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늑대 FORCE

순창 강천산(淳昌 剛泉山), 호남(湖南)의 소금강(小金鋼)전북 순창 강천산 정상에 서다 본문

바다늑대/山 & 旅行

순창 강천산(淳昌 剛泉山), 호남(湖南)의 소금강(小金鋼)전북 순창 강천산 정상에 서다

바다늑대FORCE 2019. 11. 12. 18:14

순창 강천산(淳昌 剛泉山)

 호남(湖南)의 소금강(小金鋼)전북 순창 강천산 정상에 서다


순창 강천산(淳昌 剛泉山)

   높이 : 585.4m

   위치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와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산리 경계에 있는 산


▲ 나의 산행일 : 2019년11월12일 화요일 , 날씨 : 맑음

▲ 나의 산행코스 :

   강천산군립공원 주차장→→→매표소→→→병풍바위→→→깃대봉삼거리→→→깃대봉

  →→→강천산 왕자봉 →→→현수교→→→정자→→→구장군 폭포→→→강천사

  →→→금강문→→→매표소 →→→주차장

  8.2km 3시간 30분소요


▲ 강천산 개요 : 

전북 순창과 전남 담양군의 도계를 이루는 강천산은 비록 산은 낮아도 깊은 계곡과 맑은 계곡 물

그리고 기암절벽이 병풍을 치듯 늘어선 모습으로 "호남의 소금강"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단풍나무가 유난히 많은 강천산은 매년 11월 초순께 절정을 이룬다.

히 강천산만의 자랑인 아기단풍이 곱게 물들 때 더욱 장관이다. 등산로가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다.

등산로 초입부터 병풍바위를 비롯, 용바위 비룡폭포 금강문 등 명소들이 즐비하고

금성산성도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오밀 조밀한 산세에 감탄하게 된다.

이러한 관광자원에 힘입어 1981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강천사와 삼인대 사이를 지나 홍화정 옆길로 들어서면 50m높이에 걸린 구름다리(현수교)가 아찔하게 보인다.

강천산은 최근에 벚꽃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개 4월초 피기 시작해 10일께 만개한다.

자연생 「산벚꽃」으로 꽃이 잘고 빛깔이 희고 맑다.

벚나무는 강천산 입구 강천호 주변을 에워싸고 있으며 등산로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강천계곡 6㎞구간을 지나 정상에 이르면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 산 아래 흰빛 벚꽃물결을 감상할 수 있다.

강천산에는 신라 진성여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찰 강천사가 있다.

강천사는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찰. 한때는 1,000여명의 승려가 있던 큰 절이었다고 한다.

절 뒤로 치솟은 암벽과 강천산 암봉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멋지다.


▲ 등산지도



▲ 산행지 찾아가는길

 진주역→→→남해고속도로 진주jc→→→대전통영간고속도로→→→광주대구고속도로

 →→→순창TG →→→강천로 팔덕방면 →→→강천산주차장

142km  승용차 1시간30분 소요.

→→→→→2019년11월12일 화요일 당번근무를 마치고서 단풍 절정을 이룬다는

전라북도 순창에 있는 강천산을 찾아 길을 나섰다

100대명산 도전팀들과 강천산 산행이 근무일과 겹쳐서 오늘에야 100대 명산

강천산에 발도장 찍어러 간다...


郡立公園 剛泉山(군립공원 강천산) 초석

군립공원 강천산 주차장 입구에 있는 초석이다

주중인데도 많은 관광버스와 차량들로 인해 차량통제로 인하여

임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서 걸어오면서 초석에 사진을 찍어 보았다.

강천산은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와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산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서
강천산(剛泉山)은 원래 광덕산(光德山)이었으나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강천사(剛泉寺)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어

강천산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지리지나 문집 등에는 강천산 보다는 광덕산이라는 명칭이 더 일반적이다.

또한 풍수지리상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형상이라서

용천산(龍天山)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병풍바위

강천산에는 입장료가 있다 성인 1인 3000원이며 주차료는 없다

병풍바위를 보는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떨어지는 낙수가 인공이던 자연이던 간에 입구쪽 부터 풍경에 압도 당했다

병풍바위 폭포는 2002년에 조성되어 높이는 약 40m이고

폭포너비는 약 15m 이며 낙수량이 분당 5톤에 이르는 인공폭포이라고 한다.
병풍바위 하나가 여러 이름을 갖고 있듯이 전설도 가지각색이다.

