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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봉화산(南原 峰火山).봄이면 철쭉바다를 이루는 백두대간 봉화산 산정에 오르다 본문
남원 봉화산(南原 峰火山)
봄이면 철쭉바다를 이루는 백두대간 봉화산 산정에 오르다
▲ 남원 봉화산(南原 峰火山)
높이 : 919.8m
위치 : 전라북도 남원군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에 걸쳐있는산
▲ 나의 산행일 :
2020년05월07일 목요일. 날씨: 맑음(강풍)
▲ 나의 산행코스 :
복성이재→→→매봉→→→테크계단→→→철쭉군락지→→→치재.봉수정→→→꼬부랑재
→→→이정표→→→봉화산 정상(원점회귀)
왕복7.6km 3시간20분 소요
▲ 남원 봉화산(南原 峰火山)개요 :
봉화산(峰火山)은 높이 919.8m로 전라북도 남원군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과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봉화산은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와 동화리의 경계산령과 남원시 아영면의 최북단 접경 지역과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에도 봉수대의 유적이 남아있어 오래된 봉수대라는 의미와 함께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이 봉수대는 대체로 통일신라이후부터 폐지된 것으로 보이며 백제와 신라의 국경 분쟁이 잦았던 운봉과
아영면 부근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주소는 전북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로 되어 있다.
북쪽으로 작은 싸리재로 분리되는 곳에서 아래의 봉우리에 있는 산이다.
즉, 북쪽은 싸리재와 경계를 이루어 장수읍과 인접해 있다
봉화산이라는 산 이름은 이곳에 봉화대가 설치돼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장안산과 함께 혼동하여 장수군 장안산으로 불리다가 봉화, 봉수대를 발견하고
봉화산으로 불리는 것으로 여겨진다. 북쪽으로 월경산, 백운산의 연봉이 남쪽으로 매봉
그리고 모산의 연봉이 이어진다. 봄철에는 붉게 핀 철쭉 군락이 있으며, 가을에는 억새가 유명하다.
이 외에도 야생화와 산나물이 많이 자생하고 있다.
▲ 남원 봉화산(南原 峰火山)등산지도
▲ 남원 봉화산(南原 峰火山) 찾아가는길
진주역→→→통영대전고속도로 진주jc→→→함양jc→→→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TG
→→→흥부로→→→성암길→→→복성이재 주차장
94km 승용차 1시간20분소요.
→→→→→2020년05월07일 목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산을 찾아 오늘도 길을 나서본다
송화꽃가루가 노랗게 날리어 차량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봄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다
철쪽꽃이 좋다는 백두대간 제3구간에 속해 있는 남원 봉화산으로 길을 나서본다.
복성이재(복성치福星峙 601.4m)
전북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 산103-1 위치하며
매봉을 거쳐서 봉화산으로 가는 들머리 이며 백두대간의 고남산과 연결 되어 있다
작은 주차공간에 주차를 하고서 길건너 들머리로 가야 한다.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TG에서 내려 진입했다면 우측에있는곳이 들머리이다
복성이재(복성치福星峙 601.4m)는
전북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 고개로서
산줄기는 시리봉과 봉화산을 잇고 물줄기는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나기전 변도탄이 천기를 보고 국가에 큰 전란이
일어날것을 예측하고 대비할것을 상소하였으나 평화로운 기운을 어지럽힌다 하여
관직을 삭탈당하고 나서 전란을 대비 북두칠성 중에 복성 별빛이 멈춘 곳에 자리를 잡아
움막을 지었다 하여 복성이재라 전해진다.
그 후 쌀가루로 만든 움막은 군량미로 사용하여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조정에서 변도탄의 충성심을 인정하여 큰 상을 내리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복성마을을 이뤘다고 한다.
복성이재의 남쪽에는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가 서로 영토 쟁탈전을 벌였던
아막산성(전북지방기념물 제38호)이 있다.
봉화산 들머리
복성이재에서 시작하면 들머리가 되는 지점이며 백두대간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소나무 송화가루가 미세먼지처럼 흩날리고 강풍도 불었다
오월의 태양빛은 좋지만 강풍으로 인하여 시원한 산행길이 예상되었다.
봉화산이란 산이름은 어느지역 할것없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곳은 늘 봉화대가 있어 봉화산 또는 봉수산이라 했다.
봉화산에는 매년 철쭉제가 열린다. 4월 하순에서 5월 중순에 열리고 부대 행사로는 산신제와 백일장
보물찾기 등을 하는데, 관광객들은 남쪽 성리에 있는 흥부마을 등을 찾아 가기도 한다.
