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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금성산(陜川 錦城山),高麗시대 봉화대(烽火臺)터였던 정상에서 합천댐을 안아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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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금성산(陜川 錦城山),高麗시대 봉화대(烽火臺)터였던 정상에서 합천댐을 안아보다

바다늑대FORCE 2019. 6. 1. 13:42


합천 금성산(陜川 錦城山)

高麗시대 봉화대(烽火臺)터였던 정상에서 합천댐을 안아보다


▲ 합천 금성산(陜川 錦城山)

    높이 : 592m

    치 :  경남 합천군 대병면에 있는산


▲산행일  : 2019년06월01일 토요일  날씨 : 맑음

▲나의산행코스 : 

 대원사주차장 - 대원사 우측임도 - 조망바위 - 너럭바위 - 금성산(봉화산) - 회양 안부

 - 밤나무길 - 계곡 갈림길 - 율정 - 봉화산가든 -→대원사주차장

편도 4.71km  3시간 소요

 

▲산행지 개요:

경남 합천군 대병면 일원에 위치한 금성산(金城山ㆍ592.1m)은

대병면 소재지에서 정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모산은 황매산(黃梅山ㆍ1,108m)이며

옛 고려시대부터 통신수단의 하나인 봉화대(烽火臺)가 정상에 자리하고 있어서

일명 봉화산(烽火山)이라고도 한다.

어떤 기록에는 동남쪽의 허굴산(墟堀山ㆍ681.8m)과 중간의 금성산(金城山ㆍ592.1m)

북쪽의 악견산(岳堅山ㆍ620m)을 합쳐 삼산(三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삼산이란 의미는 삼성봉(三聖峰), 삼기(三岐ㆍ삼기현이 있었음), 삼가(三嘉ㆍ삼가면이 있음) 등

일대에서 '삼(三)'자를 많이 쓰는 것에서 유래한 것 같다.

또한 악견산의 '견(堅)'자를 어깨라는 뜻을 가진 '견(肩)'자를 쓰기도 하는데

두 가지 모두 그 이유나 유래에 대해선 단언할 수 없다.

금성산 정상에 자리한 봉화대(경상도기념물 제219호)는 자연 암반 주위에 돌을 쌓고

불구덩이[煙臺]와 건물을 조성하였는데, 불구덩이는 현재 1m 정도만 남아 있다.

주위에 건물을 지었던 터가 있는데, 그 터 안에는 봉화대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자연 암반에 새겨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봉화대는 조선 정조 2년(1778년) 조성하였다고 한다.

금성산 정상 서쪽 벼랑에는 수백 척이나 되는 암벽이 있고

중간에 넓은 반석으로 널따랗게 펼쳐져 있어 이를 가리켜

금반현화 (錦盤懸花ㆍ비단 소반에 꽃을 단 것)란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산행은 합천군 대병면 장단 1구마을과 회양 2구마을,합천댐 주차장에서 오르는 3가지 코스가 있다.

이중 장단 1구 마을 가나농장입구에서 출발하는 원점회귀 코스를 소개되어 있다.

합천군 대병면 장단 1구마을에서 1026 지방도로를 따라 거창,합천 방면으로 가다 보면

왼편으로 가나농장이란 팻말을 볼수 있다. 가나농장 입구에는 금성산 등산 안내 팻말도 붙어 있다.

산행시작 직후 나타나는 외딴 주택에서 오른편으로 오르다 보면 밤나무 단지로 접어든다.

산행 시작 20-30분 거리에 다다르면 포장도로는 끝난다.

산행들머리로 가는 길은 합천읍내에서 24ㆍ33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만나는

남정 로터리에서 좌회전해 15번 군도를 따라간다. 황강을 왼쪽으로 끼고 공설운동장과 월평리를 지난다.

고품리 지나 만나는 갈림길에서는 우회전해 12번 군도를 따라가면

영화촬영장('태극기 휘날리며')과 한국수자원공사를 지나 평학마을(산행날머리)에 이르고

5분쯤 더 12번 군도를 따라가면 산행들머리인 봉화산빙어가든 앞 새터마을 입구에 이른다.



