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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분성산(金海 盆城山).낙남정맥(洛南正脈)의 끝지점 분성산 산정에서 가야제국(加耶諸國)을 보다 본문
김해 분성산(金海 盆城山)
낙남정맥(洛南正脈)의 끝지점 분성산 산정에서 가야제국(加耶諸國)을 보다.
▲ 김해 분성산(金海 盆城山)
높이 : 382m
위치 : 경남 김해시 북부(北部), 삼안(三安), 활천(活川) 3개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
▲ 나의 산행일 : 2020년 10월30일 금요일. 날씨 : 맑음
▲ 김해 분성산(金海 盆城山)나의 산행코스
테마파크조망 삼거리→→체육시설→→분성산(382m)→→김해천문대→→분성산
→→테마파크조망 삼거리→→분성산성→→해은사→→충의각→→만장대봉수
→→원점회귀 2.79km 57분 소요.
▲ 김해 분성산(金海 盆城山) 개요
분성산은 경남 김해시 북부(北部), 삼안(三安), 활천(活川) 3개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서쪽 사면에서는 해반천(海畔川)의 지류가 발원하고 동쪽 사면에서는 신어천(神魚川)의 지류가 발원한다. 또한 산의 남쪽 산중턱에 분산성(盆山城), 수로왕비릉(首露王妃陵), 해은사(海恩寺), 금성사(金城寺), 성조암(聖祖庵) 등이 있으며, 남쪽 기슭에 시가지가 전개되어 있다.
김해 중심부의 이 산에는 가야 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분산성이 위치하며 분산성은 사적 제66호. 산성주위 둘레 약 900m. 산꼭대기에 있는 평탄한 지형을 둘러서 그 주위에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룬 성벽으로, 수직에 가까운 석벽은 높이가 약 3~4m인데 무너진 부분이 적지 않다.
이곳에 세워진 ‘정국군박공위축성사적비'에 의하면, 이 산성은 조선 초기에 박위가 고산성(古山城)에 의거하여 수축한 뒤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871년(고종 8) 다시 현재의 성벽으로 고쳤다고 한다. 성기(城基)의 선정법은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룬 테뫼식[鉢卷式]을 따른 점으로 미루어 그 시축(始築) 연대가 삼국시대임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산성 서쪽의 삼산리(三山里)에 있는 고분군의 유적으로 보아, 가야의 중심 근거지를 이룬 산성으로 짐작 된다. 허왕후와 장유화상이 가락국으로 건너와 창건한 해은사, 흥선대원군 만세불망비 등을 모신 충의각, 그리고 분성산 봉수대 등이 산자락 곳곳에 있어 가야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산 정상에 김해천문대가 위치하여 김해시민뿐만 아니라 타 지역민의 명소가 되고 있다.
봉수대에선 김해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시가지는 물론 김해평야 남해고속도로 서낙동강과 부산까지 바라볼 수 있다. 해은사(海恩寺)도 연이어 나타난다. 지금은 범어사의 말사인 조그만 해은사는 허 왕후와 장유화상이 가락국에 무사히 도착한 후 풍랑을 막아준 바다의 은혜에 감사의 의미로 지은 사찰이며, 영산전 옆 대왕각에는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해은사 입구에서 우측으로 열린 산길로 내려서면 얼마 가지 않아 분산성을 만난다. 가야 때 축성된 이 성은 고려 말 당시 김해부사 박위가 왜구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재 축성했다. 시내 쪽 경사면에 현재 900m가량의 성벽이 남아있고 높이는 3~4m에 달한다. 산성마을 왼쪽은 경사가 아주 심한 봉수대 오르는 길이며, 10분쯤 땀을 흘리면 마침내 분산성 봉수대에 닿는다.