특히 봉화대를 기점으로 남쪽 치재와 꼬부랑재 근처까지 높이가 2m 이상의 산철쭉 터널을 이뤄
철쭉 바다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어느 지자체 할것없이 행사가 취소 되었다
매봉으로 가는 초입구간
초입구간은 어느곳 할것없이 가파러다 그래서 초입부터 힘을 빼놓기도 한다
소나무 숲과 잡목으로 우거져 계절의여왕 답게 싱그러움이 더했다
봉화산은 900m 가 조금 넘는 높은 산이지만 출발지점인 복성이재 고도가 600m이기에
그다지 힘든 산행은 아니지만 늘 그렇듯 초입은 힘들다
봉화산(烽火山)은 전북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 경남 함양군 백전면에
걸쳐 있는 높이 920m의 산이며 철쭉으로 유명한 산으로 5월 되면 산 능선과 바위 언덕 곳곳에 군락을
이룬 철쭉들이 만개한다고 하여 가까운 한우산을 접우두고 새로운 산에 올라본다.
철쭉군락 터널
고개를 숙여야 지나갈수 있는 철쪽군락 탐방로이다
아마도 매봉에 가까워 졌나 보다 그러나 철쪽은 다 떨어지고 초록잎만 무성하다
철쪽으로 유명한 황매산 한우산 그리고 남원 봉화산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주말산행과 단체산행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뜸 하지만
개개인이 움직이는 산행은 철쪽이 만개한 봉화산에도 주중인데도 인적이 많았다.
백두대간 매봉 712.2.m
봉화산 매봉의 표지석이다 주변에는 전망테크도 있고 철쪽군락이 있지만 40%정도의 꽃이 남아 있다
조금만 일찍 산행 왔다면 철쪽바다에 빠졌을것이다.
백두대간은 통일신라 때 선승이며, 한반도 풍수지리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도선국사(道詵國師)도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마치니 그 세는 수를 근본으로 하고 목을 줄기로 하는 땅이다라고 하여
일찍이 백두대간을 국토의 뼈대로 파악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지질학적이고 비인간적인 그리고 외세에 의해 붙혀진 산맥 이름보다 백두대간적인 산맥 인식의 중요성은
그것이 국토의 고유성과 유구한 생명력, 사람과 자연의 일체화를 지향하는 유기체적 산맥관으로서
우리의 지리관·산맥관에 뿌리를 댄 한국적 산맥론의 표상이다라고 한다.
백두대간 매봉 과 아영면 성리마을의 조망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한방도의 뼈대를 이루는 산줄기로
황해와 동해를 거쳐 낙동강 수계의 분수령이 되며 이 산줄기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쪽 해안산을 따라
남쪽 지리산까지 이어지며 총길이가 1625km이고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의 남한 구간만 해도 690km에 이른다 한다
언제 백두대간을 걸어볼수 있을까 아직 남한도 다 못걸어 보았는데 북쪽대간 능선을 걷는다는것은
상상해도 살아생전엔 하지 못할듯 하다
아영면은 1910년까지는 운봉군(雲峰郡) 관할의 북상 북하면 지역이었다.
신라 경덕왕 16년(757)까지는 모산현(母山縣)에 속해 천령군(天嶺郡:지금의 경남 함양군)에 예속되었다가
모산현이 운봉현으로 개칭되었고, 고려 태조 23년(940)에 운봉현이 남원부(南原府)의 관할이 되어
남원에 예속되어 아용곡(阿容谷), 또는 아영(阿英), 아막(阿莫)이라 하였는데
이 지역에는 북상면(北上面)과 북하면(北下面)이 있었다한다.
장수군 동화댐 장수물빛공원 조망
장수군 번암면과 동화댐이 발아래 펼쳐진다 산에 오르면 이러한 조망 보는것 또한 즐겁다
번암면은 태백정간(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두메산 어느골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다.
주변에 백운산, 장안산, 팔공산, 대성산, 고남산이 동서남북으로 병풍처럼 둘러 있으며
큰 산들이 첩첩으로 둘러 있어 수분계곡, 국포계곡, 사암계곡, 지지계곡, 유정계곡 등이
수십리의 골짜기를 이루고,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하며
계곡마다 흐르는 요천 맑은 물은 노단에서 합류하여 번암들의 젖줄 역할을 하며, 유유히 남원으로 흐르며
번암면의 지형은 동으로는 백운산과 경계를 이루어 경남 함양군 백전면과, 남원시 아영면, 운봉읍과 접해있고
남으로는 대론들을 가로질러 흐르는 실개천으로 경계를 이루어 남원시 산동면과 접해있고
북으로는 수분치와 경계를 이루고 장수읍과 장안산과 경계를 이루고
계남면, 장계면과 무룡궁재와 경계를이루어 양면과 인접해 있다.
