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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수암사(宜寧 水巖寺).333분 관세음보살님의 원력이 있는 수암사에 걷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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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수암사(宜寧 水巖寺).333분 관세음보살님의 원력이 있는 수암사에 걷다

바다늑대FORCE 2020. 1. 29. 12:37


의령 수암사(宜寧 水巖寺)

333분 관세음보살님의 원력이 있는 수암사 도량을 걷다


▣ 의령 수암사(宜寧 水巖寺)

   경남 의령군 의령dmq 수암로267

   전화 : 055-574-1056


▣ 사찰기행일 : 2020년01월29일 수요일. 날씨: 흐림


▣ 수암사 개요 :

수암사가 자리 잡고 있는 벽화산은 백두대간에서 불거진 진양기맥이 북쪽에서 담을 두른 명산으로 꼽히며
조선의 대학자 남명 조식 선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랐다는 자굴산이 좌장이다.
또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인 한우산이 그 뒤를 따르며
국사봉과 천황산 등 굵은 산들과 나란히 선 미타 특히 수암사는 옛 보천사지의 법맥을 이어받기 위해 창건한
용국사의 사찰 명을 변경했고, 제1주차자의불이문(不二門)을 들어서면 333분의 관세음보살이 크신 원력과 가피력으로
방문객을 대자비의 극락정토로 안내한다.
333분의 관세음보살님의 끝자락에는 양쪽에 사천왕님들이 가람을 수호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신라 경덕왕 때 건립된 보천사 대도량(大道場)의 사지가 흔적으로 남아있으며
보천사 3층 석탑은 보물 제373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임진왜란 때에는 홍의장군으로 불리우는
의병장 곽재우가 왜구들에 맞서 싸우는 전초기지였던 유서 깊은 곳이다.


수암사 위치도



▣ 수암사 찾아가는길

진주역→→→남해고속도 군북TG→→→정암교→→→의령 벽화로→→→수암로 수암사 주차장

42km  승용차35분 소요

→→→→→사찰기행시작

의령에서 근무를 시작한지 3주가 조금 지났다

출퇴근길 주변에 수암사라는 입간판이 있어 감색해보니 제법 큰사찰이었다

퇴근길에 들여 지리도와 사찰도량 구조도 숙지할겸 사찰기행에 나섰다.


수암사 입구

수암사는 의령벽화산 아래 자리하고 있으며 벽화산에는 벽화 산성도 있다.

1995년에 창건 되었다 하며 2012년 용국사에서 현재 수암사로 사찰이름이 변경 되었다 한다

사찰 도로 주변에는 벚꽃나무가 많이 조림되어 있는데

아마도 봄에 벚꽃이 필무렵 오면 더욱더 좋을듯 하다

사찰 입구는 천왕문과 법고가 있는 2층 누각으로 만들어 져 있다

마치 거대한 성으로 만들어진 듯한 느낌이다

천왕문 양측 벽에는 12간지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법고가 있는 천왕문 2층 누각

보통 법종 법고 목어 운판 한곳에 법구가 있는데 사천왕문 2층에 법고가 설치되어 있다.

법고(法鼓)는

법을 말하는 것을 법고를 울린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교법이 널리 세간에 전하는 것을 북소리가 널리 퍼지는 데 비유하기도 하고

교법으로 중생의 번뇌를 없애는 것이 마치 진치고 있던 군사들이

북소리가 울리면 전진해 적을 무찌르는 데 비유하기도 했다.

또는 정법의 북을 쳐서 시방세계를 깨우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한편 불경에도 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는 석가모니 당시에 북이 사용되었음을 뜻한다.

당시 북은 대중에게 크고 작은 일이 있음을 알리는 역할을 한 듯하다.


사천왕 좌우에 있는 동방지국천왕(持國天王) 과 남방증장천왕(增長天王)

우리 나라의 사찰에서는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의 천왕문(天王門)에 이 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있다.

