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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칠불봉(伽倻山 七佛峯), 정견모주(正見母主) 전설이 있는 가야산 최고봉 칠불봉에 오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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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칠불봉(伽倻山 七佛峯), 정견모주(正見母主) 전설이 있는 가야산 최고봉 칠불봉에 오르다

바다늑대FORCE 2020. 3. 8. 22:16


가야산 칠불봉(伽倻山 七佛峯)

 정견모주(正見母主) 전설이 있는 가야산 최고봉

 칠불봉에 오르다


▲ 가야산 칠불봉(伽倻山 七佛峯)

  높이 : 1433m

  위치 : 경상남도 합천군과 거창군, 경상북도 성주군과 고령군의 경계에 있는 산


▲ 나의산행일 : 2018년 11월3일 토요일.날씨 : 맑음


▲ 나의산행코스 :

백운동탐방지원센터 -→ 만물상코스 --→ 서장대 --→ 서성재 --→ 칠불봉 --→ 상왕봉

--→칠불봉-→서성재-→백운4교-→백운동야영장--→ 백운동탐방지원센터

10km 4시간 소요.


▲ 가야산 칠불봉(伽倻山 七佛峯) 개요:

가야산은 경상남도 합천군과 거창군, 경상북도 성주군과 고령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최고봉인 칠불봉과 상왕봉, 두리봉, 단지봉, 남산제일봉, 매화산 등 연봉과 능선으로 둘러져있다.
경상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해발 1천433m의 가야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수려해 해동제일의 명산으로 꼽힌다. 옛부터 가야산은 우두산(牛頭山), 설산(雪山)

상왕(象王), 중향(衆香), 지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가야산은 정견모주(正見母主)라는 여신이 머무는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정견모주가 하늘의 신 이비가지와 감응해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과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을 낳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가야산의 지명 유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하나는 가야산이 있는

합천, 고령 지역이 대가야 땅으로 그 역사적 명칭에 기인해 가야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다른 하나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은 곳인 인도의 붓다가야 근처의

가야성에서 이름을 가져왔다는 불교적인 의미가 있다. 
가야산 정상의 최고봉은 그동안 상왕봉(1천430m)으로 알려져 왔으나

2004년 2월 GPS와 토털스테이션을 이용해 실측한 결과 칠불봉(1천433m)이 3m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가야산의 최고봉 칠불봉은 정견모주의 손자들과 얽힌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정견모주의 둘째아들인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왕옥과 혼인해 왕자 열 명을 뒀다.

큰아들 거등은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됐다.

나머지 일곱 명의 왕자는 외삼촌 장유화상을 따라 칠불봉에서 3년간

도를 닦아 생불이 됐다고 하며 그 밑에 그들이 수도한 칠불암터가 있다는 전설이 있다. 
일곱 왕자를 그리워하던 허황후는 가야산을 찾았으나

칠불봉까지 올라갈 수 없어 아들들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 정성이 부처님 마음을 움직여 해인사 일주문 옆 연못에 정진 중인 왕자들의 모습이 비춰졌는데

그 연못을 영지라고 했다.
가야산의 최고봉이라 불리었던 상왕봉에는 우비정이 있는데 우비정에는 항상 물이 고여있다.

상왕봉은 소의 머리모양을 한 봉우리이고 소는 항상 코에서 땀을 흘려야 건강하다는 이야기처럼

우비정은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다.

가로, 세로 1미터가 넘는 우비정에는 신기하게도 비단개구리가 살고 있어 자연의 오묘함이 느껴진다. 


▲ 가야산 등산지도



▲ 산행지 찾아가는길

 진주역→→59번국도→→성주가야산로→→가야산식물원길→→가야산백운동탐방지원센터

99km 승용차 1시간20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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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1월3일 토요일 아침일찍 경북성주 가야산백운동탐방지원센터에서

가야산 최고봉인 칠불봉에 오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칠불봉 산행기를 2년이 지난 지금 사진을 보며 기억을 드듬어서 글을 쓰본다

칠불봉 산행기를 쓰지 않았는지 지워졌는지 보이지 않아 이렇게 옛기억을 드듬어서

하나하나 쓰본다.


