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20일만에결혼
- 제니퍼 애니스톤
- 베스트 20
- 행운을드립니다
- 미소
- ㅅ어
- 첫눈에반한
- 두바이왕자
- UCC
- Caution
- 호텔여직원과
- (2007)예고편
- 베오울프
- 2007)
- 초미니 비키니 눈길
- 얼굴은순정
- 계 色
- 사한
- 몸은 액션?
- 풍요로운추석명절
- The Simpsons Movie
- 얼짱보디빌더 박수희
- BEOWULF
- 보내세요
- dd
- 戒 Lust
- 무드연주곡
- 색
- ㅕㄴ으로
- Today
- Total
바다늑대 FORCE
대전 식장산(大田 食藏山),백제(百濟)의 군량 요충지(軍糧 要衝地) 대전 식장산에 오르다 본문
대전 식장산(大田 食藏山)
백제(百濟)의 군량 요충지(軍糧 要衝地) 대전 식장산에 오르다.
▲ 대전 식장산(大田 食藏山)
높이 : 598m
위치 : 대전광역시 동구와 충청북도 옥천군에 걸쳐 있는 산.
▲ 대전 식장산(大田 食藏山)산행일
2021년01월12일 화요일, 날씨 : 약간흐림
▲ 대전 식장산(大田 食藏山)나의산행코스
세천공원로 투썸플레이스 인근 주차장→→세천공원로→→개심사 삼거리→→식장산문화공원
→→식장산들머리→→고산사삼거리→→방송철탑→→식장산 정상(원점회귀)
9.17km 2시간9분 소요
▲ 대전 식장산(大田 食藏山)개요 :
식장산(食藏山)은 해발 580m의 대전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충북 옥천군 군서면과 군북면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백제시대 성을 쌓고 군량을 많이 저장하고 신라침공을 방어하던 요새지였다는
기록에 연유하여 식장산이라 불렀다는 유래와, 먹을 것이 쏟아지는 밥 그릇이 뭍혀 있다 하여
식기산 또는 식장산이라 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산이다.
삼국시대 군량미를 숨겼던 대전의 터줏산이며 번화한 대전시가와
맑은 대청호 푸른 물을 함께 내려다 보고 있다. 서쪽 끝에는 주봉이 있으며
가까이에 통신소가 있고 아래쪽에는 고신사, 개심사, 식장사가 있다.
식장산은 멀리서 보면 외따로 서있는 산으로 보이리만치 산비탈이 급하다.
산기슭에는 신라시대 도선국가가 창건하고 조선조 인조 수등국사에 의해
증건 되었다는 유서깊은 고산사와 귀절사등 유명사찰이 있으며 세천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세천유원지는 대청댐 건설이전 대전시의 가장 중요한 상수원지역이기도 하였으며
4월에는 벚꽃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 대전 식장산(大田 食藏山)등산지도
▲ 대전 식장산(大田 食藏山)등산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 대전 식장산(大田 食藏山)찾아가는길
진주역→→남해고속도로 진주jc→→대전통영간고속도로 판암TG→→옥천로 옥천방향
→→세천공원로 식장산 방향→→식장산 투썸플레이스 인근 주차장
174.2km 2시간05분소요.
→→→→→→2021년 01월12일 화요일 대한민국 구석구석 산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발길을 대전 식장산(食藏山)으로 돌려본다
식장산은 충북 옥천군 군서면·군북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대전의 터줏산으로
번화한 대전 시가지와 서쪽의 보문산(457.6m), 북쪽의 계족산(423.6m)을 내려다 보고 있으며
동북쪽에 자리잡은 대청호수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넣고 있는 곳이라 한다
또한 멀리는 계룡산, 대둔산, 서대산과 마주하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곳이며
우리나라 아웃도어 상표의 하나인 블랙야크 지정 100대 명산에도 속한다.
세천공원로
원래 계획은 세천공원로를 따라서 식장산 해맞이공원앞 주차를 하고 1km남짓한 식장산을
산행계획으로 갔지만 세천공원로는 이렇게 잔설로 인하여 바리게이트로 출입통제 하는 바램에
고스란히 세천공원로 4km구간을 걸어가야만 하였다
경상도 사투리로 꼬시게 먹을라 하다가 태워먹은 셈이 되었다.
