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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백두산(金海 白頭山). 천지(天池)가 없는 백두산 산정에서 낙동강(洛東江)을 품어 보다 본문
김해 백두산(金海 白頭山).
천지(天池)가 없는 백두산 산정에서 낙동강(洛東江)을 품어 보다
▲김해 백두산(金海 白頭山)
높이 : 352.9m
위치 : 경남 김해시의 대동면 예안리·괴정리·초정리에 걸쳐 있는 산
▲김해 백두산(金海 白頭山)나의 산행일 :
2024년01월24일 수요일 날씨 : 맑음
▲김해 백두산(金海 白頭山)나의 산행코스 :
대동면사무소→대동초교 → 체육시설 → 육형제소나무 → 백두산정상 → 원명사 → 대동면사무소
5.91km 2시간41분 소요(트랭글 앱기준)
▲김해 백두산(金海 白頭山)개요 :
경상남도 김해시의 대동면 예안리·괴정리·초정리에 걸쳐 있는 산이며 해발고도 352.9m 이며
북서쪽의 신어산에서 산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북쪽으로는 동신어산, 남동쪽으로 백두산으로 이어진다.
낙동강가에 위치하며 산 동쪽으로 부산~대구 고속도로, 69번 지방도 등이 지나며 동쪽사면에 월명사가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金海김해)에 하동면(현재 대동면) 초정리에 있는 산으로 백두산이 기록되어 있다.
韓國地名總覽(한국지명총람)에는 백두산의 이칭으로 방산(舫山)을 수록하였다.
백두산(白頭山) 지명과 관련해 대홍수 때 산이 100마(碼) 정도 남아 유래했다는 설, 산경표 상의 끝점인
백두산에 대칭되는 시작점이 되는 산이라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김해 백두산(金海 白頭山)산행지도
▲김해 백두산(金海 白頭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4년 01월24일 일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오늘은 당직휴무인데 백두산이 김해에 있다고 해서 백두산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한라산에서 중국을 거쳐서 백두산까지 산행을 생각했지만 가는날이 장날이라 백두산에 오르지 못하고
장백폭포만 실컷보고 중국 연길(延吉, 옌지)에서 놀다가 왔지만 북한을 통해서는 나 생전엔 백두산엔 못갈것 같고
이름과 한자가 똑 같은 김해시 대동면에 있는 백두산을 찾아 오늘도 길을 나서본다
대동초교 입구 백두산 들머리
김해(金海)에 있는 낙동강 강가에 솟은 백두산은 낮지만 얕볼 수 없는 큰 산의 풍모가 느껴지는 이름이다
그 이유는 백두산은 북한의 백두산(2750m)과 한자까지 똑같은 이름을 가졌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산인데
중국 연길(延吉, 옌지)에서 백두산 천지까지 산행 할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났지만 오늘은 중국연길이 아닌
김해에서 백두산을 올라본다
대동면행정복지센터 주차장을 나와 도로 건너편 대동초등학교 입구가 들머리이며
정문 우측 백두산 등산로 가는길 데크 대문을 지나 데크계단길은 운동장을 오른쪽으로 돌아
백두산 정상(2.2㎞)·육형제 소나무(1.9㎞) 이정표에서 본격적으로 산길로 들어선다.
백두산 안내표지목
백두산 안내표지목을 따라 오늘도 산길을 걸어본다 산길을 걸어면 시인(詩人)이 시(詩)를 쓰듯이
나는 산길에서 기운을 받고 내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의 산길이기도 하다
백두산 산길은 누리길이라고 하는데 황토와 경사가 완만해서 누구나가 쉽게 운동삼아
아니면 유유자적(悠悠自適)걸을수 있는 백두산 누리길을 걸어서 천지(天池)가 없는 백두산을 향해 걷는다
백두산 초입구간
빨알간 황토길이 이어지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반겨주는 백두산 초입구간의 산길이다
군데군데 공동묘지처럼 여기저기 묘지가 많이 보이며 예전 조상들이 풍습이라 마을 뒷산은 어디가던 묘지는 많다
백두산이 위치하고 있고 들머리가 있는 김해시 대동면(大東面) 은
김해시의 동편 아래쪽에 위치하여 下東面(하동면)이라고 하며 11個里(개리)가 있었는데
1914년 月堂里(월당리)와 平村里(평촌리)를 합하여 月村里(월촌리)로 하므로써 10개리가 되었으며
1944.10.1 面名(면명)이 下等(하등)과 發音(발음)이 같아 대동면으로 부르게 되었다.
