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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고덕산(全州 高德山). 덕(德)을 베푸는 군자(君子)의 山이라는 고덕산 산정에서 전주(全州)를 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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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고덕산(全州 高德山). 덕(德)을 베푸는 군자(君子)의 山이라는 고덕산 산정에서 전주(全州)를 품다

바다늑대FORCE 2022. 2. 5. 19:04

전주 고덕산(全州 高德山)

덕(德)을 베푸는 군자(君子)의 山이라는 고덕산 산정에서 전주(全州)를 품다

 

▲ 전주 고덕산(全州 高德山)

     높이 : 603.2m

    위치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완주군 구이면에 걸쳐 있는산

 

▲ 전주 고덕산(全州 高德山) 나의 산행일 :

     2020년02월05일 토요일, 날씨: 맑음 흐림

 

▲ 전주 고덕산(全州 高德山) 나의 산행코스:

    고덕산 안내도→→ 고덕산장→→보광재 삼거리 →→송전철탑→→고덕산

→→왜목재 방향 하산길→→고덕산장표지목 삼거리→→도로공사장횡단→→고덕산장

4.57km 1시간58분소요(트랭글 앱기준)

 

▲ 전주 고덕산(全州 高德山) 개요 :

전주 고덕산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완주군 구이면과 상관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603.2m이며 전주시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어 등산이나 산책코스로 유명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고대산(孤大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덕산(高德山) 또는 고달산(高達山)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여기에서 고달(高達)이란

최고에 도달한다는 뜻이어서 ‘높다라기’라고도 불렸다. 연봉들이 연이어 있어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남쪽으로는 구이저수지와 경각산이, 서쪽으로는 모악산이 조망되고 전주 한옥마을을 비롯하여

전주시가 한눈에 조망된다. 맑은 날에는 익산시까지 조망이 가능하며 산행은 임업시험장 앞에서 출발하여

삼경사와 삼국지의 관우를 무신으로 모시는 관성묘(關聖廟)를 지나 393봉을 경유하여 정상에 오른 뒤

평촌으로 내려오는 구간과, 평화동을 출발하여 북능을 타고 정상에 오른 뒤 어두저수지와 한일신학교를 경유해

신리로 하산하는 코스 등이 개발되어 있으며 3~4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문화유적의 보고인 남고산성·관성묘 등을 구경하면서 산행을 즐길 수 있고 정상에서 남쪽의 산줄기는 호남정맥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 뻗어가는 산줄기는 중간 지점에서 왼쪽은 평화동 방면으로, 오른쪽은 남고산으로 이어진다.

667년(고구려 보장왕 26)에 고구려의 승려 보덕(普德)이 제자 명덕(明德)의 의견에 따라

비래방장이라는 집을 세웠던 터가 남아 있으며 이밖에도 경복사지와 보광사(寶光寺)·남고사(南固寺)

남고산성·관성묘 등의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 전주 고덕산(全州 高德山) 산행지도

 

▲ 전주 고덕산(全州 高德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2년 02월05일 토요일 대한민국(大韓民國) 구석구석 산(山)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오전 10시경 전주를 향해 길을 나서본다 전주에 고향을 둔 소속동료의 조모 별세를 하여 조문(弔問)후

전주 근교 산을 산행 하기 위해서 등산복을 따로 챙겨서 통영대전간 고속도로를 달려

조문을 하고서 승용차내에서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산행지로 다시 길을 나섰다.

생활권 등산로 안내도

고덕산 산행 들머리가 있는 체육시설옆에 있는 안내도이다

들머리는 고덕산장을 네비게이션에 찍어면 되는데 주소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고덕산1길188이다

고덕산 산정으로가는 최단코스라고 하며 고덕산은 고덕단맥이라 한다

고덕단맥은 호남정맥 현오봉(570m, 완주군과 임실군 경계지점)에서 북동방향으로 분기한 산줄기는 구이면과

상관면의 경계로 흘러 527.3, 지반도(749), 왜목치, 고덕산(603m), 보광재, 학산(360m), 옥녀봉(산불감시초소)

서서헉동고개, 완산공원(완산칠봉), 용머리고개(완산구 완산동), 예수병원고개, 화산공원으로 흘러

삼천천고 전주천이 하나되는 서신동 e편한세상아파트 106동에서 물과 만나며

끝나는 약18.5km의 산줄기 라고 한다

들머리 고덕산장

어제밤에 함박눈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내가 도착한 시각은 13시15분인데 음지라 그런지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어제는 입춘인데 여기 전주쪽엔 함박눈이 내렸나 보다 올해 설산을 오르는 곳은 모두 전북쪽에 위치한 산이며

