이나 기상이 안 좋을 때는 모노레일에 올라 걸어도 될듯하다

하지만 고압 주의 접근금지라고 안내문이 있었다.

모후산 주변 풍경을 바라보다

산정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파도처럼 밀려오는듯한 봉우리들 뿐이다.

모후산은 고려 공민왕 때에 홍건적 의 개경 침공으로 피신을 해야 했던 공민왕 은

왕의 처가 쪽인 화순 동복 오 씨 분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피신처를 찾던 중

화순 동복 사람 인 "김도"의 안내로 지금 의 순천시 송광면 삼청리 모후산 자락

왕대마을 쪽에 안착하게 된다.

아들인 공민왕 은 경상도 안동으로 가게 되고, 어머니와 처가 쪽 사람들이 이곳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머무르면서, 모후산에서 자생하는 산삼을 먹으며 기력을 회복하게 된다.

그 후 홍건적 난 이 어느 정도 진압된 이후 어머니를 모시러 온 공민왕 이

이곳 순천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도착하여 기이하고 우람한 산세를 보고

곁에 있던 "김도"에게 물었다. 이산 이 무슨 산이냐?라고 물으니

 "김도"는 예 라복산이라 하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다시 왕이 말하기를 과연 "덕여모후"로다 라고 말하였다.

산의 크나큰 덕이 어머니 같다 란 뜻의 이 말 은

순천 역사 중 송광면 삼청리 에 전해 내려오는 오랜 전설로 전해지고 있으며

왕이 머무른 장소 라 하여 마을 이름도 "왕대" 라 칭하였고

왕족 이 피신한 임시수도 라 하여 그 아랫마을 이름 은 "유경"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모후산 정상에 있는 강우레이더 기지

레이더 기지는 총 24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모후산 정상(해발 919m) 부근에

건축면적 436㎡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지며 건축연면적은 1144㎡이다.

기지 건물 옥상엔 지름 20m짜리 공 모양의 레이더 돔이 설치되어 있다.

도마치~용문재(해발 677m)~모후산 정상까지 3.14 km에는 모노레일 깔여 있고

레이더 기지는 비가 형성되는 지상 4,5km 아래, 반경 100km 이내 지역을

1k㎡단위로 분할해 비의 양을 관측한다. 

이에 따라 전남지역 전역의 강우량을 정확히 예측, 3시간 전에 

영산강·섬진강·탐진강·보성강의 홍수 조기 예보·경보 발령을 한다고 한다.

땀으로 얼굴을 씻다

모후산 산정에 가까워지는  탐방구간은 뜨거운 햇살이 바로 머리 위에 내린다

선크림이 땀에 흘러내려 눈을 따갑게 만들었다

잠시 모자를 벗고서 땀을 씻어 본다.

모후산이 있는 화순지역은 전라남도 중앙부에 있는 군으로서

화순읍이 광주광역시의 베드타운 성격을 지니게 되면서

광주시의 위성도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군 전체 면적의 74%를 임야가 차지하고 있고

이서면 일대는 무등산 국립공원에 속하며, 북면의 백아산은 약초로 유명하다. 

모후산은 고려인삼의 시원지로 알려져 있으며

 관광지로는 운주사·쌍봉사 등과 화순온천·화순적벽·세량지 등이 있다.

운주사는 딸아이 업고 다닐 때 가본 적 있는데 지금 딸아이는 스무 살이 넘었다.

 

모후산 산정을 바라보다

모호산 산정을 중심으로 모노레일 길과 강우 레이다 관측기지가 산 주인 인양 버티고 있는 듯하다

모노레일이 강우 레이더 관측소 기지에 필요물품을 운반하는 용도인 줄 알았는데

처음 설치 당시에는 관광용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지금은 관측소 직원 출퇴근용이라 하니

좀 의아스럽기만 하였다 역사적 의미도 있는 모후산 산정에서 철구조물이 좀 그렇긴 하다

화순 도마재에서부터 모후산 정상까지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모후산 산정(母后山 山頂) 918m

고려 공민원 피난지였던 모후산 산정에 올랐다

모후산 산정은 평평하여 헬리포트가 있었다 산정에 올라 산악회끼리 족구 한판 하여도 무난할 넓이였다

고려 공민왕(恭愍王)은 홍건적 침입을 피해 모후산에서 1년 남짓 머물렀다고 한다

공민왕은 원나라 배척 정책을 통해 고려 말 자주적인 개혁 정치를 표방한 왕이다. 

당시 고려는 원의 부마국으로서 왕은 원나라 공주와 결혼해야 했고

원에 조공을 하고 있었다. 공민왕 역시 대군 시절 원나라 위왕(魏王)의 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와 혼인했고, 원이 선왕을 폐위시킨 덕에 왕위에 올랐다. 

그럼에도 그는 고려 조정에서 몽골풍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14세기 후반 원나라가 쇠퇴하고 명나라의 세력이 커지던 원-명 교체기였기에 가능했다 전한다.

