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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청량사(陜川 淸涼寺).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석가여래 석불 있는 청량사 도량을 걷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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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청량사(陜川 淸涼寺).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석가여래 석불 있는 청량사 도량을 걷다

바다늑대FORCE 2020. 11. 21. 16:09

합천 청량사(陜川 淸涼寺)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석가여래 석불이 있는 청량사 도량을 걷다........!

 

■ 합천 청량사(陜川 淸涼寺)

  위치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청량동길144

  전화 : 055-932-7987

 

■ 합천 청량사(陜川 淸涼寺) 사찰기행일

   2020년11월20일 금요일.  날씨 : 맑음

 

 

■ 합천 청량사(陜川 淸涼寺) 개요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남산제일봉(南山第一峰)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이전에 창건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창건에 관한 기록은 없으나

『삼국사기』에 최치원(崔致遠)이 이곳에서 즐겨 놀았다고 하였으므로 신라 말기 이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전에 의하면 이 절이 해인사보다 먼저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절은 오랫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1811년(순조 11) 회은(晦隱)이 중건할 때 3칸의 법당과 요사채를 지었으며

최근에 주지 경암(景庵)이 요사채를 중건하고 법당을 중수하였다.

일반적인 산지 가람의 유형을 따라 석축을 높이 쌓아 마련한 3단의 대지 위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적광전과

상락당(常樂堂)·감로당(甘露堂) 등의 요사를 갖추었다. 사지 근처에는 다양한 신라시대 석물(石物)들이 산재하는데

그 중에는 불상·불탑·석등(石燈)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이들은 월류봉(月留峰) 아래 남북 일직선상에 놓여 있으며

모두가 건립 당시의 조각예술을 대변하는 빼어난 작품이다. 이 중 보물 제265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조석가여래좌상은 경주석굴암 불상의 유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석굴암이 경도(京都)의 장인(匠人)에 의하여

조성된 8세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라면, 이 불상은 지방의 장인에 의하여 이룩된 9세기를 대표하는 수작이다.

또한, 보물 제266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형식을 보이고 있다.

조각수법이 경쾌하고 우아한 작품이며, 1958년 수리할 때 3층 옥신에 사리공(舍利孔)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보물 제253호로 지정된 석등은 9세기 석등을 대표할 만한 수작이다.

 

■ 합천 청량사(陜川 淸涼寺)가람 배치도

 

■ 합천 청량사(陜川 淸涼寺) 찾아가는길

진주역→→합천대로 거창고령방향→→33국도대구방향→→고령ic→→해인사tg→→대장경테마파크방향

→→청량사매표소주차장

95km 승용차1시간30분 소요.

→→ 산에가면 사찰이 있고 사찰에 가면 산이 있다

합천 청량사가 있는 천불산(남산제일봉)한바퀴 돌고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석가여래 석불이 있는 청량사 도량을 걸어본다

청량사 문화재관람료 3000원

오늘은 대한불교조계종 신자증을 소지하지 않아 이렇게 문화재 관람료 3000원을 지불하고

소나무숲 우거진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간다

청량사매표소 건너편에 주차장이 있으며 물론 예전에는 청량사 앞까지 차를 가지고 갔었다

초겨울 바람에 소나무 깔비는 눈오듯 떨어지고 솔향기가 가슴속 깊숙히  스며들었다.

천불산 청량사(千佛山 淸涼寺)표지석

남산제일봉은 기암괴석(奇巖怪石)이 산을 덮고있어 마치 천불상처럼 보이며

그러한 이유인지 남산제일봉을 천불산이라 불렀나 보다

사찰이름이 청량사 이기에  아마도 여름엔 시원할듯한 느낌이다 청량음료처럼

한자를 보면 맑을청(淸) 서늘할 량(涼)이다 그래서 시원한 느낌이 있는 사찰이라고 이해해본다.

청량사와 남산제일봉

합천 청량사는 남산제일봉 자락에 있는 천년 고찰이지만 그 창건년대의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대략적인 추측만 가능한 사찰이다

대충 이야기로는 최치원선생이 자주 다녔던곳이라고 하며 합천 해인사보다 먼저 건축된 속설도 있다

그 이유는 삼층석탑 석등을 미루어 보아 추측한다고 한다.

