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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미황사(海南 美黃寺).달마대사의 法身이 계시는 미황사 禪 도량을 걷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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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미황사(海南 美黃寺).달마대사의 法身이 계시는 미황사 禪 도량을 걷다

바다늑대FORCE 2019. 12. 1. 08:34

 

해남 미황사(海南 美黃寺)

 달마대사의 法身이 계시는 미황사 禪 도량을 걷다

 

▣ 해남 미황사(海南 美黃寺)

  전남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164

  전화 : 061-533-3521

 

▣ 사찰기행일 : 2019년11월27일 수요일. 날씨 : 약간비

 

▣  미황사 개요 :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 말사이다.

1692년에 세운 사적이에 의하면 749년에 의조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답고 금의인이 황금으로 번쩍거리던 것을

기리기 위해 미황사라고 했다고 한다.

그 뒤의 사적은 알 수 없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약탈과 방화로 큰 피해를 입었다

1601년에 중창하고 1660년에 3창했다.

1752년 금고를 만들었고 1754년 대웅전과 나한전을 중건하는등 대대적인 공사를 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보물제947호) 응진당(보물 제1183호)

오백나한전 명부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사적비와 여러 점의 부도가 전한다.

 

▣  미황사 전각배치도

 

▣  미황사 찾아가는길

 진주역→→→남해고속도로 영암→→→금강로 독천→→→공룡대로 해남 완도

 →→→미황사길→→→미황사 주차장

214km  승용차 2시간30분 소요.

 

→→→→→사찰기행시작

산에 오르면 사찰이 있고 사찰에 가면 산이 있다.

언제나 산행을 하다보면 산행의 마무리는 산사를 둘러보는 사찰기행을 겸한다

오늘은 땅끝마을 해남 달마산 아래 미황사에 참배하고 도량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해남 미황사는 우리나라에서 꼭 가보아야 할곳 100선 중에 하나이며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에 선종(禪宗)의 시조로 알려진 달마 스님이 머무르고 있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

바로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달마산(達磨山) 미황사(美黃寺)다.

  

미황사 일주문(美黃寺 一柱門)

편액은 達摩山 美黃寺(달마산 미황사) 라고 되어 있다

겨울을 부르는 촉촉하게 비가 내리고 또 그치다 반복하는 날씨에 미황사를 찾았다

먼저 미황사를 병풍처럼 둘러 싸고 있는 달마산을 올라보고 미황사 하나하나

달마스님 법신을 따라 걸어본다

달마산은 불상과 바위, 석양빛이 조화를 이뤄 삼황(三黃)이라고 한다.

바위병풍을 뒤로 두르고 서해를 내려다보는 곳에 미황사가 자리 잡고 있다.

미황사는 경덕왕 8년(749년) 창건 이후, 문화적 유적을 가지고 있고 달마산 경관과 어울리는 절경의 산사이다.  

 

 미황사로 가는길

늦가을 단풍이 낙엽에 떨어지고 겨울을 부르는 빗방울에 촉촉히 젖는 대리석 계단이다

틈사이 작은 풀 하나가 계절의 끝을 잡고서 있는듯 하다

잡초의 푸르름이 마르면 어느새 겨울이 오겠지

미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며

1692년에 세운 사적비에 의하면 749년에 의조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답고 금의인이 황금으로 번쩍거리던 것을 기리기 위해

미황사라고 했다고 한다. 그 뒤의 사적은 알 수 없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약탈과 방화로 큰 피해를 입었다.

1601년에 중창하고, 1660년에 3창했다.

1752년 금고를 만들고, 1754년 대웅전과 나한전을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공사를 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보물 제947호)응진당(보물 제1183호)오백나한전 명부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사적비와 여러 점의 부도가 전한다.

 

 미황사 감로수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으로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자기정화를 해본다

몸가짐을 바로 해서 미황사를 둘러보자

먼저 정구업 진언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문헌에서 해석을 보면  수리--길상(吉祥). 수리--길상. 마하수리---위대한 길상.

