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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금전산 (順天 金錢山).오백나한(五百羅漢)중 금전비구(金錢比丘)에서 유래한 금전산에서 낙안읍성(樂安邑城)을 가슴에 담아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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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금전산 (順天 金錢山).오백나한(五百羅漢)중 금전비구(金錢比丘)에서 유래한 금전산에서 낙안읍성(樂安邑城)을 가슴에 담아보다

바다늑대FORCE 2024. 10. 20. 20:41

순천 금전산 (順天 金錢山).

오백나한(五百羅漢)중 금전비구(金錢比丘)에서 유래한 금전산에서 낙안읍성(樂安邑城)을 가슴에 담아보다

 

▲ 순천 금전산 (順天 金錢山) 

    높이 : 667.9m

    위치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일원에 걸쳐 있는 산

 

▲ 순천 금전산 (順天 金錢山) 나의 산행일 :

   2024년10월20일 일요일 날씨 맑음 바람약간

 

▲ 순천 금전산 (順天 金錢山)나의 산행코스 :

   불재버스정류장→약사암갈림길 →구능수 →590봉 →궁글이재이정표 →금전산

헬기장 →원효대 →산신각 →금강암 →상북마을삼거리 →자연휴양림 →낙안읍성주차장

8.34km 3시간33분(트랭글 앱기준)

 

▲ 순천 금전산 (順天 金錢山) 개요 :

금전산(金錢山)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일원에 있으며 2015년 7월 3일 순천시 (전라남도)의

향토유적 제15호로 지정되었다고 하며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금전산 일대에는

석산 경관이 나타나 우수한 지형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정상부의 서쪽면이 모두 바위로 뒤덮여

원효대, 의상대, 형제바위, 개바위 등 기암들이 도열해 낙안의 고유 경관을 이루고 있다.

금전산 등산로는 동서로 길 게 뻗은 능선길과 정상에서 남서쪽 상송리로 내리뻗은 금강암계곡길 등

세 가닥이 주를 이루며 금전산은 낙안읍성의 진산으로 양호한 석산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금둔사의 납월홍매화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을 피운다.

금둔사 홍매화는 납월매로 원목은 20년 전 노령으로 고사하였으며,

현재 수령이 24년된 매화나무 6그루가 잔존하고 있다.

 

▲ 순천 금전산 (順天 金錢山)산행지도

 

▲ 순천 금전산 (順天 金錢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 순천 금전산 (順天 金錢山) 

나의 Relive궤적(軌跡圖)

 

→→→→→→2024년 10월20일 일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이번주 금요일과 토요일은 제법 가을비가 내렸다 금요일엔 천둥번개를 동반한 가을비였다 이 비가 그치면 제법 기온이 뚝 떨어질것이라고 일기예보를 하고 있다 토요일 오전은 햇살이 찐해서 세차를 하고 광택도 내었지만 내가 세차를 하면 어김없이 비가오는 징크스를 면치 못하였다그래도 산행날 아침은 햇살이 좋았지만 바람이 불었다 진주지역의 자유산악회 따라 순천 금전산으로 길을 나서본다 순천지역 의 산은 대부분 다 올랐지만 금전산은 아직 미답지라 몇번이고 갈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오늘에야 자유산악회 따라  금전산을 향해 길을 나선다

불재 (火岾) 들머리

관광버스에서 하차하니 각축분뇨내음이 코를 찔러 머리가 아플정도로 악취가 심했는데

불재 주변 목장에서는 '너는 내 운명(전도연,황정민 주연)'을 촬영한 목장이라고 한다. 

불재 유래를 보면 옛날 한 처사가 처사굴[구능수]에서 득도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마침 낙안에서 승평[순천의 옛 지명]으로 가기 위해 군수가 이 고개를 넘게 되었다.

고개에 다다르자 나졸이 처사에게 군수가 지나가니 내려와서 인사를 올리도록 영을 내렸다.

처사는 아예 못 들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군수는 다음날 나졸들에게 처사를 잡아다 대령하도록 했다.

군수가 처사에게 무엄하다고 호통을 치자 처사는

“나는 군수에게 인사할 아무런 이유도 없을뿐더러 공부하는 것이 죄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군수는 화가 치밀었지만, 그냥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처사는 돌아가면서 "마침 불이 없으니 온 김에 밥 지을 불씨나 좀 얻어가겠다."라고 하며 불씨를 줄 것을 요청하자

군수는 처사를 골려 줄 심산으로 말꼬리로 만든 밀가루 치는 체에다 불씨를 담아 가도록 하였다.

군수는 처사가 불씨를 어떻게 가지고 가나 뒤따라 가보니 아무런 탈 없이 체에서는 숯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한다.

이에 군수는 처사의 능력이 신기에 가까우므로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서는 자기의 경솔함을 깨닫고

이 고개를 불재(火岾)라고 부르도록 하였다고 전한다.

