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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천왕산(固城 天王山).경남 고성의 진산(鎭山) 천왕산에서 봄마중 가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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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천왕산(固城 天王山).경남 고성의 진산(鎭山) 천왕산에서 봄마중 가다

바다늑대FORCE 2020. 3. 5. 18:28


고성 천왕산(固城 天王山)

 경남 고성의 진산(鎭山) 천왕산에서 봄마중 가다


고성 천왕산(固城 天王山)

  높이 : 582.6m

  위치 :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양화리에 걸쳐 있는산.


▲ 나의산행일 : 2020년03월05일. 목요일  날씨 : 맑음


▲ 나의산행코스 :

  양화경로당 → 등산로입구 → 227봉 → 봉화산(봉수대) → 556봉 → 작은천왕산 → 이정표 → 천왕산(582.6m) 정상

   원점회귀 10.2km 3시간45분 소요


▲ 고성 천왕산(固城 天王山) 개요 :

천왕산은 공룡나라 경남 고성군 고성읍 북서쪽에 위치하면서 대가면의 중심을 이루는 산으로

지금은 천왕산으로 불리우는데 일제강점기에 무량산으로 강제적으로 붙인 산이름이였다

고성지역 향도사학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무량산 대신 천왕산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찾았으며

양화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는 형세로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낙남정맥의 산 중 고성지역 최고봉이다.

고성의 진산이며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형상으로서 멀리서 보면 이름 그대로 헤아릴 수 없는

은은한 산세를 지녔고 남릉에 봉화대가 있다.

천왕산은 낙남정맥의 한 구간. 상봉의 일부분만 정맥에서 약간 비켜나 있을 뿐

대부분의 능선은 낙남정맥의 한 축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낙남정맥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낙동강 남쪽을 가로지르며 하동, 사천, 고성, 마산, 창원을 거쳐

김해 동신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이다. 지리산 산줄기를 제외하면

낙남정맥의 마루금이 그렇듯 험난한 구간은 거의 없다.

천왕산도 예외는 아니다. 그저 수수하고 편안하다. 여기에 고성의 산이란 산은 대부분 확인할 수 있고

당항만과 한려해상 국립공원은 도심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날려보낼 수 있을 만큼 시원하고 통쾌하다.

산행은 대가면 갈천리 봉산(어실)마을→함안 이씨묘→지능선→학남산 정상헬기장

→철탑→낙남정맥 능선길→큰재→임도→천왕산 주능선→천왕산 갈림길→천왕산 정상

→도로→너덜→임도→도로봉산마을 순. 걷는 시간만 4시간 정도 걸린다.

갈천둑길을 건너 만나는 첫번째 마을인 봉산마을이 들머이며

길 건너편엔 엄청난 저수량의 갈천저수지. 천왕산을 보고 산행을 하려면 진행방향으로

큰 커브길을 돌면 곧 작은 마을을 또 만난다.

이곳도 역시 봉산마을 이다. 여기서 건너편 안테나가 서있는 산이 바로 천왕산이다.


▲ 고성 천왕산(固城 天王山) 산행지도



▲ 산행지 찾아가는길

진주역 →→→ 진주대로 사천고성방향 →→→상정대로 고성 통영방향 →→→ 송학고분로

→→→ 무량로 →→→ 양화마을 경로당 주차장.

40km 승용차 45분소요.



→→→→→2020년3월5일 목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산을 찾아 오늘도 길을나선다

오늘은 절기로는 경칩(驚蟄)이며 잠자던 개구리도 겨울잠에서 나온다는 봄날이다.

경남 고성의 진산(鎭山)인 천왕산에서 봄마중 가보자.


양화마을 경로당

네비게이션 검색을 경남 고성군 대가면 무량로448 하면 양화마을 경로당이 나온다

천왕산 주 들머리가 되는 양화마을이다

양화마을에 도착하면 주차할곳이 적당치 않고 양화마을 경로당 우측으로 돌면

마을 당산나무가 나오며 그 길을 따라 양화저수지 옆길을 직진으로가면

대가면사무소 쪽으로 가면 갈마곡이 나오는데 갈마곡이 들머리 시작점이다.