백운동탐방지원센터로 가는길

합천 가야산 우두봉은 합천해인사방향에서 오른적 있지만

가야산 최고봉인 칠불봉에오르기 위해 59번국도를 달린다.

59번국도는 전라남도 광양시 태인동에서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송현리에 이르는 일반 국도로서

총 연장 415.8㎞(포장도로 382.9㎞(92.1%), 미포장도로 23.9㎞(5.7%), 미개통도로 9㎞(2.2%))

2차선 구간 370㎞, 4차선 구간 12.9㎞ 총 연장은 415.8㎞으로 포장도로 382.9㎞(92.1%)

미포장도로 23.9㎞(5.7%) 그리고 미개통도로 9㎞(2.2%)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포장도로 중 2차선 구간이 370㎞에 달하며 4차선 구간은 12.9㎞에 불과하다.

전라남도 광양시 태인동과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을 연결하는 왕복 4차선의 산업로(産業路)는

과거 남해고속도로 제3지선이었으나 1996년 7월 1일자로 고속도로에서 해제되면서 국도 제59호선에 편입되었다.

대부분 구간이 내륙 산간지역을 관통하기 때문에 도로 폭이 좁고 기울기가 심한 편이이서

장거리 간선 운송보다는 지역간 단거리, 중거리 이동이나

주변 명승지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활용된다.

주변에는 지리산국립공원(중산리), 가야산국립공원(해인사), 고수동굴 및 도담삼봉

오대산국립공원 등의 관광지가 많아 구간에 따라 행락객의 이용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가야산국립공원 백운동 탐방지원센터

위치는 경북 성주군 수륜면 가야산식물원길 17이며 국립공원이라 주차장이 넓다

백운동 코스는 가야산 여신 정견모주와 하늘신 이비가지의 전설이 내려져오고 있고

바위 하나하나가 모여 만 가지 형상을 이뤄 만물상이라고 불리는 곳 이라 산꾼들에게

인기가 좋은곳이며 초보산꾼들에게는 조금 힘든코스 이기도 하다.

국립공원 가야산은 조선8경의 하나로 주봉인 상왕봉(1,430m)을 중심으로

톱날 같은 암봉인 두리봉, 남산, 비계산, 북두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마치 병풍을 친 듯 이어져 있다. 주봉은 상왕봉(1,430m), 최고봉은 칠불봉(1,432m)이다.

상왕봉은 소의 머리처럼 생겼고 오랜 옛날부터 산정에서 행해졌던 산신제의

공물을 소에 바치고 신성시 해왔다고 하여 우두봉 이라고 불리우며

상왕봉의‘상왕’은[열반경]에서 모든 부처를 말하는 것으로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만물상코스

백운동탐방지원센터에서는 만물상코스와 용기골코스가 양갈래로 되어 있는데

초보 산꾼들은 용기골 코스로 산행하는게 힘이 덜 든다고 한다

만물산코스는 풍경이 좋으나 3km의 코스가 길며 난코스이기에

산을 많이 타지 않았던 등산객은 힘이 제법 드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가야산국립공원 최고의 능선이라 불리고 정견모주와 이비가지의 전설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야산에 서식하는 식물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가야산야생화식물원을 함께 둘러볼 수 있으며

만물상 탐방로는 초입부터 경사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오르막과 내리막을 7번을 반복해야하는

험준한 탐방로이며 산행 전 준비운동이 반드시 필요한 구간이자 가야산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구간이다.

 

만물상 초입구간

초입구간부터 빡쎈 경사가 심한 계단구간이다.

초장부터 산객들의 힘을 빼놓기 때문에 오르기 전에 충분한 준비운동으로

몸을 푼다음 오르는게 상책이다.

