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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수도암(金泉 修道庵), 도선국사(道詵國師)가 터가 좋아 춤을 추었다는 수도암 도량을 걷다 본문
김천 수도암(金泉 修道庵)
도선국사(道詵國師)가 터가 좋아 춤을 추었다는 수도암 도량을 걷다.....!
■ 김천 수도암(金泉 修道庵)
위치 :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1438
전화 : 054-437-0700
■ 김천 수도암(金泉 修道庵) 사찰 기행일 :
2021년02월23일 수요일 , 날씨 : 맑음
■ 김천 수도암(金泉 修道庵) 개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인 청암사(靑巖寺)의 부속 암자이며
859년(헌안왕 3)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도량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도선은 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뒤 이 절은 수도승들의 참선도량으로 그 이름을 떨쳤으나
6·25전쟁 때 공비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전소된 뒤 최근 들어 크게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약광전(藥光殿)·선원(禪院)·관음전(觀音殿)·나한전(羅漢殿)
노전(爐殿) 등이 있으며, 1969년 도림당 법전대종사(道林堂 法傳大宗師)가 대적광전 등의 당우를 중건하였다.
보물 제296호로 지정된 약광전석불좌상과 보물 제297호의 3층 석탑(2기), 보물 제307호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과 함께 창건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기단석과 초석이 남아 있다.
이 중 약광전의 석불좌상은 도선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금오산 약사암과 직지사 삼성암에 있는
약사여래와 함께 방광하였다 하여 3형제 불상으로 불린다.
특히 머리 부분에 보관(寶冠)을 장식했던 흔적이 있어 주목된되며 이는
약사여래의 머리에 금속관을 설치했던 것으로 흔하지 않은 예이다.
석조비로자나불상은 석굴암 불상보다 80㎝ 작으며
9세기에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서 제작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 불상 운반에 골몰하고 있을 때 한 노승이 나타나서 등에 업고 이 절까지 운반하였는데
절에 다 와서 칡덩굴에 걸려 넘어졌다고 한다.
당시 노승은 산신령을 불러 크게 꾸짖고 칡덩굴을 모두 없애게 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이 절 근처에는 칡덩굴이 없다.
또 3층 석탑은 도선이 창건 당시에 이 절터가 마치 옥녀(玉女)가 베를 짜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 지대라 하여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 탑을 세웠다고 한다.
■ 김천 수도암(金泉 修道庵) 가람 배치도
■ 김천 수도암(金泉 修道庵)찾아가는길
진주역→→남해고속도로 진주jc→→통영대전고속도로 함양TG→→거함대로
→→웅양로 대덕 김천 방향→→증산로 성주대구방향→→수도길 청암사 수도암 방향→→수도암 주차장
136km 2시간05분소요.
→→ 산에가면 사찰이 있고 사찰에 가면 산이 있다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있는곳 수도암으로 발길을 돌린다
수도암에는 수도산이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 경계에 있는 곳이기에
산에 올라보고 하산 해서 천천히 수도암을 도량을 둘러 보았다.
수도암(修道庵)
수도암은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도량으로 창건한 암자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인 청암사(靑巖寺)의 부속 암자 라고 한다
수도암(修道庵) 사찰 이름이 편액으로 걸여 있으며 계단앞에는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는데
화장실은 모두 문이 없고 개방되어 있는 형태 인데 우리 유년기 시절 화장실을 연상 하면 된다.
수도암(修道庵) 편액
사찰에서 대웅전에서 볼수있는 편액 모양과는 다르게 일반 서각형태로 양각한 모양이다
수도암은 청암사(靑巖寺) 부속 암자인데 청암사는
나에게 추억이 깃던 곳이기도 하다 그 추억은 대학 졸업후 공무원 공부 한답시고
고향에 있는 원효암(元曉庵)에서 시험 공부를 지금 말하자면 공시생 시절에
명공(明空)이란 법명의 비구니 스님께서 잠깐 다녀 가셨는데 나이가 동갑내기라 친하게 지냈고
그 스님이 보고싶어 김천 청암사 골짜기까지 버스도 잘 다니지 않던곳 근근히 버스를 타고
만나뵈러 갔다가 그당시 승가대학 주지스님께서 강원 공부중에는 만날수가 없다하여
먼길 그냥 되돌아 왔던 기억이 생생한 곳이다.
