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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동악산(谷城 動樂山),하늘의 음률(音律)에 춤추는 전설따라 동악산 정상에 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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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동악산(谷城 動樂山),하늘의 음률(音律)에 춤추는 전설따라 동악산 정상에 서다

바다늑대FORCE 2019. 6. 3. 16:59


곡성 동악산(谷城 動樂山)

하늘의 음률(音律)에 춤추는 전설따라 동악산 정상에 서다

▲ 전남 곡성 동악산(谷城 動樂山)

   동악산 높이 : 735M

   위치 : 전남 곡성군 곡성읍에 걸쳐 있는 산


▲ 산행일 : 2019년 06월03일 월요일 날씨 : 맑음


▲ 나의 산행코스 :

   도림사 주차장 →→→도림사 우측길→→→길상골→→→ 마른계곡→→→신선바위

   →→→동악산 정상 →→→삼각점 →→→계단→→→ 배넘어재→→→제5 다리 →→→도림사

   편도 9.8KM  3시간20분 소요 


▲ 산행지 개요 :

전남 곡성군 곡성읍에 우뚝 솟아 곡성벌판을 굽어보고 있는 동악산(735m)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율에 맞춰 춤을 추다 오늘날의 산세를 갖췄다는 전설로 유명한 산이다.

자락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도선국사가 중건한 도림사가 천년세월의 고풍으로 찬란하고

굽이치는 계곡은 곳곳에 아기자기한 폭포와 담소를 빚어내고 있다.

동악산은

전라남도 곡성군 북쪽에 자리잡은 높이 735m의 산이며 북쪽 아래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형제봉과 최악산으로 이어진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골짜기가 깊고, 바위로 이뤄진 산세는 범상치 않다.

라 무열왕 7년(660), 원효가 길상암과 도림사를 세울때 하늘의 풍악에 산이 춤을 췄다고 하여 동악산이라 불린다.

산 남쪽 성류구곡에 위치한 도림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사찰이다.

이 절의 처음 이름은 신덕왕후가 행차한 곳의 절이라는 의미의 신덕사였으나

현재는 도를 닦는 승려들이 수풀처럼 모이는 곳이라는 뜻의 도림사로 불리고 있다.

호남지방에선 국민관광지로 지정될 만큼 널리 사랑받는 산 중의 하나다.

산행은 도림사에서 시작된다.차량은 곡성읍 월봉리 도림사 앞까지 진입할 수 있으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야 한다.

주차장에서 도림사까지는 약 10분 거리. 입구까지 포장이 되어 있고 길 오른편엔 거울처럼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동악산은 산세가 험해 단단히 준비하지 않고는 함부로 오를 수 없으며

무엇보다 동악산의 수려한 전경을 감상하려면 맞은편 산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다.

산행시간은 5시간 안팎. 이 코스는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계곡과 릿지. 능선등산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도림사를 지나 1km를 더 오르면 본격적인 등산로. 길은 여기에서 두 갈래로 나눠진다.

오른쪽을 택해 나아가면 시인 묵객들이 노닐던 단심대, 낙락대가 나오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다리가 설치돼 있다.

철다리에서도 길은 두 갈래. 이정표에는 오른쪽은 "배넘어재 2.2km 동악산 3km, 왼쪽은 형제봉 2.1km

길상암 1.5km"라고 씌어 있으며 다시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도림사계곡으로 이어진다.

거울처럼 맑은 물소리를 벗삼아 계류를 건너고 또다시 건너오기를 반복하면 어느새 계곡을 벗어난다.

계곡등반이 끝나면 이제부터 부드러운 흙을 밟는 등산이다.


▲ 동악산 등산지도



▲ 산행지 찾아가는길

진주Ic삼거리 →→→ 남해고속도로 순천JC →→→동호남고속도로 곡성IC →→→ 곡순로

→→→ 대곡순로 곡성방향 →→→ 도림사주차장

123.8km  승용차 1시간30분 소요

→→→→→2019년6월3일 월요일 당번근무를 마치고 남해고속도로를 질주하여

전남 곡성 도림사 주차장에 주차하고서 동악산으로 길을 걸었다

햇살은 6월초인데 폭염처럼 뜨겁게 내리고 있었다.