▲  금성산 등산지도



▲ 산행지 찾아가는길

진주Ic삼거리 →→→ 진주 합천 국도 미천방향 →→→서부로 봉산 방면 →→→ 합천호수로 합천영상테마파크

→→→ 대원사 주차장

편도55KM  승용차 1시간10분

→→→→→2019년6월1일 토요일 아침일찍 합천 금성산으로 향해본다

사실은 어제 금성산 산행 하려고 했지만 비오는 탓에

롯데시네마에서 조조 기생충 관람하고 나오니 햇살이 너무 좋았다

이를줄 알았으면 산행갔을걸 하는 미련이 남아 오늘 아침일찍 길을 나섰다.


대원사 주차장 금성산 등산안내도

금성산 산행 들머리가 있는 대원사 방향 산행 깃점을 잡았다

대원사 주소는

경남 합천군 대병면 대병3산로 497-13 주소 검색하여 오면 된다

주차장은 사찰의 신도용 주차장으로 그다지 크지 않은 자그마한 주차장이다

주차장에 금성산 안내도가 있으며 진더기 및 해충 퇴치 기피제 약품분무기도 설치 되어 있지만

작동 하지 않았다.

대원사 멍멍이 처사가 밥값하느라 연이어 짖어 되었다.


금성산 들머리

대원사 요사체 우측 임도를 따라 올라오면 시멘트 포장이 끝나는 지점이

금성산 들머리 이다.

6월1일 신록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금성산 탐방로 초입구간

합천 산들이 암봉이 많은데 역시 금성산도 암봉들이 많다

큰 바윗돌 아래 작대기 받쳐 놓았다

대한민국 어디 산을 가도 이렇게 작대기를 받쳐둔 뜻은 무엇일까?

토템문화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어떤 토속신앙의 영향인지

福을 비는것일까 아니면 안녕을 비는것일까.....모든소원 성취 바램이겠지..!


금성산 탐방로 초입구간의 야생 수국(水菊)

탐방로 주변에 야생수국들이 군락지를 이루고 마치 금성산 꽃밭 같았다.

수국(水菊)은

동아시아 원산의 갈잎 떨기나무이다. 수국 꽃송이는 분단화 또는 수구화라고 불리기고 하고

백거이와 관련되어 자양화나 팔선화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일본,중국 등지에 분포하며 높이는 1~2.0 미터이다.

한 포기에서 갈라져 자라며 어린 가지는 녹색으로 굵다.

잎은 마주나며 긴 타원형 또는 거꿀달걀꼴로 길이 8~15 센티미터이고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삼각형 모양의 예리한 톱니가 있다.

잎은 약간 두꺼운 편이며 매끄럽고 광택이 나서 겨울에도 그대로 있을 것 같지만 가을에 잎을 떨군다.

수국은 물을 좋아 하여, 수국의 수자가 물수자이다.

6~7월 무렵 가지 끝에서 둥근 모양인 대형의 취산꽃차례 이루어 청보라색, 자색, 분홍색, 흰색, 빨간색의 꽃이 핀다.

꽃은 처음에 흰색으로 피기 시작하지만 점차 청색이 되고 다시 붉은 색을 더하여 나중에 보라색으로 변한다.

토양이 알칼리 성분이 강하면 분홍빛이 강하고, 산성이 강하면 남색이 되어 땅의 성질을 바꾸어 꽃의 색깔을 바꿀 수 있다.

수술과 암술은 퇴화하여 작고 열매는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산수국과 탐라국수은 열매를 맺는다.

정원에 많이 심는 품종은 일본에서 들여온 나무수국이다.

삽목으로 번식을 시키는데 옮겨심어도 잘 살고 빨리 자라므로 키우기 쉽지만

습기가 많고 비옥한 땅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추위를 타는 편이므로 한반도의 중부 지역에서는 정원보다 화분에 많이 심는다.




