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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봉황산(白頭大幹 鳳凰山). 화령(火嶺)에서 백두대간을 걸어 봉황새가 30년을 살았던 경북상주 봉황산(慶北尙州 鳳凰山)에 서다 본문

바다늑대/山 & 旅行

백두대간 봉황산(白頭大幹 鳳凰山). 화령(火嶺)에서 백두대간을 걸어 봉황새가 30년을 살았던 경북상주 봉황산(慶北尙州 鳳凰山)에 서다

바다늑대FORCE 2023. 8. 20. 16:43

백두대간 봉황산(白頭大幹 鳳凰山)

화령(火嶺)에서 백두대간을 걸어 봉황새가 30년을 살았던 경북상주 봉황산(慶北尙州 鳳凰山)에 서다

 

경북상주 봉황산(慶北尙州 鳳凰山)

    높이 : 740.8m

    위치 :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신봉리 상현리 상곡리 하송리에 걸쳐 있는 산

 

 경북상주 봉황산(慶北尙州 鳳凰山) 나의 산행일 :

     2023년08월20일 일요일. 날씨 : 맑음

 

 경북상주 봉황산(慶北尙州 鳳凰山) 나의 산행코스 :

   화령재 →백두대간 봉황산 들머리 →백두대간 능선길 →산불감시초소 →봉황산

 →비재방향표지 →낙엽송숲 →비조령

8.49km4시간35분(트랭글 앱기준)

 

 경북상주 봉황산(慶北尙州 鳳凰山)개요 :

봉황산은 상주 화령 북쪽에 우뚝 솟은 산으로 화령과 화남을 두고

가운데로 흐르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솟은 산이다.

1300여년 전 봉황새가 이 산에 날아 들어 30여년 정도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 했다 하며

인근에서는 “정상을 봉황머리처럼 원만하게 뻬어 올리고

좌우 양 날개를 길게 펼핀 형국이 봉화새 같아서”라고도 한다.

화령은 행정구역상 화서면이라 부르지만 지역 사람들에게는 화령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옛날 화령현 소재지였던 까닭이라고 한다.

그 당시 무사들이 살았다는 무동,현감이 살았다는 항헌,관곡을 보관했던

창고가 있었던 창안 등의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하며.

이 일대 특징은 지대가 250~400m로 높은 고원지대 여서 조그만 야산들도 300m가 넘고

사방어디에서나 올라 오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흐름은 화서 화동 모서 모동면을 지나 추풍령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상주에서는 이를 중화지구대라 이른다.

일교차가 심해 과수 농사가 잘되어 사과 포도 배는 당도가 높아 인기가 있다.

 

 경북상주 봉황산(慶北尙州 鳳凰山)산행지도

 경북상주 봉황산(慶北尙州 鳳凰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3년 08월20일 일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새벽5시에 기상해서 합천을 경유 경북상주시 화령재에 아침07시10분에도착하였다

주차를 하고서 산행채비를 하는데 벌서 백두대간 신의터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막 화령재에 도착한 대간팀들이 있었다  경기도 대간팀이며 새벽2시에 출발해서

백두대간 북진11구간을 종주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며 다들 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근데  내얼굴에서 연륜(年輪)이 표가 나는지 한분이 나에가 필승 거수경례를 하였다

내가 산에가면 늘 해병대 밀리터리 룩으로 산행하기에 그렇지만

네 안녕하세요 저는 해병507기라 하니

백령도 근무 하였고 몇기라고는 했는데 귀가해서 산행기 작성시 기억이 나지 않지만

 600자 후반 기수이긴 하였다

 

백두대간 화령(白頭大幹 火嶺)320m

백두대간 화령에 도착하니 아침7시 10분이였다 비포장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서 인근엔

막 도착한  대간팀들이 있었고 캠핑카도 보였다

화령(火嶺)이 있는 경북 상주시는 백두대간 남동사면에 위치한 서고동저형의 지형으로

낙동강 본류가 동부지방을 관통하여 물, 자연자원 풍부하고

경상북도 서북부 내륙지방으로,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역이라고 한다.