봉화산 정상 조망
저기 보이는 봉우리까지 오늘 봉화산 산행 장소 목적지 이기도 하다
봉우리 아래가 철쭉꽃이 분홍빛을 내 뿜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사회적거리두기 기간 이지만 철쭉군락지에 오니 산행자가 많이 보였다
전북 남원시와 장수군,경남 함양군의 경계에 솟은 봉화산(해발920m)은 철쭉이 곱기로 이름난 산이다.
흥부마을과 아막산성이 있어 볼거리와 현장학습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사면과 암릉 곳곳에 철쭉이 드넓게 군락을 이뤄 온종일 철쭉 향기에 취하며 걷는
봉화산 철쭉길은 5월 중순에 만개한다 하지만 5월초순인데 대부분 지고 40%정도만 남았다.
장수군 동화댐 그리고 치재의 철쭉군락지
봉화산을 가려면 일단 남원에 도착해 아영면으로 간뒤 아영중학교에서 오산마을을 지나면
봉화산 산행기점인 성리마을에 닿는다.
흥부전의 주인공 흥부의 고향으로 알려진 성리마을은 흥부마을로도 불린다.
마을을 지나 능선을 향해 20분정도 가면 백제와 신라의 격전장이었던 길이 6백33m의 아막성지가 나오며
성지의 허름한 빈집을 지나 능선에 서면 성곽의 틈에 핀 철쭉이 산행객들을 반긴다.
남쪽으로 보이는 산사면에 붉게 물든 철쭉밭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봄의 끝자락인 5월 중하순에 들어서면 소백산, 지리산, 태백산 등 전국의 높은 산꼭대기에서
군락으로 자라는 철쭉은 연분홍빛 꽃 모자를 뒤집어쓴다.
삭막한 높은 산꼭대기의 풍경을 화사함으로 바꾸어주는 봄꽃의 대표 자리에 언제나 철쭉이 있다.
원래 철쭉은 이렇게 산꼭대기에 군락지를 이루고 있지만
적응력이 높아 마을 근처의 야산에서도 흔히 자란다.
매봉과 치재에 있는 철쪽군락지
철쪽이 만개했다면 분홍빛 터널이 되었을듯한 군락지 이다
5월7일이면 분홍바다를 이루어야 할곳에 대부분 지고 40%정도 남아있는듯 했다.
아름다운 철쭉꽃을 두고 옛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기록에 처음 철쭉이 등장하는 것은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이야기다.
수로부인은 신라 최고의 미인으로 성덕왕(702~737) 때 강릉 태수로 부임한 남편 순정공을 따라가게 된다.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낭떠러지 꼭대기에 활짝 핀 철쭉꽃을 보고
꺾어서 가지고 싶어 했지만 아무도 올라가려 하지 않았다.
마침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늙은이 하나가 꽃을 꺾어 부인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꽃 중에서 철쭉꽃을 미인에 비유한 것이다.
이름 역시 꽃이 너무 아름다워 지나가던 나그네가 자꾸 걸음을 멈추었다 하여
철쭉을 나타내는 ‘척(躑)’에 머뭇거릴 ‘촉(躅)’을 썼다고 한다.
척촉이 변하여 철쭉이 되었고, 다른 이름인 산객(山客)도 같은 뜻이다.
동국이상국집, 목은집, 사가집, 완당집등 우리의 옛 시가집에는
철쭉꽃의 아름다움을 읊은 노래가 수없이 등장한다.
선비들이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꽃을 감상하고 지은 시가 아니라
대부분 정원에서 키우는 철쭉을 보고 시상(詩想)을 얻은 것 같다 한다.
봉수왕국전북가야 기념비
치재에 있는 봉수왕국전북가야 초석이다
전북의 가야유적은 남원과 장수군등7개 시군에 걸쳐 고분이
450여기와 제철유적130곳 봉수유적70여곳이 분포되어 있다
기문(己汶)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등장하는 백제와 가야의 접경지역에 있었던 지명으로
6세기 전반 백제와 가야제국 사이에 중요한 쟁탈의 대상이었다.
섬진강 연안의 남원을 중심으로 보는 설과 낙동강 연안으로 보는 설도 있다.
대사(帶沙)는 백제와 가야의 접경지역에 있었던 섬진강 하류 지명(일본서기)으로 지금의 하동으로 본다.
이곳에 대사진(帶沙津)이라는 가야와 왜의 교역항구가 있었다.