금정산 정상0.6km

벌서 정상인가 싶다 걷다보면 안내표지판이 잘못되었다 오해가 온다

아마도1.6km잘못 기록한듯 하다

안내표지에서 정상까지는 급경사지를 이루고 0.6km아닌 1.6km일꺼다

탐방로 근처에서 고라니 울음소리가 들여온다

고라니 울음 소리를 처음 듣는 산행자들은 좀 오싹 할수도 있다.


탐방로 자연석 돌계단

대원사에서 정상가는 길은 급경사지이였고 거리는 짧지만 정상까지 최단 코스며

전망이 좋은 코스이기도 하다.

금성산은 옛날 정상에 봉화대가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흔적으로 추론하면 봉화대는 자연 암반에 돌을 덧대어 쌓아 불구덩이를 만들고
주변에 건물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한다.
구덩이는 1m 정도만 남아 있고 옆에 건물 터가 있다.
암반에는 봉수대 축조와 관련된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으며
이 산기슭에 있는 대원사라는 사찰 이름이 봉화산 대원사 인 이유이기도 하다.


탐방로 바윗돌

합천 산들이 암봉이지만 금성산 역시 탐방로 여기저기 큰 바윗돌로 이루어 져 있고

정상에 가까워 질수록 암릉이 나온다.

금성산 산행은

합천군 대병면 장단 1구마을과 회양 2구마을,합천댐 주차장에서 오르는 3가지 코스가 있다.

이중 장단 1구 마을 가나농장입구에서 출발하는 원점회귀 코스를 소개하면

합천군 대병면 장단 1구마을에서 1026 지방도로를 따라 거창,합천 방면으로 가다 보면

왼편으로 가나농장이란 팻말을 볼수 있다. 가나농장 입구에는 금성산 등산 안내 팻말도 붙어 있다.

산행시작 직후 나타나는 외딴 주택에서 오른편으로 오르다 보면 밤나무 단지로 접어든다.

산행 시작 20-30분 거리에 다다르면 포장도로는 끝난다.

산행들머리로 가는 길은 합천읍내에서 24ㆍ33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만나는

남정 로터리에서 좌회전해 15번 군도를 따라간다.

황강을 왼쪽으로 끼고 공설운동장과 월평리를 지난다.

고품리 지나 만나는 갈림길에서는 우회전해 12번 군도를 따라가면

영화촬영장('태극기 휘날리며')과 한국수자원공사를 지나 평학마을(산행날머리)에 이르고

5분쯤 더 12번 군도를 따라가면 산행들머리인 봉화산빙어가든 앞 새터마을 입구에 이른다.


금성산 탐방로의 첫번째 한천호 조망

금성상 정상에 가까워 지니 합천호의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대병면 소재지가 한눈에 들어오며

합천호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대원사 들머리 장단리는

금성산 일명 봉화산 동녘 기슭에 자리한 마을인데 금성산을 중심하여 원장단, 금성동

한정울, 귀이목 등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고, 맞은편으로 땅골과 봉기가 바라보이며

남쪽에는 허굴(허불)산이 위치하며, 해발이 높은 지역이다.

장단리의 중심 마을로서 초계정씨가 많이 살고 있고, 삼산 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성동리는 일명 서재밑 동리라 하였다.

금성산 아래 동리라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금성동이라 하였으며, 밀양박씨가 많이 살았다.


암봉에서 합천호를 바라보면서 휴식

합천 황강은 모래(沙)로 유명하였다

시골집 리모델링을 위해 중딩시절 큰형님 따라 황강 모래 채취장까지 갔던 기억도 있다

합천댐이 건설된 이후 유명했던 합천 모래는 사라진것이다.

장단리의 대산마을은  이름을 한정울이라고도 부르며, 벽진이씨들의 집성촌이다

하조항 마을과 상조항 마을은

귀이목 마을의 윗동네 이름이다. 안동권씨가 많이 살고 있다고 하며

귀이목 마을의 아랫동네이며, 합천행 도로의 주변마을이며 밀양박씨들이 살고 있다 한다.


금성산에서 허굴 산을 바라보며

대병면에는 삼대 산이 있다

허굴산 금성산 악견산 이며 올 여름 내에 삼대 산을 다가볼 작정이다

보통 산행자들은 3대 산을 한번에 종주하지만

산 하나 하나 살펴보면 탐방할 예정이다.

