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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하늘먼당.안점산 봉수대길을 따라 와룡산 하늘먼당에 오르다

바다늑대FORCE 2020. 4. 1. 18:22


사천 하늘먼당

안점산 봉수대길을 따라 와룡산 하늘먼당에 오르다


▲ 사천 하늘먼당

   높이 : 566m

   위치 : 경남 사천시 용현면에 걸쳐있는 와룡산 하나의 봉우리


▲ 나의산행일 : 2020년04월01일 수요일. 날씨: 맑음 미세먼지 조금


▲ 나의 산행코스 :

   약수암→→봉수대→→조망바위→→선바위→→봉두산→→돌탑 →→하늘먼당

  (원점회귀) 8.2km  3시간40분 소요


▲ 하늘먼당 개요 :

경남 사천시 용현면에 있는 하늘먼당은 와룡산의 한봉우리로서

낙남와룡지맥의 한 능선속하고 용현면 약수암에서 들머리를 하여 등산하면

봉두산 봉화대까지 급경사를 이루는 매우 가파런 탐방로이며

하늘먼당 가는길 군데군데 암봉이 일품이며 봄에는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등산하다 조망되는 사천바다 조망도 일품인 산행코스이다

대부분 산행자들은 와룡산 종주 코스로 이용되는 구간중 하나이며

하늘먼당은 낙남와룡지맥에 속하며

낙남정맥이 지리산 영신봉에서 흘러내려 남강과 경남 남해안을 구분지으며 대체적으로 동진을 하며

금오지맥 등 많은 산줄기를 분기하며 흐르다 경남 고성군 대가면 상리면 고성읍의 경계점에 위치한

낙남정맥에서 제일 남쪽으로 내려온 대곡산(542.9m)에서 3개의 산줄기가 분기하여

북쪽으로는 낙남정맥이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상리면과 고성읍의 경계를 따라 와룡산으로 연결이 되는

낙남와룡지맥이 흐르고 다른 한줄기가 동쪽으로 분기하여 벽방산으로 연결이 되는 낙남통영지맥이 흐른다

이중 낙남와룡지맥의 산이름이 있게한 와룡산(798.6m) 민재봉 북측 약0.3km지점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사천시와 사남면의 경계를 따라 북진하여 백천재(470m)-등고선상 550봉에서 

용현면과 사남면의 경계를 따라 용유고개 임도-명지재(390)에서

올라간 하늘먼당(570m)에서 북동방향으로 구룡산(389m)으로 가는 여맥산줄기를 떨구고 서북진한다

선바위(450m)-봉대산(466m)-도면상 봉대산(안점산 봉수대 250m)-약수암뒷능선 1번군도

가내지북측 등산로 입구-3번국도 용남중고교37.7봉-용현면 선진리 통양보건진료소

촌마을-화곡마을 32.2봉을 지나 남해바다 법도 북측 돌출된 육지끝에서

끝나는 약13.9km의 산줄기를 말한다 .

 


▲ 하늘먼당 산행지도




▲ 산행지 찾아가는길

 진주역→→진주대로 사천 고성방향→→사천대로 시청 방향→→안점봉수대길→→약수암주차장

17km  승용차30분소요




→→→→→2020년4월01일 수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산을 찾아 오늘도 길을 나선다

어제 밤에도 비가 내리고 오늘 아침까지 비가내려서 먼지를 잠재워 주었다

사천 와룡산의 한 능선인 하늘먼당으로 길을 나서본다

하늘먼당이란 이름이 진짜 고유의 우리말이며 그 고유의 이름따라

하늘먼당 산행길에 올라본다.


하늘먼당 들머리

경남 사천시 용현면 안점봉수대길 246(지번) 용현면 신복리 산 4

네비게이션 검색하면 사천 약수암으로 안내한다

약수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서 약수암 사천왕문 가기전 우측에 와룡산 산행 안내표지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진주에서 오면 사천에서 삼천포간 구도로를 따라 가면

도로 좌측편에 와룡산 입구와 약수암 입구 표지가 있다

하늘먼당은 와룡산의 한 능선의 봉우리 인데

와룡산(臥龍山)은 용이 엎드려 있는 산의 형상에서 유래했다.