반파(伴跛)는 기문 땅을 두고 백제와 전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봉수를 운영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소국이다.
봉수왕국전북가야 기념비 뒷면의 글
1500년전
백두대간 속 전북 동부지역에 기반을 두고 가야계 왕국으로까지 발전했던
가야세력을 하나로 묶어 전북가야라고 명명하였다.
전북가야는 가야의 지배자 무덤으로 알려진 가야계 중대형 고분 420여기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제철유적 130여 개소,햇불과 연기로 신호를
주고받던 70여개소의 봉수로 상징된다.
삼국시대 때 전북가야의 위상과 그 역동성을 세상에 알리고
후손들에게 전북가야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영,호남 사람들이
오갔던 화합의 무대인 백두대간 치재에 전북가야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2017년11월25일 전북도지사 송하진
치재에 있는 봉수정(烽燧亭)
철쭉군락지 치재에 있는 봉수정이다
안쪽에 걸려있는 편액의 글씨를 보면 봉수란 낮에는 연기와 밤에는 햇불로써
급박한 소식을 중앙에 알리던 통신제도이다.
1894년 갑오개혁때 근대적인 통신제도가 도입되기 이전까지 개인정보를 다루지 않고
오직 국가의 정치 군사적인 전보기능만을 전달했다
중국 일본 문헌에 등장하는 가야소국 반파가 513년부터 기문 대사를 두고 백제와
3년 전쟁을 치르면서 봉수대를 운영한것으로 등장한다.
전북 동부지역은 고려말의 봉수선로가 계승되어 조선 초기에 정비된
5봉수로의 직봉과 간봉이 통과하지 않아 봉수와 관련이 없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북 동부지역에서 100여개소의 삼국시대 봉수가 발견 됐는데
봉수는 대체로 가야계 문화유적이 발견된 지역에만 배치되어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제철유적 및 제동유적의 최종 종착지가
장수군 장계분지로 120여 개의 가야 고총이 남아 있다.
이제까지 장수군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 가야 고총은 240여 기에 달한다.
장수 영취산 봉수등 3개소의 봉수 발국조사에서 장수가야 고총에서 나온
출토품과 흡사한 6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토기만 출토됐다.
장수군의 지역적인 기반을 두고 가야왕국으로 가지 바르전한 장수가야가
백제의 동태를 살피고 제철유적을 방비하기 위해 봉수를 배치했던 것 같다.
모든 가야영역에서 유일하게 삼국시대 봉수가 발견된곳이 전북가야이다.
2017년11월25일 봉수왕국전북가야 기념비를 백두대간 치재에 세웠고
2019년 장수군에서 붕수정을 건립했다.
라고 기록하여 걸여있다.
백두대간 치재에 있는 봉화산 안내표지목3.0km
봉화산 정상까지는 3km만가면 된다 물론 원점에서 다시 돌아와야하는 산행길이지만
백두대간은 山은 江을 넘지 못하고 江은 山을 뚫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으로 보면 국내 어떤 산에서든 백두산까지 물줄기에 의해 끊이지 않고
모두 능선으로 연결되어 물을 건너지 않고 백두산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 가장 큰 산줄기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뻗어나간 백두대간이며
이 백두대간에서 다시 뻗어나간 산줄기를 정맥(正脈)과 정간(正幹)이라고 하고
정맥에서 다시 뻗어나간 산줄기를 지맥(支脈)이라고 한다.
더 쉽게 설명하면 대간과 정간은 한반도의 물줄기를 동서로 흐르게 하는 분수령이며
정맥은 그 강을 울타리처럼 둘러 싼 산줄기다.
이런 개념으로 보면 한반도의 산줄기는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백두대간을 포함한 15개의 산줄기 이름 중 산이름에서 따온 것은 백두대간과 장백정간이며
나머지 13개의 정맥은 10개의 강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철쭉바다에 빠지다
치재에는 아직 철쭉꽃들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나 역시 그바다에 한번 빠져본다
봉화산 철쭉은 산림 정비 사업을 하면서 인위적으로 심어 놓은 철쭉이 군락지를 이룬 것이라 한다
오늘도 마을사람들이 군락지 중간중간 빈곳에 철쪽나무를 식재하고 있었다.
4월 하순에 해발 400~500m에서부터 피기 시작해 층계식으로 점차 개화가 이루어진다.
봉화산 철쭉제는 봉화산 철쭉의 장관을 널리 알리고 등산객과 관광객을 이끌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1996년 4월 아영애향회에서 주최하여 처음 열렸다.