백운동탐방지원센터에서 상아덤 국나은 2.6km로서 보통 2시간 10분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초입부터 1km구간은 흙으로 조성되어 있고 이후에는 대부분 암반형 탐방로이며

경사도가 매우 높고 계단이 많아 안전사고에 유의해야하고 첱천히 탐방이 필요한 코스이다

백운동탐방지원센터에서 상아덤 구간은 큰 오르막과 내리막이 7번 반복되는 구간으로

초보 산군 들과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탐방객은 될수 있으면 용기골 가야산 2코스를

이용해서 산행하면 피로도를 줄일수 있다.


백운동탐방지원센터와 가야산 심원사의 조망

11월로 접어드는날 입었던 자켓을 벗고 티셔츠 앞가슴 지퍼도 열었지만

땀이 흐르는건 가파른 산길에 힘이 많이 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심원사는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가야산식물원길17-56에 위치하며

백운리 가야산 동쪽 자락에 위치한 심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가야산은 예로부터 해동의 8승지 중 하나이며 수많은 시인 묵객의 영감의 원천지였다.

가야산은 1972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백운동 심원사는

성주읍으로부터 27k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주봉인 칠불봉은 해발 1433m이다.

멀리 앞에 보이는 팔공산 위로 솟아오르는 황금빛 세상을 안으며

가야산의 하루는 장엄한 일출로 문을 연다.

힘차게 솟은 장군봉과 연이어 있는 만물상과 칠불봉의 신령스러움은

남성적인 가야산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가야산 만물상의 암봉(巖峯)

가야산 만물상 탐방코스로 오르면 그야말로 암봉들의 전시장이다

첫번째 만나는 암봉인데 마치 도룡뇽이 햇살에 몸을 말리는듯 하다

가야산 만물상에는 코끼리바위 돌고래바위, 두꺼비바위등

많은 이름을 가진 바위들이 있다고 한다.

기암괴석들이 나름되로의 이름을 가지고 마치 수석전시를 해놓은듯

암봉들이  가야산을 꾸미고 있다.


서성재 2km안내표지목

가을의 끝자락에서 땀 삐질 거리며 올라온 거리가 1km였다

여기서 부터 슬로우 구간이라고 해놓았다

초입부터 잔뜩 힘을 뺀 상태라 그런지 천천히 산행하라는 이유같다

가야산은 남부내륙 산간지역에 위치한 명산으로 1972년 국립공원 제 9호로 지정되었다.

가야산은 예부터 해동(海東)10승지 또는 조선 팔경의 하나로 이름이 높았다.

공원 면적은 76.256이며  회장암으로 이뤄진 산악경관과

화강암으로 이뤄진 하천경관이 공존하고 있다.


거대한 암봉

거인이 삿갓을 쓰고 길목을 지키는듯 한 형상 같다

칠불봉 만물상코스에서 바라보면 심원사가 한눈에 보이는데

심원사는 창건연대가 8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천년고찰로서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이 지은 詩에서 심원사를 이미 고사(古寺)라 칭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훨씬 이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왔던 사찰로 보인다.

조선 중종 때 승려인 지원(智遠)이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정조 23년(1799)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폐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18세기경 이미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다.

지난 2003년 성주군의 <국립공원 가야산 지구 문화관광 자원 복원 계획>에 의해 다시 중창되었다.

지난 2003년 복원하기 전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남북 약 80m, 동서 약 100m 정도의 대지에

4단의 계단식 축대 위에 금당 3개를 갖춘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산지 사찰터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또, 불사 중 발견된 여러 유물들이 있는데, 석조불상대좌, 배례석, 불상광배,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배례석, 석탑기단갑석 등이 그것으로 이들 유물은

일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25호 성주 심원사 석조유물지정되었다.



암봉(巖峯)속의 노송(老松)

주위를 둘러보아도 흙한줌 보이지 않은곳에서 바위틈에서

이렇게 소나무 한그루 자랄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우리나라 애국가에서 남산위의 저 소나무처럼 우리 민족성 정말 끈질기다

민족의 끈질긴 심성에 나역시 끈질기게 살아보자.

가야산 만물상 코스는 38년만의 2009년도에 개방하였다.

만물상 코스는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기암(基岩)들의 전시장 같은

모습에 취하면서 오른다.


