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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智異山 天王峰).벽소령(壁宵嶺)에서 백두대간 북진(北進) 1구간길을 걷다 본문
지리산 천왕봉(智異山 天王峰)
벽소령(壁宵嶺)에서 백두대간(白頭大幹) 북진(北進) 1구간길을 걷다..........!
▲ 지리산 천왕봉(智異山 天王峰)
높이 : 1915m
위치 : 경상남도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전남 구례군,전북 남원시에 걸쳐 있는 산.
▲ 지리산 천왕봉(智異山 天王峰)
나의 산행일 : 2021년10월16일 토요일, 날씨: 비 그리고 흐림
▲ 지리산 천왕봉(智異山 天王峰) 나의 산행코스:
함양 음정마을→→벽소령→→선비샘→→칠선봉→→영신봉→→세석평전→→촛대봉
→→연하봉→→장터목대피소→→제석봉→→지리산천왕봉→→법계사→→로터리대피소
→→자연학습원→→ 산청 중산리 매표소
25.72km 10시간24분 소요(트랭글 앱기준)
▲ 지리산(智異山) 개요:
1967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은 경남의 산청,하동, 함양,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483.022㎢의 가장 넓은 면적을 지닌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둘레가 320여km나 되는 지리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봉우리가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20여 개의 능선 사이로 계곡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동과 서, 영남과 호남이 서로 만나는 지리산은 단순히 크다, 깊다, 넓다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 지리산(智異山) 산행지도
▲ 지리산(智異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1년 10월16일 토요일 대한민국 구석구석 산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오늘은 백두대간 북진 1구간길을 걷기 위해 직장동료인 해병대 후배에게 부탁해서
출근길에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음정마을까지 태워달라고 부탁 하였다
일기예보엔 비가 온다고 했지만 정오쯤 비가 그친다는 소식에 우중산행을 강행키로 하여
후배 차량으로 함양군 음정마을에 도착 하였다.
백두대간벽소령(白頭大幹壁宵嶺)표지석
백두대간 북진(北進) 1구간길은 노고단에서 중산리 까지이나 함양 벽소령구간에서도 대간산꾼들이
많이 이용하며 1구간 코스로도 이야기를 하고 시작하기도 한다.
백두대간 표지석이 있는 삼정리는 삼정은 이름 그대로 3개의 정이 붙여진 마을을 합해
마천면 삼정리라 하는데 양지여서 양지정쟁이로 불리는 양정마을과
위쪽 음정마을 아랫쪽을 하정마을이라 하며 음정(陰丁)마을은 음지정쟁이라 하는데
음지에 위치한 집단촌으로 마을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벽소령 들머리
비는 새벽부터 그칠줄 모르고 내리며 지금 아침7시45분 이지만 가을비가 촉촉히 산행자의 발길을 무겁게만 한다
백두대간벽소령 표지석이 있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馬川面)은 함양군 남부에 있는 면(面)으로
마천면의 90% 이상이 험준한 산지로 지리산(1,915m)·창암산(923m)·영신봉(1,652m)
삼정산(1,182m) 등이 솟아 있으며, 지리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임천이 산지에서 발원하는 소하천들을 합류하여 북부지역을 흐르며
하천 양안에 취락과 소규모의 농경지가 밀집해 있고 특산물로 벌꿀과 곶감이 생산된다.
벽소령 안내표지목5.2km
여기서 벽소령대피소까지는5.2km 라고 안내되어 있다
산아래는 음정마을이 있는데 음지말이라고 부르는 음정(陰丁)마을은 음지정쟁이라고도 부른다고 하며
음지말 서편 골짜기을 비린내골이라고 한다. 아랫마을의 선유정 전설과 연관이 있는 이야기 라고 하는데
선녀가 지상에 내려와 살다가 날개옷을 찾은 뒤 남편과 자식들을 두고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남편과 아들이 하도 원통하여 바라보고 있다가 화석으로 변하였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오는데
벽소령 정상에 부자바위가 서 있다 원통하게 떠나 보내버린 유모엄마의 골이라고 하여
비리내골이라고 했다 한다.
