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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서북산(咸安 西北山).6.25전쟁 아픔을 찾아 서북산 산정에 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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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서북산(咸安 西北山).6.25전쟁 아픔을 찾아 서북산 산정에 서다

바다늑대FORCE 2020. 6. 5. 00:00

 

함안 서북산(咸安 西北山). 6.25 전쟁 아픔을 찾아 서북산 산정에 서다

 

▲ 함안 서북산(咸安 西北山)

높이 : 738.5m

위치 : 경남 함안군 여항면과 마산합포구 진북면에 걸쳐 있는 산

 

▲ 나의 산행일 :

   2020년 06월 03일 수요일. 날씨 : 약간 흐림

 

▲ 나의 산행코스 :

마산 진동 진고개 가든 휴게소→→임도→→선바위→→봉곡 갈림길→→서북산 갈림길→→봉화산

서북산 갈림길 →→청암 갈림길 →→대부산(649.2m)→→버드내 갈림길→→서북산(원점회귀)

8.8km 6시간 20분 소요.

 

▲ 함안 서북산(咸安 西北山) 개요 :

서북 산은 역사의 산이다. 정상에 세워진 안내문에 따르면 낙동강 방어 전투가 치열했던

1950년 8월 미 25사단 5 연대 중대장이었던 로버트 티몬스 대위 등 연합군이 인민군과 격전을 벌인 곳이다.

전투는 산의 주인이 19번 바뀔 정도로 치열했다 한다.

북한 인민군이 퇴각하면서 전투는 끝났지만 티몬스 대위는 이 산에서 전사했다.

전투가 끝나고 이 산을 떠나던 미군은 너무 많은 군인이 전사하자 진절머리가 나

갓뎀 마운틴( God Damn mountain 신이 저주한 산)'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그 당시 지역 사람들은 미군들이 갓뎀 마운틴을 갓 데미 라 알아 들었고 지금도 갓데미산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이후 1994년에 그의 아들 리처드 티몬스가 주한 미 8군 사령관이 되어 한국에 와

서북산에 흩어진 아버지와 미군의 유해를 발굴했다.

전적비에는 '티몬스 대위 외 100여 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리처드 티몬스 중장과

제39사단장 하재평 소장을 비롯한 사단 장병 및 지역 주민들의 뜻을 모아

1995년 11월 전적비를 건립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 함안 서북산(咸安 西北山) 등산지도

 

 

▲ 산행지 찾아가는 길

진주역→→가호 방아길→→진마대로→→마산 진동 간 도로 함안방향→→진고개 가든 휴게소 주차장

승용차 48km 40분 소요.

 

→→→→→2020년 06월 03일 수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산을 찾아 오늘도 길을 나서본다

봉화산 산정에서 다시 되돌아가 서북산으로 걸어본다

서북산은 여항산과 더불어 낙남정맥 구간이며 특히 6.25 전쟁 당시 미군들이 많은 전사자가

나온 곳이며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산이다

2020년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조국의 지키다 산화하신 이곳

서북산을 걸으면서 뜻을 되새겨 본다.

여항산 등산 안내도

경남 함안군 여항면 진함로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경계지점에 있는 등산안내표지목이다

일반적으로 산행자들은 낙남정맥 종주 코스로 이용되는 지점이며

여항산 서북산 봉화산을 연계 산행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여름은 금계국이 여기저기에 만개하여 산하는 노랗게 물들었다.

금계국은 북아메리카 원산의 원예식물로 심어 기르는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이다. 

줄기는 곧추서고 높이 30-60cm이며 잎은 마주나며, 1회 깃꼴로 갈라지고

갈래는 타원형 또는 난형이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줄기 아래쪽 잎은 잎자루가 있다. 

꽃은 6-8월에 줄기와 가지 끝에 머리 모양 꽃차례가 1개씩 달리고 지름 2.5-5.0cm이며 노란색이다. 

모인 꽃 싸개 조각은 2줄로 배열되며, 바깥 조각은 선형으로 녹색이고 안쪽 조각은 넓은 타원형으로 갈색이다. 

