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늑대 FORCE

충남금산 자지산(忠南錦山 紫芝山).조헌(趙憲) 의병장 흔적이 있는 자지산 산정에서 금강(錦江)을 바라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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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금산 자지산(忠南錦山 紫芝山).조헌(趙憲) 의병장 흔적이 있는 자지산 산정에서 금강(錦江)을 바라보다

바다늑대FORCE 2020. 12. 3. 18:47

충남금산 자지산(忠南錦山 紫芝山)

조헌(趙憲) 의병장 흔적이 있는 자지산(紫芝山) 산정에서 금강(錦江)을 바라보다.....!

 

▲ 충남금산 자지산(忠南錦山 紫芝山)

  높이 : 467m

  위치 :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에 걸쳐있는산

 

▲ 충남금산 자지산(忠南錦山 紫芝山)산행일:

 2020년12월03일 목요일. 날씨 : 맑음

 

▲ 충남금산 자지산(忠南錦山 紫芝山)  나의산행 코스

기러기공원세월교금강 강변길난들마을회관→금산연수원 선바위 난들교→자지산표지석 들머

210임도삼거리작은암벽성터자지산(紫芝山)삼각점천태산갈림길(430)

암봉부엉산하산능선 데크전망대강변 데크로드세월교기러기공원

트랭글 앱 기준 8.96km  3시간34분 소요

 

▲ 충남금산 자지산(忠南錦山 紫芝山)개요 :

자지산은 금강이 크게 굽이도는 난들 뒤에 우뚯 솟은 바위산이며 멀리에서도 엄청나게 깎아지른 바위벼랑이

잘 보이고 머리 부분에 가깝고 왼 편 천앙산 쪽에 가장 큰 바위 낭떠러지가 있다. 

자지산은 자지산이라는 이름 외에도 성재산,중봉산이름으로 불리운다.

자지산이란 이름은 자주빛의 뜻이 있고 식물인 지치의 뜻이 있어

옛날 이 산에 약초인 지치가 많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지치란 영지를 말한다.

중봉산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수하 700 의사들과 함께 장렬하게 순국하신 조헌 의병장이

이 산과 관련이 있다해서 조헌 선생의 호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하고,

성재산이란 이름은 산성이 있는 산을 흔히 성재산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풍수지리상 자지산은 남성 성기와 비숫한 모양으로 양이면 천내 원골 건너의 강가 수십길 바위 벼루에

여성의 음부와 비슷한 음굴이 있다 그래서 자지산은 우리나라에서 음양산의 대표라 한다.

 

▲ 충남금산 자지산(忠南錦山 紫芝山)등산지도

 

▲ 충남금산 자지산(忠南錦山 紫芝山)등산 나의 트랭글(TRANGGLE) 궤적도(軌跡圖)

 

▲ 충남금산 자지산(忠南錦山 紫芝山)산행지 찾아가는길

진주역→→남해고속도로 진주jc→→통영대전고속도로 금산ic→→금강로 원골방향→→악안길→→기러기공원주차장

154.4km 승용차 1시간 30분 소요.

→→→→→→2020년 12월03일 목요일 대한민국 구석구석 산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오늘은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곳 충남 금산의 자지산이다

산의 이름도 거시기 하지만 산정에서 보는 금강(錦江) 물줄기가 흐르는 풍경이 좋다고 한다

계획한지 2년만의 금산 자지산 산행이다  어떤 풍경인지 기대가 된다.

기러기공원

충남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167번지

네비게이션을 검색해서 기러기공원 주차장에 도착할수 있었다

기러기공원은 금강을 끼고 있어 요즘은 캠핑장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이며

캠핑족들에게는 인기가 많은곳 이라고 하며 내가 갔을때에도 차박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기러기공원 주차장은 무료이며 세월교(잠수교)를 건너면 자지산으로 갈수가 있다

기러기공원 주차장에서 좌측 난들 천내2리 표지석쪽으로 가면

금강을 건너는 잠수교인데 세월교란 이름의 작은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난들마을에 있는 안내표지목

여기서 자지산 들머리까지 2.1km이다 큰길을 따라 쭉 직진으로 가야한다

남촌마을 방향은 부엉산 가는 방향으로 들머리 까지는 0.2km라고 안내 되어 있다

금강 강변을 따라 큰길을 30분정도 걸어야 하며 난들마을 안쪽으로 가면 안된다

무심코 난들마을회관까지 갔다면 회관앞 정자나무에서 큰길로 다시 나와야 한다.