올해는 전북쪽 산행을 대부분 한셈이며 전북 진안쪽에 위치한 진각산부터 구봉산까지 올랐다

오전부터 전주시민들이 운동삼아 많이 올랐는지 여기저기 발자국이 많았고 약간 추웠지만 산행을 시작하면

아마도 열기로 인해 추위는 이겨낼듯 싶다

들머리 초입구간

낙엽과 잔설(殘雪)이 남아있고 목계단인데 제법 오르막길이지만 남녀노소가 누구나가 오를수 있는 코스같다

고덕산은 전주시 남동쪽에 있는 산인데 산꾼들에게는 잘 알려진 명산은 아니지만

전주시민에게는 운동하기 좋은 산행코스이며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산인듯 싶다

고덕산 자락에는 남고산성 남고사 만경대 관성묘 등의 많은 유적을 품고 있다고 한다

고덕산 정상 풍경

초입구간에서 바라본 고덕산 정상 풍경이다 마치 설산의 풍경을 간직한 뷰(view) 이다

산자락에는 남고산성(南固山城)이 있는데 남고산성은 고덕산(高德山) 서북쪽 골짜기를 에워싼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라고 하며 901년에 후백제 견훤(甄萱)이 도성인 전주의 방어를 위하여 쌓았다고 전한다.

이러한 이유로 견훤산성, 고덕산성이라고도 불린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임진왜란 때 전주부윤 이정란(李廷鸞)이 왜군을 막을 때 고쳐 쌓았고

숙종 때에는 주변에 위치한 위봉산성(威鳳山城)에 이어서 진(鎭)이 설치되었으며

성 안에는 진장(鎭將)이 머무르는 관아와 창고, 화약고 등을 두었다.

그 뒤 1811년(순조 11)에 전라도관찰사 이상황(李相璜)이 증축하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전라도관찰사 박윤수(朴崙壽)가 완공하였다 한다.

능선길

가파른 산길로 올라서니 유유자적 걸을수 잇는 능선길이 나타났다 능선길은 산행자들에게

속도를 낼수있고 숨고르기를 할수 있는 휴식같은 산길이다

고덕산의 남고산성은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임진왜란 때 전주부윤 이정란(李廷鸞)이 왜군을 막을 때 고쳐 쌓았고

숙종 때에는 주변에 위치한 위봉산성(威鳳山城)에 이어서 진(鎭)이 설치되었고

성 안에는 진장(鎭將)이 머무르는 관아와 창고, 화약고 등을 두었다고 하며

성벽은 천경대(千景臺)·만경대(萬景臺) 등의 절벽이 있는 자연적 요새를 둘러 약 5.3㎞정도로 축조되었다.

남쪽과 북쪽에는 장대(將臺)를 세웠고, 동쪽과 서쪽에는 성문을 두었고 서쪽에는 암문(暗門)도 하나 있었다

사방에 각각 하나의 포루(砲樓)를 하며 영조 때 기록에 의하면, 성벽의 둘레는 2,693보(步)이고

성벽 위에 올린 여장(女墻)이 1,946척이며 성 안에 민가 100여 채가 있었다고 전한다.

잔설(殘雪)의 산길

백설의 눈길을 걸어면 들여오는 눈 밟는 소리와 산새들이 소리 시원하게 부는 봄바람 마음을 씻어준다

산아래는 코로나-19시대의 전쟁같은 세상이며 그기에다 변이 오미크론(Omicron)변이는 전파력이 강하며

현재 우리나라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6,836명이라고 하는데 정말 재앙이다

오늘 오후 산길에서 만난 대부분은 대략 60대 사람들이 많이 보였고 요즘 산에 오르다 보면

젊은 청년들에 산행에 많이 동참하는것을 볼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코로나 오기전엔 대부분

산행자들이 60대가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보광재 삼거리

전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문화의 중심 고장이며 아름다운 도시이자 조선왕조 발상지라고도 한다

전주시민이 즐겨찾는 고덕산에는 불교문화유산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오늘날 까지 유교를 중시하는 유림이 고장으로 이어왔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한국의 선종인 조계종이 발전하던 고려시대에는 전주에도 불교문화 중심지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고덕산 남고사(高德山 南固寺)는 신라 문무왕668년에 창건한 사찰이며

참고로 백제는 660년에 멸망하였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72호로 지정되어 있는 남고사지에 자리하고 있다

잔설위 닉네임(Nickname)

