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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황악산(金泉 黃岳山).백두대간길 괘방령(掛傍嶺)에서 우두령(牛頭嶺)까지 황악산 산길을 걷다. 본문
김천 황악산(金泉 黃岳山).
백두대간(白頭大幹)길 괘방령(掛傍嶺)에서 우두령(牛頭嶺)까지 황악산 산길을 걷다.
▲ 김천 황악산(金泉 黃岳山)
높이 : 1,111m
위치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과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에 걸쳐 있는 산.
▲ 김천 황악산(金泉 黃岳山) 나의 산행일 :
2021년09월11일 토요일 : 날씨 : 약간흐린후 맑음
▲ 김천 황악산(金泉 黃岳山) 나의 산행코스
백두대간 6구간
괘방령→→여시골산→→운수봉→→선유봉→→황악산 정상→→형제봉
→→바람재→→여정봉→→삼성산→→우두령
14.23km 6시간32분 소요(트랭글 앱 기준)
※ 추풍령택시(010-3404-1098)이용 우두령→괘방령
▲ 김천 황악산(金泉 黃岳山) 개요 :
김천 황악산은 높이 1,111m로서 일명 황학산(黃鶴山)이라고도 불린다.
삼도봉(三道峯, 1,177m)·대덕산(大德山, 1,290m)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연봉을 이루며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편마암으로 되어 있어 높은 산을 형성하게 되었다.
산의 북쪽에는 괘방령(掛傍嶺), 남쪽에는 우두령(牛頭嶺)이 있어 김천시와 영동군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되고 있으며 산 전체에 수목이 울창하고 특히 동쪽에 있는 직지사(直指寺)로 향하여
흐르는 계곡은 매우 경관이 좋다.
직지사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천룡대(天龍臺)로부터 시작되는 능여계곡(能如溪谷)은
봄에는 산목련·진달래, 가을에는 단풍으로 메워지며, 직지사에서 1㎞지점에는
옛날 사명대사가 즐겨 찾았다는 사명폭포가 있다.
여기에서 갈라지는 내원계곡(內院溪谷)과 운수계곡(雲水溪谷)에는 작은 규모의 폭포들이 많아
계곡미를 더하여주며 산 동쪽은 직지사를 가운데 두고
능여암·운수암·내원암 등의 암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 김천 황악산(金泉 黃岳山)등산지도
▲ 백두대간 등산지도
▲ 김천 황악산(金泉 黃岳山)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2021년 09월11일 토요일 대한민국 구석구석 산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백두대간 6구간인 괘방령에서 우두령 까지 남진(南進)하여 김천 황악산 산행을 목적지로 하고
아침일찍 김천 괘방령으로 향했다
가는길 내내 안개가 자욱하고 들머리인 괘방령 주차장까지 도착할 무렵 즈음에 햇살이 나오긴 했지만
산정은 운무로 인해 조망을 보지 못할듯한 예감이 들었다.
괘방령(掛傍嶺) 장원급제길
주차장 한편에 장원급제길 안내문이 있었다
괘방령은 경북 김천시 대항면에서 충북 영동군 매곡면을 잇는 고갯길로 조선시대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다니던 길로 유명하다
괘방령 고갯길을 넘으면 급제하고 인근 추풍령으로 가면 추풍낙엽처럼 낙방한다 하여
당시 선비들은 이곳을 택하였다고 한다.
어머니 기도상(常)
정화수(井華水) 떠다놓고 과거길 떠난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만들어 놓았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님의 자식을 향한 헌신하는 마음은 한결같아 보인다
괘방령은 지방도 906호선에 위치한 작은 고갯마루로 김천시대항면에서 충북영동 매곡면을잇는 길로서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보러가기위해 넘던길인데 합격한 사람의 이름을 써 붙인다는
'괘방'(걸 괘掛, 붙일 방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장사꾼들의 오가던 길이지만 장원급제길이라는 유래가 전해져
대학수능이 다가오면 합격을 기원하는 학부모의 발길도 이어진다고 하며
영동군은 이 장원급제길을 비롯해, 소망을 담아 3번 두드리면 하늘에 닿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심천면의 ‘천고’ 등으로 인해 ‘수능 대박 기원 명소’로 전국 학부모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괘방령(掛傍嶺) 표지석
괘방령에서 우두령(牛頭嶺)까지 들머리이며 김천 황악산 들머리이기도 하다
건너편은 추풍령까지 가는 백두대간 6구간 길이며 틈틈이 시간날때 마다 산행시 백두대간길과 겹치면
나는 백두대간길을 걸어서 산행을 한다.
