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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효렴봉(山淸 孝廉峰).효렴재이선생 발길따라 효령봉 산정에 오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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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효렴봉(山淸 孝廉峰).효렴재이선생 발길따라 효령봉 산정에 오르다

바다늑대FORCE 2020. 3. 10. 09:54


산청 효렴봉(山淸 孝廉峰)

 효렴재이선생 발길따라 효령봉 산정에 오르다.


▲ 산청 효렴봉(山淸 孝廉峰)

   높이 : 651m

   위치 : 경남 산청군 차황면 우사리 철수리에 걸쳐 있는 산


▲ 나의 산행일 : 2020년03월09일 월요일. 날씨 : 흐림


▲ 나의 산행코스 :

    차황면 우사마을 주차장→→분성배씨묘→→갈림길→→개설등산로→→개설등산로표지석

    →→효렴봉정상→→우사마을 방향 안내표지→→암릉→→밤나무과수원 임도

   →→신기마을→→우사마을주차장

    7.3km  2시간 50분소요


▲ 산청 효렴봉(山淸 孝廉峰)개요 :

산청군 차황면 우사리와 철수리 상법리에 걸쳐 있는 효렴봉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아래에서 보면 크고 작은 절벽과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는 바위산이다.

효렴봉(孝廉峰)은 글자 그대로 산 아래에 많은 효자효부가 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며

또한 검소하게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황매산과 부암산이 연출하는 철쭉의 향연과

기암괴석들의 향연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산으로서 단계에서 쳐다보면

장수가 투구 쓴 모습을 하고 있는 산이다.

황매산의 한 줄기가 서남으로 흘러서 내려 가다가 우뚝 멈춘 봉우리가 효렴봉이다.

그 용맹스런 모습은 단계 쪽에서 올려다보면 투구를 쓴 장수가 남쪽을 향하여 버티고 선 모습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모양이 변하는 신기함도 있지만 636m의 정상에 오르면

먼데서 보기보다는 넓은 바위가 있어서 등산객이 쉬어서 땀을 식힐 수 있다.

이 산에는 천연 석굴 3개가 있다. 그 이름은 베틀굴, 박쥐굴, 누운 굴이다. 

베틀굴은 바위가 베틀처럼 짜여지고 그 아래에 6내지 7명의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는 넓이다.

박쥐굴은 절벽에 뚫어져 있다. 매우 소스답고 누운 굴은 이름 그대로 나지막한 굴인데

50내지 60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이다.

임진왜란 중에 효렴재 이경주, 동계 권도 두 분이 이곳에서 피난을 하였다.

난이 끝난 이후에도 자주 소요하여 이들의 장구지소도 각각 남아 있다.

이 산을 음미하는 강회가 매년 4월 8일 열린다. 이 고장에 남아 있는 오랜 유풍이다.



▲ 산청 효렴봉 등산지도



▲ 산행지 찾아가는길

진주역 →→→ 남해고속도로 진주나들목 →→→통영대전간고속도로 단성 나들목 →→→ 산청단성 차황방면

→→→ 차황면 우사리 →→→ 우사마을주차장.

63km 승용차 50분소요.


→→→→→2020년3월9일 월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산을 찾아 오늘도 길을나선다

일요일 당번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점을 먹고 잠시 눈을 붙이고서

길을 나선시간은14시 가까운 근교산을 물색하다 산청에 있는 부암산을 가기위해

산청군 신등면 장천리 이교마을 로 향했다

부암산 들머리는 이교마을이라 마을 앞에 도착 했지만

비닐에싼 짚동으로 마을 입구를 막아놓고 코로나 감염병으로 인한

외부차량을 통제 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중국 우한에서 최초 코로나바이러스19가 한창 창궐시에

뉴스에서 중국의 한 마을 입구를 콘크리트로 벽을 만드는 모습이 나왔는데

그 모습이 우리나라 시골동네도 현실이 되어 있어 안타까울 뿐이였다.

산청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기엔 그래서 어디로 가나 하며 생각한곳이 효렴봉이였다.


차황면 우사마을 마을주차장

마을주차장이 넓다랗게 있어서 설명절이나 추석명절때 자녀들이 찾아와서 주차하기가 편리하겠다

효령봄 산행을 위한 산악회 버스 서너대는 주차할 공간이였다.

