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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옥녀봉(宜寧 玉女峯).우봉지맥(牛峰支脈)구간 옥녀봉 전설속에 걸어 보다 본문
의령 옥녀봉(宜寧 玉女峯)
우봉지맥(牛峰支脈)구간 옥녀봉 전설속에 걸어 보다
▲ 의령 옥녀봉(宜寧 玉女峯)
높이 : 341m
위치 : 경남 의령군 유곡면 신촌리와 정곡면에 걸쳐 있는 산
▲ 나의산행일 : 2020년02월17일 월요일. 날씨 : 맑음
▲ 나의산행코스 :
판곡마을→→→출렁다리→→→자암정→→→테크계단→→→임도 →→→옥녀봉 정상→→→우봉지맥 합수지(원점회귀)
5km 2시간 10분 소요
▲ 의령 옥녀봉 개요 :
의령 유곡면에 있는 옥녀봉은 우봉지맥의 한 구간 으로서 옥녀봉과 말머리등으로 이어지는 코스로서
유곡면 판곡마을에서 부터 산행깃점이다.
의령 유곡면 덕천리 옥녀봉 전설(傳說)
옥녀봉은 유곡면 덕천리 앞산으로 옛날 옥녀가 거기에서 놀았다 하여 옥녀봉이라 한다고들 한다.
옛날 옥녀가 시집을 갈 때, 말을 타고 갔는데, 지금의 마두는 옥녀가 타고 간 말머리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마두라 하며 지금의 신촌은 말꼬리에 해당되는 곳으로 옛날은「말미」인데 줄여서
「메미(끝)」이라 한다고 한다. 옥녀는 얼굴도 아름다웠지만 길쌈도 잘 하였는데
덕천 뒷산에「가락등」,「물레등」이 있다고 하며 옥녀가 시집갈 때 농을 가지고 갔는데
지금 마두 근처에「농덤(농바위)」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세간 뒷산을 옥녀가 놀았다고 하여「꽃밭등」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봉수면 서득리에서 유곡면으로 넘어가는 재가「직금재」인데
본래 옥녀가 직금마을에서 비단(명주)을 짰는데,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서 옥녀와 같이
놀다가 하늘로 올라가곤 하였다고 하는데, 옥녀가「직금(織錦)」즉 비단을 짠 곳이라 하여
그곳을 「직금마을」이라 하고 마을 뒤에 있는 재를 「직금재」라 부른다고 한다.
너실앞으로 흘러내려 오는 개울물이 굽이치는 곳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 위에 강씨 문중의 장암정이 있다. 옛날 그 장암정 밑의 소에 옥녀가 와서 발을 씻고 놀았다고 한다.
본래 그 내(川)는 지금 도로가 나 있는 옥녀봉 산밑으로 흘러서 세간 쪽으로 갔다고 하는데
표씨 선조의 묘를 쓴 곳이 옥녀의 발등이라고 하는데, 그 묘를 쓴 이후부터는
내(川)가 덕천마을 쪽으로 흘러가게 되었다고 한다.
▲ 의령 옥녀봉 산행지도
▲ 산행지 찾아가는길
진주역→→→남해고속도로 군북 나들목→→→의령대로 적포방향→→→청정로 유곡방향→→→유곡농촌체험랜드주차장
53km 승용차 50분 소요
→→→→→2020년 02월17일 월요일 야간근무를 마치고서 대한민국 구석 구석을 향해 길을 나선다
내가 가는길은 곧 현장활동을 위한 지리도(地理圖) 숙지(熟知) 이기도 하다.
오늘은 의령 유곡면에 있는 옥녀봉이다
우리나라에 옥녀봉이란 봉우리는 몇개나 될까
아마도 지역마다 있어서 100개 봉우리가 넘을듯 하다
전해 내려오는 옥녀의 전설도 비슷비슷하고 하나같이 옥녀는 미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봉지맥 한구간에 속하는 옥녀봉 전설을 따라 산행길에 나서본다.
옥녀봉 들머리가 있는 판곡마을
농촌들녁에는 마늘이 많이 심어져 있었고 비닐멀칭위로 마늘순을 손보는 농부들이 많이 보였다.