가을정취(情趣)
비는 내리고 단풍에 물들어가는 산야의 수목들은 빗물을 가득 머금고 힘없이 떨어지고 있다
가을향기 물씬풍기는 산길에서 어느듯 나이가 50후반에 접어들어 인생도 더 여물어 가는듯 하다
경남 마천면 삼정리중 양지말이라고 부르는 양정(陽丁)마을 유래는 양지정쟁(陽地停莊)이라고도 부르는데
장(莊)은 고려시대에 특수한 행정구역인데, 고려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찰은 농토를 많이 소유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승려가 아닌 주민들이 전답을 소작으로 경작하여
세미를 바쳤고 어렵게 생활해 왔다 한다 삼정은 영원사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어서 서산(西山)
청매(靑梅), 사명(四溟), 포광(包光)등의 대사들이 수도하였던 큰 절이었다.
따라서 부자절 이었기에 절의 혜택을 입고 생활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 집단촌이 양지정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벽소령(壁宵嶺)대피소
벽소령(碧宵嶺)은 경남 하동군 화개면과 함양군 마천면 사이에 위치한 백두대간의 고개 이며
지방도 제1023호선이 지나나 차량은 통행할 수 없고 높이는 1,350m이다.
벽소령이라는 이름을 순 우리말로 풀어쓸 경우 푸른하늘재 라 하며
여기서 벽소(碧宵)라는 이름은 벽소한월(碧宵寒月)에서 유래하였는데 의미는
겹겹이 쌓인 산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다 못해 푸른빛을 띤다 라는 의미 라고 한다.
이 벽소라는 단어는 택리지(擇里志)에 나오는데, 택리지 에서는 "지리산 북쪽은 모두 함양 땅이며
영원동, 군자사, 유점촌이 있는데, 남사고는 복지라 하였다.
또 벽소운동(碧霄雲洞)과 추성동은 다 같이 경치 좋은 곳이다."라고 되어 있다 하며
여기서 벽소운동(碧霄雲洞)은 본래 골짜기를 표현한 것이지만 벽소령의
'벽소'와 상당히 관련이 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19세기에 지리산을 유람했다고 알려진
하익범(河益範)은 유두류록(遊頭流錄)이라는 책을 통해 "벽소령 냉천점(冷泉岾) 70리에 이르러서부터
비로소 아래로 내려가는 길로 바뀌었다."라고 하여 벽소령의 존재를 표현했다.
하동(河東) 대성골 비에 젖은 풍경
하동에서 7년 근무중 벽소령에서 산악사고가 발생하면 대성골지역주민 산악자원봉사자들과
주말이나 야간이면 늘 조난자나 부상자를 구조하기 위하여 자주 올랐던 지역이다
대성리 마을의 이름은 1914년에 지금의 대성동에 덕평동,기수곡, 평지촌,빗점, 삼점, 사리암
고사암, 송대, 의신, 단천을 합하여 대성리라 하였고 화전민의 후예로 비농가 비율이 높으나
실질적으로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산골짝을 끼고 있어 경작에 어려움이 있으나
고랭지 채소나 무공해 농산물 생산에 유리한 이점이 있으며 주로 녹차재배도 많이 하고 있다.
하동 대성골을 바라보며
저멀리 어렴풋시 섬진강(蟾津江)도 비오는 구름사이로 보인다 요즘 주말이 되면 이렇게 비가 잦아 얄밉기도 하다
주말마다 산길을 걸어야 하는데 말이다 오대산 갔을때도 비오는 산길을 걷고 오늘도 비오는 산길이 되었다
벽소령이 있는 하동군 화개면 유래를 보면 변한(弁韓)의 낙노국(樂奴國)에 속했고
신라 성덕왕 "화개(花開)-꽃피는 곳" 으로 불렸다고 전하며 조선 순조 25년(1825)-화개상.하면을 합하여
화개면 설치 되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경남 산청 함양과 경계이며 전남 구례와도 경계에 위치하며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나는 관광 휴양지이다.