봉황루(鳳凰樓)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펴고 도량을 감싸 안는 형태이기에 봉황루(鳳凰樓)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며
수 많은 사람들이 봉황의 꿈을 이루고자 봉황의 품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뜻이라고 한다.
봉황루(鳳凰樓)는 26칸 75평의 목조건물로서
봉황루(鳳凰樓)건물은 총 280평 정도 되며 사업비 21억이 들어 갔다고 하며
국고 보조 공사비의 70% 김천시부담금 20% 도 부담금 10% 사찰부담금10%(별도) 으로 진행 되었다 한다.
아름다운 건물이며 이 시대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고 하고 2013년 10월27일날 낙성식을 올렸다고 한다.
약수터
봉황루를 지나면 넓은 도량이 나오는데 대적광전 옹벽아래 있는 곳에 만들어져 있으며
겨울철 갈수기라 그런지 물은 흘러 내리지 않고 있었다
옛 시골을 연상케 하는 맷돌이 있고 절구통까지 있어 고풍스러운 모습이다.
수도암은 김천의 무흘구곡의 끝 용추폭포를 따라가면 1000m 넘는 수도산 아래
자리하고 있고 청암사로 부터는 7km거리에 위치 하고 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으로 가는계단
계단 중앙부에는 해태 석물이 수호신 처럼 자리하고 있다.
해태(獬豸/獬廌)(haetae)는 동아시아에 동아시아 고대 전설 속의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며 해치라고도 한다.
사자와 비슷하나 기린처럼 머리에 뿔이 있다고 정의되어 있는 ‘해치’는 그 형태적 특징이 목에 방울을 달고 있으며
몸 전체는 비늘로 덮여 있다고 알려졌다. 또한, 겨드랑이에는 날개를 닮은 깃털이 나 있고
여름에는 늪가에 살며 겨울에는 소나무 숲에 산다고 알려졌다.
한자로는 해(獬)가 부정한 사람을 보면 뿔로 받는다는 신수(神獸), 신통한 양 등을 뜻하고
치(豸)는 웅크리고 노려보다, 풀리다 등의 의미가 있다.
영어로는 ‘the unicorn-lion(외뿔 달린 사자)’ 또는
an omniscient mythical beast(모든 것을 다 꿰뚫어보는 능력을 갖춘 상상의 짐승)’이라고 풀이된다.
대적광전 계단에서 바라본 봉황루와 관음전(觀音殿)
계단 끝나는 지점에는 용(龍) 자리를 하고 있으며 봉황루와 좌측의 관음전이 자리하고 있다
관음전은 요사채 같아 보이나 관음전이란 편액이 걸여 있다
관음전(觀音殿)은 관음보살이 주원융통(周圓融通)하게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분이라는 뜻에서
원통전(圓通殿)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보살을 모신 당우로 관음전이 많이 세워진 까닭은, 관음이 모든 환란을 구제하는 보살일 뿐 아니라
그의 서원이 철두철미하게 중생의 안락과 이익에 있고, 불가사의한 인연과 신력(神力)으로 중생을 돕기 때문이다.
관음전 내에는 왼손에 연꽃이나 감로병을 들고 연화좌 위에 앉은 관음상을 안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이나
버들가지를 들고 있는 양류관음(楊柳觀音), 보관 위에 11개의 다른 모습을 가진 십일면관음
그 밖에 해수관음(海水觀音)·백의관음(白衣觀音)·용두관음(龍頭觀音)·천수관음(千手觀音) 등을 모시기도 한다.
후불탱화(後佛幀畵)로는 양류관음도·백의관음도·천수천안관세음보살도(千手千眼觀世音菩薩圖) 등
봉안된 관음상의 유형에 따라 봉안하게 된다.
대적광전(大寂光殿)
김천 청암사 수도암의 대적광전이다 건물형태를 보면 정면5칸 측면3칸의 맞배지붕의 목조건물이다
참배는 법당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축담에서 삼배(三拜)를 올렸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은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에서는 주로 이 전각을 본전(本殿)으로 건립하여
화엄경(華嚴經)에 근거한다는 뜻에서 화엄전(華嚴殿), 화엄경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불을 봉안한다는 뜻에서
비로전(毘盧殿), 그리고 화엄경의 연화장세계가 대정적의 세계라는 뜻에서 대적광전이라고도 한다.