의령군 유곡면은
유곡천을 중심으로 두 골을 형성 취락이 이루어지고 면이 되었다.
골짝물을 이용한 농사가 잘되었으나 근래 벽계 저수지 완공으로
완벽한 수리 시설을 이용 미맥은 물론 양파 주산 단지로 농가 주 소득원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으며
조선조 시대 화곡리, 미요리, 정곡리로 삼분되었다가 조선시대 고종32년 (1895년) 화곡리 일부와
상곡, 오목, 신촌리를 능인면 , 상촌, 마두리를 이유곡면, 정곡리를 정곡면으로 칭하다가
1913년 한일합방때는 능인면, 정곡면, 이유곡면을 병합하여 유곡면으로 호칭하고 현재에 이르렀다.
깨끗한 계곡, 유곡천변에 솟은 자암정, 우애정 등 경치가 매우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한다.
유곡천 출렁다리
출렁다리 위치는 경남 의령군 유곡면 칠곡리983-13 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름날 피서지로 알맞은곳 이기도 하다
출렁다리와 유곡천 농촌체험랜드도 조성되어 있다
유곡면 농촌체험랜드는 유곡천의 시원한 물과 함께 출렁다리와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어
산책삼아서 옥녀봉 정상에 오르는것도 좋다
또한 인근에는 설뫼 농촌테마공원에는 인근의 역사문화마을과 함께
어린이 물놀이장, 전통문화 체험 공간 등이 마련되어 있다.
출렁다리
옥녀봉을 뒷편에 두고 있는 판곡마을 유래를 보면
지금의 유곡면은 옛날 능인촌, 미요리, 정곡리(定谷里) 등 3개리(오늘날의 면에 해당됨)로 분활되어 있었다.
지금의 마장마을에서 동남쪽 지역 7개마을이 정곡(定谷)에 속했는데 당시는
칠동(漆洞)에 판곡(너실, 느실)과 엄현(엄재)이 속해 있었다.
지금은 정실과 칠동이란 지명은 잊혀졌고 그저 어른들의 택호에 정실띠기(정실댁), 칠동띠기(칠동댁)와 정실어른
칠동어른이란 호칭만 남아 있을 뿐이다.
판곡의 판(板)은 널빤지, 판목, 뜻하는 한자이지만 동네지형이 넓쩍한 곳도 아니며
높은 산이 뒤에 받치고 있으며 동구밖 큰내가 흐르고 있다.
옛날에는 냇물을 건너기 위해서 큰돌로써 징검다리(돌다리)를 놓았다고 하며
그러다가 통나무를 켜서 나무다리를 놓고 건너 다닌 적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같은 이야기가 마을지명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마을은 처음부터 의령 남씨의 터전이면서 벼슬은 물론 천석지기 부자도 여러 집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바로 뒤에 있는 산이 옥녀봉과 천마산이 우뚝하다. 옛날에는 재집(기와집)이 수두룩하였다.
마을 뒤로는 뒷재라는 잿길이 있는데, 정곡 오방으로 이어지는 소로이고
옥녀봉 산으로 가는 깊은 골짜기는 쑥골이라고 부른다. 골안에 옥산사(玉山寺)라는 절이 있고
거기서 보면 산세가 꼭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것 같은데 법당자리가 학의 어깨에 해당되는 명당자리라고 한다.
이 마을 뒷산에는 농와초당(聾窩草堂)을 비롯해서 의양서당(宜陽書堂), 여산재(汝山齋)
학가정(學稼亭), 경모정(敬慕亭), 추원정(追遠亭) 등 재실과 함께 마을안에 묵헌유택(默軒遺宅) 등이 남아 있다.
그리고 요즘와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된 개묘(가묘의 토박이말)건물이 한 채 보존돼 있다.
옛날 양반들이 쓰던 사인교와 가마 등 생활도구는 유곡초등학교에 마련된 유물전시실에 보관돼 있다.
유곡천의 맑은 물과 기암절벽
출렁다리에서 바라본 유곡천은 맑고 깨끗하고 청정하다
판곡마을 동쪽 산자락에는 아름드리 큰 은행나무와 홰나무가 있고 고색창연한 서원과 재실이 여러 채 있다.
마을 서쪽에도 유연정(悠然亭), 추원재(追遠齋)등 재실이 있다.
