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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월미산(月尾島 月尾山).섬의 모양이 반달 꼬리처럼 휘어져있는 월미도에서 인천상륙작전(仁川上陸作戰)전초기지를 걷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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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월미산(月尾島 月尾山).섬의 모양이 반달 꼬리처럼 휘어져있는 월미도에서 인천상륙작전(仁川上陸作戰)전초기지를 걷다

바다늑대FORCE 2022. 10. 6. 21:43

월미도 월미산(月尾島 月尾山)

섬의 모양이 반달 꼬리처럼 휘어져있는 월미도에서 인천상륙작전(仁川上陸作戰)전초기지를 걷다

 

▲ 월미도 월미산(月尾島 月尾山)

 높이 : 108m

 위치 : 인천광역시 중구에 있는 육계도(陸繫島)

 

 월미도 월미산(月尾島 月尾山) 섬산행일 :

   2022년10월4일 화요일 날씨 : 맑음

 

 월미도 월미산(月尾島 月尾山)나의 섬산행 코스:

  월미바다역승차→박물관역 하차→월미공원→월미산 들머리→예포대→

월미전망대→월미산 정상→월미전통정원→월미공원역 승차→ 월미바다역하차

3.5km 40분소요

 

 월미도(月尾島) 개요 :

인천시 중심지에서 서쪽으로 약 1km 거리에 있으며 남쪽에 있는 소월미도와 함께 인천 내항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

섬의 모양이 반달 꼬리처럼 휘어져 있다고 하여 월미도라고 하며 섬의 최고지점은 94m이다.

1883년 인천 개항을 전후해 외세의 각축장이 되었으며

대한제국 말기에는 장미섬(Rose Island)이라는 명칭으로  외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군사기지로 사용되었고, 6·25전쟁 때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로 중요시되면서

미군기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1962년에 석축제방으로 매립되면서 해안도로를 건설해 인천의 관광 코스가 되었다.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인천항 방파제 주변의 여러 시설물을 정비하면서

시민의 휴식처와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 너비 20m, 길이 0.8km의 해안도로를 따라 만남의 장

교환의 장, 문화·예술의 장, 풍물의 장 등 4구간이 있고, 이 거리의 해안도로변에는 각종 카페와 횟집이 줄지어 있다.

또한 바다 주변을 순회할 수 있는 유람선이 있고, 서해의 낙조를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까운 거리에 각종 오락시설과 해수욕장·호텔 등이 잘 갖추어져 있어 인천시민을 비롯한

수도권 시민의 1일관광지로 애용되며 세관검역소·측후소·무선전화국 등이 있다. 면적은 0.66㎢이다

 

 월미도(月尾島) 관광안내도

 월미도 월미산(月尾島 月尾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2년 10월04일 화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개천절날 인천에 딸아이랑 미리와서 차이나타운 그리고 동화마을 자유공원을 둘러보고

4일 인청공항 10시 독일로 떠나는  딸 아이 배웅을 하고서

진주출발전 내자(內子)랑 월미도를 둘러보기 위해 바다열차를 타고 월미도 한바퀴를 하였다

떡본김에 제사지내는 셈이지만 산행기 하나인 섬산행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월미도바다열차

월미도바다열차 내부에서 바로본 모노레일이며 화창한 가을날 풍경이다

월미바다열차는 2019 한국관광공사가 제시한 한국인이 가봐야 할 곳 한국관광100선에 선정된
인천 월미도를 순환하는 국내 최장 도심형 관광모노레일이다.

총 운행거리 6.1km이며, 평균시속 9km의 속도로 월미도를 한 바퀴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42분 정도 소요된다.

월미바다열차의 궤도는 지상으로부터 7m에서 최고 18m 높이까지에서
월미도 경관 및 인천내항, 서해바다와 멀리 인천대교까지 조망할 수 있으며

특히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낙조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어 인천의 대표하는 새로운 관광명물이다.

