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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영광 불갑사(全南 靈光 佛甲寺),마라난타의 백제불교 전래지 불갑사를 걷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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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영광 불갑사(全南 靈光 佛甲寺),마라난타의 백제불교 전래지 불갑사를 걷다

바다늑대FORCE 2018. 9. 20. 15:38


전남영광 불갑사(全南 靈光 佛甲寺)

 마라난타의 백제불교 전래지 불갑사를 걷다

 

불갑사[佛甲寺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불갑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

061-352-5097

♣ 사찰기행일 : 2018.09.18. 화요일 날씨:맑음


♣ 불갑사 개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의 말사이다.

1741년(영조 17)이만석(李萬錫)이 쓴 사적비에 의하면 창건연대는 미상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설에는 384년(침류왕 1)에 행사존자(行士尊者)가 창건하였다고 하였는데

행사존자는 마라난타(摩羅難陀)의 다른 이름이다.

이 설을 따르면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뒤 최초로 세운 절이 되는데

마라난타가 불갑사 부근의 법성포(法聖浦)를 통하여 들어왔으므로 다소 신빙성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문주왕 때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이 절이 크게 번창한 것은 고려의 진각국사(眞覺國師)가 머무르면서부터이다.

당시 이 절에는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렀고, 사전(寺田)이 10리에 미쳤다고 한다.

그 뒤 많은 중수를 거쳐 오다가 정유재란 때 전소된 뒤 법릉(法稜)이 중창하였고

1623년(인조 1) 대웅전의 본존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1634년해릉(海稜)이 중창하였는데, 창건 당시의 규모에 비하여 많이 줄어들었다.

1644년조암(照巖)이 중수하였고, 1654년(효종 5)과 1675년(숙종 1)에도 중수가 있었다.

1680년채은(采隱)이 대대적으로 중건하였고, 1702년·1705년·1706년에도 팔상전과 탱화·나한상에 대한 중수가 있었다.

1802년(순조 2)득성(得性)이 중창한 이후 1869년(고종 6)설두(雪竇)가

1876년설파(雪坡)가, 1879년동성(東城)이 각각 중건하였다.

1904년에는 금화(錦華)가 만세루를 중수하고 1909년에 대웅전을 수리하였다.

그리고 이 무렵 영광읍에 불갑사포교당인 원각사(圓覺寺)를 세웠다.

1937년만암(曼庵)이 명부전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고, 1938년에는 설제(雪醍)가 개수하였다.

 1974년 범종루와 범종이 조성되었고, 1976년지종(知宗)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팔상전(八相殿)·칠성각·일광당(一光堂)·명부전(冥府殿)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로 지정된 만세루(萬歲樓)·향로전(香爐殿)·산신각·범종각·세심정(洗心亭)

천왕문(天王門) 등 15동의 건물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보물 제83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다른 사찰과는 달리 중앙에 석가모니불, 왼쪽에 약사여래불

오른쪽에 아미타불을 모셔 특이한 불상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웅전 용마루 귀면(鬼面) 위에는 작은 석탑과 보리수를 새긴 삼존불대(三尊佛臺)가 있는데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상이다.

이 밖에도 1359년에 세운 진각국사비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된

사천왕상과 전일암(餞日庵)·해불암(海佛庵)·수도암(修道庵)·불영암(佛影庵) 등의 부속 암자가 있다.

또한 진각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700여 년의 참식나무가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나의 사찰기행 가는길


진주ic삼거리 →→→남해고속도로 순천JC→→→호남고속도로→→→고창담양고속도로 북광주TG

 →→→월출지하차도→→→불갑사 주차장

198km 승용차 3시간 소요(광주 시내도로 차량정체)



→→→→→사찰기행시작

산에 오르면 사찰이 있고

사찰에 가면 산이 있다

오늘도 전남 영광에 잇는 불갑사를 품고있는 불갑산 산행을 마치고

백제의 불교 전래지인 불갑사를 찾았다.


불갑사 일주문(佛甲寺 一柱門)

지금 불갑사 주변에는 상사화 축제로 여행자 및 산행자로 가득하다

불갑사는

불갑산(516m) 기슭에 자리 잡은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384년)때

인도스님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면서 제일 처음 지은

불법도량이라는 점을 반영하여 절 이름을 부처불, 첫째갑, 불갑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영광의 '법성포' 라는 지명도 성인이 법을 가지고 들어 온 포구였다고 해서

 '아무포'에서 '부용포' 라는 이름에서 바뀌었다 한다.