와룡산 지명의 유래와 관련된 또 다른 와룡은 안종(安宗) 욱(郁)이다.

려 태조 왕건의 여덟째 아들 욱(郁)은 문장에도 밝았지만 지리에도 정통하여 유배지 사수현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와룡산 지기(地氣)의 영험(靈驗)함에 부합하고자 아들에게 당부하였다.

욱은 일찍이 현종에게 금(金) 한 주머니를 몰래 주면서 "내가 죽거든 이 금을 지관에게 주고

나를 고을 성황당 남쪽 귀룡동(歸龍洞)에 장사하여라. 그리고 반드시 엎어서 묻도록 하라."라고 유언하였다.

안종 욱 자신이 와룡산의 엎드린 용이 된 것이다. 그는 용두가 아니라 용꼬리에 묻혀서 용으로 승천하였던 것이다.

아들 현종이 왕위에 올라 아버지 안종 욱을 효목대왕으로 추존하였던 것이니 승천하여, 곧 죽어서 임금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새섬봉과 상사바위·기차바위·민재봉 등의 암봉이 부드러운 능선길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주봉인 민재봉에 오르면 한려수도와 남해의 크고 작은 섬과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의 남쪽 와룡골에는 고려 현종의 등극과 관련이 있다는 와룡사와 백천사·백룡사·적선사 등의 사찰터가 남아 있다.


초입구간

약수암에서의 초입구간은 대부분 가파른 탐방로이다

4월1일 봄기운이 만연하다

산아래의 잡목에는 새싹이 파릇하고 여기저기 새소리 지저기고 있다

봄바람에 벚꽃이 휘날리어 탐방로 주변에 꽃가루 처럼 뿌려진다

소나무숲 솔향기 가득하고 삼천포 바다내음 까지 한줌 더하는것 같다


복분자꽃

너무 따스한 탓일까 탐방로 옆 복분자 넝쿨에 벌서 꽃을 피웠다

복분자(覆盆子)라는 말은 ‘동이를 뒤엎어 버리는 열매’라는 뜻이다.

동이를 지금은 쓰지 않는 요강으로 해석하여 뜻을 깊이 새겨보면

열매를 먹은 다음은 오줌발이 강해져 요강이 뒤집어질 정도라는 것이다.

속설에 오줌 줄기의 세기는 바로 정력과 관계된다.

그래서 이름으로 본 복분자는 정력의 화신이다.
정력에 좋다면 굼벵이부터 잠자는 개구리까지 몽땅 다 먹어 치우는 세상이다.

렇다면 복분자는 과연 기막힌 정력제일까? 우선 《동의보감》을 살펴보자.

“남자의 정력이 약하고 정(精)이 고갈된 것과 여자가 임신되지 않는 것을 치료한다.

또한 간을 보하며 눈을 밝게 하고 기운을 도와 몸을 가뿐하게 하며 머리털이 희어지지 않게 한다”라고 했다.

산림경제 제4권 〈치약(治藥)〉 편에도 “5월경 반쯤 익은 것을 따서 뜨거운 햇볕에 말린다.

껍질과 꼭지를 없애버리고 술을 담가 먹으면 신장의 정기를 보호하고 소변이 잘 나오게 한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미루어 보아 오늘날의 비아그라 같은 당장의 효과가 나타나는 담방 약은 아니더라도

정력에 좋은 영향을 주는 약재로 이용된 것만은 틀림없다.



첫번째 안내표지목 하늘먼당3.8km 그리고 하늘먼당 초석

초석에는 하늘먼당이란 詩한편이 있다

하늘먼당 (문인섭)

가슴 시린 자유와

푸른미소를 머금으며

숨쉴 수 있는 이곳.

외롭지만 행복한 이 느낌

우리에게는

즐거운 만남이 있고

고독한 낭만이 있고

또 우리에게는

사람들이 그린 이야기들을

마음속에 담을 수 있는 곳.

