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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 자양산(慶南 咸安 紫陽山), 함안의 북쪽 조망처인 자양산 정상에 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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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 자양산(慶南 咸安 紫陽山), 함안의 북쪽 조망처인 자양산 정상에 서다

바다늑대FORCE 2018. 9. 23. 21:45


경남 함안 자양산(慶南 咸安 紫陽山)

    함안의 북쪽 조망처인 자양산 정상에 서다

▲함안 자양산[咸安 紫陽山] 

    높이 : 402m

    위치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걸쳐 있는

▲산행일  : 2018년09월23일 일요일  날씨:  맑음

▲나의산행코스 : 

  산인면 모곡리 고려동유적지-→→도천마을→임도삼거리→kt중계소 임도→안씨문중묘→kt중계소→자양산 정상

산인모곡리 대천마을 방향 임도

약6.8km 2시간40분 소요

▲ 산행지개요:

경상남도 함안군의 산인면과 칠원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고도 : 402m)

산인면에 더 많이 속해 있고, 산 정상에 오르면 함안군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지명을 처음으로 기재하고 있는 것은 『한국지명총람』(함안)인데

이칭으로 '자구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지도와 지리지에서는 '자양산'이라는 지명은 확인되지 않는다.

여지도서』 함안에 "자구산()은 군의 동북쪽 15리에 포덕산에 이어 있다."라고수록하고 있고

『함주지』에서도 지명을 수록하고 있으며, "자구산이 마을의 주산"이라고 추기하고 있다.

『해동지도』 이후부터 『1872년지방지도』에 이르기까지 지명을 기재하고 있다.

 '자구산'이 '자양산'이라고 지명이 바뀐 것은 1872년 이후의 어느 때인 것으로 보인다.

지도에서 안인면에 자구산 지명을 기재하고 있다.

서쪽 능선 끝에 송정서원을 수록하고 있고, 앞의 하천에는 냉정교 지명도 표시하고 있다


▲ 함안 자양산 등산지도


▲찾아가는길

 진주ic삼거리 →→→남해고속도로 함안TG→→→함안가야읍내도로→→→산인면

 →→→산인면 모곡리 고려동유적지 주차장

42km 승용차 40분 소요





→→→→→2018년 9월23일 일요일

 우리나라 구석구석  그리고 산을 찾아 길을 나섰다

내일이면 추석이며 추석연휴가 시작된 날이다

오늘은 산인에 있는 자양산에 가보기로 하였다

자양산 아래 칠보정사란 작은 암자에서 얼마기간 동안 공부한적도 있어

자양산에 운동삼아 자주 올랐던 곳이다

그당시에는 표지석이나 등산 안내표지목도 없던 30년전의 일이다

오늘은 정반대 코스로 오르기로 하고 고려동 유적지로 갔다.


↗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 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이다.

이오는 끝까지 고려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해 은거지 주변에 담을 쌓아 밖은 조선의 영토라 할지라도

 안은 고려 유민의 거주임을 명시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표비를 세웠다.

여기서 ‘담안’ 또는 ‘장내’라는 마을이름이 유래되었다.

이오는 세상을 뜰 때까지 조선에 벼슬하지 않았다.

아들에게도 신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신의 신주를 이 곳을 떠나 딴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또한 담 안에 주거를 만들고 우물을 파 전답을 개간하여 자급자족할 수 있는 후손들의 터를 만들었다.

선생의 유언을 받든 종손들은 19대 600년에 이르는 동안 이 곳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왔다. 현재 이 마을에는 30호의 후손들이

재령이씨(載寧李氏) 단성의 동족마을로 그 순수성을 지켜가고 있다.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표비(高麗洞壑表碑), 고려동(考慮洞)담장, 고려종택(高麗宗宅)

자미단(紫微壇), 고려전(高麗田) 30,000여 평, 자미정(紫微亭), 율간정(栗澗亭), 보정(鰒井) 등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물들이 6.25동란 때 소실되어 이후 재건된 것이다.


↗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

경상남도 기념물 제56호이며 이 곳은 고려 말 성균관(成均館) 진사(進士) 이오(李五)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유민으로 절의를 지키기로 결심하고

백일홍이 만발한 이 곳을 택해 거처를 정한 뒤 그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이다.

고려가 망하자 선생은 여러 현인들과 송도의 두문동에서 망복수의(罔僕守義)의 결의를 표명하고

남쪽으로 내려와 거처를 찾던 중, 산간벽지에 띠만이 우거진 숲 속에서

백일홍이 만발한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마을의 터전을 일궜다.