철쭉의 만개는 5월 중순경이지만
봉화산 철쭉제는 만개 시기보다 조금 이른 개화기에 맞추어 열린다고 한다
올해는 어디 지자체 할것없이 축제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전면 취소되었다.
봉화산 철쭉
바람이 심하게 불어 앵글 맞추기가 힘들었지만 유년기 시절엔 철쭉이라 하지 않고
개꽃이라 불렀고 먹어면 죽는다 해서 어른들이 못먹게 하였다.
철쭉은 진달래과에 딸린 낙엽 관목이며 진달래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진달래와는 달리 철쭉은 잎이 먼저 핀 다음인 5월에 꽃이 핀다.
철쭉은 우리 나라가 원산지로 전국 각지의 산에 많이 자라며
산에 저절로 나는 것에도 철쭉나무 · 산철쭉 등 종류가 많이 있다.
철쭉의 키는 2~5m쯤이며, 잎은 거꾸로 세운 달걀 모양이고 가지 끝에 돌려나기로 난다.
깔때기 모양의 꽃은 꽃잎의 끝이 다섯 갈래이고, 분홍색 · 노란색 · 흰색 · 빨간색 등 여러 가지가 있고
우리 나라 · 일본 · 만주에 분포한다.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어서 참꽃이라고도 하나,
철쭉은 독성이 있어서 먹을 수 없으므로 개꽃이라고도 한다.
산에 나는 철쭉의 줄기는 조각의 재료나 땔감으로 쓰이고, 잎은 약재로 쓰인다.
관상용으로 정원에 심기도 하고, 온실에서 가꾸는 원예 품종도 많다. 우리 나라와 만주에 분포한다.
장승
봉화산 능선길 죽은 나무에다 이렇게 장승을 조각해 놓았다
아마도 조각솜씨가 좋아 마음먹고 올라온듯 하다
이렇게 장승이 산객을 잠시 잡아두고 쉬게 만들었다
철쪽군락지가 있는 치재와 연결되어 있는 아영면은 전라북도 남원시 북동부에 있는 면으로
북부와 서부는 700~900m의 산지로 봉화산(920m)·시리봉(777m) 등이 있고
그밖의 지역은 대체로 500m 내외의 산이 분포하고 있다
서부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산간분지를 흐르며, 이 일대가 농경지로 이용된다.
벼·보리 등 주곡 작물 외에 감자·상추 등 고랭지채소 재배가 이루어지며
축산업도 활발하다하는데 그래서 인지 바람따라 돼지분뇨 냄세가 많이 날라와
근처에 돼지농악가 있나 싶은는데 축산업이 많다고 한다.
쥐오줌풀
봉화산 탐방로 주변에 쥐오줌 풀도 여기저기 보라색 꽃 향기를 피우고 있었다
전국의 산지 그늘진 곳이나 조금 습한 곳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높이 40-80cm이며, 마디에 흰 털이 난다. 뿌리는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잎은 깃꼴겹잎이며, 줄기에 마주난다. 꽃은 5-6월에 줄기 끝에 산방상 원추꽃차례로 달리며
연한 분홍색 또는 흰색이고, 지름 3-4mm다. 뿌리를 진정제와 진통제로 쓰인다.
줄기는 곧추서며, 높이 40-80cm이고, 마디에 흰 털이 난다. 뿌리는 냄새가 강하다.
줄기잎은 마주나며, 아래쪽 것은 잎자루가 긴 깃꼴겹잎으로 갈래는 난형 또는 선상 피침형이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드문드문 있다. 꽃은 5-6월에 피고 줄기 끝의 산방상 원추꽃차례에 많이 달리며
연한 분홍색 또는 흰색이고, 지름 3-4mm다. 꽃차례는 지름 5-7cm다.
꽃부리는 통 모양으로 길이 4-5mm이고, 5갈래로 갈라진다. 열매는 수과다.
병꽃나무
봄날의 햇살이 차츰 따가워지고 온 산이 초록 옷으로 갈아입을 즈음에
5월 초가 되면 병꽃나무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산 아래에서부터 거의 꼭대기까지 햇빛이 잘 드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흔히 만날 수 있고
그렇다고 자람 터가 까다로운 것은 아니다.
큰 나무 밑에서 햇빛이 조금 부족하여도, 땅이 메마르고 척박하여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꽃 모양은 길쭉한 깔때기 모양으로 손가락 길이 정도이고 아래로 매달려 있으며
그 모습이 마치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백자 병이나 청자 병처럼 생겼다고 하여
병꽃나무란 이름이 붙여졌다. 특히 꽃이 피기 직전의 꽃봉오리는 영락없는 병모양이다.