선비샘
선비샘에 도착하니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도 그치고 해서 1회용 우의도 벗고 간식으로 체력도 보충했다
선비샘은 덕평봉을 등지고 남쪽 상덕평 능선에 샘터가 있으니 이 샘을 선비샘이라 부르는데
수량은 비록 적으나 마르는 일이 없고 그 주위가 평탄하고 넓어서 야영하기에 적합하다.
그 샘터 위에 초라한 고분이 하나 외로이 자리잡고 있으니 이 무덤과 샘에 얽힌 한 화전민의 서글픈 사연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연민의 정과 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유래글이 있어 아래와 같다.
옛날 덕평골 아랫마을에 이씨 노인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노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화전민의 자손으로서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가난에 쪼달릴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 박복한 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배우지 못하여 무식한 데다 인상마저 못 생겨서
그 인품이 몹시 초라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노인은 평생에 한번이라도 사람들에게 선비 대접을 받아 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늙어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 형제에게 유언을 하되, 자신이 죽거든 그 시체를
상덕평 샘터위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다. 효성스런 아들들은 훗일 그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위에 매장했다.
그로부터 매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이곳을 지날 때는 꼭 샘터에서 물을 마시게 되고
물을 마실 때면 반드시 노인의 무덤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게 되어
노인은 생전에 그리고 한이 되었던 선비 대접을 무덤속에서 받으며 흐믓한 미소를 지었으리라.
후일 이 동네 사람들이 이 노인의 불우했던 생전을 위로해주기 위한 소박한 인정으로
이 샘을 선비샘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장터목대피소 6.6km 안내표지목
비가 그치니 이젠 강풍이 불었다 정말 지리산 날씨는 변화무쌍 하다 하지만 초가을 날씨가 초겨울 같은 느낌이다
내가 처음 지리산을 산행한 것은 임용을 앞두고 잠시 휴식때 동네 친구들이랑 쌍계사에서 시작하여
중산리로 하산한 지리산 처음 산행이었다 지칠줄 모르는 20대 후반이였는데 오늘도 젊은 20대 초중반
서울여성 세분을 선비샘에서 만난는데 새벽2시에 출발해서 화대종주를 한다는것이다
딸애같은 여자아이들이 화대종주 도전에 큰박수를 보낸다.
비그친 지리산 산하
저멀리 흰 뭉게구름 피어오르고 하늘엔 재빛 구름들이 바람따라 흘러간다
산하는 초록에서 울긋불긋 형형색색(形形色色)옷을 갈아 입고 있는 아름다운 강산이다
지리산의 기후는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산세가 높아 대륙성 기후가 나타낸다고 하며
연평균기온은 12~14℃ 내외이며, 한여름인 7월 중순에는 산록지방이 약 36~37℃ 내외인 반면
산정은 19~20℃ 내외로 기온차가 고도에 따라 15~20℃ 정도 나타난다 한다.
산지 곳곳에 산곡풍 등 국지풍이 탁월하다 하며 특히 산의 남동쪽은 저기압의 통과가 빈번하여
여름철 고온다습한 바람이 남동사면에 부딪칠 때 비가 많이 내리는 지형성 강우지역이다.
벽소령을 바라보며
지리산 능선이 저멀리 삼각고지부터 형제봉 연하봉 토끼봉까지 줄줄이 늘어서 있다
내가 처음 지리산을 산행한 들머리인 화개면 쌍계사 불일폭포로 유명한 화개골짜기와
맑은 물과 작설차로 알려진 구례 천은사골짜기 등이 있는 곳이다.
지리산은 기반암은 대부분 고생대의 화강편마암·화강암 등으로 이루어진 편마암복합체로
여러 종류의 변성암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 연대는 대체로 7~12억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하며 하동 부근의 고령토 광상은
대부분 이런 편마암 중에 다량 함유된 장석(長石)이 풍화작용을 받아 생긴 것이라고 한다.
칠선봉(七仙峰)1576m
칠선봉은 작은 7개의 암봉이 높은 능선 위에 자리잡고 아름다운 선경을 이루니
마치 일곱선녀가 한자리에 모여 노는 형상과 같다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며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비경의 암봉들을 구름이 스쳐 지나갈때면 더욱 아름답고 고요한 운치를 돋구어 준다고 한다
여기서 부터 천왕봉까지는 7.0km 이며 표지목에는 칠선봉 높이가 해발 1556m 으로 표기되어 있다.