괘방령이 있는 김천시는 소백산맥이 서남으로 뻗으면서 추풍령(235m). 황악산(1,111m). 삼도봉(1,176m)
대덕산 (1,291m). 우두령, 수도산(1,327m)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으며, 동으로 살티재(箭嶺)
별 미령. 백마산(716m). 금오산(977m)이, 북으로 백운산(618m). 여남현(汝南峴)
용문산 (710m)이 백두대간의 정기를 이어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백두대간 괘방령(白頭大幹 掛傍嶺)
경상북도 김천시와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을 잇는 고갯길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괘방령(掛榜嶺)으로
산경표(山經表)에서는 계방산(桂榜山)으로 기록하고 있다. 추풍령이 주로 관로(管路)라고 하면
괘방령은 상로(商路)라고 할수 있다. 바람재에서 추풍령 구간은 백두대간 생태복원의 핵샘지인 바람재
한반도의 중심이라고 일컬어지는 황악산,여우가 자주출몰 했다는 여시골산
장원급제를 바라는 이들의 통행로인 괘방령, 우리나라 교통의 요지인 추풍령으로 연결되는 구간이다.
황악산 초입구간
초목이 초록으로 빼곡한 황악산은 마지막 여름을 아쉬워 하는 매미소리만 가득하고
안내표시목에는 백두대간보호지역이라 되어 있고 급경사 구간으로 미끄러지거나 추락할 위험이 있으니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되어 있으며 백두대간길은 북진(北進) 보다 남진(南進)이 더 힘들다고 한다.
황악산이 위치한 김천시는 교통의 요충지로 조선시대 후기부터 일제시대 말기까지
우리나라 5대 시장의 하나로 발전해 오다가 광복후는 쇠퇴하고 지금은 공업의 부흥으로
농공복합의 지역으로 발 돋움하고 있다고 하는곳이다.
능선길
급경사를 숨 헐떡이며 오르고 나니 능선길을 만날수 있어 숨고르기를 하였다
괘방령이 위치한 김천시 대항면은 옛날 김산군 서쪽 끝 지역인 대항 12 방의 중심지는
대항면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터목(垈項)이었다 하며 한자로는 대항(垈項)으로 표기하고
본리라 했으며, 뒤에 대항(代項)으로 고치고 20동을 거느렸다고 전한다.
1906년 황간군 황남면의 6개동(지천, 묘내, 광암, 방하상, 세송, 돌모응)과
봉산면의 하지리의 일부를 김산군에 편입하여 관내를 삼았다.
1914년에 26개동을 향천. 덕전. 대룡. 운수. 주례. 대성의 6개동으로 통합하였고
1973년에는 봉산면의 복전동을 대항면으로 들게 하여 7개동이 되었다.
이에 앞서 1971년에는 다시 복전 2, 대룡 2, 덕전 4, 대성 2, 주례 2, 운수 3
향천 4개동 등 19개동으로 나누었다 한다.
황악산 야생화(참취꽃)
백두대간길을 걸어서 황악산 산행길 옆에는 참취가 마치 누군가 밭을 일구어 놓은듯 가득하게 피어있었다
우리 일상에 산나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물이 바로 참취이며 경남 하동청암에는 대량으로 재배도 하고있고
실제 취나물중 참취가 맛이 으뜸이며 그래서 이름도 참(정말, 진짜) 나물이며 잎도 나물로 맛있지만
여름에 피는 꽃도 선명한 흰색으로 아름다움을 뽐낸다.
주변 전체가 녹색바탕일 때 흰꽃이 피기 때문에 훨씬 돋보인다.
황악산 야생화(흰바디나물)
흰사약채라고도 하는데 땅속줄기는 짧으며 뿌리가 굵고 줄기는 곧게 서서 자라며
가지가 여러 개로 갈라지는데 전체에 털이 없으며 우리나라 특산종이라고 한다.
관상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되며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환제 또는 산제로 하여 사용한다고 전한다.
