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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늑대 FORCE
의령 수도사(宜寧 修道寺).원효대사(元曉大師)님의 발길따라 수도사를 걷다 본문
의령 수도사(宜寧 修道寺)
원효대사(元曉大師)님의 발길 따라 수도사를 걷다
♣ 의령 수도사(宜寧 修道寺)
♣ 위치 :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덕암로 508-137
♣ 전화 : 055-574-2010
♣ 사찰 기행일 : 2020년 05월 25일 월요일. 날씨 : 맑음
♣ 의령 수도사(宜寧 修道寺) 개요 :
수도사는 경상남도 의령군에 위치한 절이다.
신덕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사찰로 절의 경내에는 대웅전 대신에 극락전이 있으며
그 뒤에 칠성각과 동서 양편에 요사채가 있다.
또 축대의 계단 위에는 높다랗게 누락을 올려서 만세루라 이름 지어 놓았다.
662년 신라시대 문무왕 2년에 고승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그 뒤 송운대사 유정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절의 뒷산에 흡사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가 있어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병풍바위라 하는데 당시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백여 명의 불제자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고 하며
이 때문에 절의 이름을 수도사(修道寺)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 의령 수도사(宜寧 修道寺) 찾아가는 길
진주역→→남해고속도로 군북 ic→의합대로 적포 방향→→소상로 신촌방향
→→덕암로→→수도사 주차장
44km 승용차 40분 소요
→→→→→사찰 기행 시작
산에 오르면 사찰이 있고 사찰에 가면 산이 있듯이
오늘은 관할 지역 고찰이 있다 해서 의령 용덕면 수도사를 찾아 가본다.
수도사 입구
극락교를 건너서 계단을 다라 올라가면 수도사 만세루가 수도사의 주출입문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말사이며
662년(신라 문무왕 2)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원효가 이 절 뒷산에 있는 병풍바위에서 100여 명의 제자와 함께 수도했다고 하며
이런 까닭에 절 이름을 수도사라고 불렀다.
신덕산 수도사(新德山 修道寺)
만세루(萬歲樓) 편액에는 신덕산 수도사라고 걸여 있다
만세루는 수도사의 주출입구라 생각하면 된다
수도사는 1420년(조선 세종 2) 국률(國律)과 정암(鼎巖)·유곡(柳谷) 등이 중창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유정(惟政)이 중건하였다 한다.
건물로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칠성각과 요사채·만세루 등이 있으며
절 입구에 극락교라는 석교가 남아 있다.
동쪽 산기슭에 8기의 부도가 전한다. 이 수도사 석탑 및 부도 군이
1997년 12월 31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5호로 지정되었다.
만세루(萬歲樓)
수도사의 입구로 이용되는 만세루이다
만세루의 용도는 주불 전인 대웅전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대웅전과의 연결 관계 속에서 전개된다
지금이야 예불과 같은 불교의식에 신도들도 의례히 참석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과거에는 신도들뿐만 아니라 위계가 낮은 스님들도 참석하지 못했다.
낮은 스님들은 대웅전이 아닌 주변의 부속 전각에서 의식에 참석했고
신도들 같은 경우는 만세루에서 붓다를 보며 동참했다 한다.
수도사 극락전(極樂殿)
수도사는 대웅전이 없고 극락전이 대웅전을 대신하고 있다
내부에는 석조 아마타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협시불로는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으로 조선 후기 불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본존은 결가부좌의 자세로 오른손을 다리 위에 걸치고 항마인을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다리 위에 얹고 있다.
좌협시 보살상 역시 본존과 동일한 수인이며
우협시는 좌우 손이 바뀐 모습인데
오른손 바닥에 뉴(紐)가 부착된 방형 인장으로 보이는 지물을 들고 있어 특이하다.
우협시의 경우 두부에 두건을 착용하고 어깨에는 보발이 흘러내리는 점
방형인(方形印)의 지물 등 석장이나 보주를 쥔 일반적인 지장보살상과는 차이점을 보인다.
아미타불은 머리에 이중 계주를 갖추고 방형의 얼굴과
넓은 이마 중앙에 둥근 백호를 표현하였다.
넓고 또렷한 코, 각진 콧등, 꽉 다문 입술과 양 귀는 두툼하면서도 간략하게 조각되어 있다.
착의는 편함과 오른쪽 어깨 위에 가사를 반쯤 걸친 변형 통 견식이다.
가슴은 U자상으로 노출되어 수평상의 승각기 띠가 보이며
하반신에는 군의를 입었으나 의습선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형식화되었다.
전반적으로 조선 후기 석조불상에서 보이는 형식화된 양상을 띠고 있다.
불교 문화유산인 아미타불좌상외 4점과 부처님 복장에서 발견된 묘법연화경 등
다수의 고서가 불교 자료적 가치를 지니는 귀중본이다 라고 한다.