백두대간 화령(白頭大幹 火嶺)320m

오늘도 이렇게 백두대간 고개 표지석 하나를 인증으로 남겨 본다

나는 시간이 되면 북진이던 남진이던 상관(相關) 하지 않고 구간도 연결하지도 않고

그냥 나름 연결해서 백두대간길을 걷고 있다

화령(火嶺)

백두대간 화령의 안내표지판이며 내용음 다음과 같다

상주시 화서면에 있는 고갯길로서 원래 이름은 화령(化寧)이었으나

지금은 화령(火鈴)으로 바뀌었다.

이는 시대의 가치관이 변한 탓으로 보인다.

이 지역이 삼국시대부터 삼국이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이 많이 일어난 국경지역이었고,

김유신장군이나 견훤이 중요시 여겼던 군사 요충지였으며,

6. 25 때에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었던 지역이라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탓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로 불 화(火)자를 붙인탓에 평안한 땅 화령(化寧)이 불길이 끊이지 않는 봉우리인 화령(火鈴)이 된듯하다.

그러나 화령에 설치된 비석에는 화령(化寧)을 고려 때 이곳

일대를 관활하던 화령현(化寧縣)의 지명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옆에는 화령재라 표시된 비석이 세워져 있다

백두대간 표지

봉황산 들머리는 화령재에서 화령방향으로 2차선 국도를 따라 약500m정도 걸어가면 들머리가 나온다

백두대간은 북진 11구간은 지역인데 신의터재에서 무지개산 윤지미산 화령 봉황산

비조령까지 약20km 구간이며 대부분 대간을 걷는 사람들은 7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나는 화령재에서 비조령까지 절반만 북진하는 셈이 되었다

봉황산 들머리

대간꾼들의 시그널이 단풍처럼 매달여 있으며 산악사전거와 산악오토바이크 출입통제라고 되어 있다

아침 시간이지만 습도가 높은 탓인지  시작도 하기전에 온몸이 축축해졌다

봉황산이 위치한 경북 상주시는 낙동면 낙동리와 화북면 등지에서

마제석검·세형동검·동과·동령 등 청동기유물이 발굴되었다고 하며

따라서 서기전 7세기경부터는 이 지역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특히, 청동기문화가 발달하면서 소국(小國) 단계로 들어섰는데

그 뒤의 군현개편으로 미루어보면 이 지역에 여러 국가가 성립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한다.

백두대간 봉황산 초입구간

백두대간길도 국립공원 못지않게 산길이 잘 정비 되어 있었다 나는 행여 여름초목이 무성해서

산길을 가는데 애로점이 있을까 해서 정글도 하나 챙겨 배낭에 넣었는데 필요가 없어졌다

상주시 역사를 보면 산국사기(三國史記)에 보이는 사벌국(沙伐國) 이외에

변진 고순시국(弁辰古淳是國)·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변진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

변진접도국(弁辰接塗國)·호로국(戶路國) 등을 이 지역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사벌국은 3세기 후반 신라에 복속되었으며, 여타 소국도 비슷한 시기에 신라에 통합된 것으로 보이며

 524년(법흥왕 11) 이 지역에 상주(上州)가 설치되고 군주가 파견되었다.

이는 신라의 영토를 상하로 양분한 한 영역의 통치 중심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봉황산 영지버섯
산길을 걷다가 처음으로 만나는 영지버섯이다 영지버섯을 촬영하고 있으니
경기도 대간팀들이 관심이 있는지 여기 저기서 폰카메라로 촬영을 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불로장생의 효능을 가지고 있는 영지는 늙은 매실나무 10만 그루 중
2~3그루 정도에서밖에 채취할 수 없다는 희귀품으로
진시황이 갈구했던 불로초가 바로 이 영지라는 속설도 있다.
또한 영지버섯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태초에 중국의 반고왕(盤古王)이 불사약을 관장하는 신녀(神女)인 서왕모(西王母)의 생일 잔치를 벌이자
신선과 선녀들이 선과·선초를 바쳤지만 영지선녀는 늦게 와서 영지를 바쳤다.
서왕모는 크게 노하여 영지선녀를 천봉산으로 쫓아 버렸는데 그곳에 사는 가난한 청년
강원을 만난 영지선녀는 곧 그와 사랑에 빠져 강원에게 영지를 먹인다.
이를 안 서왕모가 영지선녀를 잡아오게 하자 영지선녀는 잡혀 가기 전에
강원에게 병을 치료하는데 쓰라며 영지균을 전해 주었다.
이로써 인간이 영지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백두대간 둘레길 안내표지목