수십 길 깎아지른 듯한 절벽아래 넓은 암반 위로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그리 깊지 않는 이곳
소(沼)에서는 밤마다 신선이 내려와 목욕을 하였는데
어느 날, 깜빡 잊고 두고 간 ‘관’이 바위로 변했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선관 또는 갓 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일곱 냇물(또랑)을 건너가 절에 있는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사람들은 강천사를 찾아 가기 위하여 병풍바위 아래의 길을 지나갈 때면
거대한 바위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면서 지나고 부처님께 복을 비는 마음으로 지나다니며 죄를 용서 받았다고 한다.
또한 지나는 사람들마다 얄찍하고 마음에 드는 돌만을 골라 병풍바위의 틈을 메우고 소원을 빌었다는 전설도 있다.
한편, 강천산 심산유곡에 사는 호랑이는 새끼를 낳으면 이곳 병풍바위 아래로 떨어뜨린 후
올라온 새끼만을 인정해서 데리고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 주역에 통달한 도사는 병풍바위 아래 앉아서 축지법을 구사하여 가볍게 돌을 던지면 바위 위까지 올라가고
무릎을 꿇고 바위 위아래를 자유자재로 오르내렸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깃대봉 방향 들머리

그냥 단풍을 찾아온 사람들도 많아 많은 안파를 따라가다 보면 놓치기 쉬운 들머리이다

표지목이 깃대봉을 향하고 있어 미리 생각한 산행 계획에 따라 깃대봉으로 발길을 옮겼다

많은 사람들 탓에 사진찍기도 불편 하였다

평일인데 아마도 관광차가 1000대가 넘을듯 하다

오늘 하루 이용객이 1만명이면 입장료가 3000원 아마 3천만원 입장료 수입이다

산 하나에 이렇게 고 수익 창출을 올리는 강천산이다.


깃대봉 방향 초입구간

강천산 주봉인 왕자봉 가는 초입구간이다

처음에는 약한 경사이지만 깃대봉 삼거리 까지는 급경사를 이룬다

산행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산악회 사람들이며 60대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이렇게 단풍 절정기 강천산에는 안산인해란 말뜻을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러나 주봉으로 가는 탐방로에는 단풍이 없다.


급경사 탐방로

60대 아줌마 아저씨들도 산을 잘 오른다

숨이 목까지 차고 땀이 흘러 옷을 하나 벗어야 했다.

강천산은

전북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996번지 일대에 그 아름움과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강천산 왕자봉(해발583.7m)

광덕산 선녀봉(해발578m)을 비롯하여 산성산 연대봉(해발603m)을 중심으로

세개의 산 사이로 병풍을 둘러치듯이 남록과 북록으로 나뉘어 작은 협곡을 이루고 있으며

사방이 모두 바위산으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랑스러운 산이다.

골짜기마다 단단한 암반위로 깨끗하고 맑은 물이 샘처럼 솟아 흐른다하여 강천이라 불렀고

그 주변의 모든 산을 강천산이라 하였으며 예전에는 용천산(龍泉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두 마리의 용이 하늘을 향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형상이라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깃대봉 갈림길

여기서 부터는 능선길이라 숨을 고를수가 있다

30~40분정도는 진짜 가파른 경사길이라 헉헉거리며 올랐다

60대 형님 누님들 산행길 앞질러서 깃대봉 갈림길에 도착 했다.

강천산 단풍은 순창 고추장보다 더 빨갛고 더 유명하다.

강천산은 내장산이나 선운산 만큼 아기자기한 단풍명산이며 주봉도 높지 않아 산객도 많다.

해발500m대로 높지 않지만 연대봉·운대봉·수령봉·천자봉·깃대봉·왕자봉 등

잘난 여러 봉우리와 연대계곡·선녀계곡·원등계곡·분통골·지적골

소목골·삼인대계곡·기우제골·세냥골 등 수많은 계곡을 품고 있다.

골짜기마다 단단한 암반 위로 깨끗하고 맑은 물이 샘처럼 솟아흐른다 하여

강천(剛泉)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강천산 깃대봉

강천산 깃대봉은 표지석이 없고 표지목이 깃대봉임을 알려준다

깃대봉 산정주변은 참나무와 잡목이 대부분이다

강천산은 단풍의 명소로 알려지면서 붉게 타오르는 단풍을 구경을 위해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는가 보다.