세천공원은 우리 고유의 토박이 식물 8백여 종을 포함해 약 6천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하며
세천공원은 1996년 6월 3일 세천생태보전림으로 지정되었다.
이 보전림은 먹이식물식재지 와 지상조류 서식지
그리고 대전시민을 위한 휴식처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세천유원지 삼거리
세천공원로는 고불고불 아스콘 도로인데 잔설(殘雪)로 인하여 걷는데 조심스러웠다
식장산(食藏山)은 대전 동구와 옥천군 군북면, 군서면 등 세 지역에 걸쳐있으며
대전광역시의 최고봉으로 충남의 최고봉 서대산(904m), 옥천의 최고봉 대성산(705m) 등
인접지역의 명산들과 어깨를 견주며 동구의 남동부를 수놓고 있는 산이라고 한다.
대전광역시가 지정한 482만㎡ 규모의 자연생태보전림을 품고 있는 이 산은
78과 187 속 224종 45변종의 식물과 노루, 다람쥐, 살쾡이, 너구리, 박쥐 등
포유류 45종, 조류 100여종, 파충류, 양서류 등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의 보고다.
식장산(食藏山)문화공원 삼거리
아이젠은 착용하지 않았지만 다행이 얼지는 않아서 그다지 미끄럽지는 않았다
유년기 시절 눈밭을 걷던 길을 생각하면서 이부러 발이 푹푹 빠지는 잔설위로 걸었다
식장산 문화공원은 세천공원부터 식장산 해돋이 전망대로 이어지는 생태공원으로
대천 최고의 야경 감상 명소로 꼽히던 식장산 정상부에 문화공원을 조성하였다.
특히 문화공원 내에 지은 전통누각이 운치를 더하고 있으며
대전 전경을 한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위치해 있다 한다.
식장산(食藏山) 문화공원 인근 산정(山頂) 들머리
산야에 쌓인 눈은 몇일전 제천 월악산 보다 많은듯 하였다
식장산(食藏山)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을 이루었던 산이라고 하며
한밭의 상징처럼 우뚝 솟은 산이다.
그리고 신라군(新羅軍)이 백제군(百濟軍)과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곳이며
자연적으로는 한 고을의 병풍처럼 한 면을 가리고 안락한 먹을 풍기는 산으로도 유명하다.
냇물이 곳곳에서 흘러 들을 이루고, 들을 가리는 산맥의 줄기가 신기하므로
옛날에는食臧山下 可活萬人之地(식장산하 가활만인지지)라 하여
만인이 모여 살 수 있는 고을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100만을 넘어서는
可活之地(가활지지)를 조성하기도 한 산이다.
잔설(殘雪)에 덥힌 식장산(食藏山)
비무장으로 오르니 가볍고 걷기도 좋았다 물병 하나도 없니 그냥 뒷산 산책하듯 빈손으로 걸었다
빠른걸음 탓이 캡모자에는 어느듯 땀으로 험뻑 젖어 버렸다.
식장산(食藏山)은 옛날부터 식량을 저장하고 있다는 설화(說話)도 있으나
이것은 백제의 군사들이 숲이 우거진 식장산에 식량을 쌓아놓고 싸움을 하였다는 기록에 연유한 것이며
식장산에 산성이 겹겹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능히 짐작할 만하다.
설화(說話)에 동살미(지금의 홍도동)에 살고 있던 전우치라는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 삼 일간
또는 삼 년간은 먹고도 남을 만한 보물을 식장산에 묻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식장산 아래의 뜰이 기름지고 윤택해서 만인이 살 만한 터전이 된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으며
지금 대전이 근 백 년 간에 비약적인 발전이 된 것도 식장산 같은 명산이 있고
옛사람이 이 한밭을 짐작해서 발전할 곳으로 지적한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이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고산사(高山寺) 삼거리
119산악구급함이 아주 멋지게 삼거리를 수호신처럼 보초(步哨)를 서 있는듯 하다
구급함 역시 경남과 다르게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 늘 산에 등산을 하다보면
직업병처럼 직업과 관련된 시설물을 자세히 보는데 여느 지역 산행로에 설치된
구급함 처럼 자물쇠로 다 채워져 있었다 우리 경남 지역은 시건장치를 하지 않는다
식장산에 자리하고 있는 고산사(高山寺)는 통일신라 정강왕 원년(886)에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하며
조선 인조 14년(1636)에 수등국사가 다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고산사내에는 대웅전과 극락보전·양성각 등이 있으며
대웅전 앞 왼쪽에는 부도가 2기 있다고 한다.