動樂山 道林寺 一柱門(동악산 도림사 일주문)

동악산 산행을 위해서는 일주문을 지나야 한다

도림사는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도림로 175 이며 네이게이션으로 탐색하여 찾아가면 쉽다

일주문 앞에 매표소가 있어 신자증을 준비하니 내부엔 아무도 없었다

도림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서 도림사 방향으로 5분정도 걸어가면 도림사가 나온다

도림사에서 들머리 표시가 안보여 도림사 오도문 근처 찻집 주인에게

산으로 갈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물어보니 친절이 손짓 해주었다.


동악산 등산 안내도

잠시 동악산 등산 안내도를 보며 어디로 가서 어디로 내려와야 할지

대충 안내도 따라 도상으로 걸어보았다.

동악산에는 계곡이 좋아 맑은 물이 졸졸 소리내며 흘러 내리고

사찰에서는 녹음된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녹음은 짙어 물감을 풀어 놓은듯 하지만 햇살은 뜨거운데 미세먼지는 있다.


동악산 들머리

도림사 를 지나 안내판 옆 다리를 건너면 들머리가 여기 이며

다리를 건너지 않고 계곡옆길을 따라가면 이길과 합수된다.

전남 고성의 대포적인 산이 동악산이다

동악산은 북으로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원의 명산 고리봉과 마주하고 있는 산이다

남쪽으로는 형제봉과 초악산(최악산)으로 이어져 있다.


동악산 정상가는 첫번째 목교(木橋)

양팔 벌려서 동악산 기운을 받아보자 신선한 공기가 폐속 깊숙히 들어온다

녹음짙은 숲속으로 발길을 내딛어 본다

동악산이라는 이름은 원효대사가 도림사를 세울때 하늘에서  풍악소리가 온 산을 진동해

동악산 움직일동(動) 풍류악(樂)이라 뜻이 있으며 도인들이 사찰에 숲처럼 모여들어

사찰 이름도 도림사(道林寺)라 지었다고 전한다.


9곡 소도원(小桃源)

동악산 청류동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탐방로 옆 암반에 새겨놓은 글씨이다

안내글을 보면

중국 복건성 무이산(武夷山) 제6곡에 위치한 도원동(桃原洞)의 별칭

소도원은 도연명이 노래한 도화원과 풍광이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일명 도원동이라고 한다.

중국 복건성 무이산  제6곡의 차병봉과 북랑암 사이에 위치해 있다.

소도원은 무이산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 바위 사이로 석문을 지나면 눈앞이 활연히 열리며

밭두둑이 넓고 평평하고 집들이 정연하며 오두막과 복숭아밭 죽림(竹林) 석지(石地)

작은 시냇물 등이 도연명이 묘사한 도화원과 흡사하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배넘어재와 동악산 정상 방향 갈림길

먼저 정상을 치고 배넘어재로 하산할 생각으로 우측길을 택하여 올랐다

좌측은 배넘어재를 통과하여 동악산 정상이며 조금 코스가 길다.

전문 산꾼들은

동악산을 거치지 않고 계곡을 거슬러 올라 남서쪽에 위치한 형제봉(656m)을 돌아보고 오는 순환코스로

산행르 한다고 한다.

동악산은 산세가 험해 단단히 준비하지 않고는 함부로 오를 수 없으며

무엇보다 동악산의 수려한 전경을 감상하려면 맞은편 산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돌계단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룬 돌계단이 멋지다

동계단 주변 나무는 경상도 사투리로 꿀밤 나무들이 많다

그래서 인지 다람쥐가 제법 많이 보였다

얼마나 제빠른지 다람쥐 모습을 담을려고 화면에 담는순간 사라져 버렸다

동악산은 제법 자연이 살아 있었다

발아래는 도마뱀이 바스락 도망치고 바위틈에는 개미 무리가 행군을 하고 었다.


동악산 1,5Km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정상이 1,5Km 짧아서 좋네 생가했는데

30분넘게 걸어도 정상은 보이지 않고 안내표지목에 또 동악산1,5km리고 적혀 있었다

표지목 설치 업자가 그냥 붙여 놓은듯 하다

완공검사를 사진으로만 했겠지......담당자는..!!??

119위치조난 표지목도 여느 산에 표지목과 차이가 있었다

철로 만들었고 면이 많이 넓다

표지목 글자를 보면 283m 무슨뜻인지 모르겠고

동악산 주등산로라 되어 있으며 위치번호는01-02 이다


가파른 테크계단길 시작

테크계단길이 끝이 안보인다  문경 주흘산 처럼 1000계단 처럼 보이지만

급경사가 더 심하다 무릎이 안좋은 산행자들은 옆길로 다녔는지

테크계단 옆 숲엔 길 하나가 있다

요즘 산에가면 테크계단길이 대세처럼 여기저기 다 설치 해 놓았다

물론 산행자들의 안전이 최우선이겠지만

나의 바램은 산과 주위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자연석 돌계단처럼 그런 길이였으면 한다.