금전산 초입구간

불재에서 안내표지판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오르면 금전산이란 표지목이 나온다

제법 차갑게 느껴지는 바람이 불었지만 조금만 오르막길을 걷다보면 금세 겉옷을 벗어야 하기에

그를 감안 하여 여벌옷만 배낭 속에 넣고 여름처럼 간편차림으로 산길을 걸었다

벌재에서 금전산 산정으로 가는 산길도 만만치 않게 오르막길의 연속이며 금전산 산행은 어딜 오르더라도

경사구간이 많은 산행지이며 지형이 험준하고 대단히 위험하며 낙석위험이 있다는 안전산행을 당부하는

안내판이 있는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람이 불어서 흐르는 땀은 금세 식혀 주지만 무덥던 여름이 이렇게 옷깃를 여미어야 할 계절이 왔다

불재구간의 산길

초입구간이긴 하지만 산길은 넓고 금전산 아래는 흙산 같지만 멀리서 보면 암봉이 솟아 있는 골산이라고 할수 있는 산행지이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하여 산길이 촉촉하게 젖어 있어 먼지는 없어 걷기에는 좋았고 단풍이 오기도 전에 산길엔 낙엽이 흩어져 있다

금전산은 불심과 금전운이 많다는데 오늘 그 기를 받아 금전운 가득 불러 모으고 싶다

또한 금전산은 낙안읍성의 한눈에 볼수 있고 가을을 조망하는 가장 근사한 산행지라고 하며

금전산에서  서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구간과  남문 일대와 읍성 안 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기도하다

산악회의 시그널

인기명산 처럼 시그널이 가을날 단풍이 물든것처럼 히말라야 산악인들의 안녕기원 깃발처럼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전남 순천 금전산(金錢山)은 낙안읍성 북동쪽에 암팡진 모습으로 솟구친 바위산이라고 하며

낙안면 지역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봉우리로 해질녘 빛을 받아 빛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고 전하고 있다

좋은산에는 천년사찰도 품고 있는데 금전산 아래 태고선원 금둔사는 고려 고찰로 보물 2점이 있고,

산정 바로 아래 위치한 금강암은 동국 제일의 조망대로 꼽힐 만큼 조망이 좋은 곳이다.

그리도 바위와 어우러진 늦가을 단풍의 정취가 뛰어나 11월 단풍 산행지라고도 한다

구능수

불재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커다란 암봉을 만나는데 그 암봉은 구능수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이다

구능수 유래 안내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전에 처사(處士)한분이 득도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수도를 하는데 석굴 입구 위쪽에 있는 구멍을 통하여 

하루 세끼분의 쌀이 나와 연명을 했다한다.
하루는 손님이 찾아와 식량이 부족하자 쌀이 더 나오도록 부지갱이로 이 구멍을 쑤셔대자 쌀은 나오지 않고 

쌀뜨물만 흘러 내렸다 하며, 쌀 뜨물이 석영으로 입구에 부터 있다. 

또한, 석굴 안쪽 한면에 석유구가 있는데 이곳에서 나오는 물이 신령스러워 공을 드리지 않거나 

상스런 행위를 하고 물을 받으면 조금전까지 흐르던 물이 마른다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 구능수는 영험한 신기(神氣)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이 낳지 못하는 사람이 금정산 처사샘물을 마시면 아이를 갖게 된다는 고전적 신기가 그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시집와 14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다가 이 물을 마시고 아이를 갖게 된 순천문화유산해설사

고이케 사나에씨의 일화가 더 유명하다고 한다.

첫번째의 조망처

오르는 산길 한편에 있는데 위로만 보고 오른다면 이런 멋진조망처를 놓칠수 있기에 산길을 걸을땐 나느 풀 한포기

들여오는 산새소리 작은 돌맹이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면서도 오른다

바람이 겨울을 부르는듯 강하게 웃깃을 스쳐 지나갔다 기나긴 무더운 여름은 이렇게 찬바람과 함께 저만치 물러섰다

산에서 바라보면 발아래의 풍경은 산아래에서는 볼수 없는 그림들이 쭉 펼쳐지는 매력이 너무 좋다

파도처럼 춤추는 산줄기들의 능선들과 하늘인지 바다인지  넓게 펼쳐지는 하늘과 웅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모습들은

하나 둘씩 꿈 많던 소년의 가슴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이 꺼꾸로 가는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투구바위

오르막 산길을 오르다가 하늘을 쳐다보니 수도승이 정진을 하는 모습 같은데 투구바위라고 한다

산 아래서는 볼수 없던것이 고도를 높일수록 암봉이 나타나면 암봉이 주는 아름다움과 맞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금전산은 바위산에 가깝고 거칠어 보이는 산세이지만  전체적으로 완만하고 능선만 올라서면 조망도 좋다.