천왕산이 있는 대가면(大可面)은 본래 고성군의 지역으로서 고려현종(高麗顯宗) 9년(1018년)에

고성이 현(縣)이 되면서 대둔면(大屯面)과 가동면(可洞面), 시달면(時達面)으로 나누어 졌고

대둔면은 척곡(尺谷), 행정(杏亭), 관동(冠洞), 박달(博達), 가산(佳山), 동지동(同志洞)

괴정(塊亭), 장전(場田), 송계(松溪), 신전(新田), 갈천(葛川), 종생(宗生)등

12개 동리를 관할하여 면소재지를 척곡에 두었다.

가동면은 암곡(岩谷), 부수암(浮水岩), 마전(麻田), 유동(柳洞), 신흥(新興), 각계(覺溪)

가동(可洞), 신화(新化), 세동(細洞), 월촌(月村)등 10개 동리를 관할하여

면소재지를 암곡에 두었으며, 시달면은 양화동(楊化洞), 수치곡(修治谷), 터골(垈谷), 방화곡(芳花谷)

연동(蓮洞), 평동(坪洞), 지동(芝洞)등 7개 동리를 관할하여 면소재지를 양화동에 두었다.
서기 1914년 3월 1일자 조선총독부 경상남도령 제2호로 고성군의 면을 병합 할때 3개면을 병합하여

대가면이라 개칭하고 암전(岩田), 유흥(柳興), 금산(琴山), 연지(蓮芝), 양화(楊化), 척정(尺停)

송계(松溪), 신전(新田), 갈천(渴川)의 9개 리를 관할하였다.


천왕산(天王山)등산 안내도

대가면소재지로 넘어가는 갈마곡에 있는 천왕산 등산안내도 이며 여기서 천왕산 들머리이다

천왕산은 경남 고성군 서북쪽 대가면에 위치한 산으로서 해발582.6m의 고성의 진산(鎭山)이라 한다.

일제강점기때 1920년 일본이 무량산이라고 마음되로 갖다붙인 이름을

고성 향토사학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90년만에 천왕산이라는 본래 이름을 찾았고

산이름 지명을 국립 국토지리원에서 최종확정 했다한다.


천왕산 초입구간

갈마곡에서의 천왕산 초입구간은 서너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산행할수 있는

넒다란 산행로이며 주위 잡목이 산행로에 뻐치지 않아 잘 정비 되어 있다

산행로에는 봄기운이 만연하다 여기저기서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고

경칩날씨 답게 어디 개구리 소리 들릴지 귀 귀울려 본다

경칩(驚蟄)은 24절기 중 세번째 날로 우수(雨水)와 춘분(春分) 사이에 있는 절기로서

24절기는 기본적으로 태양의 궤도인 황도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정해지므로 양력 날짜에 연동된다.

경칩은 태양의 황경이 345°인 날로 대개 3월 5일이나 6일이다.

우수로부터 15일 후가 되는 날로, 이 무렵 기온이 비교적 빠르게 오르고 가끔 봄 천둥이 친다.

경칩은 땅의 얼음이 녹으며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와 벌레들이

천둥소리에 놀라 깨어나 활동을 시작한다는 날이라고 한다.


탐방로 주변 진달래꽃

탐방로 주변에는 벌서 진달래꽃이 만개 하였다

어린시절 처럼 꽃잎하나 따서 먹어 보았다

봄은 이렇게 우리 옆에 성큼와 있지만 세상은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서 정신이 없다

기관에서는 대응에 정신이 없고 사람들도 감염병 주의에 정신이 없다

봄날처럼 코로나바이러스가 빨리 퇴치되고 일상으로 빨리 돌아갔으면 한다.

진달래는 한자로 杜鵑花(두견화) 라 한다

진달래꽃은 산 넘어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을 완연히 느낄 때 즈음에 피기 시작한다.

동네 앞산은 물론 높은 산꼭대기까지 온 산을 물들이는 꽃이다.

진분홍 꽃이 잎보다 먼저 가지마다 무리 지어 피는 모습은 고향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잠시 유년의 추억으로 되돌아가게 해준다

우리의 옛 문헌에 나오는 진달래는 모두 두견화(杜鵑花)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중국의 전설에서 유래한다.

