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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비봉산(晉州 飛鳳山). 봉황(鳳凰)이야기 길을 따라 비봉산에서 선학산(仙鶴山) 까지 걷다 본문
진주 비봉산(晉州 飛鳳山)
봉황(鳳凰) 이야기 길을 따라 비봉산에서 선학산(仙鶴山) 까지 걷다
▲ 진주 비봉산(晉州 飛鳳山)
높이 : 142m
위치 : 경남 진주시 상봉동에 걸쳐 있는 산
▲ 진주 선학산(仙鶴山)
높이 : 134m
위치 : 경남 진주시 옥봉동에 걸쳐 있는 산
▲ 진주 비봉산(晉州 飛鳳山)나의 산행일 :
2023년10월06일 금요일 날씨 : 맑음
▲ 진주 비봉산(晉州 飛鳳山)나의 산행코스 :
말티고개 공영주차장→비봉산들머리 →전망정자 →의곡사방향2.3km안내표지목 →팽나무(포구나무) →
체육공원 →소망의돌 →비봉산 →소망의돌 →비봉산별자리 →대봉정 →봉황교 →선학산 목계단 →정자길림길
→상대배수장갈림길 →선학산전망대(선학산 정상) →말티고개 공영주차장
8.90km 3시간6분 소요(트랭글 앱기준)
▲ 진주 비봉산(晉州 飛鳳山)개요 :
시내에 소재하여 접근이 용이하고, 해발 138.5m의 자연 경관을 갖추고 있으며
강이식 장군의 신위를 모셔둔 봉산사가 있고 비봉산의 봄은 진주 8경 중 하나이다.
등산로가 개발되어 진주 시민의 휴식 공간가지 활용되고 있으며
진주시의 진산 비봉산 남쪽에 진주시가지가 발달 하였고, 비봉산 서쪽에 가마못이 있었으며 산을 중심으로
비봉 공원이 형성되어 있고 산 동쪽에 의곡사, 연화사 등이 있으며 산 서쪽 기슭에는 비봉루가 있다.
일설에 의하면 진주의 진산인 비봉산의 비봉은 봉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봉이 항상 날고 있다는 것으로
선비가 많이 배출된다는 뜻이다. 진양지의 월아산조에 이르기를 "산동쪽에는 비봉의 형국이 있어
옛부터 정승이나고, 산 서쪽에는 천마의 형국이 있어 장수가 날 것" 이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비봉산을 대봉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비봉산을 마주보는 상봉동 주택가 평지에 흙을 쌓아올려 산과 같이 되어 있으며
그 복판이 패여있는 곳이 있는데 마치 새들의 알자리 같이 되어 있는 것이 "봉알자리"인데
상봉동 911-1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봉알자리는 가야시대의 고분인 것으로 전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진주 강씨들 집안에서는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나고
대봉산(현 비봉산)밑에 웅거하여 권세를 부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대봉산 위에 봉암이 있기 때문이라고 일컬었다.
조정에서는 몰래 사람을 보내어 봉암을 깨어 없애고 봉은 이미 날아가 버렸다고 하니
날아간 봉을 다시 부르려면 알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하여 지금의 위치에 "봉알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 진주 비봉산(晉州 飛鳳山)산행지도
▲ 진주 비봉산(晉州 飛鳳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3년 10월06일 금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당직 휴무날 비봉산에 정상 표지석이 있다고 하여 비봉산을 운동삼아 올라본다
진주에 살면서 월아산은 운동삼아 자주 찾지만 동네와의 거리에 따라 자주 찾는 산이 다른듯 싶다
오늘 비봉산 산길엔 인근 주민 어르신들이 많이 보였고 정자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비봉산 가는 들머리
말티고개 공영주차장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약50m정도 올라가다 보면 안내표지목이 있는데
여기 좌측길을 따라 가다보면 비봉산 산정이 나오는 곳이다
말티고개는 진주시 옥봉동과 초장동 사이에 있는 고개인데 마치(馬峙)
말티고개, 말고개의 뜻으로 고도는 약 50m 정도이다.