월미도바다열차

동화마을 노상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5분정도의 거리를 걸어 월미바다역에 도착하여

무인승차권발급기 성인 2인 16000원(성인 8000원) 생각하기엔 좀 바싼듯 싶다

역무원이 승차권 확인후 3층으로 올라가서 기다리니 월미바다열차가 도착해서 승차하니

관광해설사가 열차 운행중 내내 월미도 관련 그리고 보이는것 모두 소개해 주었다

1경 사일로벽화

월미도 8경중 1경중 하나로서 사일로 벽화이며 벽화가 그려져 있는 원통형 대형건물은 곡물저장고인 “사일로”이다.
높이는 48m로 아파트 22층과 같으며 외벽에 새겨진 벽화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벽화로

2018년 12월 “기네스 북”에 등재되어 인천의 자랑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 벽화는 전문가 22명이 약100일 동안 86만5400ℓ의 페인트를 사용해 그려졌으며
넓이는 2만3689㎡로 이전 기록인 미국 콜로라도 푸에블로 제방의 벽화보다 1.4배 넓고

2019년 3월에는 독일 아이에프 디자인 어워드 본상도 수상했다 한다.

상륙하는 군인조형물

인천상륙작전은 미국 극동사령부 해군정보장교 클라크 대위와 한국 해군 정보부대

KlO-8250 부대원은1950년9월 15일 01:40에 팔미도 등대에 불을밝힌다.

이 등대불을 신호로 유엔군은 261 척에 달하는 연합함대가 05:00 부터 공격준비 사격에 이어

상륙주정(LCVP)20척에 분승하여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06:55에 월미산 105고지 정상을 탈환하였고, 08:00 워미도를 확보 한 후

정오 쯤 소탕작전을 완료 하였다. 월미도 상륙작전시 미해병대의 총 피해는 부상자 17명이 었으며

적사살 108명, 포로 136명 을 생포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월미공원

월미공원역에 하차하여 월미도 월미산 산정에 올라 반대편 월미전통공원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월미산은 인천상륙작전 격전지로서 반세기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자연의 숲과 다람쥐, 부엉이 등 야생동물의 천국이 된 소중한 산이다.

2001년 산책로를 만들어 “월미공원”으로 새롭게 탄생하였고 월미산 정상에 올라가며 인천항과 서해바다

인천국제공항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월미산 정상 안내표지목

월미도는 1980년 이후 관광지가 조성되어 각종 위락시설과 해수욕장·호텔이 갖추어져 있고

1989년부터 꾸며진 문화의 거리에는 문화행사인 월미축제로 시민의 문화의식 고취와

지방예술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있으며, 인근의 놀이공원과 함께 각광을 받는 곳이다.

2001년 6월 월미도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었고, 거리의 길이는 770m, 폭은 20m이며

이 거리의 끝지점에 바다로 난 길이 있으며 문화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으로는 바닷가

왼쪽으로는 카페와 횟집이 즐비하며 이 곳에서 매년 ‘월미관광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월

미관광문화축제 중에 풍어제, 인천근해 갯가 노래, 뱃노래, 은율탈춤, 국악제 등

전통적인 춤과 노래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월미산 들머리

주중인데도 많은 지역주민들이 운동삼아 월미산을 걷고 있는것을 볼수가 있었고 대부분 어르신들이 많았다

월미도 명칭 유래를 보면 월미도는 월미도(月尾島), 어을미도(漁乙未島·於乙味島), 어미도(於味島), 얼미도(突尾島)

얼도(突島)·월성(月星) 등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한때 제물도(濟物島)라 부른 적도 있으며 ‘얼’이라는 글자는 ‘얼다’ 곧 ‘사랑하다’, ‘어르다’의 의미이고

‘미’는 ‘물[水]’를 의미하기에 결국 ‘물이 섞이는(어르는·휘감아 도는) 섬’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한말에는 Rose Island(로즈 아일랜드)로 외국에 알려지기도 하였다.

