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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늑대 FORCE
의령 신덕산(宜寧 新德山).깨진바위 전설이 있는 의령 신덕산을 걷다 본문
의령 신덕산(宜寧 新德山). 깨진 바위 전설이 있는 의령 신덕산을 걷다.
▲ 의령 신덕산(宜寧 神德山)
높이 : 582m
위치 :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에 걸쳐 있는 산.
▲ 나의 산행일 : 2020년 05월27일 수요일. 날씨 : 맑음
▲ 나의 산행코스 :
수도사 부도 →→깨진바위→→목계단→→전망대의자→→이목마을 갈림길→→신덕산 정상
(원점회귀) 3.4km . 1시간 12분 소요
▲ 신덕산 개요 :
662년 신라시대 문무왕 2년에 고승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는 수도사가 위치하고 있는
근교산(近郊山)으로서
전해지는 말로는 절의 뒷산인 신덕산에 흡사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가 있어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병풍바위라 하는데 당시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백여명의 불제자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고 하며
이 때문에 절의 이름을 수도사(修道寺)로 부르게었다고 하며 또한 신덕산 중턱에
어느 날 석공이 절을 지을 기둥 받침으로 쓸 바위를 쪼개는 순간
바위속에서 흰 학 새 마리가 나와 멀리 날아가 한 마리는 양산 통도사 자리 하나 마리는
합천 해인사 자리에 한 마리는 신덕산 수도사 자리에 앉아 사찰이 창건되었다는 설화가 있는 산이다.
▲ 신덕산 등산지도
▲의령 신덕산 찾아가는 길
진주역→→남해고속도로 군북 ic→의합대로 적포 방향→→소상로 신촌방향→→덕암로
→→수도사 주차장
44km 승용차 40분 소요.
→→→→→2020년 05월 27일 수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산을 찾아 오늘도 길을 나서본다
의령 관할에 있는 정상 표지석이 존재하는 산은 모두 다 등산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수도사 방문 후 수도사 뒷산이 신덕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출근길 조금 일찍 나서서
휑하니 신덕산 원점회귀 산행을 해본다.
신덕산 들머리에 있는 수도사 부도(浮屠)
수도사(修道寺)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신덕산 기슭에 모두 8기의 부도 군이 있으며
이 부도를 미루어 옛날에는 수도사가 절의 규모가 제법 컷을 것이라 생각 한다
부도군은 1997년 12월 31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55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에서 부도전 주변을 말끔하게 제초를 하고 정리하여 깨끗하다
잠시 예를 갇추어 삼배(三拜)를 올려본다
신덕산 들머리에 있는 수도사 부도(浮屠)
부두(浮頭)·포도(蒲圖)·불도(佛圖)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는데
원래는 불타(佛陀)와 같이 붓다(Buddha)를 번역한 것이라 하고 또는
솔도파(率屠婆, stupa), 즉 탑파(塔婆)의 전음(轉音)이라고도 한다.
어원으로 본다면 불타가 곧 부도이므로 외형적으로 나타난 불상이나 불탑이 바로 부도이며
더 나아가 승려들까지도 부도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 묘탑, 즉 부도라는 용어로 승려의 사리탑을 가리키는 실례는 신라 하대부터 보이고 있다.
872년(경문왕 12)에 건립된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비(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碑)의 비문 중에
기석부도지지(起石浮屠之地)라는 구절은 승려의 묘탑이 곧 부도라고 일컬어지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묘탑, 즉 부도를 세우는 것은 불교식 장례법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불교가 전래된 때부터
묘탑의 건립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4세기 후반이지만
연대가 그때까지 올라가는 묘탑은 문헌상으로도 볼 수 없다.