경상남도 진주시의 남동쪽에 위치한 선학산 마루를 지나는 고갯길로, 경상남도 의령 방면으로 빠지는 길목이며
이 고개의 북쪽에 있는 바위 위에 말의 발자국 모양이 찍혀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어떤 장수가 말을 타고 넘나들 때 생긴 흔적이라고 한다.
비봉산 야생화(며느리 밑씻개풀)
며느리밑씻개는 꽃은 예쁜데 줄기에 가시가 촘촘하고 날카롭게 나있어 조금만 스쳐도 상처가 생긴다
가을에 피는 고마리 꽃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며느리밑씻개는 잎사귀가 삼각형이며 가시가 더 날카롭고 억쎄다
꽃이 작아서 렌즈에 담을려면 근접 접사 촬영해야 하며 이른아침에 촬영해야 활작핀 꽃을 촬영할수 있다
그것은 해가 뜨면 꽃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며 마치 꽃봉우리처럼 매달여 있다
비봉산 야생화(여뀌)
여뀌들에게도 우리들처럼 사촌이니 육촌이니 하면서 대 가족의 계보를 이어가는데
여뀌, 이삭여뀌, 흰명아주여뀌, 털여뀌, 가시여뀌, 산여뀌 등등 논이나 들에 그리고 산길에 흔하게 피었는 꽃이다
자세히 보면 털이 나 있어 털여뀌인듯 싶다
이렇게 산길을 걸어면 예전 유년기 시절 쉽게 보든것이 이제는 산야를 찾지 않으면 보기도 힘들어 졌다
여기 진주는 예전부터 큰산과 강이 있는 진주라 하였는데 큰 강은 이해가 되나 큰산은 아닌듯 싶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朝鮮時代 人文地理書)에 이첨(李詹)은 진주를 "큰 산과 큰 강의 성하고 맑은 정기로 된" 곳으로
이런 곳에서는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물이 난나고 하였다.
여기서 큰 산과 강을 하륜의 봉명루기(鳳鳴樓記)의 표현을 빌려 보자면
“비봉산이 북쪽에서 멈췄고, 망진산이 남쪽에서 읍한다.
긴 강이 그 사이에 흐르는데 동쪽과 서쪽 여러 산이 구불구불 사방을 둘렀다.” 하였다.
비봉산2.3km안내표지목
진주 건치연혁을 보면 본래 백제의 거열성(居列城) 거타(居陁)라고도 한다. 인데 신라 문무왕(文武王)이 빼앗아서
주(州)를 설치하였다.신문왕(神文王)은 거타주를 분할하여서 진주총관(晉州摠管)을 설치하였고,
경덕왕(景德王)은 강주(康州)라 고쳤다.혜공왕(惠恭王)이 다시 청주(菁州)라 고쳤고,
고려 태조(太祖)는 또 강주라 고쳤다.성종(成宗) 2년에는 목(牧)을 설치하였다가
14년에 진주라 고쳐서 절도사를 설치하고, 정해군(定海軍)이라 칭하며 산남도(山南道)에 예속시켰다.
현종(顯宗)이 안무사(安撫使)로 고쳤고, 뒤에 8목(牧)의 하나로 정하였다.
본조에서는 태조가 현비(顯妃)의 내향(內鄕)이라는 이유로 진양 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로 승격시켰는데,
태종(太宗) 때에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목으로 만들었다.
세조조(世祖朝)에는 진(鎭)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비봉산 야생화(개망초꽃)
북아메리카 원산이며 꽃의 모양이 계란과 비슷하다하여 계란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인들이 조선 침탈 목적으로 철도건설을 하면서 침목을 미국에서 수입해 올때 뭍어 온것으로 생각하고
일제 강점기에 꽃이 들어 왔기 때문에 대부분 개망국초라 부르는 꽃이다
비봉산은 조선의 개국공신 이첨(李詹)이 말한 진주에 큰 산 비봉산은 '큰 산'이라 평가 받는
해발고도 200m도 되지 않은 아주 아담한 산이며 크다면 차량이 다닐 만큼 넓게 조성된 에나 1길이다
비봉산 야생화(고들빼기꽃)
진주(晉州)는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에, “진양의 시내와 산의 훌륭한 경치는 영남에서 제일이다.” 하였고.