중국의 촉나라 망제(望帝) 두우는 손수 위기에서 구해준 벌령이란 신하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국외로 추방당한다.

억울하고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죽어서 두견이가 되어 촉나라 땅을 돌아다니며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어댔는데, 그 피가 떨어져 진달래꽃이 되었다는 것이다.

두견이의 울음소리가 중국 사람들에게는 그네들 발음으로 돌아감만 못하다는 뜻의

부루구이(不如歸)라고 들리는 듯하여 이런 전설이 생겼다는 것이라 한다.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 탐방로

마치 인공적으로 만든것처럼 탐방로 길이 바르고 소나무숲으로 이어져 있다

바닥은 흙이며 작은돌맹이 어쩌다 보이며 솔잎 깔비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이런길을 걸어보면 마음도 몸도 편안해 진다.

천왕산은 고성읍에서 쳐다보면 높은 봉우리가 웅장하다고 한다

그 웅장한 천왕산이 고성의 많은 산을 거느리고 있으며 고성의 진산이라고 한다.

고성 천왕산 오르는 길은 갈마곡 이외에 대가면복지회관 인근

충효테마파크에서도 오를수 있는데 봉화산 봉수대까지 탐방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한다.

고성 대가면 충효테마파크는

충효테마파크는 약 200년 전 이곳 삼계마을에 이평(李平)이란 효자가 살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봉화산 기슭에 장례를 지내고

묘막을 지어 10년간 지극정성으로 시묘살이를 한 것을 재현한 곳이다.

충효테마파크엔 쉼터와 10대 가량 주차를 할 수 있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효자 이평은 단순한 시묘살이 뿐만 아니라 밤이 되면 인근의 산골짜기에서

돌을 한개식 모아 묘성(墓城)을 쌓기 시작했다.

이러한 효성에 감동했는지 어느 날부터 돌을 져다 나르는 효자 뒤에 호랑이가 늘 같이 따라 다녔고

끝내는 호랑이와 친해져 효자와 같이 시묘도 하고 묘성도 같이 쌓게 되었다

시묘살이를 끝내고 호랑이를 돌려보낸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효자의 꿈에 호랑이가 통영 원문재의 함정에 빠진 것을 보았다.

효자 이평은 즉시 원문재로 달려가 보니 호랑이가 함정에 빠져 있었고

몽둥이와 창을 가진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함정 속의 호랑이를 해치려고 하였다.

효자 이평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호랑이는 나와 같이 사는 내 호랑이요.

이 호랑이는 예사 호랑이가 아니니 해쳐서는 아니 됩니다."하며 함정으로 뛰어 내려가

"아이고 네가 어찌하여 이런 곳에 빠졌느냐."라며 머리를 쓰다듬으니 정들은 개가 주인을 반기 듯

효자를 따르니 이를 지켜본 사람들이 크게 감복하여 호랑이를 구해 주었다고 전해진다.

효자 이평(李平)이 세상을 떠나자 마을 사람들이 뜻을 모아 효행비를 건립하였고

나라에서 효자라는 시효를 내려 그 자손이 소장하고 있으며

지금도 시묘살이 중 호랑이와 같이 쌓아 올린 묘성은 지금도 봉화산 기슭에 그대로 남아 있다.


충효테마파크와 갈마곡 갈림길

봄이 오는 길목에서 따스함이 소나무 숲사이로 내린다

여기서 충효테마파크로 내려가면 충효에 대한 여러가지 

의미와 효자 이평의 시묘살이 터가 나온다.

효(孝)자의 의미를 보면

시골 어떤 지역 닷새만에 장이 서는데 장이 서게되면

아들은 그동안 모은 나무짐을 지고서 장에 팔러간다.

늦은 저녁이 되면 어머니는 이제나 저네자 아들을 기다린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으면 걱정이 되어 동구밖까지 나가 본다

멀리서 한사람씩 보이기 시작하며 어머니는

좀 더 자세히 좀 더 멀리 보기위해 나무위로 올라가서 바라본다

이러한 애틋한 마음을 한자에서 어버이 친(親)이라고 한다.