여시골산 620m
여시골산은 김천시 대항면 향천리에 위치하며 여기서 황악산 까지는 4.0km 이다
백두대간길이라 백두대간 종주꾼들의 산행깃표가 마치 단풍잎 처럼 매려 있으며
향천리에는 못내. 지천(池川)마을 뒤에 작은 못이 있어 거기서 시작된 냇물이 마을 앞을 지나고 있으므로
지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며 1976년 직지사 입구에 위치한 상가를 철거하고
지천으로 이주하여 현재 약 74 가구가 상가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또한 광암(廣岩). 합천. 학교동은 약 250년전 정아무개라는 한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할 때
마을 앞에 넓은 바위가 있어 광암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직지천과
방하천이 합하는 곳이라 하여 합천이라고도 하였다 하며 1930년 이곳에 보통학교가
처음 설립되었다 하여 학교동이라고도 불리어졌다고 전한다.
여시굴
보통 우리동네 경남지역에서는 여우를 야시하고 하는데 경북은 여시라고 하는가 보다
여시굴은 여시골산의 대표적인 여우굴(여시굴)로서 예로부터 여우가 많이 출몰하여
여시골짜기라 알려졌으며 그로인해 여시골산이라 불려진다.
여시굴
바위에 마치 광산(鑛山)채굴을 한듯한 수직으로 되었다가 수평으로 되어있는듯 보인다
자연적 동굴이보다는 인위적인 광산 채굴 터널같이 보였다 예전 김천은 금광이 많았기 때문이다
행여 산행자들이 추락할까바 안전 로프가 설치되어 있었고 저 굴속길이는 얼마나 될까 궁금도 하다
예전 여시굴이였다면 아마도 100마리 넘게는 살아도 될 정도의 크기이다.
운수봉(雲水峰) 680m
예전에는 운수봉이라는 정상표지석이 있는 사진을 보았는데 내가 도착한 운수봉은 안내표지목만 있었다
운수봉은 金泉市(김천시) 대항면과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경계에 있는 산이며
直指寺(직지사)의 부속암자인 雲水庵(운수암)의 북쪽 봉우리에 위치하고 잇으며 직지사가 있는
능여계곡의 행정구역인 대항면 운수리와도 관련이 되어 있으며
운수봉은 언제나 구름이 머물고 골짜기 물이 흐르는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직사사(直指寺) 삼거리
괘방령에서 오는 산길과 직지사에서 황악산 가는 산길이 접하는 삼거리이며
황악산이 위치한 김천지방은 예부터 금(金)의 주산지로 이름이 났는데 김천(金泉), 김산(金山)
금릉(金陵)이라는 이 고장의 대표적인 지명이 모두 금과 관련이 있었다.
김천이라는 지명은 옛날 금을 캐던 고성산 금광(現,과하천 터)에 물이 고이면서 폐광이 되고
훗날 우물로 사용하면서 “금을 캐던 우물”이라는 뜻으로 금천(金泉)이라 불렀다.
이 금천의 물이 차고 맑아 술을 담아 먹었는데 이것이 곧 이 고장을 대표하는 과하주(過夏酒)가 되고
이로부터 사람들은 금천을 일러 과하천, 과주샘이라 했다고 전한다.
황악산(黃岳山) 1.5km 표지목 구간
여기엔에 오르니 직지사 방향에서 운무가 올라오고 있었는데 백두대간길 내내 조망은 없었다
어느새 낙엽은 단풍이 들듯한 모습이며 토요일이라 김천시민들이 가족단위 친구단위로 산을 많이 찾고 있었다
황악산 아래 직지사(直指寺)는 418년(눌지왕 2) 아도(阿道)가 창건했다고 한다.
직지사라고 한 데는 세 가지 설이 있는데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桃李寺)를 창건하고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가 있다’고 하여 직지사로 불렸다는 설과
고려 초기에 능여(能如)가 절을 중창할 때 절터를 측량하기 위해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측량하여 지었기 때문에 직지사라고 하였다는 설도 있으며
선종의 가르침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에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119구급함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지나 가듯이 나 역시 업무와 관련된것이라 한번 보았다
내가 여러 지역의 산행을 해보지만 유일하게 구급함에 열쇠는 채우지 않는곳이 경남 뿐이다
서울지역 경기지역 여기 경북지역도 자물쇠가 채우져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비번은(1119)일것이다
경남하동 근무시절 분기별로 119구급함 확인과 유효기간 만료된 것이랑 부족분을 채우고 했었다.
황악산 탐방로
하늘은 운무가 가득하고 수목은 가을을 준비하는듯 하다
탐방로는 백두대간 산꾼들 그리고 황악산을 찾는 산행자들이 많다는 것을 말해 주듯이
탐방로가 많이 훼손되어 있고 아마도 폭우가 내리면 흙이 많이 쓸려 내려갈듯 하다.