강천산은 최고봉 왕자봉의 높이가 해발 583.7m, 산성산 최고봉 연대봉의 높이가 603m로

나즈막하지만 호남정맥을 이루고 있는 만큼 산세가 만만찮다.

강천사~왕자봉~형제봉~495m봉~산성산~광덕산~신선봉~현수교~강천사를 잇는

종주산행은 7시간은 잡아야 한다고 산꾼들은 전한다.


강천산 왕자봉(剛泉山 王子峰)정상석584m

호남의 소금강 강천산(湖南의 小金鋼 剛泉山) 이라고 새겨 놓았으며 2016년 10월26일에

정상석을 세웠는가 보다.

기록에는 585.8m 인데 정상석에는 584m로 새겨 놓았다

일반적으로 보면 기록에 있는 높이 보다 2~3㎝높게 하는곳이 있는데 강천산에는 1.8m 적게 되어 있다

강천산은 '호남의 소금강'이라고도 하며 노령산맥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광덕산·산성산·추월산 등이 있다.

산은 낮으나 기암절벽과 계곡 및 울창한 숲 등이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강천산·강천호·광덕산·산성산을 포함한 일대가 1981년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총면적은 15.7㎢이라고 한다.


강천산 왕자봉(剛泉山 王子峰)정상석584m

강천산은 노령산맥에 서 있는데 노령산맥(蘆嶺山脈)이란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추풍령(秋風嶺) 부근에서 갈라져

남서방향 뻗은 산맥을 말하며 길이는 약200km의 구릉성 산지이다.

노령산맥 형성을 보면 중간에는 완주의 운장산(雲長山, 1,126m), 진안의 마이산(馬耳山, 667m)

정읍의 내장산(內藏山, 763m), 금산의 대둔산(大芚山, 878m), 김제의 모악산(母岳山, 793m) 같은

화산암과 옥천층군의 퇴적암 및 화강암 산지가 솟아 있고

소백산맥과의 사이의 산간지대에는 금강 유역의 영동군, 충청남도 금산군, 전라북도 무주, 장수 진안군이 있으며

섬진강 유역으로 임실군이 자리한다.

이 가운데 진안고원은 500m 내외의 고도를 이루는 고위평탄면으로 금강(錦江)이 발원한다.

이 산줄기는 논산천·만경강·동진강 등의 유역과 금강·섬진강 유역을 가르는 큰 분수계로서

금강이 북류하고, 섬진강이 남류하며, 이밖에도 만경강과 영산강이 이 산맥에서 발원한다.

전주∼진안 간의 곰티재(熊峙, 427m)와 정읍∼장성 간의 노령(蘆領, 276m)이 주요 고개이다.


강천산 왕자봉(剛泉山 王子峰)정상석584m

강천산(剛泉山)은 전북 순창군과 전남 담양군의 경계에 있는산이다.

1981년1월7일에 첫 번째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사적353호,금성산성(金城山城) 등의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이 산성은 삼국시재에 축조되었고, 조선 태종 9년(1409년)에 고쳐 쌓은 후

광해군 2년(1610년)에 보수공사를 하면서 내성도 함께 만들었다.

광해군 14년(1622년)에는 내성 안에 관청을 건립하고 효종 4년(1653년)에

성 위의 작은 담(여장)을 수리하면서, 전반적으로 성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외성은 2km, 내성은 700m 길이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동학농민운동 때 건물이 많이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동·서·남·북문의 터가 남아 있다.

내성 앞에는 국문영 장군의 비석이 남아 있다.


정상에서 바라본 당양호와 추월산 조망

저멀리 담양호와 추월산까지 조망되었다

산객들은 추월산과 담양호수를 연계한 산행을 많이 하고 있다

담양호수 둘레길도 잘 정비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하는데 한번 가보아야 겠다.

강천산은 단풍으로 이름난 산인데 비하여 산정에는 단풍이 없어

산길을 걷는 길은 여느 야산과 다를바  없었다 그렇다고 조망이 좋아 산행길에 조망보는 맛도 없었다

하지만 단풍맛은 산아래 계곡따라 펼쳐져 있다.