다만 627∼649년경에 원광법사(圓光法師)의 부도를 세웠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이 시기를 부도 건립의 시초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신덕산 들머리 안내표지목
수도사에서 신덕산 가는 들머리 안내표지목이며 정상까지 거리는 1.7km라고 안내 되어 있다
그래서 출근길에 조금 일찍 집에서 나서서 신덕산 정상 횡하니 등산하고서 출근 하고자
오후 느즈막에 산행길이지만 햇살이 떠거워 여름날씨 같았다
5월 말 산야는 초록으로 물들어 신선함이 더하고 풀냄세가 향긋할 뿐이다
산에 오르기도 전에 이마엔 벌서 땀이 맺힌다.
신덕산 초입구간
산행자 흔적은 없어도 등산로는 잘 정비 되어 있었다
어딜가나 목계단은 등장은 하고 울창한 참나무 숲사이로 미풍이 불어와
시원하게 가슴으로 안아본다
산새들이 지저기는 소리와 뻐국이 뻐꾹뻐꾹 정겹기만 하다.
신덕산이란 근교산 등산지도도 없었다
하지만 의령군에서는 이렇게 등산로를 잘 정비 놓은 탓에 산행길이 편안하다
산행자가 많이 찾지 않는 근교산은 초목이 우거져서 정글도를 이용해
숲을 헤쳐 나가야 하는곳이 드러 있지만 신덕산은 마치 고속도로와 같은 느낌이다
목계단과 솔숲
오월의 막바지엔 햇살이 한여름 같아 이마엔 땀이 물흐르듯 하고
가끔 불어오는 미풍에 솔향기를 담은 바람은 미세먼지에 찌든 폐를 깨끗이 씻어주는듯 하다
목계단엔 솔잎 깔비가 수북하게 쌓여있고 여기저기 솔방울도 산행자의 구경꺼리이다
어디에 앉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뻐국새 소리는 산행 내내 귓가에 들려온다
뻐국새 소리는 많이도 들어 보았지만 직접본건 없고 TV나 그림에서만 보았다
왜 뻐국새는 자기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을까
남의 둥지에 알을 까서 미안해서 그런걸까 산행내내 뻐꾹 뻐꾹~~~!
깨진 바위의 전설
신덕산 깨진바위 전설의 주인공인 깨진바위 이다
사찰(寺刹)건축을 위해 석공이 바위를 쪼갠듯한 모습의 바윗돌이다
마치 정과 지랫대 쇠망치를 이용하여 바위를 쪼갠듯 한 모습이다
이렇게 산에 오르다 보면 산에 얽힌 전설이나 이야기들이 많지만
사찰건축을 위해 바윗돌에 관한 이야기는 드물다
보통 여인의 한이 서린 바윗돌 님을기다리다 돌이된 바위돌 바윗돌에서
몸을 던진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석공 이야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본다
깨진 바위의 전설
안내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마을에서 신덕산을 오르다 보면 깨진바위를 만날수 있는데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어느 날 석공이 절을 지을때 기둥 받침으로 쓸 바위를 쪼개는 순간
바위속에서 새하얀 학 세마리가 나와 멀리 날아 갔는데 한 마리는 합천으로
또 다른 한마리는 양산으로 마지막 한마리는 신덕산 중턱으로 날아 갔다고 한다.
합천에 학이 날아가 앉은 자리에 해인사가 창건 되었고, 양산으로 날아간 앉은 자리는 통도사가
창건되었고, 신덕산 중턱에 학이 날아간 자리에 수도사가 창건 되었다는 설화이다.
옛부터 신덕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깨진 바위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장수와 행복,풍요를 빌어
큰복을 받았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이목마을 갈림길 안내표지목 정상0.9km
신덕산 산행길은 대부분 가파른 경사구간이 많아
사선형(蛇線形)으로 등산로가 만들어 져 있었다
식생을 보면 산아래는 참나무가 많았고 중턱 부터
정상부분에는 소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부더러운 육산의 형태이며 중간중간 크고작은 바윗돌이 있었다
가까운 마을사람들이라면 산책삼아 오를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고
수도사 신도들이라면 수행삼아 신덕산을 오르면 좋을듯한 코스이다.