오솔길

가파른 계단길이 끝나니 경사가 없는 오솔길처럼 걷기 좋은길이 나왔다

시골 외갓집 가는길처럼 평온하고 새소리 들려오고

수목향기도 너무 좋다

이런길만 걸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자연과 나 하나된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의 길은

빠르게 움직이는 아스팔트길의 차량과 미세먼지속의 세상

정말 생존경쟁 적자생존의 법칙이 존재하는 동물의 세계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걷는길은 모든것을 내려놓고 나를 찾는 길이다.


동악산 0.9km 암릉길

오솔길을 지나고 나니 암릉길이 나온다

울퉁불통한 인생사 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다

뜨거운 햇살이 내려 온다 얼굴엔 썬크림이 땀과 흘러내려 눈이 따갑다

손에 감은 손수건으로 눈을 닦에 내어 본다

이마에서 줄줄흐르는 땀방울 의복은 땀에 얼룩져 가고 있다.


신선바위

동악산을 오르다 직선으로 오르면 정상이 나오고 0.2km 비켜가면 신선바위를 만난다

신선바위가 어찌 생겼길래 하며 발길을 우측으로 돌려 신선바위쪽으로 걸어본다

우뚝솟은 바위끝은 마당처럼 넓다

바위끝부분은 얼마나 높나 하고 아래를 보니 아찔하고 수직절벽을 이루고 있었다

넓다란 마당처럼 그위에서 시선들이 참선을 하였나 아니면 바둑을 두었나...아니면 풍류를 즐겼나 궁금하다.


안부 삼거리

곡성읍 향교에서 등산하는 탐방로 그리고 도림사에서 등산하는길이 합류 지점이다

곡성향교(谷城鄕校)는  1570년(선조 3) 창건한 향교로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교촌리에 있고

1570년(선조 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619년 방백(方伯) 이동직(李東稷)과 현감 이언철(李彦哲)이 중수하였으며, 1685년 다시 중수하였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존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전사청·동재(東齋)
서재(西齋)·양사재·내삼문·교직사(校直舍)·고사(庫舍) 등이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2층 맞배지붕이며, 동서 양재는 각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측면 1칸은 툇간(退間)으로 되어 있는데 그 사이에 비(碑)가 있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소장전적은 32종 58책으로 주로 경서의 낙질이 대부분이나
필사본인 『향안(鄕案)』 등은 지방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전망대

여기서 보면 북쪽 멀리 남원의 명산  지리산 고리봉(1305m)보인다고 하는데

미세먼지 탓인지 그다지 선명하게 다가 오질 않았다.

언제 시간 나면 지리산 고리봉도 산행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지리산 고리봉은 해발1305m이며 배를 묶었던 고리가 있는곳이라 해서

고리봉이라고 한다.

올 여름 다 가기전에 고리봉에 올라 배를 묶었던 고리를 찾아 보아야 겠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곡성(谷城)

미세먼지 사이로 곡성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곡성읍은

전라남도 곡성군 북부에 있는 읍. 형제봉(657m)·동락산(630m)·마산봉(366m) 등이 솟은

중서부지역은 험준한 산지를 이루고 있다.

섬진강이 북쪽 경계를 흐르며, 면내를 흐르는 지류들이 동산리·대평리 일대에 비옥한 충적평야를 이루었다.

태평리·신리·동산리를 중심으로 딸기·멜론·화훼 등의 시설원예농업이 활발하다.

월봉리에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도림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2호)가 있으며

경내에는 괘불탱(보물 제1341호)가 있다.

인근의 도림사계곡과 더불어 일대가 국민관광단지로 조성되어 있다. 곡

성군청과 읍사무소가 소재한 읍내리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발달했으며

남원·순천 등을 연결하는 전라선과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읍내리·학정리·교촌리·죽동리·신월리·월봉리·구원리·서계리·대평리·신리

동산리·장선리·신기리·묘천리 등 14개리가 있다.


