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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보잠산(晉州 寶岑山).낙남월아지맥 토종소나무숲길 보잠산을 걸어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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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보잠산(晉州 寶岑山).낙남월아지맥 토종소나무숲길 보잠산을 걸어보다

바다늑대FORCE 2020. 2. 19. 17:04

진주 보잠산(晉州 寶岑山)

 낙남월아지맥 솔나무숲길 보잠산을 걸어보다


진주 보잠산(晉州 寶岑山)

  높이 : 439m

  위치 : 진주시 일반성면 남산리와 고성군 개천면 청광리 경계에 있는산


▲ 산행일 : 2020년02월19일 수요일. 날씨 : 맑음


▲ 나의산행코스 :

  일반성  상남재 보잠산 등산안내판→→→190m→→→수목원갈림길→→→439m 삼각점

 →→→ 산성터 →→→보잠산 정상 →→→→→→산성터→→→진양정씨→→→반성저수지

 →→→상남마을버스정류장→→→답천저수지

9.5km  3시간5분 소요


진주 보잠산(晉州 寶岑山) 개요 :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되는 낙남정맥220km 가 동쪽 김해시 신어산까지 뻗어가다가

이반성면 발산재에서 이 정맥이 분기하여

월아산 방향으로 틀면서 굽이굽이 만수산을 거쳐 보잠산에 당도하게 된다.

진주 일반성면 경상남도수목원이 있는 보잠산은 한자뜻으로 보면

보배보寶 봉우리잠岑 보배같은 봉우리 산'이지만

500고지도 되지 않은 반성면뒷산 같은산이라고 할수있다.

아마도 진주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의 넓은 들판에 우뚝 솟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산꾼들이 봉우리 '잠(岑)'자와 고개 '령(嶺)'자를 헷갈려 '보령산'으로도 부르기도 한다.

보잠산은 월아지맥을 찾는 산꾼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산이지만

일반 등산객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의 산이다.

아낙네의 비녀를 닮았다고 하여 잠(簪)산이라고도 하고 원통산으로도 불리웠으나

언제부턴가 보잠산(寶岑山)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낙남월아지맥: 낙남정맥이 지리산 영신봉에서 분기하여 삼신봉을 지나 끝자락인 낙동강으로 해달린다.

동으로 해달리던 낙남정맥은 깃대봉에서 북진하며 발산재로 내려가고, 서쪽으로 분기하는

산줄기가 하나 있으니, 진주시와 고성군의 경계를 따라 만수산-나동고개-보잠산을 지나

월아산권으로 들어가는 약30km의 산줄기를 '낙남월아지맥'이라 부른다


진주 보잠산(晉州 寶岑山) 등산지도


진주 보잠산(晉州 寶岑山)찾아가는길

진주역→→→진마대로 창원방향→→→동부로 일반성 방향→→→떡보길→→→상남마을방향

→→→답천저수지 인근 주차장

23km 승용차 25분 소요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2020년 02월19일 수요일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찾아 길을 나선다

진주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보잠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얼마전에 알았다

경남수목원뒷산 정도만 알고 있었던게 낙남월아지맥이라 하며 정상표지석도

제법 큼직한게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접하고 오늘 산행길에 나선다.


보잠산등산안내도

보잠산 등산 안내도는 일반성면 답천저수지 인근 고개 들머리에 있다

햇살이 역광이라 사진촬영이 좀 곤란 하였다

안내지도는 오래되어서 등산코스를 알아볼수가 없을 정도로 낡아 있다

보잠산 주위에는 유난히도 저수지가 많다 들머리가 되는 답천 저수지 날머리 반성저수지를 비릇하여

대천저수지 그리고 고성군을 지나면 가천저수지와 나동저수지도 보잠산 주위로 산재해 있다.

보잠산은 일반성면 경상남도수목원이 능선으로이어져  있으며 보잠산 모습이

여자 비녀 같다하여 잠(簪)산으로도 불리운다.


보잠산(寶岑山) 등산로 입구 안내표지

경상남도수목원에서 우측으로 가면 2차로 도로가 나오는데 고성방향으로 가다보면

좌측에 커다란 보잠산 등산로 입구란 안내판이 서있다

건너편에 주차장이 있어 주차를 하면 된다.