이제 아들은 시장에 가서 나무를 팔고 그 돈으로

어머니께 드릴 반찬과 몇가지 일용품을 사들고 오다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만난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공손하게 말씀드린다

어머니 다리가 아프실텐데 어찌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제가 업어 드릴테니 이 지게위에 타삽시오

그래서 노인을 지게위에 태우고 오는 아들의 모습이 한자의 효도 효(孝)자 이라고 한다.


고성 천왕점 봉수대(경상남도 기념물 제221호)

경남 고성군 대가면 양화리 봉화산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터이다.

봉수대는 높은 산봉우리에 봉화를 올릴수 있게 해놓은 곳이다.

봉수는 과거 햇불과 연기로 적의 침입을 중앙에 알리던 군사 통신 수단이었다.

고성 천왕점 봉수대는 해안과 내륙을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는 천왕산 주능선

끝부분(해발355m)에 있다.

1999년8월6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21호로 지정되었다.


고성 천왕점 봉수대

여러 산행길에서 만난 봉수대와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처음엔 허물어져서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원래 이렇다

마치 둥글게 돌로 쌓아 올려 중앙에는 마치 화산 분화구처럼 보였다.

봉수대는 고대부터 중요한 통신수단의 하나로 높은 봉우리에서 횃불이나 연기 등으로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아이나 해당 진영에 알려

적의 침략을 분쇄하는 등 군사목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고성 천왕점 봉수대는 다섯갈래의 직봉중에 경상도의 동래에서

경북,충북,경기도를 거쳐 중앙봉수로 연결되는 제2로에 포함되어 있는데

남쪽으로는 통영 우산 봉수와 동쪽으로는 고성 곡산 봉수와 연결된다 한다.

천왕점 봉수대를 쌓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1425년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에 나타나 있으므로 1425년 이전에 쌓아 만든것으로 보인다 한다.


고성 천왕점 봉수대

봉수대의 지름은 짧은쪽이 18m 긴쪽이24m라고하며 반타원형 석축구조로서

석축 높이는 1.5m~5,m이며 넓이는 2m라고 한다

반타원형으로 석축을 경사지게 3~4단으로 축조하였으며

동해면의 곡산봉수대를 향한 동쪽부분은 담장을 쌓지 않고

석축을 방형으로 돌출되게 축조한 흔적이 있는데 이곳에 연대 또는 화덕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며 통영의 우산봉수를 받아 곡산봉수에 연결 기능을 하였다 한다.

방호벽 안쪽면적은 230㎡이며 남족에 있는 방호벽 가운데 계단으로된 출입시설이 있다.

방호벽 안쪽의 평평한 곳에 모두 5기의 연조가 있으며 연조의 평면은 원형이나 직사각형 모양으로 돼 있다.

봉수대 주변에서 담장,구,집석 등이 확인되었으나 그 정확한 규모와

성격은 파악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봉수대를 지키던 군인들이 경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채소밭이 확인되었다 라고 안내계시판에 소개 되어 있었다.


봉수대옆 대밭

고성천왕점봉수대 주변은 이렇게 대밭으로 이루어 져 있었다

이렇게 산먼당에 대밭이 존재하는곳이 천왕산줄기 봉화산이다

유년시절 우리동네에도 대밭고 라는곳이 있었는데

우리 작은아버지네 대밭과 조씨아저씨네 대밭사이로 장지로 가는 길이

대밭고 라고 불렀는데 혼자 이길을 어릴적에 가면 좀 어시시 무서웠다.

봄날 새싹이 움터는곳에 초록이 풍성한 길을 너무 좋다

보통 산에는 조릿대 산죽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산 중턱에 대밭이 특별하게 보였다.


봉화산 정상 352.9m

봉수대와 대밭을 지나니 정상 표지석은 없지만 봉화산 정상 352.9m 라고

코팅해서 걸어 놓았다

봉화산이란 이름도 많은데 대부분 봉화대가 있는 곳이다

봉화대는 우리나라에서 약 120년 전까지 사용하였던 봉수는 과학적으로 잘 갖추어진 통신 방법이다

봉수대에서는 낮에는 연기를 이용하고, 밤에는 불빛을 이용하여 정보를 먼 곳까지 신속하게 전달하였고

신호가 전달하는 내용은 봉수대의 굴뚝에서 올리는 연기나 불꽃의 수에 따라 달랐다.