허굴산은

인접한 봉화산(금성산), 악견산과 더불어 암릉이 험준하기로 이름난 삼산으로 알려져 있다.

허굴산(일명 허불산)은 길목에 바라보면 산중턱 굴 안에 부처님이 앉아 있는 것 같아

바랑을 벗어놓고 올라가 보면 부처님은 없고 허굴만 있다하여

허굴산이라 하며, `바랑거리`란 지명도 중이 바랑을 벗어 걸어두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허굴산에는 허굴, 용바위, 장군덤 등의 볼거리가 있다 한다.


합천호와 대병면 회양리와 상천리 조망

금성산 산정에서 바라보면 조망은 시골마을 이기보다는 아름다운 휴양지와 같아 보인다

별장같은 집도 보이고 합천호 회양관광 단지도 보인다

회양리의 가산 마을은 현 면소재지 옆의 도롱골 뒷동네인데

한문으로 可山 혹은 佳山이라고 하는데 비탈진 동리하고 하여 可山이라고 하였으며

또 너무 삭막하여 佳山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남평문씨와 경주최씨가 살고 있다.

도룡골, 가산, 새터, 붉은 바위, 돌댐이, 오리밭, 소정 아랫 마을을 합쳐 回陽里라하고

행정 편의상 새터와 붉은바위 돌댐이, 오리밭를 가르켜 회양2구라 하는데

이곳은 금성산(봉화산) 서쪽에 위치하며, 수원이 좋은 곳으로 눈이 많은 지역이다


금성산 암릉에서 합천호를 안아보다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씻어준다

두팔벌려서 합천 대병면과 합천호를 안아본다.

하산방향의 율정(밤나무밭)은 새로운 터 일명(一名)『샛터』신기동 (新基洞)이라 하며

밤나무가 많이 서식(棲息)하여 율정(栗亭)이라고도 한다.

마을이 형성된지가 150년 정도 되며 밀양박씨와 안동 권씨 등이 살고 있다 한다.


합천호(陜川湖)

합천호는 소방과 안좋은 연이 많다

대구소방헬기가 추락 했고 올해는 경남소방헬기가 합천호에 추락 했다.

대구소방헬기가 2003년1월에 추락되어 나 역시 합천 현장에 투입되어

한겨울 수중탐색을 한곳이다.

올해도 경남 소방헬기가 훈련중 합천호에 추락하여 항공대원 모두 구조되어 다행이였다

합천호를 바라보면 16년전 차가운 합천호 수중을 탐색했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세월이 참 빠르다 벌서 16년이나 흘렀다.


119위치표지목3-6

3-6표지목에서면 조망이 좋은 곳과 연결 된다

합천에는 암릉으로 이루어진 산들이 많고

지명유래를 보면

조선시대 이후 호칭된 지명이며 조선 태종 13년(1413)에 행정구역 개편 시 주가 군으로 강등되면서

합천이라 하였으며 합천은 좁은 내라는 뜻으로 이 지역이 산이 많고

들판은 없어 온통 산으로 둘러 쌓인 좁은 계곡이 많다는 뜻과 부합되는 것으로 풀이 된다.

그러나 1914년 3월에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분지를 이루고 있는 초계와 삼가가 합천군으로 편입되면서

좁은 계곡 또는 좁은 내라는 뜻은 맞지 않다하여 (세개의 고을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합천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한문식(漢文式) 표기방식은 그대로 존속하나 말할 때와 읽을 때는 “합천”이라고 한다.


상조항 마을앞 넓다란 들판

비닐 멀칭이 멀리서 보면 하우스 단지처럼 보인다

성리의 못골(地谷)은 옛날부터 연못이 있었다 하여 지동(池洞)이라 하며

진주당씨(晉州姜氏) 문량공(文良公) 희맹(希孟)의 후손(後孫) 가수현감(嘉樹縣監) 삼은(三隱)

원박(願博)의 처(妻) 숙부인(淑夫人) 문씨(文氏)가 아들 주방(住方), 주복(住福)

주우(住遇) 삼형제(三兄弟)를 데리고 이거(移居)하여 집성촌(集成村)을 이루었다 전한다.