보잠산은 낙남정맥월아지맥이라고 하는데 지리산 영신봉에서

낙동강 남쪽을 따라 김해 분성산까지 약299km 산줄기를 낙남정맥(洛南正脈)이라 하고

진주와 고성 경계에 있는 갓대봉에서 남강으로 달려 곁가지가 바로 월아지맥(月牙地脈)이라고 한다.


보잠산 초입구간

유유자적(適)걷기에 좋은 산길이다 주중이라 산행길에 만나는 사람도 없다

바람결에 쌓인 스트레스 훨훨 털어 버리면서 걷는길은 마음의 정화이다

바닥엔 참마무 낙엽과 소나무깔비가 가득 쌓여 있는 사푼사푼 걸어본다

보잠산은 소나무가 울창하다

들머리 안내 표지판 처럼 토종 솔나무라 한다.

사실 토종 소나무가 어떤건지 구분을 못했다 우리 산야에 우리 소나무인줄 알았는데

한때 우리는 미제(美製)라고 하면 깜빡 숨이 넘어가던 시절이 있었다.

광복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남아난 산업이 없으니 국산품은 무엇 하나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때의 미제는 튼튼하고 품질 좋은 우량품의 상징이었다.
이런 시절 헐벗은 우리 산에는 ‘리기다소나무’라는 미제 소나무가 이곳저곳에 심기기 시작했다.

미국 동남부지방이 고향인 리기다소나무는 대체로 일제강점기인 1907년경 우리나라에 처음 시집왔다.

이후 한국전쟁이 끝나고 한창 복구가 시작된 1960~1970년대에는 산마다 리기다소나무 천지였다.

정부에서 공짜로 묘목을 나누어주었고, 인부까지 동원해 심어주었으니 산 주인이야 마다할 리 없었다.

자그마치 48만 헥타르의 리기다소나무 숲이 생긴 것이다.


토종 소나무 숲길

토종 소나무 내음 맡아보자 산에 오르내리면서 소나무 천지속에서 이렇게 소나무향에 빠져본다

토종소나무와 미제 리기다소나무 구별을 알아보자

토종소나무는 껍질이 두껍고 깊이 패여 있으며 리기다소나무는 나무몸통에 잔잎이많이 나 있으며

껍질도 마구잡이로 일어나 멋이 없고 지저분 하다 토종소나무 아래에서는 약초와 산나물이 살수 있지만

리기다소나무 아래에서는 전혀 살수가 없다고 한다 토종소나무는 껍질색이 뿕고 리기다소나무는 색이 검다

토종소나무 잎은 두갈래 이지만 리기다소나무잎은 세갈래 잎이다.

리기다소나무는 줄기 여기저기에 ‘맹아(萌芽)’라는 부정기적인 작은 새싹을 내밀어

부분 부분을 털북숭이처럼 만들어둔다. 설령 윗부분이 말라죽어도 줄기의 어디에서라도

다시 새로운 가지를 만들어 생명을 이어가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토종 우리 소나무나 곰솔 등 다른 소나무 종류는 줄기에서 맹아가 돋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멀리서도 리기다소나무 숲은 금세 찾아낼 수 있다. 

또 리기다소나무는 솔방울이 잔뜩 열리는 나무로도 유명하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그러하듯 리기다소나무 역시 삶이 편편치 않으면

우선 자손부터 퍼뜨릴 궁리를 하기 때문이다.


지도보며 독도법

근교산은 특히나 산행자들이 많이 찾지 않기 때문에 안내표지목이나 산행자깃표가 없어

길이 헬깔릴 정도로 산길이 드러 나온다

그래서 선등자들의 산행기나 리뷰(review) 그리고 지도를 참조해야 길을 잃지 않는다.

경상남도수목원에서 보잠산 정상찍고 지금 내가 등산하는길을 날머리 코스로는

산행로가 잘 정비 되어 있고 특히 경상남도수목원코스는 맨발코스도 있어

경상남도수목원코스를 정하면 산행하기에 편리할듯 하다


쉼터

가던길 멈추고 잠시 벤치에 걸터 앉아서 사색을 즐겨보자

소나무를 쳐다보면 예전같으면 청설모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는걸 보는데

요즘 청설모 녀석도 보이지 않고 까마귀 서너머리 까악 거린다.

보잠산 들머리가 있는 이반성면 답천리(沓川里) 답천은 조선 시대에는 진성리 노천

일명 논아곡(論阿谷) 양장(洋場)마을이다.