혀 모양 꽃은 8개이며, 꽃부리 끝이 5갈래로 갈라지며 관 모양 꽃은 노란 갈색이고 열매는 수과이다.

임도

진고개 가든 휴게소에서 들머리를 해서 서북산 가는 길은 임도를 한참 걸어야 한다

임도 입구에는 차량통행금지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어 차량 운행은 불가하다

서북산은 여항산과 더불어 미 25사단 5 연대의 낙동강 전투 방어를 한 곳이다

미군들은 먼 타국에서 평화를 위해 젊은 피를 바친 곳 이기도하다

지금은 주적이 북한이란 개념도 없고 오히려 반미가 더한 현재에 살고 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임도이지만 그 당시엔 임도도 없었지만 낙동강 방어를 위해

북한 인민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그 당시 낙동강 방어를 위해 희생한 국군과 미군이 없었더라면 지금 나는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줄딸기

줄딸기가 탐스럽게 익어 손을 내밀게 만들었다

우리는 흔히 산속에서 만나는 딸기를 구분 없이 그냥 `산딸기`라 부르지만

산속의 딸기도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진짜 산딸기 외에도 줄딸기, 수리딸기, 장딸기, 곰딸기

섬 딸기 등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딸기들이 많이 있다

줄딸기는 덩굴딸기, 덤불 딸기라고도 불리는데 5월에 꽃을 피우고

7월부터 8월 사이에 붉은 열매를 맺는데 꽃이 피어 있을 때는 식견이 있는 사람만 알아보지만

열매가 익었을 때는 누구나 알아보고 손을 가져간다

온몸이 땀으로 젖는 여름 산행 중간에 먹는 붉은색 줄딸기의 새콤달콤한 맛은

목마름도 축여주고 가히 예술이라 할 수 있다.

6.25 전쟁 당시 여름에도 국군과 미군들도 손 내밀어  따 먹어을 것이다.

한치 삼거리

여기서 서북산 가지는 2.6km이다 라고 안내되어 있다

경남 여항면 청암마을 거리는 3.3km이며

여항면 청암은 여항면 사무소가 자리 잡고 있는 마을 이름일 행정상 청암(淸岩)이라고 하나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 바구(犬岩)라고 부르고 있다. 

개 바구(犬岩)는 풍수지리설에 기인된 것으로 마을 앞산 모양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개모양일 뿐 아니라 마을과 마주보는 산중턱에 바위돌이 줄지어 있는데

이 부분은 개 이빨의 모양을 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연히 이 마을을 "개바위가 있는 마을"로 통용하여

그대로 마을 명칭이 "개바구"로 불리웠다고 한다. 

지금도 이 동네 주민들은 개 이빨을 감추면 마을이 발전하다고 하여 

바위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잘 보호하고 있다고 전한다.

개복숭아

서북산으로 가는 산행로 주변엔 이렇게 개북숭아가 많이 있었다

개복숭아는 돌복숭아 또는 산복숭아로 불리우며 신맛이 강하다

개복숭아는 간 기관지 관련 질환 그리고 다이어트 변비 뼈에 좋다고 전한다

개복숭아는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해서 독소와 유해물질을 체외로

배출시켜주는 효능이 있어 간기능을 개선하고 보호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다

또 기관지염 천식 기침에 효과가 있고 산성화 되기쉬운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

시켜 준다고 하며 섬유질이 풍부해 장운동을 촉진하여 변비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개복숭아는 아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은 의사와 상담후 먹어야 한다고 한다.

대부산 649.2m

서북산으로 가는 봉우리 하나가 대부산이다

대부산은 경남 함안군 여항면 주동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부산은 낙남정맥 구간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이다

여항면 주동리에 있는 주주골(主主谷)이라 부르는 골짜기의

제일 끝 부분에 위치한 마을 이름이 별천(別川)이다.