서쪽으로는 불암동,삼안동, 북쪽으로는 상동면, 동쪽과 남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부산광역시와 연접하고 있으며, 산해정(도지정문화제125호)과
예안리고분군(사적 261호)이 있는 역사의 대동면이라 한다.
첫번째 만나는 안내표지목
여기서 백두산 정상까지는 2.0km라고 안내되어 있다 마을 뒷산 같지만 산길은 고속도로 같이 잘 되어 있다
정말 누구나가 편안하게 운동삼아 산길을 걸을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단지 아쉽다는건 원명사 근처 입구에는
먼지털이가 없다는것
김해시 대동면(大東面)은 대도시 부산과 연접한 평야지대에 개발제한구역이라는 특성이 있으며
1920년대에 낙동 강변을 농지로 개척하여 1932년 제방을 축조하고
1967년 대동 운하를 개통하여 농업기반을 구축하였으며, 1970년초 장미재배를 시발로
현재 400여농가에 200ha에 장미, 거베라, 국화, 금어초, 안개꽃, 카네이션, 백합 등을 재배하여
년간 41억 여원의 수출과 국내 꽃 소비량의 8% 정도를 생산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꽃 생산지라고 한다
가야의 길
누리길은 가야의길, 명상의길, 편백의길 세갈래로 나누어 심신과 피로를 맑게 하는 색다른 산행길을 만날 수 있는 산길이며
또 다른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이 있는 백두산 누리길이다.
첫 구간인 ‘가야의길(0.9㎞)’로 들어서는데 김수로 왕탄생과 설화가 깃든 구지봉을 비롯해
가야유적 및 문화 등 흘러간 가야역사속으로 시간여행을떠나는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경상남도내의 누리길 조성사업은 2011년부터 63억 3,300만원(국비 42억 5,000만원, 지방비 20억 8,300만원)이
투입돼 총 8개 있으며 창원 천주산,진해 장복산, 양산 금정산·천성산, 김해 백두산 누리길
마산 국화꽃 누리길 만들어 져 있다고 한다.
산길주변 수목
백두산 산길주변 수목은 대부분 소나무가 주 수종이지만 참나무랑 잡목도 많이 보였다
소나무는 관리를 잘한 탓인지 토종 소나무랑 리기다소나무가 혼재되어 있었고 쭉쭉 뻗은 모습이 너무 좋다
보통 산꾼들은 대동면 백두산(白頭山·354m)과 동신어산(東神魚山·459.6m)이 연계 산행을 한다고 하며
낙동강 강가에 솟은 두 산은 낮지만 큰 산의 풍모가 있기에 그렇다고 하며
그 이유는 백두산은 북한의 백두산(2750m)과 한자까지 똑같은 이름을 가졌고
동신어산은 능선을 벗어나지 않고 북한의 백두산에 도착하는 낙남정맥의에 속해 있다고 한다.