정상 부근에서 바라본 곡성

곡성은

소백산맥의 지맥이 중앙을 달리며, 다시 여러 지맥을 이루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동부의 섬진강 유역과 북부의 옥과천 유역에는 분지형 평야가

남부의 보성강 유역에는 좁은 곡저 평야가 있을 뿐이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동부에 천마산, 천덕산, 주부산 등이 솟아 있고, 남부에 봉두산, 아미산

희아산 등이 솟아 순천시와 경계를 이룬다.

전라남도에서는 비교적 내륙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온이 낮은 편이다.

곡성 문화를 보면 동제가 있는데

곡성에는 큰 나무가 많고 대개의 마을에서 음력 정초에 마을제로 당산제를 지내는데

당산제 전날이 되면 당산나무 주위에 황토를 깔고 금줄을 쳐서 출입을 통제하며

마을 사람들은 비린내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당일 자시를 기다려 제주는 제수를 진설하고

마을 사람들은 농악을 울리며 모여 들어 당산제가 행해진다.

겨울철에는 정월 대보름 무렵까지 연날리기를 한다.


동악산 정상(動樂山 頂上)735m

산행시작하여 1시간 30분만에 정상에 올랐다

동악산은

전라남도 곡성군 북쪽에 자리잡은 높이 735m의 산이며 북쪽 아래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형제봉과 최악산으로 이어진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골짜기가 깊고, 바위로 이뤄진 산세는 범상치 않다.

신라 무열왕 7년(660), 원효가 길상암과 도림사를 세울때

하늘의 풍악에 산이 춤을 췄다고 하여 동악산이라 불린다.


동악산 정상(動樂山 頂上)735m

정상 돌탑은 곡성읍 서편 산악회라 고 새겨져 있으며

시공자는 이사차 김판수 주영민 2005년 8월 완공이라고 되어 있다

시공할때의 돌탑 끝부분이 부셔졌는지  표지석 위에 걸쳐 놓았다.

동악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또한 일품이다.

동악산은 곡성의 대표하는 산으로서 블랙야크 100대 명산이라 찾는 산행자가 많다

곡성의 진산 동악산은 크게 두 산덩어리가 남북으로 놓여 있다.

각 산덩어리에는 비슷한 높이의 정상이 있는데 이 두 산덩어리를 가르는 것이 배넘이재이고

북봉에 동악산, 남봉에 형제봉이라고 표기해 놓고 있지만 최고봉은 형제봉이 된다고 한다.


통신철탑

동악산 먼당에 통신철탑이 서 있다 그래서 인지 휴대폰이 잘 터졌나....!!

동악산은

산은 곡성의 진산답게 산세가 빼어났다.

특히 암봉으로 이어진 능선은 춤을 추듯 유려한 하늘금이 장관이라 하겠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률에 맞춰 춤을 추다 오늘날의 산세를 갖췄다는 전설이 설득력 있기에

다가오는 산을 보는 감정이 그런 이유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동악산의 한자어도 '움직일 동(動)'이고 악(樂)자도 '즐거울 락'이 아닌

 '풍류 악'으로 발음되는 것은 일맥상통한 일이다 하겠다.

動樂山을 동락산 이라 읽지 않고, 동악산 이라 읽는 까닭부터 밝혀야 이 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대개 樂 은 뒤에 딸려 나올 때 락으로 읽힌다. 도락산(道樂山)이니 진락산(眞樂山)이니 하는 것이 그런 경우인데,

이 경우는 즐거울 락의 경우다. 그러나 동악산의 경우에는 풍류 악으로 읽어야 한다.

천상의 노래, 즉 음악이 울린다(동한다)는 전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유래는 이렇다. 이 산의 개산조인 원효대사가 성출봉(聖出峰 형제봉 동봉으로 동악산 최고봉) 아래에 길상암을 짓고

원효골(청류동 남쪽 골짜기)에서 도를 베풀고 있는데 하루는 꿈에 성출봉과 16아라한이 그를 굽어보는지라 깨어나

즉시 성출봉에 올라가 보았더니 1척 남짓한 아라한 석상들이 솟아났다는 것이다.
원효가 열일곱 차례나 성출봉을 오르내리면서 아라한 석상들을 길상암에 모셔 놓으니 육시(六時) - 불교에서 하루를

여섯으로 나눈 염불독경의 시각으로 신조,일중,일몰,초야,중야,후야-만 되면 천상에서 음악이 들려 온 산에 퍼졌다 한다.