최고의 조망처는 암릉이 뭉쳐 있는 금강암(金剛庵) 일대이며 금전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금강암 오른쪽에 위치한

의상대와 왼쪽으로 원효대가 우뚝 솟아 있고 개바위와 형제바위 등 기암괴석이 즐비한곳이며

넓은 낙안평야지대를 내려다 볼수 있는 산행지 인데 오늘 그 풍경을 만킥 하기 위해 지금 오르고 있다.

휴식과 조망

휴식은 조망을 즐기는 시간인데 산지의 능선들이 낙압읍을 병풍처럼 두런 모습이 명당 그 자체와 같았다

금전산은 바위산임에도 불구하고 능선에 닿아면 오솔길처럼 평탄한 산길을 만나게 되고

좌측으로는 낙안면 황금 벌판이 계속해서 펼쳐지는 풍경과 산길을 걸을수 있도

20분 정도 오르면 궁글재를 만나게 되고  불재에서 1.7km 지점이며, 정상까지 1.7km 남은 중간지점이다.

금전산에서는 고흥 첨산과 두방산까지 조망된고 굴참나무가 터널을 이룬 숲이 산객을 환영해 주는듯 하다 

금전산 야생화(산부추꽃)

가을에 산에 오르면 부라색 꽃이 유난이 눈에 많이 보이고 오늘은 이제막 피어난 산부추꽃을 만났다

산부추는 흔이 식탁에서 만나는 부추와 잎이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잎이 조금 더 넓고

두툼해서 자세히 보면 약간 다른것을 알 수 있기도 한데 자주색과 연보라색까지

다양한 색상을 띠고 작고 둥근 꽃을 피우게 되는데 모둠형태로 피어 있는 산부추는 그야말로 예쁜 꽃이다

능선길

오르막 산길이 주는 보상이 평탄한 능선길이며 능선길에서 산행시간 단축과 걸어면서 휴식도 병행할수도 있는 길이다

금전산은 금(金)과 전(錢). 산 이름이 금전(金錢)은 이름 그대로 돈 을 뜻한다고 하며

본래 산 이름이 돈산 ,쇠산 이었다가 한자로 옮긴 것이란 주장도 있고  불교에서 얘기하는 부처의 제자 중 한 명인

가난한 약초꾼 금전비구의 이름을 딴 것이란 얘기도 있는데 그 이야기가 더 신빙성이 있다고도 한다.

돈산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금전산이 풍수적으로 재물 운을 품고 있으며 실제로도 재물을 부르는 산이라고 주장하며

낙안면 인구에 비례해 복권 당첨자가 많은 지역인 것도 다 금전산 덕분이라고 하는 풍문도 있다

그래서 나도 이번주내에  로또복권 하나 구매 해서 주말을 기대해 보아야 겠다

익어가는 가을 산길

단풍이 들기도 전에 가을이 익어 있는 산길이다 낙옆이 수북하게 쌓여 걷는길은 바스락 바스락 소리를 내며 

가을낭만을 느끼기엔 충분한 산길이였고 넓다랗고 평탄한 능선길 사이로 키작은 굴참나무 터널을 만들어 주었다

아마도 여름날 이길을 걷는다면 참나무 향이 가득한 터널을 걷는듯 한 산길이 될듯 같다

겨울 숲길을 걸을땐 낙엽으로 인해 종종 산길을 구분할수가 없어 위험하기도 한데 나는 이름없는산 산길을 걷다가

낙엽에 뒤덮혀 길을 잃어 원점으로 되돌아 가 다시 산길을 찾곤 하였다

황금들녁

낙안면의 황금들판이 조망되고 발아래는 낙안휴양림이 있는데 휴양림으로 하산할 코스 이기도 하다

낙안휴양림은 전라선과 경전선이 교차하고, 남해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접근성이 매우 양호하며, 낙안읍성 민속마을에서 약 2㎞ 지점에 자리하고 있어 낙안읍성과 주변 경관이 수려해

휴식 공간으로는 최적지일 뿐만 아니라 인근에 송광사, 선암사 같은 전통 고찰과

서산의 저녁 노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주암호, 상사호가 있으며, 순천만의 갈대와 해변,

순천만 국가정원, 드라마세트장,고인돌 공원 그리고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각종 문화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관광 명소들이 많아 사계절 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금전산1.7km안내표지목

금전산 산행 탐방로는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는데 서쪽 능선 끝 오공재에서 가는 길도 있고,

동쪽 능선 끝 불재에서 오르는 길도 있으며 오공재와 불재 사이에는 낙안온천이나 낙안민속자연휴양림에서

오를수 있는 산길도 있으며. 산이 높지는 않지만 된비알 구간이 많지않아 어떤 코스를 선택하든

1∼2시간이면 금전산 산정에 닿을 수 있고 3∼4시간 산행 시간이면 등산과 하산까지 산행을 모두 마칠 수 있는 산행지다

청미래덩굴

우리는 망개나무라고 하고 우리지역 의령군에는 청미래잎으로 떡을 감싼것을 망개떡이라고도 한다

망개가 빨갛게 익어있는 모습이 탐스럽기만 하다

청미래덩굴은 사람들이 잘 다니는 산속 오솔길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흔하디흔한 우리 산의 덩굴나무이며

청미래덩굴은 공식적인 이름이고, 경상도에서는 망개나무, 전라도에서는 맹감나무, 혹은 명감나무라 불린다.