쉼터
쭉쭉 치솟은 소나무를 보면 대한민국 기상을 보는듯 하며 여름날이면 여기서 시원한 솔향기 맡으며
사색(思索)을 즐기며 시(詩)한수 쓰내려 가도 좋을듯한 쉼터 같았다
여기서 보면 백두산 아래 있는 원명사(圓明寺)도량 전체가 보이기도 하는데 하산해서 한번 둘러 보아야겠다
나는 솔향기를 좋아한다 낙동강 바람에 솔솔 풍기는 솔내음은 머리 한가득 수심(愁心)을 잊게 만든다
소나무 숲길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나무 숲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하늘 높이 칫솟은 소나무의 풍채도 너무 좋다
백두산과 산어산 연계 산행은 대부분 산꾼들의 코스는 대동면행정복지센터에서 시작하여
대동초교 정문 → 백두산·묘련사 갈림길 → 백두산·괴령마을 갈림길~현 위치 번호 ‘김해 동부 13-2’ 표지목 사거리를 지나
백두산 정상 → 육형제소나무 정골 마루 쉼터 갈림길 → 신어산·지나 마을 갈림길 → 322봉 → 해맞이 바위 → 선무봉 →
이정표 갈림길 → 감천고개 → 새부리봉 → 동신어산을 거쳐 현대개발 레미콘 입구에 내려서
뒤 도로를 따라 소감 입구 정류장에서 마친다고 하며 산행거리는 약 10.5㎞이며 산행시간은 5시간 안팎 걸린다 한다.
원명사 길림길
여기서 백두산 산정까지는 1.03km라고 안내되어 있고 명상의 길로 연결 되어 있었다
요즘은 빠른 템포와 스트레스가 만연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종종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잃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명상을 치유의 한 일환으로 지자체마다 힐링숲을 조성하고 있는데
대부분 편백나무 숲길이다 물론 백두산에도 편백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명상의 길
가야의 길이 끝나고 이제는 명상의 길로 이어 졌다
안내글에는 숲과 흙 자연과 역사를 이어주는 아름다운 길이라고 하며 명상하듯 천천히 걷다보면 몸과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푸근한 길이라고 안내되어 있는데 나도 명상하며 천천히 걸어 보아야 겠다
머리속에는 명예퇴직을 결정한 마음이라 이후 어떤 직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까는 생각만 가득했다
현재의 직장에서 누렸던 것을 다 내려놓고 비우고 시작해야 하는데 명상길은 마음이 무거웠다
명상의 길
명상의 길에는 편백나무가 주 수종으로 되어 있고 여러사람이 손을 잡고 걸어도 좋을 만큼 백두산 산길은 넓다
백두산 산행지 가다보면 대로변 옆에는 김해 예안리 고분군이 있는데 1976년부터 1980년에 걸쳐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됨으로써 무덤의 성격이 일부 밝혀지게 된 가야시대 서민계층의 집단 묘역이다.
지금까지의 조사에 의해 밝혀진 무덤의 형태는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석실묘 등 매우 다양하며
이런 형태들의 무덤이 모두 300여기나 확인 되었다.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등 다양하고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100여구의 인골이 발견 되기도 하였다.
발굴된 수많은 인골은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형질학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데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록된 편두의 풍습이 남아 있는 인골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체육공원
체육공원에서 정각도 있었고 오늘도 주민 두분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백두산에도 가야국 김수로왕에 대한 길도 만들어 놓았는데 김수로왕의 가야 건국 신화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양쪽에서 모두 등장하는 것이 흔히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수록된 구지가(龜旨歌)와 얽힌 6개의 알 신화로 유명하다.
서기 42년 김해 구지봉에 사람들이 모여 구지가를 부르며 춤을 추자 하늘에서 알 6개가 내려왔고
알들 중 가장 먼저 깨어난 이가 김수로였으며 나머지 알 5개에서 태어난 아이가
각자 나머지 가야의 왕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백두산 방향의 데크길
몇일째 강추위가 몰려왔지만 오늘은 조금 덜 한듯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
데크산길에 낙엽들이 깊어가는 겨울을 느끼게 하고 헐벗은 가지는 지금 이 시간도 봄을 기다리고 있겠다
김수로왕의 다른 출생 신화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최치원이 썼다는
석이정전《釋利貞傳》을 인용했다고 하며 서술한 정견모주 전설이 있다.