도림사 응진전에 봉안된 아라한상들이 당시의 것이라 전해지고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

마을 주민들은 곡성 마을에서 장원급제자가 탄생하게 되면 이 산에서 노래가 울려 펴졌다고도 한다.

남원 실상사 약사전의 약사여래상처럼 나라에 불길한 징후가 나타나면 땀을 흘리는 흉조를 나타내는

불상이 있는가 하면 동악산처럼 길조를 알리는 산도 있기 마련이다.


곡성 수원지 조망

곡성의 수원지가 조망된다 곡성의 진산인 동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청수인 셈이다

또한

곡성의 진산인 동악산은 크게 두 산덩어리가 남북으로 놓여 있다.

각 산덩어리에는 비슷한 높이의 정상이 있는데 이 두 산덩어리를 가르는 것이 배넘이재이고

남봉(형제봉·동봉과 서봉으로 형성돼 북봉에 동악산

남봉에 형제봉 이라 표기해 놓고 있지만 최고봉은 형제봉이 된다.

산이름의 유래가 성출봉(형제봉 동봉)에서 유래됐다는 것과 주요 등산로가

형제봉을 중심으로 더 잘 나 있다는 점은 형제봉이 동악산의 주봉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 산을 삼남 제일의 암반계류라 부르는 까닭은 산들목에 있는 도림사로 들어서면서 알게 된다.

그다지 깊지 않은 계곡인데도

암반이 펼쳐지는 시원스런 품세는 삼남에서 제일이라는 과찬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이고

길이도 200여m에 달한다.

청류동계곡이라 부르는 이 계곡의 암반에는 새긴 글자도 무수히 널려 있다.

누군가 이 암반계류의 절경마다 一曲(일곡) 二曲(이곡)하며 구곡까지 새겨 놓았는데

더러는 깨지고 더러는 도로확장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도림사 입구 상가 주차장 부근에서 2곡, 4곡, 5곡 등의 곡이름과 淸流洞(청류동)

丹心臺(단심대), 樂樂臺(낙락대) 등의 지명, 樂山玩草 吟風弄月(요산완초 음풍농월)이니

淸流水石 動樂風景(청류수석 동악풍경)이니 하는 싯구

그리고 아무개 장구처(杖 處)라 하며 자기 이름이나 호를 새긴 크고 작은 각자들을

마치 설악산 비선대나 두타산 무릉계에서처럼 발견할 수 있다.

<출처:곡성군 홈페이지>


배넘이재로 하산길

등산코스를 배넘이재에서 시작 했다면 정상까지 개고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산행 코스를 잡을때 잛은코스를 등산 긴 코스를 하산 코스를 잡는다

다행이 오늘도 나의 산행 행동은 좋았다

정상까지 한참 겅어야 했고 또 이토록 급경사 계단을 오른다고 생각하면 다리;가 찌릿 하다.

동악산은 비단 암봉미만 뛰어난 것이 아니며 지방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청류동계곡(도림사계곡)은 삼남의 제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계곡에서 만나는 시인 묵객들의 수많은 각자는 그의 아름다움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쇄연문 낙악대 단심대 등이 특히 아름답기로 이름났다.   


배넘어재 1.7km 남겨두고 휴식

오늘은 무척이나 덥다 한여름 폭염날씨와 비슷하다

배넘어재에서 등산 한다면

동악산은 701봉에서 오르막으로 올라 만나는 이정표에서 거의 직진방향으로 연결된다.

이정표가 능선 꼭지점이 아닌 사면에 세워져 있어 길이 자연스레 동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정표에서 2분만 더 오르면 삼각점이 있는 736.8봉이고 이어 내리막으로 내려와

테크계단을 올라가면 중계시설을 지나 동악산 정상에 닿게 된다.

이정표에서 정상까지 10분 소요되며

테크계단을 올라 만나는 암릉길이 정상으로 가는 또다른 묘미를 제공한다.     


배넘어재 가는방향에서 바라본 동악산 정상

잠시 쉬면서 걸어온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저만치 동악산 정상이 마치 하늘에서 풍악이 울리면

춤을 출듯한 모습으로 곡성을 지켜보고있다

암봉과 녹음이 짙은 수목과이 마치 수반에 놓은 수석 같다

통신철탑은 수반에 놓은 지줏대처럼 동악산을 지키고 있다

8월 한여름 처럼 뜨겁게 내리는 태양이 온몸을 적시게 만들었다

올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하지만 더워도 시간날이면 산행은 멈출수 없다.