저만치 중앙부분 암릉이 보이는곳이 오늘 등산할 효렴봉이다

산청에는 유난히도 山들이 많다

산청지역 산을 오르고 또 올랐지만 이렇게 올라야 할 산이 있으니 말이다.

산청군 차황면 우사리와 철수리 상법리에 걸쳐 있는 효렴봉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산 아래에서 쳐다보면 크고 작은 절벽과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는 바위산이다.

산 아래 마을인 우사리와 철수리 등에 효자 효부가 많았다고 하며

검소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효렴봉이라고 한다.


효렴봉 탐방로

오늘 산행은 꼬이기만 하였다

부암산 등산 하려고 했는데 들머리 이교마을 입구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마을주민들이

입구를 차단 시켜 놓았고 효렴봉을 들머리를 찾아 올랐지만

산객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탓에 길이나 이정표 그리고 산행자 깃표도 보이지 않아

묘지 인근 오르다 보니 길이 사라져 버려 능선만 보고 오르다 보니 이렇게 산길을 만났다

잡목이 헤집고 비탈진 산을 오르다 보니 몸은 벌서 지쳤다.


효렴봉 임도

잡목을 헤집고 길없는 비탈진곳을 올라 겨우 산길을 찾았는데

그 산길은 이렇게 임도와 이어져 있었다.

이런 고속도로를 두고 산아래서 헤메었을까 하는 허무함도 들었다

날씨는 흐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듯한 날씨 였다

비라도 만나면 큰일인데 하며 비오기전 얼릉 산행을 마쳐야 하기에 길을 재촉했다.

마을 입구 비석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마을 주차장이 나오는데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서

주차장에서 쳐다보면 팔각정이 나오는데 팔각정 우측길을 가면된다

행여나 마을 어르신들이 보여 길을 물어니 포장길을 쭉 따라 가라는 것이다.

시멘트길을 따라가다보니 민가 3채가 있고 빨간샌드위치판넬  좌측을 보면

나무가지에 우보회(牛步會)라는 산악회 깃표가 보이는데 그길로 가면 된다

포장임도가 끝나는 곳에 분성배씨 묘가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길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여기서 길을  직진하는 바램에 잡목을 헤집고 비탈진 길을 능선만 보고 올랐다

여기서 직진말고 왼쪽으로 길을 잡고 오른쪽으로 휘어어진다.

이 구간만 잘 통과하면 이후에는 길 찾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

이곳을 주의 하지 않으면 나처럼 길을 잃고 잡목을 헤집고 길없는 비탈진 산을 올라야 한다

그야말로 개고생이다.


효렴산등산로개설연혁 비(碑)

효렴산 상봉에는 효렴재공께서1592년 임진란 당시 피란을 하신 장소로서

산세가 험준하여 등산의 애로를 실감 하든차에 1989년 후손 종탁(鐘凙)씨가 특별 헌성하여

1750m의 등산로를 개설하였음

서기 1989년12월8일

월성이씨효림재공파 종중  이라고 새겨져 있다.

임도를 오르면서 군에서 만든 임도라 생각했는데 임도가 아닌

월성이씨종중에서 만든 등산로 였다.


효렴봉 가는 탐방로

월성이씨 종중에서 만든 임도같은 탐방로가 끝나는 지점이다

여기서부터 효렴봉 정상까지 오솔길이라 생각하면된다.

효렴봉 들머리로 산객들이 찾는 차황면 우사리는

본래 산청군 차현면 지역으로서 우사라 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따라 묵계동 진기동을 병합하여 우사리라 해서 차황에 편입 되었다.

조선 선조때 승지 벼슬을 하다가 당파싸움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한 이경주란 분이

효림산속의 베틀굴에서 베틀을 짜며 벼슬을 하는 사람을 어리석다 하여 우사라고 하였다 한다.

산청군 차황면은 황매산과 전국 제일의 연분홍 철쭉이 군락해 있는 청정하고 아름다운 고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친환경 농업의 요람지이며, 광역친환경농업단지가 조성되어 자연순환 농법으로 생산된

차황메뚜기쌀과 황매산의 특별한 향기와 맛으로 유명한 사과, 곰취, 취나물, 흑돼지, 유기한우등이

차황면의 명품이라고 소개 하고 있다.