여기서 김수로는 이비가지의 아들로 이진아시와 형제였고, 이름이 뇌질청예(惱室靑裔)였다.
앞 이야기는 김해 금관국 중심, 뒷편이야기는 후기 가야 체제에서 강국으로 떠오른 고령 대가야 중심적인 신화인 듯하다.
수로왕이 즉위한 지 1년이 지나 도읍을 정했는데 임시 궁궐 남쪽에 위치한 신답평(新畓平)을 둘러보더니
자리가 좋다면서 공사를 명령했고 43년 3월 10일 궁궐 외곽의 성벽 공사가 종료되어
44년 궁궐이 완성되자 그곳에서 정무를 보았다고 한다.
김해 장군차나무
백두산 산길 주변은 체육공원을 지나면 차나무가 많이 보이는데 김해에 뿌리내린 장군차 나무라고 한다
김해를 대표하는 살거리인 9품 중 2품인 김해장군차는 서기 48년 가락국 수로왕비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시집올 때 가져온 차 씨앗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하나 역사적인 기록으로 확인된 것은 아직 없다.
고려 충렬왕이 왜구 정벌 때 군사를 격려하기 위해 김해에 왔다가 맛과 향이 좋아 차 중에서 으뜸이라 하여
장군차라 부른데서 차의 이름이 유래한다고 하며
이천년의 향기를 지닌 김해장군차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통차로 삼국유사(三國遺事)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朝鮮佛敎通史(조선불교통사)金海邑誌(김해읍지)에 기록이 있다.
1987년에 군락지를 발굴하여 1999년부터 김해시가 묘목을 지역농가에 보급하기 시작했다하며
장군차 시범찻집도 시내를 비롯해 장유, 상동 등에 스무 곳 가까이 있으며
김해장군차 누리집이나 가야뜰 쇼핑몰 등에서도 장군차를 구입할 수있다.
장군차는 잎이 크고 두꺼워 차의 주요 성분인 카테킨을 비롯해 아미노산, 비타민류, 미네랄 등 무기성분 함량이 높고
장군차는 한때 가야황차로 명성이 높았다. 발효차라는 의미가 아니라 특유의 누런 빛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장군차는 현재 대성동과 동상동 산비탈에 자생 군락지가 있다고 한다.
백두산 육형제 소나무
수령이 100년으로 추정되는 이 소나무는 높이가 10~12m로 지역에서는 백두산 육형제 소나무로 불리고 있는데
백두산에서 제일 유명하며 육형제 소나무는 가지 두개는 벌서 썩어 내려앉고 있었다
아마도 머지않아 가지가 사라지면 4형제가 될듯하고 시간이 더가면 그냥 사진으로만 남아 있을듯 보였다
이는 김해시 구산동 구지봉에 하늘에서 내린 6개의 알에서 깨어난 형제들이
금관가야·대가야·아라가야 등 6가야를 세웠다는 전설과 흡사하다하여
김해지역인 옛 금관가야는 서기 42년 김수로왕이 세웠다.
이 소나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등산을 하던 한 시민의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고향이 김해인 김귀조씨는 대동면 백두산을 등산하던 중 줄기가 6개인 이 소나무를 발견하고
허성곤 김해시장에게 “소나무가 가야의 건국설화와 닮은 것 같으니 이를 세상에 알려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상표등록사항 알림 표지석
김해 백두산 육형제 소나무(제31류 소나무등 15건) 등록번호 제40-1319288호 출원일 2017년1월31일
등록일 2018년 1월 8일 김해시장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표지석 옆에 글은 다음과 같다
하늘 높이 늠름하게 뻗어 있는 이소나무(陸松)는 여섯가지기 형제처럼 의(誼)좋게 보이기에 六 兄 弟 라고 합니다.