자연스러운 돌계단을 올라 처음 마주하게 되는 천왕문 안에는 목조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이는 도선국사가 창건한 전북 흥덕 연기사에 있던 조선 중기때 작품인데

고종 7년에 설두선사가 불갑사를 중수하면서 폐사된 연기사에서 옮겨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불갑사 일주문(佛甲寺 一柱門)

편액은 세로로 불갑사(佛甲寺)로고 되어 있다.

일주문은

절에 들어가는 어귀에 우뚝 서 있는 문으로, 기둥을 양쪽에 하나씩만 세워서 지어진 것이 다른 건물과 다르다.

이 문을 경계로 하여 문 밖을 속계(俗界)라 한다.

문 안은 진계(眞界)인 것이며 이 문을 들어 설 때 오직 일심(一心)에 귀의한다는

결심을 갖도록 마음을 촉진시키는 데 그 뜻이 있다.

현상 면에서 나타난 것은 삼라만상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하나가 아닌 것 같지만

실상인 본질 면에서 보면 그 모든 것이 둘이 아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반야(般若)와 번뇌(煩惱)가 둘이 아니다.

재가와 출가가 둘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도 둘이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다.

누구든지 이 일주문에 들어오면 이 진리를 깨닫고

잃었던 본 바탕을 되찾으라는 뜻으로 일주문이 새워진 것이다.


↗ 탑원

간다라 지역 사원 유구 가운데 가장 잘 남아있는 탁트히바히 사원의 주탑원을 본따 조성한 것이며

백제에 불교를 전파한 마라난타의 출생지인 간다라 사원 양식의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모습이고

작은 공간들은 가운데 중앙탑을 바라보며 승려가 수행하던 작은 굴이라고 한다.

↗ 탑원 감실형 불당

간다라는

고대 인도 문화와 지중해 문화의 교류가 있던 유서깊은 곳이다.

BC 6~5세기에는 아케메네스 왕조에 속해 있었으며 BC 4세기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점령하기도 했다.

그후 계속 마우리아 왕조, 그리스계 인도인, 샤카인, 파르티아인들에게 지배를 받았다.

주요도시인 탁실라와 페샤와르는 문화의 중심지로 큰몫을 했다.

BC 1세기부터 AD 6~7세기까지 독특한 불교예술이 꽃피었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  불갑사 상사화  군락지

 꽃무릇이 불갑사와 불간산 전역이 피어 있다

석산(石蒜)은 서해안과 남부 지방의 사찰 근처에 주로 분포하고

가정에서도 흔히 가꾸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사찰 근처에 많이 심은 이유는 이 식물에서 추출한 녹말로 불경을 제본하고

탱화를 만들 때도 사용하며, 고승들의 진영을 붙일 때도 썼기 때문이다.


↗  불갑사 해탈교량의 해태상(해치獬豸)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 가운데에 뿔이 있다고 한다. 한자어로는 해치(獬豸)라고 한다.

중국 문헌인 『이물지(異物志)』에는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이며, 한 개의 뿔을 가지고 있는데,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고

사람이 다투는 것을 들었을 때는 옳지 않은 사람을 받는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와 같이 정의를 지키는 동물로 믿어져서

법을 심판하는 사람은 해치관이라 하여 해태가 새겨진 관모를 쓰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사헌의 흉배에 가식(加飾)되기도 하였다.

흉배에 새겨진 해태의 모습을 보면, 녹각과 같은 뿔이 달린 머리에 갈기가 돋았고

크게 벌린 입, 포효하는 듯한 경쾌한 몸집, 그리고 꼬리 끝에 긴 털이 돋아 있다.

또,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 간주되어 궁궐 등의 건축물에 장식되기도 하였다.

광화문 앞에 놓여져 있고, 경복궁 근정전의 처마마루에도 놓여져 있는데

이 것은 전각 안에서 정사를 돌보는 임금의 공평무사(公平無私)를 비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  불갑사 금강문(金剛門)

사찰건축에서 일주문 안쪽에 세운 문의 하나이며

사찰에 따라 천왕문을 세우기도 하며

어느 경우에는 금강문과 천왕문이 함께 세워지기도 하는데 이때에는 금강문이 천왕문 밖에 세워진다.