칠선봉에서 바라본 조망
산봉우리들이 먼바다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골짜기 사이 화개면 화개장터가 보인다
화개장터는 경상남도 하동군과 전라남도 구례군 과 광양시의 접경 지역에 있는 전통시장이며
행정구역상으로는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 속한다.
지리산 화개천이 섬진강으로 류하는 지점인 이곳은 조선 시대부터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모여
농산물과 해산물을 교환하는 장터가 형성됐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 후에도 매달 오일장이 유지되다가 6・25전쟁 후
지리산 일대 빨치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쇠락했다가 화개장터는 하동군청이 주관해
1997년부터 4년에 걸쳐 복원한 것으로서 2001년 상설 관광형 시장으로 개장한 뒤 관광 명소가 되었다.
지리산의 풍경
마치 산수화를 옮겨 놓은듯한 비그친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런 아름다운 산하를 볼수 있는것은 비가 오던 맑던 발품을 팔아 산에 올라야 볼수 있는 풍경이라
힘들고 고단함도 산에서 주는 신선함 아름다운 풍경이 그 고단함의 보상이라 생각해도 된다
지리10경은 노고단의 구름바다, 피아골 단풍, 반야봉의 해지는 경관, 세석 철쭉, 불일폭포, 벽소령의 밝은 달
연하봉 선경(仙景), 천왕봉 일출, 섬진강 청류(淸流), 칠선계곡이다.
제1경은 천왕일출이며 올해 추석 다음날 일출 장관을 보기위해 새벽3시에 올라
붉게 타오르며 떠 오르는 태양을 볼수 있어던것은 또 하나의 행운이라 생각했다
지리산 단풍
올해는 비가 잣고 여름내내 너무 더워서 그런지 고산에는 아름다움 자태를 뽐내기도 전에 말라서 떨어지고
지리산 아래는 아직 푸르름 녹음이 남아 있는 가을풍경이다
지리산 산행 하루코스는 중산리-법계사-천왕봉에 이르는 4시간 30분의 단기 코스가 있는데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중 제일 많이 이용하는 코스 이기도 하다
그리고 화대종주 코스인 화엄사-노고단-임걸령-반야봉-뱀사골산장-연하천-벽소령-덕평봉-세석평전
-장터목-천왕봉-써리봉-대원사 까지에 이르는 총 67㎞의 코스가 있다.
영신봉(靈神峰)1652m
백두대간 1구간 북진 코스 능선에 있는 영신봉이며 해발1652m이다
영신봉의 이름은 영신사(靈神寺)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며 하동군 화개면과 함양군 마천면
산청군 시천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영신봉은 낙동강의 김해 분성산(盆城山)까지 이어지는 낙남정맥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영신봉에서 바라본 산하
산은 늘 그자리에서 있으며 우리는 그 산에 오른다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은 산을 뚫지 못함으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산줄기가 이어지기에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 부른다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인 신경준이 쓴 산경표(山經表)에서 한반도의 산줄기를 대간과 정간
정맥으로 나타낸 체계를 따라 붙여진 이름이며 산경표는 1913년 활자로 인쇄된 책자가 많이 남아 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나라 땅의 산줄기〔山經〕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졌다.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여러 갈래로 갈라진 산줄기는 모든 강의 유역을 경계지었고
크게 나누어 동·서 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하는 큰 산줄기를 대간·정간이라 하고
그로부터 다시 갈라져 하나하나의 강을 경계 짓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을 정맥이라 하였다.