이렇게 연기나 불빛을 이용하여 만든 신호는 인근의 봉수대에 차례대로 전달되어

한양까지 전달하였으며 봉수대는 봉수 신호를 잘 받고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높은 산꼭대기에 세웠다.

평상시 연기나 불빛으로 알아볼 수 있는 거리를 두고 봉수대를 세웠는데

이렇게 설치된 봉수대는 전국에 600개 이상 되었다.

높은 산의 정상에 세워졌던 봉수대 자리는 지금의 전파 중계소가 있는 곳과 거의 같다.


국가지점번호[ 라 라 7142  7019  고성군]

국가지점번호는 재난사고등 신속히 대처하기 위하여 비 거주지역인 산악 들판

해양등에 위치를 표시하여 국가지점번호를 각 지자체별로 위치를 선정하고 표지판을 설치하고 있다.

문제는 국가지점번호 만 불러주면 구조대에서 위치를 당연히 알거라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문제는 새로운 좌표체계로 만들어진 국가지점번호 만으로는 위치 파악이 어렵다

국가지점번호는 지적공사에서 측량을 하여 위치부여 있는데

국가지점번호 각위치 데이터도 없어 설치한 시군에 문의해야만 그 위치를 알수 있다.

차라리 휴대폰 앱을 깔아 좌표를 불러주는게 훨신 위치파악에 도움이 되며

국립공원 위치표지목은 위치표지목 지도가 119구조대에

보유하고있고 위치표지목 점검도 하고 있어 위치 확인이 가능하다.


휴식

탐방로 옆 의자 같은 암석에 앉아서 봄을 기다려 보자

봄의 전령이 귓가에와서 자네 소원이 뭔가 물어보면 좋겠다

갈마곡에서 천왕산 가는길이 쉬운길은 아니었다 제법 긴 코스다이다

오르막을 또 오르면 또 오르막이 있고 봄기운에 땀이 송글송글 맻쳤다

산에 오르면 이렇게 노폐물이 제거되는 땀을 흘려서 좋다

산새들이 봄이라 썸타는지 여기저기 지저 되고 있다

아니면 자기구역에 모르는 인간이 침범했다고 동료들에게 전파하는지도 모르겠다.


봄바람을 맞이하며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봄바람이 씩겨주었다

시언하게 불어오는 미풍은 담을씻어주기엔 알맞다

강한바람은 오히려 춥게 만들지만 봄바람 산들 산들 마음까지 심쿵하게 만든다

천왕산이 있는 대가면에는 조씨부인 전설이 있는데

신전리에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약 250년전에 함안조씨 부인이

젊은 나이에 남편(수원백씨)을 여위고 제법 넉넉한 살림살이를 하면서 살았는데

슬하에 자녀가 없었으나 마음이 청조하고 결백하여 뭇 남자들이 아내를 삼겠다고 꾀었으나

끝내 거절하고 살다가 나이가 들어 재산처분에 고심을 하다가

결국 갈천서원에 전 재산을 헌납하고 자기 기제일에 밥 한술 떠놓아달라는 유언을 하게 되어

지금도 서원 향사시에 유림들이 망인에게 헌작은 하고 있다.

그리고 큰땀 옆에 있는 조씨부인 무덤에 제물을 정성껏 차려 소원성취를 기원하면

신통하게도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지금도 무덤을 찾아 소원을 비는 제를 올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대가저수지와 양화저수지 조망

발아래 멋지게대가저수지와 양화저수지가 펼쳐진다

대가저수지 주변에 연꽃테마공원, 생태탐방로를 개설하면서 관광객이 늘고 있다고 하며

2020년6월에는 제정구 커뮤니티센터도 들어선다고 한다.
연꽃테마공원은 1만 9940㎡ 규모에 수련, 홍련, 황련, 백련 등이 식재되어 있다하며

게이트볼장, 잔디동산, 휴게쉼터, 연꽃탐방로, 전망대, 체력단련장 등도 갖췄다 한다.
생태탐방로는 대가저수지 960m구간에 데크와 경관조명을 설치한 산책로이며

데크 주변에 벚꽃나무가 식재돼 있어 봄이 되면 새로운 벚꽃명소라고 한다. 