난들마을회관 그리고 정자나무(보호수)

무심코 걷다보니 난들마을까지 진입하여 마을 안길까지 걸었다

주민들은 보이지 않고 집집마다 강아지들이 짖어되었다 외지인이 왔다고

느낌이 이상해서 트랭글 앱을 보니 자지산과 떨어진 길을 걷고 있어

되돌아와 금강옆길 큰길을 걸어 난들교 까지 가야만 자지산 들머리를 찾을수 있다.

제원면 천내리를 보면

용화리에서 강의 흐름을 서북쪽으로 그 방향을 바꿔 금강이 봉황천과 합류하면서 다시

동남쪽으로 그 방향을 꺾고는 여러 궁형을 이루면서 동북쪽으로 흘러가며

그 안쪽과 북쪽으로는 첩첩산중을 이루는 산악지대를 북벽처럼 막고 천내리는 자랑한다.

북쪽으로는 신안리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대산리와 남쪽으로는 용화리와 접하고

동쪽으로는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과 경계를 나누며 금강변에 위치해 있으나

대체로 산악지대가 많은 지역이며 서쪽에 위치한 금산읍에서 영동에 이으는 국도가 있어서

금강변은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나 북쪽과 남쪽은 교통이 아직도 불편한 상황의 지역이다.

선바위

아스콘 포장도로가 끝나면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는데 도로옆 이렇게 큰 선바위란 이름을 가진 바위가 나온다

금강 강변쪽을 바라보면 이번 태풍으로 강물이 범람한 흔적을 볼수가 있었다

자지산이 위치한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는

인류의 정착을 선사시대로 본다고 하며 백제 때는 부시이현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이성현의 지역이었다.

고려 때는 초기에 부리현에 속했다가 19대 명종 5년(1175)에는 감무가 관할하는 지역에 속했으며

25대 충렬왕 31년(1305)부터는 승격한 금주에 속했었다.

조선시대 초기 태종 13년(1413)부터는 금산군에 속했었다고 하며 옛날에는 천내리에서

저곡리 개티로 건너다니는 나루가 있어서 이 나루를 천내나루라 하였으며

금산에서 금강변으로 이어지는 큰 길이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도 많았으며, 금강변의 큰 나루였다 한다.

지형이 웅장해서 명당자리가 많으며 한때 공민왕이 그의 묘터로 지목된 곳도 천내리에 있다고 하고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강을 건너서 금산을 침략한 그 강기슭도 천내리에 있다 한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금산군 부북면의 지역으로서 금강 안쪽에 위치해 있으므로 내안 또는

천내라 부르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광석리와 북쪽의 장선리 일부를 병합하여

천내리라 해서 전라북도 금산군 제원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충청남도에 편입,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가 되었다고 한다.

자지산(紫芝山) 들머리

금강(錦江) 강변을 따라 2.1km를 걸어야만 자지산 들머리가 있고 표지석이 멋지게 세워져 있다

난들교 가기전 우측에 있으며 아마 여름철이라면 초목(草木)이 우거져서 들머리가 보이지 않을수도 있겠다

자지산의 자(紫)는 자주빛 자 이며 자지산의 지(芝)는 지초지를 쓰고 있다.

자지산이란 이름은 자주빛의 뜻이 있고 식물인 지치의 뜻이 있어

옛날 어르신들은  이 산에 약초인 지치가 많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지치란 지금의 영지버섯을 이야기 한다고 한다.

자지산(紫芝山) 들머리에 있는 등산안내도

들머리에 있는 안내문의 자지산을 보면 풍수지리학적으로 남성의 성기와 비슷한 모양으로

양이면 천내 원골 강가 수십길 바위 벼루에 여성의 음부와 비슷한 음굴이 있다 라고 소개되어 있고

그 수십길 벼루가 지금의 부엉산을 이야기 하며 원골 인공폭포가 흐르는 지점이 여자의 음부라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음양산의 대표적인 산이 바로 자지산(紫芝山)이라고 하며

또한 자지산은 금남서대천태여맥의 하나라고 한다.

