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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겨레의 얼·한국의 빛 독립기념관에서 조국을 보다

바다늑대FORCE 2015. 4. 26. 10:10

 

독립기념관

겨레의 얼·한국의 빛 독립기념관에서 조국을 보다

▲독립기념관

    위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삼방로 95 

     

▲여행일  : 2015년4월24일 금요일,  날씨: 맑음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 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를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복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겨레의 전당이다.

국민운동으로 추진되어 1987년 8월 15일에 개관하였으며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에 위치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을 세우자는 논의는 1945년 광복 직후부터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1946년 천도교회관에서 사회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기념관 건설준비위원회가 결성된 것과,

 1975년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주최 ‘광복30주년기념심포지엄’에서 정식 안건으로 토의,

 합의하여 정부에 건의한 바도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1982년 일본의 교과서에 실린 식민지 서술 부분이 한국 국민의 분노를 일으켜

 이에 한국 국민이 국민운동으로 독립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정부에서는 소요 부지인 400만㎡을 매입하여 제공하였다.

국민성금 490억 2432만 5009원(1986년 4월 8일 현재)을 모금하는 한편

국내외로 독립기념관에 전시할 자료와 유물을 수집하였다.

그리고 1986년 4월 8일「독립기념관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그 해 5월 9일 공포되기에 이르렀다.

 원래는 1986년 8월 15일에 개관할 예정이었으나

그 해 8월 4일 뜻하지 않은 화재가 일어나 1년을 늦추어 개관하였다

▲찾아가는길:

교통수단에 따른 교통안내

기차 : 천안역에서 버스 이용(12km), 약 25분 소요

고속철도 (KTX) : 천안아산역에서 택시이용 약 20분 소요, 버스이용시 환승필요

고속버스 : 천안종합터미널 앞에서 시내버스 이용 약 30분 소요

시외버스 : 천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 이용 약 20분 소요

승용차 : 경부 고속도로 목천(독립기념관) 나들목에서 2km, 천안나들목에서 국도 21호 이용 시 12km

독립기념관 경유 버스안내

시외버스 : 천안 ↔ 진천(천안 ↔ 독립기념관 ↔ 목천 ↔ 병천 ↔ 동면 ↔ 덕성리 ↔ 사석 ↔ 진천, 1시간 간격)

시내버스 : 노선번호 381번, 382번, 383번, 390번, 391번, 400번(10분 간격), 402번

※ 기념관 내 버스 진입 시간은 오전 8시 ~ 19시(8시 이전, 19시 이후에는 기념관 주차장 승하차장에 정차하지 않습니다.)

▲지도

 

하트3우리역사를 배우고

나라사랑의 마음을 담아보자→→→→→

 

↗독립기념관  매표소 입구

목천ic에서 바로연결 되어 있으며

독립기념관 관람료는 무료이며 주차비는 하루2000원이다.

 

↗독립기념관 전경

독립기념관은 우리민족의 5천년 역사속에서

무수한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강인한 독립의지와 자주정신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물려주신 선열들의

빛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두번째 방문이다

조경과 여러가지 조형물들이 보다 많이 들어서 있는것을 알수 있었다.

 

↗광장앞에 있는 조형물

태초의 빛-(최기원1986)

 

↗겨레의 탑

독립기념관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겨레의탑은 높이 51미터에

가로 세로 24미터의 기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겨레의 탑은 하늘로 날아 오르는 새의 날개와

기도하는 양손의 모습을 표현한 높이 51미터의

대형 조형물, 전후면에는 무궁화와 태극의 부조가 있고

탑 내부에는 4신도를 상징화한 모자이크 조각이 장식하고 있다.

 

↗백련못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백련못은

8000평 규모의  5000톤의 담수로 이루어 져 있으며

비단잉어가 많다..!