양화(楊化)마을의 조망

천왕산 들머리인 양화마을과 들판이 골짜기 사이로 펼쳐져 있다.

양화리(楊化里) 유래를 보면

양화리는 단일 법정리로 형성된 마을로서 본래 가동면(可洞面)의 지역으로

옛날 이 마을에 법천사(法泉寺)라는 큰 절이 있었던 연유(緣由)로 마을명을 '법천"으로 불러 오다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마을 앞에 버드나무가 줄지어 우거져 있다 하여

버들양(樣)자를 붙여 양화리로 하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대가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이 생긴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이 마을에 들어온 지 오래된 문중(門中)의 선산을 참고하여 추정해 보면

지금부터 약 300년전인 1,700년경에 맨 먼저 입촌한 성씨는 김해김씨(金氏)라고 전하고 있으며

지금은 함안이씨(李氏), 청주한시(韓氏), 밀양박씨(朴氏), 의령남씨(南氏), 진양정씨(鄭氏)

성주배씨(裵氏)등 10여 성씨가 거주하고 있다.

양화리는 고성의 진산(鎭山)이라 일컫는 천왕산(581m)의 높은 산자락이 두개의 날개를 펴

사방을 에워싼, 아늑한 산골마을로 기후가 온화하고 계곡의 물은 맑고 수원도 풍부하나

농경지는 산록에 천수답이 많으며 경지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1972년도에 마을 입구에 양화저수지가 설치되어 밖에서는 마을이 잘 보이지 않는 마을이다.


낙남정맥572봉

낙남정맥과 합류되는 지점이다

고성 천왕산도 낙남정맥구간이라 정맥산군들의  코스 이기도 하다

낙남정맥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정맥으로,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끝나는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남강의 진주와 남쪽의 하동·사천 사이로 이어져

동쪽으로 마산 창원 등지의 높이 300∼800m의 높고 낮은 산으로 연결되어

김해의 분성산(360m)에서 끝난다.

서쪽에서는 섬진강 하류와 남강상류를 가르고, 동쪽에서는 낙동강 남쪽의 분수령산맥이 된다.

연결되는 산은 옥녀산(玉女山, 614m)·천금산(千金山)·천왕산(天王山, 579m)·여항산(餘航山, 744m)

광로산(匡盧山, 720m)·구룡산(九龍山, 434m)·불모산(佛母山, 802m) 등으로 그 길이는 약 200km이다.


대가면의 고성  남포항의 조망

저멀리 고성남포항도 조망되고 그앞엔 통영지맥의 철마산철마봉도 조망된다

대가저수지가 있는 유흥(柳興)리는

유흥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신흥(유흥리 중심마을)과 유동마을의 이름을 따서

유흥리로 하여 법정리가 되었고 유흥리를 행정리로 분동하면서 유흥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취락을 날가지·참새미골·소두머리·절골·용머리·갈곡·갈망골·중담 등이 있다.

마을이 생긴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양씨(楊氏)가 맨 먼저 신흥에 입촌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1960년대에는 140여호가 거주하는 큰 마을이었으나

점점 가구가 줄어들어 지금은 70여호만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유흥마을은 봉화산(대가 봉화대)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로

대가저수지 윗쪽에 형성된 농경지는 비옥한 토질이나 수원이 부족한 편이며

남으로 대가저수지를 경계로 고성읍과 접하고 있어 대가면의 갑문에 위치한 마을이다.


고성 남포항 조망

바윗돌에 걸터 앉아서 저멀리 남포항을 바라보며 봄마중 해부자

미세먼지에 확트인 조망은 없지만 봄 햇살 내리는 바윗돌에 앉아 쉬는것 만으로도 좋다.