백설기 위에 닉네임을 써본다 어린 유년기시절 처럼 눈사람도 만들고 싶은 충동도 일어난다

눈은 내리고 쌓여 있을땐 아름답고 멋지지만 녹기 시작하면 철퍽거리고 주위가 오염된다

그런탓 때문일까 난 눈보다 비내리는 풍경이 더 좋다 물론 장대비 같은 폭우는 싫지만

바다늑대(seawolf)는 세계최초 핵잠수함 이름이며 바다속 생물중 바라쿠라 라는 이름을 가진

농어목 꼬치고깃과에 속하는 어류로 세계적으로 20여 종이 있는데 대개는 성체의 크기가 50㎝ 이며

떼거지로 다니면서 공격성이 강해 상어보다 더 위협적이라고 하여 바다늑대라 불린다

솔나무숲길

산에 오르면 늘 소나무 숲길을 만난다 능선길 사이로 빼곡히 드러서있는 소나무는 우리민족의 나무이다

솔나무가 주는 향기는 어느 향기보다 더 좋은 향기를 뿜어주고 있다 요즘 피톤치드(Phytoncide) 향이 유행인데

그래서 여기저기 편백숲 조림을 많이 하지만 소나무가 피톤치드를 많이 함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인지 솔나무 숲길을 걷는것이 너무 좋으며 삼림욕은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일사량이 많을 때에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고덕산 산길

산정에 가까워 질수록 녹지 않은 눈들이 산길에 가득 쌓여 있었다 급경사지와 산길도 편한길은 아니다

울퉁불퉁 여기저기 작은 바윗돌이 있어 미끄럽기도 하지만 낙상한다면 부상이 심할정도의 산길이다

고덕산은 완주군(完州郡)에도 속하는데 완주군은 동쪽은 진안군, 서쪽은 김제시·익산시, 남쪽은 임실군·정읍시

북쪽은 충청남도 금산군과 논산시에 접하고 있고 면적은 821.05㎢이라고 하며

행정구역으로는 3개 읍, 10개 면, 496개 행정리(106개 법정리)가 있다고 한다.

눈속의 어린 소나무

추위와 바람을 이겨내면 100년 이상은 거뜬하게 살아가는 어린 소나무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소나무 발생과정을 화분 분석을 통해서 추정해 보면, 지금부터 약 7000년에서 1만년 전에는

참나무류가 성하였고, 그 뒤 소나무속이 나타나서 참나무속·서나무속·느릅나무속·호도나무속 등과 함께 

오래 살아왔고, 약 1400년 전부터 소나무가 갑자기 불어났다고 학자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가을이 되면 중앙관서에서는 각 지방에서 장정들을 징집해서

숯을 구워 바치도록 한 기록이 있는데, 원료가 된 것은 주로 고 한다. 조

선시대에는 능의 전례제사에 쓰기 위해서 향탄산(香炭山)을 지정하고

그곳 주민으로 하여금 숯을 굽게 해서 상납시켰다고 한다.

전주 완주군 상하보마을 과 학산(360m)

전주시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의 조망이며 구이면은 본래 전주군(103년 10.1일 이후는 완주군)지역으로

구이면이라하여 상보, 하보, 평촌, 소용, 상철, 하철, 주리, 태실, 박성, 화원, 난산, 봉성, 신원, 신흥, 효간

광곡, 구암, 총명, 칠암, 와동, 덕천, 지동, 두방, 두현,하학, 상학, 유광, 원리, 신전, 항가, 구복, 무지

망월,반월, 마음, 성덕, 교동, 계곡, 염암, 대덕, 장파, 안덕, 백여, 호동, 용동, 신정

상용, 하용의 48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난전면의 총명리 석구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평촌 광곡 백여의 9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88년 1월1일 석구리, 원당리, 중인리, 용복리의 4개 리가 전주시에 편입되었고

동쪽은 상관면과 임실군 신덕면, 임실군 운암면, 서쪽은 정읍시 산외면

김제시 금산면 금구면, 북쪽은 전주시에 닿아 있다.

산정으로 가는 데크계단

데크계단에서 바라본 전주시와 완주군 구이면인데 발아래는 구이면 평촌리(平村里)이다

평촌리는 본래 전주군 (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구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평촌리 상보리 하보리 소용리 상척리 하척리 주리리 태실리 박석동 일부를 병합하여

평촌리라 하여 구이면에 편입되었다. 원평촌(元平村. 坪村)은 부분명은 낡은터 평촌은 평평한 들에 위치했기에

들말을 평촌(坪村이라 하였고 낡은 터는 평촌 남쪽에 있는 마을로 본래의 마을 터 였으나 차차 인가가 줄었다 한다.