월미산 정상 안내표지목

보통 만조 때 바다로 둘러싸인 공간을 섬이라고 하지만, 월미도는 1920년대 돌축대를 통해 연육이 되었다.

그러나 월미도의 역사·지명이 인천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육속화하기 전의 이 섬의 둘레는 1㎞, 육지와의 거리 1㎞의 아담한 섬이었으며, 남쪽에는 소월미도가 있었다.

소월미도와 함께 인천 내항의 북서쪽 방파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산정으로 가는 숲길

우리 내외가 가는길을 환영해 주는듯 날씨가 너무 맑았고 공기가 너무 신선하였다

6.25 전쟁시 월미도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였고 상륙작전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평화롭게 걸을수 있다는걸

잊지 말아야 할것이며 월미도 포격으로 인해 원주민 100여명이 희생되어 지금은 추모비가 있다고 한다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6월 29일 서울이 함락되고 북한군의 진격이 가속화되자

한강 방어선을 시찰한 맥아더(Douglas MacArthur) 원수는 북한군이 남진을 계속할 경우

장차 인천으로의 상륙작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 장군이 한강전선을 시찰하고 복귀한 직후인 1950년 7월 첫주에

그의 참모장 알몬드(Edward M. Almond) 소장에게 하달한 지시와 더불어 조기에 계획이 진척되었다.

이 계획은 작전참모부장 라이트(Edwin K. Wright) 준장이 이끄는

합동전략기획단(JSPOG: Joint Strategic Planning and Operations Group)에 의해 연구되었으며

블루하츠(Blue Hearts)라는 작전명이 부여되었다.

이에 따라 그는 미 지상군의 참전이 결정된 나흘 뒤에 이미 일본에 주둔한 미 제1기병사단으로

7월 하순에 인천상륙작전을 단행할 수 있도록 상륙훈련을 지시하였다.

월미도 사랑나무

뿌리가 서로 다른 두 나무가 가지를 뻗어 하나가 되어 자라는 나무를 연리지라 하며

지극한 효성 또는 남녀간의 사랑등 소중한 사랑을 이루는 나무라고 안내글에 써 놓았다

月尾公園歸還紀念碑(월미공원귀환기념비)

인천 앞바다의 어여쁜 눈썹, 월미도가 반세기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분쟁과 단절의 바다 黃海가 평화와 교류의 바다로 현신하는 찰나, 월미도가 눈부신 자태로 돌아왔다.
월미도는 보았다.
일본 및 서구 열강이 어떻게 은둔의 왕국, 조선을 위협했는가를!
그리고 월미도는 온몸으로 피 흘렸다, 한국동란의 한복판을 가로 지르면서!
월미도는 그 동안 내내 戰友의 땅,
서해용왕님도 숨고 사람의 발길도 끊어졌다.
아, 우리 모두 월미도의 귀환을 축복하자!
그 비둘기의 偉音이 한반도 전체로, 동아시아 전역으로, 그리고 마침내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산되기를 기원하며

월미공원을 삼가, 인천시민과, 평화의 기획에 기꺼이 참여할 세계시민께 바치노라.  

예포대

고종황제 즉위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각국 대사 맞이하는 포대를 월미도에 설치 했다 기록이 전한다고 하며

예포(禮砲) 1기를 전시하고 있었다 동판에는 한국최초 인천최고 100선 예포

월미도에 설치한 예식용 대포라고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대대적인 작전이었고 그러므로 미 극동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손원일 해군 참모총장 에게 북한군 첩보 활동을 위한 부대 창설을 요청했다.

함명수 소령, 임병래 중위, 응시욱 하사등 17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해군 특수첩보대가 비밀리에 창설된 배경이다.

해군첩보대는 8월 18일 01:00에 어선을 타고 부산항을 떠나 6일째인 8월 24일 서해 영흥도에 도착했다.