넉넉함으로 가득한

그대 만큼이나 아름다움을 닮아가고픈

우니네들.

그대와 함께한

오묘한 자연의 소중함을

아니온 듯 마음가득 추억담아 가소서.

2007.3 하늘먼당 동우회



팔각정 쉼터

안점산 봉수대 아래 있는 팔각정 쉼터이다

약수암에서 여기까지의 탐방로는45도 각도의 가파른 산길이였다

초장부터 힘을 쪽 빼놓는 길이였다 걸어온길 뒤돌아 보면서 숨고르기를 해본다

산아래 용현면 신복리는 신복 서쪽 국도변에 위치한 마을로써 약 400여년전 임란 공신인 경주인 이잠 이후

입사천 후손들이 낮으막한 언덕을 개간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하여

뻔득물이라고 불리어 오다가 1907년 지방행정구역 정리시의 기록상에는 평기동으로 되어 있으나

간간히 '뻔득몰' 또는 '뻔득머리'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사천 안점산 봉수대 (泗川安岾山烽燧臺)비()

지금은 안점산이란 이름은 없고 봉대산이란 이름이 있으며

산아래 약수암도 봉대산 약수암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아마도 예전 이름인가 보다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에 있는 조선시대 안점산 정상에 위치한 봉수대이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175호 이다.

와룡산(臥龍山)에서 뻗어 내린 해발 310m의 끝 봉우리에 둘레 100m 정도의 석축을 두르고

그 내부에 화덕 시설을 한 것으로 추정되나. 그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봉수대 뒤편에는 당시 봉수군의 숙소로 추정되는 집터가 잔존하고 있다.

안점산 봉수대는 남해안에 위치한 간봉(間烽)이며, 남으로 삼천포 각산(角山)봉수와 응답하고

북으로는 망진산(望晉山)봉수에 상응하며, 삼천포진성(三天浦鎭城)과 관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수제도는 고려 의종 3년에 서북병마사 조진약(曺晉若)의 주청에 의하여 처음 시작되었고

세종 원년(1419)에는 봉수령을 제정 군사제도로 정착되었다.

봉화방법은 밤에는 불로, 낮에는 연기로 하였으며, 신호체계는 아무일이 없을 때에는 1거(炬)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2거, 해안에 가까이 오면 3거, 우리 병선과 접전하면 4거, 육지에 상륙하면 5거로 하였다.

이러한 신호는 즉각 오장이 각 지방 수령에게 보고하였고

서울에서는 병조에서 관장하여 승정원에 보고, 임금께 상주되었다.


安岾山烽燧臺 石築(안점산봉수대 석축) 

봉수대를 석축으로 둘러 마치 돌담같이 보이기도 했다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는 한사람 정도 들어갈 정도로 입구가 협소하다

안점산 봉수대는 사천시 용현면 신복리와 사남면 화전리의 경계인 안점산(鞍岾山)에 위치하는데

이 봉수는 고려 때 봉수인 침지(針枝)및 성황당(城隍堂) 봉수를 폐지하고 조선 세종 때 새로 설치한 봉수이다.

와룡산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의 끝자락 봉우리인 해발 310m 상봉에 봉수대와

둘레 약 100m의 성지(城址)가 있다. 남쪽으로는 각산(角山) 봉수와 마주 응답하고 북쪽으로는

진주의 망진산(望晋山) 봉수와 서로 마주보며 응답했다.

세종 4년(1422) 8월, 봉수하는 장소에 높게 연대(煙臺)를 쌓고

활 쏘는 집(궁가,弓家)과 화포와 병기를 설치하여 밤낮으로 그 위에서적의 변동을 관망하였으며

봉수군 245명을 두었다고 기록에 전한다. 봉수(봉화)라 함은 사방의 관망이 좋은 산위에다 일정한 장소를 정하여

횃불을 올리는 것을 말하며, 고대(古代) 통신 방법의 하나로 인편(人便)에 의한 방법 외에

높은 산에 올라가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법으로 정하여 실시한 시기는 고려 의종(毅宗) 3년(1149)부터라 한다


安岾山烽燧臺(안점산봉수대) 내부

내부에는 봉수대가 4기가 있었다 봉수대가 있는 산에 올라보면 대부분 큰 봉화대 인데

사천 안점산 봉수대는 작은 봉화대가 4기가 있는게 특이 하였다

봉수의 방법은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하되 평상시는 한번 올리고 2급(急) 시는 두번

3급시는 세번, 4급시는 네 번씩 올렸다.