모진 바람 雪寒(설한) 風(풍)을 견디며 정골(正谷) 고갯길 산(山) 마루에서 한 兄弟가
멋-지게 白頭山(백두산) 오르는 길을 가리키고 있지요 항상(恒常)건강(健康)하시고 즐거운 나날이 되소서
東面白頭山 山岳會(동면백두산 산악회) 글 金貴祚(김귀조)
돌맹이 탑
산길을 걷다보면 어딜 산에 가던 돌이 많거나 너드랑이 많이 있는곳에 어김없이 돌탑이 만들어 져 있고
나 역시 돌탑을 보면 가던길 잠시 멈추고 돌을 올려 놓고 소원을 빌어보기도 한다
김해 대동면을 흐르는 하천이 있는데 이름은 예안천(禮安川)이라고 하며
대동면 예안리 신어산 동쪽 산록에서 발원해 예안댐을 형성하고 남쪽으로 흐르다가
예안리 예안천교 부근에서 서낙동강에 유입하는데 상류는 신어산, 까치산,백두산 등에 의해 둘러싸여 있으나
하류에는 서낙동강의 범람에 의한 평야가 발달한다고 한다.
예안천 지명은 하천이 흐르는 예안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예안리는 행정구역 통합 때
시례리와 초정리 일부를 병합하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백두산 산정가는 길
백두산은 해발400m도 되지 않지만 산정가는 길은 제법 코가 닿을 정도로 오르막인데 오르다 보면
낙동강이 처음으로 보인는 곳이기도 하다 낙동강을 보면서 오르다 보면 비탈길을 걷는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에 빠져서 걷다보면 금방 백두산 산정에 닿는다
2,750m의 백두산은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은 한국의 기본 산줄기로서 모든 산들이 여기서 뻗어내렸다 하여
예로부터 성산(聖山)으로 숭배하였으며 또 단군(檀君)이 탄강(誕降)한 성지로 신성시해 왔었고
중국 금대(金代)인 1172년에는 영응산(靈應山)이라 하여 제사를 지냈으며
청대(淸代)에는 이곳을 왕조인 애신각라(愛新覺羅)의 발상지라 하여 숭배하였다.
백두산 산정(白頭山 山頂)
2,744m의 백두산은 그 모습으로 보면 백(白)자 자체의 뜻으로 보아도 좋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백두산 산정은 거의 사계절 동안 백설로 덮여 있을 뿐 아니라
산정부는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이루어져 있어 눈(雪설)이 아니더라도 희게 보이는 데서
그 이름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두산은 산세가 장엄하고 자원이 풍부하여 일찍이 한민족(韓民族)의 발상지로
또 개국(開國)의 터전으로 숭배되어 왔던 민족의 영산(靈山)인 것처럼
오늘 김해 352.9m의 백두산에도 희게 보였다 흰구름이 걸여 있어서 그렇게 희게 보고 싶었다
김해 백두산(金海 白頭山)352.9m
오늘 이렇게 백두산에 올랐다 2,744m 의 백두산이 아닌 천지가 없는 352.9m의 백두산 산정에 올랐다
여기 백두산 정상에서 동그랗게 데크가 전망을 보게 좋게 만들어 져 있고
태극기가 펄럭이며 왼쪽 끝이 천성산이며 시계방향으로 장군봉 금정산 고당봉이 조망되고
발아래 대감과 대동분기점 뒤로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김해 백두산(金海 白頭山)352.9m
경상남도 김해시의 대동면 예안리·괴정리·초정리에 걸쳐 있는 산이며 해발고도 352.9m 이다
북서쪽의 신어산에서 산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북쪽으로는 동신어산, 남동쪽으로 백두산으로 이어지며
백두산은 낙동강가에 위치하며 산 동쪽으로 부산~대구 고속도로, 69번 지방도 등이 지나며
동쪽사면에 월명사가 있는데 하산길에 둘러볼것이다.
백두산은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金海김해)에 하동면(현재 대동면) 초정리에 있는 산으로
백두산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며 韓國地名總覽(한국지명총람)에는 백두산의 이칭으로 방산(舫山)을 수록하였다.