물도 좋고 주위경치가 너무 좋은 무이계(武夷溪, 지금의 유곡천이라고 함) 건너 산자락에
우애정(偶愛亭)이 있는데 퇴락해서 곧 주저앉을 지경에 이르렀다.
너실은 우선 부자집이 여럿 있고 학덕 높은 학자 분이 있는 마을로 알려졌는데
특히 입암(立巖) 남정우(南廷瑀)공은 후진양성과 함께 수많은 글을 남기신 어른이다.
그리고 마을 안에도 옛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큰집이 여러 채 있고 특히 참봉공댁 개묘(가묘)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그리고 이 동네의 서쪽편에 있는 엄재란 마을은 판곡의 협동이다.
옛지명은 엄재라 불러왔는데 한자로는 아현으로도 썼다는 기록이 있다.
동네 앞을 막고 있는 산봉우리가 인상적인데 바람산이니 바라미산이라고 한다.
이 산은 스님이 바랑을 지고 있는 것 같다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하며
또한 이 바람산 때문에 마을자리가 좋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판곡과 이 동네 사이에 약간 언덕진 곳이 있었다고 하며
이 때문에 두 마을을 구분짓게 되어 가릴 엄(奄)자로 바꾸어 썼다고 한다.
자암정 가기전 목교(木橋)
판곡마을의 아현(牙峴)이란 지명은 어금니 또는 송곳니를 가리킬 뿐 아니라
물건값을 흥정붙이는 거간꾼이라거나 중매인을 뜻하는 아인을 생각하게 되어서 거부감이 많았다고 한다.
옛날부터 엄재들에서 땅심도 좋거니와 나락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것도 있긴 하지만 칠성바구로 불리워온 지석(고인돌)이 있었다고 하며
재실 옆에 두 개, 밭가운데 세 개 부치덤 밑에 한 개 그리고 가정집안에 한 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운데 재실(영사재) 옆에 있는 큰 바위를 신선바구라 부르며 동신제를 올리는 곳이었다고 한다.
동네 뒷산에 있는 부치덤은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부처(석불)같다고 하며
신선바구는 날씨가 좋고 달이 밝은 달 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서 장기를 두면서 놀다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너실은 남(南)씨촌 이고 엄재는 전(田)씨촌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남(南)씨가 4세대 이고 담양 전(田)씨가 22세대다.
그리고 곽(郭)씨가 5세대, 이(李)씨, 최(崔)씨가 2집씩이고
류(柳)·홍(洪)·주(朱)씨등은 한두집씩 모두 71세대가 살고 있다.
자암정(紫巖亭)
옥녀봉 들머리에 있는 자암정이다
자암정에서 내려다 보면 유곡천과 농촌들녁이 펼쳐져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여름철 같으면 더할 나이없이 좋을듯 하다 자암정 옆에는 인공폭포도 만들어 져 있는데
아마도 여름철만 가동할듯 보인다.
자암정은 조선시대 강경승 선생 은거하여 지낸곳이라 하며
강경승 선생이 벼슬을 하지 않고 후진 양성에만 전념하였던 재각과 정자가 있는 곳으로
강경승 선생의 호를 따라 ‘자암정’이라 부른다 한다
자암정(紫巖亭)과 안쪽으로 망추재(朢楸齋)편액
자암 강경승(姜慶昇 ) 1577년~1633년 으로 본관은 진양(晉陽)이며 거주지는 의령이다
자암 강경승에 대한 사료(史料)를 찾아보았으나 사료들이 존재 하지 않았다.
판곡마을에 있는 옥녀봉 들머리에 위치한 자암정을 뒤로한체 옥녀봉으로 가는길이
테크계단으로 연결 되어있다.