수수리---지극한 길상.  사바하---성취하소서 라고 해석해 놓았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입의 업을 깨끗이 하는 진언이란 의미이며

불자가 경전을 독송할때 먼저 정구업진언을 외우게 되는데, 거짓의식이 아닌 깨달음의 마음, 거짓말이 아닌 참된 말

뒤틀리고 닫혀진 일이 아닌 해탈의 일을 생활 속에 일으키기 위해서는 진언을 통해 먼저 그동안의 낡은 습관

뒤바뀐 의식, 더럽혀진 언어생활을 청산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진리의 언어, 세계의 실상을 열어내는참된 말을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입으로 잘못된 업을 맑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인간이란 활동으로 나타내는 인간이며 이세계도

지금 나의 일상생활 속에 비치고 일상활동으로 드러나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뒤틀린 업을 바르게 하고 물든 생활의 습관을 정화한다는 것은

자아와 세계가 새로원지기 위한 전제가 되는 것이며

이제 불자는 거룩함, 깨끗함의 뜻을 담고 있는 '수리'를 외움으로써 낡은 언어생활

닫혀진 몸을 새롭게 바꾸어 나가며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를 외움으로써

나는 참말을 머금은 새로운 자아로 되어나옵니다. 지금 새로운 나는 과거의 나를 떠난 것은 아니지만

이미 과거의 내가 아닙니다. 나는 진언을 외움에 의해 새로원진 것입니다.

이 진언은 고통 속에 있는 중생들의 참모습을 인식하여 대중을 섬기고 공양하며

생활 속의 잘못을 반성하고 대중과 더불어 해탈을 함께 누리려는 큰뜻듯을 세우고

경전 속에 담긴 가르침을 올바로 받아지니려는 불자가 독송 전에 꼭 외워야 할 자기정화 작업인 셈입니다.

불자는 정구업진언을 통하여 경전에 들어가 경전에 가득찬 지혜를 만나고

이를 깨달아 보현의 원을 발하여 광대한 실천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達摩禪茶院(달마선다원)

사천왕문을 지나 우측에 선다원이 있으며 녹차향기가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선다원에는 다양한 차와 불교용품을 판매하고 담소를 나눌수 있는곳이다

사천왕문은 지금 수리중에 있어 둘러볼수가 없었다.

미황사 창건설화에는

692년(숙종 18)에 세운 사적비에 의하면 749년(경덕왕 8)에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돌로 된 배가 사자(獅子) 포구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물러나면 가까이 다가오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의조가 제자들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맞이하니 비로소 배가 포구에 도착했다.

배에 올라보니 금의인(金衣人)이 노를 잡고 있고 큰 상자 안에 경전 비로자나불상

문수보살상 보현보살상 40성중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 16나한 불화 등이 꽉 차 있고

배 안에 있던 바위를 깨니 검은 황소 1마리가 나왔다.

그날 밤 의조의 꿈에 금의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인도 국왕으로 금강산에 봉안하고자 경전과 불상을 싣고 왔으나

금강산에 절이 가득해 새 절터가 없어 돌아가던 중인데 이곳의 지형이 금강산과 비슷하므로

소 등에 불상과 경전을 싣고 가다가 소가 머무는 곳에 절을 지으라고 했다.
이에 다음날 소 등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길을 떠났는데

한 곳에 이르러 소가 한 번 크게 울고 드러눕자 그곳에 통교사라는 절을 짓고

소가 다시 일어나 가다가 마지막으로 머문 곳에 지은 절이 바로 이 절인데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답고 금의인이 황금으로 번쩍거리던 것을 기리기 위해 미황사라고 했다고 한다.

그뒤의 사적은 알 수 없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약탈과 방화로 큰 피해를 입었다.

1601년(선조 34)에 중창하고, 1660년에 3창했다. 1752년 금고를 만들고

1754년 대웅전과 나한전을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공사를 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달마대사

자하루 오르기전에 좌측편에 달마대사 상이 있어 잠시 참배를 하며 머물러 본다

달마대사는 중국 선종의 개조로 일컬어진다. 보리달마는 남인도 출신으로 520년 중국 광저우에 도착했다.

그해 10월에 선행으로 이름 높았던 양나라 무제와 만나

단지 선한 행위를 쌓는 것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설파해 황제를 당혹시켰다.

그뒤 보리달마는 뤄양의 사오린사[少林寺] 동굴에서 9년 동안 면벽 좌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오랜 기간 깊은 선정을 닦았음을 말해 주는 설화일 뿐이라고 믿고 있다.

보리달마는 부처로부터는 28번째의 조사로 여겨지고, 중국 선종에서는 초조로 간주된다.

보리달마는 부처의 심적 가르침에 돌아가는 방법으로 선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의 일파를 선종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의 사상을 알기 위한 자료 중 가장 신뢰할 수 있고

오래된 자료로는 제자 담림이 기술한 〈약변대승입도사행론서〉가 있다.