조망 의자
신덕산 정상 가까이에는 이렇게 밴치를 설치해 놓았다
산행자들은 시원하게 앉아서 목마름도 축여 가면서 휴식도 할수 있고
산아래 펼쳐진 용덕면 일때 마을도 구경할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그다지 이용자가 많지 않을듯 싶다
잠시 휴식을 하면서 들여오는 새소리와 풀내음까지 맡아 본다
의령군 용덕면의 조망
용덕면 이목마을 유래를 보면
옛 행정구역상으로는 田太里, 그 뒤에는 또 德巖面에 속했던 「배목촌」이라고 한다.
덕암골의 맨안쪽 마을로서 큰산 등성이를 사이에 두고 가례와 유곡땅을 접하고 있고
상노인들은 「덕암골 배목촌」이란 말을 그냥 쓰고 있다 한다.
「절티재」밑 번덕에 아주 큰 돌배나무가 있었고 그 곳이 원래 마을터였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생 돌배나무(산돌배나무)가 마을의 상징이 되었고 또한 촌명이된 것이다.
배(梨)와 木에 村의 합성어인 셈이다. 마을 뒤로 높은 재가 있고 논밭길도 멀었을 뿐 아니라
화적떼가 자주 출몰해 괴롭혀 지금의 마을터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옛마을 자리에는 농막 한채만 있을 뿐이고 초목이 우거져 있다.
고개먼당에 큰길이 있어서 「절티재」인데 그 재를 넘으면 능인상촌(지금의 유곡상촌)에 닿고
아랫등을 넘으면 갑을양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동남쪽 「질매재(길마재)」를 넘으면 상용소로 통하고 그아래 「옹구짐이재」를 넘으면
하용소「옹구짐이」「군무덤이」마을이다.
「배목촌」옛 마을터로 가자면 신통한 돌다리가 있는데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배목촌에 살던 어느 노파가 저아래 개울에서 다듬이돌로 쓸만한 큰돌을 이고 올라가는데
난데없이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샛도랑을 건너야 하지만 워낙 물이 세어 도저히 건널 수 없었다.
생각 끝에 이고 온 그 돌로 다리를 놓았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크나큰 적선이었으니 사람들은 「할매독다리」라 부르게 되었다.
그 돌다리 밑에서 쳐다보면 할머니 머리가 닿았던 부분이
옴방하게 확이 패여 있어 더욱 신기하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돌로 다릿발을 만들었으므로 힘이 얼마나 셌으면
그런 다리를 놓았을까 싶어서 장사항매의 독다리로 알려져 있다.
소나무 숲길
신덕산 산정부분은 이렇게 큰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 져 있었다
보통 산에 오르다 보면 산아래에 키큰 소나무가 많고 산정에 가까워 질수록 키작은 소나무 인데
신덕산은 산아래는 참나무이며 산정부근은 소나무로 이루어 져있었다
신덕산이이 있는 용덕면 이목마을은
앞뒷산이 모두 신덕산(옛문헌상 德山 또는 神德山)의 줄기이며
남동쪽만 빠끔히 열어 놓았을 뿐 두루 산이 에워싸고 있다.
산골 논이지만 군내서는 가잘 값비싼 땅이라 이목 논 한마지기 팔면
의령 들논 두마지기를 살 정도였다고 한다.
일꾼들을 불러놓고 우리 「진배미(긴배미)」논서마지기를 아침나절에 다갈아 뒤비거나(뒤집다)
두룸(논두렁)다 바르기만 하면 내 사위로 삼겠다는 내기를 걸었던 유명한「진논배기」가 있다.
이목 저쉬 바로 밑에 큰덤과 자연동굴이 있는데 멀찌감치서 돌을 던져
그 둘에 들어가면 아들을 낳고 돌이 들어가지 않고 떨어지면 딸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는데
옛날에는 애기밴 임부들이 돌던지는 의식을 자주 했다고 한다.