자지산 초입구간

자지산 초입구간을 목계단으로 조성해 놓았는데 아마도 조성한지가 그다지 오래되진 않은듯 하다

금산 자지산은 금남서대천태여맥의 하나라고 하는데

금남서대천태여맥이란 금남서대지맥이 서대산어깨를 지나 방화봉 국사봉 지나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에서 군북면 산안리를 넘는 신안고개에서 동쪽으로 올라간 충남 금산군 제원면

군북면, 충북 영동군 양산면의 삼면봉인 감투봉에서 서대지맥은 북쪽으로 흐르고

한줄기를 남쪽으로 분기하여 716봉-등고선상570m ←자안부-천태산(天台山△714.7, 2.5)-

장선리 임도(370, 3.2/5.7)-등고선상350m안부-등고선상410봉(1/6.7)-자지산(紫芝山△467.2, 0.7/7.4)

-자지산성-△216.1봉(1.5/8.9)-2차선도로(150, 0.3/9.2)를 지나 제원면 대산리 난들교 남측 0.3km 지점

신안천이 금강(錦江)을 만나는 곳(150, 0.1/9.3)에서 끝나는 약9.3km의 산줄기를 말한다고 한다.

첫번째 만나는 안내표지목 자지산1.7km

안내표지목에는 자지산 산정까지는 1.7km라고 안내 되어 있다

그런데 기러기공원에서 자지산 들머리까지 2.1km 도로를 걸어야 했기에

어느정도 몸이 풀여 산행하기 좋을듯 하지만 기운이 소진 될수도 있겠다

자지산 초입 산길은 흙산으로서 올 여름 태풍으로 인한 강우로 길이 많이

쓸려 내려간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소나무숲길

자지산 능선길엔 소나무숲으로 빼곡하다

자지산은 성재산이라고도 하며 일명 조헌산(趙憲山)이라고도 하는데 임진왜란 당시 금산에서

의병과 승병이 왜적과 대적한 싸움터로 조헌선생과 영규대사의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오는 명산이라고 한다 우리가 국사책에서 배운 조헌(趙憲)과 700의사(義士) 이야기가

바로 자지산의 살아있는 전설의 이야기 이다.

조헌(趙憲)선생은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도원(陶原)·후율(後栗)

경기도 김포 출생이며 조황(趙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세우(趙世佑)이고

아버지는 조응지(趙應祉)이다. 어머니는 차순달(車順達)의 딸이다.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첫번째 암벽

자지산 산정에 가까워 지면서 이렇게 암벽을 만난다

암벽주변에는 부처손이 많이 자라고 있고 부처손은 약용으로도 사용한다.

자지산은 조헌선생의 산이며 임진왜란 전투 흔적이 있는곳이다

조헌의병장께서는 임진왜란 당시 금산에서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끝까지 분전했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모두 전사했다.

정치적으로는 기호학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며 평생을 직언으로 일관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격문을 띄우고 의병을 모아 차령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그후 다시 의병을 모아, 8월 1일 영규의 승군과 같이 청주성을 수복하였고

왜적이 충청도와 전라도를 빼앗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산으로 향했으나

충청도순찰사 윤국형과의 의견대립과 전공을 시기하는 관군의 방해로 의병이 흩어지고

700여 명만이 남게 되었다고 하며 이들을 이끌고 금산으로 가서 8월 18일

왜장 고바야가와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으나 인원과 무기의 열세로 모두 전사했다.

제원면(濟源面)과 금강(錦江)그리고 봉황천의 조망

산정에 가까워 졌나보다 산행길에는 조망을 볼수가 없었지만 금강 그리고 제원면이 펼쳐진다

제원면은 금산군내에서 곡창지대로 불리우는 금산군에서 가장 넓은 들이 있으나 

들보다는 산악지대가 많은 지역이라고 하며  북쪽에는 산 높이 667m의 국사봉을 비롯하여

많은 산이 즐비하게 서 있는가 하면, 동쪽으로는 산 높이 714m가 되는 산을 비롯하여

많은 산이 산맥을 이루고, 서쪽으로는 발군산이, 그리고 중앙에는 천앙봉이 우뚝 서서

어떻게 보면 온통 산악지대 같다.