식장산 능선에서 바라본 조망
잔설(殘雪)에 덮인 산봉우리들이 마치 백파(白波)를 치며 몰려 오는듯 출렁 거리고 있다
식장산에는 전설이 전해 내려 오는데 그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식장산 아래 산마을에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 슬하에는 자식이 하나 있었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네 식구가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가난하기가 이를 데 없었으나 효성이 지극하여 항시 웃고 지내는 집안이었다.
아들은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맛있는 산과일을 만나면 자기 입에 넣을 줄을 모르고 꼭꼭 홀어머니에게 드렸고
산나물 캐는 며느리도 맛있는 산나물을 먼저 어머님에게 드린 다음 장터에 팔곤 했다.
이렇게 효심이 지극한 그들에게도 차츰 근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식이 자라면서 그들이 정성껏 해드리는 음식을 아들이 먹어치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궁리한 끝에 그들의 어머니가 음식을 먹을 때는 아이를 업고 나와 밖에서 서성거리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음식이 할머니 앞에 놓여지면 밖에서 서성거리는 그들의 자식은 더욱 소리내어 울어
그들의 어머니는 먹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궁리한 끝에 자식을 산중에 버리기로 했다.
아무리 효도를 하려 해도 자식 때문에 효도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끝에 그들은 결심한 것이었다.
「여보, 자식이야 또 낳으면 되지만 어머님은 한번 돌아가시면 그만 아니 오. 사람이 짐승이 아닌 이상
부모에의 효도는 잊어서는 안 돼요.」 아내의 이와 같은 말을 들은 그는 벌떡 일어나서 삽자루를 들었다.
어머니 등에 업힌 아이는 잠이 들었다. 그들은 아이를 업고 산중으로 들어갔다.
산의 숲을 헤칠 때에도 아이는 쿨쿨 잠만 자고 있었다.
산마루에 올라섰다가 양지바른 한 곳을 발견한 그는 우선 뗏장을 뜨고 흙을 파기 시작했다.
자기의 수난을 아는지 눈을 끔벅거리는 아들은 부모를 원망하는 것 같기도 했다.
땅이 파져서 아이가 하나 들어갈 만한 구멍이 생기기 시작하자 아이의 눈에서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이번에는 아이의 어머니가 돌아서서 치마로 눈시울을 닦는다.
땅을 파고 겨우 흙을 정리하고 땅밑의 흙을 한 삽 파내려는데「덜거덕」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큰 돌이구나」하고 두 손으로 흙을 파는데 어찌된 일인가? 땅속에 그릇이 파묻혀 있었다.
그는 그릇을 파낸 다음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두꺼비처럼 눈만 끔벅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아들을 그냥 업고 돌아왔다.
식장산에서 바라본 산야의 풍경
그러나 아들은 여전했고 할머니가 음식을 먹으려 하니까 더 날쌔게 먹어치운다.
그날 밤 그는 다시 생각에 잠겨 연달아 담뱃대에 담배를 넣고 불을 붙였다.
담뱃재는 산 속에서 캐내온 그릇에 털었고 담배를 열 대를 피워도 효도할 궁리가 나서지 않았다.
밤이 이슥해지자 그는 그만 한구석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는다. 그가 아침에 눈을 떠보니 담뱃재가
그릇에 소복이 쌓여 있는 것이었다.
자기가 담배를 많이 피웠지만 저렇게 많은 재가 생길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아내와 상의한 끝에 그 그릇에 곡식을 넣고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았다.
이번엔 곡식이 그 그릇에서 철철 넘치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이번엔 돈을 한 잎 넣어 보았다.
이번엔 그릇에 돈이 가득한 것이 아닌가?
'이상한 일이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가 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그 후 더욱 홀어머니를 잘 모셨다.