끝없는 목계단

산에 오르면 긑이 안보이는 목계단을 자주 만난다

계단 하나 하나 밟고 오르는 길은 허벅지가 뻐긋할 정도다

예전 설악산 대청봉 오를때 기억이 난다

백담사에서 대청봉 오르는 구간중 짊가득한 배낭에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 카메라와 삼각대를 울러메고 올랐는데

정상 부근100m지점에서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 였다

그 이후 높은산에 오를땐 삼각대를 가지고 올라가지 않는다.


가야산 만물상

커다란 수반위에 수석을 아름답게 구며 놓은듯 하다

어떻게 저런 모습을 만들수가 있을까 그야말로 만물상이다

가야산 및 주변은 선캄브리아기(Precambrian time)의 흑운모편마암, 반상변정질편마암, 회장암

그리고 백악기 해인사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야산은 소백산육괴, 불국사변동 등의 특징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지질학습장으로

지질 특성을 관찰할 수 있는 명소는 만물상, 남산제일봉, 용문폭포 등이 있다.

선캄브리아기는 약 25억 년 전까지의 시생대와, 시생대와 캄브리아기 사이인 원생대로 구분한다.

이 시대에 지구는 일부 화산열도를 제외하면 물로 덮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것으로 알려진 화석화된 생물은 약 32억~35억 년 전의 암석에서 발견된다.

약 29억~33억 년 전에는 거대한 양의 관입암의 형성이 시작되었다.

약 27억~28억 년 전에는 모든 대륙물질이 북극지방에 모여

1개의 거대한 초대륙을 이루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단일대륙은 선캄브리아기 말기로 가면서 분리되었다.

후기 시생대와 초기 원생대의 특징은 초대륙 내에 녹암대가 형성된 것이다.

열곡은 원생대 후기에 형성되었으나 해양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이 열곡은 현생누대에 들어서야 초대륙의 분리를 일으키고 판구조체계를 시작하게 했다.



기암괴석의 봉우리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각 봉우리들이 나타내는 개별적인 경관적 특징을

이렇게 실제로 느끼며 산행을 통해 근접할수 있어 좋다.

가야산은 예부터 해동의 10승지 라고 했다.

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지에서

기천 차암 금계촌.화산 召嶺古基.보은 속리산 蒸項근처.예천 金堂洞 북쪽 임금수레가 임하면 달라짐

운봉 두류산 銅店村 백리안.공주 유구 마곡 둘레 백리.영월 정동쪽 상류 수염없는자 먼저 들어가면 달라짐

무주 무풍 북쪽 동굴옆 덕유산.부안 호암아래 변산 동쪽.가야산 남쪽 만수동 둘레2백리

기타 풍기 영천 단양 영춘 봉화 안동

平平 蔚蔚이 가장 내포의 비인 남포 금오산,덕유산,두류산,조계산(순천)

가야산,조령,변산,월출산,계룡산,수산(안동),보미산(진보),오대산,상원산(정선)

팔령산(흥양바다섬중),유량산(연풍),온산(신령)


기암괴석의 봉우리들

기암괴석이 앉아 그아름다움 풍경속에 하나의 점이 되어 본다

만물상 암봉 뒤로는 마치 평풍을 둘러 놓았고

잘 만들어진 수반위에 자연석 하나 올려놓은 수석(秀石)이다.

산에 오르면 이렇게 자연과 한몸이 되고 자연에 어울려 본다

이런맛에 산꾼들이 산에 오르는가 보다

산에 오르면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육신은 피곤해도 정신은 맑아진다

가야산 만물상이 주는 기(氣) 듬뿍 받아보자.


만물상 암봉

가야산 최고봉인 칠불봉을 향해 제단을 만들어 놓은듯 하다.