이 지명의 유래는 조선시대 정한강(鄭寒岡)선생이 이곳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별천지(別天地)라고 불리운데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또한 여항면 주서리를 옛날에는 금계동(錦溪洞)니아도 하였는데

이는 조선 영조때 선무랑 벼슬을 지낸 금계(錦溪) 강유환(姜有煥)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서

선생은 어렸을때 종이를 사서 붓글씨를 연습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여

시냇가에 나와 종이 대신 자연석에다 글씨 연습을 하였다 한다.

학문에 열중한 결과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말년에는 이곳에 서원을 지어 후진을 양성하였다고 전해지며

그 때 선생이 커다란 자연석에 "(錦溪洞)"이라는 글씨를 남겼다.

그 이후 사람들은 주서리를 금계동(錦溪洞)이라 불렀고

주서리 앞에 흐르는 개울을 금계천(錦溪川)이라 했다

선생이 쓴 비석은 현재 주서리 교회 옆에 남아 있다.

서북산1.4km 안내 표지목

녹은이 짙은 능선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해본다.

6.25전쟁 당시 무더운 여름날 숨고르기를 위해 잠시 쉴수있는 틈이 있을 을까

낙동강방어를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인데 쉴틈이나 있었겠나 생각해본다

여항산을 거쳐 서북산(西北山·738.5m)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6·25 때 대단한 격전지로서

마 함락 위기 상황을 막아낸 곳이며 아마 여항산~서북산 전선이 무너졌더라면

오늘날의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왜적과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충열공 고종후 장군의 신도비도 고갯마루에 있으며

결국 한반도를 지켜낸 영혼들이 숨 쉬는 산줄기인 곳이다.

자주색 쥐깨풀

시원한 그늘아래 자주색으로 피어난 쥐깨풀이 6.25 전쟁 젊은 영혼처럼

편안히 쉬고 있는 듯하다

산야에 핀 야생화 하나에도 젊은 영혼들이 꽃을 피운듯 하다

어찌 그들의 희생을 잊을수 있겠는가 우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흰씀바귀

씀바귀는 유사종이 많는데 그 중 흰색 꽃이 피는 흰씀바귀이다.

씀바귀는 지방에 따라 씸배나물, 씸바구, 싸난부리라고 하는데

싸난부리는 '싸납고 쓴맛을 가진 뿌리'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으로 여겨wlsek

그만큼 뿌리에도 쓴맛이 강해 찬으로 먹으려면 여러번 삶아 쓴 물을 뺀 뒤

양념장으로 버무려야 한다.

진북면과 학동저수지 조망

참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것 역시 나무이며  나무 간격이 조금 벌어지더라도

건너편으로 보이는 것 역시 숲 우거진 산봉 산릉이었다.

숲으로 우거진 낙남정맥은 이렇게 조망의 즐거움에는 산에 오르지 않고는 모른다

산길은 산꾼만의 세상, 걷는 자만의 세상이며 주변의 소나무 참나무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자라듯이 우리도 자유다.

이렇게 자유를 준 사람들은 낙동강 방어선 지키기위해 산화한 국군과 미군들이다

마산전투는 1950년8월2일부터 9월14일까지 계속되었으며

마산을 점령하려는 북한 이니민군 그리고 그것을 방어하는 국군과 미군 사이의 전투이며

낙동강 전역 최남단에 속하는 지역이며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터전을 마련한곳이다.

 

버드내 갈림길

서북산 까지는 0.9km거리에 있는 버드내 삼거리이다

미천까지는5.3km 이며 미천이란 지명은 옛날 아홉고개라 했다고 전한다.

산서(山西)의 평암리 미천 마을에서 동족으로 25km 가면 주서리 별천 마을로

넘어가는 길목인 고개를 을문(乙門) 또는 아홉고개라 한다.