조선에서는 세종 때 정식으로 봉수제도를 마련하였는데 평시에는 횃불을 한 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3개, 국경을 넘어오면 4개, 접전을 하면 5개를 올렸다.

만약 구름이 끼거나 바람이 불어서 연락이 불가능 할 때는 봉졸(烽卒:봉군)이 차례로 달려서 보고하였다.

각 봉수대의 인원은 연해(沿海)와 변경지방은 군사 10명, 오장(伍長) 2명씩을 두었는데

이들은 봉화대 근처에 사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리고 봉화대에 배치되는 봉군은 다른 군역(軍役)에 종사할 수 없으며 오직 망보는 일에만 종사하게 했다.

봉화대는 표주(標柱)를 세워 경계를 설정하고 무당이나 토속신앙에 의한 잡신제사를 일절 금했다.

당시 봉수망의 종점은 서울 남산(목멱산)에 있었으며 간선(幹線)을 직봉(直烽)이라 하고

보조선을 간봉(間烽)이라 했다. 그런데 이 봉화를 옛날에는 승냥이의 똥으로 태웠다고 하는데

승냥이 똥에는 인(燐)이 많이 섞여 있어서 불빛이 푸르고 밤에는 더욱 멀리 보이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기나 기상관계로 봉화를 올릴 수 없을 때에는

봉군(烽軍)이 직접 뛰어가서 전하기도 하였다. 


 

하늘먼당 안내표지목2.9km

향기로운 꽃향기 맡아가며 걸온길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여기에는 소나무는 수입종 리기다소나무가 대부분이였다

리기다 소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상록 비늘잎 큰키나무로 우리나라 각지에 식재되어 자란다.

높이 25m, 지름 1m에 달하며, 가지가 넓게 퍼지고, 햇가지는 매해 2-3개씩 곁가지를 치며 자란다.

수피는 붉은 갈색이고 깊게 터진다. 바늘잎은 3개씩 모여 나고, 길이 7-14cm, 폭 2mm, 비틀어진다.

잎은 가지 아래까지 난다. 암솔방울과 수솔방울은 5월에 암수한그루에 핀다.

구과는 햇가지의 옆면에 3-5개씩 달리고, 다음해 10월에 갈색으로 익으며

씨가 날아간 다음에도 오랫동안 가지에 붙어 있다. 씨는 난형, 길이 4mm, 지름 2.5mm, 진한 밤색이다.

북아메리카 동부가 원산지로, 자생지의 위도와 기후가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척박한 토양에 조림하여도 비교적 잘 자라기 때문에 국내에는 한국전쟁 이후의

황폐지 조림과 산사태 방지를 위한 사방수종으로 널리 식재하였다.

조림지 분포 면적은 충청남도, 경기도, 전라남도 순으로 넓으며

조림 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자생 참나무류가 우점하는 천이 경향을 보이고 있다


조망바위

시원한 봄바람을 한아름 안아본다

저멀리 사천 앞바다가 발아래 펼쳐보이고 있다

泗川灣(사천만)남부해안에서 북쪽으로 깊숙이 만입되어 사천시를 동서로 갈라놓았다.

청정수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백천과 죽천이 만 안으로 유입되며

이 일대는 선상지로 사면에는 저수지가 축조되고 선정에는 용수원을 따라 취락이 입지한다.

지질은 사천시의 북쪽을 경계로 동쪽은 하양층군, 서쪽은 신동층군이 분포하고

남쪽의 산지는 불국사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을 중심으로 온난습윤한 난대성 기후를 나타내며

1월평균기온은 5℃ 내외, 8월평균기온은 26℃ 내외로 연교차가 크지 않다.