큰 산과 큰 강 이첨(李詹)의 서문에, “인물이 나서 국가에 도움 되게 하는 이는
큰 산과 큰 강의성하고 맑은 정기로 된 것이 많다.” 하였다.동방의 육해(陸海)이다.
예전 사람이 진양을 평하기를,“진양은 동방의 육해이다.
수산물과 토산물을 해마다 나라에 바치는 것이 영남 여러 주의 반이다.” 하였다.
비봉산(飛鳳山)이 북쪽에서 멈췄고, 망진산(望晉山)이 남쪽에서 읍한다 라고 기록 되어 있다고 한다.
팽나무(포구나무)
우리 유년기 시절 경상도 사투리는 포구나무라 하는데 산죽 또는 작은 대나무를 잘라 포구총을 만들어
포구열매로 대나무 구멍속에 넣어 쏘면 소리가 제법 화약 터지는 소리처럼 빵빵 하였다
비봉산에 얽힌 설화를 보면 강남도사가 등장하는데 그는 대봉산(비봉산) 위 봉황 바위 때문에
진주(晉州) 에 인재가 많다는 말을 남기고 역시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풍수형국에서 봉황형은
금낭경(錦囊經)에는 “소(牛)는 부(富)를 의미하고 봉(鳳)은 귀(貴)를 의미한다(牛富鳳貴)”고
하였는데 이는 봉황의 원래의 속성인 고고한 품격의 인격자, 성군의 의미를 풍수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풍수에서의 봉황은 주작(朱雀)으로도 표현된다. 즉 풍수에서 사신사의 하나인 주작은 단조(丹鳥)라고도 하는데
봉황의 일종이며 남방을 주관한다.
풍수의 방위론에서는 봉황이 주작의 형태가 되어 남방을 주관하지만, 풍수 형국론에서는 봉황 그 자체가 길조가 된다.
따라서 봉황형의 터에서는 대대로 고귀한 인물이 나온다고 판단한다.
특히 봉황은 오색의 깃털을 지니고 오음(五音)을 내며 오동나무에 깃들고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사는 새라 하여
이러한 땅에서는 고결한 인품을 가진 인물이 배출된다고 믿었으며,
봉황의 지세에 허결한 부분이 있을 경우 이를 보완해 주는 비보(裨補)가 행해졌다.
그 때문인지 고려 시대에는 진주의 한 문중이 정권을 장악하다시피 했다거나,
조선 초엔 삼정승과 육조판서의 반이 진주 사람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인재가 남치던 곳이었단다.
비봉산 체육공원(옥봉동 갈림길)
진주의 봉황설화는 대봉산이 비봉산으로 된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스승었던 무학대사가 진주에 조선을 위협하 인재가 많이 나오는
기운을 끊기위해 강남도사가 언급한 봉황 바위를 깨부수고 봉황이 날아 가벼렸다는 뜻의
산이름을 비봉산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봉황이 쉰다는 연못의 이름을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가마못)이라 바꾸기도 하였다.
또한 지관은 봉황의 날개쯤 해당하는 말티고개에 길을 내면
조정 인재가 배나 더 나온다 속여 봉황의 기운을 끊어 인재 배출을 방해했다고 한다.
때문인가, 조선 중기 사찬 지리지 진양지(晉陽誌)에 “마현(馬峴 말티)에 길을 낸 뒤
인재가 점점 그전과 같지 않다.”는 기록이 있다.
소망의 돌
소망의 돌에 대한 안내글은 전혀 없는데 그냥 손대고 비봉산 정기에 소망한번 빌어 보라는 나름 생각 해본다
비봉산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해서는 원래 명칭인 대봉산은 ‘큰 봉황새가 사는 뫼’라는 뜻인데
나라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그 반은 진주(晉州)에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진주는 국지인재부지고(國之人材之府庫, 나라에 인재를 공급하는 창고)로 명성이 높았다.