가야산은 1972년 10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당시부터 출입이 제한됐던 만물상코스가

성주군 지자체와 수많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개방요구와 힘있는 사찰과의 줄다리기도

이제는 지난 이야기가 되었고 2010년 6월 12일 토요일날 37년 8개월만에 개방 되었다

해동 제일의 명산 가야산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만 자자했던 코스이다 보니

새로운 풍광에 목말랐던 산꾼들이 뒷짐만 지고 있을 리 없을 터이고

특히 단풍이 불타오르는 가을을 맞은 만물상코스에는 '인산인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전국의 산꾼들로 붐비는 곳이 되었다.


만물상의 아름다운 풍광

만물상코스는 그 명성에 걸맞게 수없이 많은 기암괴석들이 예쁜수반에 앉아 있고

소나무와 암봉이 잘 어우러져 절경의 그 자체가 아름다움 이다.

코끼리바위 기도바위 곰바위 애기바위 등 기암들을 휘돌아가며 느끼는

암릉산행의 묘미이며 짜릿함 마져 불러 온다.

뿐만 아니라 만물상코스 능선을 둘러싼 서쪽의 사자바위 능선과 북쪽의 칠불봉와 동성봉 암릉

동쪽의 동성재 능선의 압도적 풍광을 둘러보며 걷는것은

마치 천상의 구름 위를 걷는 신선(神仙)처럼 황홀경에 젖게 한다. 



상아()덤

가야산은 6가야국의 주산(主山)으로서

이곳 상아덤은 용기골에서 정상에 오르는 성(城)터에 우뚝 솟아 삼리등(三里登)이라고도 하며

가망 사백리(可望 四百里)의 성봉(聖峰)이다.
옛 가야산에는 높고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 착한 마음을 지닌

정견모주(正見母主)라는 여신(女神)이 살고 있었다.
여신은 백성들의 살기좋은 터전을 닦아주기로 큰 뜻을 품고 정성을 다하여 소원을 빌자

여신의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질하(天神 夷叱河)가 어느 봄날 오색 꽃구름 수레를 타고

이곳 상아덤에 내려와 부부가 되어 옥동자를 낳았는데

형의 얼굴은 아버지인 천신을 닮아 해와 같이 둥그스름하고 불그스레하였으며

아우의 얼굴은 어머니인 여신을 닮아 갸름하고 흰 편이었다.
형의 이름은
뇌질주일(뇌窒朱日)이라 하였고 아우는 뇌질청예(뇌窒靑裔)라 하였는데

형 뇌질주일은 자라서 대가야국의 첫임금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아우 뇌질청예는 금관가야국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
상아덤은 기암괴석의 봉우리로 가야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물상(萬物像) 능선과 이어져 있어

집단시설지 ↔ 만물상 ↔ 상아덤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천하절경의 등산로이다.
이곳을 서장대 또는 서성재라고 부르고 있으나 상아덤이 본래의 이름이다.


상아()덤

상아덤을 향해 삼배(三拜)을 올렸다

산에 오르면서 옛전설에 대한 예의이고 역사이기 때문에 절을 올린다.

정경모주(正見母主)는 대가야 및 금관가야 시조의 어머니라고 한다.

원래 가야산(伽倻山)의 산신이었는데 천신 이비가지(夷毗訶之)에

감응한 바 되어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가야의 왕 뇌질청예(惱窒靑裔)를 낳았다.

조선 초기에 작성된 관찬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고령현 건치연혁조에는

당시 고령의 역사에 대하여 삼국사기에 언급된 대가야 왕계에 대한 기술을 전재하고

다시 신라의 학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석이정전(釋利貞傳)》과

석순응전(釋順應傳)》의 기록을 인용하여 "가야산(伽倻山)의 신(神)인 정견모주가

천신(天神) 이비가지(夷毗訶之)에 감응한 바 되어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金官國)의 왕 뇌질청예(惱窒靑裔) 두 사람을 낳았으니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청예는 수로왕(首露王)의 별칭이다.

라고 적고, 다시 "대가야국의 월광태자(月光太子)는 정견의 10대 손이며

그의 아버지 이뇌왕(異腦王)은 신라의 이찬(夷粲) 비지배(比枝輩)의 딸을 맞아

청혼하여 태자를 낳았다. 이뇌왕은 뇌질주일의 8대 손이다."라고 적고 있다.