현수교0.8km

현수교 방향으로 하산길이다 산에서 0.8km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다

강천산 주봉인 왕자봉에서 현수교쪽으로 하신길은 그야말로 미끄럼틀을 연상케 했다

너무 가파러다 경사가 심해서 줄을 잡고 내려가야 했는데

다행히 들머리로 이용하지 않아서 산행코스를 잘 택하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강천산은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속하는데

강천계곡 등 경관이 수려하고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고 한다.

신라 진성여왕때(887년) 도선국사가 개창한 강천사(剛泉寺)가 있으며

산 이름도 강천사(剛泉寺)에서 유래였고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성산성(金城山城)이 유명하다.



강천산 현수교 조망

하산길에 현수교가 보인다 현수교를 건너서 팔각정 신선봉 정상 찍고서

하산해서 용머리 폭포를 보고 귀가할 예정이다.

왕자봉에서 여기 전망때 까지는 아주 급경사를 이룬다

전망대에도 어김없이 산객 회원들끼리 모여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한쪽 모서리로 가서 겨우 사진하나 남겨본다

청명한 가을날씨는 이제 우리에게는 없나 보다

산압의 발달로 사는게 나아졌지만 하늘은 푸르게 본다는건 옛말이 되었다


현수교 인근 전망대

여기 전망대는 인산인해(人山人海)다 강천산 정상을 오르지 않는 사람들의 조망처이다

소문에는 순창 고추장 색깔보다 강천산 단풍색이 더 찐하다는 말이 있다.

순창은 장수(長壽)의 고장이며, 고추장을 비롯한 장류(醬類)의 고장으로서

이름이 높으며 순창군은 마한 시대에는 '옥천'과 '오산'이라 했다.
그리고 통일 신라 시대에는 '순화', 고려시대에는 '순창현'으로 불렸고

1314년 충숙왕 1년에 본 군 출신 승려 정오가 국통 국일대선사라는 국가 영직에 취임하고 부터

현이 군(郡)으로 승격해 오늘에 이르렀다.

강천마을은 천혜의 군립공원 강천산이 위치한 마을이며

1999.1.9 행정구역 조정으로 청계리에서 강천으로 분리되었다고 한다.

단풍나무가 유난히 많은 강천산은 매년 11월 초순께 절정을 이룬다하여 오늘 탐방했다

특히 강천산만의 자랑인 아기단풍이 곱게 물들 때 더욱 장관이지만 산정은 그러하지 않았다.

등산로가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지만 능선빼고는 가파러다.


강천산 현수교(剛泉山懸垂橋)
강천산 현수교를 보니 색상도 그렇고 모양새가 남해대교 축소판 같은 느낌이다

강천산(왕자봉, 584m)과 남서쪽에 위치하는 신선봉(425m) 능선을 연결하고 있는 출렁다리이다

현수교(懸垂橋)

가장 오래된 시공형태의 하나이지만 현대에도 가장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현수교는 항해 가능한 유수 위에 경간을 설치하는 문제나 교각을 시공하기 어려운 곳에 대해 해결책을 제공했다.
강선 수천 개로 이루어진 평행 케이블이 현수교의 주된 지지부재이다.

케이블은 각각의 타워에 의해 지지되고 다리 전체길이의 중간 부분에서 아래쪽으로 구부러져 있으며

양쪽 끝에서 앵커된 상판은 주케이블에 달린 행거 케이블에 의해 지지된다.

강천산 현수교(剛泉山懸垂橋)

강천산 현수교 길이 78m, 높이 50m, 폭 1m이다.

강천산 현수교는 강천사에서 서남쪽으로 400m 거리에 위치하며

해발 250m의 능선을 양쪽으로 연결하고 있다.

강천산 계곡을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연결하고 있으며

북동쪽에 위치하는 강천산[왕자봉, 584m]과 남서쪽에 위치하는 신선봉[425m] 능선을 연결하고 있다.

경위도 상의 위치는 북위 35° 23′, 동경 127° 04′이다.

강천산 군립 공원 안에 있어서 강천산 현수교라고 부른다.

강천산 현수교는 강천산의 명물로서 사랑받고 있으며

높은 곳에 위치하다 보니 ‘구름다리’, 흔들린다고 ‘출렁 다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강천산 현수교는 신선봉 전망대를 올라가기 위해 건립한 다리로

1980년 4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980년 8월 2일에 완공하였다.