 

字霞樓(자하루)

미황사 대웅전으로 가는방향의 편액과 주련이며

편액은 학정 이돈흥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자하루 주련글씨를 보면

若人欲識佛境界 약인욕지불경계

當淨其意如虛空 당정기의여허공

遠離妄想及諸趣 원리망상급제취

令心所向皆無碍 영심소향개무애 

만약 누가 부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깨끗이 하라.

망상과 모든 집착에서 멀리 벗어나,

마음이 향하는 바가 모두 걸림이 없도록 하라. 

三界猶如汲井輪 삼계유여급정륜

百千萬劫歷微塵 백천만겁역미진

此身不向今生度 차신불향금생도

更待何生度此身 갱대하생도차신 

삼계는 우물의 도르래와 같아서

백천만겁을 지나도 티끌에 불과하네.

금생에 이 몸을 제도하지 못하면

또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할까

 

字霞樓(자하루)

대웅전쪽에서 바라본 자하루의 모습이다

擬將修福欲滅罪 의장수복욕멸죄 

後世得福罪還在 후세득복죄환재

但向心中除罪緣 단향심중제죄연

各自性中眞懺悔 각자성중진참회 

복을 닦아 죄를 멸하려고 한다면
후세에 복은 얻을지라도 죄는 그대로 이네.
다만 마음 속 죄의 연원을
각자의 마음 속에서
참된 참회가 되리라. 

이 주련글은 육조단경(六祖壇經)의 무상송(無相頌)이다.

 

범종루

미황사 범종루에는 종각하나만이 있는데 범종이 큼직하다

범종소리가 달마산에 울려퍼지면 모든중생들이 번뇌에서 해탈 듯한 웅장한 모습이다

범종 하나만 보아도 미황사가 얼마나 큰 사찰이니지 알수가 있었다

달마산 암봉들이 병풍을 만들었고 또한 미황사를 둘러싼 호위무사 같기도 하다

미황사 창건설화를 보면

우전국이 나오는데 우전국은 지금의 인도이다

우전국은 법현집에서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종무소 편액은 三心堂(삼심당)

미황사 자하루를 지나면 대웅보전앞 큰 도량이 나오는데 도량 좌측에 위치한 종무소이다

편액은 三心堂(삼심당)인듯 하다 왜냐하면 석삼을 점으로만 새겨져 있어

나혼자 삼심당으로 읽었다.

해남 미황사는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국내여행 100선에 속한다

땅끝마을 해남은 백두대간의 시작이자 끝인 셈이다

한반도의 최남단을 상징이기도 하다

미황사는 남해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달마산 서쪽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라 경덕왕때 세워진 천년고찰로서 불교가 한창 흥할적에 불교의 요람이 되기도 하였다 한다.

 

달마산 암봉과 응진전

달마산 암봉들이 마치 부처님을 수호하는 호법신장처럼 용맹스럽게 둘러서 잇는듯 하다

부처님께서 처음 성도하시고 보리수 밑에서 설법한 내용을 결집한 경전이 화엄경(華嚴經)인데

이 화엄경(華嚴經)을 호지하고 불법을 받들고 옹호하는 신중이 화엄신장이라고 한다.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여덟 신장(神將)이란 뜻으로 팔부신장(八部神將) 가운데 천룡(天龍)이 상도(上道)가 되므로

이렇게 이름. 마치 유가(儒家)에서 시서육경(詩書六經)이라 하는 것과 같다.

팔부(八部)는 천(天), 용(龍), 야차(夜叉), 건달바(乾闥婆),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睺羅迦)가 그것.

이 팔부(八部)는 모두 사람의 육안(肉眼)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명중팔부(冥衆八部)라 하기도 한다.

응진전은

전라남도 해남 미황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전으로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의 건축물이다

본존불의 상부에는 간략한 보개천장(寶蓋天障)이 가설되어 있다.

응진은 참다운 존재의 실상을 환히 깨닫고 해탈에 이른 이들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인 아라한의 한자어이다

정유재란때 소실되었다가 대웅전과 함께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내부 벽면에는 수묵으로 그려진 나한 벽화가 있는데 禪(선)의 경지를 보여주는

유려한 線(선)맛으로 이름이 높다고 한다.

 

미황사대웅보전(美黃寺大雄寶殿)

미황사의 대웅보전은 조선 후기의 목조건물로서 보물 제947호이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며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며

잡석을 쌓은 높직한 기단 위에 둥근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의 둥근 기둥을 세웠다.