서성재(西城)

상아덤에서 서성재구간은 약간 내리막길이며 200m정도 된다

서성재에는 지킴터 및 넓은 공간이 있어 만물상 코스를 오르는 동안

소모된 체력을 보충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 여기저기서 산꾼들이 웅기종기 모여 앉아 간식을 먹고 있었다

서성재에서는 용기골 탐방로를 통해 하산할 수 있고

정상부 칠불봉로 올라갈 수 있는 갈림길 지역이며

여기서 정상부 칠불봉까지는 1.2km의 거리가 남아있다.

서성재는 경남 합천군과 경북 성주군을 이어주는 고개로

과거 가야산성(伽倻山城)의 서문(西門)이 위치함 곳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만물상(萬物狀) 능선

만물산 능선길을 걸어온 산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정에서 뒤돌아보는 코스는 저 산길을 어떻게 걸어왔나 할정도로 생각이 든다

오르락 내리락 일곱번을 거쳐야 만물상 코스를 통과할수 있다

기암괴석들이 동물을 연상케 하는 여러 모습으로 가야산을 지키고 있으며

가야산은 흔히 합천 가야산으로 부르지만 만물상코스는 성주군에 속한다.

가을의 끝자락에서의 만물상은 가을의 화려한 단풍은 볼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이 수없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

가야산 만물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칠불봉0.3km 안내표지목

가야산 최고봉인 칠불봉이 바로 코앞에 있다

만물상 기암괴석에 빠져보고 정견모주의 전설을 따라 칠불봉 산에 이른다

가야산 만물상 탐방길은

무수히 접하는 기암괴석 사이를 오르는 과정에서 38년간이나 감추고 있었던

만물상 능선의 숨은 속살들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다.

긴 세월 동안 아름다운 모습 뽐내고싶어 얼마나 애달았을까.

긴 세월 동안 깊은 밤에서 사람이 그리워 외로움 속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을까

갖가지 모양으로 전시되어 있는 바위들에게 하나 하나 이름표를  달아줘야 할것 같다.

개구리처럼 앙증맞게 앉아 있는 바위는 개구리 바위로

중절모자를 깊게 눌러 쓴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는 모자바위로

도포를 두른 채 만물상을 수호하고 있는 사람 모양의 바위는 미륵바위로

이밖에 대포바위, 원앙바위, 시루떡바위, 입석대, 해산바위 등등

수많은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들이 힘들여 가며

산에 오른 산객들에게 일일이 손에 쥐어주고 있는듯 하다.



칠불봉 정상으로 가는 철계단

늘 그렇듯 하늘과 닿아 있는 철계단을 오르면 천상으로 가는계단처럼

일곱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정토를 올라 가는듯한 느낌으로

한발 한발 계단위에 발걸음을 놓는다

철계단에서 뒤로 한번 쳐다보면 만물상이 마치 공룡등뼈처럼

긴 꼬리를 성주군으로 감싸 안은체 길게 이어져 있다.

산은 언제나 사계절마다 옷을 갈아 입고 그자리에서 산꾼을 기다린다

그러나 산꾼들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또 내일도 다르다

변함없고 아낌없이 산이 주는 넉넉함에 이렇게 오늘도 산에 오른다.


가야산 칠불봉(伽倻山 七佛峯)1433m

가야산 최고봉인 칠불봉에 올랐다.

가야산은 가야건국 설화를 간직한 해동팔경 또는 영남의 영산으로

예부터 正見母主(정견모주)라는 山神(산신)이 머무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야산 산신 正見母主는 천신 ‘夷毗訶(이비하)’에 감응되어

두 아들을 낳았는데 惱窒朱日(뇌질주일)은 대가야 시조 이진아시왕, 惱窒靑裔(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칠불봉은 가야국 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 許黃玉(허황옥)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큰 아들 居登(거등)은 왕위를 계승하고 金氏의 시조

둘째 셋째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 許氏의 시조가 되었다.