금성산 암릉에 서다

암릉이 도로처럼 넓적하며 끝은 낭떨어지 이다

골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안아본다

대병면의 금성산은

중턱부터 암석으로 되어 있어 천연적으로 성처럼 보이며 옛날에 군사들이 진을 많이 친곳이며

금성산으로 불렸으며 고려시대 때부터  조선시대 때는 봉화를 피웠다고 전한다.


정상가는 철계단

탐방로의 계단은 급경사가 심하거나 암릉에 주로 있다

산행자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안전 시설물이라 생각하면 된다

철계단 끝이 금성산의 정상이다.

사람은 제각각 표정이 있듯이 산역시 마찬가지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 스님의 법어도 있지만

산도 큰산 작은산 장중한산 예쁜산 올골찬 산 앙증스런산등 때문에

산행자들은 한곳 산에 머무러지 않고 여러 산을 두루 다닌다

나 역시 산이 주는 감정이 다르기에 1000산을 목표로 하여 산행을 틈나면 한다.


합천 금성산(陜川 錦城山) 정상592m

금성산은

합천군 대병면에 위치한 금성산은 대병면 소재지에서 정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모산은 황매산이다.

금성은 무쇠 성[金城]` 이란 말로 옛 고려시대부터 통신수단의 하나인

봉화대가 정상에 자리하고 있어서 일명 봉화산이라고도 한다.

어떤 기록에는 동남쪽의 허굴산과 중간의 금성산, 북쪽의 악견산을 합쳐 삼산(三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금성산 정상에 자리한 봉화대는 자연 암반 주위에 돌을 쌓고 불구덩이[煙臺]와 건물을 조성하였는데

불구덩이는 현재 1m 정도만 남아 있다.

주위에 건물을 지었던 터가 있는데, 그 터 안에는 봉화대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자연 암반에 새겨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봉화대는 조선 정조 2년(1778년) 조성하였다고 한다.


합천 금성산(陜川 錦城山) 정상592m

역사가 깊은 산이라서 그런지 산행자들의 깃표들이 울긋불긋 하다.

금성산이 있는 합천군은

대부분 지역이 산간지대로 평야의 발달이 미약하나

황강이 지나는 합천읍·율곡면·쌍책면·청덕면 일대와 초계면·적중면 일대의 분지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분포한다.

황강의 상습적인 범람을 막고 발전과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합천댐을 건설했다.

댐의 건설로 형성된 합천호는 군의 서쪽 봉산면·대병면 일대에 걸쳐 있고

그밖에 박실지·정양지(正陽池) 등 소규모 저수지가 군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합천 금성산(陜川 錦城山) 정상592m

경남 합천군 대병면 일원에 위치한 금성산(金城山ㆍ592.1m)은

대병면 소재지에서 정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모산은 황매산(黃梅山ㆍ1,108m)이며

옛 고려시대부터 통신수단의 하나인 봉화대(烽火臺)가 정상에 자리하고 있어서

일명 봉화산(烽火山)이라고도 한다.

어떤 기록에는 동남쪽의 허굴산(墟堀山ㆍ681.8m)과 중간의 금성산(金城山ㆍ592.1m)

북쪽의 악견산(岳堅山ㆍ620m)을 합쳐 삼산(三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삼산이란 의미는 삼성봉(三聖峰), 삼기(三岐ㆍ삼기현이 있었음), 삼가(三嘉ㆍ삼가면이 있음) 등

일대에서 '삼(三)'자를 많이 쓰는 것에서 유래한 것 같다.

또한 악견산의 '견(堅)'자를 어깨라는 뜻을 가진 '견(肩)'자를 쓰기도 하는데

두 가지 모두 그 이유나 유래에 대해선 단언할 수 없다고 전한다.



합천 금성산(陜川 錦城山) 정상석 뒷면

정상석 뒷면 글자는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장단리 산 31 이라는 주소를 새겨 놓았다.