아들도 자라면서 철이 드는지 전보다는 습성이 나아졌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에도 한계가 있는 것, 그들의 어머니는 어느 날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그러자 욕심없는 부부 그들은 이 식기를 그날 산속에 가져다 묻어버렸다.
그래서 이 산을 밥그릇이 묻혀있는 산이라 해서 식기산이라 부르기도 하고
먹을 것이 많이 묻혀있는 산이라 해서 식장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휴식
잠시 쉬면서 식장산 아래 펼쳐진 산하를 구경 하면서 가슴속 시원한 공기로 채워보았다
겨울 산행시 산에서 들어 마시는 공기는 정말 차가운 탓에 더 시원에 짜릿하기 까지하다.
식장산은 산이름에서 유래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옛날 삼국시대에 백제 장군이
많은 군량미를 숨겨온것이 유래가 되있고 또 앞서 서술한 옛날 효성이 지극한 부부가 있었는데
철없는 아이가 노모의 음식을 마구 먹어대자 자식을 숲속에 묻어 버리려고 땅을 파다가
그릇을 하나 발견했는데 기이한 생각에 그릇을 가지고 돌아온 부부는 그릇이 뭐든지
불리는 신통력을 알고는 좋아했다. 어느날 노부모가 돌아가시자
욕심이 없는 부부는 그릇을 다시 묻어버렸는데 그곳이서 식장산이라 했다고 구전되어 내려 온다.
식장산(食藏山) 산정으로 향하는 목계단
하이얀 백설속에 마치 무한궤도(無限軌道)차량이 지나간 흔적처럼 생겨서 위에서 아래로 촬영해 보았다.
식장산은 산세가 다소 높아 멀리서 보면 경사가 매우 급하여 정상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으나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식장산은 비경과 함께 신비롭고 재미있는 전설과 유적들을 갖고 있으며
식장산은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신라(新羅)와 백제(百濟)의 국경으로 백제는 바로 이 산에 성을 쌓고
군량(軍糧)을 많이 비축해두어 신라의 침공을 대비하던 요새 지역이었다.
그래서 군량미를 쌓아두는 곳이라는 의미의 식장산(食藏山)이라고 이름지었다는 설이 있다.
식장산(食藏山) 산정으로 향하는 좁은 탐방로
양지바른 곳이라 그런지 눈이 많이 녹아 잔설이 없었다
목책 안전줄을 잡지 않으면 미끄러져 낙상할 위험도가 높은 경사가 있는 좁은 탐방로 였다
식장산은 대전 시가지 조망도 좋다고 하는데 탐방로를 원점회귀 한 탓에
대전시가지의 아름다운 조망을 보지못해 산행의 의미중 하나가 빠진듯 했다
대전시(大田市)는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노령산맥은 그 사이에 진안고원·금산고원을 형성하고
그 여맥이 북쪽으로 뻗어 대전의 동·남·서부 산지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대전의 남부지역은 식장산·만인산·안평산·장군봉으로 연결되는 산지를 이루고 있고
동쪽은 식장산·계족산으로 연결되는 산지가, 서쪽은 대둔산에서 우산봉으로 연결되는
계룡산지가 각각 대전의 동쪽과 서쪽의 경계선을 이루면서 거의 일직선상으로 달리고 있다.
계룡산지, 계족산지, 식장산지, 만인산지 등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전형적인 분지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갑천·유등천·대전천의 연변에 자리하고 있다.
대전 식장산(大田 食藏山)598m
식장산 정상석은 아담한 돌이라 나혼자 번쩍 들어 올리리수 있는 크기의 정상석이다
식장산 높이는 598m로서 백제 시대에 군량을 많이 저장하고 신라의 침공을 방어하던
요충지였다는 기록에서 식장산이라 불렀다는 유래가 있다.
식장산은 옥천에서 대전으로 넘어오는 길목이며 이 산마루는 백제멸망과 관계 깊은 곳으로
탄현(炭峴) 또는 숯고개·숯재라 불리었다.