우사마을1.3km 철수마을1.3km 안내표지판

여기가 마을 중간 지점인가 보다

철수마을 유래를 보면 본래 단성군 법물면 지역으로 무쇠가 났다 하여, 새장골 또는 철수라 하였다.

고려초부터 촌락이 있었다고 전하는데,조선조에 와서 평지마을과 합하여

일백여호의 농촌을 형성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14년 3월 1일에 행정구역이 통폐합됨에 따라 철수리라 하여 산청군 신등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425호에 의하여 차황면에 편입되었다.

철수리는 지금부터 3백년 전에는 철의 산지로서 새점을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불리어졌다.

철수리란 이름도 이에 유래한 것이라고는 하나 문헌에 남아 전하는 것은 없다.

자연환경은 서쪽은 국토봉 점곡, 북면쪽은 효련봉, 북쪽은 강대덤,정동쪽은 청담곡

도덕곡, 남쪽은 가현산,남서쪽은 대원산이 둘러 있으며 묵게천이 본 마을과 평지마을의 중간을 흘러가서

부연,병언, 무당소, 용연 등을 만들고 있다.

고려때 강두삼이라는 인물이 현재 마을아래에 기와집을 짓고

동쪽으로 3리쯤 되는 석굴에 움막을 지어 그곳에 왕래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마을뒷편에는 절벽이 있고 그 가운데 석굴이 있는데 수십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옹달샘도 있다.

강재덤과 용연의 석벽 틈서리를 잇는 이 굴에서 불을 지피면

그 연기가 장재소 바위틈에서 나온다고 하여 굴의 깊이는 십리쯤 된다고 한다.

지금 그 유적에서는 기와조각 등이 발견되고 있다.


효렴봉 정상(孝廉峰 頂上)651m

효렴봉 정상이다 들머리에서 길을 잃어 잡목을 헤집고 비탈진 길을 헤메다 올라온 정상이다.

커다란 거북과 같이 생긴 암봉위엔 효렴재이선생장구소(孝廉齋李先生 杖屨所)를 알리는 비석이 있다.

장구소란 지팡이 집고 짚신을 끌며 올랐던 장소를 뜻한다.

효렴재 이경주 선생과 동계 권도 등 두 명의 선비가 임진왜란 때 이 산에서 피란생활을 했으며

전쟁 후에도 이 산에서 소요하며 지냈다고 하는 것을 반증하는 비석이다.

그런데 의외로 널따란 공간이 있는 효렴봉 정상의 비석 놓인 바위가 커다란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다.

몸통 바위의 길이가 10m쯤 되는, 말 그대로 '큰 거북바위'.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정상에서 남쪽 절벽 아래를 보면 100m쯤 떨어진 벼랑 위에 또 하나의 비석이 보인다.

안동 권씨인 동계 권도 선생의 유허비 라고 한다.


효렴봉 정상(孝廉峰 頂上)651m

정상석은 언제 만들어 졌을까 아마도 근래에 세웠는듯 하다

효렴봉 등산로는 신등면 소재지에서도 진입할 수 있다.

그러나 차황면 소재 산이기 때문에 차황면 소재지에서 1006번지방도를 이용한다.

신등면으로 가다가 철수리의 철수마을 계곡이 효렴봉 등산로 초입이다.

우사마을 보다는 철수마을에서 들머리를 정하는게 더 좋을것이다

철수계곡의 들길을 따라가면 갈림길이 나온는데

계곡 왼쪽길이 본격 등산로인데 길이 희미하여 조심해야한다.

왼쪽을 접어들어 600m쯤 산행하면 비로소 경사가 급해지고

기암괴석도 산아래서 보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웅장하게 보인다.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200m를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길은 우사마을 가는 길이고 바른길이 정상가는길이다.

정상은 300m를 가면 나오고 정상에 서면 황매산, 부암산, 정수산등 산청의 명산들이 거의 조망된다.

특히 부암산에서 황매산으로 연결되는 기암괴석의 향연이 압권이다.

하산은 북서쪽의 국사봉으로 가다가 800m지점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우사마을에 닫게된다.

시간이 되면 국사봉으로 종주를 하면 후회 없는 산행이 된다.

전체산행시간은 3시간이 소요된다. 국사봉쪽 드뭇재 까지는 1km로서

1시간이 소요된다고 선등자의 산행기에 기록되어 있다.