당시 무학대사가 대봉산이 있어 진주에서 인물이 많이 난다고 여긴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지만
진주의 기세를 꺾기 위해 봉암을 깨고, 봉황이 날아가 떠난 산이라는 뜻으로 비봉산이 됐다고
오늘날 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이름을 한번 예전으로 돌아갈 때도 된듯 싶다.
진주 에나길 그리고 삼정빌라 삼거리
진주에나길 1코스는 진주성-진주중앙시장-비봉산-봉황교-선학산전망대-진양교-남가람문화거리-천수교-진주성
까지라고 하며 2코스는 진양교-새벼리-석류공원-연암공과대학교뒤편-가좌산-망진산봉수대-천수교 까지 이다
봉황에 고나련 한 설화는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集賢面) 봉강리(鳳降里)는 대부분이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으로는 ‘지내천(池內川)’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아랫골, 새몰, 원동, 배실 등이 있다.
‘아랫골’은 아래쪽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새몰’은 1955년에 면사무소를 신축한 마을이라 하여 붙은 명칭이며,
‘원동(院洞)’은 원님이 서재에 다녀갔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
‘배실’이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 갈래로 뻗은 배나무 가지가 가리키는 자리마다
명당이 되었다고 해서 ‘배실’이라고 불렀다는 설과, 어느 해 큰 비가 내려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뒷산이 배(船)처럼 보였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봉황새 봉(鳳) 자에 내릴 강(降) 자를 쓰는 ‘봉강리’는 말 그대로 봉이 날아와 앉았다 하여
봉황골(鳳凰谷), 또는 봉강골(鳳降谷)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비봉산 숲길
봉강마을이라 불리는 곳에 어느 날 커다란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왔다.
마을을 휘휘 둘러보던 봉황은 좋은 자리를 찾아 둥지를 짓기 시작했다.
정성을 들여 아늑한 보금자리를 마련한 봉황이 알을 낳으려고 할 때였다.
마침 한 할머니가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평소 심술궂기로 소문이 자자한 이 할머니는
알을 낳으려는 봉황을 보자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렀다.
“훠이~ 이놈의 새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함부로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느냐.
훠이~ 저리로 썩 가버려라!” 할머니의 고함에 깜짝 놀란 봉황은 푸드덕 날아올랐다.
“이놈의 새, 썩 가버려라!” 할머니가 계속 소리를 지르자, 봉황은 애써 마련해둔 둥지를 그대로 두고는
진주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봉강마을을 떠난 봉황은 훨훨 날아
지금의 상봉동(上鳳洞)에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조용하고 아늑한 자리를 골라 둥지를 틀고 그곳에서 알을 낳았다.
마을 사람들은 봉황이 날아와 알을 낳았다 하여 그곳을 ‘봉알자리’라고 불렀다.
‘봉알자리’는 지금의 상봉동동(上鳳東洞)에 있는 봉란대(鳳卵臺)이다.
한편 봉황을 쫓아내 버린 봉강마을 사람들은 뒤늦게 그 잘못을 알고는 후회를 했다.
그리하여 마을 이름은 봉이 날아와 내려앉았던 곳이라는 뜻으로 ‘봉강’이라고 이름 붙이고
봉황의 자취를 기억하고자 했다. 봉강마을은 지금 집현면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지만,
만약 그때 당시 봉황이 봉강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길렀다면
지금보다 더 잘 사는 마을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마을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진주 비봉산(晉州 飛鳳山)142m
진주 시내를 둘러싼 산들은 해발고도 200m 이내 이며
봉산이 138.5m, 선학산 134.2m. 높다고 해야 진주 외곽에 있는 집현산 572m 로 제일 높다
지리산이 남해를 향해 내달리다 남강을 만나 진주지역을 만들었는데
봉황이 날개를 크게 펼쳐 진주를 에워싼 형상한 지형이며 그에따라
비봉산(飛鳳山)의 옛 이름은 대봉산(大鳳山)이었다.
진주 비봉산(晉州 飛鳳山)142m
비봉산은 해발고도 142m로서 집현산 줄기가 남향으로 달려오다가 남강 북단에서 형성한 산이다.
비봉산은 집현산·자굴산·황매산을 이어서 남덕유산에 이어진다.