나머지 7왕자는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에서 가장 힘차고

높게 솟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 후 도를 깨달아 生佛(생불)이 되었다 하며

그 밑에 칠불암 터가 있다는 전설이 유래되고 있다.

예부터 산산이 머무는 가야산은 그 골이 깊고 수려하며

삼재(旱災, 水災, 兵禍)가 들지 않는 해동영지로 일컬어 온 영산이다.

라고 정상표지석에 새겨져 있다.


가야산 정상 칠불봉(伽倻山 頂上 七佛峯)1433m

正見母主(정견모주)일곱왕자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에서 가장 힘차고 높게 솟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 후

도를 깨달아 生佛(생불)이 되었다 하는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그 밑에 칠불암 터가 있다는 전설이 구전되어 내려 오고 있다.

칠불봉 정상석에는 많은 산꾼들이 인증산진을 찍고 쉬고 있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나는 삼배(三拜)를 올렸다.

이러한 전설이 있는곳에 어찌 삼배를 안할수가 있는가

삼배를 할수 있는 지금 감사할 뿐이다.



가야산 주봉(主峯) 우두봉으로 가는길

칠불봉에서 다시 가야산 부봉인 우두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009년3월28일 토요일날 가족과 함께 해인사에서 가야산 우두봉에 올랐다

그당시 딸나이는 10살이였다

그때 추억이 세삼 되살아나는 우두봉으로 걸었다

가야산은 소백산맥의 지맥에 솟아 있으며

주봉인 상황봉을 비롯하여 주위에 두리봉·이상봉·매화산·남산·단지봉 등이 연이어 있다.


가야산 우두봉(伽倻山 牛頭峰)1430m

가야산 주봉인 우두봉이다

국립공원 가야산은 1966.6. 24 사적 및 명승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

1972.10.13 국립공원 제9호로 지정되었다.

가야산은 경상남도와 경상북도가 서로 잇대어 있는 곳에 위치하여

남으로는 합천군과,거창군, 북으로는 성주군의 3개군 사이에 위치한다.

우뚝솟은 상왕봉은 일명 우두산으로도 불리며, 해발 1,430M의 위용을 자랑하고

 경남·북으로 가르고 있으며 상왕봉을 중심으로 칠불봉, 두리봉, 깃대봉, 단지봉

의상봉, 남산제일봉 등 해발 1000M를 넘는 거봉들이 가야산의 경관을 더해주고 있으며

충청, 경상, 전라 3도의 경계를 이루는 대덕산을 서쪽에 두고 있다.

이곳은 옛부터 해동의 10승지 또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는 곳이기도 하며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법보종찰 해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해인사 앞자락을 굽이쳐도는 홍류동 계곡은 우리나라 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했고

경맥원, 축화천, 무릉교, 칠성대, 낙화담, 회선암, 첩석대, 음풍뢰, 분옥폭
제월담 및 신라말 난세를 비관하여 그 한을 달래기 위하여 산문에 들어가

선화(仙化)한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의 자취가 남아있는 농산정, 학사대 등의 유적과

199512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국불교의 상징인

팔만대장경과 경판전을 보유한 법보종찰 해인사가 있다.  

고기(古記)에 의하면 산형은 천하에 절승 중 제일이다.”라고 극찬하였으며

오대산(1,563M),소백산(1,439M)과 더불어, 왜적의 전화를 입지 않아

삼재(화재,수재,풍재)가 들지 않은 곳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사명대사께서도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신 곳으로 지금도 옛 선현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우비정(牛鼻井)

우물이 금우의 콧구멍 속으로 통해 있으니 하늘이 신령스런 물을 높은 산에 두었도다
혹 한번 마신다면 청량함이 가슴 속을 찌르니 순식간에 훨훨 바람 타고 멀리 날아가리라

우비정(牛鼻井)과 해인사 영지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우비정은 소의 머리를 닮아 우두봉(牛頭峰)으로 불리는 가야산 정상부에 있는
작은 연못이며 일년내내 마르지 않아 가야산 19명소에 뽑히기도 한다
소의 콧구멍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라고 하며
바로 이 우비정 안으로 들어가면, 해인사 일주문 옆에 있는 영지로
연결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우비정에서 봉천대(奉天臺)와  해인사(海印寺)