전주시 조망

저멀리 전주시가 한눈에 펼쳐져 보이며 양팔을 벌리면 품안에 다 들어온다

전주(全州)의 옛 지명은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백제시대에는 완산(完山)이라 하였는데

마한국명으로는 원지국(圓池國)에 이른다. 전주라는 지명 사용은 서기 757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경덕왕(景德王)16년부터이며 전주 완산의 비명 원의를 볼 때 "완(完)"과 "전(全)" 은

모두 "온전하다"는 "온"이란 우리말 뜻을 지닌 글자이라고 한다.

따라서 "완"은 그 음도 "온"의 근사음으로서 "완"이란 글자는 "온"이란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라고 한다.

전주 고덕산(全州 高德山) 정상 603.2m

고대산(孤大山)은 현재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에 있는 산으로, 현재 고덕산(高德山)이라고 불린다.

삼국유사(三國遺事)3 흥법3 보장봉로보덕이암(寶藏奉老普德移庵)조에 의하면 보덕화상(普德和尙)

반룡사(盤龍寺)에 있으면서 신통력으로 방장을 날려 남쪽의 완산주 고대산으로 옮겨가서 살았다.

이는 곧 당() 영휘(永徽) 원년 경술(650) 6월이었다고 하며 또 본전(本傳)에서는 당() 건봉(乾封) 2

(667) 33일이라고 했으며, 또 삼국사기(三國史記) 22 고구려본기10에서도 보장왕 9(650)

여름 6월에 반룡사의 보덕화상이 나라에서 도교를 받들고 불교를 믿지 않았으므로

남쪽으로 옮겨 완산 고대산으로 갔다고 한다.

이를 통해 고대산은 고구려 제 28대 보장왕(寶藏王, 재위 642-668)때의 승려인 보덕(普德)

고구려를 떠나 백제로 이주했을 때 머물렀던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양 사서에서는 보덕이 고구려를 떠난 시기가 보장왕 9(650)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삼국유사(三國遺事)안에 있는 또다른 기록인 본전(本傳)에서는

보장왕 26(667)으로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전주 고덕산(全州 高德山) 정상 603.2m

650년을 보덕이 고구려 반룡사(盤龍寺)에서 남하를 시작하여 고대산(孤大山)에 도착한 시점으로

667년은 경복사(景福寺)가 완공되어 이주가 완전히 마무리된 시점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노용필, 1989)

한편 보덕의 이주시기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면서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650년을 이주시기로 보는 것이 정확하며, 667년의 이주는 보덕의 전기를 저술한

최치원의 인식에 의거한 것으로 본 견해도 있다.

, 최치원은 보덕의 이주와 고구려의 멸망을 연결시키려 했기 때문에

보덕의 이주시기를 667년으로 보았다는 것이다.(김주성, 2003)

또 보덕이 650년에 반룡사를 떠나 이곳, 저곳을 유랑한 끝에 667년에

고대산에 정착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정병삼, 2003)

고대산은 이규보(李奎報)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23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서

고달산(高達山)이라고 언급해 고려시대에는 고달산으로 불린 듯하다.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33 전주부 산천(山川)조에서 고덕산(高德山)

혹은 고달산(高達山)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시대에서는 고달산과 고덕산이 함께 쓰인 것으로 보인다

고덕산 산정의 모습

고덕산 높이는 603.2m이며 전주 시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어 산행이나 산책코스로 유명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고대산(孤大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고덕산(高德山) 또는 고달산(高達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달(高達)이란 최고에 도달한다는 뜻이어서 ‘높다라기’라고도 불렸다. 연봉들이 연이어 있어 풍경이 매우 아름답고

남쪽으로는 구이저수지와 경각산이, 서쪽으로는 모악산이 조망되고

전주 한옥마을을 비롯하여 전주시가 한눈에 조망된다.

맑은 날에는 익산시까지 조망이 가능하다고 하며 평화동을 출발하여 북릉을 타고 정상에 오른 뒤

어두저수지와 한일신학교를 경유해 신리로 하산하는 코스 등이 있으며 3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한다.

왜목재 방향으로 하산

산행지도를 보면 고덕산장을 들머리 깃점으로 해서 고덕산 산정에서 원점회귀 않고도

고덕산 한바퀴를 돌수있도 지도가 있어 그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하고 고덕산 산정에 머물고 있는

산행자들에게 산길을 물어보아도 모두 모른다고 할 뿐이라 트랭글 앱 그리고 지도만 믿고 하산했다

고덕산이 있는 전주시 완산구는 검두봉, 곤지리, 곤질리, 남화산동, 매곡, 매곡교, 매골, 물터, 백운정, 부남면

산제당, 산천, 소꼬랭이, 솔가지전거리, 쇠전다리, 쇠전터, 수돗골, 연죽교, 오계리, 완산정, 용머리고개

우전터, 원각사, 은속리, 은송리, 장다리, 중완산동, 청학루, 초록바위, 칠성사, 칠성암, 투구봉, 호래벗골 

다양한 옛지명의 이름들이 있다

짐승의 흔적

산길에는 산행자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고 이처럼 짐승의 발자국만 나보다 앞서 지나갔는데