세석갈림길 1570m
함양 백무동과 산청 거림 탐방로 그리고 천왕봉 방향으로 갈림길 이며 해발1570m이다
여기서 장터목대피소 까지는 3.4km이며 바로 아래는 세석대피소 이다
백무동 주차장에서 천왕봉까지 산행코스이기도 하며 소지봉, 장터목, 천왕봉을 통과하여
법계사 로타리대피소 칼바위, 중산리 탐방안내소로 가는 탐방코스는 12.9km로서 9시간 소요되며
백무동에서 반대편 중산리로 넘어가는 탐방가능 하고 천왕봉에 가까운 거리로 높고
장엄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지리산의 대표 탐방코스 지리산 백무동~중산리 코스는
특히 10월 중순부터 11월 초순까지 가을 단풍 감상에 적합한 코스로
넓고 포근한 어머니품과 같은 산새와 단풍이 어우러져 내장산과 더불어
단풍감상의 최적 장소로 추천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매년 5월말에서 6월초에 철쭉이 피므로 이 시기에 탐방하는 것도 추천할 수 있는 코스 이기도 하며
나는 세석대피소는 공사중이라 둘러보지 않고 곧장 촛대봉으로 향했다.
세석평전(細石平田)
세석평전은 세석(細石)이란 잔돌이 지천으로 널려있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며
세석평전에는 바람과 운무가 끊이지 않고 지속된다는 기후 특성 때문에 큰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2m안팍의
작은 나무들만 성장하는데 이 나무들을 멀리서 보면 평원을 연상케해
세석평전의 평전(平田)이란 여기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세석평전은 촛대봉(1703m)과 영신봉(1651m)좌우로 하고 둘레8km에 걸쳐 넓게 펼쳐져 있다
촛대봉 1703m
세석평전에서 천왕봉 가는 첫번째 봉우리가 촛대봉이며 촛대봉 유래는 옛날 대성골에 호야와 연진이라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자유롭고 평화스럽게 한 가정을 꾸미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아무 부러울 것이 없는 이들에게 오직 자식이 없다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는데 어느날 곰이 찾아와 연진여인에게 세석고원에 음양수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이 물을 마시며 산신령께 기도하면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연진여인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홀로 이 샘터에 와서 물을 실컷 마셨는데 호랑이의 밀고로 노한 산신령이 음양수 샘의 신비를 인간에게 알려준 곰을 토굴 속에 가두고 연진여인에게는 세석 돌밭에서 평생 철쭉을 가꿔야 하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게 되었다.
그 후 연진여인은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속죄를 빌다가 돌로 굳어져 버렸고, 아내를 찾아 헤메던 호야는 칠선봉에서 세석으로 다려가다 산신령의 저지로 만날 수 없게되자 가파른 절벽 위의 바위에서 못메어 연진여인을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세석고원의 철쭉은 연진의 애처러운 모습으로 에련한 꽃을 피운다고 하며 촛대봉 바위는 바로 연진의 굳어진 모습이라고 한다
촛대봉에서 바로논 산하
산은 늘 나에게 기운을 주는듯 하다 산에 오르면 영혼까지 맑아지는듯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고 산을 찾게 되는가 보다 30대 까지는 줄기차게 바다로 향해 달렸다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즐기고 심해에서 주는 수중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였다
모두가 바다와 산을 줄기차게 다닐수 있었던 힘의 근원은 아마도 해병대특수수색대의
고된 훈련속에서 찾은 바다와 산이 아닐까 싶다.
연하선경 넘어 천왕봉 조망
하늘아래 우둑솟은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길은 산청지역 천왕봉 코스를 여름날 탐방하면서
걸었던 길인데 연하선경은 지리산 10경중의 하나인 8경이라고 한다
연하선경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은 기암과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어우러진 운무가
홀연히 흘러가곤 하여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천왕봉을 향해 힘차게 뻗은 지리산의 크고 작은 산줄기 사이사이에는 온갖 이름 모를 기화요초가
철따라 피어 지나는 이의 마음을 향기롭게 한다.
이끼 낀 기암괴석 사이에 피어 있는 갖가지 꽃과 이름모를 풀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지리산과 어우러져
마치 신선의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고산준령 연하봉의 선경은 산중인을 무아의 경지로 몰고 간다.