 

모후산 산정(母后山 山頂) 918m

한여름 같이 무덥던 산길을 걸어 모후산 산정에 올라 목마름을 해소해 본다

산에 오르면 늘 이렇게 1.8ℓ 이온음료를 가지고 다닌다.

모후산으로 피난 온 공민왕은 공민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원나라를 배척하는 정책을 썼다.

1352년 변발, 호복(胡服) 같은 몽골 풍속을 금지하는 왕명을 발표했다.

인사상 근본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키던 정방을 폐지하고

귀족들이 갈취한 토지를 원래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정책도 시행했다.

1356년에는 몽골의 연호와 관제를 문종 이전의 고려 고유 것으로 복귀시켰다.

원나라 황실과 인척 관계라는 점을 악용해 권세를 부리던 기철(奇轍) 일파를 숙청한 것도

배원(排元) 정책의 일환이었다. 공녀였던 누이가 원나라 순제(順帝)의 눈에 들어 제2황후가 된 후부터

기철은 왕족처럼 행동하며 좌중의 비난을 샀고, 특히 1353년(공민왕 2) 기황후가 낳은 아들이

원나라의 황태자에 책봉된 다음부터는 왕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지 않기도 했다.

공민왕은 원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을 알면서도 기철 일파를 제거했다.

1356년 공민왕은 여세를 몰아 100년 넘게 존속된

쌍성 총 관부(雙城摠管府)를 폐지하고 원에게 빼앗긴 영토를 회복했다.

 

모후산 산정에서 주암호를 바라보다

모후산 정상 표지석 뒷면에는 모후산 유래에 대하여 적어 놓았다

유래를 읽어 보면

이 산의 원명은 나복산(蘿葍山)이었으나 一三六一年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 난을 피해

 이 산에 머물다 떠나시면서 어머니 품 안과 같이 따듯한 산이라 하여

母后山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고려인삼을 우리나라 최초로 재배한 곳이다.

二ㅇㅇ七年十二月 七日이라고 새겨져 있다

순천 주암호는 유역면적 1,010㎢의 주암호는 순천, 보성, 화순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으며

총 저수량 4백만 톤으로 순천시 주암면 대광리에 높이 57m, 길이 330m로 축조된

주암 본댐의 담수로 생긴 호수로 광주, 나주, 목포, 화순 등

전남 서부권에 1일 6천 톤의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모후산 산정(母后山 山頂) 918m

모후산 산정에 있는 안내표지목과 예전 정상 표지석이다

여기서 집게봉 방향으로 하산하여 유마사를 참배할 코스로 정했다.

모후산은 고려 인삼 시배지라고 한다.

모후산은 고려(개성) 인삼의 시배지로 유명하며 정확한 위치는 모후산 정상에서

북릉 쪽에 위치해 있으며 이는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이 쓴 '증보문헌비고'와

개성부 유수를 지낸 김이재의 '중경지(中京志)'에 표기돼 있고

몇 년 전 이곳에선 120년 된 2억 5000만 원 상당의 천종산삼 8 뿌리가 발견됐다고 한다.
또한 모후산 하면 '동복 삼복(三福)'을 빼놓을 수 없고 고려 공민왕 때부터 조선 후기까지

궁중에 진상돼 당시 동복 현감의 골칫거리였다고 전해오며

복청(福淸·모후산 토종꿀) 복삼 (福蔘·천종산삼)

복천어(福川魚·동복천의 민물고기)가 바로 그것이라 한다.

 

순천 주암호의 조망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듯한 주암호가 흐릿하게 다가왔다.

1984~1992년까지 8년간에 걸쳐 완성되어 7억 7만 톤의 물을 담수하고 있는 

주암. 상사호는 광주. 전남권의 용수 조절 기능 외에 145.5㎞의 호반도로를 끼고 있으며

호남고속도로를 정점으로 국도 15, 18, 27호선이 송광사와 고인돌 공원을 연결하여

주암호를 싸고 돌며, 지방도 818, 857호선으로 이어지는 낙안읍성 민속마을과 

상사호는 또다른 아름다움을 추가하며 조계산과 모후산 자락 아래 펼쳐진 여유롭고 

풍만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안겨주는 순천시의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상사호는 유역면적 135㎢의 상사호는 승주읍과 상사면에 걸쳐 있으며

총 저수량 2백만 톤으로 상사면 용계리에 높이 106m, 길이 575m로

축조된 상사조절지댐이 담수로 생긴 호수로 순천, 여수, 광양 등

전남 동부권에 1일 3천 톤의 생활용수와 2천 톤의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연간 50백만㎾의 발전능력을 갖추고 있다.