이 중에서도 망개나무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어 망개라는 말이 더 친근한듯 하다

금전산야생화(산박하)

가을엔 보라색이 더 산야를 꾸미는듯 하다 산박하꽃이 향기를 내뿜어서 산길을 걷는 나의 발목을 잡았다

산길에서 계절마다 산길에서 만나는 야생화 보는 재미도 산행을 하는 묘미이기도 하다

산박하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지나 들에서 자라며 줄기는 높이 60~150cm 정도이고 가지가 많으며 사각형이고

능선에 흰털이 있고 마주나는 잎의 잎몸은 길이 3~6cm, 너비 2~4cm 정도의 삼각상 난형으로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으며 7~10월에 취산꽃차례로 피는 꽃은 자주색이다. 

순천 금전산 (順天 金錢山)667.9m

전남 순천에 위치한 금전산은 해발 667.8m이며 조계산에서 뻗어나온 한 지맥이 남쪽으로 흘러내리며

고동산을 거쳐 일으킨 바위산인데 이 금전산의 옛이름은 쇠산이었으나 100여년 전 금전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자의 뜻을 그대로 번역하면 금으로 된 돈 산이다 그러나 실은 불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부처의 뛰어난 제자들인 오백나한(五百羅漢)중 금전비구(金錢比丘)에서 산이름을 따왔다" 고도 한다

오백나한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십송률(十誦律)등에는 부처님이 사위국(舍衛國)에서 500명의

아라한들에게 설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흥기행경(興起行經)에는 “여래가 오백나한을 위하여

매월 15일을 기하여 계(戒)를 설하였다.”라고 기록하였으며,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授記品)에서는

부처님이 500명의 아라한을 위하여 특별히 수기(授記)를 베푸는 인연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기사들을 종합해 볼 때, 석가모니 당시에는 실제로 500여 명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다고 믿어진다.

또, 오분율(五分律)에는 석가모니의 열반 직후 왕사성(王舍城)에서 제일결집(第一結集)이 있었는데,

500명의 아라한들이 이 회의에 참석하여 불전(佛典)을 편찬하였다고 하며, 이 결집을 현재 ‘오백결집’이라고 부른다

순천 금전산 (順天 金錢山)667.9m

금전산(金錢山)은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낙안면(樂安面)의 진산이며 일제 강점기 때 금을 캐던 연유도 있지만

의상대와 원효대의 기운이 좋다고 알려지면서 한때 로또 명당이라는 소문까지 났다고 한다. 

기암괴석 사이에 뿌리내린 운치 있는 노송들도 있고 멀리 낙안벌판까지 막힘없는 풍광을 연출한다.

낙안벌판에 둥실 떠 있는 배처럼 보이는 것이 낙안읍성이며 임경업 장군이 쌓았다고 하며 600년 역사를 지녔고

사적 3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성내에는 실제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고등산, 백이산, 제석산이 요새처럼 들판을 감싸고 있다.

순천 금전산 (順天 金錢山)667.9m

금전산은 낙안의 진산(鎭山)으로 낙안의 옥녀산발형(玉女散 形)의 주산이며 그러나 산세로 보면 여성스러움 보다는

거칠고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어 남성스러움에 가깝다.

금전산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금(金)자처럼 보이며 특히 낙안읍성 동헌을 넣어 바라보면 영락없는 금(金)자가 되어 보인다.

오봉산과 함께 다른 면과 경계를 이루지 않은 낙안 땅에 있는 산으로 산 이름은 불경에서 이야기하는

금전비구(金殿比丘)에서 유래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글자 그대로 금(金)은 금으로, 전(錢)은 돈으로서

즉 돈산으로 부르기 도 하며 등산 코스는 불재 정상에서 구능수를 지나가는 길과 오금재 앞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고

현재 위치에서 곧장 금강암으로 가는 산길이 있다.
금전산은 그리 높지도 않은 산이지만 9부 능선을 따라 괴암 괴석들이 우뚝 솟아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으로 많은 산악인 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한다.