꿩의바람꽃
강한바람에 작은 야생화를 흔들림없이 촬영하기에 힘들었지만
요즘은 워낙 장비가 좋다보니 강한 바람속에서도 야생화를 촬영할수 있었다
전국의 높은 산 습기가 많은 숲 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러시아 동북부에도 분포한다.
줄기는 가지가 갈라지지 않고, 높이 15-20cm다. 뿌리잎은 잎자루가 길고
1-2번 3갈래로 갈라지며, 보통 연한 녹색이지만 포잎과 함께 붉은빛을 띠는 경우도 많다.
꽃은 4-5월 줄기 끝에 1개씩 피며, 흰색이다. 꽃을 받치고 있는 포잎은 3장이며,
각각 3갈래로 끝까지 갈라진다. 꽃받침잎은 8-13장이며, 꽃잎처럼 보이고
긴 타원형이다. 꽃잎은 없으며 수술과 암술은 많고, 씨방에 털이 난다. 약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백두대간 능선에서 잠시 휴식
나는 산행할때에는 앉아서 쉬지 않는다 점심먹을때 빼고는 그냥 나무에 기대거나
나무를 지랫대 삼아 쉬고 걷는게 더 편안하다
이 길을 백두대간 종주 산행자들이 많이도 걸었을 것이다
사시사철 눈이오나 비가오나 할것없이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서 걸었을 것이다
시간이 허락하는데로 산에 오르고 또 산에 올라서
우리나라 산하에 족적을 남겨본다.
이길은 밷두대간 3구간으로서 사치재에서 봉화산을 거쳐 중재로 이어지는 코스다
다리재에 있는 안내표지목
봉화산 산정도 얼마남지 않았나 보다 봉화산에는 아막성(阿莫城)이 있다
남원시 아영면 아영고원에 있는 돌로 쌓은 산성이며 아영고원은 운봉고원과
황산의 산줄기로 구획되어 있는데, 이 일대는 백제의 아막산, 신라의 모산성 등으로 불렀으며
역사상 신라와 백제간에 격렬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성터는 둘레가 632.8m에 이르며, 동·서·북문터가 남아 있다. 북변의 성벽은 완전히 남아 있으며
거의 직선으로 길이 150.7m이고, 물이 흘러나가는 곳에 문터가 있다.
동쪽은 거의 직선으로 길이 147.1m이며, 서쪽은 길이 126.9m, 곡선을 이룬 남쪽은 길이 208.1m이다.
남쪽 성벽의 능선 연결부분에는 못을 파서 물이 흐르도록 한 환호가 설치되어 있다.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기와 조각, 백제계의 도자기 조각들이 발견되고
북문터의 물이 흐르는 곳 동쪽에는 지름 1.5m의 돌로 쌓아 만든 원형의 우물터가 있다.
아막성은 경상남도 함양읍과 전라북도 남원시 동면 경계 부근인 팔량치 고개에 위치하는데
해발고도는 513m이고, 북쪽의 상산(霜山)과 남쪽의 삼봉산(三峰山: 1,186m) 사이의 안부에 있는 성으로
602년 아막성 공방전에서 신라는 백제 무왕이 보낸 대군을 맞아 반격을 감행하여 최종적으로 승리하였다.
봉화산 산정(烽火山 山頂)919.8m
봉성이재에서 출발하여 매봉을 거쳐 2시간30분만에 봉화산 산정에 올랐다
子曰 : "知之者, 不如好之者 ; 好之者, 不如樂之者."
자왈 : "지지자, 불여호지자 ; 호지자, 불여락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저 산을 좋아 하지만 즐길줄을 모른다
산을 찾는 대부분 사람들은 정상을 몇시간 만에 올랐느냐에 주된 관심사 이기때문에
산길을 걸어면서 사색을 하고 자연속에 피어있는 야생화와 대화하고
골짜기와 봉우리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고 산이 주는 아름다움을 관조((觀照)하여야 한다.
그래서 산에 오르면 산의 아름다움과 대화해보고 그 속에 일부가 되어어야 진정 산꾼이라 생각한다.
봉화산 산정(烽火山 山頂)919.8m
봉화산 정상표지석 뒷면에는 백두대간 능선길이 새겨 그려져 있다
白頭大幹은 한반도 산계의 중심이고 국토를 상징하는 산줄기 이다.