마을 앞 못이 없을때만해도 80여가구 살았고 덕암골안에서는 제일 부자마을이었다고 하며
인심 후한 곳이었다.
소나무 숲옆이라「송징이들(송정들)」.마을위에 있다고 「웃들」뒷골은「뒷들로」부르며
미질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란다.
신덕산의 修道寺는 신라 문무왕때 고승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 있고
절뒤에 있는 병풍바위가 있는데 거기서 수백명의 불제자와 함께 수도좌선을 했으므로
절이름도 수도사로 명명했다고 전한다.
극락교, 극락전, 칠성각이 있으며 동쪽 산허리에 浮屠 8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고찰임이 사실이다.
임란때 소실되었던 것을 유정(惟政.사명대사)이 중건했다고 한다.
싸리꽃
신덕산 산정부근 산행로 주변엔 이렇게 싸리꽃이 지천에 피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소나무 깔비를 방석삼아 앉이서 키작은 싸리꽃은 산행자를 반겨준다
유년기 시절엔 싸리나무로 어른들이 소쿠리를 만들었고 빗자루도 만들었다
군장병 현역시엔 싸리빗자루로 연병장 청소를 하였다그리고 육군출신 친구들 이야기로는
접 베어 만들어서 겨울엔 눈을 쓸고 가을엔 낙엽을 쓸었다고 한다
신덕산 산정
초목이 울창한 신덕산 산정엔 숲으로 인하여 조망은 없다
옛날에는 원효대사께서 100명의 제자와 함께 신덕산 산정에 올랐을것이고
나 역시 그 길을 따라서 산정에올라 천년이 지난지금 변함없이 그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정에서 휴식을 취해본다
은방울꽃나무
신덕산 산정에는 은방울꽃나무가 여기저기 있지만
꽃망울은 어느새 다 지고 말았다.
은방울꽃의 꽃말은 순결, 다시 찾은 행복이다.
유럽에서는 5월에 은방울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받으면 행운이 온다고 믿어서
가장 가까운 벗에게 은방울꽃을 선물 한다고 한다.
향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면 은은한 사과 혹은 레몬향이 강하게 전해 온다고 한다.
산덕산 정상(神德山 頂上)582m
신덕산 정상에서 인증사진 하나 남겨본다
근교산(近郊山)이 아닌 인기 명산이라면 아마도 줄을 서서 인증사진을 찍어겠지
신덕산이란 이름은 경남 의령 토박이가 아니면 산이 존재하는지도 모를것이다
용덕면 용덕저수지가 있는 가미마을 유래를 보면
지금 가미마을은 덕암골 중간지점에 있는 마을로 원래 소지명은 가무네미(가무넘이)라 했다.
순수 고유어이고 복합어 형태의 지명이다.
가무(가모)는 가물다(旱)의 변칙어간이면서 받침소리가 탈락된 말이며
네미(넘이.너미)는 넘기다 넘우다 넘므다의 옛말로서
우리지방에서 흔히 쓰이고 있다.
뜻풀이로는 가뭄을 넘기다가 되며 지명의 유래로는 좀 특이하다.
민초들의 원과 한(恨) 그리고 삶의 소박한 애환이 담겨진 땅이름이라고나 할까.
옛날 이 지대는 모두 독재갈밭(돌자갈밭)이고 돌너드렁이라서 언제나 농작물이 가뭄을 타서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샛말로 한발상습지대인 셈이다.
그러자니 「가뭄 넘기」가 생활의 큰부분이었고 전답에 물기만 있었어도 웃음꽃이 피었다고 한다.
의령 신덕산(宜寧 新德山)
깨진바위 전설이 있는 의령 신덕산을 걸어보면서 원효대사의 수도사 창건이야기와
신덕산이 있는 용덕면 마을 유래를 읽어보면서 또 하나의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산줄기이야기
야생화도감,의령군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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