보통 이 천왕상들은 불거져 나온 부릅뜬 눈, 잔뜩 치켜올린 검은 눈썹

크게 벌어진 빨간 입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에 손에는 큼직한 칼 등을 들고

발로는 마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때 발 밑에 깔린 마귀들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하는 상을 하고 있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했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그들은 수미산(須彌山) 중턱에서 각각 그들의 권속들과 살면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며 불법 수호와 사부대중의 보호를 맡게 되었다.

또, 사천왕과 그 부하 권속들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세간의 선악을 늘 살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매월 8일에는 사천왕의 사자(使者)들이, 14일 태자(太子)가

15일 사천왕 자신이 제석천(帝釋天)에게 보고하는 것이 중대한 임무의 하나가 되고 있다.


서방광목천왕(廣目天王)과 북방다문천왕(多聞天王)

사천왕 중 동쪽을 수호하는 이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이다.

그는 안민(安民)의 신으로서 수미산 동쪽 중턱의 황금타(黃金埵)에 있는 천궁(天宮)에서 살고 있다.

16선신(善神)의 하나이기도 한 지국천왕은 선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어

항상 인간을 고루 보살피며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얼굴은 푸른빛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는 칼을 쥐었고 오른손은 허리를 잡고 있거나

또는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그는 휘하에 팔부신중의 하나로서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만 맡는 음악의 신 건달바(乾達婆)를 거느리고 있다.

서쪽을 방어하는 신은 수미산 중턱 백은타(白銀埵)에 살고 있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이다.

그는 흔히 잡어(雜語)·비호보(非好報)·악안(惡眼)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그의 남다른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그의 몸은 여러 가지 색으로 장식되어 있고 입을 크게 벌린 형상을 함으로써

웅변으로 온갖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고 한다.

또 눈을 크게 부릅뜸으로써 그 위엄으로 나쁜 것들을 몰아낸다고 하여 악안·광목이라고 하는 것이다.

광목천왕의 근본 서원은 죄인에게 벌을 내려 매우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도심(道心)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모습은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워 끝이 셋으로 갈라진 삼차극(三叉戟)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보탑을 받들어 쥐고 있다. 그의 권속으로는 용(龍)과 비사사(毘舍闍) 등이 있다.

남방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수미산 남쪽의 유리타(瑠璃埵)에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위덕을 증가하여 만물이 태어날 수 있는 덕을 베풀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구반다 등 무수한 귀신을 거느린 증장천왕은 온몸이 적육색이며 노한 눈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그의 모습은 대개 갑옷으로 무장하고 오른손은 용을 잡아 가슴 바로 아래에 대고 있고

왼손에는 용의 여의주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달리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라고도 하는데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 하여 다문이라고 한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암흑계의 사물을 관리하는 것인데 한때 불법에 귀의하여 광명신(光明神)이 되었으나

본래 자신의 원을 지킨다 하여 금비라신(金毘羅神)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다문천왕은 왼손에 늘 비파를 들고 있다. 그는 수미산의 북쪽 수정타(水精埵)에 살며

그의 권속으로 야차와 나찰을 거느리고 있다.


수암사 경내풍경

좌측은 종무소 건물이며 식당과 일반요사 건물로 보이며

우측은 불교용품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계단으로 올라가면 2층엔 극락천궁이라는 편액이 걸여 있다.

극락천궁은

도솔천(兜率天)은 불교에서 말하는 6가지 세상에서 4번째로 미륵불이 관장하는
미래세계를 준비하는 극락정토를 말하며, 도솔궁은 현생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목표로 만들어졌다.
선망부모를 포함한 일체중생의 인연영가들이 부처님의 자비로운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과 더불어
다음 생을 받기까지 영면을 취할 수 있는 추모 관으로 만들었다.
또 스님들이 매일 조석예불을 통해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있으며
영가의 인연들이 안락하게 참배할 수 있는 최적으로 공간으로 단장돼 있다.

천왕문에서 직선으로 정면에는 대웅광전 이자리 하고 있으며

우측은 관음전 우측은 극락천 건물이 위치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사찰이 웅장해 보였다

사찰에 들어서면 유난히도 많은 관음상을 볼수가 있다


대적광전 가기전 계단의 관음상

수암사에는 관음상이 333분이 모셔져 있다는데 도량마다 관음상이 즐비하였다

관음상 모두 감로수병을 들고있는 모습이다

감로수(甘露水)

불교에서 말하는 육욕천(六慾天)의 둘째 하늘인 도리천에 있는

달콤하고 신령스런 액체를 ‘감로’라 한다.