설계는 전북 대학교 박춘혁 교수가 맡았고 시공은 전주 동진 공업사에서 진행하였다.

강천산 현수교는 강천산 계곡을 연결하고 있으며

동쪽에 강천사가 위치하고 상류인 서쪽에는 용머리 폭포가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강천산과 신선봉 전망대를 연결하는 다리로,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용머리 폭포의 모습이 장관이다.

수리봉가는길 전망대

현수교를 건너서 수리봉으로  테크게단길을 걸었다

수리봉으로 향하는 테크계단은 끝이 안보인다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하며

강천산 계곡아래 펼쳐진 단풍풍경에 넋이 빠지는듯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강천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초입부터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바로 입구에서 마주한 병풍폭포에서 쏱아지는 물줄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폭포수를 맞으면 죄 지은 사람도 죄가 씻겨 내려간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높이 50m의 시원한 폭포수가 연신 쏟아지며
갈 길 먼 산객 그리고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병풍폭포 앞에서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념인증사진 찍기에 바쁘다.


수리봉에서 본 현수교 모습

단풍의 붉은색과 현수교의 분홍색이 조화를 잘 이루었다

단풍명산 강천산이 낮에만 단풍을 보기 위한 산객과 관광객으로 가득 찼다면
순창군에 따르면  야간 개장을 하여 강천산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줄을 잇는다고 한다
순창군이 산책로 1.2km구간 걸쳐 화려한 빛과 조명을 더해
야간에도 강천산을 찾을 수 있도록 조성 하였다고 전한다.
순창군은 순창을 배경으로한 최초의 국문소설인 설공찬전을 모티브로 화려한 빛과 조명
영상 등을 통해 소설 속 이야기를 표현했다 한다.
원작인 설공찬전에 재미를 더해 아이들에게 공감갈 수 있는
적룡, 청룡, 도깨비 등 친숙한 캐릭터들을 만들어 가족 단위 관광객 유치에 중점을 두고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다.
단풍명산으로 가을이면 수많은 차량으로 붐비던 강천산도 밤이면 고요했지만
이제는 화려함으로 무장해 새롭게 변화하여 낮과 또 다른 모습을 예고하고 있는 강천산 모습이다.



아래서 본 현수교

강천사와 삼인대 사이를 지나 홍화정 옆길로 들어서면 50m높이에 걸린 현수교가 아찔하게 보인다.

강천산 군립 공원은 크게 자연 보존 지구, 자연환경 지구, 자연 취락 지구, 집단 시설 지구로 나뉘어져 있다.

그중 자연 보존 지구가 6.847㎢로 전체의 43.2%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연환경 지구가 8.774㎢로 55.4%, 자연 취락 지구가 0.046㎢로 0.3%

집단 시설 지구가 0.177㎢로 1.1%를 차지하고 있다.

강천산 군립 공원 안에는 병풍 폭포, 용머리 폭포, 약수 폭포, 비룡 폭포, 천우 폭포

구장군 폭포, 수좌굴, 북바위, 거라시 바위, 송음암

부처 바위 등의 자연물과 금성산성, 산림욕장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석교 11개[강천교, 광덕교, 신선교, 도선교, 금강교, 송음교, 극락교, 삼인대 앞 석교

무명교, 비룡교, 현수교 계단 옆 석교]와

목교 4개[놀이터 입구, 윗용소 옆, 현수교 밑, 구장군 폭포 취수보 밑 목교]가 설치되어 있다.

시설로는 순창군 관광 안내소, 상가, 매표소, 화장실 10개소

주차장 3개소, 공작 사육장, 토끼 사육장 등이 있다.

구장군 폭포(九將軍瀑布)

군립공원 강천산 입구에서 강천사, 현수교를 지나 강천 제2저수지 조금 못 미치면

120여m 높이의 웅장한 구장군 폭포가 나타나 아름다운 물줄기와 물소리에 놀라게 하고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풍수에 의하면 음양의 조화를 이룬 명소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전설에는

구장군 폭포는 옛날 마한시대 혈맹을 맺은 아홉명의 장수가 전장에서 패한 후

이곳에 이르러 자결하려는 순간 차라리 자결할 바에는 전장에서 적과 싸우다 죽자는
비장한 각오로 마음을 다지고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었다는 아홉장군의 전설이 서린 곳이다.