백련못의 뜻은

진창속에서 고결한 연꽃이피어나는 것처럼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웠던 일제식민 치하에서

가장 숭고한 애국 애족의 민족정신이 꽃 피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독립기념관 건립문

 

↗태극기 한마당

민족의 독립정신과 자주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광복 60년 해인 2005년 광복을 상징하는 815기의 태극기를 게양한 곳이다

 

↗광개토대왕릉

민족사의 계통을 명백히 정립하고

고구려인의 기상을 보여주고자 겨레의 큰마당에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6.4m의 거대한 크기로 4면에 1800여 글자의 비문을 새겨 놓았다

 

↗겨레의 큰마당

겨레의 큰마당은 폭222m 길이258m 면적은 38.535㎠의 규모를 자랑하는 겨례의 집 앞 광장이다

독립기념관 개관기념행사나 음악회 같이 수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를 치를 수 있다

 

삼학사비 재현기(三學士碑 再現記)

애국충절의 상징 삼학사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화의를 끝까지 반대하고

센양(沈陽)으로 잡혀가 갖은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절의를 지키다

순국한 홍익한 ․ 윤집 ․ 오달제 선생을 말한다.

이 분들이 보여준 애국충절의 기개에 감복한 청나라는

‘三韓山斗’라는 휘호를 주어 추모비를 세우게 하고 그들의 넋을 위로하였다.

그러나 이 비는 청나라가 멸망하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돌보는 이 없이 파괴되었다고 전해진다.

1935년 어렵사리 ‘삼한산두’라 새겨져 잇는 비 머릿돌을 발견하여

동포들의 성금으로 센양(沈陽)에 비를 재건립하였지만 문화혁명 시기에 파손되었다.

다행히 우리 동포가 이를 수습해 遼寧 渤海대학에 보관하여 완전 멸실되지는 않았다.

계룡장학재단(이인구 이사장)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비를 재중건하여 보전하기로 하고

고증을 거친 후 원비를 재현하였다.

재현비 전면에는 원 비문을, 후면에는 현대문으로 번역하여 새겼으며

두 기를 제작하여 한 기는 중국 현지에 세우고 한 기는 독립기념관에 기증하였다.

독립기념관이 경내에 삼학사비를 재현하여 세운 뜻은 국난을 당했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애국충절의 기개를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이러한 애국정신을 본받아 자라는 후세들의 민족정기를 함양하는 데 있다.

2005년 8월 일 독립기념관장

 

↗독립문

독립문 내부상단부분이 파손되어 있어 안전상 통제선이 설치되어 있다

 

독립문은

대한제국 말기 자주민권과 민족자강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석조문이며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다.

사적 제32호. 높이 14.28m, 너비 11.48m. 중국사신을 접대하던 모화관(慕華館)의 정문인 영은문(迎恩門)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운 것이다.

1896년(건양 1)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 (徐載弼)이 조직한 독립협회 발의로

 고종의 동의를 얻어 3,825원을 모금해 1896년 11월 21일 정초식을 거행하고 이듬해 11월 20일 완공했다.

 독일 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가 설계했으며,

당시 서양건축의 조영경험이 있던 목수 심의석(沈宜碩)이 공사감독을 맡아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만들었다.

설계자가 당시 우리나라에서 많은 건물을 설계한 러시아인 사바틴이라는 설도 있다.

 

↗겨레의 집

 높이는 15층 높이(45m)에 이르는 “동양최대의 기와집”

독립기념관의 상징 건물이며

고려시대 건축물인 수덕사 대웅전을 본떠 설계한 한식 맞배지붕 건물이자 동양 최대의 기와집이다

중국의 북경 천안문 보다 더 크다

 

 

 

불굴의 한국인상

 

겨레의 집 내부 대형홀 중앙에 위치하며 애국애족의 정이 솟아오르게 하는 기념관 상징 조형물로서

불굴의 독립정신과 강인한 한국인 상을 상징한다.

1개당 무게가 3∼4톤 나가는 화강암 274개를 적석하여 하나의 군상을 이루는 환조이다.

뒷면에는 백두산 천지의 부조가 조각되어 있으며,

이로부터 조각상이 연결되어 용솟음치듯 창공을 향해 전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백두산 정기를 받은 우리 민족의 자주와 독립, 인류평화와 번영을 향해

쉼없이 표출되었던 불굴의 기상을 표상한 것이다.