고성 대가면 대가저수지옆 삼계(三溪)마을은

대가면 사무소의 소재지 마을로 옛날에는 "覺溪"라 쓰고 주로 "객기"라 불러오다가

두 개울 주변으로 세 땀(고대골땀, 본땀, 새땀)으로 마을이 형성 되었다하여

삼계(三溪)라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풍수지리설에 마을 위치가 "게설"이라 하여

항상 게가 잘 드나들 수 있게 막히지 않아야 마을과 가정이 번창한다고 전하고 있어

 지금도 대문을 설치하지 않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마을이 생긴 연대(年代)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약 500년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효자(孝子) 이평(李平)선생의 선대인 경주이씨(慶州李氏)가 맨먼저 마을에 정주하면서부터

그 뒤로 성주배씨(星州裵氏), 경주김씨(慶州金氏:정주연수 약 400년), 전주최씨(全州崔氏) 순으로

여러 성씨가 입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나 경주이씨, 성주배씨 두 성씨는 오래 전에 마을을 떠나고 없다

삼계마을은 천왕산 줄기인 노적봉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 대가면사무소, 고성경찰서 대가파출소

대가농협, 대흥초등학교등 면단위 기관이 소재하고 있으며

마을 앞 농경지는 경지정리가 잘 정비된 비옥한 점질양토로, 마을은 동향과 남향 두 방향으로 이루어져

대가저수지를 팔 안에 껴안듯 경치가 수려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봉화산과 화리재의 갈림길

천왕산 산행은 갈마곡 뿐만 아니라 화리재 들머리를 해서 산행하는 사람도 많다

주로 산꾼들은 각마곡에서 시작하여 봉화산 정상 찍고서 화리재로 하산하여

양화경로당으로 내려간다 그러면 보통 4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여기서 정상가는 길목과 삼거리 형태이다.

산에 오르는길에 여성세분 등산객을 만났는데 고성읍내에서 왔다고 한다

셋사람 모두 같은 직장에 일한다고 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사업장 문을 열지 않아 출근을 안하고 있다고 한다.


정상가는 길

정상가는 길목에 두 바윗돌이 마치 대문처럼 서 있다

천왕산의 입구는 하늘로 들어서는 통천문과 같아 보였다

바윗돌이 조금 더 큼직 했더라면 금상첨화일진데 조금 아쉽다.

천왕산(天王山)이라는 이름은 2014년에 되찾았다고 한다.
일제감점기때 무량산(無量山)으로 바꿔 표기하고 부르면서 원래 이름을 잃어버렸다
지금도 주요 산관련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무량산이란 이름으로 검색된다
2014년에 지역주민과 향토사학자들이 뜻을 모아 천왕산 이름을 되찾았다고 하며
그 외 대곡산을 무량산으로, 천황산은 서재골로 바뀌었다 한다.


작은천왕산 봉우리 조망

보이는 능선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산정에서 바라보는 지나온 능선길이 까마득 하게 보인다

저 산봉우리 아래는 효자 이평시묘살이 여막이 있고

유흥~갈천간’ 입구 이평 선생 불망비 입석지에서 속칭 ‘깻곡’으로 가는 길 중 턱에 달맞이 동산 팔각정이 있고

산중턱 오솔길을 따라 남쪽으로 오는 길목에 ‘해 미당곡’이라는 고개가 있으며,

여기서 산 정상을 향하는 약 100m 지점 등산로 왼쪽 에 효자 이평 선생 모친 묘소가 있는

지점까지의 구간 약 1km 구역을 ‘충효테마파크 ’라고 하며, 군데군데 충,효 안내판, 쉼터가 있다.

산정상을 향하여 철로 갱목 계단이 400여 층 있으며

묘소 옆 등산로 오른쪽에는 이평 선생이 시묘(侍墓)살이를 하던 움 막을 재현하여

청소년과 학생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조성된 지역이다.