▲ 김해 분성산(金海 盆城山) 등산지도
▲ 김해 분성산(金海 盆城山) 산행 나의 트랭글 궤적도
▲ 김해 분성산(金海 盆城山) 산행지 찾아가는길
진주역→→남해고속도로 부산방향→→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 광재TG→→인재로→→가야로
→→김해가야테마파크주차장.
125km 승용차 1시간55분 소요.
→→→→→→2020년 10월30일 금요일 대한민국 구석구석 산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오늘은 김해까지 출장이다 덤으로 낙남정맥 끝지점 분성산에 가고 싶었는데
다행이 분성산이 출장지 근처에 있어 출장업무 마치면 분성산에 가기로 했다.
김해지역에 있는 그린코아더센텀 39층 건물에서 현장 고층건물 화재대응
토론식 현지적응훈련이 있어 참석하였고 동료들의 열띤 토론으로 시간이 많이 초과되어
김해 분성산 산행에 시간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열띤 토론 덕분에 현장대응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많이 습하게 되었다.
업무 마치고 분성산 산행은 짧은코스를 김해거주 지인에게 문의하여 김해가야테마파크로 향했다.
테마파크 조망 삼거리
여기서 천문대 방향이 분성산 정상이 있는곳이며 이 길은 가야하늘길이라고 명명 되어 있었다
김해시민들이 운동하기 좋은 코스로서 쾌적하고 탐방로도 잘 정비 되어 있어고
휴식을 취할수 있는 벤치 그리고 운동시설등 골고루 잘 만들어진 도심공원 이었다.
분성산에 오를땐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시간 이라 구석구석 둘러보기엔
시간이 무척 촉박하여 빠른 걸음으로 다녀야 했다.
분성산 탐방로
분성산(盆城山)은 김해시가지에 있는 마을 뒷산같은 높이의 산이다
지나가다 보면 군데군데 분성산 특색을 기록한 안내판도 많이 있었고
분성산 생태숲 식생분포도 안내해 놓았는데
주요 식생으로는 소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및 신갈나무 등의
참나무류가 분포한다 이밖에도 사방오리나무 아카시아나무 리기다소나무등
조림수에 의한 일부 인공림이 일부지역에 분포한다고 기록해 놓았다.
천문대가는길
안내표지목도 재미있게 만들어 놓았다 지금까지 소모된 칼로리는 55kcal이라고 해놓았다
나처럼 중간에 새치기 한 사람은 해당이 되지 않겟지만 건강해진 느낌이지요 라고 새겨 놓았다
분성산 능선부 식생에는 소나무림이 소군상으로 분포하고 계곡과 인접한 사면부에는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등이 참나무류가 분포한다
일부지역에서는 노각나무 비목나무 철쭉나무등이 소군락을 이루고 천이계열상
온대지방 극상수종으로 알려진 서어나무가 일부 분포한다고 한다.
천문대방향 등산로
새둥지 같은 시설은 산행자들에게 안내방송하는 스피커가 들어 있다
사람이 오가는것이 포착이 되면 자동 안내 방송이 나온다.
분성산은 경남 김해시 북부(北部), 삼안(三安), 활천(活川) 3개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서쪽 사면에서는 해반천(海畔川)의 지류가 발원하고 동쪽 사면에서는 신어천(神魚川)의 지류가 발원한다.
또한 산의 남쪽 산중턱에 분산성(盆山城), 수로왕비릉(首露王妃陵), 해은사(海恩寺), 금성사(金城寺)
성조암(聖祖庵) 등이 있으며, 남쪽 기슭에 시가지가 전개되어 있다.
분성산 바위
해질녘에 분성산 등산길에 만난 바위인데 마치 고등어를 삼등분으로 짤라 놓은듯 한 모습이다
잠시 휴식하면서 생각 해본건데 분성산에는 많은 유적이 많다.
삼산리고분군(三山里古墳群) 도 분성산에 있는데
현재 이 고분군은 두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수로왕비릉에서 가까운 고분(A고분)은 2기로서
김해시 구산동 63·64번지 일대에 있고 수로왕비릉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고분(B고분)은
김해시 구산동 81-2번지 일대인 구릉 위(지금의 김해여고 뒤쪽)에 있는데 현재 1기만 보인다.