백두산(白頭山) 지명과 관련해 대홍수 때 산이 100마(碼) 정도 남아 유래했다는 설과
산경표 상의 끝점인 백두산에 대칭되는 시작점이 되는 산이라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백두정(白頭亭)
백두산 산정에 있는 백두정 정각인데 잠시 앉아서 주위 풍경을 둘러 보았다
백두산이 있는 김해는 김수로왕이 가락국 터전을 잡기 전까지는 변한 땅이었고
김수로왕의 가야국 금관가야가 세를 확장시켜 고령의 대가야, 고성의 소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성주의 성주가야, 함창의 고령가야 즉 6가야와 연합하여 변한을 대신하는 이 지역의 맹주가 되었다.
이곳은 낙동강 하류 델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평야지대이며 낙동강 700백 리 물길이 굽이굽이 돌며
내려오다 막바지에서 부산의 금정산이 앞길을 가로막자 오른쪽으로 급선회 하여
오른쪽으로 김해 백두산을 감싸고도는 지점부터 대동면(옛 지명은 하동면)이 시작되었다 한다
고당봉(姑堂峰)과 낙동대교의 조망
낙동강 건너서는 부산지역인데 부산 금곡역이 보이며 금곡주공아파트도 조망이 되었다
금정산 고당봉은 뽀쪽하게 고당봉임을 금방 알수가 있으며 김해지역은 낙동강 주변 넓은 들판에 하우스가 보이는데
농업이 김해 대동면이 주력 사업임을 알수가 있가 있는데 500여ha의 농지및 132ha 하천부지에
부추, 당근, 배추, 무,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등 각종 채소를 재배하여 복지농촌 건설에 앞장서는
선진농촌 지역이며 선비정신의 표상인 남명 조식선생이 30년간 학문을 연마하고
강학한 산해정(도지정문화제125호)과 가야시대의 유물이 많이 출토된 예안리고분군(사적 261호)이 있는
문화유적의 보고인 역사의 김해 대동면이라고 할수 있다
백두산 산정에서 부산방향 바라본 조망
고당봉을 중심로 우측으로는 파리봉과 삼계봉이 그리고 백양산과 저 멀리 끝에 구덕산까지 보인다
낙동강은 김해와 부산 경계에서 흐르고 낙동이란 명칭은 가락의 동쪽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가야와 신라 천년 동안의 민족의 애환과 정서가 서려 있고 임진왜란과
6·25전쟁 낙동강 방어를 위해 많은 국군들이 전사한 비극을 간직하고 있는 강이다.
백두산 산정에서 김해방향 바라본 조망
웅달샘 처럼 보이는게 대동면의 시례저수지이다 시례저수지는 2000년10월4일부터 2004년12월31일까지
공사했다고 하며 신어산에서 시례저수지 주변으로 MTB라이딩을 많이 하고 있다 한다
저멀리 신어산과 앞의 장척산 금봉산도 조망이 되었고 백두산은 사방팔방 조망처 였다
백두산은 나즈막한 산이지만 조망은 1000고지가 넘는 산봉우리 처럼 조망처로는 끝내주는 곳이였다
하신길
백두산의 산정에서 산우가 가져온 커피 한잔과 백두산에서 바라보는 조망을 보고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에 빠져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있다가 이제는 하산길에 접어 들었다
나는 낙동강만 보면 낙동강 방어전투가 유독 많이 생각나게 하는데
낙동강 전투는 국가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국면에서 최대의 위기를 극복하고
오히려 공세 이전의 기틀을 마련한 작전이 되었기에 그렇다
하산길
백두산은 솔향기 가득한 산길이다 난 유독 소나무를 좋아하는데..유년기 시절 뒷산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서
놀아서 그런지 몰라도 소나무는 어릴적 부터 나의 친구였고 그늘이 되어 주었고 집에 키우던 소(牛)도 지켜주었다
소나무 아래서 논다고 소가 어디가는줄 몰라도 뒷산 소나무는 늘 지켜주었기에 그렇고 민족의 소나무이기도 하다
소나무 껍질을 떼내어서 배를 만들어 송진을 붙여 물에 띄우면 송진기름으로 배가 움직였다
백두산 누리길 안내판
백두산 아래 원명사 근처에 있는 백두산 누리길 안내판이며 여기를 들머리를 하는 산꾼도 많다고 한다