고라니 인지 멧돼지 인지는 알수는 없지만 이 산길로는 사람들이 이용 않는가 보다

산행중 이렇게 미지의 산길을 걷는것도 또한 산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며 무작정 걷다간 조난위험이 있으므로

초보산꾼은 반드시 일행과 함께 해야 하며 겨울 기온이 낮을때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하산길에 바라본 고덕산 정상

하얗게 밀가루를 뿌려 놓은듯한 고덕산 산정이다

지금 막 눈이 내릴듯한 날씨가 되고 저멀리는 눈이 내리는것이 보일정도라 얼릉 하산해야 겠다

전주는 조선왕조의 발상지라고 하는데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본향지 이며

조선은 건국 후 전주에 태조어진을 모시고 경기전이라하여

전주가 왕실의 뿌리임을 분명히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하산길

하산길은 산행자들이 다니지 않아 산길이 정확하게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응달의 암릉길에 잔설이 덮고 있어 미끄러지면 볼짱 다보기에 정말 조심스레 걸었고

길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여태까지 쭉 걸어다닌 산길의 감각에 의존하여 걸어 보았다

고덕산은 전주이 남서쪽에 위치해 있고 고덕산에서 뻗어내린 산자락은 옥녀봉에 이르러

남북으로 갈라지는데 북으로 내리는 산자락은 매봉,장승배기를 지나 완산을 이루고

남으로 뻗어 내린 산자락은 큰각시봉 작은각시봉을 지나 금성봉 구이저수지 근처에서 끝난다고 한다

반가운 고덕산장 안내표지목

길인듯 길이 아닌듯 잔설이 덥고 있는 급경사지 산길을 따라 내려오니

능선즈음에 고덕산장0.85km 라는 안내표지목이 있었는데 정말 반가운 표지목이였다

직진하면 신세대지큐빌 아파트가 나온다고 되어 있어 원점으로 고덕산장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고덕산장 방향으로 하산길 역시 마찬가지로 급경사지를 이루고 잔설이 덥고 있어 조심스레 하산 했다

등산로 없음 돌아가시오

이런  컥! 원점을 코앞에 두고 돌아가라니 말이 되는 소리니?

공사장에서 안내표지판을 세워두려면 삼거리 고덕산장 이정표 앞에 세워 두어야 하고

전주시는 공사로 인하여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문구를 걸어 두어야 했었다

되돌아 갈수는 없고 어째튼 원래 있었던 산길로 하산 하고자 계속 길을 따라 걸었다

공사장은 새만금 전주간 고속도로 건설 현장인데 아뭏튼 절개지 공사장을 횡단하였다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는 총 2조원대에 육박 한다고하며 새만금∼김제(26.64㎞)

김제∼전주(28.45㎞) 등을 잇는 총 연장 55.09㎞의 왕복 4차선 도로를 건설하는 게 핵심이라고 하며

책정된 총 사업비는 1조9,241억원에 달하는 초매드급 국책 프로젝트라 한다.

산행종료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공사장 절개지를 우회하여 공사장 4차로를 횡단해서 고덕산장 방향 원점으로 돌아왔다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그 탐방로는 영원히 폐쇄될것이며  덕을 베푸는 군자의 산 고덕산에는
문화유적도 많이 품고 있었는데 오후에 오른탓이라 유적은 보지는 못해 아쉬운 산행길이며
고덕산은 산의 모습이 우뚝 솟아 있으면서도 날카롭지 않고 기품이 있어 “덕이 높다.”라는
고덕(高德)이 잘 어울리는 산의 이름이며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고대산(孤大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덕산(高德山) 또는 고달산(高達山)으로 기록돼 시대마다 달랐고
고달이란 최고에 도달한다는 뜻으로 ‘높다리기’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고덕산 산정에서 발아래 펼쳐진 전북 전주시를 두팔발려 안아보고 산행기를 맺는다.
 

※ 출처:

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신 산경표 박성태 조선일보사

해설 대동여지도 최선웅 민병준 진선출판사

인문산행 심산 바다출판사.한국1000산 신명훈

명산플러스 경남일보. 산&산 부산일보

전주시.완주군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및 지역주민 인터뷰 참고함.

 

바다늑대FORCE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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