그 자리는 오늘날 자미단(紫微壇)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오는 끝까지 고려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해 은거지 주변에 담을 쌓아

밖은 조선의 영토라 할지라도 안은 고려 유민의 거주임을 명시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표비를 세웠다.

여기서 ‘담안’ 또는 ‘장내’라는 마을이름이 유래되었다.


↗ 순흥안씨직장공파자손묘원(順興安氏直長公派子孫墓園)

자양산 산행은 임도를 겸하고 있다

도천마을에서 올라와 임도 삼거리에서 kt중계소 임도를 다라가다보면

순흥안씨직장공파자손묘원(順興安氏直長公派子孫墓園)있다.

나 역시 순흥안씨직장공파(順興安氏直長公派)라 한 조상핏줄이라 궁금하였다.


※순흥안씨 직장공파(直長公派)는

판서공(諱 從約 9세)의 三子이신 수(諱 琇 10세)公을 파조(派祖)로 모시는 판서공파의 한 갈래이다.

동방의 대현(大賢)이신 문성공(文成公 諱 珦) 선조의 6대손으로

일찍이 직장(直長 從七品) 벼슬을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셨기에 직장공파(直長公派)라 이름 한다.

판서공과 정부인(貞夫人) 동래정씨(東萊鄭氏) 사이의 셋째아들로

1390년(庚午 공양왕2년)에 서원별서(瑞原別墅 파주농장)에서 탄생하셨고

일찍이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군자감(軍資監)의 직장이 되셨다.

어버이가 모두 돌아가시자 더 이상 벼슬길에 나가기를 구하지 않고 말씀하기를

 “지난 난(亂)에 몸을 굽혀 벼슬하였던 것은 바로 부모님을 영화(榮華)롭게

봉양(奉養)하기 위함이었으나 지금은 무엇 하러 그것을 하겠느냐?

또한 우리 가문은 세업(世業)이 유과(儒科)이고 일세(一世)에 밝게 빛났는데

어찌 ‘서리를 밟으면 단단하게 얼음이 언다.’는 경계(警戒)가 없을소냐?”라고 하시고는

오직 경적(經籍)만을 즐기고 연구하며 거문고와 술잔을 즐거움으로 삼으시다가 수(壽)를 다하셨다.

장지(葬地)는 수원에 있다고 하나, 여러 번 난(亂)을 거치면서 실전(失傳)하고 함안(咸安) 입곡(入谷)에

사단(祀壇)을 모시니, 공(公)의 장자(長子)인 창공(昌恭)의 묘역(墓域)이며

매년 10월 상순(上旬)에 세사(歲祀)를 모신다.

배(配)는 단인(端人) 하음봉씨(河陰奉氏)로 부(父)는 판중추부사(中樞府 判事) 유검(由儉)이고

증조부가 금자광록대부 벽상삼중대광 도첨의정승과 하음부원군으로

봉해지신 문겸공(文謙公 天祐)으로 명문갑족(甲族)의 따님과 혼인, 사이에 아들만 셋이니

곧 창공(昌恭 校尉公) ․ 창렴(昌廉 감찰공) ․ 창직(昌直 부솔공)이다.


↗ 자양산 등산로

추석전이라 산마다 성묘객들이 벌초를 하여 산행로가 깨끗하다

자양산 산행은 산인면 운곡 어연마을에서 오르면 2km정도 산행로로서 가파르고

일상적인 산행자의 산행은 도천마을에서 시작한다.

도천마을은 고려동유적지를 둘러보고 도천마을길 우측에 등산로가 있으며

도천마을 등산로 대밭을 지나면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도천마을에서 자양산 까지는 4.3km이다.


↗ 자양산 등산로

임도 삼거리에서 kt송신탑 방향으로 가면 다시 정상으로 가는 산행로가 있다

여기서 산인 대천마을까지는3.1km이며 외동마을까지는1.7km이다.

임도 주변 가로수는 보리수 나무를 심어 놓아 보리수가 빨갛게 익어 가고 있었다.

자양산이 있는 함안군은

동쪽은 창원시, 서쪽은 의령군·진주시, 남쪽은 고성군, 북쪽은 남강과 낙동강을 경계로

의령군과 창녕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8°16′∼128°35′, 북위 35°09′∼35°23′에 위치한다.

 면적은 416.64㎢이고, 인구는 6만 915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8개 면, 248개 행정리(88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에 있다.