을문이라 함은 옛날 함안읍(咸安邑)과 산서(山西])사이에 관문 이었던 부제(阜濟)라는

고개에서 산서를 쳐다보면 소재지의 형세가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천간(天干)중 을(乙)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을문(乙門)이라 하였고

이 을문을 산서문(山西門)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아홉고개는 아홉 살이 고개라고도 하는데 산동(山東)과 산서(山西)를 연결하는

옛길로서 아홉 개의 산 봉우리에 아홉구비의 길이 있어 그렇게 불렀으며

몇 년전 까지도 통행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사용치 않고 있다.

버드내는 옛날에는 "유천(柳川)" 마을이라고 하였다. 

이는 마을 주변에 개울이 흐르고 버드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다시 말해 시내가에 버드나무가 많은 동네를 

버들동네 → 버들내 → 버드내 → 「뻐든」으로 불렀고 하천을 중심으로 

위쪽을 있는 마을을 "버들이 있는 하천 윗동네"라는 뜻으로 

상버들내 → 상뻐든내 → 「상벌내」로 되었고

위와 같이 버들이 있는 하천 아랫동네를 「하벌내」라고 하였다.

소나무와 철쪽나무

서묵산으로 가는 길목에 커다란 소나무 사이에 이렇게 철쭉나무가 자라고 있다

너그러운 소나무는 가지사이 자리하나 내어주었다.

숲에서만 볼수 있는 모습이다 이렇듯 자연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세상은 서로다른 이념 서로다른 종교 때문에 피를 흘리고 있다

저 소나무처럼 배려해주고 작은거 하나 서로 양보해 준다면 전쟁이라는 단어가 있을까

6.25전쟁은 소련의 지원으로 군사력을 키운 북한이

38˚선 전역에서 남침하여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였다.
국군은 북한의 앞선 병력과 무기에 밀려 한달만에 낙동강 부근까지 후퇴하였다.

이어 미국 주도로 유엔 안전 보상 이사회가 열려 유엔군이 파병되었다.

유엔군의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을 되찾고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

하지만 북한의 요청으로 중국군이 개입하자 다시 서울을 빼앗겼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전투가 계속되었다.
3년 동안의 전쟁으로 인명 피해가 약 450만 명에 달하고

남한의 43%의 산업 시설과 33%의 주택이 파괴되었다. 

 

꿀풀

서북산 탐방로 주변은 이렇게 꿀풀이 지천에 피어 있다

보라색으로 서북산을 꾸며주고 있었다

꿀풀은 다년생 초본으로 근경이나 종자로 번식하고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지나 들에서 자란라고 있는 식물이다. 근경에서 모여 나는 원줄기는

높이 15~30cm 정도이고 네모가 지며 전체에 흰털이 있다.

근생엽은 모여 나며 마주나는 경생엽의 잎몸은 길이 2~5cm 정도의 긴 타원형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잎자루는 길이 1~3cm 정도이지만 위로 갈수록 없어진다.

5~7월에 개화하며 수상꽃차례에 피는 꽃은 적자색이다.

분과는 길이 1.6mm 정도의 타원형으로 황갈색이다.

화관은 길이 약 2cm이며 수술대는 돌기가 있고 꽃이 질 때에 포복지가 나온다.

약용, 관상용, 밀원용으로 심는다. 봄에 연한 잎과 줄기를 삶아

나물로 먹거나 잎을 데쳐서 된장이나 간장에 무쳐 먹는다.

싱싱한 꽃은 샐러드, 튀김, 볶음으로 식용한다.

 

서북산 산정

서북산 산정에서 진동만을 바라보았다

새소리 연이어 들여오고 산하에는 평화롭긴만 하다

이런 평화를 여항산과 서북산에서 뼈를 묻은 국군과 미군들의 희생에서 나온것이다.

서북산 이란 이 산은 낙동강 방어 전투가 치열했던 1950년 8월 미 25사단 5연대

중대장이었던 로버트 티몬스 대위 등 연합군이 인민군과 격전을 벌인 곳이다.

전투는 산의 주인이 19번 바뀔 정도로 치열했다.

인민군이 퇴각하면서 전투는 끝났지만 티몬스 대위는 이 산에서 전사했다.