극란전(極樂殿) 편액
수도사(修道寺) 석조여래삼존존상(石造阿彌陀如來三尊像)은
주존불인 아미타불상에서 나온 복장유물이 2002년 12월 도난당한 후
우협시인 지장보살상에서 「불상개분기(佛像改粉記)」가 발견되어
삼존상에 관련된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개분기(改粉記)」에 “성상즉위십일년병오(聖上卽位十一年丙午)”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 시기를 1786년(정조 10)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때 상단(上壇) 후불탱(後佛幀)을 조성하면서 개금불사(改金佛事)를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불상의 조성 시기는 늦어도 1786년 이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설에는 1675년(숙종 1) 조성으로 전하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고
17~18세기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한다.
수도사 석탑(石塔)
탑은 기단(基壇) 부분이 무너진 채 위태로운 모습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화강암 재질로 높이는 2.5m정도이다
기단부는 후대 보수과정에서 자연석과 콘크리트를 이용해서 지대석을 마련한후
안상이 새겨진 하층기단석 4매를 놓았다.
상층가단석은 1매로 우주와 탱주를 조각하였으나 위쪽의 갑석은 결실 되었다
수도사 석탑(石塔) 경남문화재자료 제255호
탑신은 1매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1층,3층 탑신에는 우주가 없으나
2층 탑신에는 우주가 있다.
옥개석은 1층 2층 3층 4층 모두 층받침이 없고 추녀 및 전각의 반전이 심하다
상륜부의 노반과 보주는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보주에는 연꽃봉우리 모양을 조각하였다.
수도사 석탑은 후대 어떠한 사유로 시기를 달리하는 석재들이 뒤섞여 복원이 되어있다.
즉 하층기단석과 상층기단석 2층 탐신은 동일 시기로 판단되나
그 위의 옥개석과 1층 3층 탑신은 형식이 다른 것으로 판단된다.
즉 전자는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고
1층 3층 탑신과 옥개석은 고려후기에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약수터
수도사 석탑 옆에있는 약수터이다
맑은 감로수 한모금 마시고서 원효사대님의 발길따라 도량을 걸어본다
전해져 내려오는 말로는
수도사 절의 뒷산에 흡사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가 있어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병풍바위라 하는데
당시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백여명의 불제자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고 하며
이 때문에 절의 이름을 수도사(修道寺)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찰 이름을 보면 원효대사와 관련한 사찰이 많이 보인다
내가 초발심한곳도 함안여항산에 있는 원효암이다.
칠성각(七星閣)
극락전 우측 조금 높은곳에 칠성각이 위치하고 있으며 단청은 아직
되어있지 않고 2015년 노후화된 칠성각을 개축 하였다고 한다
2017년에 칠성각 칠성탱 보수하던중 부처님 진신사리 7과가 발견 되었다고 하며
이는 일본의 문화재 약탈을 피하기 위해 1901년에 칠성각을 짓고
비밀리에 칠성탱복장속에 진신사리를 밀봉한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도사 칠성각 칠성탱은 1901년 10월 17일 점안된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통도사 말사 수도사에 따르면 의령군이 손상된 칠성탱을 수리 및 보존키 위해
대구 소재 탱화보존수리전문업체에 의뢰했는데
이 과정에서 탱화 내에 복장유물이 있는 것이 촉진되어 확인한 결과
부처님 사리 7과가 나투었다고 밝혔다.
경상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의령군, 통도사, 수도사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복장유물 진위여부를 확인했다고 하며 복장유물 확인 결과 삼베로 만들어진
사리보관함 주문(呪文)에는 일체여래비밀전신사리(一切如來秘密全身舍利)로 적혀 있었고
증명에는 평진건봉으로 되어 있다.사리와 함께 발견된 원문(願文)에는
경남 의령지역 시주불자 8명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다 한다.
산신각(山神閣)
산신각은 가파른 계단위에서 수도사 도량 전체를 내려다 보는듯 하였다
산신각 주련에는
靈山昔日如來囑 (영산석일여래촉)
옛적 영산에서 여래의 부촉을 받으시고
威鎭江山度衆生 (위진강산도중생)
강산에 위엄을 펴며 중생을 제도하시네
萬里白雲靑嶂裡 (만리백운청장리)
흰구름 만리 뻗은 깊은 산에서
雲車鶴駕任閒情 (운거학가임한정)
학이 끄는 구름 수레를 타고 한가한 정을 누리시네.
수도사 도량
宜寧修道寺甘露幀(의령수도사감로탱)은
조선 후기의 감로탱화 1폭으로, 화기에 의하면 1786년(정조 10)평삼(評三)·유성(惟性)·성윤(性允)·찰민(察敏) 등
7명의 화사가 참여하여 제작했다고 한다.