효렴재이선생장구소(孝廉齋李先生 杖屨所)

효렴봉은 이 마을에 사셨던 조선중기의 대학자이신 효렴재 이경주 선생과 동계 권도 선생 두분이

임진왜란때 이곳으로 피난을 하였다 한다.

난이 끝난 이후에도 자주 소요하여 이들의 장구지소가 각각 남아 있다.

이 산을 음미하는 강회가 매년 4월8일에 열리는데, 이 고장에 남아 있는 오랜 유풍이라고 한다

효렴봉 아래에는 효산서원이 있으며 상촌 김자수와 퇴재 김영유, 삼묵재 김상례 삼공을 향례한다 한다.

바위 정점에다 ‘孝廉齋李先生杖屨所’ 라고 새긴 비 세웠다.

장구(杖屨)는 지팡이와 짚신을 이르는데, 장구소(杖屨所)라고 하면 이름난 사람이 머물렀던 곳을 말한다.

효렴재 이경주(孝廉齋 李擎柱) 선생은 이곳에서 음풍농월한 것이 아니라

임진왜란 때 피난하였다. 산 이름은 선생의 호에서 따왔다고 전한다.

효렴재집(孝廉齋集)

자(字) 석초(石楚), 호(號) 효겸재(孝廉齋), 본(本) 경주(慶州), 부(父) 완종(完從), 거(居) 산청(山淸)

3권1책

행장(行狀); 류후조(柳厚祚) 찬(撰). 공(公)은 일찌기 시를 지어 "아들의 직분의 효(孝)를 다함이오

선비기풍은 청렴을 지킴이니 청렴하면 누가 나를 모욕할 것이며 효도하므로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다"고하였다.

부모상(父母喪)을 당하여는 슬픔과 예(禮)를 다하여 여묘(廬墓)하여 6년을 마쳤다.

쌍계산(雙溪山)에 들어가서 독서할 때 종일토록 단정히 않아 주역(周易)을 읽었다.

여러번 천(薦)에 올랐으나 모두사양하고 63세에 때 연풍(延豊)현감(縣監)에 임명되자

부임(赴任)한지 3개월만에 사임하고 돌아와서 철수산곡(鐵水山谷)에 집을 짓고

오덕계(吳德溪)와 친교(親交)하여 도의(道義)를 강론하였으며

자사동(紫사洞)에 몽와(蒙窩)를 창건하여 학규(學規)를 세워 후진(後進)을 교육하였다.

영대주인잠(靈臺主人箴), 대학인(大學人) 조찬(條贊), 학자오간조목(學者五間條目)과

오덕계(吳德溪)와 강논(講論)한 것을 보면 공(公)의 조예(造詣)의 깊이를 알 수 있다.


효렴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효렴봉 산정 부분은 대부분 암릉으로 되어 있다 마치 암봉의 전시장 같다

산정에서 바라보면 산청군내의 산봉우리들이 조망된다

저멀리 지리산 까지 조망된다 발아래는 차황면이 펼쳐져 있다

차황면은 지리산 천왕봉과 마주보는 황매산 정기를 듬뿍받으며 청정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고 있는곳이다

차황은 전국의 관광객들에게 황매산 철쭉, 산림바이오매스사업장, 차황약초 동산, 약초꽃길, 차황금포림공원 등

친환경 체험과 볼거리, 그리고 편안하고 친자연적인 휴식처가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소중한 추억을 담아가실 수 있는곳이다.


효렴봉 정상에서 바라본 황매산

효렴봉에서 차황면의 최고의 아름다운 산 황매산이 조망된다

황매산은 높이 1,113.1m로서 소백산맥 중의 한 산으로

북쪽의 월여산(月如山, 863m)과의 사이에 떡갈재가 있고

남쪽으로는 천황재를 지나 전암산(傳巖山, 696m)에 이른다.

산정은 1,000m 높이의 고위평탄면(高位平坦面)을 이루고 능선은 남북으로 뻗는다.

동남쪽사면으로 흘러내린 계류들은 사정천(射亭川)을 이루고

양천(梁川)에 합류된 뒤 경호강(鏡湖江)으로 흘러든다.