그래서 輿地圖書(여지도서)에서는 "비봉산은 안음 덕유산으로부터 뻗어 와서
진산이 되었다.라고 수록하였던 것이다. 북쪽으로는 완만한 능선을 이루지만 남쪽은 가파르다.
비봉산은 진주 분지를 감싸 안듯이 양쪽 능선이 감아 돌아 남강에 이른다.
비봉산은 봉황이 양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를 듯한 풍수 형국을 하고 있어 비보를 하였던 것이다.
晉陽誌 (진양지)에는 "집현산으로부터 남쪽으로 와서 주의 진산이 되고
본주의 관기(官基)로 삼으니 곧 비봉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망진산(網陣山)이 있고,
서쪽으로는 죽동(竹洞)이 있으며, 또 대롱사(大籠寺)와 소롱사(小籠寺) 두 절이 있다.
모두 비봉으로 인한 것이요. 이러한 이름으로 한 것은 진압(鎭壓)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산길(선학산 방향)
하륜(河崙, 1347~1416)은 봉명루기(鳳鳴樓記)에서 "비봉산이 북쪽에서 멈췄고, 망진산이 남쪽에서 읍한다.
긴 강이 그 사이에 흐르는데 동쪽과 서쪽 여러 산이 구불구불 사방을 둘렀다."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진주에 "비봉산은 주의 북쪽 1리에 있으며, 진산이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비봉산(飛鳳山)은 시내에서 20여 분 거리에 위치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비봉산 남쪽에 진주시가지가 발달하였고, 비봉산 산복도로 아래에 비봉루가 있고
서쪽으로 옛 ‘가마못’이 있고 동쪽에 의곡사, 연화사 등이 있다.
비봉산의 야생화(구절초)
남강주변 특히 망경동 주변에는 대나무가 많은데 봉황새의 먹이가 바로 대나무 열매인데 진양교에서
천수교 까지 대나무숲이 조성되어 다시 봉황이 날아오게끔 한다는 설이 있다
봉곡광장에서 곧장 직진하면 가마못이 나오는데 지금은 연못을 메꾸어 봉원중학교와 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다
전설에 무학대사가 대봉산 바위를 깨트려 날아간 봉황이 다시 날아오지 못하게
서봉지였던 연못의 이름을 ‘가마못’으로 바꾸었다고 하며
봉황이 이 연못에서 목을 축이고 쉬어가지 못하게 펄펄 끓는 ‘가마솥’과 같은 의미를 가진
가마못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하고 있다.
비봉산 별자리 보는곳
비봉산 정상에서 봉황교로 가는길에 선학봉이 있는데 선학봉 산정은 비봉산 별자리 보는곳으로 되어 있다
앞쪽은 넓게 만들어 져 있고 뒷쪽길이라 구절초랑 잘 어우러진 작은 산길이 제법 가파르다
파란하늘의 흰구름과 구절초 그리고 초목들이 가을을 준비 하는듯 하다
비봉산 별자리 보는곳
비봉산 별자리 보는곳은 크다란 바윗돌을 북두칠성 형태로 앉쳐 놓았다
비봉산 별자리 북두칠성은 비봉산 유래나 봉황에 전혀 관계없다
비봉산 봉황에 관련 한것은 진주여고 앞에는 봉알자리가 있는데
날아간 봉황을 다시 부르기 위해 알자리가 있어야 한다며 산 맞은편 주택가에
봉알자리를 만들었다고 하며 진주 강씨 문중에서 관리하는 이 봉알자리는
가야 시대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비봉산 북두칠성 안내판
북두칠성 안내판은 야간에도 별처럼 반짝거리게 뒷면에다 태양광 전지를 붙여 놓았다
여기서도 일출을 볼수가 있어 새해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시민들이 월아산 다음으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
안내 내용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일곱돌은 비봉산 생태숲조성사업 공사와 신진주 역세권 공사 과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남덕유산에서 흐르는 물이 남강이 되듯이 비봉산 산마루는 덕유산을 거쳐 백두산으로 이어집니다
북두칠성을 닮은 이 바위들도 정확히 북쪽을 향합니다 북두칠성이 옛사람들의 길잡이 역활을 하였듯이
이곳 비봉산 북두칠성도 우리 삶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진주의 모든 마음이 비봉산으로 이어지고 하나 하나 우리의 바람이 여기에 모여 백두산 너머
하늘까지 어어져 별이 되길 바랍니다(진주시)
비봉산의 야생화(도깨비바늘풀)
경상도 사투리는 도둑놈풀이라 한다 유년기 시절 한바탕 뛰어 놀다보면 바지 가랑이에 가득 붙어 있는게 도끼비바늘이다
도깨비바늘풀은 다른말로는 도깨비풀, 털가막살이, 차귀사리 등으로도 불린다.