수석같은 암봉

마치 바윗돌로 장식 해놓은듯한 암봉이 동악산 능선을 장식해 놓았다

곡성군은 동악산을

등산로 시작 지점인 도림사 오토캠핑장 주변 숲에 에코어드벤쳐시설을 설치하여

곡성을 찾는 가족단위 관광객에게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모험정신과 패미리쉽을 키울 수 있도록 하면서도 안전장구 착용 없이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풋 브릿지 시설을 함께 설치하여

등산객과 관광객 모두에게 숲속에서 모험 할 수 있는 특별한 재미를 선물하여

다시 찾고 싶은 곡성을 만들 게획이라고 전한다.



배넘어재 능선을 걸어면서

한여름 같으면 매미소리 들려올듯한 시골길 같다

동악산의 비경은 어느 산과의 경치와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유서 깊은 곳으로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한다.
따라서 곡성군은 동악산의 불안요소와 특색을 갖추기 위해 등산로를 2011년에 정비 게획을 세워

지금의 등산로를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동악산만의 스토리텔링과 특색이 있는 등산로 정비, 자연 친화적인 안전한 시설물 설치,

등산객의 편의를 위한 시설은 물론, 등산객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였고

동악산 철계단 정비 35m, 목재데크 계단설치 64m, 목계단.횡단개거 설치 8개소

도복목 정리 12km 3.3ha 등을 2011년 9월에 완료 했다고 한다.


배넘어재

재는 큰고개를 뜻 하는데 배넘어재는 배가넘어 다녔을까 하는 생각에

곡성에 관한 문헌을 인터넷에 찾아도 배넘어재란 유래를 찾아 볼수가 없었다

그래서 곡성군 홍보관에 전화를 해서 알아본바

옛날 오래전에 배가 넘어들었다 하여 배넘어재라는  답변을 들었다.


제1교

동악산 산행 배넘어제를 돌아 다시 원점인 제1교 철재 다리로 왔다

동악산은 산이 춤을 추듯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계곡이 빼어나

여름철 피서하기에 아주좋은 휴양지와도 같았다

청류게곡라고 불리는 도림사계곡은 정말 신선이 노릴 정도로

시원한 물이 흘러 내리고 군데군데 선인들의 흔적이 많은 곳이다.


8곡 해동무이(海東武夷)

청류계곡 암반에 새겨진 선조들의 풍류의 글이다

도림사계곡엔 이렇게 반석이나 돌위에 새겨 놓았다

이 문장을 곡성군에서 해석하여 관광객들이나 학생들이

무슨뜻인지 알수 있게 해석문(解釋文) 있으면 좋겠다.


8곡 해동무이(海東武夷)

안내글을 보면 서체는 해서체이며

주자(朱子)무이구곡(武夷九曲)을 조선(海東)식 버전으로 뜬 듯하다.

주자는 중국 남송(1127-1279)의 유학자주희의 존칭이다

조선 성리학의 근본 도량이며 하늘의 뜻을 보살피고 땅의 일을 헤아리는

주역의 교본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해동무이는 곡성 동악산 청류동 구곡을 주희가 살았던 중국 무이산의 무이계곡을

비유한 말이다.

무이구곡은 중국 복건성 뭉;산시의 무이산에 있는 구곡으로

무인산 36봉우리와 37암석 사이 계류가 흐르면서 아홉굽이의 절경을 이룬 곳이다.


도림사계곡(林寺溪谷)

산행후 더운날씨인데 도림사 청수에  다이빙 하고 싶을 정도다

도림사계곡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101호. 노령산맥의 한 줄기가 동악산(動樂山) 줄기를 이루고

이 동악산의 줄기 아래에 성출봉(聖出峰)이 있는데 이곳 도림사 앞의 계곡을 말한다.

이 절은 국보와 보물은 없으나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계곡이 유명하며 계곡이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흔히 ‘도림사 골짝’으로 불린다.

절의 입구에서 송림숲 지대를 따라 약 1.5㎞쯤 올라가면 도림계곡·동악계곡·성출계곡 등이 있는데

여기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열 서넛 구비의 반석계곡이 나타난다.

맨 위 제1반석에서 시작하여 제9반석까지 이름이 붙여져 있고 그 길이가 1㎞에 이른다.