연하선경(烟霞仙境)
연하선경길은 걷는 서울에서 온 20대 초중반 화대종주를 하는 여성분들이 사진속에 담겼다
연하선경은 고색이 창연하게 이끼낀 기암괴석 사이에 향기높은 기화요초(琪花瑤草)가
철따라 피어나는 선경으로 위에는 자연고사목의 들을 이루고 아래로는 수백년을 지나도
푸르름을 자랑하는 원시림이 가득한 곳 연하선경 지리산이다.
연하봉(烟霞峰)1710m
연하봉(烟霞峰)은 아름다운 경치를 지극히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하며
여기서 장터목대피소 까지는 0.8km이라고 안내 되어 있다
지리산을 산행하다 조금 아쉬운 점은 지리산 봉우리마다 정상표지석이 반야봉이나 노고단 처럼
세워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남지역의 지리산 봉우리 표지석은 천왕봉 외엔 아무것도 없다.
장터목대피소
비가 그치니 강풍이 세차게 불어서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바람이 강했다
장터목은 천왕봉의 자매봉인 제석봉의 남쪽능선 고개마루를 장터목이라 부른는데
장터목은 옛날에 천왕봉 남쪽 기슭의 시천주민과 북쪽 기슭의 마천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 이곳에 모여서 장(場)을 세우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한데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장터목고개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오르면 제석봉이 나온다.
제석봉(帝釋峰) 1808m
천왕봉과 중봉에 이어 지리산의 3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며
제석봉에는 오래전부터 제석당이라는 신당이 있었는데 이것이 제석봉의 이름을 짓는 유래가 되었다고도 하고
제석이라는 이름은 불교의 불법을 보호하는 신이 제석천(帝釋天)이다 또한 지리산의 봉우리와 토속신앙인 천신신앙이
결합되어 의미가 깊어졌다고 전하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제석천(帝釋天)은 불법과 이에 귀의하는 자를 수호하며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고 하는 하늘의 임금이다. 음역하여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라 하며
줄여서 석제환인(釋提桓因)·석가제파(釋迦提婆)라고도 한다. 또한 천제석(天帝釋)·천주·인다라라고도 한다.
제석봉 고사목지대
제석봉은 옛날 산신의 제단인 제석단이 있어 더한층 유명 하며 이제단은 양지바른 곳에 자리했고
옆에는 맑고 시원한 물이 항시 콸콸 솟아나는 샘터가 있어 명당임을 알 수가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군락인데 10만여평의 완만한 비탈에
고사목들이 서 있고 바닥은 풀밭일 뿐이였다 살아 백년 죽어 천년 이라고 무상의 세월을 말하는
이 고사목 군락지는 50년 전에는 숲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의 청년같은 푸르름을 간직했는데
10만여평에 걸쳐 듬성듬성 서 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특이한 경관이 되고 있었고
이곳은 전나무 구상나무들의 고사목 군락지로 고사목 자체가 귀중한 자연경관이다.
그래서 고사목의 훼손과 야영 및 취사행위등은 할 수 없고, 등산로 이외의 지역은 출입도 금지한다.
하지만 고사목들은 해마다 눈에 띄게 줄어들고 보이지도 않고있다.
통천문(通天門)
通天門(통천문)이란 대각자가 좌측 암반에 새겨져 있으며 예로부터 부정한 자는 출입을 못하다는 전설이 전한다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
하늘이 멀지 않았다 통천문으로 달도 별도 지난다
날개없는 마음만이 통할수 잇는가 지나가면 날개가 돋아날 것인가
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 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
옛날과 지금을 꿰었고, 일천 겁(劫)을 지났어도 예가 아니며(歷千劫而不古),
일만 세를 뻗치어도 언제나 지금이다(亘萬歲而長今).
바다와 산이 서로 옮겨짐을 많이 겪으면서 바람과 구름의 변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는가.
통천문에서 바라본 함양(咸陽)
백두대간은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해서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속리산, 덕유산을 거쳐 어느 덧 지리산까지 내려와
천왕봉에서 그 끝을 맺는다. 지리산의 이름도 백두대간에서 내려왔다고 해서 두류산(頭流山)이라고 불고
이름 그대로 백두산에서 흘러내린 산이란 의미라고 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지리학자인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지리산은 백두대간이 멈추는
천하의 대명당이라고 설명했다.