동물의 몸에 씨앗을 붙여 종족을 번식시키는 대표적인 식물이며 가시 돋친 열매를 맺는 통꽃 주변에
1 ~3개의 혀꽃(설상화)를 갖고 있는데 혀꽃이 없는 것은 울산도깨비바늘이라고 하며
제주도에서는 가을과 겨울철에 많이 보이고. 어린잎은 식용하고 전초는 생즙을 내어 독충에 물리거나
상처 난 데 발랐다고 하며. 한방에서는 귀침초란 이름으로 백반증, 청혈, 해독, 통풍, 간염 등에 처방했는데
최근에는 항암제로 연구된다고 한다. 꽃말은 "흥분" 바지가랑에에 붙어면 떼어내느라 흥분된다 진짜..
비봉산의 야생화(유홍초 留紅草 )
메꽃과에 속하는 1년생 덩굴식물. 남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로
1920년대에 한국에 유입되어 관상용이나 약재용으로 재배하고 있으며 변비, 치질, 복통 등에 효과가 있다.
남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로 고온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5월 중순에 씨를 뿌린다.
종자로 번식하며 아메리카 대륙 열대지방이 원산지로, 북아메리카 남부에도 귀화식물로 자라고 있다.
대봉정(大鳳亭)
대봉정 내부에는 편액이 하나 걸여 있는데 글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大鳳亭記(대봉정기)
옛 사람들은 산수가 수려한 곳에 정자와 누각을 지어 그 지역 의 지리형승을 널리 알리고 시인묵객들과 백성들이 올라
시문을 짓기도 하고 세파에 시달린 심신을 달래며 호연지기를 게르게도 하였다 지리산의 웅장한 대상과
덕유산의 한 회가 북쪽 대륙에서 몰아치는 모진 바람을 막아주고그맥 이 비봉산까지 뻗어내려 어머니의 품속처럼 아늑히 감싸 았으니이 터전이 천하의 명당으로 땅은 기름지고 백성은 순박하여 인재가 대대로 끊이지 않았다.
또한 호국충절의 신이 강해 불의에는 기꺼이 목숨 바치는 대쪽 같은 백성들이 천년을 면면히 이어 교육 문화예술
충절의 고장이 바로 우리 진주다 근래 진주시에서 비봉산 제모습찾기 사업에 정성 을 다해 원상을 회복하고
비봉산의 원래 이름을 되찾는 의 미에서 2013년 시설에 대봉정을 세우니 옛 사람들 의 정취에 부합하는 일이다.