천왕산(天王山) 정상582.6m

드디어 천왕산 정상에 도착 하였다

천왕산은 고성읍 북서쪽에 위치하면서 대가면의 중심을 이루는 산으로

양화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는 형세로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낙남정맥의 산 중 고성지역 최고봉이다.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형상으로서 멀리서 보면 이름 그대로 헤아릴 수 없는

은은한 산세를 지녔고 남릉에 봉화대가 있다

천왕산은 낙남정맥의 숲길에 속하여 종주객들이 있는편인데

천왕산 전설에는 산마루에 높이10m,넓이5ㅡ6평 되는 큰 바위로 이를 "코바위" 라 하며

마을 서북쪽 "진성골" 산비탈에 날카롭게 서 있는 높이가 30m도 넘는 웅장하고

기이한 바위를 "해삼바위" 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바위들에 얽힌 전설은 태고시 천지개벽을 할 때 해일이 일어나 삼라만상이 물에 잠기었을 적에

코바위는 끝이 상투코만큼 남았고 해삼바위는 해일이 끝나 물이 빠지고 난 뒤에

바위 해삼이 붙어 있었다고 하여 코바위와 해삼바위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천왕산(天王山) 정상582.6m

공룡세계엑스포의 고장 경남 고성군에 위치한 천왕산은

고성군의 북서쪽 대가면에 자리잡은 산으로 해발583m로 고성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고성의 진산(鎭山)이며 지금은 천왕산으로 불리운데 일제 강점기에 무량산으로 강제적으로 붙인 산이름이였다 

양화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는 형세로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낙남정맥의 산 중 고성지역 최고봉이다.

고성의 진산이며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형상으로서 멀리서 보면 이름 그대로 헤아릴 수 없는

은은한 산세를 지녔고 남릉에 봉화대가 있다.

천왕산은 낙남정맥의 한 구간. 상봉의 일부분만 정맥에서 약간 비켜나 있을 뿐

대부분의 능선은 낙남정맥의 한 축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낙남정맥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낙동강 남쪽을 가로지르며 하동, 사천, 고성, 마산, 창원을 거쳐

김해 동신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이다. 지리산 산줄기를 제외하면

낙남정맥의 마루금이 그렇듯 험난한 구간은 거의 없다.




 천왕산(天王山) 정상582.6m

천왕산 표지석 뒷면 固城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하다

경남 고성군의 최고봉인 해발 581.4m의 천왕산 정상석의

제막식은 2016년 12월 26일 산악인, 마을주민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천왕산 정상에서 열렸다고 한다.  
이날 제막된 표지석은 고성군 대가면 유흥마을 주민 김평대(61·대흥석재 대표) 씨가

기증한 것으로 가로 0.9m, 세로 1.5m 크기다. 
정상석의 무게는 무려 1t으로 운송이 어려워 헬기까지 동원했다고 하며
정상석을 기증한 김평대씨는 평소에도 표지석을 기부하는 등

대가면의 발전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전한다. 
유흥리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고성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바뀐

천왕산의 지명을 바로잡고 표지석까지 세워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어

감개무량 하다"며 김평대 씨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날 제막식에 참석한 김명순 대가면장은 "충효테마파크~봉수대~천왕산 정상 구간까지

친환경 등산로 정비사업을 통해 등산객의 안전과 편의를 도모하고

지역의 명산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신낙남정맥 중간지점

신낙남정맥은 낙남정맥이 낙동강의 하구에서 끝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으로

용지봉에서 낙남정맥과 남동쪽 방향으로 갈라져 불모산-화산-굴암산-너더리고개-두동고개-보배산(보개산)

-장고개-봉화산을 지나 낙동강하구둑 녹산수문에 이르는 24km의 산맥을 말한다.

신낙남정맥을 낙남정맥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를 지지하는 사람은 신낙남정맥과 갈려진 이후의

원래의 낙남정맥을 무척지맥으로 명명하였다 한다.


양화마을의 당산나무
고향마을 입구에도 해나리라 하여 당산나무가 마을입구를 지키고 있고
양화마을도 옛촌락 형태로 서낭당 돌탑과 수백년은 됨직한 아름드리 당산목(堂山木) 랜드마크처럼 서 있다
매년 정월대보름에 이곳에서 당산제를 지냈는데 지금도 그 행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하여 양화마을로 원점회귀하여 역사와 전설이 깃든 고성 천왕산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고성군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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