금강문은 보통 앞면 3칸, 옆면 1칸의 직4각형 평면을 이룬 단층집으로 건축된다.

중앙문은 앞뒤 모두 아무런 창호를 달지 않고 개방하며, 양 옆칸은 모두 벽체를 친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나 팔작지붕으로 꾸미고, 공포는 익공식이나 다포식을 사용했다.

안에는 중앙문만 사람이 통행할 수 있게 하고, 양 옆칸에는 중앙 쪽으로 홍살을 세워 격리시키고

그 안에 금강역사상을 세웠다. 이 문을 통과함으로써 사찰 안에 들어오는

모든 악귀가 제거되어 가람의 내부는 청정도량이 된다는 것이다.


↗  불갑사  천왕문(天王門)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불갑사에 있는 사천왕상이있는 천왕문이다.

봉황문이라고도 하며 본래 맑고 깨끗해야 할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문이다.

동쪽의 持國天王(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깨서 삼보(三寶)를 지키시는 문이다.

나쁜 것을 깨 버리고 올바른 길을 펼치려는 마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데 그 뜻이 있다.

지국천왕은 비파(琵琶)를 들고 증장천왕은 보검(寶劒)을 잡았으며

광목천왕은 용관, 여의주(如意珠), 또는 견색(絹索; 새끼줄)을

다문천왕은 보탑(寶塔)을 받쳐든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대체로 이들 사천왕은 왼쪽에 동.남천왕, 오른쪽에 서.북천왕이 배치된다.

이 사천왕들은 불교경전에 나타나는 인도 재래의 神(신)인데, 불교의 수호신이 되어서 사방을 지키게 된 것이다.

일정한 모습이 처음부터 규정된 것이 아니어서 인도에서는 귀족의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중앙 아시아나 중국, 우리 나라로 전파되는 동안 무인상(無人像)으로 변형되었다.


↗  불갑사  사천왕상(남장증장천왕)

이 사천왕상은 진흥왕 1년(540)부터 35년(574)까지 연기조사 만든 것으로

조선 고종 7년(1870)에 설두대사가 나무배 4척을 동원하여 현재의 곳으로 옮겨왔다고 전한다.
사천왕문 좌우편에 각각 2구씩 4구가 배치되어 있는 사천왕상은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동쪽은 지국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서쪽는 광목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이라 부른다.
지국천왕은 손에 4줄로 된 비파를 들고 있고, 증장천왕은 큰 칼을 가지고 있다.

광목천왕은 용과 구슬을 들고 있으며, 다문천왕은 창과 장식이된 탑을 들고 있다.

들고 있는 물건이 다를 뿐 이들 사천왕상은 표정이나 기법이 모두 비슷하다.
사천왕상은 고대 인도의 신(神)이었으나 불교가 생겨나면서 불교에 흡수된 신으로 전해지고 있다.


↗  불갑사  대웅전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설과

무왕 때 행은 스님이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석가모니 불상을 모셔 놓은 법당인 대웅전은 18세기 이전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기와 가운데 ‘건륭 29년(乾隆二十九年)’이라고 쓴 것이 발견되어 조선 영조 40년(1764)에 고친 것으로 짐작한다.

그 뒤 융희 3년(1909)에 수리하였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지붕 위부분에서 작은 석탑과 보리수를 조각한 장식을 볼 수 있으며

 가운데 칸 좌우의 기둥 위에는 용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또한 가운데 칸에 달린 문은 연꽃과 국화 모양으로 꾸며 뛰어난 창살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한다.

건물 안쪽의 모서리 공포 부분에도 용머리를 장식하고 있고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다.
화려한 무늬와 조각을 새긴 조선 후기 목조 불전 건축으로

시대적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영광 불갑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靈光 佛甲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불갑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삼세불좌상으로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하여 왼쪽에는 약사불이 배치되고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주존불로서 삼불 가운데 가장 크고 건장한 신체에 무릎이 넓어 안정되어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머리에는 정상계주와 중앙계주를 큼직하게 묘사하였으며

네모꼴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엿보인다.