하산길

산죽이 빼곡한 산길로 하산길로 접어 들었는데 금전산에는 어딜 오르던 간에 된비알 구간은 피할수 없는듯 하다

금전산 산행의 들머리는 불재로 잡는 것이 수월한 이유가 있는데 경사가 그다지 다른 탐방로 보다는 완만하다

약수암 이정표를 따라 시멘트 포장로를 5분 올라가면 차량 차단기가 있고 이곳에서 시멘트 포장길

우측에 있는 흙길를 따라 가면 산밤나무가 지천인데 날씨 탓인지 주워 먹을 볼만한게 없었고

법황사 갈림길에서 약수암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된비알 구간이 은근히 숨을 헉헉거리게 하는 구간이였다

금전산 야생화(구절초)

산길을 걷다보면 구절초가 많이 피어 있는곳을 볼수가 있었는데  바람이 불어서 카메라 앵글을 잡기가 어려웠다

금전산은 낙안면과 낙안읍성을 보면서 산길 걷는동안 내내 볼수 있는데

안읍성은 철저한 사전기획에 의해 축조한 읍성이라고 하며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 쌓는데 불과 한 달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짧은 작업기간은 토성에서 나온 흙을 돌로 쌓은 외벽을 지탱하는 안쪽 내탁부의 축조와

성벽의 윗부분을 마감하는데 사용하고, 각 고을의 군인들을 동원하여 미리 읍성 축조에 필요한 성돌을

미리 모아두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작업기간이라고 한다.

이로부터 철저한 계획과 사전작업을 거쳐 완공된 읍성임을 알 수 있다고 하며

성내의 도로는 3개의 성문을 잇는 T자형의 도로망을 갖추고 있다.

낙안읍이 조망

가을의 멋진 풍경 황금들녁이 바둑판처럼 펼쳐졌고 발아래 동네는 낙안면이며

낙안면은 옛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낙안읍성민속마을이 있어, 낙안민속문화축제, 세계음식문화큰잔치,

전국 대학생 풍물놀이 등이 개최되는 등, 전통민속의 향기를 듬뿍 느낄 수 있는 고장이다.
낙안면은 백제시대에 분차 또는 분사군이었는데, 통일신라 제35대 경덕왕때 분령군으로 고치고,

고려때 낙안 또는 양악으로 칭하여 나주에 속해 있으면서 1172년인 고려 명종 2년 에 감무를 두고

그후에 지주사가 되어 군으로 승격되었다.

1515년인 조선조 중종 10년에 고을에 불륜한 일이 일어나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575년인 선조 8년에 복구되어

낙안군이라 하였는데 1908년인 융희 2년에 낙안군이 폐지됨에 따라 읍내면이라 칭하여 순천군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내서면 20개리와 동상면의 교촌, 이동일부와

보성군 고상면의 지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낙안면이라 칭하고 동내, 남내, 서내, 성북, 상송, 하송, 검암, 옥산,

평촌, 교촌, 창령, 금산, 평사, 목촌의 14개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휴식과 조망

금전산 산행은 금강암 코스를 왕복하는 산꾼들이 가장 많다고 하며

금강암 코스로 정상에 올라선 다음 궁굴재를 거쳐 휴양림이나 불재로 내려서는 산행도 많이 한다고 한다

2시간30분. 오공재 코스는 네 코스 가운데 가장 완만하게 이어져 초보 산꾼이나 가족단위로 이용하기에 적합하다고 하며

식수는 금강암에서 구할 수 있으나 산행 전 준비하는 게 당연하며 차량주차는낙안온천주차장이나

휴양림 정문 주차장에 주차를 할수가 있다고 한다.

낙안면의 조망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방계획도시로 조선시대의 읍성들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읍성 중의 하나로 평가 받는다.

조선시대 도성인 한양의 입지조건과 가장 닮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특히 읍성 안의 마을은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민속을 살피는 데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의 대부분의 읍성과 마찬가지로 동·서·남에 3개의 성문을 두었고

조선시대 일반적인 성문을 형태를 따르고 있으나, 성문의 바깥쪽에는 다른 읍성에서는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ㄱ자형 옹성을 둘러쳐 차별화한 점이 특징이라고 한다.

낙안온천1.4km안내표지목

낙안면의 조망을 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낙안온천이라는 안내표지목이 나왔다

낙안온천은 전남 순천시 낙안면 조정래길 933위치 하며

어떠한 정수 시설도 사용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100% 천연 온천수만을 사용한다고 하며

이곳은 2000년 온천이 발견되었고 2003년 온천원 보호 지구로 지정되었다.

지하 830m에서 분출되는 유황과 게르마늄이 함유된 온천수는 항암 및 노폐물과 각질 제거,

피부 질환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고 또한 온천 녹차탕은 피부 탄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

이곳을 체험하고 나온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수질과 온천수의 효능이 보장된 곳이라고 전한다.

산속에 위치하고 있어 온천욕과 산림욕이 가능해 심신의 피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신당

금강암 산신당 같으며 금전산 산신에게 삼배를 올려본다

투명천장으로 가림막을 한 삼신당을 지나면 허름한 기와지붕의 금강암이 나오는데

나는 금강암을 가지 않고 원효봉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가서 행여 원효봉을 오르는 길이 있나 싶어서이다

원효봉은 릿지등반을 하는 산객이 아니면 정말 오르기 힘든 곳이고 내가 위치한곳에서 한참이나

내려가야 하기에 포기하고 원효봉이 잘보이는 마당바위에 앉아서 

바람에 실여오는가을이 익어가는 소리만 들었다

원효봉과 돌탑

산에는 불교와 관련한 봉우리들이 많은데 산봉우리들은 원효봉 보다 의상봉이 더 많은듯 하고

사찰은 원효대사가 정진한 곳이 많은듯 하지만 금전산에는 의상과 원효봉이 나란히 존재한다

금전산은 풍수적으로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이라고 하는데 옥녀산발형은 아름다운 여인이 머리를 자연스럽게

내려뜨린형이라고 하는데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은 안산(案山, 혈앞 에의 산)이 얼레빗 형,

우백호가 거울 모양, 좌청룡이 분을 넣는 갑(匣)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을 일컫는다.