설영루(雪影樓)

일주문과 사천왕상을 대신해 청량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설영루 모습이며

청량사는 가야산 합천 해인사 16암자 중 하나라고 한다

청량사로 가는 길은 남산제일봉을 찾는 등산객이 붐비는 곳이어서 비교적 찾기 쉽다.

가야면사무소에서 해인사 홍류동 계곡 방향으로 2㎞ 정도 가다 왼쪽에 보이는 황산 2구 마을로 들어가면 되며

마을 입구인 근민교를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2㎞ 쯤 가면 주차장과 화장실을 갖춘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서 주차하면 되지만 청량사매표소에서 매표후 승용차를 가지고 올라가서

청량사 도량앞 설영루 앞에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된다

 

청량사 대웅전이 있는 도량

설영루(雪影樓)를 지나면 이렇게 큰성벽 같은 웅벽을 만난다 물론 설영루 옆길엔 차량이 왕래가

가능한 큰길이 있지만 대부분 불자들은 설영루를 지나 법당으로 향한다.

합천 해인사(海印寺)가 가야산(伽倻山)을 병풍처럼 둘렀다면, 청량사는 남산제일봉을을 병풍으로 삼았다.

남산제일봉은 가야산 지맥으로 가야남산이라고도 부른다.

불가에서는 1000명의 부처님상이 산을 덮고 있는 모습과 같아 천불산(千佛山)으로 불리고 있으며

청량사 입구 표지석에 남산제일봉 청량사(南山第一峰 淸涼寺)가 아닌

천불산 청량사(千佛山 淸涼寺)라고 새겨진 이유이기도 하다.

디딤돌

설영루(雪影樓)를 지나서 성벽같은 웅벽옆으로 디딤돌이 물방울 처럼 놓여져 있는데

하나둘씩 밟고 따라가면 대웅전으로 갈수 있다.

합천 청량사 창건 시기는 현재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다고 하는데 삼국사기에 신라 문장가인 최치원이

청량사를 즐겨 찾았다는 기록과 주변에 산재한 다양한 석물(石物)로 미뤄 신라 말기 이전인

9세기 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해인사보다 더 이전에 창건되었다고 하는 설도 있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해인사 명성에 가려져 청량사는 오랫동안 폐사로 방치되었다가

조선시대 들면서 순조 11년(811년)에 회은선사가 3칸의 법당과 요사채를 지어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에도 청량사는 명맥만 유지하다

1990년 현재 주지인 원타 스님이 중건 작업에 나서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었다고 한다.

청량사 대웅전(淸涼寺 大雄殿)

진짜 절관처럼 조용 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마스크를 쓰고 도량을 돌아보았지만

만나는 불자나 스님 그리고 산행자도 없어 마스크를 벗었다

청량사 대웅전 건축양식은 정면3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다

대웅전 편액아래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의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대웅전 내부는 신발끈이 긴 이유로 신발을 벗지 못하여 대웅전 축담에서 삼배(三拜)를 올렸다

청량사 대웅전 내부

항마촉지인 석가여래석불이며 보물 제265호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청량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며 불상은 광배(光背 )

즉 붓다의 몸에서 나온 빛의 표현과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다.

전체 높이 2.85m이며, 이 중 불상은 2.1m, 대좌는 70㎝이다.

청량사 석조여래좌상에 관한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조성 배경을 알 수 없다.

편단우견(偏袒右肩 :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옷을 입는 것) 형식으로 법의(法衣)를 착용하고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마귀를 항복시키고 이를 지신(地神)에게 증명하게 하는 손 자세로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배 앞에 둔 모습의 결하고 있는 불좌상이다.

불상은 입체감 있는 조형과 당당한 자세를 갖추고 있고 불상은 넓고 편평한 육계(肉髻 : 정수리 위에 솟아나온 부분)와

큼직큼직한 나발(螺髮 : 소라 형태의 머리카락)의 머리카락, 반원을 그리는 눈썹, 살짝 뜬 눈

다지 길지 않는 코, 짧은 인중, 다문 입, 큰 귀를 가지고 있다.