차량으로 온다면 유곡천 농천체험랜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서
유곡천 둑방으로 올라가면 출렁다리를 만나는데 출렁다리를 건너면 옥녀봉 들머리 이다
테크계단
자암정 옆에 있는 테크계단인데 옥녀봉 들머리이다
유곡천에서 물놀이를 하고서 테크계단을 따라 옥녀봉에 오르면 좋을듯 하다
옥녀봉에 산행하면서 흘린 땀방울은 다시 유곡천에서 시원하게 즐기면 더 좋을듯한 코스다
옥녀봉은 마을 뒷산처럼 산책하기에 좋은 코스다
또한 지맥산행을 하는사람들이 옥녀봉을 지나는 코스다
옥녀봉은 우봉지맥이 지나는 코스라서 지맥산꾼들이 많이 찾는곳이기도 하다
옥녀봉 산행중 바라본 유곡천과 출렁다리
의령군에서 유곡면소재지 종합정비사업을 2013년부터 본격 추진했는데
이 사업은 '문화 생태 복지가 공존하는 복합형 자족도시 건설' 이라는 비전 아래 유곡천을 경관자원으로 활용
휴양공간의 중심지로 개발하여 도시와 농촌 교류의 장으로 발전시키는 프로젝트라 한다
주요 사업은 유곡천 접경지에 유곡천 농촌체험랜드, 친수공간정비(유곡천 산책로)
유곡천 출렁다리 및 옥녀봉 등산로 조성과 다목적 마을회관 건립등이
주된 종합정비 사업이라고 한다
그 덕분에 옥녀봉 등산로가 잘 정비 되어있나 보다.
테크계단옆 재미있는 이야기 안내판
검은 등 뻐꾸기 이야기를 기록해 놓았는데
보통 뻐꾸기는 뻐꾹뻐꾹 하고 2음절로 울지만 검은등 뻐꾸기는 카카카코 라고 4음절로 운다고 한다
검은등 뻐꾸기는 울창한 숲에서 울음소리를 내지만 관찰하기 매우 힘들다.
외국에서는 홍때까치, 검은바람까마귀, 대륙검은지빠귀, 긴꼬리딱새, 검은딱새, 물까치 등
매우 다양한 둥지에 탁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서는 물까치 둥지에 탁란한 사례가 있다.
뻐꾸기와 달리 개방된 곳에 거의 나오지 않고 숲속에서 생활한다.
4음절의 우렁찬 소리("허 허 허 허")를 주야간 가리지 않고 낸다.
머리와 목은 뻐꾸기와 비슷한 청회색이지만 몸윗면과 날개는 갈색 기운이 강하다.
꼬리 끝에 폭 넓은 검은 띠가 있다. 가슴은 흰색이며 폭 넓은 검은색 가로 줄무늬가 있다.
솔숲 그리고 끝없는 테크계단
이렇게 솔나무 숲으로 이어진 테크계단이 끝이없이 이어진다
오늘따라 차가운 바람이 불어 많이 춥웠다
겨울 내내 따스함이 마치 봄 같이 느껴졌는데 이렇게 2월에중순에
추위가 다시 찾아 온듯 차가운 바람이 옷을 여미게 만들었다.
옥녀봉은 우봉지맥(牛峰枝脈)인데 우봉지맥(牛峰枝脈)이란
진양기맥의 자굴산(897m)과 한우산(835.7m) 사이의 764.7m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매봉산(597m), 신덕산(582m), 우봉산(373mn), 장군당재, 막실고개, 달재, 왕봉산(262.8m)
돌문재, 남재를 지나 남강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성산배수지까지 가는
도상거리 30.3km되는 산줄기로 남강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한다.
옥녀봉 등산안내 표지목 옥녀봉0.98km
옥녀봉 정상으로 가는 산행로는 경사가 심하였다 아마도 여름날이면 땀삐질 흘릴 코스다.
의령 옥녀봉의 전설은 슬픈 사연은 아니다
덕천 뒷산자락에서 옥녀가 놀았다 하여 옥녀봉이라 하고 있다
덕천마을 유래를 보면
정실(定谷)의 덕천이 또는 떡징이로 불러온 마을이다.
물 좋은 터전이라서 덕정(德井)이란 지명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유곡천으로 부르지만 옛 문헌에는 무이계(武夷溪)라 했는데 물길도 유장할 뿐 아니라
아홉구비를 돌면서 여러 곳에 명승지를 만들어 중국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닮았다는 것이다.