용현면 선진리 어장을 중심으로 모래무지·문어·굴·전복·백합·꼬막·바지락 등의 어패류가 많이 잡힌다.

사천만의 동서해안에는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와 고인돌·석관묘·선돌 등 청동기시대 유적이 산재해 있다.

예로부터 경상남도 내륙지방을 연결하는 통로 구실을 하여 여러 차례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거북선이 최초로 실전에 사용되어 왜군을 전멸시킨 전승지로도 유명하다

1969년 남강 댐이 완공되어 남강방수로가 사천만으로 개통되었다.


조망바위에 바라본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성으로 유명한 용현면에 있는 신진마을은

선조실록에 의하면 선진의 지명이 여럿 나타나는데 이를 살펴보면 이순신장군의 사천해전 때에는

선창(船滄), 정유재란 때에는 법질도, 신채, 동양, 동양창 따위로 기록하고 있고

조선 후기에는 이 곳에 삼천진보가 설치되어 선진 또는 선소라 했으며

구한말 때에는 화계라 고쳐 불렀는데 지금은 선진(船津)이라고 부르고 있다.

선진리토성(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 274호)은 최초 거북선 승전지에 위치한 선진리토성으로

사천읍에서 서남쪽 약 7km지점,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사천만의 동안 중간지점 구릉을 이용하여 축조된 평산성이다.

입지상으로는 해안성에 해당한다. 토성의 규모는 둘레가 920m 정도이며 동쪽 및 남동쪽 2개소에 성문터가 확인되었다.

동문지는 육지와 통행이 가능한 곳으로 적대와 해자를 두어 방어에 중점을 두었으며

남문지는 남쪽 측벽을 바깥쪽으로 돌출시켜 성 외부에서 문지가 직접 들여다보이지 않게 하였다.

성 내부에서는 기와, 토기, 청자, 백자 등의 조각들이 출토되었으며

대부분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들이다.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9세기 전반 이후 10세기 전반인 나말려초(신라말 고려초)에 쌓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천읍의 조망

저멀리 사천읍내가 조망되며 아파트가 숲처럼 빼곡한게 보인다

사천읍은 경상남도 사천시 동부에 위치하며 중부와 동부는 200m 내외의 구릉성산지를 이루며

남해와 접한 서부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다.

길호강이 북부 경계를 흘러 남해로 유입된다.

지금은 사천공항이 들어선 중선리·용당리 일대는 간석지로 한때 농경지로 이용되었다.

밀을 비롯하여 고구마·딸기·표고버섯 등이 특산물로 재배되고 있다.

방지리와 유천리 일대에는 산업단지와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유적으로는 사천읍성(경상남도의 기념물 제144호)이 있다. 통영대전고속도로가 면 동부를 경유하며

산청, 진주 방면의 국도가 나 있다. 행정구역은 평화리·선인리·정의리·수석리·사주리

용당리·중선리·구암리·장전리·금곡리·두량리 등 11개리가 있다(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 37개리)

사천읍행정복지센터의 소재지는 사천읍 무산로 21이다. 면적은 29.65㎢이라고 한다.




조망바위 와 사다리

사다리를 만들어 걸쳐 놓았으니 쉽게올라 사천읍내를 조망할수가 있었다

하늘먼당이란 이름은 어케 만들어 졌을까 궁금하다

경상도 사투리에서 높은곳을 가르켜 먼당이라고 했다

아마도 하늘먼당이란 하늘 가까이 높은산이란 뜻일꺼다.

약수암에서 하늘먼당까지 거리는4km정도 되는 거리이며

산길에서 그렇게 짧은 거리는 아니다 탐방로 주변은 진달래와 암봉이 있어

나름 산행길을 심심치 않게 만들어 주었다.


진달래 꽃길

능선에 올라서니 이렇게 진달래 꽃길이 펼쳐져 있다

진달래꽃은 어느새 떨어져 꽃을 밟고 지나가야 했다

지나가다 잠시 숨고르기로 멈추면서 진달래 꽃을 따다 먹었도 본다

수술은 독성이 있어므로 제거하고 먹어야 하고 담금주 담글때도 마찬가지이다.