속리산 둘레길이 여기 상주까지 연결하여 안내 해 놓은듯 하며 내가 걸어 온길은 상현리 반송이며 1.0km 이다

앞서 출발한 경기도 대간팀들도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고 나도 조금 쉬어본다

제주도에서 올레길이 만들어진 이후에 지리산 둘레길 부터 각 지자체에서 둘레길을 만들어

이름있는 산부터 이름이 없는산 까지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속리산 상주 1구간은 문장대 오토캠핑장~하송1리마을 까지라고 한다

봉황산 야생화(며느리밥풀)

며느리밥풀 전설은 옛날 어느 고을에 홀어머니와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살았는데

아들이 성장해 장가들었는데 며느리 또한 효부였다.

그런데 살기가 힘들어 아들이 남의 집 일을 하러 간 사이 시어머니의 구박이 시작됐다.

그러던 어느 날 가마솥에 밥을 짓는데, 밥이 잘 되고 뜸이 들었나 싶어 솥뚜껑을 열고

밥 한두 알을 입에 넣는 순간 시어머니가 “어른도 먹기 전에 밥을 먹는다.”며 장작으로

구타하는 바람에 죽고 말았다. 아들이 집으로 돌아와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더니

다음해 여름 무덤가에 빨간 입술에 밥풀 두 개 묻은 것처럼 생긴 꽃이 피었다.

며느리가 ‘서방님 저 억울해요’하는 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이 꽃을 며느리밥풀 꽃이라 불렀다고 하며 질투가 꽃말이다.

봉황산 야생화(닭의장풀)

닭의장풀 설화를 보면 어느 마을에 힘이 매우 센 두 남자가 살았었는데

둘이는 서로 힘겨루기를 자주하던 중 큰 바위를 안고 물속에 들어가 누가 오래 견디는지를 겨루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내는 닭이 울어 날이 새면 남편이 죽을까봐 닭을 울지 못하도록 닭장에 가서

닭의 목을 끌어안고 닭을 울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닭은 아내를 뿌리치고 울게 되어 아내는 목숨을 끊었다.

날이 새어 물 밖으로 나온 남편은 닭장에서

아내가 변하여 나온 닭의장풀이란 예쁜 꽃을 보았다고 한다.

봉황산 야생화(산기름나물)

산길을 걷다가 야생화를 보면 비슷비슷한게 많아 잎이나 꽃을 보며 구별을 한다

기름나물과 산기름 나물은 비슷한데  약초효능은 같다

정력강화제로 이용해온 약초이며  돌연사를 유발하는 혈전축적과 혈액응고를 막아주고

중풍등 풍사를 몰아내며, 항암작용을 한다고 한다

경북상주 봉황산(慶北尙州 鳳凰山)740.8m

정상 표지석은 白頭大幹 鳳凰山(백두대간 봉황산) 이라 되어 있으며

봉황산(鳳凰山 740.8m)은 백두대간에 솟은 봉우리이며

봉황이 날개를 편 형국이라고 하는데 주변은 수목으로 인하며 볼수가 없었다

봉황산 밑에 이 봉황새가먹는 대나무열매가 있는 대밭골(竹田)마을이 있으며

인근의 천택산, 팔음산, 백화산, 주행봉 등이 모두 이 산에서 뻗어 내렸고

넓은 들판은 중화지구대(中和地溝帶)에 속한다.