정상석은 錦城山(금성산) 해발592.1m 陜川郡 이라고 새겨 놓았다

정상석은 정상에 있지 않고 정상 암봉 아래에 세워놓았다

봉화대 터에 세우기는 역사적으로 그래서 아래에 세웠는지

풍수상 위에 세우면 안되는지등 나혼자 분석을 해보았다


합천 금성산(陜川 錦城山) 봉수대( 烽燧臺)

정상에는 합천 금성산 봉수대란 안내 표지판이 서있다

합천 금성산 봉수대(陜川 錦城山 烽燧臺)는경남 합천군 대병면 회양리, 금성산에 있는 봉수대이다.

1999년 8월6일경상남도 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었다.

봉수(烽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燧]로

밤에는 횃불[烽]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봉수제는 기록상으로 고려 중기(12. 3세기)에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진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들어서였다.

봉수를 밝히는 봉수대는 대략 수십 리의 일정한 거리 간격으로 시야가 확 트인 산꼭대기에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평시에는 하나의 불꽃이나 연기[一炬 또는 一煙], 바다에 적이 나타나면 둘,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셋, 바다에서 접전이 이루어지면 넷,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개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

이 봉수대는 일명 봉화산이라 불리는 금성산 정상부에 축조된 것으로

자연 암반 주위에 돌을 쌓아 불구덩이[煙臺]와 건물을 조성하였다.

불구덩이는 현재 1m 정도만 남아 있고, 주위에 건물을 지었던 터가 있다.

건물을 지었던 터 안에는 봉수대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자연 암반에 새겨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봉수대는 1778년(정조 2)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이 봉수대는 남쪽의 입암산(笠岩山)으로부터

봉화를 받아 북쪽의 소현(所峴) 봉수대에 연결하는 통로였다고 한다.

금성산 정상 서쪽 벼랑에는 수백 척이나 되는 암벽이 있고

중간에 넓은 반석으로 널따랗게 펼쳐져 있어 이를 가리켜

금반현화 (錦盤懸花ㆍ비단 소반에 꽃을 단 것)란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금성산(錦城山) 안내판

금성산 안내글을 보면

금성산은 옛 고려시대부터 통신수단의 하나로 봉화대가  이곳 정상에 있어서

일명 봉화산이라고도 하는데 남으로는 단성 입암산(笠岩山)에 응하고 북으로는.....

글자가 많이 지워져 있다


금성상 정상 암봉에서

대병3산은 자연적인 아름다움 외에도 역사와 전설이 서려있는 산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과 얽힌 전설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전설은 이렇다.

왜적들이 의병들이 모여 있는 악견산을 포위한 채 장기전을 꾀했다.

이에 장군이 의병장들을 시켜 맞은편 금성산 바위에 구멍을 뚫어 악견산과 줄로 잇게 했다.

그리고 그 줄에다 붉은 옷을 입힌 허수아비를 띄워 달밤에 당겼다.

이를 보고 왜적들이 하늘에서 신상이 내려와 다니는 것으로 보고 겁을 먹고 도망갔다는 것이다.

대병3산은 바로 이런 매력 때문에 언제 찾아도 좋은 산행지다.

미세먼지가 없는날에 오르면 금상첨화다. 매끈하게 흘러내린 바위벼랑이 한층 더 가깝게 보이고

맑고 푸른 합천호가 더욱 눈에 시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랭이논의 조망

금성산 정상에 서면 비로소 사방팔방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옛날 산촌 사람들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다랭이논이 산허리에 펼쳐져 아름답게 다가온다.
수 백년 동안 이어진 농부들의 고된삶 산을 논으로 만드는 고된 노동을 대변해주는하고
그것이 매우 소중한하며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일이였기 때문에 그렇다.
생명의 시간과 세월이 만들어 낸 삶의 터전 계단식 논이 산허리를 넘어 하늘로 올라갈 듯하고
선조들이 흘린 굵은 땀방울의 흔적이며 농사일의 고된 노동의 상징이고
부모님들의 애환이며 눈물, 다랭이논이다.