이 액체는 한 방울만 마셔도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고

살아 있는 사람은 오래 살 수 있고 죽은 이는 부활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불사주(不死酒)로도 일컬어진다. 때로는 부처의 교법(敎法)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극란전 과 관음전 앞 계단의 좌우에 있는 금강역사(金剛力士)

사천왕문을 지나 종무소를 지나면 직선계단이 나타나는데 직선 계단을 올라오면

계단 끝부분에 금강역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좌우에는 관음전과 극락전이 윛히하고 있다

금강역사(金剛力士)

문을 지키는 수문장 구실을 한다.

금강역사상은 문 외에도 석탑과 부도의 탑신부 또는 사리기, 불감(佛龕, 불상을 모셔놓는 작은 집)

신중탱화 등에도 등장해서 불보살과 사리를 수호하고 있다.

금강역사의 산스크리트 이름은 ‘바즈라파니(Vajrapa-n·i)’ 또는 ‘바즈라다라(Vajradhara)’이다.

금강저, 즉 바즈라의 주인 또는 그 금강저를 들고 있는 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집금강(執金剛) 또는 금강수(金剛手)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강역사상은 대부분 맨손이며, 간혹 왼손에 칼을 들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보통 사찰 출입구[金剛門]의 오른쪽에는 입을 벌리고 있는

아형(阿形: ‘아’하고 입을 벌린 채 공격하는 모습을 취함) 금강역사

왼쪽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훔형(‘훔’하고 입을 다문 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함) 금강역사가 배치되어 사찰을 수호한다.

아형 금강역사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 훔형 금강역사는 밀적금강(密蹟金剛)이라 부른다.

나라연금강은 천상의 역사(力士)로서 힘이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한다.

밀적금강은 언제나 금강저를 들고 부처님을 호위하며, 온갖 비밀스러운 사적(事跡)을 알고 있다고 한다.

이들 인왕상의 도상 특징은 상체를 벗은 반나체에 손은 권법(拳法)을 짓거나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수암사 관음전(觀音殿)

다포계형식의 팔작지붕이며 정면5칸 측면4칸의 건축물이다

관음전 맞주보면 건물은 똑 같은 형식의 극락전이 맞주보고 있으며

도량에는 감로수병을 든 곤음상이 4열로 배치되어 있다 

간음전 내부에는 천수천안 관세음 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의 공덕이 주원융통하다는 의미에서 원통전이라고도 한다.

이 안에는 관세음보살을 홀로 모시거나, 양류관음이나 해수관음 또는 천수관음 등을 모시기도 한다.

관음상은 대개 왼손에 연꽃이나 감로병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을 주로 모셔 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하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찰에 관음전이 있다


극락전(極樂殿)

관음전을 정면으로 맞주하고 있으며 역시 다포계형식의 팔작지붕 건축물이다

극락전은 대웅전 다음으로 많으며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이라고 한다.

주불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로 봉안된다.

후불탱화로는 극락정토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극락회상도를 주로 봉안하며

그밖에 극락의 구품연화대를 묘사한 극락구품탱화나 아미타탱화를 봉안하기도 한다.

극락정토왕생에 대한 믿음이 강했기 때문에 대웅전과 견줄 만큼 화려하게 꾸몄다.

불단은 꽃무늬와 비천으로 장식하고

주불 위에는 닫집인 천개를 만들고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이나 극락조 등을 조각해 장식하기도 한다.

극락전이 본당인 절에서는 극락을 의역한 '안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안양교·안양문·안양루 등을 갖추기도 한다.


대적광전(大寂光殿)으로 가는길

저멀리 대적광전은 황금색으로 단청 되어 있었다

감로수병을 들고 양측으로 관음상 사이로 걸어서 올라간다

마치 군(軍)에서 사열을 받듯이 양측으로 관음상이 도열 해 있다

수암사에는 관음상이 333분이 모셔져 있다는게 느낄수 있을 정도다.