봉황은 청렴한 새라 오동나무에 깃들고, 대나무열매(竹實)만 먹는다고 하며

아무리 배가고파도 좁쌀은 쪼지 않는다고 하는데 봉황새에 깃든 이야기는

경남 진주 비봉산(봉대산)과 비슷하다

경북상주 봉황산(慶北尙州 鳳凰山)740.8m

봉황산은 속리산 남단에 위치한 산이라고 하며

북측 갈령고개에서 남쪽 방향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은 기암괴봉이 어우러져

산행에 지루함을 덜어 주며 서쪽으로는 구병산이 아른 거리고

북쪽으로는 두루봉이 남쪽으로는 윤지 미산이 연결되어 시원한 조망을 볼 수 있는곳이다

정상표지석 뒷면글씨는 尙州市廳 山岳會 一九九七 六 一(상주시청 산악회 1997.6.1)

봉황산 안내표지판

봉황산 안내글은 전문 개요를 참고하면 되며 백두대간길에는 늘 이렇게 구간 표시와 안내글이 있다

봉황산 아래 화령재는

삼국시대에 싸움이 많이 일어난 국경지역이었고

김유신이나 후백제 견훤이 중요시 여겼던 군사 요충지였으며

6-25전쟁 때에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이라고 한다.

봉황산 야생화(원추리)

원추리는 초여름날 군락으로 피는데 봉황산 산정근처에 황금색으로 피어 있다

금원추리라고도 하며 뿌리가 사방으로 퍼지는데 군데군데 방추형으로 굵어지고 적갈색을 띤다.

줄기는 곧게 서서 자라고 관상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되며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생즙을 내어 사용하며, 술을 담가서도 쓴다.

봉황산 야생화(까실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는 잎을 만지면 까실까실한 느낌이 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하고

쑥부쟁이는 전설이 있고 쑥과 부쟁이(대장장이)의 합성어이다.

쑥부쟁이 종류는 대략 15가지가 자라는데 전문가 아니면 구별이 쉽지 않으며

까실쑥부쟁이는 쑥부쟁이 중에서 꽃 크기가 조금 적고, 꽃빛깔도 다양하다.

꽃은 8-10월에 피고 주로 자주색이며 산방화서로 지름 12-30mm로서 거칠며

꽃잎은 1줄로 배열되고 화관은 하늘색이며 관모는 갈자색이다.

가야할 능선

화령에서 비조령까지의 백두대간길은 전혀 조망을 볼수가 없었는데 여기가 처음인듯 하다

여기서 부터는 급경사지라고 안내되어 있으며 로프구간이다

상주지역 일대의 특징은 지대가 250 - 400m로 높은 고원이어서 작은산 봉우리들도 300m가 넘고

상주에서는 중화지구대라는 지역은 일교차가 심해 과수농사가 잘 되며

포도, 배, 사과는 당도와 인기가 높다고 한다 오는길에 포도과수원이 많이 보인 이유이긴 하다

휴식

참나무 군락지 숲속에서 잠시  타는 목마름도 해결하고 매미소리와 함께 쉬어본다

오늘 폭염주의보라 한다 백두대간길을 어렵게 생각한 탓에 등산화가 아닌 긴목군화 같은걸 신었다

막상 산길을 걷다보니 조난될 위험없이 잘 정비된 백두대간길 이였다

매미소리 귓전으로 쩌렁쩌렁 한데  노래 하는넘들은 다 숫컷 매미라고 한다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귓청이 터져라 노래하고 있다

휴식

소나무 기운좀 받자 폭염속에 바람한점 없는 대간길이다

백두대간 능선은 여름날 걸어야 좋은데 이렇게 더워서 검정바지는 소금끼로 흰얼룩도 보였다

상주지역의 대간은 'ㄱ'자 형태로 크게 방향을 트는 곳에 화령재 방향 이정표가 있고

고도를 조금씩 높이는데 전망 좋은 곳에 산불 초소가 있다.