담금주를 만들 때 주로 진달래 꽃, 매화, 아카시아 꽃을 사용하는데

활짝 핀 꽃 보다는 갓 핀 꽃이나 반쯤 핀 꽃이 좋다.

일반적으로 시판되는 담금용 술의 알코올 도수는 25도, 30도, 35도 등이며

담금주 원료에 따라 선택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알코올 도수가 너무 낮으면 곰팡이 발생 등 미생물 오염이나

산패가 일어나 담금주가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휘귀한 바위들

마치 인위적으로 돌을 포게 놓은듯한 모습이다

그것도 기하학적이다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넘어질듯 하지만

중심을 잘 잡고 포게져 있다 산에 오르면 이러한 희기하게 생긴 구조물을 보면서

산행길은 재미가 솔솔 있다

또한 그지역의 유래나  전설이 산과 함께 하기에 전설도 재미있다.



선바위

하늘먼당에 오르다 보면 이렇게 선바위가 우뚝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송곳처럼 우뚝 서 있어서 선바위라고 이름 붙였는가 보다

마치 하늘 먼당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 처럼 그 모습도 늠늠하다

사천 와룡산 종주 산행을 해야 하는데 아직 해보지는 않았다

5월 즈음에 해보려고 하는 게획을 세워본다

퇴근해서 느저막에 시작하기에 해가 좀 더 길어지면 말이다.


선바위

선바위 뒤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물론 어디가 앞뒤 구분은 안가지만

등산하는 쪽에서 바라볼때 뒷쪽 부분이다

앞에서 바라 보았을땐 하나의 바윗돌 같아 보였지만 뒤에서 바라보니

마치 큰돌을 쌓아 올려 그 틈에 작은돌을 받쳐 놓은듯 하다

앞에서 바라본 모습하고는 정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봉두산 정상465.1m

봉두산 정상이지만 정상표지석은 없고 서울청산수산악회 란 이름으로

봉두산이라는 썬팅 안내문이 나무에 걸려 있었다

봉두산 오기전 봉화대가 있는 안점산 지금의 봉대산은

봉대산이란 이름은 우리나라 봉화대가 있는 산을 대부분 봉대산이나 봉화산이라 불렀다

봉대산 아래는 안점산 봉수대가 있어서 아마도 봉대산일듯 하다 안점산은 옛이름인듯 하다

산천읍에는 선진리성 벚꽃도 유명한데

요즘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거리두기 캠페인으로 봄 축제는 모두 취소 되었다

선진리성은 사천시 사천읍 선진항의 북방에 있는 이 성은 삼면이 바다에 접하고

동쪽만 육지에 닿아 있는 반도 지형에 세워졌다.

조선시대에는 항구로 유명했으며 선진이 설치되기도 하였는데, 선진은 싸움터에서 앞장서는 군대를 뜻한다.

『읍지』와 『대동지지』의 기록을 보면 이 선진에는 전함이 1척

병선이 1척, 하후선이 2척 있었다고 하여, 삼천진이라 불렸다.

선조 30년(1597)에 왜의 석만자가 이곳에서 지내면서 울산의 도산, 순천의 왜교와 더불어 3굴이라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지은 성으로, 규모나 구조면에서 볼 때 활동의 주요 근거지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순신 장군에 의해 격파 당하기도 하였다. 현재 흙으로 쌓은 성벽이 1㎞ 가량 남아 있으며

돌로 만든 누(樓)는 무너졌으나 대체로 성의 규모대로 터가 남아 있다.



야생화 현호색(玄胡索)

하늘먼당으로 오르는길 옆에는 이렇게 현호색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 있었다

현호색은 어긋나고 잎자루가 길며 1∼2회 3개씩 갈라진다.

갈라진 조각은 거꿀달걀꼴로서 위쪽이 깊게 패여 들어간 모양으로 다시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분백색을 띤다.