구장군 폭포(九將軍瀑布)

마치 용이 하늘로 오르는듯 보인다

구장군 폭포는 아름다운 야생화와 높이 120m의 웅장한 폭포수가
산수정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강천산에서 가장 빼어난 비경으로 꼽힌다고 한다.
강천산에 왔어도 구장군 폭포를 보지 못하면 강천산에 왔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구장군 폭포의 아름다운 절경은 보는 이들의 혼을 빼 놓는다
정말 찾아온 사람들이 구장군 폭포에서 인증사진찍기에 바쁘다
나 역시 앵글 찾아 사진 찍을려면 기다려야 했고 또 지나가는 관광객 때문에 힘들었다.


구장군 폭포(九將軍瀑布)

강천산은 산줄기는 백두 대간인 장수군의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뻗어가다

금남 호남 정맥인 진안군과 완주군의 경계에 있는 주화산에서 두 갈래를 친다.

주화산에서 북으로 금남 정맥을 보낸 호남 정맥이 남진하며 경각산, 오봉산, 내장산

백암산, 용추봉, 추월산을 거쳐 강천산을 형성하였다.

강천산의 물줄기는 남쪽은 담양호를 통하여 영산강으로 흐르고, 동쪽은 구림천을 통하여 섬진강으로 흐른다.

강천산의 주봉인 왕자봉을 기점으로 서쪽은 추월산과 내장산, 북쪽은 용추봉과 여분산

동쪽은 문덕봉과 고리봉, 그 너머로 백두 대간의 지리산 연봉들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남쪽은 설산과 괘일산, 그 너머에는 무등산이 첩첩히 다가온다.

강천산은 광덕산, 산성산, 왕자봉 등의 선녀 계곡, 금강 계곡

용골 등에서 흘러나온 명경지수(明鏡止水)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강천산 계곡 안에는 천연 폭포인 비룡 폭포와 선녀 폭포

인공 폭포인 구장군(九將軍) 폭포와 병풍 폭포, 그리고 병풍 바위, 용바위, 투구봉

호두암, 금강굴, 수좌굴, 형제굴 등 천혜의 비경이 숨겨져 있다.


강천산 단풍길

그중 단연 아름다운 건 병풍폭포부터 구장군폭포까지 이어지는 애기단풍길이다.
강천산은 산세가 가파르지 맑은 계곡을 따라 아이들고 걸을 수 있는 완만한 산책로가 5km가량 이어진다.
그리고 그곳에 아이손처럼 고운 붉은색 단풍이 마치 병풍처럼 산책로를 감싸고 있다.
특히 현수교부터 구장군 폭포까지 800m 가량은 애기단풍이 터널을 이뤄 붉은색 융단을 걷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한낮을 지나 지는 해를 받아 반짝이는 단풍길은 보는 이들의 감탄이 절로 나는 아름다운 길이다.
이래서 강천이 호남의 소금강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강천산은 예로부터 호남의 소금강(小金剛)으로 알려진 명산이며, 1981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군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해발 583.7m의 강천산은 계절별로 봄에는 진달래, 개나리, 벚꽃

여름에는 더위를 식혀 주는 시원한 폭포와 계곡, 가을에는 애기단풍

겨울에는 잔설로 덮인 현수교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또한 강천사, 광덕정, 흥화정이라는 정자와 순창 삼인대(淳昌三印臺)[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27호]

깎아지른 계곡에 만들어진 길이 76m의 호남 제일의 구름다리인 현수교 등이 볼거리다.

2003년에 인공으로 조성된 병풍 폭포는 높이 40m의 자연 형상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연미와 웅장함이 살아 있다.

2005년에 2.5㎞의 웰빙 산책로[맨발 산책로]가 조성되었으며, 2009년에는 삼림욕장이 조성되었다.

순창읍에서 지방도 792호선을 타고 북쪽 정읍 방면으로 8㎞ 정도 가다 보면 강천산 입구에 도착한다.