남쪽에는 금강과 이에 합류하는 봉황천이, 또한 북쪽에서 흘러오는 조정천이 합류하는

그 지역에 넓은 들을 조성하여 비교적 높은 지역에 위치한 금산군에선 들이 많은 편에 속한다. 

자지산성(紫芝山城)

자지산성은 자지산 산정 가까이에 있으며 그 흔적만이 이렇게 남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과 승병이 왜적과 대적한 싸움터로 조헌선생과 영규대사의 일화가 있는곳이다

축조연대를 알수없는 자지산성이라는 돌성이 있는데 이제는 허물어져 성의 윤곽만 보이나

성안에는 주먹만한 강돌이 무수히 흩어져 있어 임진왜란시 애국충정에 불타 맨주먹으로

왜적과 대항했던 당시의 처절한 흔적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왜적은 금산성에 다다른 조헌의 부대에게 후속병이 없음을 알고 군사를 출동시켜

1592년 8월 18일 제2차 금산성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수만의 왜군과 700명의 의병의 싸움은

중과부적(衆寡不敵)이어서 의병들이 쓰러져갔다.

그러나 조헌은 이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의로움을 버리지 마라!” 라고 외치며 끝까지 싸웠다.

승장 영규도 조헌이 사지에 몰리자 적의 포위망을 뚫고 들어갔으나 그 역시 전사 하였다.

조헌의 아들 조완기는 부친의 죽음을 알고 그 시신에 해를 입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장군의 차림으로 싸움에 임했다고 하며 싸움은 끝났고 조헌, 영규를 포함한 모든 의병들은 전사 하였다

후에 조헌의 아우 조범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헌의 시신을 찾으니 아들 조완기의 생각대로

큰 상처가 없었으며 장군 복장을 한 조완기의 시신은 무참하게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또한 왜군들이 물러간 후에 문인 박정량과 김승절이 이들의 뼈를 모두 모아

하나의 무덤으로 만들고 ‘7백 의총’ 이라고 이름 지었다.

금강(錦江)과 제원면(濟源面)의 들녘

금강(錦江)은 한강·낙동강에 이어 3번째로 긴 강이며 길이는 발원지에서 구하구까지 407.5㎞

금강 하구둑까지 397.25㎞, 유역면적은 9,885㎢이다.

전라북도 장수군에 있는 신무산 북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진안·무주·금산·영동·옥천·대전 등을 지나

군산만으로 흘러들고 강 상류는 험준한 산지 사이로 하천들이 감입곡류를 형성하고

중·하류에는 내륙분지와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으며 강 하구는 넓고 깊어 하항의 발달에 유리하다.

신안골의 조망

저멀리 민주지산이 조망되고 산봉우리 사이로 신안골이 있는데 인삼밭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금산군(錦山郡)에는 인삼(人蔘)이 유명하다

금산군은 충청남도 남동부에 위치하여 노령산맥과 소백산맥 가운데 하나의 큰 분지를 이루고 있어

남부 내륙형 기후로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한서의 차가 크고 지형성 강우량이 비교적 많다. 

일교차도 매우 심하고 여름철은 고온다습한 해양성 기후를 때문에

평균기온 11.3℃, 강수량 1798mm, 상대습도 67%이라 인삼재배지로 적합하다고 하며

금산군의 가장 대표적인 농산물로는 인삼으로 자리 잡았고 깻잎이 좋다고 한다.

특히 금산은 고려인삼의 종주지로서 금산, 부여, 서산 등의 인삼조합을 중심으로 단단하고

사포닌 함량이 높은 최고의 품질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자지산 정상(紫芝山 頂上)467m

자지산은 금강이 크게 굽이도는 난들 뒤에 우뚯 솟은 바위산이며

멀리에서도 엄청나게 깎아지른 바위벼랑이 잘 보이며 머리 부분에 가깝고 왼 편 천앙산 쪽에

가장 큰 바위 낭떠러지가 있다. 

그 낭떠러지 아래에 성이 있고 거기에 석전용 강돌이 있다. 이 산 곳곳에 바위벼랑들이 많고 

기암괴봉도 많아서 홑산이지만 경관이 좋다. 특히 이 산의 서쪽 천앙봉과의 사이에 

냇물이 흐르고 있어 천길 바위낭떠러지를 이루고 있고 이 산의 남쪽 비탈도 

층층이 깎아지른 바위벼랑이 겹쳐 있어 매우 험하고 우뚝하게 보이는 것이다.