↗ 자양산 등산로

정상까지 100m전

자양산는 페러글라이딩 활공장인데 kt중계소 방향 임도를 활용해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장비를 가지고 100m 산행 해서 활공장에 도착한다

자양산 산행을 하면서 자양산이 페러글라이딩 활공장임을 알았다

보통 하동 형제봉 의령 자굴산 그리고 사천 와룡산이 활공장으로  유명한데

자양산에도 활공장이 있다는걸 오늘이에야 알았다.


↗ 자양산 등산로

정상부분의 식생을 보면 대부분 잡목으로 우거져 있고

칡능쿨이 나무들을 뒤 덮고 있었다.

맑은 날씨 이지만 미세 먼지 탓인지 그렇게 시야가 청명하지는 않았다.


↗ 자양산 등산로

자양산 등산로 부근에는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흙을 뒤진 흔적이 여기저기 있다

근교산을 산행하다 보면 항상 나타나는 멧돼지들의 흔적이다.

멧돼지는

지역에 따라 몸의 크기 차이가 크며, 암수의 형태 차이가 뚜렷하다.

 몸은 굵고 길며 머리는 크고, 목은 짧다. 눈은 작고 귀는 비교적 큰 편이다.

다리는 비교적 짧고, 주둥이는 길고 원통형이다. 콧등에는 2개의 송곳니가 뻗어 나와 있다.

몸은 뻣뻣한 검은 갈색 털로 덮여 있으며, 나이가 들수록 털색이 옅어진다.


↗ 자양산 등산로

자양산 생행 안내 표지목 대천마을3.2km 운곡마을2km

산인면은

농공병진된 지역으로 2차산업이 급성장하고 있으며

동부에는 지난 '91년 산인특별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일반 기업들의 입주로

공업지역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서부에는 수리시설이 용이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비닐하우스 시설을 통하여 각종 원예작물의 집단재배로 농가 소득증대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특히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입곡군립 공원이 있다


↗ 자양산의 억새풀

자양산 정상 부근에는 억새풀이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억새는 갈대와 비슷하여 종종 혼동되곤 하며, 흔히 강가에는 갈대가 자라고

산야에는 억새가 자란다고 한다. 그러나 생김새와 특징을 비교해 보면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갈대는 억새에 비해 꽃의 이삭이 풍성하며, 보랏빛을 띤 갈색 꽃을 피운다.

또한 억새보다는 갈대가 키도 더 큰데, 갈대의 키는 2~3m, 억새는 1~2m이다.

한편 억새 잎은 가운데 잎맥이 하얗고 볼록하게 튀어나와 눈에 잘 띄지만 갈대는 그렇지 않다.

잎의 길이도 억새가 1m 정도로 갈대의 20~50㎝보다

길 뿐만 아니라 잎의 가장자리에 난 톱니 모양의 가시도 억새가 더 날카로워 손을 베이기 쉽다.

뿐만 아니라 열매가 다 익었을 때 줄기의 끝에 나는 이삭의 모양과 색깔도 차이가 있다.

억새의 이삭은 은백색이 돌고 영글었을 때 반쯤 고개를 숙이지만

갈대의 이삭은 갈색이며 벼처럼 고개를 깊게 숙인다.


↗ 자양산의 정상 암봉의 골쇄보

자양산 정상은 암봉으로 되어 있는데 암봉에는 골쇄보가 서식하고 잇었다.

골쇄보(骨碎補)

고란초과의 양치식물인 곡궐(槲蕨)의 뿌리줄기를 말한다.

중국과 한국의 전통의학에서 약재로 사용한다. 골쇄보란 뼈 골(骨), 부술 쇄(碎), 기울 보(補)의 합성어로

‘부서진 뼈를 이어주는’ 효능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곡궐 이외에도 같은 고란초과인 중화곡궐(中華槲蕨) 이나

넉줄고사리과의 넉줄고사리의 뿌리줄기를 골쇄보라 부르기도 한다.

고란초과와 넉줄고사리과는 모두 고사리목에 속하는 양치식물로 형태학적 특징이 유사하다.


↗ 자양산의 정상

자양산 정상은 페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인지 정상은 편편하게 되어 있으며 운곡방향의 등산로는 급경사로로 되어 있다

산인면에 전래되어 오는 이야기에는

산인면 입곡마을 한림당 고개 유래가 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한림당고개는 산인면사무소에서 입곡으로 가는 큰 길 고개 마루로서

당초에는 할미단(老姑壇)이었던 것을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면서 한림당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고개의 양지쪽을 양지다복이라 부르고, 이곳엔 예부터 일종의 민간신앙으로 전해오는 풍습이 있다.