순창 삼인대(淳昌三印臺)[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27호]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김정 등이

중종의 폐비 신씨의 복위를 청하는 상소문을 작성한 곳으로서

1506년(연산군 12)에 박원종(朴元宗)[1467~1510]·성희안(成希顔)[1461~1513] 등이 주동하여

연산군(燕山君)을 몰아내고 진성 대군을 왕위에 추대하는 중종반정을 일으켰다.

박원종 등은 좌의정 신수근(愼守勤)이 반정에 반대하였다며 숙청하였고

이어 신수근의 딸인 중종(中宗)의 비 신씨(愼氏)를 폐위시켰다.

중종(中宗)은 윤여필의 딸[장경 왕후]과 재혼하였으나 장경 왕후는 왕자를 낳고 사망하였다.

이에 순창 군수 김정(金淨)[1486~1521]과 담양 부사 박상(朴祥)[1474~1530]

무안 현감 유옥(柳沃) 등 세 사람은 강천산에 모여 관인(官印)을 나무에 걸고

폐비 신씨의 복위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하였다.

당시 김정과 박상, 유옥이 각자의 관인을 나무에 걸었다 하여 삼인대(三印臺)라고 부른다.

김정 등의 상소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후일 신씨를 복위하여 단경 왕후(端敬王后)에 추증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단경 왕후는 1699년(숙종 25)에 현감 신규(申奎)가 신씨의 지위와 명호를 회복시킬 것을 주장하였으나

조정에서 의견이 분분하여 시행되지 못하고 별묘(別廟)를 지어 받들기만 하였다.

이후 1740년(영조 16)에 다시 여러 신하가 모여 의논하고 임금이 결단하여

신씨의 호를 단경 왕후로 추상(追上)[임금이나 왕비가 죽은 뒤에 존호를 올리는 것]하고

태묘(太廟)에 올렸으며, 능을 온능(溫陵)이라 하였다.

순창 삼인대(淳昌三印臺)는 대의를 지키려는 이들의 선비 정신과 충절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이를 기리고자 1744년(영조 20)에 홍여통(洪汝通)·윤행겸(尹行謙) 등

순창군의 선비들이 발기하여 삼인대비를 세웠다.

삼인대비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비각 안에 있다.

높이는 164㎝, 폭은 80㎝, 두께는 24㎝로 화강암 좌대에 대리석 비신이다.

비각 안에는 영조(英祖)·정조(正祖)의 어제 현판과 기우만이 쓴 「삼인대 비각 중수기」가 걸려 있다.

비문은 도암 이재(李縡)가 지었으며, 민우수(閔遇洙)가 글씨를 썼고, 유척기(兪拓基)가 전서를 썼다.

비문의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순창 군수 충암(冲庵) 김정과 담양 부사 눌재(訥齋) 박상, 무안 현감 석헌(石軒) 유옥이 이곳에 모여

관인을 나뭇가지에 걸어 두고 중종반정 때 폐위된 신씨를 복위시킬 것을 청하는 상소문을 작성하였다 하여 삼인대라 한다.

1506년 중종반정이 성공하자 부인 신씨를 중전에 올렸으나 훈신 박원종 등이 중전의 아버지인 좌의정 신수근이

중종반정 과정에서 살해되었으므로 그 해가 자신들에게 돌아올까 우려하여 신씨를 폐위시키고

숙의 윤씨를 왕비로 삼았으니 이분이 장경 왕후였다.

그러나 10년 후에 장경 왕후가 승하하니 이때 많은 재이(災異)가 발생해 임금께서 신하들에게 바른 말을 널리 구하니

이때 충암 등이 유지에 응하여 상소를 올려 신씨를 복위시킬 것을 청하는 한편

훈신들이 군부(君父)를 흔들며 국모를 폐위시켜 추방한 죄를 논열하였다.

상소가 접수되자 대간 이행(李荇) 등이 이들을 체포하여 국문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상국(相國) 정광필(鄭光弼)이 힘껏 구명해 준 데 힘입어

도형(徒刑)[죄인에게 중노동을 시키는 형벌]에 처해진 뒤 귀양 가는 것에 그쳤는데

오랜 시일이 지난 뒤에야 유배에서 풀려났다.