자지산은 바위벼랑의 전시장이라 할 수 있으리만치 바위벼랑 낭떨어지 바위벽들이 많고 

조망이 뛰어나게 좋은 산이다. 봉황천은 금산의 서쪽 오지 산중에서 발원하여 

금산 고을의 한복판을 흘러내리는 ‘ㄹ’자 모양의 물줄기다. 

자지산에서는 봉황천의 물줄기가 잘 보일 뿐 아니라 금산읍과 금하천 그리고 진악산도 잘 보인다.

자지산 정상(紫芝山 頂上)467m

산정옆에 소나무 가지에는 누군가가 장난스레 자지를 깍아 조각해 놓았다.

천태산쪽에서 바라보면 산줄기가 서쪽으로 뻗어나 자지산에서 머를를 불끈 들어 올린것이

남성의 성기가 성을낸 모양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자지산에 굴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다 불을때면

보름뒤 원골 건너 음굴에서 연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거기다 이 음굴을 건들이면 어느 마을 처녀들이 바람이 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다.

지금은 이 음굴의 바위 줄기에 원골인공폭포가 만들어져 있다.

부엉산 방향으로 하산

부엉산은 자지산 맞은편의 음굴이 있는 산이며 기러기공원 맞은편에 있다

낙엽이 소복하게 쌓인 흙산 산길을 걷다보면 등산로 라는 표찰이 산길을 안내한다

부엉산을 한자를 어떻게 사용하나 검색하고 찾아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부엉산의 이름을 생각해본건데 부(夫)는 사내부 엉은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낭떠러지를 엉이라고 하는데 자지산의 낭떠러지 라고 나름 생각해본다

자지산에서 부엉산 방향의 산길은 급하게 경사진 갈지자 형태의 길이 산행을 어렵게 한다.

낙엽과 성근돌이 혼재해 미끄럽고 스틱으로 짚어가며 조심해야 할 산길이다.

이곳으로 등산한다면 결코 쉽지 않을것 같은 산길이다.

원골과 금강의 조망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은 산을 뚫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산을 따라 굽이쳐 흐르는 금강이 아름답기만 하다

저멀리 영동군 양산면의 가래골을 이어주는 수산교가 보인다

영동의  가선리는 본래 양산현(陽山順) 지역으로 옥천군(淡川郡) 양내면(陽內面)에 속하였다가

1906년 영동군에 편입 되었다 하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내동(加乃洞)과

장선동(長仙洞)을 병합하여 가핀리라 칭하고 영동군 양산면에 편입 되었다고 한다.

부엉산 정상

붕엉산 산정은 커다란 암봉이 우똑 솟아 있었다

붕엉산은 따지고 보면 여성이라고 이야기가 된다 그러면 산정의 암봉은 유두일까 생각도 해본다

지도상에는 산이름 조차 존재하지 않는 봉우리 이다

원골에서 바라보면 여성의 음부처럼 보인다고 하는데 하산해서 자세히 관찰해보자

자지산 근처에는 충청의 명산 천태산이 근처에 있으며

다음에 또 천태산을 찾아 올라서 자지산을 바라보아야 겠다.

천내교 와 금강

금강이 굽이쳐 흐러는 건너편엔 하늘먼당 캠핑장 그리고 펜션등이 있는곳이다

골짜기 안쪽은 검선골이라고 부러며 발아래 천내교를 따라 부엉산 터널이 뚫어져 있다

부엉산 건너편 월영봉이 있는 용화리는 남쪽에서 흘러오는 금강이 동쪽으로 굽이쳤다가

다시 서북쪽으로 그 방향을 바꾸는 반도와 같은 모습으로 동쪽으로는 모래사장을 이루고

서쪽으로는 용화산을 주봉으로 잔잔한 야산지대를 이루는 지역과 강 건너 기웃재 아래로

용화리는 자리하고 있으며 학산면과 접하고, 남쪽으로는 부리면 어재리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금성리와 그리고 부쪽으로는 천내리와 경계를 나누고 인류의 정착은 고려 이전으로 보고있다.