함경도·평안도·강원도·경상도·충청도·전라도에 걸쳐 있으며 1개 대간, 1개 정간
13개 정맥의 체계로 되어 있으며, 이러한 산경개념은 신경준의 <산경표>와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의 <대동여지도>에 반영되어 있다.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자연적 상징인 동시에 한민족의 인문적 기반이 되는 산줄기로서
국토의 고유성과 유구한 생명력, 사람과 자연의 일체화를 지향하는 한국적 산맥론의 표상이다.
백두산에서 남으로 맥을 뻗어 두류산·금강산·설악산·오대산을 거쳐 태백산에 이른 뒤
다시 남서쪽으로 소백산·속리산·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국 산의 큰 줄기를 망라한 산맥이다.
즉 한반도 산계의 중심이며, 국토를 상징하는 산줄기로서 함경도·평안도·강원도·경상도
충청도·전라도에 걸쳐 있다. 산경표(山經表)에 보면
한국의 산맥은 1개 대간, 1개 정간, 13개 정맥의 체계로 되어 있고
이러한 산경개념은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잘 표현되어 있다.
봉화산 산정(烽火山 山頂)919.8m
전북 남원시와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의 경계에 솟은
봉화산(해발919.8m)은 철쭉이 곱기로 이름난 산이다.
흥부마을과 아막산성이 있어 볼거리와 현장학습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사면과 암릉 곳곳에 철쭉이 드넓게 군락을 이뤄 온종일 철쭉 향기에 취하며 걷는
봉화산 철쭉길은 5월 중순에 만개한다 하는데 지금은 다지고 40%정도만 남아 있었다
봉화산을 가려면 일단 남원에 도착해 아영면으로 간뒤 아영중학교에서 오산마을을 지나면
봉화산 산행기점인 성리마을에 닿는다.
흥부전의 주인공 흥부의 고향으로 알려진 성리마을은 흥부마을로도 불린다.
마을을 지나 능선을 향해 20분정도 가면
백제와 신라의 격전장이었던 길이 6백33m의 아막성지가 나온며
성지의 허름한 빈집을 지나 능선에 서면 성곽의 틈에 핀 철쭉이 산행객들을 반긴다.
남쪽으로 보이는 산사면에 붉게 물든 철쭉밭에 묻히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철쭉산성을 따라가면 능선을 가로지른 치재에 닿는다.
계속해서 고개를 지나 능선을 따라 봉우리에 올라서면 붉게 물든 철쭉밭이 나타난다.
봉우리에서 꼬부랑재에 이르는 철쭉밭은 봉화산 능선중 최고의 철쭉군락지로 손꼽힌다.
꼬부랑재를 지나면서 철쭉군락이 사라지고 40여분정도 더 가면 억새밭이 나타난다.
이곳을 지나면 정상전까지는 초원지대다.
봉화산 안내표지판
봉화산 정상에 있는 안내표지판의 안내글을 보면
봉화산은 전라북도 남원시와 장수군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덕유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남부 구간의 중심지점에 있는 산이다
우리나라 봉화산이라 이름 붙은 산들이 수없이 많은 것처럼
이 산 역시 과거 봉화가 피어 올랐던 산으로 봉화산에서 동북쪽으로 1km쯤 가면
무명봉이 봉화산 봉수대라는 푯말이 그 자취를 전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장안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봉화산은 북쪽으로 월강산 백운산 연봉이 남쪽으로 매봉 모산의 연봉이 이어진다
봄철 붉게 피는 철쪽군락이 이름난 곳으로 봉화산 서쪽 능선을 감싸고
철쭉군락이 발달해 있다 이 때문에 매년 4월하순에서 5월중순 철쭉제가 열린다.
또한 가을철에는 넓게 드리우진 억새평전을 지나 봉화산 정상에 당도할수 있다.
라고 기록해 놓았다
봉화산 봉수대(烽燧臺)
봉수대를 복원해 놓았지만 봉수대라기 보다는 그냥 돌탑같아 보였다
봉수대는 우리나라에서 약 120년 전까지 사용하였던 봉수는
과학적으로 잘 갖추어진 통신 방법이라고 한다
봉수대에서는 낮에는 연기를 이용하고, 밤에는 햇불을 이용하여 정보를
먼 곳까지 신속하게 전달하였으며 신호가 전달하는 내용은
봉수대의 굴뚝에서 올리는 연기나 불꽃의 수에 따라 달랐다고 한다
이렇게 연기나 불빛을 이용하여 만든 신호는 인근의 봉수대에 차례대로 전달되어
한양까지 전달하였다고 전한다.
봉화산 산정에서 바라본 아영면(阿英面)
봉화산 산정에서 바라본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이다
아영면 두락리에는 30기에 달하는 가야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어 신라 이전부터
아영면에는 대단위 취락 시설이 있었고
지금은 운봉읍이 된 모산현(母山縣)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를 입증하는 또 다른 자료로는 아영면 갈계리의 청계마을과
고인마을에 분포되어 있는 고인돌을 들 수 있다.