널찍하고 펀펀한 반석 위를 맑은 물줄기가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듯이 흐르고 있어

일찍부터 ‘수석의 경이 삼남에서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반석이 큰 것은 폭이 20m에서 30m쯤이고 길이가 100m에 이른다.

이러한 널찍한 반석은 맑은 물줄기가 천년 세월을 두고 흐르면서 바닥을 반질반질하게 만들었다.

구비 구비 펼쳐진 반석 위에 쉴 새 없이 흐르는 맑은 물과

그 아래의 소(沼)는 관광객으로 하여금 신비한 운치를 맛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신선바위는 높이 4m에 넓이가 30평에 달하고 이 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좋아

신선이 지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름에는 피서객과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또한, 수목이 울창하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시인과 묵객들이 지나간 흔적을

반석과 바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절의 이름처럼 도인(道人)이 숲을 이루듯 몰려들었는지는 모르나

도선국사·사명당·서산대사 등의 고승들이 한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도림사 (道林寺)오도문

도림사(道林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이다.

660년(태종무열왕 7)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는데

그 당시 풍악의 음률이 온 산을 진동하였다 하여 동악산이라 하고

도인(道人)이 숲같이 모여들었다 하여 도림사라 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582년경 신덕왕후(神德王后)가 절을 창건하고 신덕사(神德寺)라 하였는데

660년 원효가 사불산화엄사(四佛山華嚴寺)로부터 옮겨와서 도림사로 개칭하였다고도 한다.

그 뒤 876년(헌강왕 2) 국사 도선(道詵)이 중건하고 지환(知還)이 중창하였으며

조선 말기 처익(處翼, 1813∼1888)이 산내암자인 길상암(吉祥庵)을 창건하였다고

『동사열전(東師列傳)』에 보이는데, 당대의 유명한 목수장(木手匠)이자 승려인

영해(影海)도 도림사에서 주석하였다. 길상암은 현재 옛터 위에 토굴만 남아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중심건물인 보광전(普光殿)을 비롯

나한전(羅漢殿)·명부전(冥府殿)·약사전(藥師殿)·응진당(應眞堂)·궁현당(窮玄堂)·칠성각·요사채 등이 있다.

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지붕으로 겹처마에 단청이 있고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기와집이며,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집이다.

문화재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9호로 지정된 도림사괘불이 있는데

1730년(영조 6)에 제작된 것으로 크기는 세로 300㎝, 가로 278㎝이다.

절 앞 약 500m 지점에 5기의 부도(浮屠)가 남아 있고, 절 앞 계곡에는 반석이 좋아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림사 경내

보광전과 보광전 좌측 명부전 마당 좌측 설선당

도림사 보관정에는 목조아미타삼존불상 본존불로 하고 있으며 전남 유형문화재 제271호 이다.

谷城道林寺普光殿木造阿彌陀三尊佛像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1호. 불상 높이는 아미타불 126㎝, 관음보살 116㎝

대세지보살 116.5㎝.조각승 운혜(雲惠, 雲慧), 경림(敬琳, 瓊琳) 등이

1665년(현종6) 5월에 아미타불상을, 1680년(숙종 6)에 관음과 대세지보살상을 제작하였다.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본존을 만들고 후에 협시를 만든 것인지

아니면 본존과 같이 만든 협시보살에 문제가 발생하여 다시 만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1665년에 제작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 126㎝인 중대형 불상이다.

불상은 육계와 나발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원통형의 정상계주와 넓은 반달모양의 중앙계주를 표현하였다.

상체를 앞으로 내밀어 자세가 구부정하고, 얼굴과 신체의 비율은 대략 1:3.2이다.

계란형의 얼굴에 이목구비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을 따르지만

턱이 약간 뾰족하고 다른 조각승이 만든 불상에 비해 인중이 넓고 선명하며, 목의 삼도는 거의 수평으로 처리하였다.

바깥에 걸친 두꺼운 대의의 옷자락은 오른쪽 어깨에서 가슴까지 내려와 두 겹 접힌 후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반대쪽 대의자락은 세 겹으로 접혀 옷주름이

수직으로 내려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펼쳐져 있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는 중앙에 두께가 일정한 주름을 중심으로 출렁이듯 펼쳐져 있고

반대쪽 주름은 한 가닥 넓게 펼쳐져 있다.

특히 하반신의 대의 처리에서 가장 큰 특징은 복부에서 가운데로 흘러내린

주름의 끝이 부메랑같이 표현된 것이다.