그 위에 공포는 내사출목·외삼출목의 다포식으로 결구했다.

제공의 쇠서는 위로 가볍게 올라간 모양으로 18세기 이후의 보편적인 경향을 보여준다.

1982년 중수할 때 1754년(영조 30)에 중건했다는 상량문이 발견되었으며

상량문이 묵서된 종도리는 해체해 따로 보관하고 있다 한다.

기둥은 배흘림이 약한 원주(圓柱)이며 기둥머리에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결구(結構)하였는데

전면 중앙간 좌우 평주 머리에는 안초공(按草工) 형식의 부재를 끼워 외부로는 용두를 조각하고

내부는 연화문을 초각(草刻)하였다.

전면의 3칸을 벽처럼 문처럼 사용되는 문짝은 좌우가 청판을 댄 빗살로 짜여진 3짝의 문중에

두 짝의 문이 접이식 나비경첩으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문은 외문 짝이다.

가운데 문짝은 4분합문으로 두 짝씩 나비경첩으로 접이식으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
건물의 내부는 포작 위 약 60cm 정도 높이의 흙벽과 판벽을 올리고 우물천장을 했다.

천정은 사방 벽에서 비스듬히 반자를 밀어 올려 빗반자를 하고

 빗반자 위 중앙 칸의 천정에 평판 반자를 올려 마감하였다.

이러한 천장은 중앙 상부 칸으로 점점 좁아지면서 깊어지는 궁륭형 천정을 연상 시킨다.

천정에는 다양한 문양과 다채로운 빛이 들어 천정공간의 장엄함과 아름다운 천상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천정에는 천불출현지지 희유의 천불벽화가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웅보전 내의 모습

미황사 대웅보전은 미황사의 중심에 있으며

한 가운데에는 석가모니불, 좌우에는 아미타불, 악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내부의 대들보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은 산스크리트어 문자와

천불도로 장식되어 있어 인도 아잔타 석굴벽화 중국 둔황 막고굴의 천불벽화와도 비교된다고 한다.

대웅보전 팔작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식인데 가운데에 불교어인 ‘범(梵)’를 선명하게 새겨 놓았다.

막돌 허튼층쌓기 기단이며 전면에 괘불걸이 1쌍이 있고

초석중(礎石中) 전면(前面) 4개와 측면 2개, 합(合) 6개는

연화문(蓮花文)을 조각한 둥근 초석으로 서남쪽 우주(隅柱) 초석은 연화문(蓮花文) 사이에 자라를 양각(陽刻)하였고

중앙향우측(中央向右側) 평주(平柱) 초석(礎石)은 게와 자라를 양각하여 특이하며

후면(後面)과 측면의 기타 초석은 자연석 초석이다.

 

미황사대웅보전(美黃寺大雄寶殿)

미황사에는 영조 3년(1727)에 7명의 스님들이 조성한 높이 12m, 폭 5m의 초대형 부처님의 괘불이 있다.

평상시에는 대웅보전 내에 있지만 이를 괘불대에 옮겨 걸기에는 크기가 워낙 커서 장정 20명의 인원이 필요로 한다.

미황사 괘불은 고려 불화의 아름다움과 조선 불화의 단순미를 고루 갖춘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예전부터 큰 법회에 괘불대에 걸고 행사를 진행 하였으며, 법회에 이 괘불을 보면 소원을 이루고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또한 가뭄이 극심할 때 이 괘불을 걸고 법회를 열고 달마산 정상에 올라 불을 지피면

비를 내려준다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를 한 정방형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미황사의 다른 전각은 화려한 단청이 되어 있지만

대웅보전은 단청을 오래전에 했으나 빛과 비바람에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이다.

내부는 색체와 문양, 천불벽화의 만다라이다. 어두운 법당 안은 빛을 품어 내부의 세상을 불러들이고

빛은 오래전 의사표시를 비워 내부를 비워두려고 하는 사찰건축의 윤리적 덕목을 읽어 들이려한다

천정문양은 엄격한 좌우대칭의 구도를 갖추었다. 중앙 칸에 부처님과 범자 문이 있고

주위로 우물반자의 총 칸수는 177칸으로 구성되었다.