작전 보안을 위해 첩보작전의 거점인 영흥도에 도착해서야 함소령은 대원들에게

작전(작전명: X-Ray)의 목적 과 구체적인 임무를 하달 하였다.

특수첩보대 대원들은 3개조로  나뉘어 인천과서울 수원을 왕래 하면서 북한군에 관헌 첩보활동을 펼쳤다.

인천상륙작전 개시전날 영흥도를 거점으로 첩보활동을 펼치던 특수첩보대에 철수명령이 떨어졌다.

철수준비를 서두르던 02:00 한국군의 첩보활동을 뒤늦게 감지한 북한군 1개 대대가 영흥도를 기습했다.

흥도에는 17명의 첩보대원과 영흥도 청년방위대원 6명 만 남아 있었다. 첩보대원과 청년방위 대원이

적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는 동안 나머지9명의 첩보 대원들은 해안에 정박해 둔 마지막 보트를 타고 탈출했다.

월미전망대로 가는 산길

시원한 산길을 걸어면서 6.25 전쟁사를 생각하면 맥아더 장군이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을 공격하여

1945년 8월 일본을 항복시키고 일본점령군 사령관이 되었다.

6•25전쟁때는 UN군 최고사령관 으로 부임하여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하였다.

하지만 중공군과 전면전을 두고 트루먼 대통령과 갈등을 빚어 해임되었고 "노병은 죽지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한때 인천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장군 동상을 철거 시위를 하고 불을 지러는 사건도 있었는데

이념이 어디까지 인가를 묻고싶다.

월미전망대

월미산유리전망대는 월미산 108m 정상에 위치한 전망시설이며

3층 높이(23m)의 유리전망대는 서해의 낙조, 야경과 함께 인천항 주변의 섬

인천대교 연안 여객선터미널 등을 조망할 수 있으며 월미산 정상까지는 도보로 약 30분 정도 소요되고

셔틀버스(물범카)를 이용하면 15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2005년 10월 준공되었으며, 전망대에서는 영종도 등의 섬과 인천항 그리고 인천대교의 위용을 조망할 수 있고

봄이면 산 전체를 수놓는 벚꽃이 장관이라고 한다.

전망대로 올라가서 무엇이 보이는지 어떤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지 보자

월미전망대 망원경

월미도는 1895년에는 영국 순양함 한척이 월미도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군인 448명이 익사하였으며

6.25한국전쟁시 한국 해병대 그리고 맥아더장군이 함께 기억되는 인천상륙작전의 최대 격전지이기도 하다.
월미도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은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빗살무늬토기와 갈돌, 석촉, 토제 어망추 등이

발굴되고 있으며 이어 청동기시대, 고려, 조선시대 유물과 함께

6.25한국전 당시 총탄등도 심심치 않게 발굴되고 있다고 학계는 보고하고 있다고 한다.

인천내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인천내항은 1883년 제물포항으로 개항, 1974년 갑문이 완성되어

10m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하고 대한민국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인천신항 등이 신축되어 인천내항의 이용률 및 유휴지가 많아짐으로써 항만재개발 사업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 옛 곡물창고를 복합문화공간인 ‘상상플랫폼’으로 재탄생 시켰으며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체험형 도시관광명소, 복합 업무지구 등으로 재개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인천대교의 조망

인천대교는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에 있는 다리로 중구 운서동 영종 나들목과 연수구 송도동 연수 분기점을 연결하며

제2경인고속도를 구성하는 고속도로 교량이다.
2005년에 착공하여 2009년 10월 16일에 완공, 2009년 10월 19일부터 차량 통행이 시작되었고

총 교량 구간 18.35km이라고 한다.
인천대교는 수많은 국내외 토목 전문가들이 “세계 3대 아름다운 다리”로 꼽는다.