大寂光殿(대적광전)

조감도를 보면 대적광전 위에는 동양최대 금동미륵대불 불상 조감도가 그려져 있는데 불사중이다

편액은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 걸려있다.

단청은 황금색으로 되어 있으며 벽면에는 천불상 부처님 조각되어 있다

지붕형식은 18개 각으로 이루어진 지붕으로 조성해 놓은듯 하다

大寂光殿(대적광전)은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에서는 주로 이 전각을 본전(本殿)으로 건립하여

화엄경에 근거한다는 뜻에서 화엄전(華嚴殿) 화엄경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불을 봉안한다는 뜻에서

비로전(毘盧殿), 그리고 화엄경의 연화장세계가 대정적의 세계라는 뜻에서 대적광전이라고도 한다.

이 대적광전에는 원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하여 연화장세계를 상징하게 된다.

원래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삼신불로는 비로자나불·아미타불·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찰에서는 선종(禪宗)의 삼신설에 따라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의 삼신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비로자나불의 좌우 협시보살(脇侍菩薩)로는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봉안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당 내 오불(五佛)을 봉안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삼신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봉안하며

아미타불의 좌우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약사여래의 협시보살로는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봉안하게 된다.

이 경우 약사전(藥師殿)과 극락전(極樂殿)을 대적광전에서 함께 수용한 형태로

우리 나라에서 중요하게 신봉되는 불보살들이 모두 한 곳에 모인 전각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볼 때 대적광전은 사찰 내에서 가장 큰 당우가 된다.

후불탱화(後佛幀畫)는 전각의 규모에 따라 1폭의 삼신탱(三身幀)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법신탱·보신탱·화신탱 3폭을 각각 불상 뒤에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대적광전의 위치가 대웅전과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보통 신중을 모신 신중단(神衆壇)과 영가를 모신 영단(靈壇)을 함께 마련하게 되며

신중단에는 신중탱화를, 영단에는 감로탱화(甘露幀畫)를 봉안한다.

내부의 장엄도 화려하여 보통 주불 뒤에는 닫집인 천개(天蓋)를 만들고 여의주를 입에 문 용 등을 장식하며

천장에는 보상화문(寶相華文)과 연화문(蓮華文) 등을

벽의 상단에는 화불(化佛)과 비천(飛天)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이 전각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海印寺)의 대적광전과

전라북도 완주군위봉사(威鳳寺)의 보광명전(普光明殿)을 들 수 있다.


수암사 대적광전(大寂光殿)내부

대적광전 건물 총면적은 826㎡규모라고 하며 금동불상이 그  화려함에 눈이 부실정도다.

법당 내부에는 금동만불상으로 조성되어 있다

수암사는 총 대지면적이 11만5천㎡ 라고하며 대적광전그리고 요사채등 6개의 건물로 이루어 져 있다.

전국촤대규모를 자랑하는 법당식 납골당 총 4만3천기가 있다고 하며

동양최대의 333개의 노천 고나음상이  조성되어 있으며

조계종 소속 승려 및 종무소 직원등 8명으로 운영중인 현대 사찰이다.


수암사 범종각(水巖寺 梵鐘閣)

범종각도 고풍스러운 옛모습 그대로 보는듯 하다

팔각형지붕에 다포계형식으로 단청도 찬란하다

올라가서 내부 천정쪽도 보고싶었지만 계단부분 사슬로 쳐져 있어서

치우고 올라가보기엔 부담스러워 밖으로만 살펴보았다.

불전사물 가운데 범종만을 봉안하는 경우에는 범종각이라고 한다.

이곳에 비치되는 사물은 모두 부처님에게 예배드릴 때 사용되는 불구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새벽예불과 사시공양(巳時供養), 저녁예불 때에 사용된다.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의식집인 〈석문의범〉에 의하면

종은 소리를 통해 중생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도록 이끌어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종소리를 듣는 순간,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종소리를 듣고 법문을 듣는 자는 생사의 고해를 넘어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한다.