본래 진주군 외진성면의 지역으로 논내실 또는 노천, 답천이라 하였는데

1914년 3월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일반성면의 채동 일부를 병합하고

답천리라 하여 일반성 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진주군 일반성면 채동, 외진성면 답천동 각 일부로서 답천리라 하였다.

답천리는 답천, 양전 2개 마을이다.


첫번째 만나는 안내표지목 보잠산 2km

상남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였으니 2.4km를 걸은 셈이고 정상까지는 2km더가야 한다

일반성면은 진주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6개 읍면 중 가장 적은 면적으로

동쪽은 이반성면, 서쪽은 진성면, 북쪽은 사봉면, 남쪽은 고성군 개천면과 영오면에 접하고 있다.

동부 5개면의 교통, 문화, 상업지역의 중심지로 초, 중, 고교, 어린이집 2개소, 의원 7개소

경전선 철도 및 국도 2호선이 통과하며 반성시장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으며

창촌리 5개 마을은 대부분 상업인구로 구성되어 있어

반농반상 생업수단과 전체인구의 약 55%가 밀집 거주하고 있는 면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일반성면은 특이한 산은 없고 대소구름으로 형성되어 남강지류로 인한 충적분지로서

비교적 넓은 평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후는 남부지방 기후대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온화한 편이다.

년 평균기온 13도씨 강우량은 년 평균 1,486㎜이며 주요산은 보잠산 439m

매화산139m, 작당산 252m로 무명산이 함안 여함산맥으로 이어져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토종소나무숲길

아마도 정상 4.4km가 토종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 길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인하여 조망은 전혀 나오지도 않고 순수 흙산이다

소나무가 많아서 송이버섯을 나올려나 지형을 보니 송이버섯 나올만한 곳은 아닌듯 하다.

제법 걸었는데도 산꼭대기가 보이지 않는다

코스가 제법긴 코스이다 오늘은 조금 운동이 되겠다

마실물 간식꺼리도 전혀 챙겨 오지도 않았는데 멀기만 느껴진다

산행길에는 멧돼지 흔적은 보이지 않아 다행이였다.


삼각점이 있는곳에 의자같은 나무

헉헉거리며 올라온곳이 정상이 아니라 보잠산 삼각점이 있고 의자같이 생겨

한번 걸터 앉아 보았다 아마도 여기 지나는 산행자들은 한번쯤 다 앉아 보았을것이다

여기서 우측은 나동고개가 나오고 전방은 정상가는 길이다

가지가 휘어진 부분이 내가 올라온 곳인데 경상남도수수목원과 이어진다.

아마 녹음이 울창한 여름날에 산행길에 오면 등산로가 녹음에 우거져서 잘 보일지 모르겠다

토종소나무 아래 산길은 비교적 잘 정비 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대천저수지의 조망

439고지를 지나니 이렇게 조망도 보인다

내가 진주에 30년 넘게 살면서 이제야 보잠산을 오른다는것은

그정도로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야말로 보잠산은 미지의 산이다

아마도 지맥 산행자들이 개척한 산길일까 아니면 진주수목원원에서 개척한것일까궁근하다

보잠산은 작당산(鵲堂山)과 연계되는데 작당산은 표지석이 없다.

작당산은 1950년 8월. 6․25동란 때 진주지방에 침투한 북한군 6사단12연대 와

아군 미24사단19, 27연대 간의 전적지이다.

양전마을 주민들 말은, 북한군 저격병들이 이곳 돌무더기로 참호를 구축하여

감제(瞰制)고지로 삼아 미군들이 국도2호선 대천마을 앞을 통과할 때 포사격을 가할 곳으로 엄폐했지만

워낙 미군 차량 행렬이 많아 포기하고 보잠산쪽으로 퇴각하자

미군들이 올라가 파놓은 참호를 이용하여 매복했는데

그러나 사봉삼거리 부근에 주둔한 미군들은 이곳에 북한군들이 있다는 정보를 오판하고

포사격을 퍼부어 그만 미군 5명이 전사하는 오폭이 있었다. 

1년 후, 미군들이 양전마을을 찾아와  주민 류재갑(1932년생)씨 등을 동원하여

사체를 수습하여 미군들이 인수했다.