네 모서리에 5×3칸씩, 어간 빗반자에 9×3칸, 양 측면 빗반자에 3×6칸씩

중앙 평반자에 금니로 베푼 범자 문 6×5칸, 그 양측면의 백학, 모란문양 2×6칸씩 해서 총 177칸이다.

내부 장엄의 색조는 부드러움이 넘치고, 천정하부 공포가구는 담녹색, 천정 면은 연지와 노랑 금빛이 주류를 이룬다.

문양은 연꽃, 모란, 학, 범자 등 총 7가지이며, 하나하나의 문양은 반복하여 표현하였다.

연꽃은 늪에서 길러 올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 신심에서 길러 올린 처염상정의 불보살이다.

네 모서리의 연꽃문양은  다섯 가지 형태로 다양하게 그렸다.

연꽃 문양에서 보듯 신령한 기운이 새싹처럼 차고 나와서 보주가 되었고

잎이 나와서 중도의 연화좌가 생겼고, 정대경지인 텅 빈 공으로 순환하는 구조로 묘사되었다.

순환하는 연꽃문양은 바로 그 ‘개(開)→시(示)→오(悟)→입(入)’의 근기에 따른 일승법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명부전

해남 미황사 명부전의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海南 美黃寺 冥府殿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은

전남 해남군 미황사 명부전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상이다.

2015년 8월 6일 전남 유형문화재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조선후기 제작된 지장보살상(본존)을 비롯해 시왕, 판관, 녹사 등

36구의 조각상(명부전 봉안)으로 지장보살상은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는데

화려한 광배와 연화 대좌가 독특하다.

명부전 조각상은 17세기 중엽을 대표할만한 존상이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洗心堂(세심당)

보통 사찰에서는 세심당은 요사채로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마음을 씻는곳이다

높다란 담장넘머로 주련이 걸려 있는데  주련을 보면 다음과 같다.

 

捨塵圜界欲昇天 사진환계욕승천

積善修仁是最先 적선수인시최선

命若露凝春草上 명약로응춘초상

身如雲掛暮山前 신여운괘모산전

 

金銀未足圖千載 금은미족도천재

玉帛焉能保百年 옥백언능보백년

唯願檀那知此意 유원단나지차의

幸逢佛法樹良緣 행봉불법수양연

 

티끌진 세상을 버리고 하늘세계로 오르려면

선행을 쌓고 어짐을 닦는 것이 가장 먼저이네.

목숨이란 봄풀 위에 맺힌 이슬과 같고

몸뚱이는 저물어 가는 산 위에 걸린 구름과도 같네.

 

금은의 보화로는 천년을 모아도 만족할 수 없고,

옥과 비단은 백년을 지키지 못하네.

보시를 한 사람은 이 뜻을 알아주기를 바라노니,

다행히 불법을 만났으니 좋은 인연을 키워가기 바라노라.

 

동국여지승람’에서도 미황사에 관련된 기록에 따르면 달마산에는 미황사와 도솔암 등 12개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1264년 겨울에 중국 남송의 배 한 척이 달마산 동쪽 바다에 도착 "이 나라에 달마산이 있다고 하던데

이 산이 그 산인가?"라고 배에 탄 중국 고관이 물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자,

그는 달마산을 향해 예를 표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명성만 듣고 동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리 보니 여기서 나고 자란 그대들이 부럽고 부럽도다.

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항상 머무를 만하구려"하고 참배하고 화폭에 담아갔다는 것이다.

고려 후기에 미황사가 있는 달마산이 중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산이라는 해석이다.
다름 아닌 그 달마 스님은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서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27대의 법을 이어받은 반야다라 존자의 제자였다.

중국 양나라때 무제의 초청을 받고 불법을 펼치러 갔지만

무제와의 문답을 통해 아직은 법을 펼칠 때가 아니라 생각하고

숭산의 소림굴에서 9년간이나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면벽 참선 수행만 했다.

 이때 찾아온 선종(禪宗)의 2대 조사인 혜가 대사를 만나 선법을 전해주고는 중국에서 사라졌다.

이후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이 달마대사를 선종의 초조로 모시고 선 수행을 이어오고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달마대사의 행적이나 지명이 있는 곳은 없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미황사 뒷산에는 ‘토말(土末)’이라고 쓰여진 비석이 있는데 우리 나라 육지의 끝을 표시한 것이다.

 

 

 

※인용글 : 

자료 인터넷사전 및 해남군 홈페이지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사전 ,전통사찰관광정보, 문화재청, 미황사 홈페이지 자료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및 사찰종무소스님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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