가야산에는 정견모주의 손자들과 관련된 전설도 있는데
정견모주의 둘째 아들이자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다.
큰아들은 왕위를 계승하여 금관가야의 왕이 되었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외삼촌 장유화상을 따라 가야산에 들어가 도를 닦았다
일곱 왕자를 그리워하던 허 황후는 가야산을 찾았으나 산에 올라갈 수 없어
아들들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 드렸는데
그 덕분인지 해인사 일주문 옆 연못에서 정진 중인 왕자들의 모습이 비춰져
아들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 연못을 우리는 그림자가 비치는 연못이라고 해서 영지(影池)라고 부르며
정성이 극진한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칠불봉의 모습이 연못에 비친다고 한다.



하산길(용기골 : 백운동 계곡)

단풍이만연한 가을이라면 정말 백운동 탐방길은 아름다울것 같다

가을 끝자락에서 걷는길은 낙엽많이 반긴다

하산길에 한무리의 산악회 산꾼들을 만나 잠시 길을 내어 주었다

바닥은 나무로 까라려 있고 양측은 산죽이 빼곡하다

가야산 산정까지는 성주읍에서 27km 떨어져 있으며

백운동 계곡은 성주군 수륜면의 가야산 산세가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곳이다.

수륜면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가야산 순환도로를 따라가면

산허리에는 마애불입상(보물 222)이 있다. 


백운교

하산길 백운교 난간을 잡고서 잠시 쉬어본다

백운동 계곡에서 칠불봉 가는길에 가야산성(伽倻山城)이 일부 남아 있다

용기성(龍起城) 이러고 부르는 산성은 경상북도 성주군과

경상남도 합천군 사이의 가야산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이라고 한다.

산성터를 갈려면 길도 없으며 계곡을 건너야 하기에 근처에서 산성 일부만 보았다

산에 오르면 이렇게 산성터를 볼수있는 산이 드러 있었다


가야산성(伽倻山城)

가야산성은 가야산의 정상인 해발 1,433m의 칠불봉 동남쪽으로 형성되어 있는

용기계곡(또는 백운리계곡)을 중심으로 좌우의 항아덤과

동성봉 능선을 따라 축성된 포곡식산성이다.

가야산성의 서쪽은 성주군과 합천군의 경계에 위치하고

동쪽은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성의 둘레는 7,156m이고 대부분의 성벽은 무너져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일부에는 높이 1.5m 내외의 성벽이 남아있는 곳도 있으며, 면적은 2,059,939㎡이다.

성 안에는 10개의 샘[泉]과 6개의 계곡 및 동서남북의 4대 문지(門址)의 흔적이 남아 있고

용기사지(龍起寺址)·백운암지(白雲庵址)·일요암지(日曜庵址) 등의 절터가 있다.

성 안에 용기사가 있었기 때문에 용기성(龍起城)이라고도 한다.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가야산성이 초축된 시기는 기록이 없어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대가야(大加耶)의 전성기 때 쌓은 것으로 추측하고

대가야의 이궁(離宮)으로 이용하였을 가능성도 상정하고 있다.

562년(진흥왕 23)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된 이후 가야산성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인 1594년(선조 27)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이

조정의 명을 받아 승장(僧將) 신열(信悅)을 시켜 개축하여

인근 백성들의 피난처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이때 신열이 성의 남문을 건립하였는데

후에 이항복(李恒福)이 문루(門樓)에 ‘액부초(扼拊醮)’라는 현판을 만들어 붙였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용기골 하산 완료

가야산 만물상 코스로 올라 가야산 최고봉인 칠불봉 그리고

딸애와 같이 올랐던 가야산 주봉인 우두봉 그리고 우비정을 둘러서

용기골로 하산하였다

가을의 끝자락 가야산의 웅장함에  정견모주 전설을 따라 걷는 산길을 마무리 한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합천군,성주군 홈페이지

가야산 국립공원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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