두 귀는 길어서 어깨까지 늘어졌고, 약간 굵어진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형식으로 오른팔을 드러냈으며

옷주름은 두 다리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데, 양손 모두 마치 실제 인물의 손처럼 표현하여 사실성이 돋보인다.
약사불과 아미타불 또한 불명확한 육계, 팽창된 얼굴, 분명한 이목구비, 부피감 있고 편안한 자세

사실적으로 표현된 양 손,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주름 등의

세부 표현에서 본존인 석가모니불과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다만, 석가모니불에 비하여 크기가 다소 작아지고 양어깨를 모두 덮은 옷에 오른팔을 드러내지 않고

아미타인(阿彌陀印)의 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불상 조성기에 의하여 1635년 무염(無染)스님을 비롯한 승일·도우·성수 등

10인의 화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무염비구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초기의 것으로

전라도·충청도·강원도지역을 거쳐 폭 넓게 활약하던 무염일파의 작품과

경향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 설선당(堂)

설선당[]은 승려와 신도들이 수도 정진하는 곳으로   대학 같으면 강의실과 같은 곳이다.

불갑사 설선당은 대웅전 아래 도량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설선당 우측 우너형 문에는 일반인 출입금지라고 되어있었다

그래서 출입할수가 어없어 내부 구경은 못하였다.


↗ 일광당(一光堂)

↗ 조사전 칠성각 향원정

불갑사 경내에 들서면

먼저 일주문 주위의 난대 상록수림이 눈에 띄는데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천연림을 형성하고 있다.

불갑사의 여러 문화 재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불갑사 대웅전(보물 제830호)으로 단청을 칠하지 않아서 더욱 고풍스러워 보인다.

특히 대웅전 처마 조각과 연꽃 문양을 세련되게 조각해 끼워맞춘 대웅전의 문살 등은

옛 선인들의 정성어린 손길을 엿보게 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과 측면 모두

가운데 칸의 세짝문을 연화문과 국화문, 보상화문으로 장식했고 좌.우칸에는

소슬빗살 무늬로 처리하여 분위기가 매우 화사하다.


↗ 명부전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며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주불(主佛)로 봉안하고 있으므로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법당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脇侍)로 봉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며, 시왕상 앞에는 시봉을 드는 동자상 10구를 안치한다.

이 밖에도 판관(判官) 2구, 녹사(錄事) 2구, 문 입구에 장군(將軍) 2구 등

모두 29개의 존상(尊像)을 갖추게 된다.

이들 중 주존불인 지장보살은 불교의 구원의 이상을 상징하는 자비로운 보살로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대원을 세웠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六道)의 중생을 낱낱이 교화시켜 성불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명부전은 조상의 천도를 위한 근본 도량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또 시왕은 지옥에서 죽은 자가 지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10명의 왕이며

일반적으로 대표적인 지옥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염라대왕도 이 10명의 지옥왕 가운데 다섯번째 왕이다.


↗ 만세루

불갑사는

불갑산(516m) 기슭에 자리 잡은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384년)때 인도스님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면서 제일 처음 지은 불법도량이라는 점을 반영하여

절 이름을 부처불, 첫째갑, 불갑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영광의 '법성포' 라는 지명도 성인이 법을 가지고 들어 온 포구였다고 해서

'아무포'에서 '부용포' 라는 이름에서 바뀌었다 한다.

자연스러운 돌계단을 올라 처음 마주하게 되는 천왕문 안에는 목조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이는 도선국사가 창건한 전북 흥덕 연기사에 있던 조선 중기때 작품인데

고종 7년에 설두선사가 불갑사를 중수하면서 폐사된 연기사에서 옮겨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 문수전

문수보살을 모신 전각으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이 보살에 대한 신앙이 삼국시대 이래 널리 전승되었다.

문수는 문수사리(文殊師利) 또는 문수시리(文殊尸利)의 준말로

 범어 원어는 만주슈리(Manjushri)이다.
‘만주’는 달다[甘], 묘하다, 훌륭하다는 뜻이고, ‘슈리’는 복덕(福德)이 많다,

길상(吉祥)하다는 뜻으로, 합하여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문수보살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서

항상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는 ≪반야경≫을 결집, 편찬한 이로 알려져 있고

또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요 부모라고 표현되어 왔다.

이는 ≪반야경≫이 지혜를 중심으로 취급한 경전이고

 지혜가 부처를 이루는 근본이 되는 데서 유래된 표현이다.