요즘은 둘레길이 지자체마다 많은데 맨 처음은 제주도 올레길인데 올레길 인기가 많아지자
지리산 둘레길을 비롯한 각 지역마다 둘레길이 많이 생겼다
안내글에 보면 누리길이란 개발제한구역을 중심으로 조성된 산책탐방로로서 국비를 지원받아
추진한 개발제한구역 주민지원사업이라고 되어 있고 누리길이란 누리다 즉 마음껏 맛보다 즐기다의 뜻으로
누구나 편하게 걷고 즐길 수 있는 소통의 길이라고 되어 있었다
원명사 대웅전(圓明寺 大雄殿)
원명사(圓明寺)는 김해시 대동면 대동로529번길83이며 대한불교조계종14교구 범어사 말사이며
원명사(圓明寺)가 자리잡은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같은 산명을 가진 백두대간의 마지막 지점으로
고산자 김정호 (古山子 金正浩)의 대동여지도 에 의해 북한 백두산에서 정남(正南)으로 곧바로 내려와
떨어지는 마지막 산 이 자리한 지점으로 민족 영산의 마지막 종착지였다.
원명사가 자리한 터 에는 오래전 가락국(駕洛國)때부터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예전 등복골이라 불리던 이 곳에 등복사(登福寺)라는 이름의 절이 있었다고 전해졌는데
최근에는 청기와편이 요사 뒤편에서 출토되 1392년 등복사가 유존해 있었음을 알수있다.
원명사(圓明寺) 종무소 와 설법전 전경
원명사(圓明寺) 유래를 보면 1920년대 경북 의성에 사시던 장(張)씨 성을 가진 "보수행" 보살의 삼촌이신
도암화상께서 백마산 "용흥사"가 페사되자 그곳 지장전에 모셨던 건칠 지장보살상을 모시고 용흥사 복원을
발원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부자집 며느리인 질녀에게 절을 짓고 지장보살님을 모실것을
부탁 하였으나 보수행 보살이 원불로 모시며 사찰 창건을 발원하던중 남편이 일본으로 가게되어
부산으로 와서 연락선을 기다리던중 밤마다 지장보살이 현몽하셔서 "백두산 복 받은 골짜기로 당신을 모셔 주고 일본으로는 가지않겠다' 라고 하셨다.
1995년 묘허스님과 재한스님이 차례로 주지를 엮임하면서 차차 안정되어가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원명사는 지장기도 도량으로 이는 원명사가 제2의 창건을 할 때부터 사찰 고유의 전통적인 기도형태를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지장기도 도량으로 원명사는 대웅전 이외에도 지장전과 노천지장보살 입상이 널리 알려저 있다.
원명사에 모셔진 지장보살중, 자모 지장보살상은 세계의 대지진이나 국난이 일어나기
며칠전부터 눈에서눈물이 흘러 내리는 이적을 보여 경남 일대에 입소문이 자자 했다 한다
圓覺梵鍾閣(원각범종각)
범종각에는 불전사물이 있는데 이들은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범종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홍고는 북으로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구름 모양의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나무로 만든 물고기 형상의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산행종료
천지(天池)가 없는 백두산 산정에서 낙동강(洛東江)을 품어 보며 원명사를 둘러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대동초등학교앞에서 산행을 마무리 했다
오늘 나는 2,744m 의 백두산이 아닌 천지가 없는 352.9m의 백두산 산정에 올라 보았다
올해 여유가 되면 다시 중국을 통해 백두산 천지에 가보려고 한다.
※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
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
한국1000산 신명훈 깊은솔
근교산&그넘어 국제신문
김해시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