古語曰 天下名山 僧占多(고어왈 천하명산 승점다)
천하의 명산을 승려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리산의 산하
지리산권은 그 규모면에서도 남한에서 단연 최고이며 천왕봉․반야봉․노고단의 3대 주봉과 함께
해발 1,500m 이상의 큰 봉우리만도 10개가 넘는다. 최고봉 천왕봉(1,915m)을 비롯해서 반야봉(1,732m)
제석봉(1,806m), 촛대봉(1,704m), 명신봉(1,652m), 칠선봉(1,576m), 토끼봉(1,534m), 노고단(1,507m) 등
산봉우리들이 장장 45㎞에 이르는 주능선을 형성하며 첩첩산중을 이룬다.
이 능선들이 한반도 산줄기의 뼈대를 이루는 대간의 대미를 장식한다.
지리산은 우리 민족에게는 성산이자 어머니의 산이다.
왜 어머니의 산이라고 하는 이유는 성모신앙과 관련 있다고 하는데 성모신앙은 천왕성모라 하고
마고(麻姑) 때부터 존재했다 하며 천왕성모는 천지창조의 주인인 율려(律呂)이고
이 율려에 의해 우주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마고가 탄생한다.
이 마고신화가 우리 민족의 생성신화인 것이다. 단군․환인․환웅 이전의 이야기이며
마고성모는 지리산 천왕할매로 알려져 있는 천왕성모로, 마고시절부터 우리 민족을 보호해온 수호신이다.
지리산 천왕봉(智異山 天王峰)1915m
천왕봉 꼭대기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란 정상 표지석 뒷면의 내용이다
이 내용은 전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며 옛날에는 ‘萬古 天王峰 天鳴猶不鳴(만고 천왕봉 천명유불명)’이라
새겨진 청석표주와 지리산 산신령을 봉안하는 성모사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명의 ‘하늘은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는 뜻을 그대로 쓴 것이다.
서산대사는 금강산, 구월산, 묘향산과 더불어 지리산을 평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엄한 산이라 했다.
그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지리10경’ 중의 으뜸인 천왕일출(天旺日出)이 1경이며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광경이다.
지리산 천왕봉(智異山 天王峰)1915m
지리산 천왕봉 정상표지석은 많은 변화를 격었는데 아마도 1981년 까지만 해도
앞에는 천왕봉 뒷면에는 남명선생의 시 만고천왕봉(萬古天王峰) 천명유불명(天鳴猶不鳴) 새겨져 있었다
천왕봉(天王峰) -남명(南明)
請看千石鐘 (청간천석종)천석종을 좀 보게나
非大扣無聲 (비대구무성) *扣 :두드릴 구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네
萬古天王峰(만고천왕봉) 만고의 천왕봉이라.
天鳴猶不鳴 (천명유불명) 하늘이 울어도 (지리산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
지리산 천왕봉(智異山 天王峰)1915m
지금의 천왕봉 표지석은 1982년 5공화국 실세였던 함양산청 국회의원이었던 권익현씨가
세웠는데 처음에는 영남(嶺南)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였는데 영남에서 경남(慶南)으로
글자가 바뀌었는데 경남(慶南)글자가 훼손이 심해서 한국(韓國)으로 바뀌었다
82년 6월에 현재의 정상석이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의 지리산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출범하기
전이라 관리를 경상남도에서 하고 있었고 당시 산청․함양지역의 국회의원이 권익현씨였는데
82년 6월 관할 도청인 경남의 이규호 도지사(나중에 교육부장관) 와
권익현씨가 공무원들을 동원하여 대청소를 한다며 헬기까지 동원해서 표지석을 세우게 되는데 문제는 뒷면의
‘경남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였다
삼도(三道)에 걸쳐있는 지리산이 어느 도의 점유물이 될 수 없었듯
1985년쯤 보니 뒷면의 경남이란 글자가 누군가에 의해 망실이 되었는데
당시 들리는 소문에는 여수산악인 2분이 헤머로 때렸다는 설도 있고
누군가 정으로 쪼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표지석 뒷면 글자도 우여곡절이 많았고 통일이 되어서
백두산(白頭山) 꼭대기에 한국인의 기상 이곳에서 발원되다 라는 정상표지석이 세워지길 기원해본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조망(산청山淸)
천왕봉에 서면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휜하게 볼수가 있다
발 바로아래는 산청군 시천면이 좌측은 삼장면이 보이고
맑은 날에는 저멀리 진주(晋州)까지는 물론이고 통영(統營)까지 보인다고 한다
국립공원 제1호로 규모가 국내에서 가장 큰 지리산은 8·15해방부터 6·25전쟁을 거치면서
삼림에 큰 피해를 입었으나, 비교적 원시상태의 자연림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대한제국 말에 동학교도들이 피난하여 살았으며, 여순반란사건 후 좌익세력 일부가 머물렀고
6·25전쟁 때는 북한군의 패잔병 빨지산의 거점으로 삼기도 했다. 오늘날 각종 민족종교의 집산지가 되고 있다.