여인들이 화장(化粧) 하기 위해서는 맨 먼저 머리를 푼 다. 그러고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을 한다.

이 같은 이치에 따라 "옥녀산발형"에서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선망, 羨望) 자리에 앉거나

또는 절세가인(絶世 佳人)이 태어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금전산 원효대

릿지등산을 주로하는 산꾼에게는 원효대는 최적의 장소 같아 보였고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듯한 아름다운 암봉이다

그리고 금전산 북쪽의 옥녀봉 동쪽 줄기에 오봉산과 제석산이 있고 서쪽에는 백마산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볼 때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이라고 하는데  풀어 말하면 옥녀가 장군에게 투구와 떡을 주려고

화장하기 위해 거울 앞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형상이라고 한다.

그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듯 평촌리 마을 앞에 있는 평촌못은 옥녀의 거울에 해당하는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기 때문에 예로부터 낙안에는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미인들이 많이 났다고 한다.

금전산 암릉

금전산 산행은 금전산 산정에서 부터 금강암 방향으로 펼쳐진 암봉들이 산행의 진짜 볼꺼리 이며

산행 내내 낙안면소재지와 낙안읍성을 보면서 산길을 걸을수 있는 금전산 산행 백미라 하겠다

산에서 이렇게 먼산을 바라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으로 안아보면서 출렁이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산봉우리

백파를 치는듯한 흰구름 초록의 산야 사이로 핏줄처럼 얽혀 있는 도로와 가을풍요를 말하는 황금들판이 아름답다

암봉에서 휴식

원효대 넘어로 바둑판처럼 펼쳐진 황금들녁이 풍요로운 농촌 풍경을 보여주는듯 하지만 요즘 쌀수요가 적어

예전 벼농사를 주로 하던 농업경영도 변화가 많이 필요한듯 한 단면인듯 싶다

넓다란 바윗돌 잠시 쉬고 의상대라고 이름 붙여진 바위쪽 바라보면 의상대의 동쪽 맞은편에는 원효대인데

원효대는 내가 앉아 있는 맞은 암봉인데 그 아름다움이 수반에 놓인 수석 같았고

또 이곳에는 입석대(立石臺)와 참선하는 스님 형상의 참선대, 두꺼비바위, 개바위 등의 기암괴석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고

하는데 안내문이 없으니 어디가 어떤 곳인지 알수는 없었다

낙안읍성(樂安邑城)의 조망

낙안고을의 진산인 금전산을 배경으로 완전히 평야에 쌓은 평지 읍성이며

일반적으로 다른 읍성들이 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평산성이라는 점과 다른 점이다.

1397년(태조 6)에 낙안 출신의 절제사 김빈길이 흙으로 쌓았다고 하며 이후 1424년(세종 6)에 토성을 석축성으로 고치면서

지금의 규모와 같이 크고 넓게 쌓아졌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순천 왜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적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폐허가 된 읍성은 1628년(인조 6) 무렵에 낙안군수로 있던 임경업에 의해 복구되었다.

성벽의 길이 1,406m, 높이 3~5m이며, 면적은 223,108㎡이다.

부속 시설물로는 성문 3개, 옹성 3개, 치 4개, 해자와 객사 및 동헌 등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금전산의 기암괴석

이 기암괴석은 어떤 형상일까 금전산 의상대 원효대에서 서술된 뚜꺼비 바위일까 풍화작용에 의해

바윗돌 아래부분은 마치 팽이처럼 되어 있고 그 위에 또 하나의 암석이 얻어 놓아놓은듯 하다

 

금강암 극락전 (金剛庵 極樂殿 )

금전산(金錢山)에도 유명한 사찰은 낙안읍성의 뒤편 금전산턱에 자리한 금둔사(金芚寺)의 금강암(金剛庵)이라고 하는

지금현재의 편액에 극락전이라  걸여 있는 곳이 마치 여염집 같지만 금강암은 백제 위덕왕 때 창건되었다고 하는데,

승주향리지(昇州鄕里誌)에 따르면 위덕왕 30년(583)에 금둔사가 창건되었고 그 후 의상대사가 금강암, 문주암 등

30여 개의 암자를 가진 큰 절로 중건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의 금강암은 송광사에 딸린 자그마한 암자일 뿐이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주택 같은 자그마한 절집이며 풍경이나 편액이 없다면 누가 암자라고 하겠는가 의문이 생길 정도다