A고분에는 일제시대 때 세운 ‘사적 제109호 삼산리고분(三山里古墳)’ 푯말이
B고분에는 광복 후 세운 ‘사적 제75호 구산동고분군’ 푯말이 각각 별도로 세워져
마치 별개의 고분유적인 것처럼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하나의 고분 유적이다라고 한다.
김해 분성산(金海 盆城山) 382m
마을뒷산 같은 분성산은 낙남정맥의 끝지점이며 산행자들에게는 의미있는 산이다.
낙남정맥(洛南正脈)이란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김해 분성산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한반도의 산줄기 체계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에서 비롯된 이들 맥은 10대 강의 유역을
가름하는 분수산맥을 기본으로 삼고 있어 대부분의 산맥 이름이 강 이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김해 분성산(金海 盆城山) 382m
분성산 정상표지석 뒷면에는 낙남정맥 이라고 새겨 놓았다.
낙남정맥(洛南正脈)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정맥이다.
이 정맥은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끝나는 지리산(智異山)의 영신봉(靈神峰)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남강의 진주와 남쪽의 하동·사천 사이로 이어지며
동쪽으로 마산·창원 등지의 높이 300∼800m의 높고 낮은 산으로 연결되어
김해의 분성산(盆城山, 382m)에서 끝난다.
서쪽에서는 섬진강 하류와 남강 상류를 가르고, 동쪽에서는 낙동강 남쪽의 분수령 산맥이 된다.
연결되는 주요 산은 옥녀산(玉女山, 614m)·천금산(千金山)·무량산(無量山, 579m)·여항산(餘航山, 744m)
광로산(匡盧山, 720m)·구룡산(九龍山, 434m)·불모산(佛母山, 802m) 등이며, 그 길이는 약 200㎞이다.
김해 천문대
김해천문대에 있는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이다
구리로 바퀴를 만들고 적도를 기준으로 자루를 만들었으며 바퀴 지름은 2자 정도이고 가운데 십자 막대기가 있다.
십자 가운데 축이 있는데 그 북면의 중심을 파고 그 가운데 겨자씨만한 둥근 구멍을 만들어
축으로 계형을 꿰뚫어 구멍으로 별을 관측한다. 바퀴 뒷면에는 3개의 환을 만들었다.
주천도분환이 가장 바깥에 있는데 돌릴 수 있도록 두 귀를 만들었다.
눈금으로 주천도를 새기고 도를 다시 4등분했다. 그 안에 있는 일구백각환은 고정되어 있으며
눈금으로 100각을 새겼고 각을 다시 6등분했다.
그 안의 성구백각환을 돌릴 수 있도록 귀를 만들어놓았으며, 3개의 환 위에는 계형을 달아놓았다.
가운데에는 정극환이 있는데 내환과 외환 2개가 있다.
낮에는 일구백각환을 통해, 밤에는 성구백각환을 이용해 시간을 측정했다 한다.
김해천문대에서 바라본 김해시
앞에 보이는 작은산이 임호산(178m)이며 그 주위로 아파트 단지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임호산 옆으로 보이는 것이 주촌면이다
주촌(酒村)의 지명 유래를 보면 지명의 유래에 대해선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주지봉(住持峯) 또는 주주봉(酒主峯)아래의 마을, 혹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과거에 번성한 포구였던 선지리의 배가 정박하는 곳이었던
주촌지(酒村池)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다. 풍수지리설도 한 몫 한다.