화순 모후산 하산길은 중봉(804m)과 집게봉(766m)을 바라보며 하산해본다

 

집게봉 철철바위 삼거리(중봉804m)

모후산은 고려 공민왕 피난지 뿐만 아니라 고려인삼 시배지라고도 하는데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화순군 동복면 모후산 일대가 본격적인 재배 인삼의 발상지이며

이 동복삼(同福蔘)이 개성 상인들에 의해 도입돼

개성이 드디어 인삼 재배의 중심지가 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에 화순군은 고려인삼 시배지 복원과 산양삼 특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산삼 씨를 산에 파종하거나 1~2년 된 것을 옮겨 심어 자연 상태에서 기른

산양삼은 약효가 일반 재배 인삼보다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후산(해발 919m) 자락에는 우량종 복원과 씨앗 생산을 위해 10ha의 채종포 단지를 만들었다 한다.

 

일본 조팝나무꽃

모후산 산정에도 일본 조팝나무가 꽃을 예쁘게 피웠다

일본 원산으로 전국 각지에 관상용으로 식재하는 낙엽 활엽 떨기나무다. 

줄기는 모여 나고 높이 1m에 달하며 밑부분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고 피침형 또는 난형으로 끝은 뾰족하고 밑은 둥글거나 뾰족하며 

가장자리는 불규칙하고 예리한 톱니 또는 결각상 톱니가 있다. 

꽃은 6월에 연한 분홍색, 드물게 흰색으로 피며 가지 끝에 우산모양꽃차례에 달린다.

 

철철바위 방향 탐방로 구간

경사가 심하여 안전줄을 설치 해 놓았다 하지만 자연을 배려함이 부족한듯 보였다

간밤에 우천 탓에 하산길이 조심 스러웠다

모후산 하산길에는 단풍나무가 많이 보여 가을철엔 단풍이 아름다울득 보였다

모후산에는 고로쇠도 유명하다고 한다.

역사가 깃든 모후산 공민왕 이야기가 있는 모후산은 자연배려한 시설이 부족해 보였다

산정까지 이어진 모노레일길 그리고 산행 안전줄이 참나무에 그냥 묶어 놓았다

모후산은 공민왕 피난지 이며 공님왕은 원나라의 내정 간섭을 격파하고

정치 개혁을 실현한 군주인 동시에 그림과 글씨에 뛰어난 화가였다. 

그중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가 특히 유명하다. 천산대렵도는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말을 타고 사냥하는 인물들을 생생한 필치로 그려낸 수작이다. 

이 밖에도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진(眞)〉, 〈석가출산상(釋迦出山像)〉

〈아방궁도(阿房宮圖)〉, 〈현릉산수도(玄陵山水圖)〉 등의 작품을 남겼다.

 

철철바위의 폭포수

간밤에 내린 우천 탓이 수량이 풍부하여 물소리가 요란하다

산행길에 지친 땀방울 그리고 몸을 폭포수에 담그고 싶었다

모후산은 역사의 산이다 고려 공민왕 피난처 그리고 6.25 전쟁당시

빨지산 남부군의 근거지 이기다 하다

남부군의 정식 호칭은 '조선인민유격대 독립 제4지대'이다. 

남한 최초의 조직적인 좌익 빨치산 부대였고

특히 남한 빨치산의 전설적인 총수 이현상의 직속부대였다. 

기록들에 의하면 1949년 이래 소백산·지리산 지구 공비토벌전에서의 

교전횟수는 1만 717회, 전몰군경의 수는 6,333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고목 단풍나무

모후산 계곡옆에 있는 고목의 단풍나무이다

가을날 계곡 물소리와 울긋불긋 단풍이 피면 보지 않아도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진다.

모후산에는 고로쇠도 많이 생산되며 고롷쇠는 장성군 백암산, 광양군 백운산

구례군 지리산 등 큰 산 자락에 주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화순군에서는 남면 소재 모후산에 고로쇠나무가 다수 식생하고 있으며

백아산에서도 식생하고 있다.

고로쇠 나무는 삼국 시대부터 지리산 일대에서 주민들이 하늘과 산에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냈는데

이때 고로쇠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올렸다고 한다.

통일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이른 봄에 백운산에서 도를 닦다가 무릎이 떨어지지 않아

고로쇠나무를 잡고 일어나다가 부러진 나무에서 떨어진 물을 먹고 무릎이 펴졌다는 설이 있다.

 

유마사로 하산

산행의 끝이 보였다 유마사 까지는 0.2km이다

사찰 이름을 유마사라 부르기까지는 유마운과 보안의 수행 실천을 담은 이야기로 시작하여

스님으로서 불법을 닦기보다 보안에게 빠져 사랑을 탐하던

부전 스님에게 깨달음을 주는 유래 따라  유마사로 하산한다.

모후산 산행한바 산정은 평편하고 산길은 가파르고 산정에서 바라보는

전남의 대표적 산봉우리가 펼쳐져 있어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느낌이다.

 

유마사 주차장 인근에 있는 산행안내도

고려 공민왕 피난처이며 고려인삼 시배지인 모후산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순천시 화순군 유마사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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