감로탱은 지옥 중생의 넋을 천도하는 반승의식(飯僧儀式)을 베풀어 극락교주 아미타불 일행이
서방정토로 인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감로탱은 다른 불화보다 민중의 모습이 다양하게 반영되고 있는데
그 전형은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확립되었다.
상주 남장사감로도(1701년)를 비롯하여 김천 직지사감로도(1724년), 하동 쌍계사감로도(1728년)
여수 흥국사감로도(1741년) 등 여러 점이 남아 있다. 수도사 감로탱은 이보다 뒤의 작품으로
2005년 1월 1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18호로 지정되었다.
비단[絹本]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크기는 세로 193.3㎝, 가로 210.3㎝이다.
화면에는 7여래(如來)와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 아귀, 지옥과 죽음 장면
그리고 현실의 모습을 담은 인물군 등을 표현하고 있다.
상단에는 극락으로 길을 인도하는 오색당번을 쥔 인로왕보살과 벽련대반을 싣고 가는 천녀들이 있고
그 향우측에는 관음과 지장을 거느린 아미타불을 포함한
7여래가 강림하는 불보살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아미타여래를 포함한 7여래는 운문에 떠받쳐진 답할연좌(踏割蓮座) 위에 나란히 서 있는데
특히 내영 형식의 아미타삼존은 상체를 약간 아래로 숙여 중생을 향해
손짓하며 강림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뒤쪽으로는 선재동자가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을 들고 서 있다.
중단에는 중앙에 성대하게 차린 공양상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았고
그 아래 두 아귀를 두고 작법을 거행하는 승중(僧衆)과 왕후장상 및 왕후궁녀 등을 두었다.
하단에는 욕계의 여러 장면을 구성지게 배치하였는데
뇌신(雷神)을 비롯해 갖가지 죽음 장면과 지옥의 모습
그리고 현실세계의 고통어린 모습 등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 가운데 병자가 고통 받아 누워 있는 모습, 머리채를 휘어잡고 부부가 싸우는 모습
화재로 인해 불 속에서 고통 받는 민초, 무녀가 굿하는 모습, 탈춤 추는 모습
긴 나무 위에서 곡예를 하는 모습, 벼랑에서 약초를 캐다가 떨어지는 심마니의 모습
물살에 휩쓸리는 모습이 있고, 갖가지 죽음의 장면으로는 수레에 깔려 죽는 모습
말에 깔려 죽는 모습, 호랑이를 만나 죽음을 당한 모습
말을 타고 화살·방패·총을 들고 전쟁하는 모습 등이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당시의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수도사 모감주 나무
의령삼부자와 인연한 모감주나무와 배나무 전설
1786년 감로탱 불사에 의령 삼부자 삼성 금성 효성의 선대인 이씨 구씨 조씨가 불사를 참여한 후
기념식수로 부처님 당시 염불수행의 상징인 모감주나무를 극락전뒤에 식수하고
용왕의 보은과 부귀의 상징인 배나무를 샘터뒤에 식재 하였다고 하며
모감주나무와 배나무에 기도하면 소원을 성취하고 부귀해진다고 한다.
가야 초전불교 성지 칠왕소(七王沼)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김수로왕 7왕자가 장유화상을 따라 합천 가야산 의령 수도산
사천 와룡산에서 수행을 하고 지리산 칠불사에서 성불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신덕산 협곡에 암반을 따라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선불탕(仙佛湯)이 있는데
아주 오랜 옛날부터 스님들이 목욕재계하고 수행하던 곳으로 속인들도 달밤에 몰래 목욕을 하여
소원성취 했다는 전설이 있다.
1980년경 댐을 막아서 연못이 되었고 2018년 덕운스님이 방생법회장을 조성하면서 가락국
7왕자가 수행을 하고 성불한 인연을 기리기 위하여 칠왕소라 명명 하였다.
의령 수도사 도량 모습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662년(문무왕 2)에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3칸의 극락전을 중심으로 그 뒤에 칠성각이 있고
좌우에는 요사채, 앞쪽에는 만세루(萬歲樓)가 있다.
또 절 입구에는 극락교(極樂橋)라고 명명된 석교가 있다.
5층석탑과 동쪽 산기슭에는 8기의 부도(浮屠)가 있다.
이 절은 의령군 안에서 유일하게 옛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찰이며
주변의 산세 및 경관이 빼어나서 여름철에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의령 수도사(宜寧 修道寺).원효대사(元曉大師)님의 발길따라 수도사 도량을 걸어보면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와 문화재를 보고 느끼면서 사찰기행을 마무리 해본다.
※인용글 :
자료 인터넷사전 및 통도사 홈페이지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사전 ,전통사찰관광정보, 문화재청, 의령군 홈페이지 자료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및 사찰종무소스님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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