이 마을 앞으로도 넉넉한 냇물이 흐르고 있으며 여러곳에 큰 쏘(沼)를 이루고 있다
남향받이로 앉은 동네 뒤로는 제법 높은 산이 에워싸고 있는데 돌구대먼당이라는 산은 지형지혈로 보아서
길쌈할 때 실을 감은 돌구지(돌곳 또는 돌껏이라는 길쌈용 도구로서 실을 감거나 풀어 사려 놓을 때 쓰는 것)에
해당되어 좋게 보는 지형이며 그 산자락에「한젓」또는 대평(大坪)이라는 뜸이 있다.
한젓이란 말은 한쪽곁(토박이말로 곁을 젓테라고 함)이란 뜻인데 한자로는 대평이니 어울리지 않는 지명이다.
큰동네와 돌구대먼당사이의 깊은 골짜기를 떡징이골짝이라고 골어귀 구시골이라는 곳에 좋은 약수터가 있다.
그리고 동네서녘에 굴새미라는 자연샘이 있기도 한데
어쨌던 동네사람들에게 큰 덕을 베풀어 주는 샘이란 뜻에서 생겨난 소지명으로 보인다
옥녀봉 목계단
산정으로 오르는 산행길은 테크계단 목계단으로 만들어져 오르기에 편안하다
유곡면의 농촌 특화사업으로 옥녀봉 등산로 정비사업으로 하였다고 하며
유곡면의 덕천마을은 옥녀가 살았던 마을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옥녀봉이고 바로 마주 보이는 산에 선덤이라거나 병풍덤이라는 큰 바위가 있다.
이 덤은 사람이 올라가거나 가까이 가서 손을 대는 것도 금기하고 있으며
만약 바위조각이 떨어지게 되면 마을 안에 큰 환란이 생긴다해서 사람이나 짐승의 출입을 막고 있다고 한다.
동네 위쪽의 들은 대반들이고 개울 가까이 있는 들은 갱분들이다.
또 내한들(내안들)이란 들이름이 있는데 이는 길의 안쪽에 있는 들이다.
이 동네와 미찬이(세간)마을이 바로 인접해 있는데 옛날부터 미찬이쪽에는 우박이 떨어지는데 덕징이에는 비만 내렸다고 한다.
동네 서녘 산자락에는 효자덕천강공여표비(孝子德川姜公閭表碑)와 아담한 꽃집이 있다.
이는 호가 덕천이며 광해조에 출생한 강휘지(姜徽之)공의 효성를 기리고자 세운 효자정려다.
강공은 당대 고결한 지조와 함께 학덕이 높아 존경을 받았던 역옹(翁) 강현승(姜顯承)공의 아드님이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적혀 있는 책이 있는데 천도실기(天桃實記)다.
이 책에 따르면 하늘에서 두 주먹만한 복숭이 마당에 떨어져서 그 살을 부모님께 드리고 씨를 보관했다가
여섯조각으로 나누어 6형제에게 나누어 주면서 소중하게 간수할 뿐 아니라
언제나 효제충신(孝梯忠信)하는 집안이 되기로 맹약을 했다는 것이다.
이 복숭아 씨를 천도실편(天桃實片)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후손들은 가보로 여기고 잘 간수하고 있었다.
이 마을앞 큰 내를 건너 높은 절벽위에는 자암정(紫巖亭)이 날아 갈 듯이 앉아 있다.
스트레스는 송림에 주세요 라는 산행로 문구
산에 오르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스트레스 해소이다.
옥녀봉전설에 마두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마두는 옥녀가 타고간 멀머리와 같다고 했다 전한다
마두마을은
유곡면소재지에서는 서북쪽에 위치해 있고 십리길이다.
큰 도랑을 사이에 두고 양지편에 마두양지, 음달쪽에 마두음지마을이 있어서 두 뜸이 마주보고 있다.
옛 기록에는 괴성(槐城 :홰나무재), 괴산(槐山:홰나무산 )이고 일반적인 호칭은「기암재(개암재)」다.
아마 일제강점기 지명정비 때 마두(말대가리)로 바뀐 것으로 보이며 아직도 상노인들은「기암재」로 부르고 있다.
토박이말로는「깨금」「깨암」이란 나무열매가 있다.
표준어로는「개암」이고 한자론 진자다.
일설에는 이 동네 주위 산언덕이나 잿길에 깨끔(개암)나무가 많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기암나무(小枾 : 고욤나무)가 많아서라는 등 지명의 유래에 관해서는 정설이 없다.