정자에 올라보니 비봉산 대봉 이 알을 품고 천왕봉과 향적봉에서 발원한 남가람 푸른 물은 유유히 오백리를 감돌아
우리에서 청룡이 꿈틀대듯 크게 요동치고 흐르니 천하에 이보다 더한 명승이 또 어디 있으랴 이 정자에 오르는
우리고을 사람들은 이 맑은 자연 풍광에 세속적인 얽매임을 씻고 심신을 가다듬어 7만의 호국 영령이 잠든 진주성과
촉석루를 굽어보며 선열들의 국충절의 정신을 되새기고 올곧은 진주 정신을 배양하여 척추 만대에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이에 기문을 짓는다
2018년 1월 7일 진주향교 전교 심동섭 짓고 설원 김장호 쓰다
대봉정(大鳳亭)에서 바라본 진주시와 남강
저멀리 망진산을 주변으로 남강이 굽이 굽이 흐르고 그앞으로 진주성과 진주교가 보인다
나는 1992년 부터 진주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있는 제2의 고향이 된 셈이다
처음 진주를 찾은날은 1976년 초등학교 6학년 시절 개천예술제를 할때 완행열차를 타고 소풍 왔던 곳이다
어느듯 정년퇴직이 눈앞에 다가왔는데 세월이 쏜 화살 같다 하고 초로인생 (草露人生)이라고도 하는 뜻을 알겠다
대봉정(大鳳亭)
대봉정(大鳳亭)앞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판이 설치 되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봉정기
옛 사람들은 산수가 수려한 곳에 정자와 두각을 지어 그 지역의 지리형승을 널리 알리고 시인묵객들과 백성들이 올라
서문을 짓기도 하고 다끌 세상에 시달린 심신을 위로받기도 하고 또 호연지기를 기르기도 하였다.
지리산의 웅장한 기상과 덕유산의 안온한 회포가 북쪽 대륙에서 몰아치는 모진 바람을 막아 주고
그 맥이 비봉산까지 뻗어 어머니의 품속처럼 아늑히 감싸 안으니 이 터전이 천하의 명당으로 땅은 기름지고
백성은 순박하였다. 또한 호국충절의 정신이 강해 불의에는 기꺼이 목숨도 바치는 대쪽 같은 성품으로
인재가 대대로 이어지니 천년을 면면히 이어온 교육 문화예술 충절의 고장이 바로 우리 진주다.
진주시에서 비봉산 제 모습찾기 사업에 정성을 다해 원상을 회복하고 비봉산의 원래 이름을 되찾는 의미에서
2018년(成) 시월에 대봉정을 세우니 옛 사람들의 정취에 부합하는 일이다.
정자에 올라보니 비봉산에 대봉이 알을 품고 천왕봉과 향적봉에서 발원한 남가람 푸른 물은 유유히 오백리를 감돌아
우리 고을에서 청룡이 꿈틀대듯 크게 요동치고 흐르니 천하에 이보다 더한 명이 또 어디 있으랴.
이 정자에 오르는 우리 고을 사람들은 이 맑은 자연 풍광에 세속적인 얽매임을 씻고 심신을 가다듬어
7만의 호국영령이 잠든 진주성과 촉석루를 굽어보며 선열들의 우국충절의 정신을 되새기고 올곧은
진주정신을 배양하여 천추만대에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이에 기문을 짓는다.
• 위치 진주시 옥봉동 산 1번지 일원
○규모 전통 전망정자 A=43.74m •구조: 팔작지붕 (촉석루 형태) · 건립 : 2018.4. 2018. 11,
• 기문 : 진주향교원임전교 청송 심동섭 짓고 설원 김장호 쓰다
현판 소헌 정도준 쓰고 석은 이태조 새김
멧돼지 목욕터
비봉산에도 멧돼지들이 많은가 보다 산길을 만끽 하기 위해 탐방로 외에 좁은 산길을 접어 드니
멧돼지가 황토 목욕을 하고 인접 나무에 문질러된 흔적이 뚜렷하고 자주 내려와 목욕을 하는듯 싶다
봉황교(鳳凰橋)
말티고개에서 선학산과 비봉산을 연결하는 봉황교이다
말티고개는 진주시의 옥봉동에 위치한 고개로 비봉산과 선학산의 중간에 있는 고갯길이다.
조선 전기부터 진주와 삼가·의령을 잇는 대로(大路)였고 1592년 제1차 진주성 전투 당시
왜군은 의령·대곡을 거쳐 마현을 넘어 진주성을 공격하였다.
마현은 지세가 말머리(馬頭)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말띠 과부가 이 고개에서 죽어서
그 지명이 유래했다거나 진주시장에 와서 소나 말을 팔고 가는 고개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큰 고개라는 뜻도 있다고들 한다.