주중에 계속 가을 장맛비가 내렸지만 이렇게 토요일 산행할수 있도록
비가 오지 않는것 만으로도 다행이지만 운무로 인해 조망이 숨어버린것에 대해 아쉽기만 하다.
선유봉(仙遊峰) 1045m
선유봉에 오르니 조망을 볼수 있는 산정이지만 운무가 나의 발걸음 보다 더 빠르게 황악산을 오르고 있다.
황악산은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준령(竣嶺)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그 서쪽 추풍령(秋風嶺)에서 잠시 머물러
관문(關門)을 이루었고,다시 서남쪽으로 웅장(雄壯)한 산세(山勢)를 유지하며 달려와
힘차게 솟아오른 황악산(黃岳山) 동남쪽 산자수명(山紫水明) 한 곳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直指寺)가 자리해있고 해발 1,111m에 달하는 황악산은 북쪽으로 충청도,서쪽으로 전라도
동남쪽으로는 경상도에 연이은 삼도(三道)의 도계(道界)에 접하며 백두대간 능선으로 이어졌다.
황악산 산정(黃岳算 山頂)1111m
황악산(黃岳山) 의 황자는 청(靑), 황(黃), 적(赤), 백(白), 흑(黑)의 5색(色) 중에서도 중앙색을 상징하는 글자이며
따라서 황악산에 위치한 직지사는 해동(海東)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으뜸가는 가람이라는 뜻에서
동국제일가람(東國第一伽藍)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으며 직지사는 김천까지는 12km이고
다시 김천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230km, 부산까지는 218km로서 남한의 중앙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경부선(京釜線)을 비롯하여 태백산(太白山), 삼척(三陟)등 동해방면(東海方面)으로도 연결되는
한반도(韓半島) 교통의 요충지이며, 예로부터 길상지지(吉祥之地)로 전해져 내려오는 곳에
황악산 아래 직지사는 정좌(定座)하고 있다.
황악산 산정(黃岳算 山頂)1111m
황악산은 해발 1,111m 비로봉을 중심으로 백운봉(770m), 신선봉(944m), 운수봉(740m)이 치솟아
직지사를 포근히 감싸주며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하며 비단같이 부드러운 편이며
초입 일대 계곡 양쪽으로 늘어선 노송과 참나무가 하늘을 덮어 장관을 이룬다.
이 산은 김천시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소백산맥 가운데 위치하며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이라고도 불렀으나 직지사의 현판 및 택리지에는 황악산으로 되어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깊은 계곡에 옥같이 맑은 물,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화가 아름답고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 민주지산, 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 동으로 금오산, 북으로는 포성봉이 보인다.
황악산 산정(黃岳算 山頂)에서 바라본 조망
저멀리 좌측에 보이는 봉우리가 충청북도 영동에 있는 민주지산 이다
감천이라는 유래를 보면 물이 흐르는 곳에 마을이 이루어지고 마을이 있는 곳에 인간 삶의 고리들이 이루어진다.
냇물은 높은 산 깊은 골짜기에서 돌부리를 올리는 작은 옹달샘에서 비하여 골에 골물이 합수하여 제 모양을 드러낸다.
김천의 삶은 감천으로부터 온다. 감천은 김천 역사의 젖줄이며 말미암음이 다.
감천의 물줄기와 물줄기가 만나는 어름쯤에 먹거리 문화의 움이 싹터 올랐던 것이다.
그 싹이 자라서 숲을 이루고 마침내 황악산과 금오산이 용출하는 그 사이에서 감천의 물로
생명의 샘을 삼은 이들이 모여 사는 모꼬지가 된 곳이 김천이라고 한다.
황악산 형제봉(黃岳山 兄弟峰)1044m
황악산 산정에서 백두대간길 우두령으로 발길을 돌리면 제일먼저 형제봉을 만난다
형제봉은 약 300m 거리를 두고 남쪽으로 우뚝 솟은 두 개의 봉우리가 마치 우애 깊은 형제 모습과
닮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하며 형제봉 정상부 식생은 침엽수가 매우 우세하게 나타나며
비탈면 하단은 참나무등 활엽수와 침엽수가 혼재된 혼합림을 이루고 있다.
백두대간 구간은 24구간으로 구분하는데 산꾼들 마다 다르게 이야기 하기에 정확한 구분을 정하기는 애매모호하다
지금 우두령에서 추풍령 구간을 6구간이라 하는데 12구간 으로 표기 하는곳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난 직진 하는 바람에 신선봉으로 갔다 신성봉으로 가면 직지사 주차장으로 나오며
우두령 백두대간 능선의 반대로 걸어온 것이다 버섯채취 산꾼 아니면 더 걸었을지도 모른다.