특히 2005년도 착공 당시부터 영국 금융전문지 유로머니(Euromoney)가 선정한 ‘올해의 PF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도에는 일본토목학회가 주최한 ‘다나까상’도 탔으며, 2011년도에는 미국토목학회가 선정한

‘올해의 OCEA상’을 수상하였다. 그 중 세상에서도 ‘가장 야경이 아름다운 다리를 꼽는다면 바로 인천대교’를 꼽는다.

월미산 정상 안내표지목

짧은 시간에 많은것을 볼수 있는 월미도 걷기와 바다열차 탑승하여 구경하면 월미도를 한바퀴 도는 셈이 된다

월미도는 육지와 연결되어버린 섬 육계도(陸繫島)이며  제정 러시아의 저탄소가 있었으며

미국 스탠더드 정유사의 저유소. 일제강점기 때 돌 축대가 놓여져 육지와 연결되었고

그 이후 60년대에는 해안도로가 놓아지고 있으며 일본군들이 석탄을 보관하기위해 편법임대로 사용하다가

일제강점기에는 한때 군사기지로 이용되었으며 6·25전쟁 때는 인천상륙작전의 최대 격전지였고

이후 오랫동안은 국제연합군이 주둔하기도 하였다

다음은 국방부로 넘어가 해군 제 2함대 사령부와 빨간색으로 치장한 위풍당당한 해병대 정문이

지금은 변신한 월미공원 정문 자리에 있어서 특유의 절도 있는 해병부대원들을 볼 수 있었던 곳이 였다고 한다.

휴식

월미산 산정으로 가는길에는 잘하고 있어 등 여러가지 아름다운 단어가 있는 조형물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시원한 해풍에 나무가 주는 향기와 함께 정말 힐링하기 좋은 월미도라고 생각한다

월미공원은 과거 50년간 군부대가 주둔하다 지난 2001년 10월 시민의 품으로 개방되었다.

6·25전쟁때 함포사격으로 초토화 되었던 지역이 군사통제구역으로 50여년간 묶였던 탓에

259종에 이르는 각종식물과 동물들이 자생 할 정도로 생태계가 온전하다.
월미공원은 2008년쯤 정비가 끝나는데 인천시는 2004년부터 178억여원을 들여 월미공원 492천㎡ 면적에

궁궐, 양반, 민가 등을 갖춘 한국전통정원지구 기반 조성공사를 끝냈다

월미도 월미산(月尾島 月尾山) 108m

산과 바다를 품어라 월미산 정상 이라고 써 놓았고 산과 바다를 품다는 섬산행의 묘미중 하나이다

내가 산에 오른 산 중에서 해발고도가 제일 낮은 산인듯 싶다 108m 108번뇌

월미도는 본래 인천도호부 관할이었으나 1653년(효종 4) 용종진이 설치된 후 그에 편입되었고

월미도에는 조선 후기 임금의 임시 거처인 행궁이 설치되었고, 행궁은 존속기간 내내 영종진 관할이었다.

월미도 행궁은 대체로 18세기 전반까지는 유지된 듯하다.

총독정치가 시작되면서 월미도를 풍치지구(風致地區)로 지정하고 월미도 중턱에 순환도로를 축조하였고

철도국은 목욕탕을 개설하고 일본 요정인 용궁각(龍宮閣), 호텔, 동물원, 하계야영 캠프촌 등을 만들어

임해유원지로서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월미도 월미산(月尾島 月尾山) 108m

바닥에는 동판으로 월미산정상 해발108m되어 있어 월미산 산정 산행 인증해보았다

인천항 옆 월미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면적이 월미산이며 월미산을 중심으로 대규모 휴식 공원인 월미공원이 있다.

월미산 일대는 원래 군부대가 있던 곳으로 민간인 출입이 덜했던 탓에 생태 환경 보전이 잘 되어 있는 곳으로

탐방 및 산책로로 인기라고 하며 월미산을 따라 둘레길 조성도 잘 되어 있으며

월미산 정상에 오르면 서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월미공원 전망지구가 있다.