처음 상소문의 초안을 잡을 당시 관직에서 추방될 것을 각오하고

세 사람의 직인을 소나무 가지에 걸어 두었다 하나 상소문에는 유옥의 이름이 빠져 있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김정과 박상 두 사람이 유옥에게 “우리들이 모두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있네만

자네는 형제가 없어 자네 말고는 부모를 모실 사람이 없으니

자네가 죽으면 효에 손상을 입히는 것이네”라고 하여 빠진 것이라 한다.

이후 1699년(숙종 25)에 현감 신규(申奎)가 신씨의 지위와 명호를 회복시킬 것을 주장하였으나

조정에서 의견이 분분하여 시행되지 못하고 별묘를 지어 받들기만 하였다.

그 후 1740년에 다시 여러 신하가 모여 의논하고 임금이 결단하여

신씨의 호를 단경 왕후로 추상하고 태묘에 올렸으며, 능을 온능이라 하였다.

이때 두 분도 모두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 주고 자손을 녹용할 것을 명하였다 한다.



강천사 (剛泉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887년(진성왕 1)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혹은 1482년(성종 13)에 작성된 『강천사모연문』에 보면 신령(信靈)이 광덕산(廣德山) 가운데서

명승지를 골라 초암을 짓고 지낸 것에서부터 유래한다고 나와 있다.

1316년(충숙왕 3) 덕현(德賢)이 오층석탑과 12개 암자를 창건하여 사세(寺勢)를 확장하였으며

1482년(성종 13)중조(中照)가 신말주(申末舟)의 부인 설씨의 시주를 얻어 중창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이 절과 12개의 부속암자가 전소되었으며

1604년(선조 37)태능(太能)이 중창하여 강천사만은 이전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 뒤 1855년금용당(金容堂)이 중창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보광전(普光殿)·첨성각(瞻星閣)·칠성각의 당우들이 불타버렸다.

그 뒤 주지 김장엽(金奬燁)이 1959년에 첨성각을, 1977년 관음전을

그리고 이듬해 보광전을 신축한 뒤 비구니의 수도도량으로 전승되고 있다.

근래에는 1992년 보광전을 대웅전으로 바꾸었고, 1997년 첨성각을 헐고 복원하였다.




강천문(剛泉門)

강천사 일주문이며 편액은 강천문으로 되어 있다

강천사는 역사적으로 이 절에는 비구승보다 비구니들이 많이 머물렀는데

그 까닭은 창건자 도선이

 “머리카락과 수염이 없는 사람이 있어야 빈찰(貧刹)이 부찰(富刹)로 바뀌고 도량이 정화된다.”고 한 예언에 따라

절을 유지하여 왔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에 있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인 오층석탑과 금강문(金剛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인 삼인대(三印臺) 등이 있으며

오층석탑은 1316년(충숙왕 3)덕현이 중창할 때 건립한 탑이다.

이 탑 북쪽 약 1m 지점에는 중대석(中臺石)과 보주(寶珠)만이 남아 있는 석등이다.

금강문은 1316년덕현이 절 주위의 풍치가 금강산과 비슷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 전한다.

자연암석으로 된 사각문으로 높이 8m, 너비 4m이다.

또한, 이 절에는 천년을 살아 온 지네가 인간으로 변신하려다가 법당에서 피우는 향내음이 너무 독해서

인간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앙갚음으로 요괴가 되어 매일 밤 승려 한 사람씩을 죽였다는

전설과 거지·승려 그리고 돈에 얽힌 전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거라시 바위

거라시 바위는 예로부터 문전걸식 구걸하는 걸인들이

이 바위굴 앞에서 자리를 깔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동냥을 바다아

강천사 스님에게 시주를 하고 부처님께 복을 빌었다는 나눔의 실천했던

장소로 전해오고 있어 거라시 바위(굴0 또는 걸인 바위라 부른다고

안내글에 기록되어 있다.


I ♡ 강천산

강천산 단풍길은 병풍폭포에서 부터 구장군 폭포까지 왕복 5km에 걸쳐 아름답게 펼쳐지는 황토마사토길이다.
순창군에서 직접 마사토를 깔고 바닥을 다지며 섬세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하며
주변에 산림욕장, 기암괴석 등이 위치하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황토길을 따라 이어진 계곡 옆이로 단풍의 아름다움에 취할수 있다.

이렇게 하여 100명산의 하나 순창 강선산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이렇게 오르고 걷다보면 1000산을 찍을날 오겠지..!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순창군등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19.11.1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