뒷면 양쪽에 억압의 사슬을 끊고 자유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나아가는

독립투쟁의 용사 상이 부조되어 있다.

 

↗전시관

 

겨레의 집뒤에는

7개의 전시관이 있다

5천년의 우리 겨레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사시대부터 1945년 광복즈음까지

독립의 순간이 기록된 자료들을 볼수 있다

제1전시관-겨레의 뿌리

제1전시관(겨레의 뿌리)은선사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우리 민족의 뛰어난 문화유산과 국난 극복사를 주제로 하고 있다.

우리 겨레는 수 천 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여 발전시켰고

외부의 침략에 맞서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이 땅을 지켜왔다.

자랑스러운 민족문화 전통이 국난극복과 항일독립운동의 저력임을 알 수 있다.

 

제2전시관-겨레의 시련

1860년대부터 1940년대, 즉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를 주제로 하고 있다.

변화의 물결이 들이 닥쳤던 개항기와 근대적인 자주독립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개혁기를 지나

 우리 민족의 긴 역사가 일제의 침략으로 단절되고 국권을 상실한 일제강점기 당시의 시련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주변국의 역사왜곡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제3전시관-나라지키기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으로 대표되는 구한말의 국권 회복운동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일제에 항거하여 전국 각 지역에서 양반 유생을 중심으로 전개된 전기와 중기, 후기 의병전쟁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안중근 의사 의거를 비롯하여

을사늑약 이후 국권회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

 매국노와 침략자들을 처단하는 의사와 열사들의 투쟁과정을 볼 수 있다.

 

제4전시관-겨레의 함성

우리 민족 최대의 항일독립운동인 3·1운동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3·1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식민통치에 맞서 우리나라가 독립국이고

우리 민족이 자주민임을 평화적인 만세운동으로 선언한 비폭력 저항운동이다.

3·1운동의 배경부터 진행과정, 일제의 탄압과 3·1운동이 세계적으로 미친 영향까지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제5전시관-나라되찾기

일제강점기에 조국독립을 되찾기 위해 국내외 각지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만주지역을 근거로 일제와 무장투쟁을 벌인 독립군의 활동과 개인 또는 단체를 이루어 일제의 침략기관과

주요 인물을 처단한 의열투쟁, 그리고 중국 관내에서 조직되어 활동한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의 활동 등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제6전시관-새나라세우기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수호운동과 민중의 항일운동,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맞서 전개된 국학수호운동, 민족교육 등과 학생·여성·노동자·농민 등

 다양한 세력이 주체로 참여한 민족독립운동, 독립운동의 중추기관이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제7전시관-함께하는 독립운동

일제강점기에 조국광복을 위해 국내외에서 전개된 다양한 항일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체험전시관이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직접 독립운동가가 되어 독립만세를 부르고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항일무장투쟁과

 다양한 문화운동 등에 자유롭게 참여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힘을 합쳐 조국광복을 맞이했고

 그 원동력을 바탕으로 국가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음을 체험해볼 수 있어 이채롭다.

 

 

↘제1전시관-겨레의 뿌리 관에 있는 전시어있는 가야기마상과 신라기마상

↗황룡사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었던 절

월성(月城)의 동쪽 용궁의 남쪽에 있었던 이 절은

 칠처가람지(七處伽藍址:과거 7불이 주석했다는 경주 일원의 일곱 사찰의 유적지)의 하나로서

규모나 사격(寺格)에서 신라 제일의 사찰이며, 신라의 사상과 예술에서도 그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553년(진흥왕 14)에 새로운 대궐을 본궁 남쪽에 짓다가

 거기에서 황룡이 나타났으므로 이를 불사(佛寺)로 고쳐 황룡사라 하고 17년 만인 569년에 완성하였다.

신라인들은 과거불인 가섭불(迦葉佛)의 연좌석(宴坐石)이 있는 이 절을 가섭불시대부터 있었던 가람터로 보았는데,

이는 신라인이 염원하는 불국토(佛國土)가 먼 곳이 아닌 신라 땅이라는 자각과 관련된 것이다.