4월에 5~10개의 연한 홍자색 꽃이 줄기 끝과 가지 끝에서 총상 꽃차례를 이루며 달려 핀다.

밑 부분의 꽃턱잎은 길이 1cm 정도의 타원형이며 끝이 빗살처럼 깊게 갈라지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진다.

작은 꽃자루의 길이는 2cm 정도이고 역시 위쪽의 것이 짧다.

꽃받침은 2개이고 일찍 떨어진다. 꽃부리는 길이 2.5cm 정도이고

꽃잎은 4개인데 앞쪽은 여인의 입술처럼 살짝 벌어지며 뒤쪽은 점점 좁아져 끝이 뭉뚝해져서 꿀샘이 들어 있다.

꽃 모양이 종달새의 머리깃과 닮았다. 수술은 6개가 둘로 합쳐지고 암술은 1개이다.


뱀딸기꽃

봄은 노랑색이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봄꽃은 노랑색이 대부분이다

뱀딸기가 익어면 유년기 시절엔 눈(目)에 먼지나 티가 들어가면 뱀딸기 즙으로 눈을 씻었다

뱀딸기꽃은 여러해살이풀이며 줄기는 땅 위에 길게 뻗는다. 전체에 긴 털이 많다.

잎은 어긋나며, 작은 잎 3장으로 된 겹잎이다. 작은 잎은 난상 타원형, 길이 2.0-3.5cm

폭 1-3cm, 가장자리에 겹톱니가 있다. 꽃은 잎겨드랑이의 긴 꽃자루에 1개씩 피며, 노란색, 지름 1.5-2.0cm다.

부꽃받침잎은 꽃받침잎보다 조금 크다. 꽃잎은 넓은 난형이며, 길이 5-10mm다.

열매는 수과이며, 육질의 붉은 화탁 겉에 흩어져 붙어 있다. 열매덩이는 둥글며, 지름 1cm쯤이고, 먹을 수 있다.

전국의 고도가 낮은 야지의 풀밭, 밭두렁, 논두렁 등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자라는 다년초이다.

꽃은 4-5월에 피고 열매는 6월에 익는다.

우리나라에는 뱀딸기속에 이 종만이 분포하며, 딸기속(Fragaria)에 비해서 꽃은 노란색이고

부꽃받침잎이 꽃받침잎보다 크므로 구분된다.
약용으로 쓰인다. 본 분류군은 아시아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암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최근 중국의학과학원의 류씨민 연구팀의 연구에 의하면 뱀딸기의 추출액이

자궁암 세포의 증식을 현저하게 줄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너드랑 돌탑

하늘먼당으로 가는길에 이렇게 너드랑이 펼쳐진다

누군가가 너드랑 돌을 이용해서 돌탑을 여기저기 쌓아 올려 놓았다

나도 돌 하나 올려놓고 기원(願)해본다

와룡산 능선에는 특히나 이런 너드랑이 많이 있었다

와룡산은 해발 801.4m로 높고 낮은 봉우리가 아흔 아홉개로 형성되어 있어 구구연화봉 이라고도 불리며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누워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하여 와룡산이라 이름 불린다.

좋은 정기가 많이 나는 산인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와룡산은 와룡사와 백천사, 백룡사 등의

유서 깊은 많은 암자와 절을 품고 있었으며, 등산로 곳곳에 유난히 높게 쌓여 있는 돌탑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매년 4월 말에서 5월 초 철쭉이 만개하는 시기가 되면

온 산이 진홍색으로 물드는 장관이 연출되는곳이기도 하다.

그때 와룡산 종주를 해보자 라는 계획이다.



구룡사(九龍寺) 조망

발아래는 구룡사라는 사찰이 한폭의 그림처럼 산골짜기에 앉아있다.

사천구룡사는 와룡마을에서 꼬불꼬불 산길을 3km 정도 가면 있다

작은 대나무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바위 앞면에 향상일로(向上一路)

뒷면에는 불견일법즉여래(不見一法卽如來) 라고 적혀있는 초석이 있다.