금성상 정상 암봉에 서서 대병면을 바라보다

하산할 방향 밤나무골골 율현쪽이다.

합천호가 만들어지는 바람에 겨울철 진미가 생겼다

합천호의 진미 빙어이다

빙어는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굵기여서 초장에 찍어 회로 먹기에 가장 좋다고 한다.

소주와 함께하면 알싸한 입맛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보통 산행자들은 대병삼산을 종주하는데

3산이 덩치가 다 작고 독립된 각각의 산으로 이뤄져 있어 그렇다보니 어느 1개의 산을 타기엔 코스가 너무 짧고

3산을 다 타기엔 하루 일정이 버겁다는 것이며 그래서 대병3산은 통상 합천호와 바로 접해 있는

금성산과 악견산을 묶어 동시에 오르거나 허굴산만 따로 타는 2종류의 산행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봉수대터와 성리마을 조망

악견산 아래 펼쳐진 바둑판처럼 경지정리가 잘된 전답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유년시절 나의 고향마을 앞에도 경지정리 작업 불도져가 논밭을 밀고 하던 기억이

바둑판처럼 잘 정리된 들판을 보니 갑자기 생각이 지쳐간다.


합천호의 조망

호반의 도시처럼 합천호가 보인다.

박찬욱 감독, 최민식(대수역) 유지태, 강혜정 주연의 영화 ‘올드보이’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어릴 적 대수의 말 한마디가 부풀려져 큰 상처가 된 유지태(유진 역)누나가 합천호 난간에서 몸을 던지는 장면과
지금은 경남간호고로 교명이 바뀐 인근 송계고에서도 촬영됐다.
이 학교의 독특한 건물이 영화의 복잡한 스토리에 부합했다고 전한다.

대병면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 서부에 있는 면. 황매산(1,108m)을 비롯하여 허굴산(682m)·금성산(580m) 등이 솟아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300~800m의 산지를 이루고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이 북동부지역을 곡류한다.

소규모의 경작지가 황강의 지류를 따라 전개되어 있다.

주산업은 농업이며, 무·배추의 생산이 많다. 그밖에 소·돼지의 사육과 양봉이 활발하다.

지역 특산물로 꿀, 두릅, 고사리가 생산된다. 상천리-성리를 잇는 합천 댐이 1985~88년에 완공되어

 이 지역 농업용수와 전력을 공급해주고 있다.

유물·유적으로 악견산성과 금성산 봉수대, 대지리의 무학대사 유허지를 비롯하여 광암정

송호서원, 사의정, 화수당, 역평리의 송씨고가 등의 문화재자료가 많다.

관할 행정구역은 상천리·역평리·회양리·유전리·대지리·성리·장서리·양리·하금리 등 9개리가 있다

(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 17개리)

면사무소 소재지는 대병면 신성동길 23이다. 면적 63.19㎢,이다.


회양방향 하산

회양방면으로 하산하면 회양2구 마을회관이 나온다

주차를 한곳이 대병면 성리에 있는 대원사인지라 도로를 따라 걸어가야 한다

봉화산가든 방향으로 길 건너편으로 율정버스정류소와 금성산슈퍼가 나오면 산행끝인셈이다

보통 산행자들은 산행 들머리는 이 정류소와 슈퍼사이 시멘트 오름길로 오른다

마을 진입로이기도 한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행이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봉화산 대원사

산에가면 사찰이 있고 사찰에 가면 산이 있다

늘 그렇듯이 산행의 마지막은 사찰 둘러보는것이 산행의 마무리이다

대원사 대웅전에서참배를 하고서 금성산 산행을 마무리 한다

조용한 암자로서

주차장 입구에 멍멍이 처사만이 절을 지키며 밥값한다고

처음 올때나 산행끝나고 갈때나 멍멍 짖어 되었다.



봉화산 대원사 초석

금성산 대원사 들머리기도 하며 대원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된다.

합천 금성산(陜川 錦城山)高麗시대 봉화대(烽火臺)터였던 정상에서 합천댐을 안아보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합천군 대병면등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1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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