이 고개를 지나다니는 사람은 액땜으로서 고개를 넘을 때마다 침을 뱉는다거나 돌을 던졌다고 한다.

또 시집가는 사람은 쌀을 조금 놓고 제(祭)를 지내고 넘는다고 한다.

이와 같은 연유는 이 고개에는 잡신이 서려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면 집안에 우환이 생기거나

악귀가 들어 고을 사람들이 질병에 걸려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 시집가는 사람이 그냥 지나치면 시집가서 모진 고생을 하거나 결혼생활이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반면 위와 같은 행사를 치르고 나면 만사형통(萬事亨通)하여 풍요와 행복이 깃든다고 믿고 전한다


↗ 자양산의 정상 의 암봉(巖峰)

자양산 정상은 암봉으로 되어 있고 정상석이 있는 바로아래는 절벽을 이루고 있다

자양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함안군의 조망이 발아래 펼쳐진다

특히 자양산은 함안군의 중앙에 있어

함안의 북쪽 조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햇살이 정상에 내리고 있으며 정상 암봉이 우뚝하게 서 있다


↗ 자양산의 정상에서 바라본 산인면 운곡

산인면 운곡리가 조망되며 운곡저수지도 발아래 옹달샘 처럼보인다.

운곡마을 자양산 아래에는 자그마한 암자가 있는데

그 이름은 칠보정사이다 아직까지 칠보정사란 사찰이름을 쓰는지 모르겠으나

30년전에 몇개월동안 작은암자에서 공무원 공부한적도 있어

운동삼아 여기 자양산 정상에 자주 올라 왔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상석이 없었고 페러그라이딩 활공장도 없었다.


↗ 자양산의 정상

자양산 정상에서는 법수면이 한눈에 조망되고 저 멀리 대산면 우측으로는 칠서면 까지 조망된다

저 멀리 남강이 흘러가는것 까지 보이나 미세먼지 탓에 선명하지는 않다.

함안군 가야읍에서

개간지(開墾地)와 자연못(自然池)라 부르는데 지명 유래를 보면

가야읍 배나무실(梨谷)에서 산인면 송정리 하송동 앞까지의

송정제(松汀堤) 서편에 형성된 약 50ha정도의 들을 개간지(開墾地)라고 부른다.

송정제는 1921~1923년에 축조된 제방(堤防)이었으나

운곡천(雲谷川)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이 개간지로 모여들어 늪지가 되는 관계로

농경지 행세를 하지 못하던 황무지를 5·16이후 재건운동때

속칭 밀가루공사가 한창이던 시절(1962~1963) 구일제(九日製)를 축조하고

갈대밭을 개간하여 농토를 일구었고, 이때 만든 농지를 개간지(開墾地)라고 부른다.

구일제 북쪽인 가야읍 이곡동에 속하는 당초의 늪지 일부가 구일제방 밖에 남아 저수지가 되어버린 곳이 있다.

이 저수지를 자연못(自然池)이라고 부르며 강태공들이 즐겨찾는 휴식공간이다.


↗ 자양산의 정상

자양산(紫陽山)402m 로서 한자를 보면 자주빛 자(紫) 볕양(陽)로서

자주빛 볕이 드는 산이다 라는 산 이름이다.

함안군내에 있는 산행지중 자양산이  산행기를 쓴 산행은 처음이다

여항산 청룡산 틈나면 산행해야 할 산행지이다

산에 오르면 이렇게 마음과 몸이 좋아지는 마음 때문에 산을 오른다.


↗ 자양산의 정상에서 바라본 어연골

가야에서 대산(代山) 방면으로 가면 송정(松亭) 고개마루 다음인 내인리(內仁里) 안인동(安仁洞)이 나오고

 이곳 산인초등학교 앞 도로 좌편 들판에 위치한 양계장이 있는 곳을 어연골(魚淵谷)이라 한다.

조선초기(朝鮮初期)에 함종어씨(咸從魚氏)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는데

한 어씨집안의 머슴이 매일 밤 늦게 집을 나가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하루는 미행을 하였더니

약간의 풍수지리를 알고 있던 이 머슴이 모친의 묘를 쓰기 위한 묘지(墓地)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한 곳을 찾아내니 그 장소는 새벽만 되면 닭우는 소리가 나는 기이한 묘터였다.

때마침 어씨 집안에서도 상(喪)을 당하게 되자(李氏부인으로 전함) 그 자리에 어씨의 묘를 쓰게 되었다.