바람재 방향 삼거리
여기서 난 직진 하는 바람에 신선봉으로 갔다 신성봉으로 가면 직지사 주차장으로 나오며
우두령 백두대간능선의 반대로 걸어온 것이다 버섯채취 산꾼 아니면 더 걸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와 삼거리에서 식사를 하던 김천지역 60초중반 산행자들이 왜 다시 돌아왔냐고 묻길래
우두령으로 가야하는데 길을 잘못들어서 다시 돌아왔다 하니 술이랑 참외 음식을 펼쳐 놓고
먹고 가라 하길래 술을 먹지 못한다 하니 감천참외가 맛있다며 참외 하나를 건네 주었다.
감천참외
감천참외가 맛있긴 맛이 있었다 배가 고파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코로나-19시대 이렇게
예전처럼 서로 대면하며 음식을 나눠 먹는 모습이 얼마만 인줄 모르겠다.
감천의 뿌리샘은 대체로 우두령재에서 흘러내리는 샘줄기와 가목재에서 발원하는 샘줄가
부항과 지례의 어름, 상부리에서 만나 제법 물줄기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다.
외감 내감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를 어우름은 물론이다. 물은 흘러 다시 구성과 김천 시내를 통과하면서
황악산쪽에서 발원하는 직지천과 만나게되고 다시 개령면에 이르러 어모천(禦侮川) 곧 아천(牙川) 과
만나면서 이제 감천의 본류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한자만 달랐지 어모는 곧 아천이 된다.
어금니아(牙)는 《훈민정음》에 따르면 엄소리(牙音)의 '엄'으로 대응이 됨은 아주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하겠다.
그러니까 어모 - 엄이란 등식이 성립된다는 이야기다.
삼한시대에 감문국(甘文國)이 있었으니, 그 속국으로는 지금의 조마면에 있었던 주조마국(走漕馬國)
어모면 중왕리 자리에 있는 어모국(禦侮國), 감문면 문무리에 있었던 문무국(文武國)
아포면 제석리에 있었던 아포국(牙浦國)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한마디로 이들 나라들은 감천내가 만들어 낸 마을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감천내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고장이 김천이라고 보면 된다.
바람재(風鈴풍령)
바람재는 예전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어 풍령이라고도 일컬어지는 곳으로 산의 모습이 소의 머리와 닮았다는
우두령과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영남 유생들이 추풍낙엽처럼 낙방한다는 속설이 있는 추풍령 대신에
주로 이용했다는 괘방령을 잇는 연결 지점이다.
또한 바람재 지역은 백두대간 마루금을 단절하고 있던 폐 군사시설물을 2010년 철거하고
지형 및 식생 복원한 지역으로 백두대간 생태복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라고 한다.
황악산 조망
백두대간길을 걸어 황악산 산정을 되돌아 보았다
백두대간 황악산이 위치한 김천의 옛 고을 이름이 감물(甘勿)인데 이는 달리 금물(今勿)이라고도 적었다 하며
글자만 달랐지 감-금이 같은 의미를 드러내는 고장의 지명 형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 라고 한다.
결국 김천이 감천이요, 감천이 낳은 삶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다는 줄거리가 된다 하며
적는 한자나 그 소리는 다르지만 잘 살펴서 그 대응성을 알아보면 난함산 (卵含山)의 함(含)또한
감천의 '감(甘)'과 같음을 알 수 있다고 하며 '함'의 도대 한자음이 감(甘γam)이니 난함산을
우리말 식으로 읽으면 알감산이란 풀이가 가능하며 소리가 약해지면서 난함산-나남산-내남산으로
그 소리가 여러 가지로 바뀌어 일반화되어 쓰인다. 알감산에서 상금천 곧 감천 의 큰 지류인
어모천 상류의 한 갈래가 알감산에서 흘러 모두가 감천으로 합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감천과 걸림을 보이는 방사형태라고 상정할 수가 있다고 한다.
여정봉(旅程峰) 1032.1m
여정봉은 경북 김천시 대항면(大項面)과 충북 영동군 상촌면(上村面) 경계에 있는 산으로 국토지리정보원에는
여정봉((旅程峰1030m)으로 표기 되어 있다.