북쪽 사면에는 황강(黃江)의 지류들이 흘러나간다



하산길 철수마을1.3km 우사마을1.3km 표지판

철수마을로 하산하고 싶었지만 차량이 우사마을 주차장에 있기에 우사마을로 발길을 돌린다

여기서 우사마을 방향은 임도처럼 생긴 탐방로와 다른곳이다

효렴봉은 황매산이 서남쪽으로 한 지맥을 뻗어서 효렴봉을 이루었다.

정수산과 황매산 사이에 있는 효렴은 동쪽과 서쪽에 남북방향으로 길게 골짜기를 이루었고

넓은 농경지가 형성된 곳에는 자연마을이 입지하였다.

효렴봉에는 베틀굴·박쥐굴·누운굴이라는 이름의 천연석굴이 있다 하지만

철수마을로 가지 않으면 볼수가 없다

예전부터 우사리와 철수리에 효자가 많았고 청백하게 생활하였다고 하여

이름이 효렴봉(孝廉峰)으로 지어졌다고 전한다

정상부에서 동쪽으로는 부암산이 보이고 북쪽 황매산으로 이어지는 암벽 능선이 볼거리이다.


철수마을과 우사마을 조망

산청 차황의 작은마을 철수와 우사마을이 발아래 펼쳐진다

황매산 기운을 받아 효렴봉아래는 효자 효부가 많다고 한다

우사마을 입구에는 효렴재 이경주 선생의 유허비가 있고 정상에도 비석이 있다.

월성 이씨인 효렴재공은 1500년에 태어나 1597년까지 생존하며

당시로서는 장수한 조선 중기의 대학자다.

8세 때 소학과 효경, 9세에 대학, 12세에 논어와 주자, 17세에 중용을 독파했으며

30세에는 주역을 통달한 학자였으며 1534년에는 효렴산에 머물렀다.

동시대 인물로서 산청 덕산에 머물던 남명 조식 선생과 교유했고

덕계 오건 등과 함께 강론하며 후학 양성에 애썼다.

만년에 왜적이 침입하자 효렴산에서 피난하며

정상에서 한양을 바라보며 대성 통곡하고 절을 했다고 한다.


국제신문 근교산 취재팀 깃표

근교산에 갈땐 근교산 그너머 산행기를 보고 그에 따라 갈때가 많다

산길을 잃어 헤매일때도 국제신문 근교산 취재팀 깃표를보고 길을 찾곤 하였다

수목이 빼곡한길 어디가 산길인줄 모르는곳에 이렇게 길을 안내해주고 있다.

산꾼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곳은 이렇게 산길을 구분하기가 힘든다

나는 이런길을 산행할때는 겨울산행을 한다

여름날 초목이 빼곡하면 길을 잃기 쉽지만 낙엽이 떨어진 겨울이면

쉽게 길을 찾을수도 있고 길을 잃어도 헤쳐 나가기가 쉽다.


빼곡한 수목

효렴봉도 찾는 산객들이 많이 없으니 탐방로가 구분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인지 우사마을에서 들머리로 시작한 산행길에서

길을 잃어 수목이 빼곡한 삐탈진곳을 헤집고 다녔다.

산청에는 정말 산봉우리가 많다

우리민족의 명산 지리산을 비롯하여 황매산 둔철산 왕산 필봉산 석대산 구곡산 주산

소룡산 바랑산 적벽산 정수산 백마산 월명산 태봉산 엄혜산등 이렇게 올랐다.

오늘 부암산을 가려고 했지만

들머리인 신등면 이교마을에서 코로나바이러스19 감염병 차단을 위해

마을 입구를 막고 외부인 출입금지란 단어에 오늘 이렇게 효렴산에 올랐다.


빼곡한 소나무숲길

하산길에 빼곡하게 들어선 소나무숲길을 걷는다

발아래 소나무낙엽 깔비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요즘은 시골이라고 난방을 보일러로 하고 부엌에도 LPG로 인하여

요리와 난방이 편리해졌기에 이처럼 예전 땔감으로 쓰여졌던 깔비가 수북할뿐이다

효렴봉(孝廉峰)은 글자 그대로 산 아래에 많은 효자효부가 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하며 

또 검소하게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황매산과 부암산이 연출하는 철쭉과 기암괴석들의 향연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산이라고 한다. 