안인에서 어씨 선대의 묘가 많이 있고, 어씨(魚氏)는 고기(魚)를 의미하는지라,

고기가 잘 살고 번창하기 위해서는 물이 있어야 한다는 풍수설에 조그만 웅덩이가 있던 것을 확장하여 연못을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의 안인 제일 소류지이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어씨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여

세종(世宗)때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낸 어변갑(魚變甲)

세조(世祖) 및 성종(成宗)때 참판(參判)과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낸어효첨(魚孝瞻)

연산군(燕山君)때 좌의정(左議政)을 지낸 어세겸(魚世謙)등이 이곳 출신이다.

묘하게도 안인 뒷산인 자구산 기슭에 어연(魚淵)의 묘가 있고

묘 앞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는데 어연은 입함(入咸)의 시조가 된다.

옛날에는 이곳이 안인에서부터 시내를 돌아 어연골까지 버드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마을간의 경계표시와 방품림의 역할을 해왔으나, 지금은 갯버들 몇 그루만 남아있을 뿐이다.


↗ 자양산의 정상 에서 바라본 Kt송신탑

실제로 보면 송신탑이 더 높아 보이지만 정상석은 건너편 봉우리에 있다

함안 가야에서 보아도 송신탑이 보일 정도다

자양산 산행은 오로지 정상에서 펼쳐지는 조망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임도가 개설돼 차량으로도 바로 아래까지 갈 수 있지만

땀 흘린 산행 끝에 마주하는 조망의 즐거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정상 직전까지는 조망이라고는 거의 할 수 없는 답답한 시야가 이어지지만

막판 정상에 오르기 직전의 임도와 정상에서는 여느 산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광이 펼쳐진다.

특히 180도로 트인 북쪽 조망이 일품이다.

가까이 함안군 대산면 너머로 남강이 낙동강에 합류하고 낙동강 건너에는 창녕군 남지읍이 뚜렷하다


↗ 자양산의 정상 에서 바라본 운곡방향

운곡방향과 어연마을 방향으로 산행하는 코스이다

산행로는 그의 45도 각의 경사이다

오르는길은 벌초하듯이 산행로를 잘 정비 해 놓았다.

산아래 옹기종기 마을도 보기 좋고

가을 들녁 풍성함이 보이는 논밭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 자양산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

 정상석 왼쪽으로는 의령 자굴산이 가까이 보이고 그 뒤로는 멀리 황석산, 웅석봉,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천왕봉과 비슷한 거리로 65㎞ 정도 떨어진 가야산도 구분할 수 있다.

정 북쪽에서 살짝 오른쪽으로는 낙동강 건너 창녕 화왕산과 영취산이

그 오른쪽에는 멀리 청도 화악산이 우뚝하다.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영남알프스의 산군들이 불쑥불쑥 솟아 있다.


↗ 자양산의 정상 에서 바라보 조망

경남 함안군 자양산(紫陽山·402m)은 간신히 400m대에 이름을 올린 나지막한 산이지만

조망만큼은 갑절인 800m대의 산이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빼어나다.

실제 정상은 중계소가 있는 곳이지만 출입이 통제되며 정상석이 있는 곳은 400m 봉이다.

또 산행 막바지 갈전마을로 내려가면 고려 말 성균관 진사를 지낸 이오가

불사이군의 마음으로 이곳에 은거한 뒤 후손이 대대로 살아온 고려동 유적지를 지난다.

이오의 유언을 받들어 후손들이 600년 넘도록 살아와 고려동으로 불린다.


↗ 자양산의 정상 의 갈참나무

정상부에는 갈참나무가 많이 보였다

갈참나무는

잎은 어긋나기이며 타원상 거꿀달걀모양 또는 타원형이고 길이 5~30cm

나비 3~19cm로서 둔두 또는 예두이며 예저가 보통이지만 원저 또는 심장저도 있고

끝이 둔하며 4~8쌍의 이빨모양 또는 뾰족한 톱니가 있고

표면은 광택이 나는 녹색이며 뒷면은 회백색이고 2~17개로 갈라진 성모가 있으며

주맥 위의 단모는 곧 떨어지고 잎자루는 길이 1~36mm이며

가장자리에 물결모양 또는 굵은 모양의 톱니가 있다.


오늘도 이렇게 9월 네번째 산행은 함안군의 중앙에 있는 산인면 자양산 이다

자양산은 함안의 중앙에 있으며 고려동유적지와 함안의 북쪽 조망이 좋은곳이 자양산이며

화개지맥 2구간으로서 많은 산행자 찾는곳이다

산에 오르는것은 늘 밥먹듯 올라야 한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 한국의산하,경남 함안군등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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