또한 晉陽誌(진양지)에 의하면 한 지관(地官)이 마현 중턱을 파서 길을 내면 인재가 전보다 배나 더 나올 것이다고 하여
진주 사람들이 마현에 대로를 내었다. 조선 초기에 진주 고을은 인재가 성하여 영남 인재의 반이 진양에 있었으나
마현에 길을 낸 뒤로는 인재가 점점 그 전과 같지 않았다.
대개 마현은 진주의 진산인 비봉(飛鳳) 형국의 좌익(左翼)인데, 마현에 대로를 개설하면서 비봉 형국의 좌익을 밟아
파괴함으로써 인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라고 하였다.
선학산 탐방로
비봉산에서 봉황교을 지나 목계단과 일반 평길이 나오는데 어디로 가던 한곳에서 만난다
진주는 이름마져도 아름다우며 진주는 유구한 문화와 임진왜란3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대첩으로
7만 호국영령들의 혼이 스려있는 역사적인 도시이며 산길을 걷다보면 진주시내 조망이 좋고
산길 주변에는 마삭줄이 파릇파릇 반겨준다
선학산 전망대0.65km
선학산은 진주시의 중심부 구시가지와 도동의 신시가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6~7부 능선까지는 밭으로 개간되어 있고 공동묘지도 다수 분포하고 있는곳이다.
주 등산로가 뒤벼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뒤벼리의 경치를 감상하려면 선학산을 이용하는 것이 좋으며
선학산은 특히 봄에는 복사꽃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좋다.
식생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소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는곳이다.
선학산 탐방로
진주시민들이 운동삼아 산길을 걷기 좋게 만들어 놓았다 가끔 거미줄 처럼 얽힌 산길 때문에 처음 찾는 사람은
간혹 길을 잃는 수가 있는데 어딜 내려오던 진주시내이다
시가지와 접근성이 뛰어나 진주 시민들의 체력 단련, 산책, 삼림욕 및 휴식을 위한 녹지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고
현재는 그린벨트 지역으로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
선학산 네거리 갈림길
선학산에서는 종종 산악 자전거 타는사람도 있어 산길을 걸을때 산악 자전거와 충돌 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도 있다
비봉산 전망대에서는 일출도 볼수가 있고 유등축제시 불꽃놀이를 전체적으로 잘 볼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 유등축제날 많은 사진작가들이 불꽃놀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하여 많이 모여든다
선학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강
10월8일 유등축제가 열리는 날이라 남강엔 유등이 떠있고 축제준비가 분주하다
선학산에는 정상 표지석은 따로 없으며 누군가가 나무에다 선학산134m(조규한) 팻말이 걸여 있다
아마도 조규한이라는 사람이 만들어 걸어 놓은듯 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진주교 풍경은 체코의 도시 프라하에서 보는
카를교( Charles Bridge) 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
하산길의 정자 (亭子)
정자(亭子) 하나가 정말 아담하게 산길 옆에 놓여 있어 잠시 휴식을 해본다
선학산은 그냥 운동삼아 휴식을 위하여 산행하는 작은 산이며
산정엔 체육시설도 있어 정말 운동하기엔 딱이다 산길 주변도 잘 정비 해 놓아서 걷기도 좋고
마음 휴식도 가슴속에 좋은 향기도 담아도 좋은곳이다
하산종점
말티고개로 하산길인데 산길 주변엔 이렇게 마삭줄이 숲을 이루고있어 언덕이 무너질 염려는 없겠다
하대동쪽에서 오르면 편백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고 옥봉동 말티고개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주 수종이다
선학산은 람덕정(동방호텔 건너편) 쪽에서 오르는 최단코스인데 진주의 남강과 진주시 전역이 한눈에 펼쳐지는곳이라
진주를 찾는 사람들은 선학산 전망대를 찾는다고 한다
산행종료
봉황교가 파란하늘에서 날개를 펼쳐 보인듯한 모습이며 밤이면 조명이 들어와 더 아름답다
이렇게 당직휴무날 봉황(鳳凰) 이야기 길을 따라 비봉산(飛鳳山) 에서 선학산(仙鶴山) 까지 걸어보며
산행종료는 말티고개 공영주차장에서 끝을 맺어본다.
※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한국1000산 신명훈
진주시 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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