서북산 전적비

서북산 산정에 있는 서북산 전적비이다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낙동강 방어의 치열했던 이곳에 잠든

국군 그리고 미군들에게 잠시 예를 올려본다

6.25전쟁이 휴전한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은 핵무장으로 재장전 하고 있다

우리의 이리부는 반미구호를 외치고 있다.

1950년 8월 미군과 국군은 마산 일대를 사수해야 했고 마산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해 

북한군이 부산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총력을 쏟았다. 

북한군 역시 진격하고자 총공세를 퍼부었고 9월 14일까지 45일간 밤낮없이

전투가 이어진 가운데 서북산 정상 주인은 19차례나 바뀌었다. 

결국 미 제25사단 제5연대가 북한군을 격퇴하며 유엔군의 총반격이 가능케 됐다. 

그러나 많은 병사들이 숨지는 등 엄청난 희생도 뒤따랐다.

 

서북산 전적비 뒷면의 글

이곳 서북산 전투는 6.25 한국전쟁 중 낙동강 방어전투가

치열했던 50년 8월에 미 25시단 예하 제5연대 전투단이

북괴군을 격퇴하여 유엔군의 총반격작전을 가능케 하였던 격전지 이며

이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중대장 티몬스대위외 100여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 아들 주한8군 사령관 리챠드 티몬스 중장과 제39사단장 하재평 소방을 비롯한

사단 장병 및 지역주민들이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1995.11.

우측은 영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티몬스 대위는 대를 이어 대한민국 수호를 하고있는 셈이다.

 

서북산 전적비 안내판

이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용렬히 산화한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2013년 11월29일 이 비를 현충시설로 지정했습니다

라고 안내 되어 있다.

70년이 지난 지금 전쟁의 폐허속에서 우리는 G20 국가로서 성장했다

이제는 G7에서도 손을 내밀 정도의 국가이다

자유수호를 위해 머나먼 이국땅에서 산화한 미군들이 넋이 고서란히

서북산 산정에 서려 있는곳이다

함께 가야할 한 민족이지만 북한 그들은 6.25 전이나 지금도 변함이 없고

일부이지만 반미구호를 외치고 주사파 학생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묻고싶다.

서북산 산정(西北山 山頂)738.5m

초여름 뜨거운 햇살과 함께 서북산 산정에 올랐다

70년전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날이 무더웠던 8월 이였다

산정에는 70년전의 미군들의 희생된 곳이며 바위에도 총탄 흔적과 미군들이 사용했던 군수물의

흔적이 있는곳이다.

낙동강 방어전투는 국가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국면에서 최대의 위기를 극복하고

오히려 공세 이전의 기틀을 마련한 작전이었다.

개전 후 국군은 북한군 기습공격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유엔군의 참전 지원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전력의 열세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하여 1950년 8월 1일에는 낙동강 선까지 후퇴하였다.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부산 점령을 목표로 한 북한군 그들의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낙동강 방어선에서 격퇴하게 되었다.

즉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의 집중 공격을 받은 마산·대구·경주 축선을 고수하여

국토의 약 10%에 불과한 부산교두보를 간신히 확보한 선에서 북한군의 전쟁목표를 분쇄하고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공세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총력전이 시기 이승만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정부와 국민들은 낙동강 방어선낙동강 방어선에서

강한 국가수호의 의지를 보여 주었으며, 또한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의 지원은 국민으로 하여금

전의를 고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서북산 산정(西北山 山頂)738.5m

서북산은 이렇게 6.25전쟁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서북산은 낙동강 방어 전투 격전지 이며

낙동강 방어전투는 세계 공산주의의 자유세계에 대한 위협을 낙동강일대에서

성공적으로 봉쇄한 작전이었다.

유엔의 집단안전보장조치에 의한 유엔군의 참전은 세계역사상 최초의 사례였으며

우리나라 공산주의의 위협을 막아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렇게 서북산 산하를 걸어면서 6.25전쟁 아픔을 가슴에 되새겨 보고 안보관을 심어본다

이렇게 해서 서북산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함안군 여항면 창원시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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