"옥술잔"형의 명당이 있다는 기록이여러 풍수지리관련 문헌에 나온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최근(2003년) "김해향토문화연구소"와 "옥주문화연구회"에서 발굴한
1800년 초기의옛 "김해부 지도"이다. 이 지도에는 주촌이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이란 뜻의
住村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지도를 볼 때 주촌이란 지명은
일반적인 의미의 "술(酒)"과는 차원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수백년 전까지 번성했던 선지포구는 당연히 요즘의 유흥가 즉, 주막거리(酒村)가 형성이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주촌지(酒村池)로 불렀을 것이다. 주촌지의 현 위치는 선지들판 한가운데에서 동남쪽에서
200~300M 내려간 지점인데 현재도 노인분들은 이 지점을 '선창거리'라고 부른다
그렇게 볼 때"주촌지(酒村池)" 정면에서 바라보이는 산이기 때문에 주주봉(酒主峰)이 된다.
분성산 김해 천문대에서 바라본 낙조(落照)
정말로 오랫만에 보는 낙조의 아름다운 풍경인듯 싶다
퇴근길에 가끔보지만 이렇게 산에서 보는 일몰이야 말로 다가오는 풍경이 새롭다
세상속의 하루일과가 저 태양과 함께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분성산성으로 가는 등산로
자연석으로 차곡차곡 쌓은 돌계단이다
분성산에서는 김해시가 두루 조망할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문화재와 김해가야테마파크 그리고
김해 천문대등 불거리도 다양하다.
김해시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가야의 이름이 처음 실린 자료는 고려 말에 편찬된
『삼국유사』 '5가야 조'의 기록에 있다. 이를 살펴보면, 실제로는 아라가야(阿羅伽耶), 고령가야(古寧伽耶)
대가야(大伽耶), 성산가야(星山伽耶), 소가야(小伽耶), 금관가야(金官伽耶), 비화가야(非火伽耶) 등의
일곱 가야의 이름이 나오며 이런 이름들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가락국 수로왕 건국 신화에 덧붙여진
6란(六卵) 설화에 덧붙여진 것인데, 그 6가야의 개념은 신라 말 고려 초의 혼란기에 후고구려나
후백제와 같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무슨 가야' 형태의 국명은, 그들이 소국으로 존재할 당시의
국명이 아니라, 옛날에 가야연맹 중의 하나인 금관국(金官國), 아라국(阿羅國), 고동람국(古冬攬國)
성산국(星山國), 비화국(非火國)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신라 말 고려 초의 명칭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6가야설에서 벗어나 고고학 자료 『삼국지』위서 동이전,『삼국사기』,『일본서기』등의
자료를 토대로 하여 가야사를 동태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한다.
분산성(盆山城)
김해 분성산에 있는 분산성이다
김해 동북쪽에 위치한 해발 330m의 분산(盆山) 정상부를 감싼 테뫼식 석축산성이며
남쪽으로는 김해평야, 서쪽으로는 김해 시가지와 양동산성(良洞山城)
그 뒤로는 창원 쪽이 한 눈에 들어오며 산성의 대부분은 돌로 쌓은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서남쪽의 험준한 지역은 뾰족하게 솟은 자연암반을 성벽으로 이용하였다.
분산성(盆山城)
분산성에 대한 기록은 여러 곳에서 전하는데 곧『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석축으로 둘레가 1,560척이나 지금은 퇴락하였고, 성내에 우물이 둘인데 겨울과 여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하였고
「정몽주기문(鄭夢周記文)」에는 박위(朴蔿, ?∼1398)가 김해로 내려와 왜적에 대비하여 분산성을 고쳐 쌓으면서
크게 확장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분산성 안에는 김해부사 정현석(鄭顯奭)이 건립한
「정국군박공위축성사적비(靖國君朴公蔿築城事蹟碑)」가 있는데
이에 의하면 조선 초에 박위가 옛 산성에 의거하여 보완해 쌓은 뒤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것을
1871년(고종 8)에 다시 현재의 성벽으로 고쳐 쌓았다고 한다.
분산성은 조선 초기 이전에 이미 축조되었고, 몇 차례 보완되었던 셈이다.