김천을 대표하는 황악산과 삼성산(三聖山986m)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백두대간의 한 줄기이다
직지사의 부속암자인 삼성암 뒤에 위치하고 있으나 삼성암으로 올라가는
정상적인 루트가 없어 등산객들은 바람재 등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를 이용하여 정상을 지나간다.
명칭에는 특별한 유래는 없으나 황악산을 가는 도중 봉우리 또는 여행을 하는 노정 봉우리 등으로
여정봉이라 불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백두대간 우두령 방향
저멀리 김천시(金泉市)가 조망이 되며 김천시의 동북부는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서쪽에는 소백산맥의 줄기를 따라 추풍령(秋風嶺, 1,111m)·삼도봉(三道峰, 1,177m)·대덕산(大德山, 1,290m)
눌의산(743m)·황악산(1,111m)·천덕산(986m) 등의 높은 산이 솟아 있으며
삼도봉은 충청북도·전라북도·경상북도의 경계가 되고 있다.
남쪽에는 대덕산에서 갈라져 나온 가야산맥이 뻗어 있고, 수도산(修道山, 1,317m)·단지봉(丹芝峰, 1,327m)
국사봉(875m) 등이 주봉을 이루며 경상남도와의 경계가 되고 있다.
삼성산(三聖山)986m
여기에 도착하면 추풍령 콜 개인택시(010-3404-1098)로 전화하면 우두령에서 대기 하였다가
들머리인 괘방령이나 추풍령으로 갈수 있는데 요금은 38000원이며 주로 대간 산꾼들이 이용하기에
나도 콜택시에 전화하여 예약을 하였다 전화를 하면 필요한 물품이 있는지 물어보며 사다 주기도 하며
아주 친절하여 백두대간 구간 산꾼들에게 소문이 나 있을 정도이다.
우두령(牛頭嶺) 들머리
백두대간 종주산행은 대부분 북진(北進)을 하지만 난 남진(南進)을 하여 우두령이 날머리가 되었다
남진코스가 북진 코스보다 좀더 난해하다 하는데 그 이유를 오늘 걸어보니 알게 되었는데
비탈진 오르막을 많이 만난다는 것이다
황악산을 비롯한 백두대간 6구간인 김천시는 황악산에서 발원한 직지천(直指川)과
대덕산·우두령에서 발원한 감천(甘川)이 주요 하천이며 감천은 남서부에서 동북부로 시의 중앙을 관류하며
직지천·아천(牙川)·율곡천(栗谷川)·부항천(釜項川) 등과 합류, 구미시로 빠져나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감천과 직지천이 이루어 놓은 금릉평야와 개령평야는 들이 넓고 기름져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했고
이 지방 농업을 위주로 하는 1차 산업의 터전을 이루고 있다.
조선 말기까지는 낙동강 하구에서 소금배가 올라올 정도로 깊었던 감천하류가
무절제한 야산개발로 하상이 높아져 홍수의 주원인이 되어 왔다고 한다.
백두대간 우두령(白頭大幹 牛頭嶺)720m
백두대간은 국토의 등줄기로 남북을 잇는 대동맥 이며 자연생태계의 핵샘축을 이루는 생물의
다양성의 보고이다. 이곳은 720m 높이에 있으며 북쪽은 황악산 남쪽은 민주지산이 위치하고
경북 김천시와 충북 영동군을 연결하는 분수령으로 낙동강과 금강수계의 발원지다.
우두령은 우등령(소의 등)이 구전(口傳)되어 변했다고 전하며 질매재로도 불리우고 있다.
산은 우리의 삶의 터전이고 바탕이며 생명의 원천으로 백두대간을 영원히 보존하고
아끼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백두대간 표지석을 세운다.
2006년10월20일 충북지방산림청 보은국유림관리소 라고 뒷면에 새겨져 있다.
산행종료
괘방령에서 남진하여 황악산 산정을 거쳐서 우두령으로 하산 완료 하였다.
과거(過去)우두령은 황악산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등 높은 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오지였기 때문에 고려말 왜구 노략질과 임진왜란 6.25전쟁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의 은신처가 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임진왜란 초기 왜군이 거창을 거쳐
전라도로 진입하려던 당시 의병장 김면(金沔)이 2000여명 의병을 매복시켜 1500여명 왜군을
크게 무찔러 전라도 곡창지대를 지키는데 일조하였으며 6.25전쟁 당시에는 빨지산들이 활동하던
지역이기도 하였다.
※ 인용글: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산&산(부산일보),한국1000산 신명훈,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월간 山(아웃도어 매거진),김천시.영동군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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