황룡사지는 현재 발굴이 중단된 상태인데, 앞으로의 발굴기는 상황에 따라 발굴 계속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전시관 자료

 

 

↗제6 전시관 새나라세우기

일제강점기에 전개된 민족문화 수호운동과

국내 각게각층의 사회운동 그리고 독립운동의 충추기관이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련된 전시관으로서

임시정부요인 밀랍인형들이다.

 

↗3의사 동상

자측부터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김좌진 장군

 

↗기획전시관 앞

 

 

 

 

↗추모의 자리

추모의 자리는 애국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겨레의 영원한 번영을 다짐하는 공간으로 독립기념관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겨레의 집 뒷쪽으로 쭉 가다보면 추모의 자리로 가는 105인 층계가 나온다.

추모의 자리에 오르는 105인 층계 일제의 애국지사 탄압사건인 105인 사건을 상징한다.

일본총독부가 민족해방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다수의 신민회원을 체포하여 고문했던 사건이다.

돌제단 주변으로 병풍처럼 둘러져있는 벽부조는 무려 높이가 3~7m, 폭이 105m나 된다고 하며

105m의 벽부조에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생활상을 십장생과 함께 조각되어 있다.

민족의 영원무궁함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입체상영관

입체영상관의 입체 애니메이션은 4D 시스템과 첨단 디지털 영상시스템을 도입하여

 관람객이 직접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한 현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상영시간은 15분으로 대형 스크린과 바람시스템, 진동의자, 번개, 입체안경 등으로 보다 다이나믹한

영상과 특수 효과를 체험할 수 있으며, 총 좌석수는 160석이다.

 

獨立紀念館

독립기념관 전시와 시설

  • 전시관 : 모두 7개이며, 대공간 · 소공간 · 특별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 겨레의 집 : 독립기념관의 상징이자 중심 기념 홀로, 수덕사 대웅전을 모방해 설계했다.
  • 겨레의 큰마당 : 겨레의 집 앞의 광장으로, 중앙부는 화강석 포장으로 되어 있고 외부는 온양판석과 잔디마감으로 되어 있다.
  • 입체영상관 : 대한민국 근대사에 관한 4D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 통일염원의 동산 : 평화 통일과 그 의지를 후세에 전할 교육장으로, 국민의 통일 염원을 벽돌에 새겨
  •    후세에 영구히 보존하고자 국민참여의 장이 마련되어 있다.

  • 겨레의 탑 : 높이 51m의 조형물로, 민족의 비상을 표현했다.
  • 불굴의 한국인 상 : 겨레의 집 내부 대형홀 중앙에 위치하며, 불굴의 독립정신과 강인한 한국인 상을 상징하는환조이다.
  • 추모의 자리 : 독립기념관 상단에 있으며, 애국 선열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설치되었다.
  •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철거된 구 조선 총독부 건물의 일부 부재를 가져다 놓았다.
  • 광개토대왕릉비 복제비 : 현재 중국에 위치하게 된 광개토대왕릉비를 재현했다.
  • 삼학사비 복제비 :삼학사의 충절을 기릴 목적으로 청 태종이 세웠다가 소실된 뒤
  •    1935년 만주 동포들이 재건립했으나 문화대혁명 때 파손된 비석인 삼학사비를 재현했다.

  • 북관대첩비 복제비 :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2006년3월1일
  •    함경북도 김책시 림명리(옛 길주)로 반환한 뒤 복제해 세웠다.

  • 태극기한마당 : 815기의 태그기를 연중 게양하는 장소이다.
  • 백련못 : 인근의 흑성산에서 발원한 물을 유입시킨 26,446㎡의 연못이다.
  • 솔숲쉼터 : 독립기념관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잔디 광장이다.
  • 밀레니엄 숲 : 통일을 기리며, 4007호 디젤기관차와 11883·11888호 구형
  •  무궁화호 객차로 구성된 '통일열차'가 설치되었다.

     

    독립기념관

    겨레의 얼·한국의 빛 독립기념관에서 조국을 보다

    ※인용글 :  천안시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및 인터넷자료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15.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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