산 아래 서쪽 돌무더기 너덜겅에는 일제시대 때 구리광석을 캐기 위해 ‘옥구산 광구’가 있었으나

바라는 구리는 나오지 않고, 철 성분이라 폐광하였다.

지금은 광구가 무너져 내려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그 옆 골은 ‘절골’인데, 조선 말엽 이 마을 절골스님과

건너골 최부자 간의 ‘권선징악’같은 설화가 있다.

지금은 깨어진 기와조각, 이징기미(옹기조각)만 발견 될 뿐이다.


보잠산성(寶岑山城)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남산리 남쪽에 위치한 보잠산 좌측 봉우리에 있는 산성으로서

축조 기법은 테뫼식으로 고려시대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성(石築城)이다.
보잠산성은 보령산성(寶嶺山城)으로도 불리는데, 문헌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 무명 산성으로서

산성이 위치한 보잠산의 명칭을 따라 보잠산성으로 불린다.

보잠산성에 대한 조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문헌기록에서도 보이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와 축조 목적을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축조 기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쌓았을 가능성이 높고

산성의 방향이 경상남도 고성군 방면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남쪽으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았을 가능성이 높다.

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남산리의 남쪽에 위치한 보잠산(해발 439m)은

진주시의 남동쪽에 위치한 고성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이 보잠산의 좌측 봉우리(해발 450m) 9부 능선에 위치해 있다.

테뫼형의 석축성으로 성벽은 고성군 방면으로 주로 축조되어 있으며

진주시 방면은 성벽을 쌓지 않고 자연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은 높이 1.4~2m 정도 잔존하고 있으나 너비는 1.5m 정도인데

내부에는 순환로(회곽도)가 조성되어 있다.

성벽은 장방형의 할석으로 축조되어 있으나 치밀하지는 못하며, 둘레는 약 400m 정도이다.

추정 남문지(너비 2.4m)에서 동쪽으로 약 75m 지점에

너비 0.9m의 암문(약 7단의 계단이 있음)이 형성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당시 고성 쪽에서 침입하는 왜병을 보잠산에서 성을 쌓고 싸웠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은 대부분 붕괴, 멸실되고 흔적뿐이다.


보잠산(寶岑山)439m

보잠산(452.8m)은 한자 뜻으로 보면 '보배 寶  봉우리岑로 되어 있는데

보배같은 봉우리이다 하지만 보잠산은 500고지도 채 되지 않는 마을 뒷산같은 산이다.

아마도 진주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의 넓은들판에 우뚝 솟아 있어

보잠산이란 이름이 붙었나 생각하면 되겠다.

산꾼들이 봉우리 '잠(岑)'자와 고개 '령(嶺)'자를 헷갈려 '보령산'으로도 부른다고 한다.

보잠산은 월아지맥을 찾는 산꾼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산이지만 일반 등산객들에게는 생소한 산이다.

아낙네의 비녀를 닮았다고 하여 잠(簪)산이라고도 하고 원통산으로도 불리웠으나 언제부턴가

보잠산(寶岑山)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보잠산(寶岑山)439m

정상표지석 옆면에는 진주시 일반성면 二00八年 四月 十五日 새겨져 있다

2008년4월15일에 정상표지석을 일반성면에서 세웠나 보다

보잠산은 낙남정맥의 월아지맥이라고 한다

낙남정맥(洛南正脈)은 지리산 남쪽 취령으로부터 경상도의 곤양, 사천, 남해, 함안, 칠원

창원을 지나 김해로 이어지는 동쪽으로 향한 산줄기로 낙동강과 남강 이남 지역의 산줄기이다.

월아지맥(月牙支脈)은 낙남정맥 깃대봉(520.6m)·준봉산(520m)서쪽 분기점에서

만수산(443m) ·보잠산(439.3m)·작당산(339m)거쳐 남강변에 이르는것을 말한다.

2008년 진주시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보잠산 등산로를 개발하기 시작하여 2009년 완공하였지만

아직 보잠산 을 제대로 소개한 내용이 없다. 경남도내 등산 명산소개를 보면 220여 산 중에서

지수면의 괘방산, 방어산, 이반성면 오봉산, 진성면 월아산 이 기록되어 있다.

보잠산(寶岑山439m)은  일명 보령산(寶嶺山), 원통산(圓通山), 잠산(簪山)이라고도 한다.