양 볼은 팽창되어 있으며, 이중 턱이 생길 정도로 살 찐 상태이며

불상은 얼굴 측면이 상당히 넓어진 모습을 하고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 : 세 개의 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약광전(藥光殿)

약광전(藥光殿)의 건축양식은 정면3칸 측면2칸의 맞배지붕 형태로서 단청도 아름답게 잘 되어 있었다

청량사는 천년고찰의 명성과 문화재, 그리고 통일신라 말기 대문장가 최치원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며

그러다 보니 일반 불자들의 수행이 활발한 수행도량으로도 명성이 높다. 

청량사의 템플스테이는 두루뭉술한 체험이 아닌 수행, 명상, 체험 등 프로그램을 세분화하고 

구체화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특히 절집의 생활과 수행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도록 생활과 수행 공간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한다.

고심선원(古心禪院)

대웅전 옆 고심선원(古心禪院)은 스님들이 참선하고 정진하는 곳이며

고심선원은 현대 불교에 큰 발자취를 남긴 성철 스님이 손수 이름을 지었다 한다. 

성철 스님은 상좌였던 원타 스님이 청량사 중건에 나서자 ‘천년 전의 부처님을 모신 곳에서 

바른 삶의 눈을 뜰 것’을 강조하며 선원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합천 청량사는 도량을 보면  여름엔 녹음으로 인하여 산사가 초록으로 물들겠고

가을날엔 단풍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산사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진다.

청량사는 최치원 선생이 스님들과 막역한 사이로 지내다가 그들이 세상사에 개입함을

못내 아쉬워 하며 푸른 산에 맹세 한다는 청산맹약시를 지었다고 한다.

靑山盟約時 (청산맹약시)

僧乎莫道靑山好(승호막도청산호) 중아 산이 좋다 말씀마라

山好何事更出山(산호하사경출산) 산이 좋다면서 왜 다시 나오나

試看他日吾踵跡(시간타일오종적)뒷날에 내 자취 시험해 보라

一入靑山更不還(일입청산경불환)한번 들면 다시는 오지 않으려니

합천청량사석등(陜川淸凉寺石燈)

통일신라시대 석등으로서 보물 제253호이며 높이 3.4m. 대웅전 앞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다

석등은 단면 8각의 전형적인 신라 석등의 모습이지만, 가운데받침돌이 장구를 세워 놓은 듯한

고동형(鼓胴形)이어서 특이하며 네모난 바닥돌 위에는 제법 넓은 아래받침돌이 놓여 있는데

아래받침돌은 윗단과 아랫단으로 나뉘어 조성되었다.

아랫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오목새김되었고, 안상 안에는 사자와 함께 구름 속에 있는

누각인 운상누각(雲上樓閣)이 8면에 교대로 조각되어 있다.

윗단은 2장의 꽃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覆蓮)의 연꽃 무늬가 각 모서리마다 1개씩 모두 8개가 크게 새겨져 있는데

모서리에 조각된 꽃잎의 끝부분은 꽃잎을 말아 올린 작은 귀꽃으로 장식되었다.

이 복련석 위에는 가운데받침돌의 받침이 놓여 있는데, 밑면은 안쪽으로 둥글게 깎였고

윗면에는 복련 모양의 연꽃 무늬 24개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간주(竿柱) 모양의 가운데받침돌은 가로띠와 꽃 무늬가 장식된 복발(覆鉢) 모양의 굵은 마디를 중심으로

그 위아래에는 복련의 연꽃 무늬와 함께 꽃잎이 위로 솟은 앙련(仰蓮)의 연꽃 무늬가 장식되었다.

그런 다음 다시 위아래로 윗받침돌의 밑면과 아래받침돌의 받침까지는 비스듬히 비탈지게 깎였고

겉면에는 꽃 무늬가 조각되었다. 윗받침돌은 윗부분에 받침을 두었고, 밑면에는 8각의 각 모서리마다

하나의 꽃잎을 가진 연꽃 무늬가 앙련의 모습으로 1개씩 돋을새김되었다.

불을 켜 놓은 부분인 8각의 화사석(火舍石)은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화창(火窓)은 4면에만 뚫렸으며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었다. 지붕돌은 매우 얇은 편으로, 처마 밑은 수평이지만 추녀 위에는

경쾌한 반전이 있다. 밑면에는 여러 단의 굄을 두었으나 꼭대기에는 복련의 연꽃 무늬를 조각하지 않았다.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는 대체로 없어졌는데, 그 부재로 보이는 파편은 남아 있다.