관음보살좌상

팻말에는 돌부처라고 써 놓았는데 감로수 병을 가지고 있는것을 보아 관음보살상이라 생각하며

손끝에는 주작이 있는 앉아 있는 모습은 여기서 처음보는듯 하다

솜씨 좋은 석공이 섬세하게 조각한 관음좌불상의 입술부분이 아직도 붉게 남아 있고

관음보살좌상 왼쪽으로 보이는 원효봉은 하늘로 솟구쳐 있는 거대한 암봉이 힘찬 용의 등줄기처럼 기운찬 모습이다

한때 호남 최고의 기도 도량으로 손꼽히던 곳임을 실감케 하는 멋진 풍광을 안아주었고

건너편에 있는 원효대 암봉은 릿지등산가나 올라갈수 있지만 오늘 나는 올라 갈 수 없는 봉우리였다.

의상대에서 바라본 금전산 가을과 낙안읍성

금전산 7부 능선에 있는 금강암있는 의상대에서 바라본 금전산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보는듯 하다

낙안면 소재지와 가을이 익어 있는 황금색 들판까지 막힘없는 풍광이 펼쳐 졌다

낙안읍성은 임경업 장군이 쌓았다고 하며 600년 역사를 지녔고 사적 3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낙안성내에는 실제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고등산, 백이산, 제석산이 요새처럼 들판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낙안읍성은 북쪽으로는 진산인 해발 668m의 금전산, 동쪽으로는 해발 192m의 오봉산,

남쪽으로는 해발 563m의 제석산과 부용산, 그리고 서쪽으로는 해발 584m의 백이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가운데 읍성 주변은 분지형의 드넓은 평야지대가 발달하여 있으며,

남쪽으로는 가까이에 바다와 접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들판 한가운데에 쌓은 평지성으로서,

전체적인 형태는 남벽의 길이가 북벽에 비해 긴 사다리꼴의 평면형태를 이룬다.

금전산 의상대에 있는 기암괴석

의상대에 있는 이 바윗돌은 어떤 모양인가 상상을 해보지만 마땅히 걸맞는 이름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금전산이 있는 낙안은 고려 때부터 즐거울 낙(樂) 편안할 안(安)자를 써서 낙안군이라 불렸었던 낙안은

현재 순천시 낙안면인데 낙안읍성지(樂安邑城地)에 기록된 바대로 낙토민안(樂土民安)이

이곳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맞을 만큼 주변 산들에 에워싸인 오래도록 살만한 곳으로 평온함이 느껴지는 벌판이다.

낙안의 진산으로 성의 북쪽에 위치한 금전산의 옛 이름은 쇠산(鐵山)이었다고 하는데

지금 의생대의 기암괴석이 쇠일까 금일까 궁금해진다

약샘과 극락문

금강암을 둘러보고 관음보살좌상에서 참배도 하고 의상대에 원효대 풍광에도 빠져보고서

하산후 집결지 낙안민속자연휴양림으로 하산 길을 잡았는데 물바가지가 있어 약샘인가 싶어 갔지만

석간수가 아주 적게 흘러 나오고 극락문이라는 바위문을 통하는 산길이 이어져 있었다

극락문이라는이름도 근사하고 오늘 극락문을 통해 극락을 본듯하다 의상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의상대의 관음보살좌상 그리고 낙안면의 아름다운 풍경이 극락인 셈이였다

금전산 의상대와 원효대

산행은 우리에게 아름아운 풍경을 계절마다 다르게 선물 하고있고 편안히 쉬면서 속세의 무거운 짊도 내려놓는 곳이다

그래서 산에 오르고 또 산을 찾아서 길을 나서곤 하는데 낙안면의 수호신 처럼 우뚝솟은 금전산 암봉이 한폭의 산수화다

옛 선조들은 오늘날 산행처럼 단순히 정상에 오르기만을 위한 산행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선조들은 산의 정상에 오르면 가쁜 숨을 고른 다음에 상투를 틀고 긴 머리를 풀어헤쳤다고 하며

1년 내내 망건으로 죄고만 있어야하는 머리를 풀고 바람 부는 방향에 서서 그 머리를 바람에 맘껏 날렸다고 한다

바람으로 빗질을 하는 이 풍습을 즐풍(櫛風)이라고 했는데, 이 즐풍은 방향을 가려서 하였고

동풍은 좋지만 서풍이나 북풍에서는 하지 않는 법이라서 그날 풍향을 살펴서 동남풍이 불어야

이 즐풍을 위한 등산을 하였다고하며 즐풍 즉 바람으로 머리 빗질을 한 다음 거풍(擧風) 단계로 접어드는데,

바지를 벗어 하체를 노출시킨 다음 햇볕이 내리쬐는 정상에 하늘을 보고 눕는 것이 거풍이라 한다.  