하지만 축성 방법이나 출토 유물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고쳐 쌓으면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여러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수축과 개축이 이루어졌고
1871년에 다시 쌓은 성벽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해은사(海恩寺)
부처님의 가피가 내린 김해 최고의 명당인 만장대(萬丈臺)에 위치한 해은사는
정면 남쪽에는 낙동강 하류의 넓은 평야가 바라보이며, 서쪽에는 김해시, 동쪽에는 동김해시가 훤하게 내려 보인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해은사(海恩寺)'라는 이름은 허황후(許皇后)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무사히 바다를 건너왔기에
풍랑을 막아준 바다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김해시에는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ㆍ허황후 설화와 관련된 곳이 많이 있으며
수많은 사찰이 남방불교 전래설에 입각하여 그 창건을 얘기하고 있다.
해은사 또한 그런 사찰들 중 하나이다.
해은사에는 다른 사찰에서 찾아볼 수 없는 대왕전(大王殿)이라는 전각이 있는데
대왕이라 함은 바로 수로왕(首露王)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각 내부에 수로왕과
허황후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해은사는 분산성 내에 위치하고 있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한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흥선대원군이 내린 '만장대'라는 칭호를 보더라도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찰들이 그러하듯이 해은사 역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쇠퇴의 길을 걷다가
1982년 영산전(靈山殿)을 재건하면서부터 가람이 정비되었고
현재는 김해시의 지원으로 분산성 일대가 복원, 정비되고 있다.
포대화상(布袋和尙)
은해사 불이문(不二門) 우측에 있는 포대화상이며 요즘 사찰 어딜 가던 포대화상이 유행처럼
자리하고 있는것을 볼수 있다.
해은사의 창건배경 및 역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분산성 정상에 위치한 해은사는,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락국으로 건너와 수로왕과 결혼한 허황후가
무사히 배를 타고 건너올 수 있도록 풍랑을 막아준 바다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에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조와 금관성파사석탑(金官城婆娑石塔)조에 의하면
허황옥이 바다를 건너와 수로왕과 결혼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창건 이후 조선시대까지의 연혁은 전하는 바가 없어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해은사가 분산성 안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전란 등으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원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얼마 전까지 대왕전에 봉안되어 있던
수로왕과 허황후의 진영(眞影)이 조선후기의 작품이므로 이로써 조선시대 역사의 한 부분을 짐작해 볼뿐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쇠퇴해졌던 가람은 1982년에 영산전 중건을 기점으로
여러 법당을 중건ㆍ보수하였으며, 최근에는 부산ㆍ경남지역에서 처음으로 납골당을 설치하여
지장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다.
1997년에는 허황후가 배에 실어 왔다는 파사석탑을 재현하는 불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분성산 충의각(忠義閣)
충의각은 분산성의 건설내력 등을 기록한 4개의 비석을 보존한 건물이다
좌측의 2기는 흥선대원군 만세불망비로 김해부사 정현석이 분산성을 보수한 후 이를
허가 해 준 흥선대원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비석에는
고려말 정몽주가 쓴 분산성 관련 글도 새겨져 있다.
세번째 비석은 정국군박공위 죽성사적비로 고려말 분산성을 보수하여 쌓은 박위장군의 업적과 내력을
기록한 것으로 고종8년(1871)에 세운 것이다.
마지막 비석은 부사통정대부 정현석 영세불망비로 분산성을 보수하여 쌓은 정현석 부사의 공을 영원히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고종11년(1874)에 건립되었다.
봉수대로 가는길
충의각에서 봉수대 가는 방향이며 여기서도 김해시내 조망이 좋다
김해시의 자연환경을 보면 시의 북부를 관류하다가 동북부에서 방향을 바꾸어 남류하는
낙동강(洛東江)이 밀양시·양산시 및 부산광역시와의 자연적 경계를 형성한다.