이 석등은 가운데받침돌에 변화가 나타났고, 조각 수법에서 입체성이 줄어든 것으로 보아

건립 시기는 대체로 9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합천청량사삼층석탑(陜川淸凉寺三層石塔)

합천청량사삼층석탑은 보물 제266호이며 높이 4.85m. 석탑은 2층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모습으로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랐지만 곳곳에 특이한 의장(意匠)이 더해져 있다.

받침 부분인 기단부(基壇部) 주위에는 길고 큰 돌을 둘러서 널찍한 탑구(塔區)를 조성하였는데

여느 석탑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아래층 받침돌은 바닥돌과 받침돌의 면석을 하나의 돌로 깎은 4장의

널돌로 조성하였다. 면석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과 함께 2개의 가운데 기둥이 조각되었다.

4장의 널돌로 짜여진 덮개돌 윗면은 약간의 경사를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반전(反轉)하였고

가운데 부분에는 2단의 굄이 새겨져 있다. 윗층 받침돌의 면석은 모서리 기둥과 1개의 가운데 기둥을 조각한

널돌을 앞면과 뒷면에 세우고, 그 사이에 가운데 기둥 하나만을 새긴 널돌 2장을 끼운 구조이다.

덮개돌에는아래층 받침돌의 그것처럼 윗면에는 약간의 경사와 네 귀퉁이의 반전을 두었고

처마 밑면에는 쇠시리인 부연(副椽)을 새겼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는데, 2층 몸돌부터 쾌적한 비율로 체감되었다.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비교적 얇은 편으로, 수평인 처마의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이 있고

윗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반전하여 경쾌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윗부분에 덮개를 새긴 노반(露盤)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석탑은 받침돌이나 몸돌에 아무런 장식이 없지만 각 부분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석재의 가공도 가지런하여 경쾌하고 우아한 기품을 지니고 있다. 1958년에 보수공사를 하였을 때

2층 지붕돌의 윗면과 아래면에서 사리장치(舍利藏置)를 봉안하였던 둥근 구멍이 확인되었다.

윗면의 구멍은 지름과 깊이가 각각 10㎝이고, 아래면의 구멍은 지름과 깊이가 각각 15.1㎝이다.

지붕돌의 윗면에 사리장치를 둔 것은 다른 석탑에서 찾을 수 없는 특이한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적연당(寂然堂)

설영루 도량에 있는 적연당은(寂然堂)은 일반인이 수행하는 곳이고, 상락당(常樂堂)은 일반인이 수행 기간 머물고

식사를 하는 생활관이라고 하며 통상 1박 2일에서 2박 3일로 템플스테이로 주지스님 상담을 거쳐 연장할 수도 있다.

이 밖에 옛 대웅전을 활용해 만든 약광전과 작은 수행처인 고경대

마음을 맑히는 물을 담아두는 수각인 용심정 등이 단아하면서도 정갈하게 배치되어 있어

청량사 도량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청량사 이럼처럼 힐링이 될듯하다.

남산제일봉 산정에서 바라본 청량사

남산제일봉 산정에서 바라보면 합천군 가야면소재지와 대장경테마파크 그리고 발아래 청량사가 보인다

청량사 도량을 둘러보기전에 남산제일봉인 천불산을 올라보고 남산제일봉 산정에서 가야산 해인사 경내 전체를

볼있는 조망처이기도 하기에 한번쯤 올라 보는것도 좋을듯  싶다 등산하기 힘든 사람은 물론 추천한다면 곤란한데

왜냐면 청량사에서 남산제일봉으로 가는 산길은 그야말로 45도각의 오르막길이기 때문이다.

남산제일봉산정에서 바라본 청량사

 

山에가면 寺刹이 있고 寺刹에 가면 山이 있듯이 오늘도 이렇게 산에 오르면서

사찰기행을 마무리 해본다.

 

 

※인용글 :

자료 인터넷사전 및 합천군 홈페이지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사전 ,전통사찰관광정보,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료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및 사찰종무소스님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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