이 산맥 능선으로 고성군 개천면 청광,가천리. 이반성면 대천리, 일반성면 남산리와 경계를 이룬다.

일반성면사무소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면 산세가 W字를 거꾸로 보는 지형이다.

그리 높지 않고, 험하지 않은 산이라 남녀노소 산행지로 적합하다.



남산저수지(南山貯水池) 조망

남산저수지는 원동마을 앞에 있는데  일제시대에 부역으로 구축된 것이라고 하며

남산리들, 대사리들까지 용수를 공급한다고 한다

남산저수지 위 골짜기는 보잠골(寶岑谷)이라 부르는데 원동마을 뒤 보잠산 밑 취락지이며

지금은 마을 취락지 흔적만 남아있다.

남산리(南山里)는 조선 시대에는 진주목 동면 진성리 남산촌(南山村), 대연(大淵), 원통(原通) 등이다.

조선조 후기에도 외진성면으로 남산 밑이 되므로 남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진주군 외진성면 원통동(元通洞), 사가동(四佳洞), 소야동(小也洞)

시목동(?木洞), 남산동(南山洞), 관사동(冠寺洞), 내진성면 백암동(白岩洞), 두목동(杜木洞)

각 일부로서 남산리라 하였다. 1950년 남사, 상남, 원통의 3개 마을 1962년 남사마을을 분동하여

남사, 관동, 시목, 금야, 1970년 관동 남사를 남산마을로 하고 시목, 금야는 금야(金野)마을로 흡수하였다.


반성저수지 조망

손으로 가르키는곳이 반성 저수지이다 반성저수지 상남재를 들머리로 왔으니 정말 많이 걸었다

반성면이 조망되는데 반성장은 조선말기에 형성된 5일장인데 지금도 3일8일 장날이 드러선다

반성면은 세종 1년(1419년) 진주목 3 현 중 반성현. (반성,영선, 악양현)

당시 현내 인구는 254호 687명이 거주 하였다고 전한다

반성현에 班城倉을 두어 상사(사봉), 용봉(지수), 가좌촌(진성)의 5개 속리를 관할하였고

선조 25년(1592년) 4월 왜장 소서행장(小西行長)의 왜군이 창원, 함안, 의령, 반성현을 거쳐

진주성을 협공, 이때 반성현은 완전히 소진됨.임란 초기 고성 당항포로 침입한 왜장 우자등

원랑을 맞아 반성현 방어사 금군 조산도가개암들에서 분전 중 전사 하였다
왜군들의 침입방지를 위해 보잠산 정상과 매화 산맥에 산성(山城)이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선조 38년(1604년) 진주목 방리제(坊里制)에 따라 진주목 4개면 중 동면 반성리로 개편되었다
이때 남산, 답천, 운천지역이 진성리로 속방은 12개 마을임. 남산, 저연, 대연, 원당, 굴천, 포곡

원통, 대사, 양장, 논아곡, 덕현, 천곡 가구는 70호 인구 600명 거주.반성리는

속방8개마을로 현내, 개암, 선원동, 중방, 가곡, 반월, 채방, 이성가구 90호 인구 614명이 거주했다 한다.


반성저수지 방향 하산길

토종솔나무가 빼곡하여 어디가 산길인지 알수가 없을 정도다

보잠산 초임을 이 산행로를 택했다면 아마도 몇번 헤메을것 같다.

여름철 초목이 가득했으면 다니는 산행자가 없어 산행로를 찾지도 못할것이다

경남수목원에서 보잠산까지는 탐방로가 좋지만 남산리 상남마을에서 오르는 들머리는

산길인지 구분이 안되며깃표가 없다면 찾기도 힘든 코스이다

경상남도수목원(慶尙南道樹木園)은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수목원로 386에 위치한

경상남도의 도립 수목원이다. 1993년 4월 5일 도립반성수목원으로 개원한 뒤

2000년 2월에 명칭을 '경상남도수목원'으로 변경하였다.

전체면적은 56ha에 산림박물관, 열대수목원, 화목원, 무궁화공원 등을 갖추고 있고

담양 못지않은 메타세콰이어 길이 있고 야생동물원이 있다.

국내를 포함해 전 세계 식물 1,700여종과 10만여 본을 수집, 식재하고 있다.