월미산정에 있는 인천상륙작전의 결과

인천상륙작전의 진정한 의의는 유엔군이 우회 기동을 통해 북한군의 병참선을 일거에 차단하였으며

이로 인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의 계기를 조성해 주었다는 점이다.

또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해 인천의 항만시설과 서울에 이르는 제반 병참시설을

북진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인천상륙작전에 이은 서울 수도탈환의 성공은 심리적으로 국군 및 유엔군의 사기를 크게 제고시키고

북한군의 사기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리게 하였다는 점이다.

월미전통정원 방향 하산길

하산길의 데크계단 옆에는 아름드리 전나무와 편백나무등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원시림 같아 보였다

월미도는 인천개항을 전후하여 외세의 각축장이 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한때 군사기지로

6·25사변 때에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로, 그 뒤 미군용지로 이용된 일도 있었다.

2001년 6월 26일 문화관광부가 월미관광특구 지정의 일환으로

월미도 문화의 거리내 친수공간 확장과 월미산을 개방하기로 하였다 한다.

전통정원(초가집)

시골집이라도 부잣집 같아 보인다 우물도 있고 밖에는 가마솥이 보이고

뜰 뒤에는 장독대 대청마루엔 훙두께

제기차기도 할수 있었고 윷판도 있고 유년기 시절로 돌아간듯 싶다

겨울이 오기전 가을추수를 끝낸 볏짚으로 나랫장을 엮어서 지붕을 이던 풍경이 그려진다

정각

월미전통정원은 원래 인천광역시가 2001년 10월 13일에 국방부로부터 관리권 인수를 받아

월미산과 함께 개방하였으며, 월미산의 입구에 위치하여 쉼터로써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최근 궁궐정원의 부용지와 애련지, 아미산굴뚝 및 화계를 만들었으며, 별서정원의 국담원과 소쇄원

서석지 그리고 민가정원의 양진당, 초가 등을 재현하였다.

애련지(愛蓮池)

애련지는 조선숙종(18년)창덕궁 후원에 조성된 연못으로 애련이란 이름은 송나라의 주렴계가 연꽃을 사랑하여

애련설에서 따온 말이다 애련지는 남쪽에는 불로문 북쪽에는 방형의 정자인 애련정이 위치하며 정자(애련정)의

서측으로 입수구가 위치하고 있다

월미전통공원에서 애련정과 애련지를 불로문 입수구를 등을 재현 해 놓았다

불로문(不老門)

월미도 전통정원은 궁이 위치했던 조선시대를 시점으로 하여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양식을 재현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조성계획을 수립하였다.

이에 본 지구에서는 조선시대의 한국전통정원을 정(庭)과 원(園)으로 구분하여 개념을 해석하였고

정(庭)이란 담에 의해 둘러싸인 곳에 식물과 경물을 통해 조형된 공간을 의미하며

원(園)이란 원림의 의미로서 자연 속에서 인간이 함께하는 공간으로서

원(園)의 형태화를 자연 속에 경물로 나타나는 구곡으로 표현하였다.

궁궐정원으로는 부용지, 애련지 등을 재현하였으며 조경요소로 괴석, 석지, 풍기대, 굴뚝 등을 도입하였다.

또한 조선시대의 궁궐정원과 전통조경요소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벽 및 조형열주를 도입하여

전통 궁궐정원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고 한다.

월미도 월미산(月尾島 月尾山)산행 종료

월미도바다열차를 타고 월미도 한바퀴할수 있으며 중간에 하차하여 월미도 다른역에서 승차할수 있고

그래서 월미도를 걸어서 둘러 볼수 있었는데 월미도를 구석구석은 다 보지 못했지만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였던 월미도를 걸어보면서 조국의 소중함 그리고 상륙작전과

해병대의 긍지를 느끼고 했고 해병대특수수색대 전역함을 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터에

해병대를 전역했다는 자부심이 더 강열하게 느껴지는 월미도였다.

 

※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한국1000산 신명훈

인천광역시 홈페이지 지역신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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