봉황산 아래 상현리인데 봉황산의 남쪽에 있고 새재골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속리산과 백두대간 능선

봉황산이 있는 상주시 화서면은 백두대간의 능선과 속리산의 남맥이 지나는 곳이며

해발 740.8M의 봉황산을 중심으로 천택산, 원통산 등 수려한 산봉우리로 둘러 싸여 있다

낙동강과 금강의 물줄기를 가르고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다는 표고 300m에 위치하고,
사통팔달의 교통의 요충지인 옛 화령현의 유서 깊은 고장이라고 한다

휴식

봉황산은 화서면의 진산이라고 하며 ‘봉황머리를 빼어 올리고 양 날개를 펼친 봉황’의 형세에

‘1300년 전에 봉황새가 날아들어 30년을 살았다’는 봉황산의 전설이 얹혀있는곳이다.

서쪽으로는 충북알프스의 구병산이 솟구쳐 있고, 저 멀리 북서쪽 아스라이 속리산 주능선과

우측에 갈령 터널이 눈에 들어오는 산행지 이다

하지만 쏟아지는 무더위 탓에 온몸은 땀으로 샤워를 한 모습이 되었다

낙엽송 숲길

낙엽송 숲이 나오면  비조령 근처이다 벌써 차량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봉우리들이 수많은 용틀임과 용솟음을 거듭하며

속리산까지 가쁘게 달려오다 다시금 힘을 비축하고 용솟음하기 위해

잠시 숨 고르는 구간이 ‘중화지구’이라고 하는데 중화지구를 지나 봉황산을 넘어면

산세는 차츰 급경사지가 많고 오르락 내리락  출렁거린다

비조령 인근 목계단

여기서 잠시 쉬면서 차량회수를 해야 하는데 백두대간 택시 호출을 해야 했다

화서(화령)개인콜택시이다 백두대간 큰재에서 버리미기재 까지 운행 해주며

관광버스가 아닌 자가용으로 산행온 사람들에서 큰 도움이 된다

백두대간 비조령(白頭大幹 飛鳥嶺)

비조령(飛鳥嶺, 비재)은 동쪽의 동관과 서쪽의 장자동 사이에 있는 령으로 백두대간 위에 있으며

새가 나는 형국이어서 불리는 이름이라고 한다. '비스듬하다, 비탈, 벼랑' 등의 뜻으로 쓰이는 말을

한자로 표기할 때는 '천(遷, 애(崖), 별(別), 성(星), 비(飛)' 로 나타난다.

상주지역에서는 '비루, 비알' 이라고 한다. '비탈' 과 '비루'를 땅이름에서 한자로 옮길 때

'비(比, 飛 琵}' 를 썼는데 특히 '비(飛)' 가 많이 쓰였다.

백두대간 비조령(白頭大幹 飛鳥嶺)
오늘 백두대간길에서 두개의 고개 표지석이랑 인증을 하였다 
비조령 안내표지판을 보면  마을 유래(비조)에 대하여 설명을 해 놓았는데
비조투림(飛鳥投林)의 좋은 터가 있다는 비조령 아래에 있어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 한다.
북동쪽 청계산에 후백제 왕 견훤이 쌓았다는 성산산성이 있고
대궐터 · 차력굴 · 용암 · 주춧돌 · 우물터 등이 있다고 기록 해 놓았다.

 

산행종료

화령(火嶺)에서 백두대간을 걸어 봉황새가 30년을 살았던 경북상주 봉황산(慶北尙州 鳳凰山) 산행은

화령재에서 시작하여 백두대간 북진 11구간 반만 걸었지만 무더위속 지친몸 어깨엔 무거운 배낭

지금 살고 있는 인생살이와 비슷하지만 아우렐레우스의 명상록 글처럼

내일은 또 인생을 보너스라 생각하고 열심히 나에게 충실하자

 

차량회수 택시비18000원

 

※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한국1000산 신명훈

명산플러스 경남일보. 산&산 부산일보

상주시 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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