대적광전에는 원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하여 연화장세계를 상징하게 된다.
원래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삼신불로는 비로자나불·아미타불·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찰에서는 선종(禪宗)의 삼신설에 따라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의 삼신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비로자나불의 좌우 협시보살(脇侍菩薩)로는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봉안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당 내 오불(五佛)을 봉안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삼신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봉안하며
아미타불의 좌우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약사여래의 협시보살로는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봉안하게 된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의 비로자나불좌상(毘盧遮那佛坐像)
수도암 비로자나불은 보물 제307호. 불신 높이 251㎝, 머리 높이 70㎝. 비록 광배는 없어졌지만
보기 드문 거작이라고 하며 그 장대함에 있어서 석조좌불로서는 석굴암 본존에 버금간다.
그러나 조각 수법은 석굴암 본존보다는 뒤떨어진다. 물론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이나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등 고려 초기의 석불에 비해서는 우수하다.
그러므로 대개 통일신라 말기인 900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민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가 작지만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풍만하며
가늘게 치켜뜬 긴 눈과 평평한 코, 굳게 다문 작은 입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거구이면서도 위축되고 불안정하게 표현된 모습은 시대적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형식적이고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대좌는 상·중·하 3부분으로 구성된 8각 연꽃대좌로
상대에는 반원형에 가까운 앙련(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2줄로 교차되어 있고
앞면에 3마리의 사자상과 용머리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修道庵東·西三層石塔)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修道庵東·西三層石塔)은 보물 제297호. 동탑 높이 3.76m, 서탑 높이 4.25m.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적광전을 사이에 두고 동·서쪽에 서 있는 쌍탑으로, 859년(헌안왕 3)에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양식이나 조각 수법을 볼 때 통일신라시대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동탑은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을 얕게 새겼다.
1층 몸돌은 위가 좁고 밑이 넓은 독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각 면에는 4각형의 감실(불상을 모시는 방)을 두고
그 안에 석가모니불로 추정되는 2구의 불상과 약사여래불, 비로자나불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2·3층의 몸돌에는 각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놓았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받침은 1, 2층은 4단, 3층은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이 크게 줄었으나
3층 몸돌은 2층과 비슷하다. 1층 몸돌의 각 모서리에는 기둥만 새겨져 있고
그 사이에 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으나 마모가 심해 형태를 정확히 알아볼 수 없다.
지붕돌은 동탑보다 얇고 넓으며 밑받침은 1, 2층은 5단, 3층은 4단이다.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修道庵東·西三層石塔)
동탑은 단층 기단을 형성하였는데 장대석을 놓아 네모난 지대석을 마련하고, 그 위에 각 면 1석으로 중석을 구성하였다. 탱주(撑柱: 받침기둥)의 흔적은 없고 우주(隅柱: 모서리기둥)는 매우 희미하게 표현되었다. 갑석은 2매의 판석을 동서로 덮었는데 그 밑에는 부연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
상면에는 가벼운 경사가 있고 중앙에는 호형(弧形)과 각형으로 2단의 굄이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 층 1석이고, 초층옥신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4우주를 나타냈으며, 각 면에는 깊이 약 5㎝의 네모난 감실을 마련하였다.
감실 안에는 조각이 분명하고 잘 정제된 여래좌상을 각 면 연화좌 위에 부육조(浮肉彫)로 표현하였다. 2·3층옥신에는 다른 조각은 없고 차례로 감축된 가운데 우주만을 모각(模刻)하였다. 옥개석은 넓은 편이며 전각의 반전은 매우 경미하다. 옥개석받침은 1·2층이 4단, 3층은 3단으로 줄어들었다.
상륜부(相輪部)에 작은 갑석형을 이중으로 나타낸 작은 노반과 복발, 그리고 보주 하나가 남아 있다. 탑의 기단 주변에는 넓은 판석과 배례석이 있다. 서탑은 2층 기단을 형성하였으며 2·3층 옥신과 옥개를 잘 유지하였다. 기단부는 각 면 1석으로 지대석을 마련하고, 그 위에 다시 1석으로 된 중석과 갑석 등 4석으로 하층 기단을 형성하였다.