지리산은 불교문화의 요람지로서 화엄사, 연곡사, 천은사, 쌍계사 등에 국보급·보물급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조망(함양咸陽)
백두대간 북진 들머리인 지리산이며 백두대간은 장백정간(長白正幹)과 함께
서쪽으로 해안선까지 많은 ‘골’과 ‘들’을 이루며 뻗어 내려간 13개의 정맥, 즉 청북정맥(淸北正脈)
청남정맥(淸南正脈)·해서정맥(海西正脈)·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한북정맥(漢北正脈)
한남정맥(漢南正脈)·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금북정맥(錦北正脈)·금남정맥(錦南正脈)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호남정맥(湖南正脈)·낙동정맥(洛東正脈)
낙남정맥(洛南正脈)과 연결되고 있다.
하산길
지리산 아래는 아직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고 아마도 10월 말쯤 되어야 지리산 아래도 단풍이 절정을 이룰듯 하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산맥구분 체계에서 일컫는 마천령산맥, 함경산맥, 낭림산맥(狼林山脈)
태백산맥을 거쳐 소백산맥으로 이어지며 소백산맥의 끝자락인 지리산까지 이르는 국토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산지체계로, 이 산맥들은 오늘날 소위 한반도의 1차 산맥이라 일컫는 산맥들인데
높이가 높고 연속성이 뚜렷하여 전통적으로 지역의 경계 기준이 되었다.
또한 이런 높은 산지들은 분수계(分水界)를 이루어 하천 유역을 바탕으로 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생활권 영역 형성과 이에 따라 방언 등 문화의 차이에 영향을 미쳤다.
법계사 성모상(法界寺 聖母像) 1400m
법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로서
544년에 조사(祖師) 연기(緣起)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1405년에 선사 정심(正心)이 중창한 뒤
수도처로서 널리 알려졌으며,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다고 전한다.
성모상은 지리산 천왕 할매라고도 하는데 지리산성모는 천왕(天王)·천왕할매·마고(麻姑)할매
마야부인(摩耶夫人) 등의 속칭을 가지고 있는 지리산 수호여신이다.
원래 이 신상은 1970년대초까지 천왕봉에 있었으나, 그 뒤 행방불명되었던 것을
천왕사 주지 혜범(慧凡)이 수년간 노력한 끝에 1978년 꿈의 계시(啓示)로 찾아다가 절에 봉안하고
음력 3월 7일과 10월 3일에 신도들과 함께 제사를 모시고 있다.
법계사 성모상은 최근에 제작 봉안되었다
백두대간 1구간길 산행 종료
함양 음정마을 벽소령에서 시작하여 산청군 중산리까지 25.72km 구간을 10시간 24분 걸여 마무리 했다
아침에서 부터 저녁까지 걸은 셈이 되었고 틈나면 백두대간 구간별로 걸어보자는 생각에
비오는날 아침 함양 마천으로 가서 이렇게 걸을수 있다는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산행기를 끝맺음 해본다.
※ 인용글: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산&산(부산일보),한국1000산 신명훈,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산청군,함양군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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