백제의 마지박 충신 성충(成忠)은 옥중에서 상서하기를 “앞으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니
만일 적병이 오거든 육로는 탄현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로는 기벌포(伎伐浦)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의자왕은 이 말을 듣지 않고 황산벌과
백강에서 적병을 막았고 신라와 당나라 군사들은 탄현을 넘어 침공하여 결국 백제는 패망하였다.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회덕에 "식장산은 현 남쪽 23리에 있다."고 기록하였고
山經表(산경표)에는 식장산(食莊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전 식장산(大田 食藏山)598m
식장산과 관련해 탄현(炭峴) · 숯고개 · 숯재와 동일한 것으로 또는 탄현이 식장산에 있는
고개로 서술되어 있는 문헌이 많다. 이는 한국지명총람(韓國地名銃覽)의 내용이 이후에도
계속해서 반복, 인용된 결과라고 한다.
현재 대전광역시 동구 삼정동에서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자모리로 넘어가는 자모실고개(장고개)가 있다.
이 고개 서쪽 골짜기에는 신라 시대 사찰로 추정되는 고산사(高山寺)가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회덕 에도 "고산사는 식장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상부에는 통신시설이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으며 동북쪽에는
1934년 축조돼 대청댐 건설 이전까지 대전의 중요한 상수원이었던 세천 저수지가 있다.
식장산의 험난한 지형은 자연의 요새지로 백제 때뿐만 아니라 6·25 때에는 연합군과
북괴군의 격전지가 되었고 현재도 국방상의 요지이다.
이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양국의 길목으로 험난하지만 교통의 요지가 되었고
현재도 경부선철도와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요지다.
이 구간은 경부선철도를 부설할 때 작업이 어려운 구간이었고
경부고속도로에서도 이 지역에 터널이 집중되어 있다.
하산길
하산길에 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나뭇가지를 샇아둔 모습이
유년기 시절 시골고향 마당 감나무에 기대어 싸아둔 모습처럼 정겨운 모습이라 촬영해 보았다
겨울 농한기에 근교 야산에 가서 땔감용 나무를 해다가 집 마당 공터에 저렇게 쌓아 두고
부엌에서 어머니가 밥지을때 소 여물 끓일때 땔감으로 사용 하였다
지금은 시골 농촌에도 기름 보일러 아니면 전기판낼로 장작처럼 샇아둔 모습은 보기 힘들어 졌다.
세천공원로 원점회귀 하산길
개인차량으로 오면 등산 단점이 원점회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잔설로 뒤덮힌 세천공원로 4km를 걸어서 주차한 곳으로 가야 했다
세천공원에는 식장산 다함께 나눔길도 조성되어 가족 단위로 산책이나
군데군데 운동시설도 만들어 놓아 운동코스로도 알맞다고 한다
봄에는 벚꽃이랑 진달래가 빼곡하게 피어 상춘객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라고 하며
나눔길을 따라가다 보면 구절사를 거쳐 독수리봉까지 이어져 있다고 한다.
대전 식장산(大田 食藏山) 산행 종료
세천공원로 출입통제 바리게이트 앞에서 산행을 마무리 한다
도로가 눈으로 덮혀 있어 사고위험으로 차량 통행을 금지 하여 최단거리를
4km를 더 걸어서 대전 식장산에 올라
식장산에 깃든 효심이 지극한 욕심없는 부부의 전설과
그리고 6.25전쟁 당시에도 요충지 였던 이곳
백제(百濟)의 군량 요충지(軍糧 要衝地) 대전 식장산에 산정에 올라보며
또 하나의 산행기(山行記)를 마무리 해본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산&산(부산일보),한국1000산 신명훈,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대전광역시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1.01.13.]
'바다늑대 > 山 & 旅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백 함백산(太白 咸白山).눈보라속의 백두대간(白頭大幹)함백산 산정에 서다 (0) | 2021.01.30 |
---|---|
인천 계양산(仁川 桂陽山).인천의 주산(主山) 계양산성(桂陽山城)을 따라 계양산 산정에 서다 (0) | 2021.01.15 |
월악산 영봉(月岳山 靈峰).신령스러운 봉우리 충북제천 월악산 영봉에 서다 (0) | 2021.01.10 |
대전 계족산(大田 鷄足山).닭의 다리 모양의 山 황톳길을 따라 계족산 산정에 서다 (0) | 2020.12.08 |
충남금산 자지산(忠南錦山 紫芝山).조헌(趙憲) 의병장 흔적이 있는 자지산 산정에서 금강(錦江)을 바라보다 (0) | 2020.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