중석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 1주가 모각되었고, 갑석 상면에는 가벼운 경사가 있으며, 1단의 각형 굄이 있다. 상층 기단 중석은 각 면 1석씩으로 짜고 우주만을 모각하였다. 갑석은 1매 판석으로 덮었으며 부연이 없는 것은 동탑과 같다. 상면에는 가벼운 경사가 있고 2단의 굄으로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옥개석이 각 층 1석이며, 초층옥신에는 우주가 모각된 사이로 각 면 여래좌상 1구씩을 연화대 위에 돋을새김하였다. 옥개석은 동탑보다 더욱 넓어졌으며, 추녀 밑은 직선이며 낙수면의 경사도 완만하다. 낙수면의 곡선 역시 거의 수평에 가깝다가 전각에서 가벼운 반전을 나타냈다.
옥개석받침은 각 층 모두 5단이며, 추녀에서 깊이 들어가 공간을 남겼음이 주목된다. 2층의 옥신은 초층에 비하여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나 체감률은 온화한 편이다. 상륜부는 노반·보륜·보주 등이 남아 있다
창주도선국사비 (刱主道詵國師碑)
도선국사(道詵國師)께서는 도선은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도선국사로 널리 알려져있다.
그에 대한 자료는 고려 태조(太祖)의 훈요10조 와 1150년(의종 4) 최유청이 편한
백계산옥룡사증시선각국사비명병서 등 10여 편이 있는데, 최유청의 자료인 비석은 남아 있지 않고
그 내용만이 동문선에 수록되어 전해오고 있다.
841년(문성왕 3) 15세 때 월유산 화엄사에서 불경을 공부하여 화엄경의 대의를 통달하고 법문을 깊이 깨달았다.
846년 화엄종의 관념적·현학적 성격의 한계를 인식하고 선종으로 개종했다.
선승으로서의 행적에도 불구하고 도선이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알려지게 된 것은
고려 태조 왕건이 도선의 풍수지리설을 신봉했기 때문이다.
왕건은 훈요10조 의 제2조와 5조, 8조에 풍수지리설을 반영한 당부를 남겼다.
저서로 전해지는 것은 도선비기, 송악명당기, 도선답산가 등이 있다.
약광전(藥光殿)
수도암(修道庵)에 있는 약광전(藥光殿)이며 맞배지붕의 건물양식이며
약광전에 모셔진 불상 또한 높이 1.54m의 자그마한 석불이며 고려시대 초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고, 이마 한가운데에 커다란 백호(白毫)가 있으며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운 풍만한 모습이고, 눈과 코는 가늘고 짧고, 입술은 두툼하다
귀는 길게 늘어져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고
그래서인지 인상은 온화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나한전(羅漢殿)
대적광전에서 바라본 수도암 나한전이다
수도암 나한전은 전국의 나한전 중에서도 으뜸 기도도량으로 통한다고 하는데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 중 한가지가 수도암 나한전의 신묘함을 더해 준다고 한다
먼 옛날 한 노파가 쌀을 지고 수도암을 향하고 있는데 수도암은 깊은 산중에
위치한 터라 오르는 길이 여간 힘든게 아닌데도 한 처사가 노파를 도와
쌀을 턱하니 어깨에 짊어지고 수도암에 올랐다고 한다
법당을 향해 간단하게 합장을 마친 노파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옆을 돌아보자 처사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고 하며 노파는 이를 기이하게 여기다가
이윽고 나한전으로 향했는데, 나한전에 앉아있는 열여섯 나한 중 한분이
흐뭇하게 웃고 있는게 아닌가. 그가 바로 쌀을 절까지 옮겨다 준 처사임을 안 노파는
수도암 나한전의 신령스러움을 알게 되고 죽는 날까지 기도를 올렸다고 전해 내려 오고 있다.
대적광전(大寂光殿)에서 바라본 합천 가야산(伽倻山)
저멀리 합천 가야산이 마치 연꽃 봉우리 처럼 만개하여 우뚝 솟아 있다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도량으로 창건한 수도암은 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있고 나한전 전설 또한 재미가 있다
山에가면 寺刹이 있고 寺刹에 가면 山이 있듯 늘 이렇게 사찰 기행을 해본다.
※인용글 :
자료 인터넷사전 및 김천시 홈페이지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사전 ,전통사찰관광정보,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료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및 사찰종무소스님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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