금전산 야생화(산부추꽃)

하산길에 만난 산부추가 자주색으로 만개하여 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나는 산길을 걸어면서 야생화 촬영도 좋아하는데

야생화 촬영하면서 얻은것이 있다면 예전에 몰랐던 산야초 이름을 안다는것이 산길에서 얻은 큰 수확이다

산길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키작은 야생화들은 시내화단에서는 볼수는 없다

요즘은 지자체에서는 핑크뮬리등 외래종을 가득심어서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축제도 하는데 이러다가는 우리의 산과 들판에도

외래종으로 다 덮을수 있을것 같은 바람이 불어 오는듯 싶다

성북마을 갈림길

여기서 성북마을로 가지 않고 넓다란 산길을 따라서 낙안휴양림으로 방향을 잡아 걸어본다

금전산이 있는 낙안은 지역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으로 예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를 짓고 노래하는 곳이었으며

특히 절경으로 알려진 곳들은 낙안팔경으로 정해 그 아름다움을 칭송했다고 전해오며

낙안팔경으로는 금강모종, 백이청풍, 오봉명월, 보람조하, 옥산총죽, 원포귀범, 용추수석, 안동화류이다.

또한, 먹을거리도 풍부하여 낙안 팔진미로 꼽히는 음식이 있는데 금전산 석이, 백이산 고사리, 오봉산 도라지,

제석산 더덕, 남내리 미나리, 서내리 녹두묵, 성북리 무, 용소 천어 등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

금전산 야생화(고들빼기)

낙안 금전산은 벌교읍에서 약 10km 정도 이동하면 금전산(金錢山) 있고 낙안읍성 북쪽에 솟은 금전산은 낙안의 진산이며

낙안 주민들은 금전산을 낙안읍성(樂安邑城)의 수호신 이라 부르고 있으며

낙안에 있는 학교 치고 금전산과 금강암이 등장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낙안읍성을 기준으로 드넓은 낙안벌 너머로 북쪽은 진산인 금전산, 동쪽은 좌청룡인 오봉산(592m),

서쪽은 우백호인 백이산(584m), 그리고 백이산에서 동남쪽으로 얌전히 흘러내린

안산인 옥산(97m)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금전산야생화(참취꽃)

가을 단풍 산행지 11월쯤 온다면  금전산이 최고일듯 싶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 북동쪽에 솟구친 바위산이며 낙안 지역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봉우리로 해질 무렵 빛을 받아

빛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고 하며 산세가 좋아 이름난 사찰도 품고 있고 금전산 아래 태고선원 금둔사는

고려시대 사찰로 보물 2점이 있고, 산정 바로 아래 위치한 금강암은 동국 제일의 조망대로 꼽힐 만큼 조망이 좋다.

바위와 어우러진 늦가을 단풍의 정취가 뛰어나  단풍 산행지로 좋은 곳이라고 한다.

높지 않아 산세를 감상하며 부지런히 걸으면 2시간 남짓이면 산정에 오른 뒤 내려올수도 있고

산기슭에 산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낙안온천이 들어서 있다

자연휴양림표지석

성북마을 갈림길 안내표지목에서 제법 많이 걸어 온듯 하고 금전산 둘레길 같이 자연휴양림과 이어져 있고

자연휴양림에서도 금전산 산정까지 이어지는 산길도 조성되어 있었다

낙안민속자연휴양림에는 관리사무소 1동, 유럽풍의 펜션형 건물인 숲속의집은 6인실의 3개 동이 있으며

낙안읍성과 인접한 휴양림이라는 특성을 살려서 전통 주거형태인 기와집 양식으로 건축된

산림문화휴양관은 4인실 8개, 7인실 4개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계곡 옆에 조성된 야영데크는 총 17개로, 야영데크 앞에 주차할 수 있어서 오토캠핑도 가능하며

야영장 옆에는 샤워장 1동과 화장실 2동과 취사장 1동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낙안읍성(산행종료)

하산이 빨라서 버스가 오기까지 2시간쯤  남아서 낙안읍성이나 둘러 볼까 하고 아스팔트길을 걸어서 낙안읍성에 걸었다

순천 금전산은 오백나한(五百羅漢)중 금전비구(金錢比丘)에서 유래하였다 하고 쇠산이리고도 하고

낙안읍성에서 바라보는 금전산은 마치 청와대 뒤에 북악산이 버티고 있는 모습과 매우 흡사하며

낙안읍성(樂安邑城)동헌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동헌 건물과 금전산은 쇠 금(金)자형을 이룬다.

우뚝 솟은 누런 바위 절벽들은 ‘금전’이라는 산 이름이 붙은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금산 즉 돈산이라고도 한 금전산에서 낙안읍성(樂安邑城)을 가슴에 담아보며 산행을 마무리 한다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

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

태백산맥은없다 조석필 사람과산.

한국1000산 신명훈 깊은솔

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 오혜령 박옥남 복랩

순천시,낙안면 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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