다만 마두란 소지명은 근거가 확실하다.
동쪽을 감싸듯 흘러내린 산줄기가 말대가리 산이고 끄트머리가 묘하게도 말머리 모양이다.
대마가 도랑물을 벌떡벌떡 마시는 듯한 형상이다.
「기암재」「괴성」,또는「괴산」그리고 「마두」로 변천된 것이다.
이 마을 주위에는 말머리덤, 말머리쏘, 말대가리 꼭데이(꼭대기), 마등더러(등어리), 말질매등(길마등)
말꼬랭이(꼬리)등 말에 관한 땅이름이 많다.
옛날에는 조선종이, 뜨는 일도 많이 했던 종이곳이면서 삼농사도 많이 했다고 한다.
말꼬리 산고개를 넘으면 돌실이라서「돌실재」, 남동쪽 산길을 넘으면 오방촌이라고 재이름이「오뱅이재」다.
말머리쏘에는 언제나 맑은 물이 고여 있고 사철 어른 한길 정도 깊이다.
동네앞 「서재골」은 옛날 여처사(여진선공)가 서당을 열고
인근 어린이들을 모아 글공부시키던 수회재(水廻齋)가 있었던 주변이다.
음지땀 동구밖 도랑 둑을 따라서 긴 동숲이 있어서 좋았는데 일제 때 공출하면서 베어냈다고 한다.
양지땀 11집, 음지땀 40집이다.
신안 주(朱)씨, 파평 윤(尹)씨가 먼저 자리 잡았고 뒤이어서 여러 성바지가 들어왔다고 한다.
지금은 윤씨 15집, 안악 이씨 10집, 그리고 김·박·진·표·임·홍씨 등 모두 54가구만 남았다.
박씨의 괴양재(槐陽齋), 성씨의 흥효당(興孝堂), 이씨의 경수재(敬修齋), 남씨의 우애정(友愛亭) 등
유서 깊은 재실과 정자도 여러 채다. 동구밖 산코숭이에는「효자여양진병화공포행비」가 있다.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 목계단 산행길
소나무가 목계단 양옆으로 빼곡하다 간간이 들여오는 새소리가 산행길을 즐겁게 한다
옥녀봉 전설에는 옥녀가 직금(織錦) 즉 비단을 짠곳인데 지금 직금마을이라고 한다.
의령의 옥녀봉에 나오는 옥녀는 미인이지만 슬픈 사연은 없다
사량도 옥녀봉이나 사천시곤명 옥녀봉도 옥녀의 슬픈사연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연이 있지만
의령 옥녀봉 옥녀에 대한 이야기는 이쁘고 일 잘하는 사연뿐이다
타 지역보다 차이가 있는 옥녀봉의 전설이다.
지금의 옥녀봉 건너편 마을이 당동리 인데 당동리 유래에는
나직한 산줄기가 동남간으로 흐르고 땅심 좋은 들과 넉넉한 산골물 등 마을터로서는 좋아 보인다.
옛날의 행정구역으로는 유곡면은 셋으로 분할돼 있었으니 정실(定谷), 미요(未要)
능인(能仁) (보통「니인」으로 발음)이었다.
당시에는 면이 아니고 촌(村) 또는 리(里)라 했다. 지금 면소재지와 판곡, 당동 등 지역이 정실에 속했다.
지금도 당동은 「정실땅골」이란 땅이름이 그대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동네에서 시집간 안어른들 택호도 「당동댁」보다는
정실댁 이나「땅골댁」이 더 많다
광복 후까지도 삼(대마·大麻)이 잘 되는 곳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옥녀봉 안내표지목 옥녀봉0.07km
옥녀봉 임도와 등산로 접한부분에 있는 안내표지목이다.
옥녀봉 들머리에 가려면 칠곡면쪽으로 가다가 판곡마을로 좌회전 하는데
옥녀봉에서 우봉지맥을 따라가면 칠곡도 조망된다
의령군에서 7km떨어진 칠곡면은 서쪽 면으로 자굴산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펼쳐지면서 취락을 이룬 면이다.