일설에는 이 문수보살이 석가의 교화(敎化)를 돕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몸을 바꾸어 보살의 지위에 머물고 있으나

오랜 옛적에 이미 성불하여 용존상불(龍尊上佛)·대신불(大身佛)

신선불(神仙佛)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또 미래에 성불하여 보견여래(普見如來)로 불릴 것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일설에는, 현재 북방의 상희세계(常喜世界)에 있는 환회장마니보적불이 곧 문수보살로

 이 부처님의 이름을 들으면 사중죄(四重罪)가 없어진다고 하였다.


범종각

불전사물 가운데 범종만을 봉안하는 경우에는 범종각이라고 한다.

이곳에 비치되는 사물은 모두 부처님에게 예배드릴 때 사용되는 불구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새벽예불과 사시공양(巳時供養), 저녁예불 때에 사용된다.

이들은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범종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홍고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규모가 큰 사찰에서는 이 사물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규모가 작은 사찰이라도 범종만은 반드시 비치하게 된다.

이 당우는 산문(山門)을 들어서서 좌측 편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이다.


영광 불갑사 동종은 주종기에 따르면 ‘獅子山 鳳林寺 大鍾’으로 1702년

(康熙四十一年壬午, 조선 숙종 28년)에 “金尙立子三 金水元 金成元 片手金成奉”에 의해 조성되었음 기록하였다.

불갑사의 동종은 주종기가 남아있어 제작연대와 제작 장인, 봉안처, 시주자가 확인되는 18세기 초의 종이다.

조선후기 동종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종장들의 내력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주종연구에 중요한 작품이다.


↗ 무량수전無量壽殿

불교에서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건물로서

극락보전ㆍ극락전ㆍ무량전ㆍ보광명전(普光明殿)ㆍ아미타전 등이라고도 한다.

아미타불의 서방 극락정토를 축소시켜 묘사한 곳으로, 아미타전(阿彌陀殿)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한다.

극락이 서쪽에 있으므로 극락전(極樂殿)은 주로 동쪽을 향하고 있어 예배하는 이들은 서쪽을 향하게 된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고,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신다.

아미타불의 인계에는 9품(品)이 있다.

이는 극락에 태어나는 자들의 수준에 따라 상품(上品) · 중품(中品) · 하품(下品)으로 나누고

다시 각각 상생(上生) · 중생(中生) · 하생(下生)으로 나눈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하품의 자세를 하고 있다.

즉, 오른손을 가슴 앞까지 들어서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왼손을 무릎 근처에 놓은 모양이다.

그러나 석가모니불의 인계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이 그 예이다.

후불탱화로 극락의 법회를 묘사한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나

극락구품탱화(極樂九品幀畵)를 걸어 극락의 정경을 보여준다.


↗ 5층석탑

절 안에는 만세루, 명부전, 일광당, 팔상전, 칠성각, 향로전 그리고 요사채가 있으며

절 밖의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된 참식나무가 있다.

참식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수로 10월이나 11월에 암꽃과 수꽃이 각각 딴 그루에서 피며

다음해 10월쯤에 열매가 붉게 익어 꽃과 열매를 함께 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불갑산은 단풍도 화려하다. 불갑사 앞의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올라간 곳에

자리한 불갑사 저수지 앞에서 골짜기와 산비탈을 오색으로 물들인 단풍을 바라보는 것은

가을철 불갑사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다.

저수지 위쪽의 평탄한 오솔길을 따라 이어지는 동백골의 단풍도 감상할 만하다.

정읍 내장산이나 담양 추월산의 단풍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하고 운치있는 길로 사색을 겸한 산책코스로 제격이다.

체력과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동백골을 지나 구수재 또는

해불암을 거쳐 불갑 산 정상인 연실봉(해발 516m)에 올라보는 것도 권할만하다.


↗ 불갑사 가람풍경


산에가면 사찰이 있고 사찰에 가면 산이 있듯이

전남영광 불갑사(全南 靈光 佛甲寺),마라난타의 백제불교 전래지 불갑사를 걸어보면서

이렇게 오늘도 불갑산 불갑사 사찰기행을 마무리 해본다...!


인용글 : 자료 인터넷사전 및 전라남도 영광군 홈페이지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사전 ,전통사찰관광정보 홈페이지 자료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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