대의 안쪽에 가슴을 덮은 승각기는 넓게 대각선으로 접혀 있다.

따로 제작한 오른손은 어깨 높이까지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 수인을 취하고 있다.




칠성각 그리고 응진당

谷城道林寺普光殿木造阿彌陀三尊佛像

1680년에 제작된 목조관음·대세지보살상은 얼굴과 신체 표현 등에서

1665년에 만든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유사하다. 보관은 얼굴에 비하여 크고 화려하며

승각기의 상단 주름은 뾰족한 원통형으로 표현되었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은 결가부좌한 다리 사이에 깊이감 있게 펼쳐지고

배에서 앞으로 늘어진 두 번째 자락의 끝부분이 T자형으로 접혀 있다.

각각의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백지묵서(白紙墨書)의 조성발원문에는

1665년에 雲慧아미타불을 운혜(雲慧), 瓊琳경림(瓊琳), 處瓊,처경(處瓊), 妙瓊묘경(妙瓊)

處機처기(處機)가, 1680년에 雲惠협시보살을 운혜(雲惠), 敬琳경림(敬琳), 탄욱(坦勗)

道敏도민(道敏), 三眼삼안(三眼), 楚明초명(楚明), 성일(性日)이 제작한 것으로 적혀 있다.

수화승으로 참여한 운혜는 17세기 중반에 활동한 조각승이다.

그는 영철(靈哲)의 보조화승으로 참여하였는데 영철은 수연(守衍)의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이다.

충청남도 공주 마곡사에 거주한 조각승 운혜가 수화승으로 만든 불상은

전라남도 해남 서동사 목조삼세불좌상(1650년)

전라남도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불좌상(제주 월계사 봉안, 1661년)

전라남도 곡성 도림사 목조아미타불좌상(1665년), 전라남도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1667년), 전라남도 순천 동화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1672년)

전라남도 고흥 능가사 불상(1675년), 곡성 도림사 목조관음·대세지보살좌상(1680년) 등이다.

운혜가 만든 불상은 전반적으로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 신체 비율, 착의법 등이 세부적으로 차이가 난다.



범종각과 궁현당

도림사 괘불탱(道林寺 掛佛幀)은

도림사에 있는 괘불 탱화이다. 보물 1341호이다.

주존이 좌상이며 협시는 입상인 특이한 형태로 후불벽화(탱화)의 한 잔영으로 보인다.

평소에는 괘불함에 넣어 두어 대웅전 불상 뒤편에 봉안해 두었다가

사찰에 행사가 있을 때 꺼내어 신도들 앞에 내놓기 때문에 쉽게 접할 기회가 적다.

이 삼존불정화(三尊佛幀畵)는 17세기 후반기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본존불은 결고부좌를 한 좌상인데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짓고 있는

전형적인 석가여래좌상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머리는 뾰족한 보주형의 정상발주가 있고 나발은 극도로 형식화되었고

얼굴은 둥근 원망상으로 긴 눈썹에 눈은 작은 편이다.

좌우대칭으로 서 있는 두 보살은 거의 비슷한 형태인데

왼쪽 보살은 보관에 화불이 묘사된 것으로 오른쪽 향좌가 다르다.

이 괘불정화는 전체적으로 청•홍•녹, 그리고 연분홍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바

이는 아직까지 조선 전기의 조화된 색감을 엿볼 수 있으며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는 화기(畵記)가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단심대(丹心臺)

단심대 안내글을 보면 서체는 해서체로서

간재선생문집 후편 권18의 단심대 시

단심대는 조산 말기의 학자이며 애국지사의 간재 전우 선생이 나라 잃은

설움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단심은 단심벽혈에서 나온말로 붉은 마음

곧 충성스런 마음을 의미하며 벽혈은 피가 푸른 옥으로 변한 것으로

곧 충성스런 마음이나 고귀한 선혈을 말한다

그르므로 단심벽혈은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을 칭송하는 말이다.


단심대에서 산행 피로를 씻다

동악산 남쪽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동악계곡과 성출계곡이 하나가 되어

아홉 구비마다 펼쳐진 반석 위로 맑은 물줄기가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듯이 흐르는 곳에

두발 담그고 산행지친 피로와 속세의 찌든 마음도 씻어본다

도림사 계곡의 9개의 반석에는 선현들의 문구가 음각되어 있어

선조들의의 풍류를 상상해보면서 산행을 마무리 한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곡성군등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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