운판 법고와 같이 범종 역시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절에서 예불을 올릴 때마다 두드리는 범종은 이러한 뜻을 담고 있으며 치는데도 법도가 있다.

범종을 치는 횟수는 예불마다 다른데, 새벽예불을 할 때는 28번 저녁예불에서는 33번을 치도록 정해져 있다.

이 28과 33이란 숫자도 저마다 뜻을 갖고 있는데

28번은 삼계(三界) 즉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욕망이 존재하는 욕계(欲界)의 6천

욕계 위의 세계로 욕망을 떠난 청정한 세계인 색계(色界)의 18천

무념무상의 무색계(無色界) 4천을 뜻한다. 33은 욕계 6천중의 하나인 도리천의 33천을 상징한다.

도리천은 수미산의 정상에 있는 세계로 도리천의 왕인 제석천왕이 있는 선견성을 중심으로

사방에 8성씩 32성을 포함해 총 33성을 갖고 있다.

조석예불의 범종소리는 삼계와 도리천에 전해져 이곳의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수암사 석탑과 포대화상(布袋和尙 )

대적광전우측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과 포대화상이 모셔져 있다

포대화상은 중국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법명은 차(此)이다.

요즘들어 사찰에 가면 포대화상이 많이 모셔져 있는데

그 이유인즉 사찰에 돈이 많이 모인다고 한다

그게 진짜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뭏튼 사찰마다 예전에 없었던 포대화상이 많이

모셔 놓았다.

포대화상은 호를 장정자라 했고, 악림사에서 출가했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항상 웃는 모습이었으며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으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포대화상이라고 불렀다.


대적광전에서본 극락전

대적광전에서 참배를 하고서 수암사 도량을 둘러 보았다

333관음상을 본것 만으로도 관세음 보살 원력이 넘치는듯 하다

늘 관세음보살을 호명하며 수암사 도량을 걸어본다

앞으로 동양최대의 금동미륵대불이 완성되면 또 하나의 의령의 자랑꺼리이며 불교의 성지가 될듯하다

관음전에서 대적광전으로 오르는 계단은 테크계단인데

아마도 세월이 가면 대리석 계단으로 바뀔것이라 본다


333의 관음상

보천사로 연결 되는 333의 관음상 길이며 양쪽 650m에 걸쳐 옥석으로 만든  높이 2.8m의 관음상이다

신라 경덕왕 때 건립된 보천사 대도량(大道場)의  사지가 흔적으로 남아있으며

보천사 3층 석탑은 보물 제373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임진왜란 때에는 홍의장군으로 불리우는 의병장 곽재우가 왜구들에 맞서 싸우는 전초기지였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이 길을 걸어면 양측으로 관음보살의 온화한 미소와

감로수를 미천한 불자를 향해 주는듯 하다

감로수 한모금 마시고서 간세음보살님의 원력으로 험상세상 잘 헤쳐 나갈수 있도록 기도해본다

마귀에 쫒겨도 관세음보살님의 원력으로 벗어나게 하고

어둠속에서 관세음보살님의 원력으로 밝은 빛을 보게 되었으면 한다.


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宜寧寶泉寺址三層石塔)

보천사터에 세워진 고려 전기의 탑이다. 보천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사찰로서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 절에 빈대가 많아 살기가 힘들자 승려들이 다른 절로 떠나게 되었고 곧바로 폐사되었다고 하는데

조선 중기 이전에 이미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터에는 이 탑 외에도 보물 제472호로 지정된 의령 보천사지 승탑이 남아있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얹었는데

고려탑이긴 하나 신라의 일반적인 양식을 이어받고 있다.

탑의 바닥돌은 아래에 네 모서리마다 큰 괴임돌을 두었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양 모서리와 가운데 부분에 기둥 모양을 하나씩 새겼다. 

위의 맨윗돌은 구성이 독특한데, 두 장의 길고 판판한 돌을 좌우로 얹고

그 사이에 작은 2개의 널돌을 끼워놓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닥돌에서의 괴임돌처럼 돌이 움직이지 않도록 잡아주어 탑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배려인 듯 하다.