향상일로는 최고의 깨달음의 경지로 향하는 유일한 길

, 법신法身(진여眞如)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정진하여야 한다는 뜻이고

불견일법즉여래는 우리의 마음자리에서 보면, 그 어떤 것도 그 속에 존재할 수 없으며

어떤 죄도 법도 부처도 중생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사천 구룡사는 사천시사와 여러자료에는 남방불교 전래설과 관련 400(신라 눌지왕)

통일신라 원효대사 창건설이 전하며,고려 명종 133월에 보림국사가 중창하고

기룡암이라 하였다고 사천시사에는 등재되어 있다.

러나 창건,폐사 등에 관한 사적은 전하지 않는다.



하늘먼당566m

이렇게 하늘먼당에 올랐다 시원하게 맞이해주는 봄바람이 너무 좋다

순수 우리말 봉우리라 맘에 들었다 또한 정상표지석도 큼직한게 좋았다

하늘먼당은 사천 와룡산의 한봉우리 이다.

하늘먼당 주변은 수목으로 인하여 조망은 전혀 없다

하늘먼당 정상은 뽀쪽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펑퍼짐 한것도 아니며

그냥 평범한 산길옆에 정상표지석 하나 서 있는것 같다.



하늘먼당566m

정상표지석옆에서 잠시 쉬어 본다

수많은 산행자들이 여기를 그쳐 갔을 것이고 또한 인증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산은 늘 그자리에서 천년(千年)이든 만년(萬年)이든 간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시간이 있으면 먼곳이던 가까운 곳이던 산을 찾아간다

우리나라 구석 구석을 느끼고 싶어서 이다.


원점회귀 하산

하늘먼당에서 약수암으로 원점으로 돌아간다

하늘먼당 산정에서 가만히 귀 기울이면 저멀리 사천만 파도소리가 들려오는듯 하고

산새소리 봄날 짝을 찾아 노래를 부르며

향긋하고 시원한 바다내음이 코속으로 파고든다

산아래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전세계가 난리이지만 산정만큼은 평화롭다

평화로운 산정에서 난리속으로 또 들어가야 한다.


봉대산 약수암 석탑과 대웅전

산에 가면 사찰이 있고 사찰에가면 산이 있듯이 산행을 하고서

약수암 도량을 둘러 보았다

약수암 도량에는 자비당(慈悲堂)이라는 생소한 정각도 있었다

관음기도도량인 약수암은 중생구도및 수행처이다.

산문에 들어서면 범종각의 우람한 자태가 엄숙하다.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듯 가람전체가 기도처로

가슴 가득 깊숙히 와닿는다.봉대산 약수암은 사천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고

험하지도 않아 바쁜 도심을 떠나 한적한 여유도 가질수 있는 위치에 있다.

점차 번잡해지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조용한 한국산중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신앙인들에게는 더없는 수련장소이기도 하다.


봉대산 약수암

범종루 편액에는 봉대산 약수암 이라고 되어 있다

그 아래는 사천왕문이다

주소는 사천시 용현면 안점봉수대길246이며 용현면 신복리 산 4번지이다

찾아오는길은 삼천포쪽으로 내려가다보면 구 검문소 못가서 좌회전해서

주변의 공장지대를 지나 과수원길을 지나다보면 아늑한 공간에 관음기도도량인 약수암 안내판이 나온다.

입구까지 포장이 다 되어있어 승용차로 가기에 별 무리가 없고 주차장시설 또한 충분하다

주차장엔 하늘먼당 산행자들이 주차를 많이하고 나 또한 그랬다.


에어건 먼지털기

산행의 마무리는 에어건으로 먼지 털기 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산에 오르기전에 의복이나 신발에 뭍은것을

떨어 내어야 한다고 한다 외지에서 뭍은 씨앗을 산에 옮길수 있다는 것이다

산행자들에 의해 산 식생이 변할수도 있다고 환경전문가들의 말이다.

이렇게 해서 경남 사천에 있는 하늘먼당

안점산 봉수대길을 따라 와룡산 하늘먼당에 올라보고서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사천시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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