자지산 시작점 기러기공원 그리고 세월교

기러기공원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중 우측에서 다섯번째가 내가 타고온 차량이다

세월교 아래는 넓다란 모래톱으로 이루어 져 있으며 기러기공원 건너는 난들이 보인다

검정색으로 보이는곳은 인삼재배 가림막이다

여름철에는 아마도 많은 피서객들이 북적 되는곳일 것이다

금강의 맑은물 그리고 자지산 부엉산의 벼랑과 인공폭포가 그 시원함을 보탤것이다.

굽이쳐 흐르는 금강(錦江)

갈지 지(之)자로 흐르는 금강을 파노라마로 촬영해 보았다

당서(唐書)에서는 금강을 웅진강(熊津江)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금(錦)은 원어 ‘곰’의 사음(寫音)이다.

곰이라는 말은 아직도 공주의 곰나루(熊津)라는 명칭에 남아 있다. 일명 호강(湖江)이라고도 부른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금강의 명칭은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즉, 상류에서부터 적등진강(赤登津江)·차탄강(車灘江)·화인진강(化仁津江)·말흘탄강(末訖灘江)

형각진강(荊角津江) 등으로 되어 있으며, 공주에 이르러서는 웅진강, 부여에서는 백마강

하류에서는 고성진강(古城津江)으로 되어 있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하천이 그러하듯이 금강도 유황(流況)이 대단히 불안정하여

단기간의 홍수 유출량이 총 유출량의 약 70%를 차지했다.

금강 하류 지역에는 부여의 규암평야, 논산천 유역의 강경∼논산평야와 같은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는데

이들 평야는 큰 홍수가 발생할 때 수해를 심하게 입었다.

그런데 1980년에 대전의 신탄진 부근에 대규모 다목적댐인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금강물의 이용량은 늘어나게 되었다. 대청댐은 당초에 홍수 방지와 관개용수의 확보를 위해 건설한 것이었다.

금강 테크로드

금강 주변으로 부엉산 전망대 까지 테크로드가 잘 조성되어 있어 금강을 보면서

남녀노소 누구나가 부엉산 전망대 까지 쉽게 오를수 있도록 설치해 놓았다.

금강의 상류는 전라북도의 장수군·진안군·무주군과 충청북도의 영동군 일부 지역의

물이 모아져 시작되는 곳이며 지질은 옥천누층군(沃川累層群)의 변성퇴적암 내지

선캄브리아기의 화강편마암과 이들을 관입한 중생대 화강암 등 복잡한 구조를 이루기 때문에

지형도 매우 복잡하다고 한다.

소백산맥에서 노령산맥이 갈라지는 이곳은 높이 1,000m 이상의 험준한 산들이 많아서

이른바 진안고원을 형성하고, 그 동단부에는 덕유산(1,594m)·백운산(1,279m) 등 험준한 산들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를 깎아 흐르는 수많은 하천들은 심한 감입곡류(嵌入曲流)를 하며

무주구천동이나 영동의 양산팔경(陽山八景)같이 아름다운 계곡을 이루어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 많다.

부엉산 의 음굴(陰窟)

기러기 공원에서 바라보면 부엉산 벼랑에 음굴이 있으며 자지산 굴에서 불을 피우면

보름뒤 음굴에서 연기가 나오며 음굴을 건더리면 마을 처녀들이 바람이 난다는설이 있다

천태산에서 자지산을 바라보면 음굴을 향해서 들어오는 성난 거대한 성기 형상 이라고 하며

언제 시간이 나면 천태산 산행을 하면서 그 형상을 한번 보고싶다.

여름철이면 음굴 인근에 인공폭포를 설치되어 있어 폭포수가 장관이라고 하며

금강변에 요즘 캠핑장소로 더 인기가 많다고 한다.

자지산 산행 종료

충남금산 자지산(忠南錦山 紫芝山)은 조헌(趙憲) 의병장 역사의 흔적을 따라

자지산 산정에서 금강(錦江)을 바라보는것이 산행의 묘미라고 할수 있다

우리의 선조들이 지켜낸 산하를 볼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 한다

조헌과 700명의 의병들이 전사한 금산성 전투 이들의 뼈를 모아 하나의 무덤으로 만든 7백 의총

그리고 자지산의 음양(陰陽) 이야기도 많은 호기심을 자아내게 만든 산행길이 였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산&산(부산일보),한국1000산 신명훈,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 금산군,제원면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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