위층 기단은 각 면의 양쪽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새겼을 뿐, 가운데부분은 생략하였다.

탑신은 각 층에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하여, 층층이 온화하게 크기를 줄이면서 올려놓았다.

몸돌에는 모서리에만 뚜렷하게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5단의 밑받침을 두었다.

지붕돌의 경사면은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며, 처마의 윗선은 거의 수평을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서서히 들려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쳐주는 네모난 노반(露盤)만 남아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반 위로 불꽃조각을 한 수연(水煙)이 얹혀 있었는데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전체적으로 원만한 비례를 나타내며, 기단부에서의 독특한 구성이 돋보이는 뛰어난 작품이다.

1967년 사리유물을 도난당하는 바람에 탑이 쓰러져 많이 부서졌으나 곧 보수하였다.

 이때 사리를 장치하였던 흔적이 밝혀졌는데 그 안에서 청동으로 만든 불상과 광배 모양의 구리조각, 흙으로 만든 탑 등이 발견되었다.


의령 보천사지 승탑 (宜寧寶泉寺址僧塔)

보물 제472호. 높이 3.35m. 보천사 삼층석탑(보물 제373호)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위쪽은 산능선이 가파르게 이어져 있다.

승탑은 신라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원당형(圓堂形)을 따르고 있다.

4각의 바닥돌은 제법 넓은 편인데, 윗부분에는 단면이 8각인 1단의 굄이 새겨져 있다.

높직한 아래받침돌은 가운데부분의 8각 덮개돌 모양을 중심으로 윗부분과 아래부분으로 구분된다.

아래부분에는 8각의 각 면마다 안상(眼象)이 1구씩 조각되었고

윗부분에는 8각의 전면에 구름 무늬를 가득 새겼다.

아래받침돌의 윗면에는 각지고 둥근 3단의 테두리 장식을 두어 가운데받침돌을 받치게 하였다.

가운데받침돌도 단면이 8각으로, 아래부분에는 테를 둘렀고,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과 함께 안상이 조각되었다.

윗받침돌에는 2단 받침 위의 각 면마다 여러 장의 꽃잎이 위로 솟은 앙련(仰蓮)의 연꽃 무늬 16개가 돋을새김되었고

맨 윗면에는 역시 각지고 둥근 3단의 몸돌 굄이 마련되어 있다.

8각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이 새겨졌는데, 앞 면에만 문비(門扉)와 함께

자물쇠 모양이 돋을새김되었을 뿐 다른 조각은 없다.

두꺼운 지붕돌은 밑면에 2단의 받침을 두었고, 꼭대기에는 2단의 테두리 장식을 두르고서 그 위에 8각 면마다 안상을 조각하였다.

추녀는 얇은 편이지만, 지붕돌 자체가 두꺼워서, 윗면인 낙수면의 경사는 꼭대기부분만 급할 뿐, 추녀 부분에서는 완만한 편이다.

 추녀 밑은 수평을 이루었고, 8각의 각 모서리에는 귀꽃이 장식되었으며

귀꽃에서 꼭대기쪽으로 내림마루인 우동(隅棟)이 제법 굵게 표현되었다. 상륜부(相輪部)의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이 승탑은 세부 조각이 매우 간략하지만 품위가 있어 보인다.

안상을 많이 새겼고, 아래받침돌의 구름 무늬가 약간 형식화되었으며, 지붕돌이 두꺼운 편이어서

고려시대의 조각 수법을 잘 반영하였다고 평가된다.


의령 수암사 사찰기행 마무리

퇴근길에 둘러본 의령 수암사 333분의 관음상 대적광전의 황금빛 우아함 그리고

보천사지의 삼층석탑과 승탑을 보면서  과거의 불교와 현대불교를 비교 해보면서

현대에는 포교방법이 예전보다 좀 다른것을 볼수있었다.


※인용글 : 

자료 인터넷사전 및 의령군 홈페이지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사전 ,전통사찰관광정보 홈페이지 자료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및 사찰종무소스님 인터뷰등 참고함.

바다늑대Forever[20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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