단계에서 쳐다보면 장수가 투구 쓴 모습을 하고있는 산이라고 한다.


우사리 진기마을

효렴봉 산행을 마무리 하고서 진기마을로 하산하였다

여기서 우사마을 주차장까지 걸어가야 한다

진기마을엔 아직 돌담 그리고 굴뚝들이 고향마을 어린시절 뛰어놀던 생각을 나게 한다

시골동네도 요즘 어린 아이들이 없으니 적막강산이다

아직 스레이트지붕도 남아 있다 한때는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지붕을 슬레이트지붕으로 교체 하였는데 요즘은 발암물질이라 하여 걷어내고 있다

군대생활 할때만 해도 깨진 슬레이트에 삼겹살 굽어 먹었다.


우사리 진기마을 표지석

표지석도 자연석으로 잘 만들어 입구를 지키고 있다

마을 진입로은 아스팔트길로 잘만들어 져 있고 소방차 진입에도 아무런 장애물도 없다

보통 시골 진입로는 시멘트포장길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아스팔트 포장으로 되어 있다

진기마을엔 소규모 축사가 있었다

주택옆 작은 마굿간으로

유년시절 짚으로 여물썰어 가마솥에 끊여서 소먹이던 옛날생각 나게 한다.


우사마을 마을버스 정류장

효렴재이선생장구소(孝廉齋李先生 杖屨所)비(碑)가 있는

효렴봉 산행을 마무리 하고서 우사리 마을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우사마을 들머리부터 길을 잃어 잡목을 헤집고 능선을 찾아 헤매었고

한참 헤매다 찾은길 인근에는  효림재 선생 후손이 만든

넓다란 임도 같은 등산로를 만났다.

그리고 효렴봉 정상에서 잠깐 쉬었다가 반대방향 우사마을로 하산하니

우사리 진기마을로 연결 되었다.



철수마을 입구에 잇는 효렴봉 등산 안내도

효렴봉 산행은 우사마을이 아니라 철수마을에서 해야 편하다

효렴봉에 숨어있는 동굴 베틀굴을 볼수가 있고 산길을 잃을 이유도 없을듯 하다

애당초 이 등산 안내도를 알았다면 철수마을에서 산행을 하였을것이다.

효렴봉 산행기를 보면 대부분이 우사마을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우사마을에서는 들머리에 안내표지도 없어 초보 산꾼일경우 조난당하기 쉬운코스다

그래서 철수마을에서 효렴봉 산행을 추천하고 싶다.


집으로 가는길

효렴봉 산행을 끝내고서 돌아가는 길의 도로 가로수는 산수유꽃이 노랗게 피어있다

이렇게 봄은 왔는데 온 국토가 코로나바이러스19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하루속히 감염 바이러스가 치유되어 봄날을 만끽 하고 싶다.


효렴봉(孝廉峰)

산청군 차황면 우사리에 위치한 효렴봉(635m)은

황매산의 산줄기로 글자 그대로 산 아래에 많은 효자효부가 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며 또한 검소하게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황매산과 부암산이 연출하는 철쭉의 향연과 기암괴석들의 향연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산으로서

단계에서 쳐다보면 장수가 투구 쓴 모습을 하고 있는 산이다.

그 용맹스런 모습은 단계 쪽에서 올려다보면 투구를 쓴 장수가 남쪽을 향하여 버티고 선 모습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모양이 변하는 신기함도 있지만 636m의 정상에 오르면 먼데서 보기보다는 넓은 바위가 있어서

등산객이 쉬어서 땀을 식힐 수 있다. 이 산에는 천연 석굴 3개가 있다.

그 이름은 베틀굴, 박쥐굴, 누운 굴이다. 베틀굴은 바위가 베틀처럼 짜여지고 그 아래에 6내지 7명의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는 넓이다.

박쥐굴은 절벽에 뚫어져 있다. 매우 소스답고 누운 굴은 이름 그대로 나지막한 굴인데 50내지 60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이다.

임진왜란 중에 효렴재 이경주, 동계 권도 두 분이 이곳에서 피난을 하였다.

난이 끝난 이후에도 자주 소요하여 이들의 장구지소도 각각 남아 있다. 이 산을 음미하는 강회가 매년 4월 8일 열린다.

이 고장에 남아 있는 오랜 유풍이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산청군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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