지세를 보면, 시의 북반부는 낙동강의 유수에 의해 침식되어 단절되었다가
다시 돌출된 태백산맥의 지맥이 지나가 평지가 적고, 무척산(無隻山, 700m)·석룡산(石龍山, 495m)
금동산(琴洞山, 463m)·신어산(神魚山, 630m) 등이 솟아올랐으나 차츰 고도가 낮아져
하구 쪽의 평야부와 맞닿아 있고 대동수문은 밀물 때 바닷물이 흘러드는 것을 막는 구실을 하며
관개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김해평야는 낙동강의 상·중류에서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되어
이룩한 우리나라 최대의 삼각주상의 충적평야이다
서쪽에는 북에서 남서쪽으로 해안산맥이 연속되어 비음산(飛陰山, 510m)·용지봉(龍池峰, 728m)
대종산(大宗山, 655m)·불모산(佛母山, 802m)·팔판산(八板山, 801m)·화산(花山, 798m)
굴암산(窟巖山, 621m)·보배산(479m) 등이 창원시와의 동부 경계를 이루며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봉수대로 가는길
김해시의 자연환경은 중앙부는 낙동강 삼각주의 거대한 평야부를 이루어
시가지와 일부의 농경지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한편, 동부는 북쪽에서 낙동강이 유로를 바꾸어
부산광역시와 경계를 이루며 남류하다가, 중앙의 삼각주 평야부를 배후지로 한 뒤
하구 부근의 명지도에 이르러, 유로가 두 갈래로 나뉜 동부의 본류와는 달리 폭이 현저히 좁아진
지류로서 남해에 도달하고 낙동강에 유입되는 시역 내의 소하천으로는
주촌면 덕암리 쪽의 황새봉(393m)에서 발원해 주촌면·장유면을 관류하며 농경지를 형성하고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조구천(潮溝川)과, 진례면 산본리의 남쪽 용지봉에서 발원해
진례면·생림면을 북류하며 관개용수를 공급하는 화포천(花浦川)을 비롯해
동쪽의 대조천·예안천, 시 중심부의 해반천, 서쪽의 진례천·주촌천·죽동천, 서남쪽의 내삼천·죽동천
그리고 남쪽의 율하천·사촌천 등이 있고 질구조는 중생대 경상계 지층으로 덮여 있다 한다.
만장대(萬仧䑓)
갈림길에서 바위사이길로 들어가면 기암괴석 지대 바위에 만장대 라는 한문이 새겨져 있는데
1999년에 복원된 봉수대 뒤편의 바위에는 만장대라 쓴 대원군의 친필과 도장이 새겨져 있다.
만장대는 조선시대에 대원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전진기지로 "만 길이나 되는 높은 대"라는 칭호를 내렸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분산성 봉수대
분산 정상에 둘레 약 923m, 폭 8m 정도로 쌓은 성벽. 사적 제66호로 낙동강 하류의 드넓은 평야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산꼭대기에 있는 평탄한 지형을 둘러서 그 주위에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수직에 가까운 석벽의 높이는 약 3~4m에 이른다. 이곳에 세워진 '정국군박공위축성사적비'를 보면, 조선 초기에 박위가 고산성(古山城)에 의거 수축했으며,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871년 (고종 8년)에 다시 현재의 성벽으로 고쳐지었다고 적혀 있다. 분산성으로 가는 장 쉬운 방법은 먼저 해은사(海恩寺)를 찾는 것. 해은사 옆 길로 조금만 내려가면 김해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지면서 견고하게 쌓은 성벽이 길게 이어진다. 해은사는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무사히 바다를 건너 가락국으로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절. 풍랑을 막아준 바다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움과 감사한 마음 담은 ‘왕후의 노을’ 해질 무렵 분산성에 올랐을 때, 하늘이 붉은 빛으로 변한다면 쉽게 자리를 뜨지 말 것. 분산성에서 보는 노을은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 바로 허왕후의 노을이기 때문이다. 허황옥은 꿈속의 계시를 받고 자신의 낭군이 될 수로왕을 만나기 위해 머나먼 바닷길에 올랐는데, 거대한 바다와 거친 파도 속에서 그녀에게 위안을 준 것은 바로 노을이었다.노을은 오늘의 안녕과 내일의 만남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으로 붉게 물들었고, 허황옥은 마침내 운명의 짝을 만나 수로왕비가 되었다. 허왕후는 그 노을을 잊을 수가 없어 분산성에 올랐고, 노을을 보며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고 인도 아유타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분산성 노을은 김해낙동강레일파크의 ‘왕의 노을’을 마주하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분성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조망
하루해도 떨어지고 저녁노을에 군데군데 조명이 들어오며 김해평야지와 낙동강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김해에는 가야문화재가 많은데 그중 수로왕릉이다
수로왕릉의 위치는 김해시 서상동 312번지에 있으며 김해의 상징적 문화유적으로서
가락국 시조대왕의 능이며 납릉이라고도 한다.