국도 20호선이 면 중심을 관통하고 진주와 합천을 통하는 삼거리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근래는 산지를 개발 단감단지를 조성하여 소득을 올리고
한과·엿기름 등을 생산 명성을 얻고 있다. \
신라때 장함현의 읍지였다고 하고 조선중기 칠곡면으로 부르다가
조선말 도북면에서 칠곡면으로 바꾸고 현재에 이르렀다
옥녀봉 임도
옥녀봉 정상에 가까워지는 임도이다 확트인 모습에 가슴도 확트인다
오늘따라 차가운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그 차가움이 신선함이다
지맥 산행자들은 옥녀봉을 거쳐 말머리등으로 해서 판곡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를 이용한다
우봉지맥 코스를 따라라서 산행길에 접어 들었다
옥녀란 이름으로 소설도 나오고 영화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옥녀란 이름은 어떤 이유로 이렇게 파고 들었을까 궁금해진다
옥녀봉 정상가는길
임도를 따라가면 오방마을이 나오고 우측에 옥녀봉 정상이 있다
표지목 안내에는 0.05km라고 안내해 놓았다
옥녀라는 꽃이름도 있다고 한다
옥녀꽃대라는 이름은 이 야생화가 처음 발견된 장소가 거제도 옥녀봉이라서 붙여진 것이다.
얼마 전까지 남부 지방에서는 홀아비꽃대라고도 하고
꽃이 작고 잎이 크다고 해서 과부꽃대라고도 했다.
하지만 홀아비꽃대는 별도로 구분이 되므로 현재는 옥녀꽃대라고만 한다.
종자가 익는 시기가 6월경인데, 종자가 결실되면 홀아비꽃대는 위로 솟구치지만
옥녀꽃대는 약 45~60도 정도 비스듬히 누워 있어 구분이 된다.
또 홀아비꽃대는 잎 끝에 자줏빛이 있지만 옥녀꽃대는 전부 녹색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꽃대라는 이름이다.
꽃이 아니라 꽃대라고 부르는 것은 꽃이 보잘 것 없어서 그렇게 부른다.
오죽하면 꽃대라고 했을까. 실제로 꽃을 보면 아주 작은 털 같은 것들이 달려 있을 뿐
꽃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다.
옥녀봉(玉女峯) 341m
옥녀봉 정상 표지석이다 산보다 정상석이 더 멋진듯 하다
좌대에 수석하나 올려 놓은듯 하며 옥녀봉 답게 멋스럽다.
옥녀봉 산행시 유곡천에 놓여있는 판곡교앞 삼거리에 이르는데
출렁다리를 설치하기전에는 판곡마을에 와서 옥산사로 가는 방향이
옥녀봉 산행의 들머리로 자암정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하지만 의령군에서 출렁다리와 아치형 목교를 설치하여
예전 들머리는 사실상 폐쇄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옥녀봉(玉女峯) 341m
옥녀봉 전설을 보면 옥녀가 직금마을에서 비단(명주)을 짰는데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서 옥녀와 같이 놀다가 하늘로 올라가곤 하였다고 한다
옥녀는 지상할것없이 하늘에서도 미모에 만했나 보다.
옥녀라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있는듯 하다
낙동정맥 구실령에는 옥녀당이라는 사당이 있다
여기 구주령 이야기는 옥녀는 아버지의 명을 받아 아홉구비를 돌 정도로
구주령 험난한 산을 넘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는 이야기 이며
옥녀 전설은 대부분 죽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것이 대부분이지만
의령 옥녀봉 전설은 시집간 이야기로 끝이며
시집 가기전에 놀던곳이 지금의 지역이름이 되었다.
옥녀봉에서 우봉지맥을 따라 가기 위하여 산불감시 전망대에서 좌측으로 갔지만
등산로를 잘못들었나 함참 헤메다 다시 옥녀봉 정상으로 돌아와 원점 회귀 하였다.
판곡마을과 좌측 말머리등 봉우리
하산을 하고서 판곡마을 배경으로 사진하나 남겨본다
마을 입구에는 은행나무가 당산나무를 대신하고 있고
마을뒤에는 옥녀봉이 자리하고 우봉지맥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의령의 山 하나 올라가서 정상표지석 하나 담아 보았다
겨울 끝자락에서 무지 추운 산행길이였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의령군홈페이지등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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