2008년 5월 27일부터 6월 1일까지 제1회 산림박람회가 개최 된 곳이기도 하다 

보잠산 남쪽 아래로 내려가면 청광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 동남쪽 구만, 회화면으로 넘어가는 험한 담티고개(檣峙嶺)가 있는데

이 고개가 임진란 당시는 고성, 진주 경계지점으로 진주목 영선현(晉州牧 永善縣)

지금의 고성군 개천, 영오면 일대는 진주 땅이었다.

당항포에 침입한 왜군들은 진주를 침략하기위해 마을들을 휩쓸며 온갖 만행을 저지를 때,

이 마을 ‘최 균’이라는 장사 한분이 자칭‘풍운장’이라 하고는 비단옷을 찢어 붓으로 크게 써서

깃발을 만들어 담티재 높은 곳에 세우고, 밤에 남녀노소를 모두 고개위에 모아

한사람이 햇불 4~5개씩을 들리게 하고, 다른 사람은 북을 치게 하며

함성을 지르고 홀왕홀래(忽往忽來:홀연히 갔다가 홀연히 나타남)의 괴이한 방법을 되풀이하면서

주민들은 활로 무장하여 유격전을 펼치자 이 도깨비작전에 흘려 넋을 잃은 왜적들은 접근 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이곳 담티재 와 보잠산성은 앞, 뒷산으로  마주보고 있다.

담티재의 왜군 침입 동정을 살피는데 최적지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나무 수림이 우거져 멀리 당항포 푸른 바다가 보이지 않지만

1960년대 이전 땔나무꾼들의 남벌로 민둥산 때는 훤히 보였다.

산성의 축조책임은 조선시대에는 중앙 공조(工曹)에서, 지방은 고을 수령이 백성들을 동원하여 쌓았는데

주로 농한기 2~3월, 추수 직전7~8월, 추수 이후11월 동원되었다.

이 산성 석축재료는 원동마을 방향 벼랑 바위 너덜지대에 자연석을 주워 지고오고

또 수리봉 서편 모서리 암석을 관찰하면 당시 바위 돌을 뜯어낸 흔적도 볼 수 있다.

축성 당시 많은 인력을 동원되었기에 산꼭대기에서 먹을 음식도 가져갔을 것이고

음용할 물은 산 아래 잘록한 지점 남쪽 4~50m 쯤 내려가면 일명 ‘젖샘’이 있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이 물도 이용했을 것이다.

이 젖샘은 1970년대 이전, 이 고장 젊은 아낙들이 아이 젖이 잘 안 나올 때

이 샘물을 받아먹으면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지금은 산지가 울창하고 풍우에 함몰되어 찾기 어렵다.


반성저수지

반성저수지는 진주시 일반성면 남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을철에 배스 루어 낚시장소로 알려져 있다고 낚시꾼들이 이야기 하고 있다

반성저수지로 하산해서 마을도로를 따라 상남재 주차장까지 걸어가야 한다.

보잠산 등산구간은 2개구간 있으며 내가 산행한 코스는 약4.4km구간이며

넉넉히 4시간이면 족하며 1구간은 경남수목원 남쪽 뒷산에서 맨발등산로→작당산

→괴이고개→어분이고개(분기점)→꿩산→보잠산 정상이며

2구간은 일반성 상남재(일명 네거리재)인데, 도로 옆 동쪽으로 올라가 능선으로 걷다가 북측 아래

수목원조림지→ 어분이고개(분기점)→꿩산→보잠산 정상이다.

들머리에는 등산안내판과 주차장이 설치되어있다.

1구간인 경남수목원 시작해서 수목원내의 시설물을 둘러본다면 관광도 겸한다면 더 좋다

이 등산로는 모두 원점회귀(출발에서 다시 돌아오는)해야 하므로 하산하는데 불편하다.


상남마을 버스 정류소

상남재를 들머리로 해서 보잠산 한바퀴돌고 상남마을까지 왔지만 다시 상남재 주차장 까지 걸어가야한다

농촌들에는 봄 준비 농사에 바쁜듯 하다 경운기에 퇴비 내고 마늘밭에 김을 메는모습이 정겨울 뿐이다.


이렇게 해서

진주 보잠산(晉州 寶岑山).낙남월아지맥 토종소나무숲길 보잠산을 한참이나 걸어보았다

보잠산에도 전쟁의 아픈역사가 있는 곳이였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진주시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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