수로왕은 서기 42년 음력 3월 3일 구지봉에 탄강하여 3월 15일에 즉위 함으로서 가락국을 건국하였고
서기 199년 3월 20일에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혔다.
서기 48년 인도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을 왕비로 맞았으며 우리나라 김해김씨의 시조가 되었고
왕릉의 외형은 원형 봉토분이고 봉분의 높이는 약5m로서 선조 13년 수축하고
인조 25년 능비를 세웠으며 비에는『가락국 수로왕능(駕洛國 首露王陵)』 이라 각자(刻字)되어 있다.
신도비에 새겨진 태양문양과 납릉정문의 신어상, 파사석탑문양, 코끼리상 등이
인도와의 문화교류를 알려주는 단서가 되고 있다.
수로왕릉 전경태양문양 신비도납릉정문 신어상 왕릉은 선조 13년(1580년)에 영남관찰사 허엽이 릉을 수축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수로왕의 신위를 모신 숭선전에서 춘추로 제향을 올리고 있는데
숭선전 제례는 지방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달(月)과 김해시
신어산 산줄기가 시내쪽으로 길게 뻗어 있고 어느새 밝은 달이 하늘에 떠올랐다
김해시 어방동의 아파트 단지가 도심숲을 이루고 있다.
김해 분성산에는 둘레길도 잘 조성되어 있는데 가야대역 부터
분성산생테숲체험관을 거쳐 김해천문대 까지 6.23km이라고 한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가야문화유적지와 함께 역사 둘레길이라 학생들에게 많이 도움 될듯 하다.
가야테마파크 가락왕궁의 조명
봉수대에서 낙동강과 김해시내를 한참이나 조망하고 나니 어느새 달밤이 되었다.
가야테마파크는 김해시민의 일상 문화 휴식 공간으로 바쁜 현대인의 일상에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일상휴식공간이며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라고 소개 하고 있다.
낙남정맥(洛南正脈)의 끝지점 분성산(盆城山) 산행 마무리
낙남정맥 끝지점에서 낙동강을 바라보고 가야제국의 숨결을 볼수 있는 산행지 이다
유년기 시절 3대 평야지가 김해평야 호남평야 나주평야 이렇게 외웠는데
김해평야지도 이제는 평야지가 아닌 공업지대가 되어 있다
그것은 상전벽해(桑田碧海)즉 뽕나무 밭이 변해서 푸른바다가 된다는 뜻인데
세상이 덧없이 빠르게 변하는걸 세삼 나 자신 스스로도 느낄수 있는 시간이다.
※인용글 :
자료-인터넷사전,향토문화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산하,우리산줄기이야기
근교산&저너머(국제신문), 명산플러스(경남일보),한국1000산 신명훈,
유정열1000명산견문록, 한국의산천,김해시,주촌면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CE[202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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