운봉읍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고인돌군의 분포로 보아 운봉읍보다 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해 왔음이 입증되고 있다.
940년(태조 23)까지는 모산현에 속하여 천령군(天嶺郡)[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에 포함되었던
신라 영역이었으나 운봉현이 남원부(南原府)에 편입되면서 남원 관할로 속하게 되었다.
운봉현 당시 매치~일대저수지~복성치의 길을 경계로 북쪽은 북상면(北上面)
남쪽은 북하면(北下面)으로 나뉘어 북상면은 갈계리(葛溪里)에
북하면은 일대리(日臺里)에 면소재지가 있었다.
1910년 북상면의 13개 리, 북하면의 9개 리가 병합되어 아영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운봉군이 면으로 되면서 남원군에 편입되어
아곡리·봉대리·갈계리·인풍리·청계리·월산리·성리·구상리·일대리·의지리·두락리 등
11개 리를 관장하게 되었다. 1995년 남원시·남원군 통합으로 11개 법정리
26개 자연 마을로 되었으며 갈계리에 있던 면사무소는 청계리로 이전하였다.
철쪽꽃 탐방로
하산길에 한사람만 겨우 지나갈수 있는 빼곡한 철쪽꽃길이다
올해는 어찌된 일인지 철쪽꽃이 빨리 졌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지금 경남 황매산에도 철쪽꽃이 절정이라고 한다
남원 봉화산은 백두산을 기점으로 하면 백두대간의 남원 지역 출발점이 봉화산(烽火山)인데
이 봉화산의 백두대간 능선과 지능선(함양·인월 경계의 연비산 능선) 사이에 펼쳐진 구역이다.
봉화산을 수원으로 하는 풍천(楓川)이 남쪽으로 흐르며
아영면의 중앙으로 가로질러 기름진 들판의 젓줄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진주의 남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또한 백두대간 능선을 경계로 장수군 번암면 쪽의 물은 섬진강의 상류가 되기도 한다.
이 백두대간 능선은 500m 이상의 고도를 유지하고 있고 봉화산이 있는 아영면은
남원시의 북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동북쪽으로 경상남도 함양군과 접하고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장수군 번암면, 남쪽으로는 인월면, 동남쪽으로는 운봉읍과 각각 접하고 있다.
흥부마을
산행종료후 귀가길에 흥부마을에 잠시 둘렀다
흥부마을은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은 판소리 다섯마당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이다.
이곳은 전해내려오는 설화와 지명을 근거로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로 밝혀졌다.
이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복덕가 춘보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흥부가와 춘보설화는 가난 끝에 부자가 된 인생역전, 선덕의 베품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실제로 성리마을에는 박춘보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망제단에서 흥부를 기르는 춘보망제를 지내오고 있다.
성리에는 흥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허기재, 고둔터, 새금모퉁이, 흰묵배미등의 지명은 고전에도 등장했던 지명이다.
지금은 길 양쪽으로 감자농사가 한창인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운 고개라고 전해진다. '고둔터'는 고승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흥부에게 잡아준 명당으로 흥부는 이곳에서 제비를 고쳐준 발복집터이다.
흥부마을
실제 '고둔'이라는 지명은 곳집이 모이는터, 즉 부자가 되는 터라는 뜻이다.
이곳은 장수군 번암면으로 넘어가는 짓재 고개마루에 높다랗게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의 산자락과 이웃논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금모퉁이'는 사금꾼들이 금을 채취하던 곳으로
흥부가 이곳에서 금을 주워 부자가 된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한편, '흰죽배미'란 장소는 흥부가 부농이된 후 은인들에게 보답으로 주었다는 논으로 전해진다.
흥부아내가 이웃들이 흰죽을 먹고 살아나서 '흰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노디막거리'는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부가 화초장을 지고 건넜다는 개울로 추정된다.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여있지만 개울가에는 억새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형제간의 우애, 부와 빈, 성공한 이후에도
어려웠을 시절 함께 했던 이웃을 잊지않는 겸손과 나눔의 정신을 되돌아 봄직하다.
이렇게 해서 남원 봉화산(南原 峰火山) 봄이면 철쭉바다를 이루는 백두대간 봉화산 산정에 올라보았다
철쪽꽃이 꽃바다를 이루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 조금 아쉽지만
백두대간 능선길에 발자국을 남겨보고 산행기를 마무리 해본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남원시 장수군 함양군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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